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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은자(殷字)의 재발견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한자는 2,000여 년간 동양 문명의 핵심이자 일상의 도구였으나, 우리는 매일 쓰는 글자의 진짜 주인과 얼굴을 잊은 채 살아왔다. 오늘날 흔히 ‘한자(漢字)’라 불리는 이 문자는 사실 한나라 시대에 붙여진 이름일 뿐, 그 기원은 3,500년 전 상(은)나라의 갑골문과 금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적·고고학적 진실은 이 문자의 창제 주체가 바로 우리의 직접적인 선조인 ‘동이족(東夷族)’이었음을 명백히 가리킨다. 하지만 이 위대한 유산의 해석은 오랜 시간 왜곡되었다. 그 오해의 중심에는 서기 100년경 동한(東漢)의 학자 허신(許愼)이 집대성한 『설문해자(說文解字)』가 있다. 허신은 문자학의 권위자였으나,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갑골문과 금문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소전(小篆) 위주의 해석을 내놓았다. 이는 동이족의 풍습과 철학이 담긴 문자를 화하족(한족)의 시각에서 한정 지어 해석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수많은 ‘은자(隱字)’가 본래의 뜻과는 다른 모습으로 굳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특히 한자의 근본 원소 곳곳에는 동이족만의 고유한 생활 양식과 풍습이 짙게 배어 있다. 대표적으로 ‘오랑캐’로 격하된 ‘이(夷)’자는 갑골문에서 ‘큰 활(大+弓)’을 능숙하게 다루는 문명인의 기개를 형상화한 것이다. 또한,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술을 올리고 춤을 추며 신과 소통하던 제천 행사의 모습, 죽은 이의 영혼을 기리며 옥(玉)을 소중히 여겼던 장례 문화, 그리고 흰 옷을 즐겨 입으며 예의를 갖추어 무릎을 굽히던 생활 방식 등은 갑골문 속에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다. 허신은 이러한 동이족의 문화적 맥락을 알지 못한 채, 이미 변형된 글자 모양만을 보고 억지로 뜻을 짜 맞추는 실수를 저질렀다.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는 여러 개의 작은 ‘근본 원소’들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정교한 퍼즐이다. 본서는 허신의 권위에 가려진 채 잃어버린 동이족의 지혜를 되찾기 위해 다음의 5가지 엄격한 원칙으로 한자의 비밀을 검증한다. ㅁ원형성: 반드시 갑골문과 금문의 초기 자형에 부합해야 한다. ㅁ역사성: 반드시 동이족의 역사적 사실이나 선진(先秦) 시대의 문헌 기록에 부합해야 한다. ㅁ일관성: 모든 한자 부호의 해석은 일관되어 다른 글자에서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ㅁ합리성: 자형에서 파생된 뜻이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해야 한다. ㅁ계승성: 자형과 뜻의 변화 과정이 시대별로 일관되게 이어져야 한다. 본서의 목적은 명확하다. 2,000년 전 허신의 실수와 화하족 중심의 역사관이 만들어낸 광범위한 오류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다. 왜곡된 해석을 바로잡고 동북아시아 문명의 시원인 동이족의 발자취를 추적함으로써, 비로소 한자라는 거대한 나무의 뿌리인 진짜 ‘은자(殷字)’의 의미를 마주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문자 해석을 넘어, 우리 역사의 잃어버린 원류를 되찾는 엄숙한 여정이다. ■ 한자의 막힌 혈관, ‘홀태’와 ‘모래톱’으로 뚫다 한자(漢字)는 동양 정신의 뿌리이자 고대인의 삶을 담은 그릇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랫동안 한자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중국의 해설서, 특히 허신의 『설문해자』가 정해놓은 틀에 갇혀 그 역동적인 본래 의미를 잃어버렸다. 이제 우리말의 고유한 감각인 ‘훑다’와 ‘모래톱’이라는 열쇠를 통해, 한자의 잃어버린 원형을 복원해보고자 한다. ■ 勿(물/몰), 깃발이 아닌 ‘훑어내는’ 동작의 형상 허신은 말 물(勿)자를 깃발이 세워진 모습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갑골문과 금문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칼(刀) 사이로 낱알(丶)이 흩어지는 형상, 즉 빗처럼 생긴 도구로 곡식을 ‘훑어내는’ 동작이 선명하게 읽힌다. 본래 ‘털어내다’라는 뜻의 털 몰(勿)이었던 셈이다. 이 흔적은 만물 물(物)자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소의 등 긁개로 털을 훑어내는 모습에서 유래한 이 글자는, 본래 ‘털어내다’라는 동작이 한자의 핵심 자형 원리였음을 증명한다. ■ 賜(사)와 易(이), 모래톱이 내어준 자연의 선물 줄 사(賜)와 쉬울 이(易)의 관계는 우리 민족의 지형적 감각인 ‘모래톱’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賜’는 조개(貝)를 훑어내는(勿) 모습이다. 물가 모래톱에서 조개를 훑어 건져 올리는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우리말 ‘모래톱’이다. 지형이 톱니처럼 생기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왜 ‘톱’이라 부르는가. 이는 ‘훑는 도구’인 홀태(톱)의 이미지가 지형에 투영된 결과다. 자연이 거저 내어주는 조개를 줍는 일이니 ‘줄 사(賜)’가 되었고, 물줄기가 지형을 쉽게 바꾸는 모습에서 ‘바꿀 역/쉬울 이(易)’라는 뜻이 파생된 것이다. 이는 우리가 갑골문의 원형 정신을 가장 온전히 계승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 利(리), 벼를 베는 것이 아니라 알곡을 ‘터는’ 유용함 우리는 흔히 이로울 리(利)를 ‘벼(禾)를 칼(刀)로 베는 모습’이라 배운다. 그러나 원형은 벼와 ‘털 몰(勿)’의 결합에 가깝다. 볏단에서 알곡을 훑어내는 ‘홀태질’의 효율성을 표현한 글자인 것이다. 수확의 극대화에서 ‘이롭다’는 뜻이, 홀태 날의 예리함에서 ‘날카롭다’는 뜻이 나왔다. 더 나아가 알곡이 체에 걸러지듯 배출된다는 비유에서 대소변을 뜻하는 의미까지 확장되었다. ‘베는’ 행위보다 ‘터는’ 행위가 농경의 핵심적 이익임을 고대인들은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 우리말로 복원하는 한자의 생명력 중국조차 자의적 해석에 갇혀 잃어버린 한자의 본뜻이, 역설적이게도 우리말의 ‘훑다’와 ‘모래톱’이라는 감각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한자를 중국의 전유물로만 여기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고유의 언어 감각으로 한자를 재해석할 때, 비로소 한자의 막힌 혈관이 뚫리고 고대인의 삶과 지혜가 우리 곁으로 온전히 돌아올 것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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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칼럼] 한·독 미래 교육의 만남: 기술적 수용성과 윤리적 성찰의 글로컬 상생을 향하여
[교육연합신문=김춘식 칼럼]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에 따스한 봄 햇살이 깊숙이 내려앉는 이 계절, 전라남도와 독일 브레멘·니더작센주가 미래 교육이라는 가치 아래 국경을 넘어 손을 맞잡았다. 양국 교육 교류 역사상 최초로 시도되는 전라남도교육청교육연수원(JETI)과 독일 브레멘주교육연구원(LIS)·니더작센주 교육전문가의 교원 공동 연수를 앞두고, 수많은 교육 관계자들과 교사들이 뜻을 모아 연수를 준비해 왔다. 필자 또한 양국 교원들의 교육적 고뇌가 담긴 발제문들을 한국어와 독일어로 다듬고 살피는 과정에 동참하며, 비록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으나 참여한 모든 이들의 마음만큼은 내내 뜨거웠음을 깊이 체감할 수 있었다. 교육의 본질은 결국 아이들을 가슴에 두고 서로의 미래를 위해 함께 투입하는 정성과 시간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장의 수많은 손길이 모여 시작된 헌신이 인류 보편의 가치와 맞닿을 때, 우리는 비로소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글로컬(Glocal) 교육의 진정한 서막을 목도하게 된다. 이 역사적인 만남이 뜻깊은 결실을 보게 된 배경에는 교육의 미래를 멀리 내다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린 교육 리더들과 실무자들의 결단과 헌신이 있었다. 전남 담양교육지원청 교육장을 포함한 관계자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혜안, 그리고 대한민국 최초의 한·독 공동 연수라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한 교육연수원장과 연수기획부장, 그리고 교육연구사의 교육적 진심이 맞물려 이 경이로운 무대가 완성되었다. 형식주의와 일회성 퍼포먼스를 과감히 걷어내고, 오직 교사와 학생의 질적 성장을 도모하고자 했던 이들의 교육 철학은 전남이라는 지역적 경계를 넘어 대한민국 공교육 전반에 깊은 시사점을 던진다. 무엇보다 이러한 글로컬 실천의 중심에서 이루어진 양국 교육의 만남은 '기술 수용성'과 '윤리적 성찰'의 화학적 결합이라는 거시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번 교류의 핵심 축인 ‘민주주의 교육’, ‘지속가능발전 교육(ESD)’, 그리고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교육’이라는 글로벌 3대 의제는 오늘날 지구촌 전체가 마주한 문명사적 위험이자, 대한민국을 포함한 전 세계 미래 세대가 반드시 풀어내야 할 공동의 숙제다.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과 전남의 교육은 인공지능과 디지털 인프라를 빠르게 흡수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기술적 수용성'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반면 독일의 교육은 디지털 전환의 거센 흐름 속에서도 개인정보보호와 데이터 주권, 그리고 강력한 기술 윤리적 문제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인간 중심의 철학적 브레이크를 밟아왔다. 따라서 속도를 내며 질주하는 한국의 디지털 교육과, 방향과 안전을 철저히 점검하는 독일의 윤리적 교육이 만난 것은 단순한 친선을 넘어 미래 문명을 선도할 상호 보완적 융합의 계기다. 학교 현장을 방문하는 동안 디지털화가 가져온 편리함 뒤에 숨은 인간 소외 현상, 그리고 알고리즘 의존으로 인한 비판적 사고 저하를 깊이 염려해 온 독일 교사들의 고뇌는 대한민국 교육이 쫓던 속도전에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반대로 한국의 역동적인 디지털 수업 모델과 담양 관내 학교에서 펼쳐진 생태·역사·진로 중심의 유연한 교육과정은 독일 연수단에게 미래 교육의 실천적 가능성을 명확하게 제시해 주었다. 주목할 만하게도 교류 첫날, 담양의 한 초등학교에서 진행된 '5·18 민주화운동' 주제의 현장 수업은 양국 교육자들에게 깊은 공감대를 선사했다. 5·18의 진실을 세계에 알린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깊이 있게 다룬 이 수업에서, 독일 연수단은 한국 초등학생들의 높은 역사적 문제의식과 성숙한 태도에 큰 감동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정체성과 존엄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바로 이처럼 국경을 초월해 인류 보편의 가치를 뜨겁게 공유했던 상생의 현장 속에 존재한다. 이번 한·독 교원 교류는 단순한 지역 단위의 연수를 넘어 대한민국 미래 교육의 거버넌스를 확장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향후 대한민국 교육 정책을 이끌어갈 선구자들과 행정 담당자들에게 세 가지 정책적 제안을 던지고자 한다. 첫째, 글로벌 교육 교류에 대한 지속가능한 행정·재정적 지원의 확대와 제도화가 시급하다. 미래 교육의 도전과제는 개별 지역이나 국가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 정책 담당자들은 지역의 우수한 교육 자산이 글로벌 무대와 중단 없이 소통할 수 있도록 전용 예산을 확보하고 수립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국가적 차원의 제도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기술' 중심의 디지털 수용성 정책에서 '철학과 윤리' 중심의 가치 정책으로 확고하게 대전환해야 한다. 스마트 기기 보급률이나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 속도라는 수치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독일 교육이 보여준 개인정보보호, 데이터 윤리, 그리고 비판적 사고 능력을 기르는 'AI 리터러시'를 대한민국 교육과정 전반에 제도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기술을 다루는 테크니션을 넘어, 기술의 시대에 인간다움을 사수하고 다스리는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셋째, 일회성이자 일방향적인 교원 연수를 넘어선 '글로컬 교육공동체 및 학생 교류 모델'의 정립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교사들의 만남과 사유의 시간은 반드시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의 실질적인 상호 교류로 이어져야 한다.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세계의 학생들과 민주주의와 인권, 디지털 윤리를 주제로 함께 토론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지역의 특수성과 세계의 보편성을 잇는 글로벌 교육 네트워크를 국가 정책 차원에서 밀어주어야 한다. 이번 교류는 현장 리더들의 교육적 혜안과 보이지 않는 실무진의 땀방울이 맞물려 일궈낸 대한민국 미래 교육의 역동적인 출발점이다. 참된 교육은 외형적 형식을 넘어 내실 있는 가치를 채우는 일이며, 교사의 뜨거운 가슴을 통해 아이들의 숨결을 온전히 느껴야 하는 본질의 여정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교육정책 담당자들이 이번 한·독 교류가 전남의 대지 위에 가꾸어 놓은 글로컬 상생의 불씨를 이어받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 아이들이 거대한 디지털 해일 속에서도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인간 존엄의 가치를 단단히 쥔 채 당당한 세계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대한민국 미래 교육의 문을 활짝 열어주기를 간곡히 기대한다. ▣ 김춘식 동신대학교 에너지경영학과 교수이자 한국독일사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한국의 교육, 독일의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을 만나다』(포스텍융합문명연구원; 소명, 2025) 등이 있다. ◇ 교육연합신문 논설위원 ◇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 한국독일네트워크(ADeKo) 이사 겸 인문교육위원장 ◇ 2024 칼만 해외석학(독일 연방교육연구부, 아헨공과대학교) ◇ 前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 前 국가교육위원회 미래과학인재양성특별위원회 전문위원 ◇ 前 한국전문대학평가인증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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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백제의 이름, ‘밝은 나라’에서 ‘일본’까지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역사는 과거를 읽는 일이지만, 단지 지나간 세월을 정리하는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역사는 오늘을 비추고, 내일을 준비하는 거울이 된다. 그래서 국호(國號), 즉 나라의 이름을 새삼 살펴보는 일은 단순한 어원 풀이가 아니다. 이름은 정체성이고, 그 이름에 담긴 뜻은 후대가 스스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큰 자산이 된다. 우리에게 백제는 교과서 속에서 흔히 “한반도 서남부의 소국, 660년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최근 학계와 현장의 발굴은 그 단순화된 서술에 물음표를 던진다. 백제의 범위는 더 넓었고, 영향력은 훨씬 깊었으며, 무엇보다도 그 이름이 지닌 의미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풍부했다. □ 백제라는 이름의 여러 얼굴 문헌과 금석문에는 백제의 국호가 한 가지로만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가 잘 아는 百濟(백제) 말고도, 광개토대왕비에는 百殘(백잔), 다른 기록에는 十濟(습제), 또 이체자인 佰濟, 남부여(南扶餘)라는 표기도 보인다. 일본에서는 倶太羅(구다라), 百濟(일본식 발음 구다라)라 불렀다. 더 나아가 은유적 표현으로 扶桑, 風谷, 半島라는 지칭까지 섞여 있다. 이처럼 다층적이고 이질적인 표기들이 얽혀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연구자들이 찾는 것은 이들을 하나로 묶어낼 “어원 열쇠”이다. □ ‘백’과 ‘제’, 문자에 담긴 빛과 물 먼저 ‘백(百)’이라는 글자를 보자. 갑골문과 금문에서는 본래 엄지손톱의 흰빛을 그린 상형이었다. 그 흰빛이 곧 밝음, 순수함을 뜻하게 되었고, 후대에 ‘많다’의 의미가 붙으며 수사 ‘백(100)’이 된 것이다. 결국 그 뿌리는 ‘밝음’이었다.([그림 30] ‘百’ 참조) ‘제(濟)’는 본래 제나라의 ‘제(齊)’에서 갈라져 나온 글자다. 물(水) 변이 붙으며 강과 관련된 뜻으로 발전했다. 중국의 제수(濟水)와 연결되고, 후대에는 ‘건너다’, ‘구제하다’라는 뜻이 파생되었다. 그러니 百濟는 문자적으로도 ‘밝음’과 ‘강’이 결합한 이름이라 할 수 있다.([그림 30] ‘濟’ 참조) □ 예군 묘지명에 새겨진 단서 2011년, 중국 서안에서 발견된 한 묘지명은 백제사 연구에 큰 충격을 주었다. 백제계 인물로 추정되는 ‘예군(禰群)’의 묘지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日本餘燼(일본의 여초, 전란 뒤 살아남은 무리)”, “扶桑에 의지하여 죽임을 면했다.” 여기서 ‘일본’을 단순히 열도, 즉 야마토로 읽을 수는 없다. 당시 맥락에서 ‘餘燼(여초)’는 멸망한 나라의 잔민을 뜻했으니, 이는 분명 백제를 가리킨 것이다. 같은 문맥의 ‘扶桑’이 일본 열도를 가리키는 은유로 쓰였음을 고려하면, 문장은 이렇게 읽힌다. “망국 백제의 유민이 일본(扶桑)에 의지하여 살아남았다.” 즉, 묘지명 속 ‘日本’은 ‘해가 떠오르는 곳’이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바로 백제를 지칭했다고 보는 해석이 힘을 얻는다. □ 왜가 일본이 되다, 그리고 백제 『신당서』는 함형 원년(670)에 왜가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었다고 기록한다. 『삼국사기』 문무왕 10년조에도 같은 내용이 보인다. 하지만 『구당서』와 『신당서』의 서술은 미묘하게 다르다. 한쪽은 “일본이 예전 작은 나라였는데 왜를 병합했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왜가 일본을 병합했다”고 전한다. 명칭이 혼용되던 전환기의 혼란이 드러난다. 해석은 이렇다. 백제 멸망 이후 유민과 지배층이 열도 정치에 깊이 편입되었고, 그 결과 670년 국호 ‘일본’ 채택은 백제 재기의 성격을 띠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은 단순히 왜의 새로운 이름이 아니라, 백제인의 자의식이 투영된 이름이었다. □ ‘해의 근본’, 일본과 백제를 잇다 여기서 흥미로운 언어학적 연결고리가 등장한다. 고구려 건국지로 알려진 ‘졸본(卒本)’은 광개토왕비에는 ‘홀본(忽本)’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홀’은 ‘해’를 뜻하는 말과 음운적으로 이어지고, 결국 ‘日(해)의 本(근본)’이라는 ‘日本’의 의미망과 연결된다. 소서노가 졸본계 부여 혈통이라는 전승, 해모수·주몽의 태양적 신화 계보와 겹쳐 보면, ‘해의 근본’이라는 관념이 이미 고대 건국서사 속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백제, 밝음의 나라 우리 고대 국호 가운데는 태양과 광명과 관련된 이름이 많다. 조선(아침 해가 비치는 나라), 부여(벌판, 햇볕이 드는 곳), 고구려(높음, 태양), 발해(큰 바다에 뜨는 해) 모두 그렇다. 백제도 예외가 아니다. 국어학자 양주동은 백제를 ‘밝은 성(城), 곧 광명성’으로 풀이했다. ‘백’은 밝음, ‘제’는 성·고을을 뜻하는 자을(齊)의 음차라는 것이다. 결국 백제는 ‘밝은 땅, 해가 비치는 나라’라는 뜻으로 확장된다. 이는 예군 묘지명의 ‘日本(해의 근본)’ 은유와도 정확히 호응한다. ‘박달’이라는 말도 같은 계열이다. ‘밝-달(양달, 해가 드는 곳)’이 ‘배달’로 발전했고, 이는 곧 밝은 나라, 태양의 나라를 뜻했다. 백제의 이름도 바로 이 ‘밝음’의 계열에 속한다. □ 다양한 별칭과 변이 물론 백제를 가리키는 다른 이름들도 있었다. ‘十濟(습제)’는 몽골어·튀르크어의 ‘온(온, 열)’과 연결짓는 가설이 있지만, 『수서』의 “백가가 바다를 건너 백제라 부름”과 같은 후대식 설명에 가깝다. ‘남부여(南扶餘)’는 부여계 혈통을 강조한 표기였다. 일본에서 부른 ‘구다라(倶太羅)’는 어원설이 다양하다. ‘큰 나라(쿠) + 타라(땅)’라는 풀이, 공주 구드레 나루에서 비롯되었다는 지명설, 심지어 브리야트계 민족명과의 연결까지 제기된다. 일본어 속 ‘구다라나이(くだらない, 하찮다)’가 여기서 비롯되었다는 설까지 있지만, 아직 분분하다. □ 맺으며 사료, 금석문, 언어학, 신화적 상징을 종합하면, 백제라는 이름은 결국 ‘밝음, 해, 근본’이라는 의미장으로 수렴한다. 예군 묘지명 속 ‘日本’이 백제를 지칭했다는 해석은, 백제의 멸망 이후에도 그 이름과 상징이 일본 열도 속에서 살아남아 정치적 재편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660년 백제가 무너진 뒤, 불과 10년 만에 왜가 ‘일본’으로 국호를 바꾼 사실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백제인의 기억과 정체성이 열도에 깊이 뿌리내린 사건이었다. 결국 백제는 ‘밝은 땅, 해의 나라’였다. 그 이름 속에는 태양의 힘과 동아시아를 가로지른 백제인의 활력이 함께 담겨 있다. 오늘 우리가 백제를 다시 불러내는 까닭은, 단순히 잊힌 나라를 복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이름에 깃든 빛을 오늘의 자존과 내일의 역량으로 되살려내기 위함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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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칼럼]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삶, 평범을 자처한 삶의 품격과 향기
[교육연합신문=김춘식 칼럼] 인생의 정점에서 스스로를 낮추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앉는 것은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고결한 용기다. 성취와 효율만이 강조되는 현대 사회에서 프랑스의 올리비에 드 베랑제(Olivier de Berranger, 1938-2017) 주교가 남긴 삶의 궤적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마무리'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다. 베랑제 주교의 생애는 국경과 지위를 초월한 헌신과 겸손의 결정체였다. 그의 한국 인연은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초청으로 시작되었다. 1976년부터 17년간 '오영진'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살았던 그는 화려한 사목 활동 대신 가난한 이들의 곁을 선택했다. 그는 프라도사제회가 한국 가톨릭교회에 뿌리내리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이 땅의 고통받는 민중과 함께 울고 웃었다. 프랑스로 돌아간 뒤에도 그의 가슴에는 늘 한국이 살아 있었다. 1996년 생드니 교구 주교로 서품된 후, 저서 『서울의 예수, 생드니의 예수』를 통해 두 나라 소외된 이들의 삶을 증언했다. 특히 2000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당시에는 "상대방에게 모멸감을 주지 않고 감싸 안는 인내와 민족애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분단의 상처를 보듬기도 했다. 주교라는 권위의 정점에 도달했을 때조차 그의 마음은 늘 프라도 사제로서 서약했던 초심의 자리를 향했다. 은퇴 후 행보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성찰을 안겼다. 그는 주교의 지팡이를 내려놓고 프라도회가 시작된 리옹의 가난한 동네에서 홀로 숙식을 해결하며 살기를 자청했다. 말년에는 고향 양로원에서 '주교님'이 아닌 친근한 형제로서 노인들과 똑같은 처지로 살다 생을 마감했다. 지위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진 인간 본연의 숭고함을 몸소 증명해 보인 것이다. 이러한 삶은 직위와 명예를 인생의 성적표로 여기는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내려놓은 '직함'이 아니라, 그 자리에 새롭게 채워진 '삶의 품격'이다. 이는 퇴임 후 과거의 위신을 뒤로하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아이들과 눈을 맞추는 독일 교육자들의 성숙한 직업 윤리와도 궤를 같이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역시 재직 시절의 위세에 갇히지 않는 용기다. 원숙한 경륜이 박제된 훈장이 아닌, 학교 현장의 실질적인 활력으로 환원되는 선순환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최근 우리 곁에서도 이러한 가치의 실천을 통해 잔잔한 감동을 주는 사례를 만날 수 있다. 전남 강진교육지원청의 최 모 전 교육장의 행보가 그러하다. 그는 평생을 바친 교단에서 최고의 영예인 교육장까지 역임했으나, 퇴임 후 안락한 원로의 자리를 사양했다. 대신 최근 강진의 외국인 유학생 중심 직업계 고등학교에서 '임시교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분필을 들었다. 화려한 의전 대신 타국 학생들의 서툰 한국말을 다독이며 교육자의 초심을 현장에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주교에서 평범한 노인으로 돌아간 베랑제 주교처럼, 교육장에서 임시교사로 돌아간 그의 행보는 직함이 사라진 자리에 오직 '스승'이라는 이름의 진정성만을 남겼다.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오히려 세상을 밝히는 이들의 삶은 기술적 풍요 속에서도 우리가 결코 잃지 말아야 할 인간의 품격과 온기가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결국 이들이 보여준 삶의 궤적은 우리 사회 전반의 의식 개혁을 요구하는 묵직한 화두다. 전문성이 사장되지 않고 사회적 자산으로 재투입되는 환경, 위계의 옷을 벗고 존재 그 자체로 기여하는 이들이 존중받는 풍토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성숙한 공동체의 모습이다. 이러한 겸손의 선순환이야말로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유산이자, 우리 시대가 마주해야 할 '준비된 기적'이다. ▣ 김춘식 동신대학교 에너지경영학과 교수이자 한국독일사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한국의 교육, 독일의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을 만나다』(포스텍융합문명연구원; 소명, 2025) 등이 있다. ◇ 교육연합신문 논설위원 ◇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 한국독일네트워크(ADeKo) 이사 겸 인문교육위원장 ◇ 2024 칼만 해외석학(독일 연방교육연구부, 아헨공과대학교) ◇ 前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 前 국가교육위원회 미래과학인재양성특별위원회 전문위원 ◇ 前 한국전문대학평가인증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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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고구려의 국호, 잊힌 이름을 다시 부르다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가 역사를 이야기할 때, 늘 아쉬움으로 남는 장면이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라는 말은 교과서에서 너무도 익숙하지만, 사실 그 통일은 제한적이었다. 청천강 이북은 포함되지 않았고, 한반도의 북쪽은 여전히 미완의 공간으로 남았다. 그래서일까. 한국인들의 집단 기억 속에는 언제나 “고구려가 통일했다면 어땠을까?”라는 물음표가 남아 있다. 실제로 몇 해 전 학자 100인에게 “한국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건”을 묻는 설문에서, 가장 많이 꼽힌 답은 ‘고구려의 멸망’이었다. 패배의 순간임에도, 사람들은 고구려에서 한국사의 자존심과 대륙적 상상력을 찾는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이 이름, ‘고구려’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그 국호 속에는 어떤 의미가 숨어 있을까? □ 건국 연대, 단순한 연표가 아니다 『삼국사기』는 고구려의 건국을 기원전 37년으로 적었다. 그러나 다른 기록은 다르다. 『신당서』는 고구려가 “한(漢) 대부터 있었고, 지금 900년에 이른다”라고 전한다. 『후한서』, 『삼국지』 등 중국 사서에 고구려는 일찍부터 등장하지만, 신라는 훨씬 늦게 독립된 항목으로 나타난다. 이는 단순히 연표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고구려’라는 이름을 썼는지, 그것이 어떤 문화적 맥락에서 형성되었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 ‘구려’라는 이름의 뿌리 『삼국지』 동이전에는 “구루는 고구려말로 성(邑)이다”라는 흥미로운 구절이 있다. 여기서 ‘구루’는 ‘굴(동굴)’, ‘골짜기’, ‘고을’로 이어지는 어원망을 품고 있다. 즉, 집단이 모여 사는 거처, 곧 성(邑)을 뜻했다. 따라서 ‘구려’는 단순한 고유명사가 아니라, 원래는 ‘성’이나 ‘고을’을 가리키는 보통명사였다가 국호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고구려는 ‘높은 성, 위대한 고을’을 뜻하는 이름이었다. □ 졸본이 아니라 홀본, 해의 근본 고구려 건국지로 잘 알려진 곳은 ‘졸본(卒本)’이다. 그러나 광개토왕비(413년)에 기록된 표기는 ‘홀본(忽本)’이다. 시기상 더 원 사료에 가까운 비문을 따른다면, ‘홀본’이 원형일 가능성이 높다. ‘홀’은 문자학적으로 ‘해(태양)’와 연결된다. 그렇다면 ‘홀본’은 곧 ‘해의 근본’, ‘해 뜨는 곳’을 의미한다. 조선의 ‘아사달’, 단군신화의 태양적 국호 전통과도 이어진다. 고구려의 건국지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태양 숭배와 연결된 신성한 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 ‘고(高)’ 자의 기원 그렇다면 ‘고(高)’는 무엇일까. 흔히는 다층 성곽의 모양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하지만 갑골문과 금문을 들여다보면, ‘고’는 원래 솟아오름, 남성적 생명력의 상징에서 출발한 글자였다. ‘높다’라는 추상적 의미는 그 뒤에 파생된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는 ‘높은 성’일 뿐 아니라, 태양의 상징과 맞닿아 있었다. 시조 해모수와 주몽의 성씨 전통이 이 ‘높음’과 ‘태양’을 겹겹이 담아낸 셈이다.([그림 28] ‘高’ 참조) □ 이미 쓰였던 이름, ‘고려’ 많은 사람들이 ‘고려’라는 국호를 왕건이 새로 만든 줄로 안다. 그러나 사실 고구려 시기부터 ‘고려’는 이미 사용되었다. 충주 고구려비(397년)에는 ‘고려 태왕’이 등장하고, 539년의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에는 ‘고려국’이라는 명문이 보인다. 게다가 당·원·명대의 음운서, 그리고 『용비어천가』 표기를 보면 ‘려’는 ‘리’로도 발음되었다. 고려가 곧 ‘고리’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고려’는 단순한 약칭이 아니라, ‘골/홀(해)’ 계열 어원과 연결된 또 하나의 정통 국호였다고 볼 수 있다. □ 북경까지 뻗은 고구려의 무대 덕흥리 고분 벽화(408년)에는 ‘유주자사’와 13군 태수의 이름이 등장한다. 유주는 오늘날 북경 일대다. 이는 고구려가 이미 화북 내륙과 접속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당대 문헌에는 평양성·국내성·한성의 3수도 체제가 등장한다. 그런데 송·명대 지리지에는 평양성을 ‘평주=북경권’으로 비정한 기록이 있다. 이는 고구려의 활동 무대가 단순히 압록강 주변이 아니라, 북경까지 이어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고구려가 수·당의 지속적인 공격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 계승된 국호, 고려 고구려 멸망 후에도 ‘고려’라는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발해, 보덕국, 후삼국의 태봉, 그리고 왕건의 고려까지 이어졌다. 왕건의 고려는 새로운 창조물이 아니라, 고구려 시기부터 이어진 정통 국호의 계승이었다. 조선 건국 때 명나라의 눈치를 보며 채택된 ‘조선’과는 달리, 고려라는 이름은 대륙적 상상력과 민족적 자존을 담은 이름이었다. □ 다시 불러야 할 이름 1948년 제헌 국회에서도 국호는 논쟁거리였다. ‘대한민국’과 ‘고려공화국’이 경쟁했고, 결국 표결로 ‘대한민국’이 채택되었다. 하지만 고려라는 이름을 다시 쓰려 했던 흔적은 분명 남아 있다. 오늘날 통일 한국의 국호를 논의한다면, ‘고려’는 가장 국제성과 역사성을 겸비한 후보일 것이다. 북한 역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을 제안한 바 있다. ‘고려’라는 이름에는 남과 북이 함께 이어받을 수 있는 전통이 담겨 있다. □ 결론: 태양과 높음의 나라 고구려와 고려의 이름에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태양 숭배와 ‘높음’의 상징이 담겨 있다. 그것은 단군의 아사달에서, 해모수와 주몽의 성씨에서, 홀본이라는 건국지에서, 그리고 ‘고려’라는 국호의 지속에서 확인된다. 고구려는 패망했지만, 그 이름은 꺼지지 않았다. 민족의 자존심, 대륙적 상상력, 그리고 태양과 높음의 전통은 여전히 살아 있다. 언젠가 통일의 순간이 오면, 우리는 다시 이 이름을 불러야 할지 모른다. 고려(高麗). 그 이름 속에서 우리는 사라진 전사의 기억과 미래의 자존을 함께 만날 수 있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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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도깨비, 도철, 독기, 그리고 동이족의 기억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 천 년을 넘어 이어진 전사의 기운 우리가 아는 도깨비는 어떤 모습일까? 뿔이 달린 장난꾸러기, 씨름을 좋아하고 아이들과 어울리며, 때로는 사람과 흥정을 벌이는 친근한 존재로 떠올린다. 하지만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 도깨비의 뿌리는 훨씬 더 묵직하다. 단순한 민속 괴물이 아니라, 고대의 전쟁신과 맞닿아 있는 상징이자, 동이족의 기억을 품은 형상이다. □ 잊힌 이름, 도깨비의 기원 도깨비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갑골문과 청동기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고대 중국의 제기와 무기 위에는 무시무시한 얼굴 문양이 새겨져 있다. 바로 도철(饕餮)이다.([그림 27] 도철 문양 참조) 크고 날카로운 눈, 튀어나온 송곳니, 뿔 달린 이 형상은 보는 이에게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이 도철 문양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전쟁과 제사의 기운을 상징했고, 적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전사의 얼굴이었다. 중국 고대 기록에 따르면, 치우(蚩尤)라는 전쟁의 신은 황제 헌원과 맞서 싸운 전사였다. 그의 투구에는 소머리와 뿔, 날카로운 송곳니가 장식되어 있었고, 이 형상이 훗날 도철 문양으로 정착했다. 즉, 오늘날 우리가 친근하게 부르는 도깨비는, 그 뿌리를 따라가면 전장의 피비린내와 무기, 청동기의 도철에 닿아 있는 셈이다. 두려움의 상징이 시간이 지나 민속 속 귀물로 변신한 것이다. □ 전장의 깃발, ‘독기’ 치우와 동이족은 전쟁터에서 늘 독기(纛旗)라는 깃발을 세웠다. 독기는 단순한 깃발이 아니었다. 깃대 끝에 괴이한 형상을 조각하고, 그 아래에 깃발을 늘어뜨렸다. 사람의 얼굴, 짐승의 머리, 괴물의 형상이 독기의 꼭대기를 장식했다.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바람과 전운을 점치고 적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는 장치였다. 깃발은 멀리서도 잘 보였고, 그 위의 괴물 얼굴은 전사의 군기를 고취시키며 적군에게 공포를 심었다. 이 전통은 동북아시아의 여러 민족으로 이어졌다. 몽골군 역시 독기와 유사한 군기를 사용했고, 원나라와 청나라 시대에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전통이 한반도에도 남아 있었다는 점이다. 정조 시기의 궁중 행렬을 담은 「화성능행도」를 보면, 화려한 깃발 행렬 속에 독기가 등장한다. 다만 이 시기의 독기는 전투 장비라기보다 왕권과 의례를 상징하는 장식물로 변해 있었다. 전장의 공포에서 왕실의 권위로, 상징의 의미가 변모한 것이다. □ ‘도깨비’라는 이름의 비밀 그렇다면 ‘도깨비’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여러 설이 있지만 흥미로운 가설 하나가 있다. 바로 ‘도철(饕餮)’과 ‘귀(鬼)’가 합쳐졌다는 것이다. 도철의 ‘도-’와 귀신의 ‘귀’가 합쳐져 ‘도귀비→도깨비’로 바뀌었다는 해석이다. 즉, 고대 전쟁신의 상징이 민간 신앙 속 귀물 이미지와 섞여 탄생한 이름이라는 것이다. 언어학적으로도 음운 변화 과정을 거치면 충분히 가능한 설명이다. 이 이름의 변천은 도깨비 이미지의 변화를 보여준다. 전투와 무용의 상징에서, 민속 속 장난꾸러기로 변신한 과정 말이다. 도깨비가 씨름을 좋아하고, 쇠붙이를 잘 다루며, 때로는 흥정을 벌이는 성격을 띠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전사의 기운이 민속 속에서 장난기와 융합한 것이다. □ 치우, 전사에서 민속까지 다시 치우로 돌아가 보자. 중국의 역사서에 치우는 종종 ‘반역자’나 ‘야만인’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북방과 한반도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오히려 동이족의 대표적 영웅이었다. 소머리, 뿔, 날카로운 이빨을 장식한 그의 모습은 전쟁의 신, 혹은 강력한 부족의 수장을 상징했다. 이 형상이 도철 문양으로, 독기 장식으로, 그리고 민속 속 도깨비의 이미지로 변해 내려온 것이다. 결국 도깨비는 단순한 민속 괴물이 아니라, 동이족 전사의 기억을 담고 있는 문화적 유산이다. 패자의 기록이자 동시에 살아남은 자의 기억인 셈이다. □ 전사의 기억, 민족의 추억 오늘 우리가 도깨비를 이야기할 때, 흔히 장난꾸러기나 민속 신앙의 대상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 속에는 잊힌 전사의 기억이 숨어 있다. 갑골문과 청동기에 새겨진 도철, 전쟁터의 독기, 그리고 치우의 형상이 그것이다. 이 기억은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 민화 속 도깨비로, 민담 속 장난꾸러기로, 아이들의 놀이 친구로 남았다. 그 과정에서 두려움은 친근함으로, 공포의 전사는 민속의 장난꾸러기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 뿌리를 알면 도깨비는 단순히 웃음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동이족의 기억을 잇는 상징이고, 민족의 추억을 담은 문화적 자산이다. □ 맺으며 도깨비, 도철, 독기. 세 단어는 서로 다른 듯하지만, 모두 동이족의 흔적을 품고 있다. 도깨비를 연구하는 일은 단순한 민속학이 아니다. 그것은 패자의 기록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기억을 복원하는 일이다. 오늘 우리가 도깨비를 만날 때, 씨름판에서 씨름을 벌이는 장난꾸러기를 떠올리든, 민화 속에서 금빛 방망이를 휘두르는 귀물을 떠올리든, 그 뒤에 겹겹이 쌓인 전사의 기억을 함께 떠올려 볼 일이다. 도깨비는 그저 웃음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천 년을 넘어 이어진 전사의 기운이기 때문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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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나주 지역 사회와 산업의 이해 - 동신대 김춘식 교수
- [교육연합신문=편집국] 동신대학교 김춘식 교수(에너지경영학과)가 지역 사회를 다각적으로 살펴본 저서 『나주 지역 사회와 산업의 이해』를 출간했다. 이번 책은 나주의 사회적 특성과 산업, 역사, 문화, 교육 등 지역 전반을 폭넓게 조명한 종합 안내서로, 지역학적 관점을 토대로 나주의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 발전의 가능성까지 탐구하고 있다. 이 저서는 특히 지역 청년과 시민들이 나주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기획됐다. 이론적 학습과 더불어 현장 체험, 토론, 조사를 결합해 지역 현안에 대한 실천적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고, 나아가 참여와 실천을 통한 성숙한 시민의식을 함양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역의 가치와 중요성이 날로 부각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이 책은 지역 공동체의 역량을 강화하는 지침서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책은 총 11개 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제1장 ‘지역학의 이해’를 시작으로 나주의 자연환경, 산업, 경제, 정치·행정, 교육, 문화 등 다양한 영역을 폭넓게 다룬다. 이를 통해 나주의 복합적 사회 구조와 기능을 해석하는 한편, 미래 발전 전략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또한 이번 저서는 오는 2025학년도 2학기 동신대학교 글로컬자율전공대학 개설 교양 교과목 [지역 산업과 사회의 이해]의 교재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지역의 미래를 이끌 대학생들이 최소 4년 이상 나주에서 생활하며 공동체 의식과 책임감을 기르고, 지역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창의적 인재로 성장하는 데 소중한 기반이 될 전망이다. 김춘식 교수는 “지역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미래 인재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핵심 역량”이라며, “특히 지역 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실천적 교육과 문화에 기반한 연대가 이뤄질 때 지역 정체성을 강화하는 시민들의 의지가 굳건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이 책이 많은 이들이 나주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계기가 되며, 나아가 지역 발전을 이끄는 창의적 인재로 성장하는 든든한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저자 김춘식 교수는 독일 함부르크대학교에서 역사학·교육학·정치학 석사와 서양근현대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 대학 역사학과 강의교수 및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를 거쳐, 현재는 동신대학교에서 창의유합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독일의 역사와 문화, 직업교육 및 평생교육, 지역학, 그리고 직접 개발한 창의·융합 발표토론교육프로그램(CCEP) 분야에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2014년 한-독 정부 간 직업교육 및 고등교육 교류 협약 체결에 기여했으며, 한·독 교사, 학생 및 연구 교류를 꾸준히 지원해 왔다. 2024년에는 독일 연방교육연구부(BMBF)와 아헨공대(RWTH Aachen)가 주관하는 '칼만 해외 석학(Theodore von Karman Fellow)'에 인문학자로는 최초로 선정되었다. 또한 한국독일사학회 제19대 회장으로서의 학술 활동과 더불어, 독일 미텔슈탄트대학교(FHM) 시니어 펠로우이자, 칼스루에 공과대학교(KTT)와 슈투트가르트대학교(USTUTT)의 공동 캠퍼스(ICM) 시니어 펠로우로 선임되어 한·독 간 대학의 공동 연구와 교육교류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김춘식 교수는 교육연합신문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교육부 고등교육 및 직업교육 정책 자문위원, 국가교육위원회 미래과학인재양성특위 전문위원, 한국전문대학평가인중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한국독일네트워크(ADeKo) 이사 겸 인문교육위원장, 농어촌 '우리동네 예술학교' 총괄운영위원장, 건강보험사사평가원 열린경영위원장, 녹색에너지연구원 운영위원, 전라남도 국제교류자문관, 도정평가위원, 인재육성분과 정책자문위원장, 전라남도교육행정협의회 위원, 전라남도교육청 및 나주교육지원청 민관산학교육협력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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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나주 지역 사회와 산업의 이해 - 동신대 김춘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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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신선 두꺼비가 지키는 전통 사찰 이야기 - 권오만 교수
- [교육연합신문=편집국] “세상을 품어 낸 지혜의 공간” 도교의 상징, 신선 두꺼비를 왜? 불교 사찰에 그려놨을까? “사찰은 단지 종교적 공간이 아니다. 천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앞으로 천년이 더 지나도, 무너지지 않는 공간 철학과 유연한 사회적 포용력, 그리고 지혜를 담아낸 곳이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오래된 사찰.겉으로는 소박하지만 그 안에는 깊은 ‘매력’이 숨어 있다. 비밀은 비틀린 나무와 옹이 많은 재료조차 그대로 살려내는 안목에서 비롯된다.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건축 철학, 그렇게 지어진 건축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은 멋을 드러낸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 속에 부처의 형상을 담은 ‘공조불’은 종교적 사유를 공간에 녹여낸 특별한 설계이다. 경사진 지형을 장점으로 활용한 점승법, 무단한 권력의 횡포를 제어하는 누하진입 방법 등은 사찰이 단순한 수행 공간을 넘어 깊은 지혜와 통찰이 구현된 공간임을 말해 준다. 이 책 『신선 두꺼비가 지키는 전통 사찰 이야기』는 월정사를 중심으로 안동 봉정사, 구례 화엄사, 부안 내소사, 서산 개심사 등 다양한 사찰의 사례를 통해, 한국 전통 사찰의 건축 기술과 공간 철학, 그리고 그 속에 스며든 종교적 포용력과 사유의 깊이를 풀어낸다. 사찰은 종교와 사회가 상호작용하며 형성한 문화적 장면이자, 세월을 넘어 전해진 지혜의 저장소이다. 오늘날, 다양성과 공존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대에 전통 사찰이 전하는 포용과 존중의 메시지는 더없이 귀중한 통찰을 안겨준다. ▣ 저자 권오만 인하대학교 무기재료공학과를 졸업한 후, 국민은행 본점에 입행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대학 시절부터 바다와 자연을 좋아해 스킨스쿠버 동아리 활동을 해 왔고, 강원도 원통의 휴전선 인근 북한강 발원지에서 인제 상남, 소양강, 의암호, 청평댐, 두물머리, 여의도 한강까지 수영으로 종주하였다. 이어 일본의 최장 하천인 신농천(信濃川, しなのがわ)의 발원지에서 니가타시(新潟市) 바다까지 완주하며, 자연과 환경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사회적 활동으로 확장해 나갔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삶과 진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를 바탕으로 환경과 자연 생태에 대한 관심을 본격화하였고, 사단법인 무지개세상(한국환경생태계연구협회)에서 활동하며 KBS 자연 다큐멘터리 「북한산은 살아있다」, SBS 「월악산」 등의 제작에 참여하였다. 이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환경계획 및 조경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상명대학교 환경조경학과에서 강의를 시작으로 학문적 활동을 병행해 왔다. 경동대학교 산학협력단장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같은 대학 메트로폴 캠퍼스에서 건축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2년에 창작산맥 시 분야 신인문학상 당선으로 등단하였고, 저서로는 디자인과 철학의 공간 우리 궁궐(밥북, 2022), ‘잊혀진 문화유산 해자와 풍류이야기(솔과학, 2018)’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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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신선 두꺼비가 지키는 전통 사찰 이야기 - 권오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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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풀꽃은 길이 되고, 삶은 피어난다
- [교육연합신문=편집국] 《풀꽃은 길이 되고, 삶은 피어난다》는 생태적 관점에서 본 잡초의 생존 전략을 인간 삶의 통찰로 풀어낸 인문 에세이다. 잡초는 환경에 순응하고, 경계를 넘으며, 억압을 견디고, 끝내 피어나는 ‘살아 있음’의 진실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식물 생태학적 정보와 문학적 상상력이 결합된 글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독자에게 ‘버티는 힘’, ‘존재의 의미’, ‘삶의 방향’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제안한다. 삶이 흔들릴 때, 길을 잃을 때, 이 작은 풀꽃의 이야기가 새로운 방향을 열어줄 것이다.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통해 자신만의 뿌리를 발견하고, 어디서든 피어나는 용기를 얻기 바란다. ■ 《풀꽃은 길이 되고, 삶은 피어난다》를 출간한 소감을 듣고 싶다. 《풀꽃은 길이 되고, 삶은 피어난다》를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은, 마치 작은 들꽃 한 송이를 조심스레 길가에 놓아두는 마음이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것 같은 그 풀꽃 한 포기에도, 거센 바람과 햇살, 비를 견디며 살아온 이야기가 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인간 존재의 삶에 겹쳐 쓰고 싶었다. 출간을 마친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고요한 떨림이다. 세상의 화려한 꽃들 사이에서, 들풀 한 포기의 생을 말하는 일이 어쩌면 너무 미미하고 사소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 책장을 넘기다 문득 멈춰 서서, 자신의 삶에도 그렇게 조용히 피어난 어떤 순간을 떠올린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스스로 길이 되었구나 싶다. 이 책은 삶의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여정이었다. 풀꽃이 길이 되듯, 나도 누군가에게 조용한 위로의 길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지나온 모든 땅 위에, 풀꽃처럼 소리 없이 피어났다가, 흔적 없이 지는 삶일지라도, 그 생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고, 그 존재는 눈부셨다고 말하고 싶었다. ■ 《풀꽃은 길이 되고, 삶은 피어난다》를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풀꽃은 길이 되고, 삶은 피어난다》를 집필하게 된 계기는, 작고 미약한 존재가 삶을 뚫고 나아가는 힘에 대한 깊은 경외심에서 비롯되었다. 어느 날, 바람에 쓰러진 들풀을 보았다. 비에 젖고 발에 밟혔지만, 그 풀은 어느새 다시 일어나 있었다. 그 모습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거창한 성공이나 위대한 서사보다, 묵묵히 살아내는 존재의 힘, 그것이야말로 진짜 삶이 아닐까 하는 물음이 생겼다. 풀꽃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피고, 누구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사라진다. 하지만 그 짧은 생 안에, 계절을 살고 햇살을 기억하고, 바람을 통과하며 길이 된다. 나는 그런 풀꽃을 통해 인간의 삶을 다시 바라보고 싶었다. 작은 생명의 전략 속에 숨은 큰 통찰, 그 안에서 오늘을 견디는 우리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나 자신의 회복이기도 했다. 지치고 흔들리던 어느 시기에, 나는 자연에게 귀 기울였고, 그 속에서 말을 건네 오는 풀꽃들을 만났다.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들이, 나를 다시 걷게 했고, 그렇게 피어난 사유를 한 줄 한 줄 적어간 끝에, 이 책이 태어났다. 결국, 이 책은 나와 누군가를 향한 조용한 응원이자, 살아가는 모든 존재를 향한 존중의 기록이다. ■ 책을 집필하면서 겪은 에피소드, 또는 즐거웠거나 어려웠던 점은? 《풀꽃은 길이 되고, 삶은 피어난다》를 집필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한 자리에 오래 앉아 풀 한 포기를 바라보던 시간이다. 글을 쓰기 위해 일부러 산이나 들로 나간 것이 아니라, 무심코 지나던 길에서 문득 멈춰 서게 되었고, 그 작은 식물 하나를 바라보다가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몰랐다. 풀꽃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 형상과 자세, 주변의 바람과 어우러지는 움직임이 하나의 문장이 되었고, 그것이 글의 시작점이 되곤 했다. 즐거웠던 순간은, 의외의 단어들이 나를 찾아올 때였다. 예를 들어, ‘잡초’라는 말을 곱씹다 보면 그 안에 ‘잡다한 생의 조각들’이 숨어 있고, ‘뿌리’라는 말 속에는 버티고, 얽히고, 견디는 모든 시간이 있다. 이렇게 자연이 주는 언어와 내 사유가 만나는 순간들은 매번 신비로웠고, 그만큼 글쓰기가 참 따뜻하게 다가왔다. 반면, 어려웠던 점은, 풀꽃의 생을 빌려 인간의 삶을 말한다는 것이 자칫 억지스러운 비유로 흐를 위험이 있다는 점이었다. 너무 감상적으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생명의 결을 섬세하게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문장 하나를 다듬기 위해 며칠씩 고민하기도 했고,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는 시간이 길었다. 또 하나의 고민은, 자연을 해석하는 나의 시선이 ‘교훈’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정답을 주는 책이 아니라, 그저 독자와 함께 자연 앞에 앉아 조용히 바라보는 시간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에, 어떤 단정도 피하고 싶었다. 지금 돌아보면, 가장 큰 배움은 자연이 아니라 침묵에서 비롯되었다. 말보다 앞선 침묵, 그 속에서 들려온 풀꽃의 언어가, 내 글의 뿌리가 되었다. ■ 책 내용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애착이 가는 구절이 있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프롤로그에 적어둔 한 문장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거대한 힘이 아니라,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조용한 물결이다.” 이 문장은, 제가 풀꽃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삶의 진실을 가장 잘 담고 있다. 풀꽃은 늘 땅에 바짝 엎드려 피어나고, 누구에게도 과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람의 발길 아래에서조차 묵묵히 살아간다. 그렇기에 제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장면은 봄비에 젖은 들길에서 작은 민들레 한 송이를 마주했던 순간이다. 그 풀꽃 하나는 말없이 피어 있었지만, 저는 그 안에서 “끝내 꺾이지 않는 생명의 의지”를 보았다. 이 문장은 작은 풀꽃이 가진 힘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 조용한 존재감, 그 미세한 떨림이 모여 결국 삶을 밀어내고, 시간을 열어가는 힘이 된다. 우리는 흔히 변화나 의미를 거대한 것에서 찾으려 하지만, 풀꽃은 묻는다.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을 만큼 작고 조용한 것들이 아닐까?" 그 질문이 제 마음에 오래 남았고, 이 책을 끝까지 이끌어가는 등불 같은 문장이 되어 주었다. ■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셨나요? 글이 막힐 때면, 일부러 바람 부는 곳에 나가거나, 나무 그림자 아래 조용히 앉아 있었다. 눈으로 풀잎을 따라가고, 귀로 바람의 소리를 듣고, 마음으로 사라지는 꽃잎을 느끼다 보면, 말보다 먼저 감각이 깨어났고, 그 감각이 글의 실마리를 열어 주었다. 또 하나의 방법은, 글을 쓰지 않고 오래 바라보는 일이었다. 풀 한 포기, 뿌리의 흔적, 그늘 속의 작은 생명을 그냥 바라만 보는 시간. 마치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를 내려놓고, 글이 나를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식이었다. 그 기다림은 때로 며칠씩 이어지기도 했지만, 묵은 침묵 속에서 나온 한 줄은, 억지로 쓴 열 줄보다 더 깊고 진실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쓴다는 것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라는 걸 스스로에게 자주 상기시켰다. 내 안의 어떤 소리, 자연의 미세한 기척, 존재가 보내는 침묵의 언어들. 그것들을 충분히 듣지 못한 채 쓴 글은 늘 가볍고 얇았다. 그래서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땐, 오히려 펜을 내려놓고 이렇게 되뇌었다. “지금은 쓸 때가 아니라, 들을 때다.” 그러면 어느 순간, 조용히 문장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풀꽃처럼. ■ 이 책을 접할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풀꽃은 길이 되고, 삶은 피어난다》를 펼쳐들게 될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당신의 삶도, 지금 그 자리에서 충분히 피어나고 있습니다”라는 고요한 응원이다. 이 책은 거창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세상의 중심에서 외치는 소리보다, 길가에 조용히 피어 있는 들꽃 한 송이처럼, 작고 미세한 삶의 진동에 귀 기울이는 이야기다. 우리는 종종, 더 크고 빛나는 삶을 꿈꾸느라, 자신의 뿌리가 뻗고 있는 ‘지금 이 자리’를 잊곤 한다. 하지만 풀꽃은 말한다. 바람 부는 자리에서도 피울 수 있고, 밟히는 자리에서도 향기를 낼 수 있다고. 삶이 버거워 지칠 때, 누군가의 말보다 한 줄기 바람, 한 줄의 문장이 더 깊은 위로가 될 수 있다. 이 책이 그런 순간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조용한 그늘이 되기를, 그리고 다시 걷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작은 길이 되기를 바란다. 끝으로, 이 책을 읽는 당신도 누군가에게는 조용히 피어 있는 풀꽃 같은 존재라는 것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세상은 그 작은 존재들 덕분에, 오늘도 여전히 아름답다. ■ 바른북스와 함께하면서 인상 깊었던 점 혹은 만족한 부분은? 바른북스와 함께한 출판 여정은, 마치 한 권의 책이 아닌 한 송이 꽃을 함께 피워낸 시간처럼 따뜻하고 정성스러웠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책의 방향성과 결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존중해 주셨다는 점이다. 《풀꽃은 길이 되고, 삶은 피어난다》는 작고 섬세한 감각의 언어들로 이루어진 책이기에, 자칫 소홀히 다루면 그 고요한 울림이 흐려질까 걱정했지만, 바른북스는 그 고요를 함께 들으려는 태도로 곁에 있어 주었다. 상담 과정에서도 진심 어린 피드백과 세심한 안내,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의 마음’을 중심에 두는 접근이 큰 힘이 되었다. 단순한 계약 관계가 아니라, 책이라는 생명체를 함께 길러낸 동반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담당 편집자님께는 깊이 감사드린다. 원고의 숨결 하나하나를 함께 호흡해 주셨고, 때로는 지나친 문장을 다듬어 주고, 때로는 미처 보지 못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주셨다. 한 문장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통할 때, 글쓰기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는 걸 느꼈다. 출판은 책을 완성하는 일인 동시에, 작가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여정을 바른북스와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함께 피운 이 한 권의 ‘풀꽃’이, 누군가의 마음에도 조용히 피어나길 바란다. ▣ 우진(宇塵) 육우균 ◇1965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남 ◇ 충남고등학교 졸업(1983년) ◇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졸업(1987년) ◇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1997년) - 석사논문 「논술문 쓰기 지도 방법 연구」 ◇ 인천 영흥고등학교 교감 퇴임(26.6년 교직생활) ◇ 중앙일보 공교육 논술자문단 자문위원 ◇ 중등교사 임용시험 채점위원 ◇ 前 경기신문 교육전문기자 ◇ 前 교육연합신문 교육국장 ◇ 現 교육연합신문 주필 ▣ 펴낸곳 바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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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풀꽃은 길이 되고, 삶은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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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인공지능시대, 질문하는 인간이 이끄는 창의·융합 교육의 미래
- [교육연합신문=안용섭 기자] 문화예술교육 분야에서 인공지능 활용에 관한 국제적 연구 교류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창의성과 예술성, 교육의 다양성 및 포용성 증진을 위한 실질적 대안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본지는 서울대학교에서 음악학 박사논문을 쓰고 있는 독일 출신 음악교육 연구자인 마들렌 포군트케(Madlen Poguntke) 씨가 교육 현장에서의 AI 도입 가능성과 한계, 그리고 미래지향적 방향성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제시해 온 교육연합신문의 김춘식 논설위원(동신대학교 교수)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 한·독 양국의 문화예술교육 현장과 인공지능 활용에 대한 생생한 경험을 담고 있으며, 미래 교육의 방향을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 편집자 주 ■ Madlen Poguntke 교수님, 간단한 자기소개와 인공지능(AI)과 교육의 접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ㅁ 김춘식 교수 저는 독일 함부르크대학교에서 역사학, 교육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현재 동신대학교에서 창의융합교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교육이 단순 지식 전달을 넘어 미래 핵심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고민에서 AI와 교육의 접점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인간 중심 교육 가치와 AI 활용의 균형이 제 연구의 중요한 화두입니다. ■ Madlen Poguntke 교육 분야에서 AI 활용과 관련한 직접적 경험이나 현장에서 느낀 변화, 도전 과제가 있으신지요? ㅁ 김춘식 교수 공학적 AI 연구는 직접 하지 않았지만, AI와 교육 관련 연구와 강연, AI 디지털 교과서 현장 적용 사례 분석 등 다양한 경험이 있습니다. AI는 교육의 효율성과 접근성을 높이지만, 비판적 사고 저하, 정서적 고립, 교육 격차 심화 등 부정적 영향도 체감하고 있습니다. ■ Madlen Poguntke AI가 교육 현장에서 활용되는 구체적 사례를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ㅁ 김춘식 교수 Gradescope, Riiid Labs 같은 자동 평가 도구는 교사의 채점 부담을 줄이고, Help Me See, Nuance 등은 장애 학생 맞춤형 지원에 활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Magic School AI, Eduaide.AI 등은 행정 자동화와 수업 자료 제작에 기여하고, Blippar(AR/VR), Duolingo, Blue Canoe 등은 몰입형 학습과 언어교육에 AI를 접목하고 있고요. ■ Madlen Poguntke AI가 앞으로 음악교육 전공 교사 양성과정에 가져올 변화와 중요해질 새로운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ㅁ 김춘식 교수 꼭 음악교육 교사에게만 국한되는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음악교육 교사에게는 AI 도구 활용 능력, 데이터 분석, 디지털 콘텐츠 제작, 윤리적 판단력 등이 필수적입니다. AI는 행정·평가 업무를 보조하지만, 정서적 지지, 동기 부여, 예술적 감수성 지도 등 인간적 교육의 본질은 대체할 수 없습니다. 교사는 학생의 창의성과 다양성, 개성을 이끌어내는 멘토 역할에 집중해야 합니다. ■ Madlen Poguntke AI와의 협업이 교사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나요? 교사의 역할 변화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ㅁ 김춘식 교수 AI가 행정·평가 등은 보조하겠지만, 인간적 교육의 본질은 대체 불가합니다. 오히려 교사는 학생의 성장, 창의적 문제해결력, 비판적 사고를 키우는 멘토로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 Madlen Poguntke AI 도입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교사 연수, 인프라 측면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ㅁ 김춘식 교수 가장 큰 도전은 접근성과 형평성 문제입니다. 인프라 격차 해소, 체계적 교사 연수, 윤리·데이터 보호, 주체적 성장 환경 조성이 필요합니다. 학생·교사가 기술에 종속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어야 합니다. ■ Madlen Poguntke 한국 학교의 AI 도입 인프라 현황과 필요한 조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ㅁ 김춘식 교수 네트워크, 디지털 기기, 지원 인력 등에서 지역 간 격차가 큽니다. 단순 하드웨어 지원을 넘어 소프트웨어, 연수, 컨설팅 등 종합적 지원 체계가 필요합니다. ■ Madlen Poguntke 독일과 한국의 AI 및 개인정보 보호 인식 차이는 무엇입니까? ㅁ 김춘식 교수 독일은 데이터 보호와 윤리,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며 신중하게 접근합니다. 한국은 AI 기술 진흥과 신뢰 기반 조성을 동시에 추진하며, 보다 실용적이고 유연한 정책을 펼칩니다. 두 나라의 정책 우선순위와 사회적 가치관이 다릅니다. ■ Madlen Poguntke 문화적 차이가 AI 수용에 미치는 영향과, 사회적 수용성 측면에서 두 나라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ㅁ 김춘식 교수 독일은 신중하고 사회적 합의를 중시해 도입이 느릴 수 있지만, 신뢰를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정착합니다. 한국은 빠른 실험과 현장 적용이 특징이며, 디지털 혁신에 대한 기대와 수용성이 높습니다. ■ Madlen Poguntke 음악교육에서 AI 활용의 기회와 위험, 그리고 균형 잡힌 접근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ㅁ 김춘식 교수 AI는 맞춤형 학습, 창의성 확장, 접근성 강화에 기여하지만, 저작권·윤리 문제, 인간 창의성 약화, 기술 의존 등 위험도 있습니다. 두 나라 모두 인간의 창의성과 예술적 가치를 지키는 균형이 필요하며, 지속적 교류와 협력이 중요합니다. ■ Madlen Poguntke AI가 교육에 미치는 본질적 영향과 앞으로 주목해야 할 핵심 과제는 무엇입니까? ㅁ 김춘식 교수 AI 도입 시 정보의 정확성, 저작권, 개인정보 보호, 비판적 사고 저하 방지, 윤리적 문제, 교사의 역할 변화 등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AI는 보조 도구에 머물러야 하며, 인간 중심 교육 가치가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 Madlen Poguntke AI와 창의성, 인간 고유의 개성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ㅁ 김춘식 교수 AI는 창의적 도구로 인간의 창의성과 개성을 확장할 수 있지만, 인간 고유의 감정과 실재적 경험, 진정한 창의성은 대체할 수 없습니다. 예술 교육에서는 AI와 인간의 협업을 통해 창작의 지평을 넓히되, 인간만의 독창성과 감수성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 Madlen Poguntke 실제 현장에서 AI가 창의적 과정을 지원하는 구체적 사례를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ㅁ 김춘식 교수 AI 작곡 프로그램, 음성 분석 도구 등으로 학생들이 곡을 만들거나, 즉흥 연주와 편곡에 AI의 도움을 받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2024년 대한민국 글로컬 미래교육박람회에서는 AI가 작곡한 곡이 공식 대회곡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AI 결과물에만 의존하지 않고 학생 스스로 창의적 탐구와 비판적 성찰을 병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Madlen Poguntke AI가 교육 패러다임 변화에 미칠 영향과 교육의 본질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ㅁ 김춘식 교수 AI는 학습 환경의 디지털화, 맞춤형 학습, 데이터 기반 평가 등 변화를 가져오지만, 인간의 성장과 전인적 발달, 정서적 지지, 사회적 관계 형성 등은 대체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는 AI와 인간 교사의 협력적 관계와 인간적 가치 지키기가 중요합니다. ■ Madlen Poguntke AI를 교육과정, 특히 음악 교육에 통합할 때의 기회와 위험, 그리고 균형 있는 관리 방안은 무엇입니까? ㅁ 김춘식 교수 기회는 개인화된 학습, 창의성 확장, 접근성 강화 등이고, 위험은 과도한 기술 의존, 윤리 문제, 교육 격차 심화 등입니다. 이를 위해 교사 연수, 윤리 교육, 인프라 형평성, 인간적 소통과 정서 지원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 Madlen Poguntke 학령별 AI 활용 방향과 주의점은 무엇입니까? ㅁ 김춘식 교수 초등은 놀이와 감각적 경험, 사회적 상호작용에 중점, 중등·고등은 데이터 분석과 창의적 프로젝트, 모든 단계에서 윤리·비판적 사고 교육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 Madlen Poguntke AI와 교육 융합을 위해 필요한 학제 간 협력과 인문학적 관점의 핵심 요소는 무엇입니까? ㅁ 김춘식 교수 컴퓨터 과학, 수학, 음악,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 협력이 필요합니다. 인문학적 관점에서는 비판적 사고력, 윤리적 성찰, 사회적 책임감이 중요합니다. ■ Madlen Poguntke AI가 지원하는 미래 교육에서 인간 상호작용의 역할과 교육의 본질적 가치가 AI 시대에도 지켜지기 위한 고민점은 무엇입니까? ㅁ 김춘식 교수 AI 시대 교육의 핵심은 질문하는 창의성과 인간 고유의 상상력입니다. AI는 도구이자 동반자일 뿐, 인간 교사의 정서적 지지, 창의성·비판적 사고 촉진, 윤리 교육 등은 대체할 수 없습니다. 교육은 지식 전달이 아닌 문제 발견과 재정의, 상상력과 실행력의 협업, 윤리적 성찰을 중심으로 재설계되어야 하며, 인간의 질문과 창의성이 기술 발전을 주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AI가 지원하는 미래 교육에서 인간의 상호작용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AI는 효율성과 맞춤화, 정보 제공 등에서 강점을 갖고 있지만, 정서적 지지,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 촉진, 개별화 멘토링, 윤리 교육, 협력적 환경 조성 등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본질적 가치입니다. 앞으로의 교육은 AI와 인간 교사의 협력적 관계를 바탕으로, 학생의 전인적 성장과 정신적 건강, 사회적 책임의식을 함께 키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교육의 본질적 가치가 AI 시대에도 흔들림 없이 지켜지도록, 우리 모두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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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인공지능시대, 질문하는 인간이 이끄는 창의·융합 교육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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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이 전하는 교과서 이야기㈑ – 제1차 교육과정기(1954~1963년)
- [교육연합신문=안용섭 기자] 1954년 4월부터는 그동안 준비해 왔던 교수요목에 의거해 제1차 교육과정이 시작된다. 이 제1차 교육과정 시기는 6.25 전쟁을 겪은 뒤에 4.19 혁명, 5.16 군사정변이 있었던 격동의 시대였다. ▮ 1954년 4월 20일 문교부령 제35호로 ‘교육과정 시간 배당 기준령’이 제정·공포됐으며 법령상의 명칭은 ‘교과과정’이었다. 제1차 교육과정은 교과중심 교육과정이었는데, 1947년 당시의 교수요목은 임시방편으로서의 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교육법」이 제정됨에 따라 기존의 교과를 기본으로 하여 최초로 우리 손으로 만든 국가 수준 교육과정 체제를 확립했다. 이 교육과정에서는 학습자의 경험과 생활을 중요시하는 생활 중심 교육과정의 개념이 들어 있는데, 이러한 특색은 미국의 진보주의 교육 사조와 신교육 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생활 중심 단원으로 부르기도 했다. ▮ 제1차 교육과정은 전쟁으로 파괴된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현실 생활을 개선하고 향상시킬 사회 개선의 의지를 강조했으며 정부 수립 후 제정하고 공포한 「교육법」의 교육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교육과정을 목표로 했다. 또, 반공 교육, 도의 교육, 실업 교육을 강조했고 특별활동 시간을 최초로 배정했다는 점에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 학교급별 교육과정 편제는 교과 활동과 특별 활동의 2대 영역으로 편성돼 있으며, 교과별 교과 과정의 구성 체제는 교과별 목표와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 편제에서 도덕 과목이 신설됐으며, 반공 교육, 도의 교육, 실업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 이 시기의 교과서의 특징은 종래의 4×6판을 국판(5×7판)으로 개선했고, 활자기 도입으로 활자를 개량해 인쇄를 선명하게 했다. 초등학교의 기본 교과서는 모두 국정으로 해 검정 교과서가 없어지게 됐고, 중·고등학교 교과용 도서는 국정과 검·인정 교과 사업이 병행됐다. ▮ 교과서의 판형은 주로 국판(5×7판), 4×6판, 5×6판, 4×6배판 등이 혼용됐으며, 지질은 본문의 경우에 마분지 갱지(45g/㎡), 표지는 모조지 또는 마분지를 사용했다. 컬러는 초등 1학년의 경우에는 원색을, 그 밖에는 단색을 사용했으며, 표지는 단색, 원색을 학교급에 따라 다르게 적용했다. ▮ 여기에서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철수’와 ‘영이’가 1960년대와 70년대를 대표하는 교과서 주인공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철수’와 ‘영이’는 1948년 『바둑이와 철수』에 처음 등장한 이래로 1964년(제1차)까지의 주인공이고, 1964년부터 1972년(제2차)까지는 ‘인수’와 ‘순이’였고, 1973년부터 1983년(제3차)까지는 ‘기영’이와 ‘순이’가 우리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때의 국어 교과서 주인공이었다. 철수와 영이는 친구 사이가 아니라 남매 사이라는 점은 교과서를 보면 확인하실 수 있다. 두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구성은 오늘날의 스토리텔링 기법의 원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국어 1-1』 표지와 본문 ◀ 애니메이션 「검정 고무신」은 1960년대 후반 서울특별시 마포구에 살고 있는 대가족을 배경으로 기철(중학생), 기영(국민학생) 형제가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았고 있는데,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에 집 안에서 일어나는 가족 간의 갈등, 일상생활 등, 학교 교실에서 일어나는 코믹한 에피소드들, 동네 골목에서의 놀이 등 정겨운 시대에 대한 추억과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한 애니메이션이다. 여기에서 주인공의 이름이 ‘기영’이라는 사실이 우연이 아닐 것이다. ▮ 제1차 교육과정기에 발행된 검정 교과서의 외형 체제에 대한 규정은 엄격했는데, 1955년 10월 6일 제정된 ‘검인정교과서 형식 사열 기준’과 1960년 11월 1일 제정된 ‘교과용도서체제 기준’을 엄격히 준수해야만 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먼저 첫 번째로, 판종(판형)은 4×6판, 5×6판, 5×7판, 4×6판배 판으로 한다고 했다. 다만, 음악과 교과서, 미술과 교과서 및 지도첩은 5×7판 이상 5×7배판 이하로 하고, 기타 교과의 교과서는 5×7판을 원칙으로 하되 5×6판 또는 4×6판도 용인했다. ▸ 두 번째로, 활자다. 활자는 중등학교 교과서의 본문 활자의 크기는 5호(15Q) 이상으로 했으며, 고등학교 한문 및 중국어의 학생용 교과서의 본문은 4호(20Q) 이상이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 활자는 정확 명료해야 하며 자획이 선명해야 한다고 했다. ▸ 세 번째로, 행수, 자수, 자간, 여백과 관련된 사항이다. 행수는 판종(판형)과 활자 크기에 의거해 5×7판에 5호 활자를 사용하는 것을 기준으로 해 1면 본문을 750자 이내로 하되 단, 1면의 본문이 25행을 넘을 수 없으며 1행은 32자를 넘을 수 없다고 했다. 어간을 반각으로 하고, ‘, . ! ?’ 등 기호는 반각으로 간주해 이들 기호와 다음 글자 사이는 전각으로 했다. ▸ 네 번째로는 인쇄다. ①인쇄는 선명해야 한다. ②인쇄에 농담이 없어야 한다. ③글자 이외의 지면이 깨끗해야 한다. ④글줄이 바르게 돼 있어야 한다. ⑤삽화는 명료해야 한다. ▸ 다섯 번째로, 체제다. 표지는 120근 이상의 후지를 사용해야 하며, 교과용 도서 검인정을 받은 표시는 안표지에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 여섯 번째로, 제본이다. 제본은 견고해야 하며, 책면은 고르게 제본이 돼야 한다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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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이 전하는 교과서 이야기㈑ – 제1차 교육과정기(1954~19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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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이 전하는 교과서 이야기 ㈐ – 미 군정기 및 교수요목기
- [교육연합신문=안용섭 기자] ▶ 최초의 한글활자본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 1. 미 군정기(1945~1948년) 1945년 해방을 맞아 신조선의 조선인을 위한 교육으로 미 군정 시대가 시작됐다. 미 군정기에는 학교교육을 통해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이식하고 식민지 교육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했다. ‘교육에 대한 긴급 조치’를 통해 초등학교, 당시에는 국민학교였다. 수업이 시작돼 우리말과 글과 역사를 가르치게 됐다. 미군정청 학무국에 의한 교육 방침에 따라 교수 용어는 일본어 대신 한국어로, 또 조선의 이익에 반하는 교과목들, 특히 일제 황민화 교육을 주도했던 과목들이 일체 금지됐다. ▮ 미 군정기는 불과 3년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때 현대 한국 교육의 기본 틀이 마련됐다. 미군은 반공 이념이 투철하고 자유민주주의적 성향을 지닌 한국인 미국 유학생들을 발탁해, 미군정 학무국과 한국교육위원회 및 조선교육심의회에 배치했다. ▮ 미 군정은 인문 학교와 실업 학교의 학제가 완전히 분리돼 있던 복선형 학제를 단선형 학제로 바꿈으로써, 종전의 인문 교육과 실업 교육의 제도적 분리에서 기인한 빈부에 의한 학교 진학의 차이를 없애려 했다. 또, 미국식 수업 연한을 도입해, 학제를 6·3·3·4제로 개편했다. 이들은 한국인의 높은 교육열과 38선 이남에 자유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목표를 고려해 국민학교를 의무교육화 했다. ▮ 이 시기의 주요 특징으로는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공민과를 신설했으며, 우리의 말과 글 중심의 국어 교육을 강화했다. 또, 우리의 국사 교육도 시행했다. 8월 15일 해방 후 미 군정이 시작되면서 국민학교는 9월 24일에, 중등학교는 10월 1일에 교과서 한 권도 없이 교실 문을 열게 된다. 교과서뿐만 아니라 교사들조차 턱없이 부족한 시기였기 때문에 교과서 대신 임시적으로 칠판에다 쓰고 공책에다 베끼고, 임시로 제작된 교과서를 사용하다가 11월에 가서야 미군정청 학무국에서 『한글 첫걸음』이라는 국어 교과서가 발행된다. 종이가 부족하고 활자도 없던 어수선한 시대인 관계로 3개월의 진통 끝에 만들어진 교과서였다. ▮ 『한글 첫걸음』을 비롯한 국어 교과서를 가장 먼저 편찬 발행한 미군정청 학무국은 계속해 『공민』, 『역사』, 『지리』, 『음악』, 『잇과』 등의 교과서를 발행했다. 『한글 첫걸음』은 국판(A5판) 크기의 50쪽으로 구성돼 있다. 말살됐던 국어 교육을 급속히 회복하기 위해 국민학교의 『초등 국어 교본』과 중학교의 『중등 국어 독본』을 각각 편찬했으나, 특수한 사정은 상급 학년일지라도 모두 한글을 배우지 못해 읽을 수 없었다. 따라서 국민학교 1·2학년은 『초등 국어 교본』 상권으로 한글을 가르치고, 3학년 이상과 중학교에서는 교과서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글 첫걸음』으로 먼저 한글을 익히게 했다. 정인승(鄭寅承) 선생을 책임자로 해 장지영(張志暎)·윤재천(尹在天) 선생 3인의 기초 위원에 의해 편찬됐다. ▮ 이렇게 추진되어 온 교과서 편찬 사업은 미 군정이 끝날 무렵인 1948년 6월에는 『한글 첫걸음』, 『초등 국어』, 『공민』, 『중등 공민』, 『우리나라 발달』, 『국사 교본』, 『사회 생활』, 『중등 국어』, 『초등 셈본』, 『잇과』, 『노래책』, 『글씨본』, 『가사』, 『농사짓기』 등 54종의 교과서를 발행하게 됐다. ▮ 이 시기에 배웠던 교과목을 살펴보면, 국민(초등)학교는 모두 12교과로 공민, 국어, 역사, 지리, 산수, 잇과, 체조, 음악, 습자, 도화·공작, 요리·재봉, 실과이며 학년별 주당 수업 시간 수는 22~33시간이었다. 중등학교는 모두 14교과로 공민, 국어, 지리·역사, 수학, 물리·화학·생물, 가사, 재봉, 영어, 체육, 음악, 습자, 도화, 수예, 실업이 있었으며 학년별 주당 수업 시간 수는 32~36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시대의 교육은 무엇보다도 일제 강점기의 잃어버렸던 한글(국문)에 대한 교육이 최우선이었다. 『한글 첫걸음』을 비롯해서 『국문 독본』과 같은 한글 교육에 대한 교육 교재들이 많이 만들어졌던 시기였다. ▮ 체제 면으로 볼 때, 당시의 교과서는 4×6판과 국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며, 면수가 적고 지질이 아주 나빠 마분지 같은 용지를 썼다. 그리고 활자가 아주 나빴을 뿐만 아니라 자형도 가지각색 였다. 컬러 인쇄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흑백으로 인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2. 교수요목기와 6.25 전쟁 시기(1946~1953년) 1946년 가을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미 군정청은 일부 교수요목이 포함된 각급 학교 교육과정을 공포했다. 그래서 1946년 9월 1일에는 ‘국민학교 교수요목’을 전달했고, 1946년 9월 20일에는 중학교의 학제 변경에 따른 교과목별 주당 수업 시간표를 정하고, 교과목별 교수요목을 전달했다. ▮ 이 교수요목에는 다음의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교과별 교수요목에는 교사가 학생에게 가르칠 교수 내용의 ‘주제’ 또는 ‘제목’을 열거했다. 둘째, 구성 체계는 교과별로 각론이 중심이 됐다. 셋째, 교과별로 각 교과의 지도 내용을 상세히 표시하고, 기초 능력을 배양하는 데 주력했다. 넷째, 교과는 분과주의를 채택해 체계적인 지도와 지력의 배양에 중점을 뒀다. 다섯째 홍익인간의 정신에 따라 애국 애족의 교육을 강조했으며 한글 전용과 우리말 도로 찾기 및 우리 말 용어 제정 등과 같이 일제 잔재를 없애려고 노력했다. ▮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교육과 관련해 획기적인 변화는 1949년 12월 31일 「교육법」의 제정·공포였다. ‘홍익인간’을 교육 이념으로 채택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바둑이와 철수』는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문교부에서 최초로 편찬·발행해 첫 정규 교과서로 사용한 초등학교 1학년 1학기용 국어 교과서다. 이 교과서는 12개 단원을 하나의 이야기 학습 체제로 잇는 스토리텔링 방식을 도입했으며, 교과서 일부를 컬러로 인쇄한 것이 특징이다. ▶『바둑이와 철수』 표지와 본문◀ 『바둑이와 철수』가 발행된 1948년 10월 5일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교육과정·교과서연구회, 한국교과서연구재단, 한국교과서협 등은 매년 10월 5일을 ‘교과서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 교수요목은 정부 수립과 교육법의 제정에 따라 새롭게 개정될 예정이었으나, 6.25 전쟁으로 중단된다. 6.25 전쟁으로 인해 한 때 교육이 마비되자, 정부는 「전시 하 교육 특별 조치 요강」을 발표해 전쟁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계속 제공하고자 했는데, 이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문교부는 1951년에 학생들의 전시 생활을 지도하기 위한 임시 교재로서 초등학교용 『전시 생활』 9종과 중등학교용 『전시 독본』 3종 등 12종을 발행해 피난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배부하며 교육을 이어갔다. ▮ ‘전시 생활’은 6.25 전쟁 시기에 편찬·발행된 초등용 교과서이다. 전시 상황에서의 생활을 지도하기 위한 임시 교과서로, 전쟁 시기이기 때문에 교과서명이 매우 특이했다. 초등학교 1~2학년용의 경우에 『비행기』, 『탕크』, 『군함』 등과 같이 전쟁 물자와 관련된 교과서명을 사용했고, 초등학교 3~4학년용인 『싸우는 우리나라』,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 『씩씩한 우리 겨레』 등과 초등학교 5~6학년용인 『우리나라와 국제연맹』, 『유엔군은 어떻게 싸웠나?』, 『우리도 싸운다』 등은 전쟁과 관련된 교과서명을 사용했다. ▶‘전시 생활’ 교과서들◀ ▮ ‘전시 독본’은 전쟁 시기에 편찬·발행된 중등학교용 전시 교과서이다. 즉, 전쟁 중에 임시로 교육하기 위한 조치로, 교과서다운 면모를 갖추지 못한 채 전시 생활을 지도하기 위한 임시 교과서이다. 이 중등학교용 ‘전시 독본’은 『침략자는 누구냐?』, 『자유와 투쟁』, 『겨레를 구원하는 정신』의 1종 3집 3책으로 편찬됐는데 공급이 가능한 수복 지역에 보급해 학습 자료로 활용됐다. ▮ 6.25 전쟁 시기에 (주)미래엔의 경우에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었는데 전쟁이 발발하자 공장을 부산으로 이전하게 된다. 직원 몇 명이 목숨을 걸고 공장 설비를 트럭도 아닌 우마차를 이용해 인천으로 옮기고 군함의 도움을 받아 부산으로 어렵게 이전하게 됐고, 부산 공장에서 전시 교과서를 출판해 학생들에게 나눠 줬다. 교육에 대한 사명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없었더라면 목숨을 건 이러한 행동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전쟁 시기에는 물자가 부족해 책의 지질도 좋지 못하고 책의 두께도 얇고, 크기도 4×6판인 지금 교과서의 반절 크기로 발행한 특징이 있다. ▮ 운크라, 즉 국제연합 한국재건위원단과 자유아시아위원회,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원조한 종이와 지원금으로 교과서를 계속 인쇄할 수 있었는데, 『국어 6-3』과 『과학 공부 4-3』이라는 교과서는 학년, 학기(학제)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종이가 원조되는 대로 1학기와 2학기 교과서를 나눠서 인쇄한 순서를 표시한 것이다. 전쟁으로 인한 어려웠던 시기의 교육을 단편적으로 보여 주는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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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이 전하는 교과서 이야기 ㈐ – 미 군정기 및 교수요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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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이 전하는 교과서 이야기㈏ – 일제 강점기
- [교육연합신문=안용섭 기자] ▶ 최초의 한글활자본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 일제 강점기의 교육은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조약부터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독립 사이에 있었던 교육 현상과 교육 기관의 양상을 의미한다. 1910년 8월 29일, 일본 제국은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된 직후 종전의 통감부를 총독부로 승격 개편하고, 헌병과 비밀 경찰을 동원한 무단 통치를 실시했다. ▶ 일제 강점기 교과서 전시 모습 ◀ 일제의 식민지 정책은 서구 열강의 식민지 정책과 달랐다. 서구의 식민지 정책은 기본적으로 식민지를 본국의 부강을 위해 식민지를 단순하게 이용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었으나, 일제는 식민지 주민의 민족의식과 민족문화를 말살하고, 식민지와 본국을 하나의 나라로 통합하려고 했다. 일제는 이를 위해 교육을 효과적으로 활용했으며 때와 목적에 따라 교육 기회를 억제하여 민족의식의 고취를 방지하기도 하고, 교육의 기회를 확대해 일제의 황국의식을 교육하기도 하는 양면적 교육 정책을 구사했다. 일제는 조선총독부의 교육령을 통해 조선의 교육 정책을 운용했다. 「조선교육령」은 1911년 공포된 이후 총 3차례(1922년, 1938년, 1943년)에 걸쳐 개정됐다. 「조선교육령」은 일본 군국주의의 교육 정신을 담고 있는 ‘교육에 대한 칙어’에 바탕을 두고 제정됐다. 이 때문에 「조선교육령」의 목표는 일본에 대해 충량한 국민을 양성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아울러 식민지 교육으로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조선 내에서의 교육을 보통 교육과 실업 교육·전문 교육으로 한정했으며, 고등 교육에 대한 규정은 아예 두지 않았다. ▮ 「조선교육령」에서는 차별적인 학제를 도입해 조선인과 일본인을 별도로 교육했다. 조선 내의 조선인과 일본인의 학교의 명칭은 서로 달랐으며, 수업 연한과 수업 내용에서도 두 학교는 다소간의 차이를 보였다. 또, 인구 비례상으로도 일본인 학교의 수가 조선인 학교의 수보다 훨씬 많았고, 교육 예산도 조선인에 대한 교육과 일본인에 대한 교육이 분리돼 편성됐고, 결과적으로 1인당 일본인에게 배당된 교육 예산은 1인당 조선인에게 배당된 교육 예산보다 월등히 많았다. ▮ 현재 대한민국의 중·등 교육과정에서는 이 「조선교육령」과 개정 사항을 제1차 「조선교육령」, 제2차 「조선교육령」, 제3차 「조선교육령」, 제4차 「조선교육령」으로 지칭하나, 학술 용어로는 「조선교육령」과 「개정(조선)교육령」이라는 명칭이 사용된다. 일제 강점기의 주요 교육 목표로는 일제의 식민 지배에 따른 황국 신민 양성이었으며, 우리나라의 독립 운동의 입장에서는 민족정신,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민족 교육이 이뤄졌다. ▮ 교과서 발행의 특징으로는 사진 제판, 오프셋 인쇄 기술을 적용한 교과용 도서가 출판됐으며, 활자의 크기와 삽화 안배, 컬러 인쇄 방식이 적용됐다. 또, 판형(국판)과 분량을 통제하는 방법도 도입됐다. 조선 총독부에서 출판한 교과서를 주로 사용했으며, 국정 교과서는 주로 조선총독부의 관방 인쇄·출판 기관인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 등에서 발행했다. ▮ 일제 강점기는 국어가 한글이 아닌 일본어로 사용됐던 암울했던 시기였다. 민족주의 사상가들과 애국지사들이 활발하게 교과서에 대한 저술 활동을 하고 한글 활자로 교과서를 펴내던 시절이 저물고 민족의 정기가 모두 죽어 버렸던 시기였다. 『국어독본』과 『조선어독본』 교과서의 비교를 통해 나라 잃은 설움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국어독본』은 우리의 말과 글이 아닌 일본어로 돼 있는 교과서이다. 우리의 말과 글은 『조선어독본』이라는 교과서로 배웠는데 이마저도 나중에는 선택 과목으로 지정돼 사실상 우리의 말과 글이 교실 밖으로 추방됐던 시기였다. 즉, 교과서는 일제의 통치 수단으로 사용됐던 것에 불과했다. 『조선어독본』 『국어독본』 ▮ 이 당시의 교과 내용은 주로 조선인을 우민화, 신민화하는 작업의 하나었다. 일제 강점기 36년간의 교과용 도서에 나타난 가장 뚜렷한 특징은 우리의 말과 글을 부정하고 우리의 역사를 부정하면서 일본 제국주의 이념으로 무장시킨 것이다. 우리 민족의식과 우리 민족문화를 모두 말살하려 했다. 이 시기에 일어난 조선어학회 사건은 일제 강점기 때 조선어를 연구한 학자들을 탄압한 사건이다. 조선어학회는 1929년 10월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했다. 조선어사전편찬회의 발기인은 모두 108명이며 일제의 방해로 내란죄 등의 명목으로 기소돼 옥중에서 사망하거나 해방 이후에 석방된다. 조선어학회는 해방 후 조직을 정비한 뒤 1949년 9월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꿨다. 참고로 『말모이』는 영화로도 유명한데, 1911년 주시경이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우리말 사전이다. 최남선(崔南善)이 설립한 조선광문회에서 주시경(周時經) 선생과 그의 제자들인 김두봉(金枓奉) · 권덕규(權悳奎) · 이규영(李奎榮) 선생 등이 민족주의적인 애국 계몽의 수단으로 편찬했다. 1911년부터 편찬이 시작돼 거의 원고가 마무리됐으나 안타깝께도 편찬자들의 사망·망명 등으로 출판되지 못하고 현재는 그 일부의 원고가 남아 있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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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이 전하는 교과서 이야기㈏ – 일제 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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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이 전하는 교과서 이야기㈎ - 개화기
- [교육연합신문=안용섭 기자] 개항 이후 서양의 근대 문화에 접하게 된 조선 정부는 구래의 전통적 유교 교육을 청산하고 서구의 신문화를 섭취하기 위한 신식 교육을 실시했다. 한편,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맞서기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민간 유지들에 의해서도 일종의 민중 교육 운동이 추진됐고 조선에 진출한 기독교계 선교 단체들에 의해 선교 계통의 학교도 세워졌다. ▶ 개화기 교과서 전시 모습 ◀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고 한 이 시기 교육 운동가들의 구호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과 같이, 이 시기의 교육 운동은 국권의 수호를 위한 결의였으며, 생존을 위한 실력 배양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민중 교육 운동은 보통 교육 분야뿐만 아니라 중등 교육 내지 전문 교육의 영역으로 확대돼 가고 있었으며, 여성 교육과 기술 교육도 적극적으로 추진됐다. 근대 초기의 교육은 학교급이 나눠 시행된 것이 아니었으며,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세워진 학교가 대부분이었다. 근대 말기에 이르러서야 초등 교육 기관과 중등 교육 기관으로 학교급이 분별되게 됐다. 학교급의 분화와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소학교의 경우에 소학교령(小學校令)이 1895년 7월 19일부로 처음 초등 교육의 관제(官制)가 정해졌다. 이 영(令)은 본령 4장 29조로 돼 있다. 1장은 소학교의 목적 및 종류·경비로 돼 있고, 2장은 소학교 편제 및 취학, 3장은 학교 설치 및 감독, 4장은 직원에 대해 각각 규정하고 있다. ▮ 중학교는 1899년 4월 4일에 공포된 중학교 관제에 의해 처음 중등 교육에 대한 관제가 정해졌다. 전문 17조로 된 학규(學規)로 돼 있다. ▮ 외국어 학교의 경우에 1895년 5월 10일 전문 11조로 된 외국어 학교 관제가 공포됐다. 외국어 학교는 외국의 어학을 교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1조), 외국어의 종류는 필요에 따라 학부대신이 정하도록 했으며(2조), 학부대신은 필요에 따라 지방에 분교를 둘 수 있고(3조), 직원은 학교장 1인, 교관 4인 이하, 부교관 5인 이하, 서기 3인 이하를 두되(4조), 필요한 경우에는 교관·부교관 또는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으며, 그 인원수는 학부대신이 필요에 따라 정하도록 했다(11조). ▮ 실업학교에 대한 관제는 1889년 3월 24일 의(醫)학교 관제, 동년 6월 24일 농·상·공학교(農商工學校) 관제가 발표됐다. 설립된 학교는 1889년 2월 정부에 의해 경성의학교(京城醫學校:뒤에 경성의학전문학교로 발전됨.), 같은 해 5월 상공학교가 세워졌다. 이 학교는 예과·본과를 두고, 농·상·공업을 가르쳤다. 이후 5년 후에는 1904년 농공상학교로 개칭했다. 편제는 농과·상과로 나누고, 수업 연한을 예과 1년, 본과 3년으로 정했다. 그 뒤에 농과는 수원농과학교, 공과는 경성공업전습소, 상과는 선린상업학교로 발전했다. 또, 1900년 8월 광학(鑛學)·실업을 가르치는 광무학교(鑛務學校), 1897년 우무학당(郵務學堂)·전무학당(電務學堂)이 나타났으나 1910년의 경술국치 이후 둘 다 폐지됐다. 또, 1895년 3월 당시 법원이었던 평리원(平理院) 안에 새로 법관양성소가 생겼는데 이것이 경성법학전문학교의 전신(前身)에 해당한다. 이 시기의 교과서는 적용 면에서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 하나는 민간인 발행 교과서이고, 또 하나는 지금의 교육부라고 할 수 있는 학부에서 발행한 정부 주도의 교과서이다. 이 시대의 교과서의 특징은 민족주체성 확립과 애국애족의 정신을 강조한 것이었다. 특히, 민간 발행인 교과서가 더욱 그러했다. ▮ 1895년 정부 기관인 학부 발족과 함께 가장 주된 업무가 교과서 편찬 발행과 각급 학교의 설치 작업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정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국민소학독본』과 『조선역사』 등을 시작으로 학부를 중심으로 새로운 교과서들이 발행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학부대신 보좌원으로 일본인들을 고용하게 되며, 1905년 을사조약 이후에는 교육 행정의 실질적인 권한이 일본인들에게 넘어가게 됐다. ▮ 교과서 검정제가 1907년부터 일본인에 의해서 생겨남으로써, 이후 민간 발행인 국민 교육 도서가 사라지게 되고 서서히 일본인의 구미에 맞는 친일파적인 교과서로 변해 가게 됐다. 1909년에는 대부분의 우리 교과서들이 금지되고, 1910년에 20여만 권이 넘는 교과서가 일본인들에 의해 압수돼지고 불태워지게 된다. 이 시기 교육의 핵심은 외국어 교육, 교사 양성, 실업 교육에 비중을 뒀으며, 기회 균등 사상이 각성됐다. 교과서의 특징으로는 근대적인 인쇄술 및 장정술이 도입됐고 용지 등의 자재 사정이 개선됐다. 주로 정부의 학부에 의해 국정 교과서로 발행됐으며, 교과서에 처음으로 삽화가 도입됐다. ▮ 소학교용 교과서(심상과 3년)로는 『수신』, 『독서』, 『작문』, 『습자』, 『산술』, 『체조』, 『한국 지리』, 『국사』, 『도화』, 『외국어』 등이 있었다. 고등과(2년 또는 3년) 교과서로는 『수신』, 『독서』, 『작문』, 『습자』, 『산술』, 『본국 지리』, 『본국 역사』, 『외국 지리』, 『외국 역사』, 『이과』, 『도서』, 『체조』, 『제봉(여아)』, 『외국어』 등이 발행됐다. ▮ 중학교 교과서(심상과 4년)로는 『윤리』, 『도덕』, 『작문』, 『역사』, 『지리』, 『산술』, 『경제』, 『박물』, 『물리』, 『화학』, 『도화』, 『외국어』, 『체조』 등이 있었다. 개화기의 교육 기관으로는 경학교, 사범학교, 한성사범학교, 한성중학교, 중학교, 실업학교, 소학교, 서당, 사숙, 외숙, 강습소 등이 대표적이었다. 당시에 발행됐던 몇몇 교과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국민소학독본』은 1895년 7월에 간행된 최초의 관찬 교과서로서 신식 학교의 교과서로 처음으로 국문이 교과서에 정식으로 등장했다. 명현의 행덕을 중심으로 도덕 교육에 중점을 뒀으며 처음으로 국문이 교과서에 등장했다. 애국심에 관한 것, 교육(면학), 국제 이해, 역사, 지리, 기술, 동식물, 경제, 과학, 사회 윤리, 이렇게 열 개 분야로 내용이 편제돼 있다. ▶ 『국민소학독본』 ◀ ▮ 『신정 심상소학』은 3권 체제의 교과서로서, 학교와 학년 체제에 맞춰져 있고 비교적 언문일치에 가깝다. 농·공·상에 대한 것, 동식물에 관한 것, 자연 현상과 사회생활 등 여러 내용이 혼합돼 있다. 교과서 본문에 처음으로 삽화를 넣었다. ▶ 『신정 심상소학』 ◀ ▮ 『유년필독』은1907년 현채가 초등학교의 역사와 지리 교육을 위해 편찬한 교과서이다. 4권 2책으로 구성돼 있으며 휘문관(徽文館)에서 발행했다. 국한문 혼용체이며, 한자에는 한글토를 달아놓았으며 총 132과(課)로 구성돼 있다. 책머리의 범례를 통해 살펴본 이 책의 간행 목적은 애국사상의 고취를 위주로 해 역사·지리 교육을 통해 민족의 전통적 주체성을 확립시키고 나아가서는 새로운 세계 사정을 익혀 국제 경쟁에서 자립할 수 있는 국민을 교육함에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책의 내용은 우리나라의 역사·지리와 세계 사정을 개괄, 설명, 소개한 글로 엮어져 있다. 유년용 교과서로서 그 대상이 아동에 한한 것으로 잘못 이해되기 쉬우나, 편찬자의 의도는 장년과 노년층까지를 포함한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유년필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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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이 전하는 교과서 이야기㈎ - 개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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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⑩ – 교육 자료 특별 기획전
- [교육연합신문=안용섭 기자] 미래엔교과서박물관(관장 김동래)은 2003년 9월 24일 개관해 2024년도에 20주년이 됐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오랜 기간 수집해 왔지만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보물들인 교육 자료를 공개하게 됐다.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우리나라의 교육 현장에서 직접 사용되거나 활용됐던 교육 자료를 주제별로 모아 선보인 것이다. 이번 기획 전시의 주제는 우리의 동요 제목인 <학교 종이 땡땡땡>으로, 동요의 가사에 맞춰 당시의 학교생활과 관련된 물건들을 보며 추억을 소환해 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고자 했다. ▶ 교육 자료 특별 기획전 전경 ◀ 전시의 목적은 첫 번째로, 우리 교과서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소장품 중에서 교과서 외의 교육 자료를 공개함으로써 관람객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만족도를 높이고자 함이었다. 두 번째로, 과거에 활용했던 교육 자료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나라 교육의 변천 과정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자 함이었다. 세 번째로, 관람객들에게 과거로의 여행을 통한 추억을 되새기는 계기를 마련하고 평온한 휴식의 시간을 함께 제공함으로써 관람객의 문화 향유권을 제고시키고자 함이었다. 기획 전시 <학교 종이 땡땡땡>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각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 첫 번째로, <제1부.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는 등굣길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들판에 봄가을로 피어 있는 아름다운 들꽃들을 바라보며 등교하는 모습, 학교 앞 문방구에서 각종 물건과 게임 기구에 현혹돼 한눈팔던 시절이 있었다. 전시된 소장품으로는 학생 가방, 명찰, 선도부(기율) 완장, 양은도시락 등이 있다. ▶ <제1부.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전시 모습 ◀ ▮ 두 번째로, <제2부. ‘사이좋게 오늘도 공부 잘하자’>는 학창 시절 수업 시간, 쉬는 시간, 점심시간 등 학교 내에서 하루 종일 친구들과 선생님이 즐겁게 생활하던 일들을 소환해 보고자 했다. 이 두 번째 주제는 학교 수업과 관련된 내용을 ‘수업 시간에는’라는 소주제와 운동회 등의 학교생활을 다룬 ‘우리들의 학교생활’이라는 소주제로 나눠 전시하고 있는데, 입학식에서부터 졸업식에 이르는 각종 학교 행사들도 추억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볼 수 있도록 했다. 첫 번째 소주제의 전시 소장품으로는 주요 전시 소장품은 교련 가방, 전과, 학생이 직접 그린 포스터 및 그림 등이 있다. ▶ <제2부. ‘사이좋게 오늘도 공부 잘하자’> 전시 모습(1) ◀ ▮ 두 번째 소주제의 전시 소장품으로는 출발총, 생활통지표, 건강기록부, 스케이트, 운동회 물품 등이 있다. ▶ <제2부. ‘사이좋게 오늘도 공부 잘하자’> 전시 모습(2) ◀ ▮ 세 번째로, <제3부.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는 선생님이 사용했던 물건들을 중심으로 선생님의 시각에서 얼마나 학생들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가르쳤는지를 소개해 보고자 했다. 전시하고 있는 주요 소장품은 교사용 학습 지도안, 타자기, 철필, 순찰 시계, 교사용 지도서 등이다. ▶ <제3부.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전시 모습 ◀ - 흑백 사진으로 보는 ‘정겨웠던 순간들’ - 이러한 기획 전시 <학교 종이 땡땡땡>과 연계해 1960년대~70년대의 학교생활을 담은 흑백 사진전을 진행하고 있다. 대한민국사진대전 초대 작가이며, 전 교육부 초등교육정책과장, 서울성북교육장을 역임한 김완기 선생의 흑백 사진 작품 27점을 선정해 액자에 담아 전시하고 있는데, 김완기 선생은 교육 현장에서 교사, 교감, 교장, 교육장 등 교육 전문직으로 종사하시면서 다양한 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해 우리나라 최초로 교육 활동과 사진 촬영 활동을 접목시키신 선생님이다. 1960년대부터 70년대 어려웠던 시절,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당시 교육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여과 없이 사진에 담았다. 관람하는 관람객은 당시의 학교생활을 회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 김완기 선생 사진전 <정겨웠던 순간들> ◀ 시간은 화살처럼 흘렀어도 추억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존재한다. 이번 기획 전시를 통해 세월이 흘러도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학창 시절로의 여행을 떠나 보기를 권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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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⑩ – 교육 자료 특별 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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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⑨ – 기획전시관(2)
- [교육연합신문=안용섭 기자] 미래엔교과서박물관(관장 김동래)의 이번에 살펴 볼 내용은 지난호에 게재한 '기획전시관' 코너에서 소개한 팽이치기 놀이, 연날리기, 윷놀이, 칠교놀이, 고무줄놀이 다섯 가지 놀이 이외에 나머지 다섯 가지 놀이에 대해 소개하겠다. 바로 구슬치기, 숨바꼭질, 그림자놀이, 바람개비놀이, 눈사람 만들기가 그것이다. 1. 구슬치기 구슬치기 놀이는 주로 남자아이들이 유리구슬을 땅에 던져 놓고 다른 구슬로 그것을 맞혀 따먹는 놀이이다. 구슬의 지름은 1cm 정도이며, 발바닥으로 밀어 차기, 손가락으로 퉁기기, 선 채로 던지기 등의 여러 방법 중 하나를 정해 구슬을 맞히는 방식이다. 두세 명이 하기도 하고, 여럿이 편을 짜서 하기도 한다. 놀이 방법으로는 ①가운뎃손가락 손톱과 엄지손가락 바닥으로 자기 구슬을 퉁겨서 상대편 구슬을 맞히는 방법, ②세모꼴이나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그 속에 차례로 각자의 구슬을 퉁겨 맞히는 방법, ③일정한 높이의 벽면에서 구슬을 떨어뜨리거나 미리 정한 거리에서 벽면에 구슬을 부딪혀 튀어나오게 하는 방법 등이 있다. 제2차 교육과정기에 해당하는 1971년 발행의 『국어 3-1』 교과서에 등장하는 구슬치기 모습을 볼 수 있다. 국어 교과서이다 보니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구슬치기 하는 장면과 파릇파릇 돋아난 새싹을 풍경화처럼 ‘봄’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구슬과 교과서에 실린 모습◀ 2. 숨바꼭질 숨바꼭질 놀이는 여럿 가운데 한 사람이 술래가 되어 숨은 사람들을 찾아내는 놀이이다. 술래가 정해지면 술래는 벽에 얼굴을 대고 다른 사람들에게 숨을 시간을 준다. 이때, 술래는 숫자를 세거나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를 일정 횟수만큼 외친다. 이 과정이 끝나면 술래는 큰소리로 “찾는다!”를 외친 뒤 숨은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숨은 사람을 모두 찾으면 술래가 이기고, 찾지 못해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치면서 항복을 선언하면 술래가 지게 된다. 숨바꼭질 놀이는 제1차 교육과정기에 해당하는 1961년 발행의 『산수 2-1』 교과서와 1962년 발행의 『국어 1-1』, 제3차 교육과정기인 1980년 발행의 『국어 1-1』 교과서에서 볼 수 있다. 산수 교과서에서는 숨바꼭질 놀이를 통해 찾은 친구의 숫자를 세어 더하기와 빼기 공부를 하고 있으며, 국어 교과서에서는 ‘어머니, 가위바위보, 나, 너’ 등의 낱말을 배우는 학습을 하고 있다. ▶교과서에 실린 숨바꼭질 모습◀ 3. 그림자놀이 그림자놀이는 촛불이나 등잔불 등 불빛 가까이에서 손을 움직여 벽이나 창문에 여러 가지 모양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것을 즐기는 놀이다. 한 손 또는 두 손으로 뜻하는 모양을 만들기 어려울 때에는 종이나 나무 막대기를 이용하기도 한다. 개, 여우, 오리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동물의 그림자를 만들어 진짜 동물이 움직이는 것 같은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 놀이는 인도에서도 성행했는데, 그곳에서는 이를 ‘손가락 예술(finger art)’이라고 높여 부르며 수련을 쌓은 전문 예능인들이 행했다. 제2차 교육과정기인 1959년 발행의 『국어 1-2』과 제2차 교육과정기인 1972년 발행의 『자연 1-2』 교과서에 이러한 그림자놀이 장면을 볼 수 있다. 국어 교과서에서는 그림자놀이로 표현되는 여러 가지 물건 또는 동물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과자, 수염, 염소, 고양이, 토끼’ 등의 낱말을 익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아버지와 어머니를 등장시켜 사물, 동물 및 인물에 대한 낱말 학습을 하고 있다. 자연 교과서에서는 빛을 비춰 그림자를 만드는 원리와 빛의 각도에 따라 물건의 모양이 달라지는 학습을 했다. ▶교과서에 실린 그림자놀이 모습◀ 4. 바람개비놀이 바람개비놀이는 두꺼운 종이를 접어 만든 날개를 손잡이 자루에 꽂은 뒤 자루를 쥐고 바람을 마주해 뛰면서 날개를 빙글빙글 돌리는 놀이다. ‘팔랑개비’ 또는 한자어로 ‘회회아(回回兒)’라고도 한다. 바람개비를 만드는 방법은 정사각형의 두꺼운 종이를 세모꼴로 두 번 접어 중심점을 정하고, 네 귀퉁이에서 이 점을 향해 5분의 3쯤 되는 자리까지 자른다. 그리고 45도로 나뉜 끝을 하나씩 건너뛰어 가며 중심점에 모으고, 이에 작은 못 등을 꿰어 손잡이 끝 한가운데에 고정시킨다. 종이를 접을 때는 힘을 줘 누르지 않고 오긋하게 부풀려야 바람이 이곳으로 잘 모여들고, 또 잘 빠져나가서 바람개비가 잘 돌아간다. 제2차 교육과정기인 1968년에 발행된 『미술 1』 교과서와 1967년에 발행된 『자연 1-2』 교과서에서 바람개비놀이 장면을 볼 수 있다. 미술 교과서에서는 바람개비를 만드는 바람개비 만들기 공예 학습과 색칠하기 공부를 했으며, 자연 교과서에서는 바람이 불 때와 불지 않을 때의 바람개비가 도는 공기의 원리를 학습하고 있다. ▶바람개비놀이 도구와 교과서에 실린 모습◀ 5. 눈사람 만들기 눈사람 만들기는 겨울철에 눈이 쌓였을 때 눈 뭉치를 굴려서 사람 모양을 만드는 놀이다. 만드는 방법은 먼저 눈 뭉치를 굴려 크고 작은 눈덩이 두 개를 만든 뒤, 큰 눈덩이를 몸통으로 삼고 그 위에 작은 눈덩이를 올려놓는다. 눈, 코, 입은 숯덩이를 박아서 나타내고, 수염은 솔잎을 붙여 만든다. 양은 대야로 모자를 씌울 수도 있다. 눈사람 만들기는 혼자서도 하지만, 서너 명씩 모둠을 만들어 겨루기도 한다. 이때 눈사람의 크기는 물론 그 꾸밈새를 보고 잘잘못을 따진다. 이는 어린이들이 추위를 극복하고 체력을 단련하는 데 도움이 되는 놀이다. ‘눈사람 만들기’는 겨울 놀이 중의 하나로 교과서에 소개하고 있는데, 제2차 교육과정기인 1968년에 발행된 『체육 4』 교과서에서는 빙판의 위험성과 안전한 생활, 겨울철 건강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눈사람을 등장시켰으며, 제1차 교육과정기인 1960년에 발행된 『자연 1-2』 교과서에는 계절의 변화와 겨울철 위험 방지에 대해 공부했다. ▶눈사람만들기가 교과서에 실린 모습◀ 그 밖에도 자연 교과서에서는 ‘움직이는 장난감’ 놀이를 통해 경사면에서의 운동 원리에 대해 학습했으며, 미술 교과서에서는 여러 가지 재료를 모아 만들기 학습을 했다. 또, 전화놀이의 경우에 자연 교과서에서는 소리의 전달을 공부했고 미술 교과서에서는 수수깡놀이와 전화기 만들기 공예 학습을 했다. ‘나뭇잎놀이’와 ‘나무 열매 장난감 놀이’를 통해 국어 교과서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공부하고 자연 교과서에서는 여러 가지 식물과 열매를 공부했다. ▶나뭇잎놀이◀ ▶수수깡놀이와 전화기놀이◀ 자연 교과서에서 ‘비눗방울놀이’는 공기의 전달과 더운물과 젓기를 통해 비눗물을 빨리 녹이는 방법에 대한 과학적 원리를 공부했다. 공기와 바람의 원리에 대해서는 낙하산 만들기와 비행기 만들기, 글라이더 만들기 놀이를 통해서도 공부했다. ‘물총놀이’와 ‘고무총놀이’의 경우에는 자연 공부를 하면서 사물을 멀리 보내는 에너지의 변환에 대해 공부했다. ▶글라이더 만들기◀ ▶새총과 물총놀이 도구◀ ‘지남철(자석)놀이’는 자연 교과서에서 자석으로 모형 물고기를 낚고, 여러 가지 쇠붙이를 붙여 보는 활동을 통해 자석의 원리를 공부했다. ‘라디오놀이’는 소리의 전달이라는 놀이를 통해 국어 학습 영역인 ‘듣기’와 ‘말하기’ 학습을 했다. 운동장에서 하는 여러 놀이, 운동회를 통해 사회 교과서에서는 여럿이 함께하는 협동의 모습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처럼 교과서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놀이는 지금도 행해지고 있는 놀이도 있고 이미 사라져 우리가 알지 못했거나 경험해 보지 못했던 놀이도 있다. 전시돼 있는 교과서와 놀이 도구들을 통해 놀이와 교과서의 연관 학습과 적용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자석(지남철)놀이와 운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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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⑨ – 기획전시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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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⑧ - 기획전시관(1)
- [교육연합신문=안용섭 기자] 미래엔교과서박물관(관장 김동래)의 2층에 위치하고 있는 '기획전시관'은 교육 및 교과서와 관련된 여러 소재 가운데에서 특별한 주제를 선정해 전시하는 전시관이다. 현재 교과서에 등장하는 ‘놀이’를 주제로. ‘동무들아, 이리와 나하고 놀자’라는 타이틀로 기획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즉, 교과서를 통한 학습 활동이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 특별히 놀이를 통해 학습할 수 있는 요소를 선별해 전시했다. 어린음악대 놀이를 통해 음악적 감수성과 정서를 익힐 수 있으며, 나뭇잎놀이, 비눗방울, 바람개비, 물총놀이, 비행기, 자석놀이 등을 통해 자연 현상 및 과학적인 학습을 할 수 있다. 또, 학교놀이, 운동장놀이 등을 통해 단체 생활과 협동의식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으며, 겨울놀이(눈사람 만들기, 연날리기 등)를 통해 자연과 우리나라의 사계절을 공부할 수 있다. 또, 연날리기, 팽이치기, 널뛰기, 숨바꼭질 등의 전통·민속 놀이를 통해 우리 민족의 전통을 계승하고 보존하고자 하는 의식을 고취할 수 있다. 사실, 같은 놀이라고 할지라도 교과별로 추구하는 학습 목표나 성취 목표는 다르다. 즉, ‘국어’ 교과서에서의 ‘연날리기’ 놀이와 ‘자연’ 교과서에서의 ‘연날리기’ 놀이가 등장했을 때 각 교과별로 이 놀이를 통해 학습하고자 하는 까닭과 성취 목표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전시돼 있는 교과서와 놀이 도구를 비교·분석하며 관람하면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놀이에는 무엇이 있으며, 오늘날에도 전승되고 있는 놀이에는 또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관람을 통해 확인해 보는 추억 여행을 떠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에는 팽이치기 놀이, 연날리기, 윷놀이, 칠교놀이, 고무줄놀이 다섯 가지 놀이와 교과서 게재 모습을 소개하겠다. 1. 팽이치기 놀이 ‘팽이치기 놀이’는 주로 겨울철에 어린이들이 얼음판 위에서 원뿔 모양으로 깎아 만든 팽이를 채로 쳐서 돌리는 놀이다. 팽이는 지역에 따라 뺑이, 핑딩, 뺑돌이, 도래기, 패이, 팽돌이, 빼리, 뺑생이, 봉애, 포애, 세리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 놀이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성덕왕 19년인 720년에 쓰인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일본의 팽이가 우리나라에서 전래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뤄 보아 삼국 시대에 이미 널리 유행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제1차 교육과정기인 1972년에 발행된 『자연 1-2』와 제3차 교육과정기인 1980년에 발행된 『국어 1-2』 교과서에 이 놀이가 등장하고 있다. 자연 교과서에는 팽이 만들기를 통해 회전의 과학적 원리를 학습하고, 국어 교과서에는 인수와 순이가 전통 놀이를 즐기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2. 연날리기 ‘연날리기’는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행하던 민족 전래의 기예(技藝)로, 연을 공중에 띄우는 민속놀이다. 해마다 음력 정초가 되면 우리나라 각처에서 연날리기를 했다. 정월 보름날에는 연날리기를 하다가 줄을 끊어 연을 날려 보냄으로써 액막이를 했다. 연날리기는 정월 보름날 마감했는데, 이날 이후에도 연을 날리면 ‘고리백정’, 즉 ‘때를 따라 할 것을 때가 지난 뒤까지 한다.’고 놀리는 말로 놀림을 받기도 했다. 전시된 바와 같이, 제1차 교육과정기에 해당하는 1962년 발행 『사회 생활 1-2』와 동일 교육과정기의 1964년 발행 『미술 3』 교과서에 등장하는 연날리기 놀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사회 생활’ 교과서에서는 ‘철수’와 ‘일구’라는 두 친구가 연을 띄우기 위해 협동하고 서로 연을 빌려 주는 의좋은 모습을 표현하고 있으며, 미술 교과서에서는 연 만들기 공예를 소개하고 있다. 3. 윷놀이 ‘윷놀이’는 네 개의 윷가락을 던져서 나온 결과에 따라 말[馬]을 움직여 승부를 겨루는 민속놀이다. 설날 놀이의 하나로,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날까지 하는 것이 관례로 돼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유서 깊고 전통 있는 놀이다. 이 놀이의 명칭이 ‘윷놀이’인 까닭은 나무막대기 네 개를 가지고 노는 놀이로서 ‘도·개·걸·윷·모’ 중에서 ‘넷’을 뜻하는 ‘윷’과 ‘놀이’가 복합된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윷의 한자어 ‘사(柶)’도 ‘나무 막대기 넷을 가지고 논다.’는 뜻이다. 제1차 교육과정기인 1963년에 발행된 『산수 1-2』와 1961년에 발행된 『산수 2-2』 교과서, 또 윷놀이의 종류 중에서 ‘밤윷’이 등장하는 윷놀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산수 1-2』에는 윷놀이를 통해 말판이 몇 단계까지 이동하는지에 대한 숫자에 대한 수학 공부에 적용하고 있으며, 『산수 2-2』 교과서에는 놀이 중에 어머니가 주는 떡과 과일을 나누는 장면을 연출해 분수를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4. 칠교놀이 ‘칠교놀이’는 사방 10cm쯤 되는 정사각형 나무판을 직각삼각형 큰 것 두 개, 중간 것 한 개, 작은 것 두 개, 그리고 정사각형과 평행사변형이 각각 한 개가 되도록 잘라 낸 뒤, 이 일곱 조각을 이리저리 움직여 가면서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 등의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드는 놀이다. ‘칠교’라는 이름은 이 판이 일곱 개의 조각으로 이뤄진 데에서 왔으며, 이 판을 ‘칠교판(七巧板)’ 또는 ‘칠교도(七巧圖)’라고 한다. 제1차 교육과정기인 1959년에 발행된 『미술 2』 교과서와 제2차 교육과정기인 1970년 발행의 『산수 1-2』 교과서에 등장하는 ‘칠교놀이’를 확인할 수 있다. 미술 교과서에서는 칠교를 이용해 비행기, 주전자, 오리, 사람 등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드는 공예 공부를 했으며, 산수 교과서에서는 개, 물고기, 배, 집 등의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 보고 원기둥, 사각 기둥, 삼각뿔 등의 도형을 공부하는 데에 활용되고 있다. 5. 고무줄놀이 ‘고무줄놀이’는 주로 여자아이들이 고무줄의 탄력성을 이용해 리듬에 맞춰 노는 놀이다. 고무줄을 가로지르고, 노래에 맞춰 줄을 넘으면서 고무줄이 발에 닿지 않게 하거나 고무줄에 다리를 높이 거는 것 등을 겨룬다. 고무줄 길이는 3~4m가 적당하며, 2∼4명이 하는 것이 보통이다. 놀이 방법은 사람 수에 따라 다른데, 두 명일 경우에는 고무줄의 한쪽 끝을 기둥 같은 데에 잡아매고 한다. 사람이 많으면 편을 나눠 한다. 사람 수가 홀수여서 한 아이가 남으면 그 아이를 ‘깍두기’라고 하는데, 깍두기는 양편에 번갈아 가며 가담한다. 때로는 가장 잘하는 아이가 깍두기가 되기도 한다. 1964년도에 발행된 『음악 1』과 『미술 4』 교과서, 제3차 교육과정기에 해당하는 1979년 발행의 『음악 2』 교과서에 등장하는 ‘고무줄놀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음악 교과서에서는 「줄넘기」 노래를 배우는 장면에 고무줄놀이가 등장하며, 미술 교과서에서는 내가 했던 일을 그림으로 그리는 활동 중에서 고무줄놀이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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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⑧ - 기획전시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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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 - 교육자료전시관⑦
- [교육연합신문=안용섭 기자] 미래엔교과서박물관(관장 김동래)의 본관 2층에 위치하고 있는 <교육자료전시관>은 교과용 도서 이외에 교육과 관련된 각종 자료를 수집해 전시하는 기획 전시 공간 공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교육 관련 여러 자료 중에서 특별히 교과서에 수록돼 있는 삽화를 주제로 해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 삽화 기획전 ‘삽화 여행, 교과서를 그리다’를 진행하고 있다. 예전에는 모두 손으로 그린 그림을 교과서에 실었지만 근래에는 주로 컴퓨터를 이용해 그린 컴퓨터 그림(삽화)을 대부분을 교과서에 싣고 있다. 그렇지만 ‘국어’ 교과서처럼 학생들의 정서를 함양하고 감정을 풍부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도화지에 붓 등으로 직접 그린 그림을 수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전시돼 있는 교과서 수록 삽화는 모두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들이다. 주로 2007 개정 및 2009 개정 교육과정기의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것들이다. 2007 개정 교육과정의 ‘읽기’, ‘듣기·말하기’ 또는 ‘듣기·말하기·쓰기, ‘쓰기’ 교과서들과 2009 개정 교육과정의 ‘국어’, ‘국어 활동’ 교과서들의 손삽화와 종이 공예로 만든 특수 삽화들이 전시돼 있으며,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국어 교사용 지도서 표지 특수 삽화가 전시돼 있다. 전시돼 있는 손 그림을 컴퓨터 그림의 느낌과 비교해 보고, 또 원래의 그림이 교과서에 어떻게 적용되고 표현되었는지를 확인하고 감상할 수 있다. ▶ 손삽화 원화와 교과서에 실린 모습 ◀ 교과서에 실린 삽화 중에는 손삽화 외에도 클레이나 종이 공예로 제작한 특수 삽화도 많이 있다. 전시관에 전시된 삽화 중에는 클레이의 경우는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종이 공예로 제작한 특수 삽화가 함께 전시되고 있다. 이들 종이 공예 작품들은 사진 촬영을 통해 교과서에 실었는데, 교과서에 실린 모습과 원 작품을 비교해 보면 입체감을 잘 살리지는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알 수 있다. 이는 평면과 입체의 차이와 한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종이 공예 작품과 교과서에 실린 모습 ◀ 손삽화 전시 외에도 손글씨(경필) 원고가 전시돼 있는데, 前구암중학교 김영진 교장의 작품으로, 쓰기 교과서에 학생들의 바른 글씨를 쓸 수 있도록 쓰기 코너에 제시된 글씨본들이다. 2007 개정 교육과정기 이전에는 이 글씨를 하나하나 스캔해 실었는데, 이후 이 글꼴을 서체로 개발해 ‘교과서경필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지금은 교과서에 조판을 통해 서체를 적용하고 있다. ▶ 경필 글씨 원본과 교과서에 실린 모습 ◀ 삽화의 콘셉트는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경우에는 집필진이 원고를 구성하고 기본적인 삽화 콘티를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콘티를 기반으로 편집자는 판면을 규모 있게 재구성하고 삽화의 콘티를 구체화하고 정교화한다. 다음의 그림은 『말하기·듣기·쓰기 1-1』의 차례에 등장하는 삽화로써, 이 삽화의 기본 콘티는 교과서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을 등장시켜 소풍을 가는 장면으로 연출했으며, 배경은 충청북도 진천에 소재한 ‘농다리’로 했다. 이 ‘농다리’는 천년의 세월 동안 온갖 풍파에도 무너지지 않고 버텨 온 견고한 돌다리라고 한다. ▶ 『말하기·듣기·쓰기 1-1』 차례 손삽화와 교과서에 실린 모습 ◀ 또, 같은 삽화가라고 하더라도 화풍을 달리해 전혀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으로 느껴질 만한 삽화가의 그림도 있다. 원로 삽화가인 손창복 선생의 그림이 그러하다. ▶ 동일 삽화가(손창복 선생님)의 느낌이 전혀 다른 그림 스타일 ◀ 『말하기·듣기·쓰기 1-1』 교과서의 표지에서는 교과서에 등장하는 어린이들이 모래를 가지고 두꺼비집을 만드는 장면을 연출했으며, 『말하기·듣기·쓰기 5-1』 교과서의 표지에서는 교과서 내의 제재인 탈춤놀이와 매체 관련 단원의 ‘인터뷰’를 소재로 가져와 이야기를 재구성한 경우이다. ‘읽기’ 교과서의 기본 콘셉트는 교과서에 나오는 제재를 기본 바탕으로 이야기를 재창조해 표현하는 것이었다. 즉, 각 단원에 등장하는 인물, 동물, 식물 등의 주인공들을 표지로 끌어내 또 다른 이야기를 구성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재창조하는 것에 표지 구성의 주안점을 뒀다. 또, 역사 속의 위인과 동화 속의 등장인물이 현대의 인물들과 어울려 이야기하고, 동식물과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사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소통과 화합을 상징적으로 표현했으며 본문의 제재를 읽기 전에 학생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자 했다. ‘읽기’ 교가서의 표현 기법은 학생들의 정서를 고려해 컴퓨터 그림보다는 손으로 그린 그림, 수채화 그림풍이 많이 나타나도록 했으며, 등장인물의 구성을 여유롭게 하면서 공간과 여백의 미를 강조했다. ▶ ‘읽기’ 교과서 표지 손삽화들 ◀ 『읽기 5-1』 교과서의 표지는 본문의 제재 중에서 「나를 싫어하는 진돗개」와 「원숭이 꽃신」 등을 주요 소재로 가져와 재구성한 경우이다. 『읽기 2-1』 교과서의 표지는 본문의 제재 중에서 「개구리네 한솥밥」, 「호수의 주인」, 「독도의 여러 이름」 등의 소재를 등장시켜 재구성한 경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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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 - 교육자료전시관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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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 - 인쇄기계전시관⑥
- [교육연합신문=안용섭 기자] 미래엔교과서박물관(관장 김동래)의 <인쇄기계전시관>은 주로 1950~70년대에 사용됐던 인쇄 기계 및 인쇄 관련 설비가 전시돼 있는 곳이다. 활자 제작, 조판, 인쇄, 제책에 이르기까지 인쇄에 대한 공정 전반에 걸친 기계 40여 점이 순서대로 전시돼 있다. <인쇄기계전시관> 내의 소장품에 대해 소개하는 코너도 한 편에 전시돼 있다. ◈ 전자동 문자 조판 입력기 ‘전자동 문자 조판 입력기’는 문자를 조판하는 입력 장치이다. 글자를 키보드로 입력하면 천공기가 미리 약속된 방법으로 종이테이프에 구멍을 뚫는데, 이 종이 리본을 ‘전자동 조판기’에 걸어 조판을 하게 된다. 즉, 구멍을 뚫는 기계인 천공기에 종이 리본을 끼우고 자판을 눌러 종이테이프에 한 글자마다 두 개의 작은 구멍을 내는데, 이 구멍의 위치에 따라 각각의 글자가 정해진다. 이 구멍이 뚫린 종이 리본을 ‘전자동 조판기’에 걸어 그 정보값으로 조판이 이뤄지는 방식이다. 전자동 문자 조판 입력기 ◈ 전자동 조판기 ‘전자동 조판기’는 전자동 문자 조판 입력기에서 천공된 즉, 구멍이 뚫린 종이테이프를 이 자동 조판기에 걸면 종이테이프의 구멍 모양에 맞는 글자의 활자를 만들게 되고 자동으로 조판이 되는 기계이다. 즉, 종이테이프에 생긴 두 개의 작은 구멍을 통해 강한 압축 공기를 두 개의 파이프에 불어 넣으면 이에 연결된 두 개의 피스톤이 들어올려지고 그에 따라 글자가 결정된 활자를 주조하게 된다. 이어서 주조된 활자를 마무리 장치로 다듬은 다음에 조판하는 기계 장치이다. 즉, ‘전자동 조판기’는 일종의 주식기로, 활자의 주조, 문자를 조합하는 문선, 식자의 공정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기계 장치이다. 전자동 조판기 ◈ 활판 교정기 ‘활판 교정기는’원고에 맞도록 조판이 완료되면 잘못되거나 빠진 글자는 없는지, 문장은 제대로 구성돼있는지 등 몇 차례의 확인 작업을 하는 교정을 보게 되는데 이처럼 교정을 보기 위해 본격적인 인쇄가 아닌 임시 인쇄를 하기 위해 사용하는 장치이다. 본 인쇄용 ‘활판 인쇄기’보다 그 구조가 비교적 간단 인쇄 기계이다. 조판한 판을 활판 교정기에 올려놓고 롤러로 판에 잉크를 묻힌 다음, 그 위에 교정 용지를 넣고 큰 롤러로 압력을 주면서 굴려 인쇄하는데, 판은 실로 묶여 있는 상태이며, 엽서나 명암과 같이 여러 가지 글자나 형태가 혼합돼 있는 인쇄물인 경우에는 보통 한판씩, 교과서처럼 형태가 일정한 인쇄물은 두 페이지 또는 네 페이지씩 함께 교정 인쇄를 한다. 활판 교정기 ◈ 지형 건조기 ‘지형 건조기’는 지형을 건조시키는 데에 사용되는 기계이다. 활판을 해체해야 할 경우나 대량 인쇄를 해야 하는 경우에 활판 그대로를 복제해 보관, 또는 인쇄에 활용할 경우에 지형을 만들어 놓는다. 이러한 복제판을 만드는 것을 ‘지형을 뜬다.’라고 표현한다. 활자판을 지형기로 뜬 지형은 수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납물을 부어 인쇄판으로 사용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으므로 다시 건조시켜야 한다. 이처럼 지형을 건조시키기 위해 지형에 열을 가해 건조시키는 기계가 바로 지형 건조기이다. 지형 건조기 ◈ 자동 볼록판 인쇄기 ‘자동 볼록판 인쇄기’는 도드라진 부분에 잉크를 묻히고, 이곳에 종이 등을 눌러 인쇄하는 기계이다. 인쇄물의 종류, 인쇄량, 색도, 용지의 크기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교정 인쇄를 마친 후에 본격적인 인쇄를 위해 활판을 인쇄기에 걸기 전에 정밀하게 시험 인쇄를 하는 기계이다. 자동 볼록판 인쇄기 ◈ 활판 인쇄기 ‘활판 인쇄기’는 볼록판식 인쇄기의 대표적인 기계이다. 조판한 활자판을 그대로 인쇄하거나 지형을 떠서 납으로 활자판을 만들어 인쇄하기도 한다. 활자판을 인쇄 기계에 올려놓고, 기계가 동작하는 동안 풀리지 않도록 고정시킨다. 활자판이 걸려 있는 판이 수평으로 왕복 운동하게 하고 그 위에 실린더가 접촉해 인쇄되는 방식이다. 한 장을 인쇄하는데 활자판은 1회 왕복하며 누름통 실린더가 1회전마다 정지하게 된다. 이러한 작동이 연속해 진행하면서 같은 판을 계속해서 인쇄한다. 인쇄 기계가 다색(컬러)화 되면서 오프셋 인쇄기에 밀려 점차 사라지게 됐다. 활판 인쇄기 ◈ 수지판 제판기 ‘수지판 제판기’는 지형에 액체 상태의 납을 부어 연판을 만드는 것처럼, 납 대신 합성수지를 사용하여 인쇄판을 만드는 기계이다. ◈ 철사기 ‘철사기’는 인쇄의 양이 많지 않을 때 수동으로 책을 묶는 기계이다. 인쇄된 인쇄물을 필요한 크기로 재단한 것을 페이지 순서대로 포개어 철사로 만든 철침을 박아 책을 묶어 주는 기계이다. 철사로 매기 전에 흩어지기 쉬운 것은 여러 권을 한꺼번에 틀에 묶고 뒷면에 종이를 붙이기도 하는데 이것을 ‘등 붙이기’라고 한다. 등 붙이기를 한 후에 책의 옆을 철사로 묶어 주는 것을 ‘평철’이라 하고, 책의 접은 중간을 철침을 박아 묶어 주는 것을 ‘중철’이라고 한다. 철사기 ◈ 수동 사철기 ‘수동 사철기’는 대체로 양자이나 반양장 형식으로 제본할 때 사용되는 기계이다. 제본할 때 인쇄된 인쇄물을 페이지 순서대로 가지런히 정렬된 정합본을 실로 꿰매어 엮는 기계이다. 책을 묶은 후에는 묶은 부분을 종이로 붙여 준다. 그렇지 않으면 실로 묶은 부분이 느슨해져 책의 모양이 변할 수도 있다. 교과서의 경우에는 이전의 교육과정기 『사회과 부도』 교과서에 이러한 사철기를 이용한 제본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 크림시 카메라 ‘크림시 카메라’는 전자 색 분해기가 나오기 전에 4색 분해나 망, 투시 촬영에 사용됐던 카메라이다. 이 카메라는 일반 물체를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평면의 원고를 촬영하므로 일반 카메라와는 다르게 원고를 고정하기 위한 원고 틀이 있다. 카메라는 렌즈 틀, 주름상자, 암상, 원고 틀, 지지 틀 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렌즈 틀에는 렌즈를 설치해 상하좌우로 조절할 수 있으며, 원고 틀에는 원고를 고정하고, 지지 틀은 카메라 전체의 모양을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암상에는 필름이 들어 있는 원판 틀을 설치해 초점을 맞출 수 있으며 스크린도 설치할 수 있다. 주름상자는 암상과 렌즈를 연결하는 기능을 한다. 이 카메라를 사용하는 방법은 원판 틀에 필름을 설치하고 완전히 밀봉한 다음에 원고를 원고 틀에 넣고 조명을 알맞게 조절한 후에 원판 틀을 이용해 사진을 찍고 암실에서 현상한다. 크림시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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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 - 인쇄기계전시관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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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경계 너머 - 저자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편집국] "사람은 죽을 수 있지만 패배할 수는 없다."(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중) 당신이 이 세상에 바람처럼 스치는 이유를 물어야 한다. 『주역』의 64괘와 인문학적 지혜에서 길어 올린 육우균 작가의 더 나은 인생을 위한 인문 에세이! 삶은 힘들다. 누구에게나 그렇다. 현대인은 수많은 존재에 둘러싸여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모든 것에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겉도는 시간을 보낸다. 그 과정에서 외로움과 괴로움, 끝모를 공허감이 내면에 자리하곤 한다. 이 문제에 대한 처방은 조화와 연결이라는 검증된 명약을 담고 있어야 할 것이다. 육우균 작가 역시 이 비통한 삶 안에서 좌절하였으나, 그럼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인류의 오랜 정수가 담긴 『주역』에서 길어 올린 정제된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바람과 같이 살다 가는 게 인생이라면 삶의 이유를 마땅히 물어야 한다. 이 고전은 이에 대한 대답을 들려준다. 이 책은 「주역」의 64괘를 바탕으로 현대인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통찰과 제언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인간의 언어와 사고가 만든 이원적 경계를 넘어 상호연결된 삶의 조화와 균형을 발견하게 한다. 독자는 주역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스트레스와 불만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위한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철학적 사유와 실생활에 모두 적용 가능한 이 에세이는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삶의 기준을 회복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 에디터 추천사 육우균 작가의 『경계 너머』는 경계라는 단어가 지닌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작품이다. 『주역』이라는 고대의 지혜를 현대인의 삶과 연결하여,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경계가 단순한 한계가 아닌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문임을 섬세히 풀어낸다. 이 책은 인생의 굴곡 속에서 만나는 고통과 기쁨, 실패와 성공, 그리고 이원성을 넘어선 통합의 지혜를 보여준다. 특히, 『주역』의 64괘를 렌즈 삼아 삶의 무수한 선택지와 변화를 탐구하며 독자들에게 인생의 본질 속에서 조화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현재 어려움 속에서 방황하고 있거나 변화와 도전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 저자 소개 육우균 작가는 인간의 삶이 마주하는 경계와 그 너머에 대한 깊은 철학적 통찰을 문학적 언어로 풀어내는 작가이다. 교사에서 주필로 전향하며 겪었던 인생의 굴곡을 바탕으로, 그의 글은 실패와 성공, 즐거움과 고통이 혼재하는 삶의 경계 속에서 진정한 깨달음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주역』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음양의 조화와 상호작용을 통해 변화와 회복의 힘을 탐구하며, 경계가 단순한 한계가 아니라 그 너머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특히, 이번 저서 『경계 너머』는 고대의 지혜를 통해 현대인이 맞닥뜨린 삶의 갈등과 도전을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는 『주역』 속 64괘를 렌즈로 삼아, 삶과 죽음, 성공과 실패, 성과 속, 망상과 통찰 등 인간 존재가 마주하는 다양한 대립적 요소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길을 제시한다. 그의 글은 독자들에게 삶의 무한한 순환 속에서 어떻게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일상의 도전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를 깨닫게 한다. ▣ 판매처 인터넷 교보문고(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101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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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경계 너머 - 저자 육우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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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인성93 - "검증된 인성교육 교재로 주목"
- [교육연합신문=편집국] "학교폭력부터 패륜·강력범죄까지… 올바른 인성이 사회를 바꾼다" "유아부터 대학생까지 전 연령 대상, 검증된 인성교육 교재로 주목" 최근 사회적으로 학교폭력, 패륜범죄, 성범죄 등 강력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며 인성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대학입학 전형에 ‘인성’을 가장 중요하게 반영해야 한다는 응답이 27.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인성교육이 단순한 선택이 아닌 필수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대한민국 인성교육 전문가로 알려진 저자 윤문원이 검증된 교재와 프로그램을 공개해 주목받고 있다. 저자 윤문원이 개발한 인성교육 교재는 유아부터 대학생까지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구조가 특징이다. 특히, 연령별 특성과 학습 난이도를 고려해 구성된 이 교재는 법률로 명시된 8대 인성덕목(예, 효,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을 바탕으로 실질적 인성 함양을 목표로 한다. 특히, 《인성교육만세》는 국군장병 인성도서로 채택됐으며, 방송통신대학교 강의교재로도 사용됐다. 인성덕목을 총망라한 이 교재는 미래 리더를 위한 깊이 있는 인성교육을 제공한다. 저자 윤문원은 "학년별로 구성된 《고등학교 인성1, 2, 3》과 《중학교 인성1, 2, 3》은 12개의 주요 인성덕목을 스토리텔링과 사례 중심으로 다루며 학교폭력 예방 및 자살 예방 등 현실적 주제도 포함됐고,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뉜 초등학생 교재와 유아를 위한 창작 동화 중심의 교재는 흥미를 유발하는 삽화와 활동을 통해 인성교육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도록 돕는다."라고 밝혔다. 대한민국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인성교육진흥법과 시행령을 통해 인성교육을 법적 의무교육으로 명시했다. 그러나 처벌조항 부재로 인해 실제 현장에서는 제대로 된 인성교육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 윤문원은 교육 현장과 사회적 필요를 반영한 교재와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저자는 “올바른 인성이 사회를 바꾼다. 인성은 지식보다 중요하며, 그 가치는 세대와 문화를 뛰어넘는다”라고 강조하며, 인성교육을 통한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저자 윤문원의 인성교육 교재는 다수의 검증 과정을 거쳤다. 저자의 인성 관련 글은 중·고등학교 국어, 도덕, 문학 교과서 및 지도서에 다수 게재됐다. 국내외 권장 도서 선정돼 64권에 이르는 저서 중 다수가 청소년 권장 도서로 선정됐고, 일부는 태국으로 번역되어 수출됐다. 또한 교육부 중앙교육연수원, 대구교육청, 대학 및 기업 등에서 인성 강의를 통해 실질적 성과를 입증했다. 저자 윤문원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인성교육진흥법 제11조, 제15조에 따라 예산 지원과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인성교육이 단순한 이벤트나 형식적 프로그램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의 교육과 문화 전반에 뿌리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문제의 해결책이자 미래세대를 위한 투자로 주목받는 인성교육, 윤문원 저자의 교재와 프로그램이 그 해답으로 떠오르고 있다. 저자 윤문원은 청소년에 대해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저술 활동과 강의에 전념하고 있다. 그의 글 다섯 편이 10여 곳의 중·고등학교 국어·도덕·기술가정·문학 교과서와 교사용 지도서에 게재되어 있으며 EBS TV 연중 기획 프로그램인 ‘폭력 없는 학교’에 출연했다. 작가·칼럼니스트·경제평론가인 그는 《쫄지마 중학생》, 《잘나가는 청춘 흔들리는 청춘》, 《살아가는 것에 대한 해답》, 《지혜와 평정》, 《아버지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엄마가 미안해》 등 34권의 저서가 있다. 다수의 저서가 간행물윤리위원회·서울대학교·출판인회의·대한출판문화협회 등에서 청소년 추천도서로 선정되었으며 오디오북으로도 출간됐다. 《잘나가는 청춘 흔들리는 청춘》이 태국을 대표하는 아마린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조선일보》 맛있는 논술 섹션지에 ‘영화와 논술’ 《신동아》에 ‘영화 속 논술’ 《월간중앙》에 권두언 ‘윤문원의 내 마음의 가족풍경’과 경제칼럼 ‘DEAR MS & MR : 귀하’ 《한국일보》에 ‘윤문원의 삶&삶’ 《이코노미스트》에 ‘윤문원의 잊지 못할 명구’를 장기 연재했다. ▣ 저자 윤문원 ◇ 1953년 부산출생 ◇ 한양대정치외교학과 졸업 ◇ KBS라디오 사회교육방송 토론프로그램 진행 ◇ 작가·칼럼니스트·경제평론가 ◇ 現청주산단 전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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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인성93 - "검증된 인성교육 교재로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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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노도 섬 일기2 - 변영희 작가 에세이
- [교육연합신문=편집국] 《노도 섬 일기 2》에는 40편의 수필이 실려 있다. 불시에 닥친 영영 이별(죽음)과 연계, 기막힌 상황에 대한 통찰을 통해 실상을 수용한다. 언사의 죄를 짓고 노도 섬 가시울타리에 갇힌 유배객 서포 김만중의 섬살이를 유추했다. 살아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절체절명의 환경에서 모친 윤 부인의 상심을 달래려고 출발, 사씨남정기. 구운몽을 비롯, 다수의 저작 활동으로 깊은 절망과 번뇌를 극복해 가는 과정, 죽음으로 이어지는 불운의 동인과 본질을 살펴보았다. 푸르고 고요해서 아름다운 노도 섬, 남해 읍내의 풍광과 함께 필연적으로 겪어야만 하는 이런저런 섬살이의 에피소드를 가감 없이 그려놓았다. 누구든 한 번쯤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색다른 섬생활의 진미를 솔직담백하게 서술한 책이라 할 수 있다. ■ 서평 문원(文苑) 변영희 작가님의 신작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작가 변영희님은 동국대학교(석사)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박사)를 나온 중진 작가이다. 제목은 『노도 섬 일기2』(바른북스)이다. 총 5부로 되어 있고, 각 부에 8편씩의 에세이가 있다. 총 40편의 에세이는 서포 김만중 소설 『남해의 고독한 성자(聖者)』를 쓰러 남해 노도 섬에 머물기 전후 엮은 이야기로 그동안 작가가 웃고 울고 지나온 발자취를 더듬어 보려는 의도로 쓰여진 작품이다. 책의 말미에는 그녀의 일명 ‘김만중 일대기’인 장편소설 『남해의 고독한 성자(聖者)』 후기가 있다. 그녀의 에세이 중 「별빛 느껴운 구운몽원의 밤」의 일부를 보자. 밤이 깊어갈수록 별 무리가 영롱한 빛을 뿜었다. 드문드문 켜진 외등과 함께 구운몽원의 밤 풍경은 은밀하고 고즈넉했다. 서포 선생께서 계실 당시에는 별빛이 초롱초롱 더욱 빛났으리라. 별들이 서포 선생에게 말을 걸었을까. 바람도 구름도 한양 선비를 모른 척 지나치지는 않았을 터. 숲속의 고라니와 노루도, 산토끼, 다람쥐, 청설모도 서포 선생의 사무치는 외로움을, 속절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두 발을 부르르 떨며 지켜보았으리라. 별빛 느껴운 구운몽원의 밤은 우리에게 그때 그 시절을 소상하게 일깨워 주는 것 같았다. 에세이라 신변잡기적 성격이 강하다. 그렇지만 문장이 간결하고 신선하다. 추운 계절에 따뜻한 커피 한 잔 곁에 두고 천천히 읽어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내용들로 채워졌다. ■ 출판사 서평 330여 년 전 조선의 효자 서포 선생은 한양에서 천 리 먼 남해의 노도 섬에 유배된다. 절망 고독 설움이 극에 다다른 서포 선생은 어머니 윤 부인의 상심을 위로해 드리고 자신의 지극한 불운을 극복하기 위해 생명의 진액을 짜내어 저작에 집중한다. 서포의 뼈 시린 우수가 환희로 치환되는 노도 섬은 마침내 승리의 섬 문학이 섬이 되었다. ■ 책 속으로 콸! 콸! 또 한 잔을 컵에 부었다. 이번에는 좀 더 많은 양을 따랐다. 꽉 조여져 있는 마음의 주름이 펴지는 듯, 공연히 넉넉해지려고 한다. 내면의 빗장이 헐거워지는 감이 있다. 심신이 느슨하게 풀어지는, 아! 사람들은 이런 맛으로 술을 마시는가. 그러나 최초의 한 잔이지 두 잔은 나에게 버거웠다. - 포도주 한 잔 밤하늘 가득 별빛이 드넓게 피어나고 있었다. 몇 년 만에 만나는 별빛인가. 노도에 오기를 잘했다. 이 모두가 서포 선생 덕분이다. 300여 년 전 서포 선생도 저 별빛을 바라보며 앵강만 바다에서 낚시를 하셨을까. 밤낚시는 일종의 명상 수행처럼 보였다. 낚시도 모르면서 침착함과 기다림의 의미를 떠올려 본다. 철럭! 철럭! 파도 소리 힘차게 들리는 돌계단에 앉아 나는 서포 선생을 그리며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 앵강만 고등어 ▣ 작가 문원(文苑) 변영희 ◇ 청주 출생, 동국대학교(석사),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박사) ◇ 수상 일붕문학상, 한국소설작가상, 직지소설문학상, 한국문학인상, 손소희소설문학상, 무궁화문학상소설대상, 한국수필문학상 ◇ 장편소설 《남해의 고독한 성자(聖者)》, 《지옥에서 연꽃을 피운 수도자 아내의 수기》, 《무심천에서 꽃 핀 사랑》, 3부작 《마흔넷의 반란》, 《황홀한 외출》, 《오년 후》 ◇ 소설집 《열일곱의 신세계》, 《동창회 소묘(素描)》, 《매지리에서 꿈꾸다》, 《입실 파티》 ◇ 수필집 《노도 섬 일기 2》, 《마지막 등록금》, 《노도섬 일기》, 《코로나 속에서 피어난 글꽃》, 《대추나무 언덕》, 《매지리의 기적》, 《비 오는 밤의 꽃다발》, 《애인 없으세요》, 《문득 외로움이》, 《엄마는 염려 마》, 《뭐가 잘 났다고》, 《몰두의 단계》, 《나의 삶 나의 길》, 《거울 연못의 나무 그림자》, 《갈 곳 있는 노년》 ◇ E-book 《사랑, 파도를 넘다》, 《이방지대》, 《졸병의 고독》 외 ▣ 펴낸곳: 도서출판 바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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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노도 섬 일기2 - 변영희 작가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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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최적화된 맞춤형 의대 진학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의문을 열다'
- [교육연합신문=이정현 기자] 여기, 당신의 자녀가 성공하기를! 부모인 당신보다 더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그 성공의 바른 길을 잘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의문을 열다'는 눈 앞의 성적을 넘어 우리 아이의 배움이 올바른 삶의 길이 되도록 가르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의문을열다’에는 중의적 의미가 함의돼 있다. 바른 교육이란 ‘의문’에 ‘답’하는 것 너머 ‘의문’을 품는 일이 중요하므로 학습자가 끊임없이 ‘의문’을 품게 하겠다는 유정걸 대표의 교육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의’는 관형격 조사 '의'로 학습자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 역량‘의’ 문을 열다, 수학‘의’ 문을 열다, 면접‘의’ 문을 열다라는 뜻도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입시에 의대의 문을 열면 모든 문을 열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문을 열다는 의대진학의 문을 여는 선도적인 입시기관을 표방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삶에 여러 문제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참된 교육을 지향하는 교육기관으로서, 우리 아이들의 성공을 진정으로 바라는 참된 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4차 산업 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핵심 역량을 반영한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시행되면서,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도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과 융합적 사고력, 인성 등 다양한 자질이 요구되고 있다. 의문을 열다는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의료인이 되기 위한 핵심 역량을 개발하는 데 필수적인 맞춤형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학생들이 변화하는 교육 환경 속에서 확실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의 꿈과 끼를 존중하는 진정한 교육은 의문을 열다가 추구하는 중심 가치이다. 학원은 단순히 점수 올리기에 치중하지 않고, 학생의 고유한 개성과 잠재력을 존중하며 이들이 자기다움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의문을열다의 김흥식 부원장은 학생들이 의대 진학이라는 목표 아래 자신만의 진로 목표와 가치를 확립해 이를 발전시켜 나가도록 진정성 있는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한다. 이 과정에서 의문을 열다는 교사와 학생 간의 신뢰를 중시하며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협력하고 함께 성장하는 관계를 형성한다. 이해와 표현 능력의 조화를 통한 완성형 인재 교육은 의문을 열다가 추구하는 핵심 목표 중 하나로, 학생들이 단순히 지식을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창의적이고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둔다. 의대 진학과 이후의 의료인으로서의 삶에 필요한 정확한 지식과 논리적 사고력은 물론, 이를 자신 있게 전달하고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함께 기르는 교육을 제공하여 완성형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우수한 프로그램이 상당하다. 특히, 주제 보고서 작성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단순한 교과 지식을 넘어 의과학, 인문, 사회, 역사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연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으로 학생들은 사회적, 윤리적 문제부터 첨단 과학 분야의 폭넓은 주제를 탐구하며 비판적 사고와 논리적 표현력을 배양하고 있다. 조혜정 독서 팀장은 “진로 연계 독서 활동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의료인의 역할과 책임을 미리 이해해, 의학계의 최신 동향과 직업적 비전을 명확히 세울 수 있도록 돕는다.”라고 전한다. 학생들은 의료 및 의학과 관련된 다양한 도서와 자료를 선정해 읽고, 독서 후 토론이나 소감문 작성을 통해 자신의 진로 목표를 구체화해 나가고 있다. 책을 머리로 이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고 깨달은 바를 손발로 실행하는 독서 활동을 통해, 삶의 수단으로서 독서의 가치를 깨닫고, 다양한 관점에서 자신의 진로를 조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된다. 개인별 맞춤형 교과 학습 프로그램은 학생 개개인의 학습 스타일과 수준에 맞춘 체계적인 수업으로, 특히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에게 필수적인 심화 학습 기회를 제공한다. 이 프로그램은 출제 원리의 이해와 개념의 심층적 탐구를 통해 학생들이 단순 암기에 의존하지 않고 핵심 개념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며, 절차와 단계에 따른 논리적 문제 해결 능력을 구비하도록 한다. 또한, 오답을 스스로 분석해 성찰적 학습을 실천하는 습관을 길러 학생들이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배양해, 의대 입시에서 요구되는 고난도 학습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게 한다. 심층 면접 대비 글쓰기와 말하기 활동도 의문을 열다에서 중요하게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의료계에서 요구되는 정확한 소통 능력과 논리적 표현 능력을 길러 주기 위해, 학생들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자신의 의견을 말로 표현하는 연습을 한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대신 다양한 분야의 질문과 관련된 한 뼘만큼의 글을 적어보고(한뼘일기), 고전 작품을 필사하고(필사적으로 필사하라), 선행 교과서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정리하는(적자생존노트)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법을 익히며, 실제 심층 면접에서 논리적이고 자신감 있게 소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된다. 각종 모의 교내 대회를 통해 의문을 열다는 학생들에게 교과 영역과 비교과 영역을 아우르는 종합적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실제 고등학교의 교내 대회를 선행적으로 실시하는 프로그램으로는 과학 탐구 발표대회, 꿈 발표 대회, 임원 선거 캠페인이 있으며, 이를 통해 학생들은 과학적 탐구력을 높이고, 자신의 꿈을 표현하며 리더십 역량을 발휘하는 기회를 갖는다. 또한, 동아리 활동의 조직과 운영을 통해 협력과 책임감을 기르며, 명사 초청 특강 및 보고서 작성을 통해 명사와의 교감을 바탕으로 자신이 배우고 느낀 점을 논리적으로 정하는 능력을 배양한다. 여기에 미디어 리터러시 활동을 포함해 현대 사회에서 필요한 정보 분석 능력과 윤리적 미디어 활용 능력을 기르며, 종합적 사고력과 비판적 시각을 함께 함양할 수 있다. 인성 지도와 밀착형 생활 관리는 의문을 열다의 차별화된 프로그램 중 하나로, 학생들이 학업 성취와 더불어 올바른 인성을 함양해 자기 관리 역량을 키우도록 돕고 있다. 선생과 학생들이 함께 둘레길을 탐방하는 ‘사제 동행’ 프로젝트, 선생과 학생, 학부모가 함께 연극 공연을 관람해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군사부일체’, 아침마다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책상을 정리하는 ‘클린 데스크’ 프로모션, 아침마다 윤독하는 ‘모닝 독서’, 필체 교정 프로젝트인 ‘명필천국 악필지옥] 등은 의사 소통 능력, 협업 능력, 자기 관리 능력을 도모하는 의문을 열다의 가치를 반영한 프로그램이다. 이 같은 ‘독창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을 구하는 ‘큰 의사’로 성장할 자질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 이주영 이사의 주장이다. 진로 연계 컨설팅은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계획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의문을 열다의 핵심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은 진로 상담 전문가의 세심한 조언을 통해 의학계에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구체화할 수 있으며, 각자의 강점에 맞는 학습 전략을 수립해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도록 돕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생활기록부를 직접 디자인하고 설계하면서 학습과 활동의 목표와 방향성을 스스로 정립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이 의도한 진로에 맞춰 학습 이력을 체계적으로 구성할 수 있으며, 입시에 필요한 핵심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생기부 작성 능력을 길러가는 것이다. 의문을 열다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걸맞은 인재 양성을 목표로, 미래 의료인을 꿈꾸는 학생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고 있다. 체계적이고 맞춤화된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진정한 의료인의 자질을 갖추고, 의대 진학의 꿈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모든 역량을 배양할 수 있도록 최상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소명과 사명을 다하는 진정한 교육의 길을 의문을 열다는 학교 밖의 학교, 또 하나의 학교를 지향하고 있다. ▣ 유정걸 원장 ◇ 비창문해력학원·의문을열다학원 원장 ◇ (주)인무늬교육공동체 대표이사 ◇ 진학일보사 편집부 부국장 ◇ 창작문예예술인협회 회원 ◇ 2019 대한문학세계 신인문학상 ◇ 2000 (주)교육과 인터넷 전국경연대회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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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최적화된 맞춤형 의대 진학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의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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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 – 인쇄기계전시관⑤
- [교육연합신문=김병선 기자] 이번에 소개할 미래엔교과서박물관(관장 김동래) 전시관은 '인쇄기계전시관'이다. '인쇄기계전시관'은 주로 1950~70년대에 사용됐던 인쇄 기계 및 인쇄 관련 설비가 전시돼 있는 곳이다. 활자 제작, 조판, 인쇄, 제책에 이르기까지 인쇄에 대한 공정 전반에 걸친 기계 40여 점이 순서대로 전시돼 있다. 납 활자를 만들기 위한 원도에서부터 활자 자모를 조각하는 자모 조각기, 활자를 제작하는 자동 활자 주조기와 같이 활자를 사용하던 시대의 활자와 관련된 정보를 얻으실 수 있다. 또, 사진이나 그림을 데이터화하는 스캔뷰, 촬영기 등도 전시돼 있으며, 문자를 입력하는 입력기 등의 조판과 관련된 설비도 있다. 인쇄해 교정·교열을 하기 위한 활판 교정기에서부터 본격 인쇄를 위한 활판 인쇄기가 전시돼 있으며 사철기, 철사기 등과 같은 제책 설비도 볼 수 있다. ◈ 벤튼 자모 조각기 ‘벤튼 자모 조각기’는 글자를 찍어 내는 활자를 만들기 위한 장치인 자모를 조각하는 기계이다. 만들고자 하는 글자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오목하게 파서 만든 글자 위를 따라 탐색 침을 움직이면 조각도가 같은 모양으로 움직이며 자모를 만들게 된다. 조각도를 1분에 팔천에서 만 번 정도 고속으로 회전시켜 재료의 자모를 조각함으로 정밀한 선이나 점에 이르기까지 정밀도가 높은 자모를 만들 수 있다. 자모를 만드는 순서는 처음에 문자의 골을 조각하고 다음에 문자의 선을 조각하며 다시 깊이를 조각한 다음에 마지막으로 다듬는 공정을 진행한다. 만들어진 자모는 모양과 깊이가 일정해야 하며 문자의 면이 평평하면서 상하좌우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모에 액체 상태로 녹인 납을 부어서 최종적으로 활자를 만들게 된다. ◈ 조각침 연마기 ‘조각침 연마기’는 자모 조각기로 만든 자모를 정확한 규격으로 연마하고 정밀하게 잘 연마됐는지를 확인하는 기계로, 일종의 ‘확대경’이라고 할 수 있다. 자모의 깊이는 활자의 크기에 따라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데 깊이가 다르면 활자의 높이가 달라져서 잉크가 균일하게 묻지 않기 때문에 인쇄가 선명하게 되지 않는다. 즉, 이 기계는 자모의 높이와 크기 등을 정밀하게 연마해 결함이 없는 활자를 만들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 납 용해로 ‘납 용해로’는 활자를 만드는 재료인 납을 녹이는 데에 쓰이는 가마솥이다. 전기나 가스로 가열해 납을 녹이며 액체 상태의 납을 음각의 자모에 주입하는 펌프 등의 주변 설비를 갖추고 있다. ◈ 자동 활자 주조기 ‘자동 활자 주조기’는 전동기, 즉 모터를 이용해 하나의 활자를 자동으로 여러 개 만드는 기계를 말한다. 자모 조작기에서 만들어진 자모를 자동 활자 주조기에 장착하고 여기에 액체 상태의 합금을 흘려보내 활자를 만들게 된다. 활자 주조기는 옆판과 윗작, 중판, 아랫작의 볼록한 형태로 만들어진 네 개의 벽면으로 구성돼 있다. 활자를 주조할 때에는 판들을 움직이며 활자의 몸통을 만들어 자모의 활자를 찍고 이 주조가 끝나면 활자를 밀어낸 뒤에 원위치로 돌아오게 된다. 기계는 이러한 동작을 반복하며 여러 활자를 만들게 된다. 활자를 만들어 내는 주형의 내부에는 냉각 파이프가 있어 합금의 온도를 관리해 주며, 주조된 활자는 중판에 의해 다듬질 포로 이동해 잘 다듬어진 완성된 활자로 만들어지게 된다. 자동 활자 주조기에서 사용하는 활자용 합금은 낮은 온도에서도 잘 녹아야 하며 잉크가 잘 묻고 안정되면서도 단단한 금속이어야 한다. 활자의 높이는 23.32~23.44mm이며 가장 많이 사용했던 납 활자는 납, 주석, 안티몬의 합금으로 만들었다. 참고로 납 활자는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1445년에 만들었으며 우리나라는 그보다 200년 앞서 세계 최초로 금속 활자를 발명해 사용했다. ◈ 인테르 주조기 원고에 따라 활자를 골라 맞추어 짠 것을 조판이라고 하며 조판의 줄 간격을 맞추기 위해 행간에 삽입하는 목재 또는 얇은 납판 등을 인테르라고 한다. 인테르 주조기는 인테르를 주조하는 기계로 주조 원리는 간단하다. 인테르 주조기는 활자 주조기와 비슷하며 녹은 합금을 가느다란 통로를 통해 주형 안으로 흘려보내고 합금이 응고되면 끌어내어 인테르를 연속으로 길게 주조하는 것이다. 이 주조기는 1~12포인트 두께의 각종 인테르를 매시간 7.5~137m의 속도로 주조할 수 있으며, 1.5~76cm의 범위 내에서 절단할 수 있는 절단 장치와 탁상형의 자동 절단기도 있어서 일정한 치수의 인테르를 연속으로 주조할 수 있다. 인테르는 일반적으로 높이 19.3~19.6mm 정도, 두께 0.5~10포인트로 절단해 사용한다. ◈ 스캔뷰 ‘스캔뷰’는 전자 색 분해기로서, 컬러 인쇄에 쓰일 원고의 색을 분해한 다음에 색 분해 상태를 필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영상 교정 장치이다. 인쇄에서 컬러 색상은 CMYK, 즉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검은색의 네 가지 색상을 기본으로 한다. 요즈음 흔히 쓰이는 평판 스캐너와는 달리 인쇄에서 사진 등의 컬러 원고를 이 네 가지 색으로 스캔해 데이터로 나누는 작업을 ‘색 분해’라고 표현한다. ◈ 인화 확대기 그림 등 필름에 있는 내용이 너무 작거나 의도한 크기와 다를 때, 인쇄할 때 필요한 크기로 확대·조정해 인화지에 인화(출력)하는 기계 장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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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 – 인쇄기계전시관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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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 – 교과서전시관④
- [교육연합신문=김병선 기자] 미래엔교과서박물관(관장 김동래)의 주 전시관이라고 할 수 있는 <교과서전시관>은 모두 열두 개의 코너로 운영되고 있다. 한글 창제와 관련된 내용을 담은 <나랏말쌈관>, 교과서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교과서역사관>, 옛날 교실을 재현한 <추억의 교실>, 전문계 교과서를 소개하고 있는 <전문교과서관>, 특수학교에서 주로 사용되는 <특수교과서관>, 국어 교과서를 주요 소재로 기획·운영되고 있는 <국어교과서관>, 세계 여러 나라의 교과서를 볼 수 있는 <세계교과서관>, 북한의 교과서를 소개하고 있는 <북한교과서관>, 교과서 개발 과정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교과서개발관>, 첨단 미래 교육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미래교실관>, 각종 교육 관련 자료를 소개하고 있는 <교육유물관> 등이 있다. 이뿐만 아니라 목활자 제조 과정을 소개하는 코너도 한 편에 마련돼 있다. <교과서전시관> 마지막 소개로서 <교육유물관>, <미래엔교과서관>과 ‘교육과정 이론서 전시 코너, ’목활자 코너‘가 있다. ◈ 지난날 학교생활에서 사용됐던 각종 공책, 상장, 졸업장 등을 전시하고 있는 ’교육유물관‘ 전시된 졸업앨범은 일제 강점기부터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의 졸업앨범이다. 또, 전시대의 맨 아래에는 일제 강점기에 수여한 ‘입학 원서’와 ‘수업 증서’도 전시돼 있다. 상장은 일제 강점기부터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수여됐던 여러 종류의 상장이다.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는 ‘소화’, ‘대정’ 등의 일본 연호를 사용했고, 1950년대까지는 ‘단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졸업장은 일제 강점기부터 1950년대, 60년대, 70년대에 각각 수여됐던 것들이다. 졸업장도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의 연호를 사용했고, 1950년대까지는 ‘단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이곳에 전시된 공책은 일제 강점기부터 미 군정기(1940년대), 1950년대, 60년대, 70년대, 80년대에 사용됐던 공책들이다. 참고서와 교지들도 1950년대부터 70년대에 각각 만들고 사용된 것들이다. 교복 코너는 개화기부터 변화된 교복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한국의 교복 역사에서 여학생은 1886년 이화학당이 다홍색 무명천으로 된 치마저고리를, 남학생은 1898년 배재학당이 당복(堂服)을 입음으로써 시작됐다. 실제로 교복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04년 한성중학교가 개교하면서부터였는데, 검은색 두루마기에 검은색 띠를 두른 옷을 입고, 모자를 써서 교표와 ‘한성’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었다. 일제 강점기 말인 1939년, 일제가 전시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남학생들에게 학업과 일상 훈련까지 겸할 수 있는 국방색 국민복을 입히기 시작했고, 광복 후에도 이어졌다. 최초의 양장 교복은 1907년 숙명여학교에서 원피스 차림의 교복이 등장한 이후, 1920년경에 근대 교복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스커트 차림의 여학생 교복과 양복식의 남학생 교복이 등장했다. 1940년대에는 조선 학생들에게도 전투태세를 갖춘 제복으로 통일시켜 여학생들은 ‘몸뻬’라는 작업복 바지에 블라우스를, 남학생은 국방색 교복을 입었다. 광복 이후의 교복은 1940년에서 1980년대의 교복은 광복과 6.25 전쟁을 겪으면서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상하 검은색 또는 짙은 감색 중심의 교복을 입었다. 1969년 중학교 평준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중학생의 경우에 시·도별로 획일화·균일화된 검은색 교복을 입었는데, 고등학교 교복은 학교마다 디자인과 색상이 조금씩 달랐다. 이러한 스타일은 1983년 교복 자율화 조치가 실시될 때까지 계속됐다. 1980년대는 교복 자율화 시대다. 제5공화국은 개방 정책의 일환으로 1982년 1월 2일 중·고등학생의 머리 모양과 교복의 자율화 방안을 발표했다. ‘머리 모양은 새 학기부터, 교복은 다음 학년도 신입생부터 자율화한다.’라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1982년에는 학생들의 머리 모양이 자유화됐고, 1983년 3월 2일부터 중·고등학생의 교복 자율화가 시행됐다. 교복 자율화 조치는 ‘획일’, ‘몰개성’, ‘일제 잔재’의 상징처럼 여기던 교복으로부터 중·고등학생을 자유롭게 해 줬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 다시 교복으로의 회귀가 이뤄진다. 즉, 교복 자율화 이후 교복에 대한 필요성이 다시 부각됐다. 자유 복장에 따른 교외 생활지도의 어려움과 중·고등학생의 탈선행위 및 가계 부담 증가 등을 해소하기 위해 1986년부터 교복 착용 여부를 학교장의 재량에 맡기게 됐는데, 이후 다시 교복으로 ‘돌아가는’ 학교가 늘어나게 됐다. 1989년에는 전체 학교의 약 13%, 1991년에는 전체의 절반 가량이다가 1993년 전국의 83%에 달하는 학교가 ‘교복 착용’을 선택했다. 1990년대에 새로 등장한 교복들은 이전처럼 디자인에 제한을 두지 않아 편하고 멋스러운 디자인에 밝은 색상이 주류를 이루며, 교복을 채택하는 과정에 학생, 교사, 학부모가 함께 참여하고 있다. 또, 종래의 교복은 소속감이나 통제성을 강하게 나타낸 반면, 최근의 교복은 소속감과 함께 심미성이나 기능성 등을 더 고려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교복도 패션’이란 인식이 뿌리내리기 시작하면서 교복의 디자인과 기능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중간에 교련복도 보이는데, 예전에는 고등학교 수업에 ‘교련’이라는 교과목이 있었다. 남학생의 경우에는 총검술, 제식훈련 등을 학교 운동장에서 실습했고, 여학생의 경우에는 부상자에게 붕대 감는 요령 등을 실습했다. 야외 실습 시간에는 반드시 준 군복인 교련복이 필수였다. 대중적으로 흔히들 알려진 무늬는 이른바 얼룩말 무늬지만, 패턴에 색상이 들어가서 현용 군복으로도 될 만한 위장 무늬를 가진 교련복도 있었다. 눈으로 보기에는 같은 얼룩말 무늬라고 해도 새마을운동 표식이나, 책 또는 낙하산이 그려진 검은 점무늬와 ‘선진조국창조’라는 한글 등 학교나 메이커에 따라서 패턴이 다양했다. 바탕색은 완전 백색, 탁한 백색, 연한 회색 등 여러 가지였고, 패턴은 물론 옷감 소재나 질감도 학교마다 조금씩 달랐다. 방학책은 1990년대 말까지 ‘탐구생활’이라는 이름으로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발행됐는데, 1990년대 말에는 정부(한국교육개발원)에서 발행하던 것을 각 시·도 교육청 주관으로 발행되다가 제7차 교육과정(2000년대)부터는 사라지게 됐다. ◈ ‘교과서전시관’ 관람을 마무리하는 출구에는 미래엔에서 발행된 교과용 도서(국·검·인정 교과서)가 진열돼 있는 ‘미래엔교과서관’ 미래엔은 교과서 전문 발행사로서 76여 년을 이어온 모범 장수 기업이다. 미래엔에서 만든 교과서와 참고서가 어른이 돼서도 기억되고 미래를 만들어 가는 교과서가 될 수 있도록 지금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교과서박물관은 미래엔의 이러한 유구한 역사가 곧 ‘교과서의 역사’라는 인식하에서 교과서박물관을 건립했고, 미래엔에서 발행되는 교과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만들어진 국·검·인정 교과서를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집해 전시하고 있다. 앞의 전시대에는 미래엔에서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현행 교육과정 초등·중등·고등학교 검인정 교과서가 전시돼 있으며, 다른 한편에는 초등학교 국정 국어 교과서 발행사로서 초등 국어 교과서 및 특수학교 현행 교과서들을 전시하고 있다. 미래엔은 앞으로도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국내 유일의 교과서 전문 박물관인 교과서박물관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국내 교과서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 교육과정 이론서 전시 코너 ‘교육과정’은 교육부에서 정한 교육과정의 내용 또는 지식의 내용과 구조를 말하며, 학교에서 학습자의 성장 발달을 위해 의도적으로 제공되는 경험의 총체이다. 또한, 교육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교육활동 계획이다. 즉, 학습자들이 이수하고 실천하고 공부해야 할 요점을 의미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은 ‘교육 기본법’ 등 교육 관계법에 의거해 운영하도록 돼 있다. 교과서를 만들기 위한 교육 이론의 배경을 정리해 놓은 ‘교육과정 해설서’는 8.15 해방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 교육과정기별로 연구되고 정리돼 왔다. 이 ‘교육과정 해설서’는 전체 교육 목표 및 추구하는 인간상 등을 수록해 놓은 총론과 각 학교급별, 교과목별 이론을 수록해 놓은 교과목별 해설서가 있다. 교과서 개발을 위해 띄어쓰기 및 맞춤법, 용어의 정의 등 표현상의 기준과 지침을 마련해 놓은 것이 ‘편수 자료’이다. 제1차 교육과정기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개정돼 발행됐다. 이 편수 자료집에는 로마자 표기법 및 외래에 표기법, 외국 지명 표기법, 한글 맞춤법, 인명 및 지명 표기 사례, 각 교과목별 또는 분야별 표준 용어 사례 등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은 국립국어원이 교육부와 협업해 감수 업무를 진행하고 맞춤법의 기준을 표준국어대사전 준거해 교과서를 개발하고 있지만, 이전에는 교과서를 개발할 때 표현·표기의 지침서 역할을 ‘편수 자료’가 수행했다. ◈ 목활자 제조 코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보 126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비롯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해인사 ‘팔만대장경’만 보더라도 전 세계적으로 뛰어난 목판 기술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금속활자가 들어오면서 목판 인쇄 분야가 좀 시들해지기는 했지만, 조선 후기까지도 목판 인쇄와 더불어 목활자 제작이 활발했다. 특히, 목활자는 목판 인쇄의 수정 작업에 많이 쓰이고, 또 개화기 때의 교과서를 인쇄하는 과정에서 연활자가 부족할 경우에 임시방편으로도 사용됐다. 우리나라 유명한 각자장에는 중요무형문화재 106호인 철재 오옥진 선생과 강원도 중요무형문화재 제16호인 소재 이창석 선생이 있다. 글자를 새기는 각자에는 반서각과 정서각이 있다. 반서각은 인쇄를 목적으로 글자 원본을 거꾸로 붙인 후 각을 해서 송연 먹을 묻혀 찍어 내는 것이고, 정서각은 주로 현판을 위한 각자법으로 글자를 똑바로 붙인 후에 끌과 망치로 새기는 것이다. 각자의 작업에는 세 가지 공정으로 나뉜다. 우선은 치목(治木)이라고 해서 쓰임새에 맞는 나무를 골라 정하고 건조해 알맞게 자르는 일이다. 주로 목판은 자작나무나 은행나무, 돌배나무, 산벚나무 등을 쓰고, 목활자는 재질이 연하면서도 오래 견딜 수 있고 먹물 흡수가 좋은 회양목(황양목)이 제격이나 박달나무나 돌배나무, 산벚나무, 자작나무 등을 사용한다. 또, 사찰과 정자의 현판은 변질이 적고 조직이 고른 피나무를 주로 사용한다. 다음 공정은 배자(配字)다. 치목한 나무 위에 글씨를 늘어놓는 일이다. 배자가 끝나면 다음 공정인 각자(刻字)를 진행한다. 전시돼 있는 것들은 목활자를 만들거나 인쇄할 때 필요한 여러 도구들이다. 밀대는 탁본할 때 종이를 문지르는 도구다. 좁쌀 방망이는 탁본할 때 먹물을 묻혀 두드리는 도구다. 고무 마치는 글자를 팔 때 서각용 칼을 치는 도구이며, 대나무 칼은 활자를 인쇄판에 심을 때 사용하는 도구다. 활자 집게는 활자를 인쇄판에 배열할 때 사용되는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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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 – 교과서전시관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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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 – 교과서전시관③
- [교육연합신문=김병선 기자] 미래엔교과서박물관(관장 김동래)의 주 전시관이라고 할 수 있는 <교과서전시관>은 모두 열두 개의 코너로 운영되고 있다. 한글 창제와 관련된 내용을 담은 <나랏말쌈관>, 교과서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교과서역사관>, 옛날 교실을 재현한 <추억의 교실>, 전문계 교과서를 소개하고 있는 <전문교과서관>, 특수학교에서 주로 사용되는 <특수교과서관>, 국어 교과서를 주요 소재로 기획·운영되고 있는 <국어교과서관>, 세계 여러 나라의 교과서를 볼 수 있는 <세계교과서관>, 북한의 교과서를 소개하고 있는 <북한교과서관>, 교과서 개발 과정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교과서개발관>, 첨단 미래 교육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미래교실관>, 각종 교육 관련 자료를 소개하고 있는 <교육유물관> 등이 있다. 이뿐만 아니라 목활자 제조 과정을 소개하는 코너도 한 편에 마련돼 있다. <교과서전시관>에서는 교과서와 관련된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관람과 체험을 통해 교과서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 첨단 기술과 장비를 통해 교실 수업이 이뤄질 ‘미래교실관’ <미래교실관>은 지금까지 서책형 교과서를 가지고 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수업을 진행해 왔던 모습에서 탈피해 미래 지향적으로 해석한 교실의 모습을 상상해 구성한 공간이다. 첨단 기술과 장비를 통해 교실 수업이 이뤄질 것이라는 미래 예측형 교실이다. 앞으로는 서책형 교과서보다는 디지털교과서가 교실을 지배할 것이며, 여러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실제 체험하는 것처럼 사실적인 교육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 수업은 지식의 전달뿐만 아니라 작은 사회로서 사회 구성원 간의 소통과 협업, 인간 존중의 바탕 위에서 이뤄진다. 디지털 매체라는 첨단 장비 위주의 외형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좀 더 본질적인 차원에서 고민하고 논의한 결과로 점점 진화된 미래교실로 재현될 것이다. 또, <미래교실관>에는 미래엔에서 미래 교육에 대비해 제작한 양질의 콘텐츠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전자 저작물은 교과용 도서, 즉 교과서와 교사용 지도서 외에 전자 또는 디지털 매체로 제작된 교육 자료를 의미한다. 교사용 지도서와 함께 교사에게 제공됐던 이 전자 저작물은 1990년대 중반 이후(제6차 교육과정)에 카세트테이프 형태로 처음 등장했다. 이후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CD, DVD 형태로 변화되다가 지금은 USB로 제작·제공되고 있다. 제6차 교육과정기에는 전자 저작물이 카세트테이프 형식으로 제작됐으며, 초등학교 ‘음악’ 및 ‘영어’ 교과목에 제공됐다. 제7차 교육과정기에는 초등학교 ‘말하기·듣기’ 교과서에 활용된 듣기 자료 카세트테이프와 ‘음악’과 ‘영어’, 통합 교과인 ‘즐거운 생활’에 전통 음악 CD 형태로 제공됐다. 또, 이전 교육과정에서 제공되지 않았던 특수학교용 CD가 처음으로 제작돼 제공됐다. 2007 개정 교육과정기에는 초등학교 ‘듣기·말하기’ 교과의 듣기 자료 CD와 수학, 과학, 음악, 영어 등의 교과서에 CD가 제공됐다. 또, 학생들에게는 e-교과서가 제공됐다. 특수학교의 경우에는 기본 교육과정, 직업 교과, 이료 교과에 각각 CD를 제작해 제공됐다. 2009 개정 교육과정기에는 초등학교 ‘국어’ 교과의 듣기 자료 DVD와 수학, 과학, 음악, 영어 등의 교과서에 CD가 제공됐다. 특수학교의 경우에는 초·중·고등학교 기본 교육과정, 직업 교과, 이료 교과에 각각 CD를 제작해 제공됐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초기에는 DVD 형태로 제작되다가 2020년에 이르러서는 USB 형태로 바꿔 제공됐다. 특수학교의 경우에도 일반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특수 교육과정의 초·중·고등학교 기본 교육과정, 직업 교과, 이료 교과에 각각 DVD를 제작되다가 USB로 바꿨다. ◈ 몇 차례의 개편 과정을 겪은 ‘북한교과서관’ 북한의 기본 학제는 정권 수립 후 몇 차례의 개편 과정을 겪어 왔다. 현행 학제는 소학교 5년, 중학교 6년(초급중학교 3년, 고급중학교 3년), 대학 3~6년으로 돼 있다. 학교 제도는 특수학교·일반학교·성인학교 등 세 가지 체계를 중심으로 해 서로 다른 학교교육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일반학교의 교육 체계는 취학 전 교육 단계, 초등교육 단계, 중등교육 단계, 고등교육 단계로 나눠 있다. 취학 전 교육 단계에 해당하는 탁아소는 일(日)·주(週)·월(月) 탁아소로 운영되고 있고, 유치원은 낮은 반(1년)과 높은 반(1년)으로 나눠 운영되며 그 가운데 높은 반은 12년제 의무교육(유치원 높은반, 소학교 5년, 초급중학교 3년, 고급중학교 3년)이 행해지는 첫 교육 단계가 된다. 이전의 북한 학제는 4-6-4(6)년제로 유치원 높은반 1년, 소학교(인민학교) 4년, 중학교 6년, 대학교 4~6년 등 11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해 왔다. 그러나 2012년 9월 25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6차 회의에서 ‘전반적 12년제 의무 교육’을 시행하는 법령의 발표를 통해 2013년부터 소학교는 5년, 중학교 6년 과정을 초급중학교 3년과 고급중학교 3년으로 분리해 운영하는 학제로 개편했다. 만 5세에 유치원 높은반을 수료하면 만 6세에 소학교에 진학하는데 소학교는 한국의 초등학교에 해당한다. 소학교 과정을 마치면 중학교에 진학해 중등 교육을 6년 동안 받게 된다. 초급중학교는 중학교, 고급중학교는 고등학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초등 과정은 소학교 재학 5년 동안 지도자의 어린 시절, 국어, 수학, 자연, 영어, 정보 기술 등 총 13개 과목을 교육하도록 편성돼 있으며, 영어와 정보 기술(컴퓨터) 교육은 2012년 학제 개편 이후 소학교 4학년부터 교육하고 있다. 중등 과정은 초급중학교와 고급중학교로 나뉜다. 초급중학교는 주당 수업 시간이 32시간이며 정규 수업 시간 이외에 과외 학습, 소년단 생활, 과외 체육 등으로 편성돼 있다. ‘김정은 혁명 활동’ 관련 교과목과 함께 ‘자연 과학’, ‘음악 무용’ 등의 통합 교과목, ‘기초 기술’, ‘정보 기술’ 교과목 등을 배운다. 고급중학교는 주당 수업 시간이 34시간이며 정규 수업 시간 이외에 과외 학습, 청년 동맹 생활, 과외 체육 등의 활동을 한다. ‘김정은 혁명 력사’, ‘물리’, ‘화학’, ‘생물’, ‘당정책’, ‘심리와 론리’, ‘한문’, ‘공업(농업)의 기초’, ‘군사 활동 초보’ 등의 교과목을 배운다. 고등 과정의 고등 교육과 특수 교육은 학교나 학부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학제를 채택하고 있다. 교원 대학과 전문대학은 3년제, 단과 대학과 종합 대학은 학부에 따라 4~6년제다. 사범 대학은 4년제로 운영된다. 김일성종합대학의 경우에 인문과학부는 4년, 사회과학부는 5년, 자연과학부는 6년제로 운영되고 있다. 소학교 국어 교과서와 남한의 국어 교과서를 비교하여 보면, 남한의 국어 교육이 실제적인 목적을 두고 표현하고 이해하는 언어활동을 강조해 창조적인 국어 사용 능력이 향상되게 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에 반해, 북한의 국어 교육은 사상 교육에 목적을 두고 내용을 더욱 철저하게 주입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언어 현상 및 국어 교육의 목적이 매우 달라졌지만 남북한의 언어는 ‘한글’이라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미래엔에서는 2006년 11월 30일에 8색 윤전 인쇄기를 기증했다. 이뿐만 아니라, 우수한 기술진이 방문해 기계 및 설비 일체를 설치했으며 기술 이전까지 완료했다. 이러한 기증과 기술 이전으로 인해 북한의 인쇄·출판 문화가 많이 발전됐을 것이다. ‘통일 초등 국어 교과서’는 통일 시대를 대비해 남북한의 초등학생들이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기르고, 이를 바탕으로 해 세계 시민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미래엔과 통일국어교육연구회가 함께 만든 교과서다. 2016년에 통일 국어 교과서 개발을 위한 기초 연구를 시작해 2017년에 이러한 연구 성과를 담은 ‘통일 국어 교과서 개발 기초 연구집’을 발간했다. 이후 2019년에 초등 저학년용을, 2020년에는 중학년용을, 2021년에는 고학년용을 각각 연구·개발했다. 초등 저학년(1~2학년)용으로 개발된 통일 국어 교과서는 ‘우리말 길’, ‘우리말 터’, ‘우리말 꽃’, ‘우리말 틀’의 교과서 4책과 지도서 격인 ‘교사용 학습 안내서’로 구성돼 있다. 초등 중학년(3~4학년)용으로 개발된 통일 국어 교과서는 ‘우리말 길’, ‘우리말 터’, ‘우리말 꽃’, ‘우리말 틀’의 연구서 4책으로 구성돼 있으며, 2~3개 샘플 단원으로 구성됐다. 초등 고학년(5~6학년)용으로 개발된 통일 국어 교과서도 중학년과 같이 연구서 4책으로 구성돼 있으며, 개발 완료 학술 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연구·개발 성과를 널리 알렸다. ‘우리말 길’ 국어 수업 진행을 위한 주요 학습서이며, ‘우리말 터’는 주요 학습서와 연계된 활동 및 놀이 교재다. ‘우리말 꽃’은 독본 및 읽기 교과서에 해당하며, ‘우리말 터’는 문법 교과서에 해당한다. ◈ 교육과정에 따라 편찬·발행되는 교과서와 지도서가 전시된 ‘교과서개발관’ 교과서는 ‘교과용 도서’의 한 종류로서, ‘교과용 도서’라 함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과 교수·학습을 하기 위해 교육과정에 따라 편찬·발행되는 학생용 교재인 교과서와 교사용 교재인 지도서를 말한다. ‘초·중등 교육법’ 제29조 ‘교과용 도서의 정의’에 의하면 “학교에서 국가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거나 교육부 장관이 검정하거나 인정한 교과용 도서를 사용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해 초·중등학교에서 교과용 도서, 즉 교과서를 사용하도록 돼 있다. 또, 이 교과용 도서에는 교과서나 지도서뿐만 아니라 서책·음반·영상 및 전자 저작물 등이 포함돼 있다. 교과용 도서는 발행 제도에 따라 국정, 검정, 인정 도서로 구분된다. 즉, 교과용 도서는 교육부가 저작권을 가진 국정 도서와 교육부장관의 검정을 받은 검정 도서로 나뉜다. 인정 도서는 국정 도서나 검정 도서가 없는 경우에 시·도 교육감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사용하는 교과용 도서를 말한다. 이들 3대 유형은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에 따라 제반 운용 과정이 이행된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면, 국정 도서는 교육부가 저작권을 가진 교과용 도서로 교과용 도서 편찬 계획에 따라 연구·개발 기관을 공모하거나 위탁하고, 교과용 도서 심의 절차를 거쳐 생산, 공급하는 국가 발행 체제의 도서다. 검정 도서는 교육부장관이 최초 사용 학년도 개시 1년 6월 이전에 공고한 교과목의 교과서를 대상으로 민간이 제출한 심사본을 일정한 기준 및 절차에 따라 심사한다. 이렇게 해 교과용 도서로서 사용이 적합하다고 인정된 도서를 합격본이라 하는데, 내용 중에서 수정 사항이 있으면 교육부 장관이 저작자 또는 발행자에게 수정을 명할 수 있다. 인정 도서는 국정 도서나 검정 도서가 없는 경우, 또는 이를 사용하기 곤란하거나 보충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사용하기 위해 시·도 교육감의 인정을 받은 교과용 도서를 말한다. 인정 도서는 교육감, 교육장, 학교의 장, 저작자(발행자)가 각각 저작·개발 및 출원을 할 수 있다. ◯ ‘실험본’과 ‘정본’ ‘실험본’과 ‘정본’ 발행 제도는 제3차 교육과정기 때 도입된 제도이다. ‘실험본’이란 정식 교과서(정본)가 발행되기 전에 전국의 지정 연구학교(실험학교)에 실험 적용한 교과서를 말한다. 연구학교의 적용 결과를 바탕으로 수정·보완해 좀 더 완벽한 교과서를 만들어 이듬해에 정식으로 전국의 학생들에게 공급해 배울 수 있도록 했다. 1년간의 현장 실험 및 수정·보완 절차를 밟음으로써 국정 교과서 발행의 신중을 기했다. ◯ ‘결재본’과 ‘결재 부본’ 교과서 발행사에서 교과서 수정·보완 작업이 완료되면 최종본을 두 부 만들어 교육부에 결재 요청 공문과 함께 제출하게 된다. 교육부에서는 이를 세밀하게 검토한 후에 내부 결재를 완료하고 한 부는 ‘결재본(또는 수정원본)’ 도장을 찍어 내부용으로 보관한다. 다른 한 부는 ‘결재 부본’ 도장을 찍어 발행사에 전달하는데, 발행사는 이 결재 부본과 동일하게 교과서를 인쇄해 학교 현장에 공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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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 – 교과서전시관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