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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재학의 교육칼럼] ‘곤이학지(困而學之)’의 청소년 교육을 강화하자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인류 역사에 빛나는 위대한 고전 『논어』는 호학(好學)의 성인이자 교육에 차별 없던 무류(無類)의 참스승인 공자에 얽힌 이야기다. 제자들이 스승과 직접 질의⋅응답 식으로 기술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시대가 변할수록 더욱 돋보이는 배움과 삶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 하듯이 한 번, 두 번… 횟수를 더해 읽을수록 곱씹는 새로움과 유익함, 슬기로운 지혜를 새롭게 터득할 수 있기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특히 자발적인 배움의 자세를 갖춘 청소년에게는 그 어느 공부보다 효과가 크다. 과학 영화의 진수인 <인터스텔라>에는 주인공 조셉이 딸 머피에게 웜홀(wormhole)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영특했던 딸 머피가 모스부호로 전달되는 ‘STAY’라는 메시지를 해독해 과거의 자신에게 전해주기를, 그래서 과거의 자신이 우주로 떠나지 않고 지구에 머물며 딸과 영영 이별하지 않기를 원했다. 따라서 절박한 심정으로 우주의 시간과 공간의 벽에 난 구멍을 찾아 그 웜홀을 통해 과거에 있는 딸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필자는 이 영화에서 매우 유의미한 교육적 교훈을 찾는다. 그것은 웜홀로 연출된 공간이 바로 많은 책이 꽂힌 책장이라는 점이다. 책에는 시공간을 초월해 머물렀던 누군가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특히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보고(寶庫)인 고전을 읽는 것은 현재의 내가 과거의 현명한 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가성비가 뛰어난 시간 여행과 같다. 한창 배움의 터전에 머물고 있는 청소년들이 ‘배움(學)’에 관련한 메시지를 쉽게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웜홀이 바로 『논어』라 할 수 있다.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이 배우고 가르치는 기쁨과 즐거움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것은 스승 공자가 후학들에게 전하는 숭고한 가치를 지닌 메시지를 통해서다. 『논어』 ‘계씨편’ 9장에는 “태어나면서 아는 자가 최상(最上)이고, 배워서 아는 자가 그 다음이고, 어려움을 겪은 다음에 배우는 자가 또 그 다음이니, 어려움을 겪고도 배우지 않으면 사람은 최하(最下)가 되는 것이다(生而知之者, 上也. 學而知之者, 次也. 困而學之 又其次也. 困而不學 民斯爲下矣)”라고 했다. 얼핏 보면 인간의 수준을 네 단계로 나눠 타고난 천재와 우둔한 바보의 등급과 위계를 구분 짓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스승 공자의 가르침을 제대로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자가 말한 천부적인 위대한 스승 격인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 다음으로 교육적으로 높이 평가한 ‘학이지지자(學而知之者)’는 공부를 통해 진정한 앎의 세계에 도달한 사람들로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과 식견이 뛰어나며 인격적으로도 아주 성숙한 경지에 도달한 이들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많이 배웠고 아는 것이 많아도 인격은 갖추지 못한 채, 도덕적인 행동과는 괴리된 채, 배워서 남을 지배하려거나 오직 출세와 성공의 가치만을 쫓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이는 진정한 공부와는 거리가 멀다. 또한 곤경에 처해도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고 실패를 맛보면 그동안의 배움을 포기하는 사람, 많이 배우기는 했으나 어려운 상황을 핑계로 배운 것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 즉 ‘곤이불학(困而不學)’하는 사람들도 경계하고 멀리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청소년 교육에 ‘곤이학지(困而學之)’ 즉,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배워나가는 용기와 도전의 기개를 강조하고자 한다. 배움의 과정에서 실패와 실수를 해도 포기하지 않고 삶의 지혜들을 하나씩 깨닫고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하며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는 청춘의 기개를 높이 평가하고자 한다. 최근 언론을 통해 ‘수능 No’를 외치며 학벌 타파의 선봉에 선 고등학생들의 사연이 매년 보도되고 있다. 우수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대학 진학을 미루고 지역인재 공무원에 도전하여 일찍부터 전문적인 경험을 쌓아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겠다는 포부와 의지는 가히 ‘곤이학지’의 모델이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 청소년들에게 무한 지지와 응원을 보내 세상에서의 삶이 아무리 곤궁하다 하더라도 이를 극복하는 배움이야말로 진정한 승자임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이 시대 교육은 바로 여기에 보다 관심이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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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28
  • [김홍제의 목요칼럼] 유해 가습기 살균제와 인간의 가치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당신이 유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이라고 상상해 보라. 어린이, 노약자, 환자를 위해 가습기를 더 깨끗하게 사용하기 위해 유명 회사의 살균제를 사서 사용했다. 그런데 그 살균제가 사실은 독약 성분을 가지고 있어서 가족이 죽거나 평생을 후유증으로 고생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죄책감이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종합 포털에 따르면 2023년 12월 31일 기준 지원 대상 피해자는 5,691명이다. 이 가운데 사망자는 1,262명이다. 1심에서 무죄를 받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 등 가습기살균제 제조, 판매업체 관계자들이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2011년에 시작된 지 13년 만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제품을 출시하기 전 동물을 상대로 한 안전성 검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가습기 살균제를 유통하여 사실상 전 국민을 상대로 만성 흡입독성시험을 행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1심 재판부는 가습기메이트 주원료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 ·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과 폐질환의 연관성을 입증할 연구 결과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회사가 1994년 독성 시험을 해야 한다는 내부의 의견을 무시하고 CMIT, MIT 성분 제품을 처음으로 출시했고 다음 해 서울대 수의과대학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어 실험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음에도 계속 판매를 했다고 했다. 여기에 심각한 윤리 문제가 있다. 이러한 회사 결정은 인간의 가치보다 경제적 이익을 우선하는 증표이다. 인공지능 분야는 예외일까? 자율주행 중인 차량을 무단 횡단하는 다수의 사람이 가로막았을 경우 자동차 회사는 어떤 프로그램으로 자율자동차를 작동하게 할 것인가. 이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핸들을 꺾으면 운전자가 확실히 사망하게 된다. 하지만 자율주행 차량은 상품이기 때문에 타인을 살리기 위해 나를 죽이는 상품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사회가 새로운 국면으로 발전하면서 윤리 문제는 복잡해지고 있다. 재난의 크기도 커지고 양상도 다양해지고 있다. 지도자를 키우는 기관에서는 매년 실질적이고 토의중심의 윤리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 반드시 의무 교육과정에 넣어야 한다. 선진국이 지도자의 윤리를 강화하는 이유는 인간의 가치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세계는 로봇과 인공지능과 자동화, 거대화, 편리주의, 사물인터넷으로 가고 있다. 인간 존재가 점차 주체가 아닌 객체로 물러날 위험이 보인다. 소수의 생산자와 다수의 소비자 사이에서 인공지능은 소수 생산자의 이익을 대변할 것이다. 소비자는 주기적으로 국가와 기업과 시스템을 감시하고 시정사항을 요구해야 한다. 국가는 소비자 감시 체제를 제공해야 한다. 인공지능과 로봇은 회사 이익을 위해 만들어 진다. 하지만 돈을 지불하고 활용하는 대상은 인간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안전이나 가치보다 이익을 추구하는 모델이라면 단호히 거부하고 감시해야 한다. 교육은 인간의 가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 인간의 가치보다 경제적 이익을 우선하는 인공지능 적용은 인간을 서서히 죽이는 유해 살균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학생교육문화원 예술진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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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25
  • [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시작점을 향한 탐구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이병철 삼성전자 초대회장의 미꾸라지와 메기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경제적 이익 창출에 도움을 입었겠지만, 살면서 만나는 스트레스, 고난, 어려움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닌 것임을 알게 해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살면서 만나는 지속적인 어려움, 문제, 고난은 필요악이다. 이겨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는 스트레스와 어려움은 염증처럼 마음에 남아 곯기 마련이다. 어느 순간이 되면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무서운 병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마음이 건강한 가장은 결코 망가亡家를 허락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천문학자였던 故칼 세이건 Carl Sagan(1934-1996) 박사는 '지구는 사랑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특별한 사건이 없는 한 우리에게 마음의 고요를 허락하는 곳'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사랑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별, 마음의 고요를 허락하는 위대한 별에서 마음의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은 고무적인 데다 자상하기까지 한 칼 세이건 박사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마음의 병은 치료가 중요하다. 새벽산책, 늦은 밤 서재에서의 묵상, 간헐적 단식, 혼자 걷기 등은 내가 사랑하는 습관들이다. 덕분에 우울증 테스트에서 0점이 나올 정도로 나의 정신은 건강하다. 전문가의 소견에 의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라고 한다. 이 모든 습관에 앞서 글쓰기가 나의 가장 소중한 습관이라고 덧붙여 이야기하고 싶다. 종교는 없으나, 글쓰기가 소명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미분과 적분이 천지가 창조되던 어느 시점부터 있던 영원불멸의 진리가 아니라 고집불통에 비사교적인 성격 때문에 대인관계도 원만하지 못한 어느 천재의 사색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뉴턴 Isaac Newton(1643-1727)은 런던 대역병이 유행하던 시기에 고향에서 미분과 적분을 발명했다. 지독한 경쟁심과 탐구력을 바탕으로 한 생각의 결과를 책(프린키피아 Principia)으로 엮었다. 투퀴디데스는 그리스와 펠로폰네소스 반도 연합군의 27년에 걸친 전쟁기간 동안 전쟁기록을 남겼고, 이는 출간 즉시 고전이 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되었다. 그들의 글은 그들의 천재성과 리더십, 사리를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의 증거가 되었고, 인류 역사에 큰 영향력을 미친 고전이 되었다. 우리의 글도 그러할 수 있다. 글쓰기가 단순히 일기나 에세이 쓰기, SNS 홍보용으로 국한될 필요도 없으며, 우리가 쓰는 글이 누군가에게 소중한 영향력을 미치지 않으리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능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사람은 각기 다른 경험을 갖고 산다. 대부분 글의 소재가 경험과 깨달음의 집약체라는 점에서 나와 당신의 글이 훌륭한 보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 전준우 ◇ 작가, 강연가, 책쓰기컨설턴트 ◇ 前국제대안고등학교 영어교사 ◇ [한국자살방지운동본부] ◇ [한국청소년심리상담센터] 채널운영자 ◇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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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24
  • [육우균의 周易산책] 한마음으로 모이는 힘-택지췌의 교훈과 공동체의 힘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는 종종 어려운 상황을 겪을 때 협력과 팀워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특히 4차 산업시대는 창조성과 협력성이 강조된다. 택지췌괘는 협력과 공동의 노력을 통해 번영을 이룰 수 있는 길임을 상기시킨다. 「대상전」에 택지췌괘를 보면 ‘연못이 땅 위에 있는 모습은 물이 모여 있는 모습이다. 모여들게 되면 항상 쟁송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자신의 통치의 질서를 도모한다. 우선 병기를 점검하고 소제하고 수리한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불행한 사태들에 대비한다.’고 되어 있다. ‘택지췌(澤地萃)’의 ‘췌(萃)’는 ‘모이다’, ‘모으다’, ‘가려 뽑아 모으다’란 뜻이다. 만물이 모여들어 풍성해지고 인심이 모여들어 한마음이 되면 모든 사회 현상이 여유롭고 풍족해진다. 택지췌는 연못에 물이 모이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연못은 겸허한 태도로 스스로 몸을 낮은 곳에 두고 있다. 그리하여 모든 계곡으로부터 오는 물길이 자연스럽게 즐겁게 노래하면서 모여들게 한다. 못은 무한한 포용성과 아량을 가졌다. 큰 개천물도 가냘픈 시냇물도 구분하지 않는다. 맑은 물도 흐린 물도 차별하지 아니한다. 자기를 향하여 찾아드는 모든 물은 이것을 반가이 그 품에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그 넓고 깊은 품 안에서 맑았던 물도 흐렸던 물도 그리고 가냘펐던 것도 거대했던 것도 마침내는 혼연일체가 되어 커다란 하나의 맑은 못물로 만들어 놓는다. 작위하지 않는다. 선(善)의 분위기 속에서 저절로 정화된다. 이것이야말로 노자가 말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道)라는 것이 아닐까. 노자는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능히 만물을 좋게 하지만 다투지 아니하며, 여러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위치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까운 것이다.”라고 말했다. 택지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시가 있다. 바로 이성부의 「벼」라는 시다. 감상해보자.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워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 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 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한 그루 한 그루의 벼는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릴 만큼 약한 존재이지만 그들이 서로 어우러져 몸을 기대고 살아가기 때문에 강인한 힘을 가지는 것처럼, 민중은 서로를 돌보는 마음과 서로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다. 민중들은 벼들이 서로 기대어 살 듯이 서로 어우러져 기대어 산다. 외적인 고난과 어려움이 심할수록 민중들은 스스로 자숙하고 이웃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공동체적 유대를 통해 더욱 공고해진 민중들의 모습을 보라. 그들은 죄가 없으면서도 마치 죄인처럼 짓눌려 살아온 사람들이기도 하다. 민중들은 달관의 자세를 지닌 사람들이다. 자연의 질서에 순응해 자신의 감정을 억제할 줄도 안다. 그리고 올바른 역사를 이루기 위한 희생과 헌신의 정열을 지니고 있다. 또한 민중들은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역사의 주체로 일어서고자 하는 사람들이며 남을 위해 혹은 올바른 역사를 위해 사랑을 바칠 줄도 아는 사람들이다. 우리 민족은 수천 년간 ‘벼’를 재배해 왔다. 즉 벼는 우리와 오랫동안 지내왔으며, 풀과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적 삶의 뿌리이자 역사의 저력을 상징하는 데 적합하다. 시적 화자는 벼의 서로 어우러져 기대는 모습으로부터 공동체적 유대와 신뢰감을, 서로의 몸을 묶고 떠나는 모습으로부터 민중의 저력과 희생의 모습을, 서러움을 달래고 노여움을 삭이는 모습으로부터 민중의 현명함과 지혜로움을 발견하고 있다. 한 포기의 벼와 들판을 가득 메운 벼들을 보라. 모이면 강해지고 풍족해진다. 택지췌괘는 동지와 협력자를 얻고, 발전과 번영을 이룩할 수 있는 행운의 징조를 보이는 괘다. 이 괘의 모양을 보면 아래로 세 개의 음효가 연속하여 있고 맨 위에도 음효가 있는 사이에 두 개의 양효가 있어서 마치 잉어가 폭포를 치달려 올라가서 이제 막 마지막 코스의 문턱에 도달한 상태와 같다. 그래서 이 괘를 잉어가 용문에 오르는 기상이라고 말한다. 이 괘는 매우 운세가 강력하고, 또 모인다는 뜻이므로 동지와 협력자를 얻을 수 있다. 항상 겸허한 마음과 정성되고 정직한 태도와 유순하고 관대하게 행동하라. 그리하면 모든 일은 저절로 순조롭게 성취될 것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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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22
  • [전재학의 교육칼럼]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할 실력주의에 관하여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근래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빈부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에서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계층 간의 갈등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른바 흙수저 논란이 그 대표적 증거다. 매년 고등학교 졸업자 수는 줄어드는데 대입 경쟁은 약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청소년의 자살률은 매년 최상위권을 달리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뿐이랴. 역으로 행복지수는 늘 최하위 수준에서 맴돈다. 역대 정부가 학벌타파를 위한 능력주의 사회구현을 내세워도 이는 언어의 희롱에 불과하며 어떤 정책 보완도 미미하다. 이러한 문제의 뿌리는 무엇일까? 교육학자 박남기 교수는 우리사회가 크게 착각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실력(능력+노력)주의 사회가 구현되면 학교교육이 정상화되고, 대입경쟁도 완화되며, 우리가 꿈꾸는 보다 정의롭고 바람직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라. 오히려 그 반대로 가고 있지 않은가? 실력주의가 극으로 치달은 결과 교육에도 신자유주의 물결의 부작용과 사회적으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격차가 큰 노동시장의 이중화 및 분단 구조의 양극화가 우려의 수준이지 않은가. 영국의 사회학자인 마이클 영(Michael Young 1915~2002)은 지금 우리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과도한 경쟁, 교육전쟁, 학벌, 사회 양극화 등은 실력주의(meritocracy)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아 나타난 것이 아니라 역으로 과도한 실력주의가 가져온 폐단이라고 말했다. 실력에 따른 보상의 차이가 점점 더 커지는 실력주의가 보완되지 않는 한 실력 판단의 잣대인 학력은 또 다른 이름의 학력을 향한 경쟁으로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객관적인 시험을 통해 공채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직장이 SKY를 중심으로 졸업한 대학과 학과를 실력의 잣대로 삼는다. 그러니 해당 대학과 학과를 향한 치열한 경쟁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이는 학교가 경쟁을 조장한 것이 아니라 학교가 실력주의 사회의 극심한 경쟁의 장(場)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녀교육에 목숨을 거는 학부모의 입장도 무리는 아니다. 문제는 노동시장의 분단화 및 양극화 실상을 극복하지 않는 한 교육을 통한 경쟁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전통적인 실력주의를 타파해야 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새로운 실력주의로 나아가야한다. 어떻게 말인가? 이는 실력과 대학 및 직업 사이의 연결고리를 유지하되 직업과 보상의 함수 관계를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직업 간 사회적 분배의 차이를 줄이는 제도적⋅사회 문화적 보완장치가 마련되어 근로의욕을 고취하는 복지사회 정립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마이스터고 학력으로 전문가로 인정받고 행복하게 사는 독일이 그 대표적 사례다. 박 교수가 주장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며 이보다 앞서 진보학자 김누리 교수가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누구나 어느 정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보장된다면 부모들은 자녀를 무작정 입시경쟁에 몰아넣지 않을 것이고 학생들도 자유롭게 자신의 꿈과 적성을 찾아 원하는 공부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친구가 경쟁자가 아닌 더불어 사는 사회의 재화를 창출하는 동반자가 될 것이며 성공과 출세 지향의 교육 가치 또한 변화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실력주의 사회로 가는 첫 걸음이라 믿는다. 이제 학교는 사회구성원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교육개혁에 나서야 한다. 여기엔 상생(win-win)을 추구하는 교육이 우선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노력이 아닌 신에게서 받은 능력에 상응하는 부분은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또한 서로의 노력과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아가 희생과 봉사 그리고 나눔과 배려의 정신을 몸과 마음에 익힌 정치인을 육성하는 정치교육을 학교교육에서부터 실시해야 한다. 더불어 교육당국은 학교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고 지원하며 각종 교육개혁에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진정한 민주사회의 기반이듯 학교가 올바른 실력주의를 통해 민주시민을 육성하는 보루여야 한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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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20
  • [김홍제의 목요칼럼] 개 식용 금지와 생명의 무게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2027년부터 개고기가 불법이 된다.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 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이 재석 210명 중 찬성 208명으로 통과되었다. 미국 시엔엔(CNN)은 이 법안이 한국의 분열된 정치 지형에서 드물게 초당적 합의를 얻었다고 보도했다. 대한육견협회 회장은 국민이 먹는 것을 금지해서 성공한 역사는 없다며 반발했다. 같은 날 참사 발생 후 437일 만에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도 통과되었다. 여당은 표결에 불참했다. 정부는 반려동물 연관산업을 육성해 2027년까지 국내 시장 규모를 15조 원까지 키우기로 했다. 반려동물 문화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동물장묘업체 화장 시설을 갖춘 업체는 60개가 넘어서 사람 화장 시설 수 62개와 비슷한 수준이다. 반려동물용 유모차 판매 비중은 가파르게 상승하지만 유아용 유모차는 2022년 64%에서 2023년 43%로 떨어지고 있다. 출생아 수가 줄어 2024 의무취학 대상자는 최초로 40만 명 선이 무너지고 있다. 2026년 초등학생 입학생 수는 20만 명대로 내려올 수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학교도 무너지고 있다. 개는 약 4만 년 전부터 인류가 길들인 가축이다. 서유기에서 삼장법사가 저팔계의 별명을 지을 때 8가지 음식을 금하고 있다고 해 팔계(八戒)라고 지었는데 8가지 음식 중 하나가 개고기였다. 개는 인간에게 가장 오랜 친구 같은 동물이다. 개를 먹으면 혐오스럽고 돼지를 먹으면 건전하다는 것은 문화적 관점이다. 모든 육식에는 살생과 잔인성이 존재한다. ‘슬견설(蝨犬說)’은 고려시대 이규보가 쓴 글이다. 개를 몽둥이로 때려잡는 광경을 보고 참혹하고 마음이 아파 다시는 개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손님이 말했다. 이규보는 "나는 어떤 사람이 불이 이글거리는 화로에 이를 잡아서 불 속에 넣어 태워 죽이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파 이를 잡지 않기로 맹세했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손님은 자신을 놀리느냐며 대들었다. 이규보는 미물부터 사람까지 다들 살고자 하는 마음은 같으며 어찌 큰 것만 죽기를 싫어하고 작은 것들은 그렇지 않겠느냐고 한다.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본질을 보는 안목을 말하고 있다. 높은 직위 사람의 생명과 서민 노동자의 생명은 현실에서 같은 무게일까. 우리나라는 ‘자살률 1위 국가’이다.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가 OECD 평균에 비해 두 배나 높아 38개국 중 1위이다. 우리나라 국민은 39분마다 1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2021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연간 자살로 사망하는 사람은 1만 3,352명이다. 한국은 산재공화국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산재 승인 통계 기준으로 2021년 사고사망자는 828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4위다. 2022년 중대 재해 사망자는 644명이다. 동물에 대한 새로운 복지나 관점의 전환은 필요하다. 다만 반려동물보다도 못한 인간이라는 자괴감이 없도록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행복에도 한층 노력해야 한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하는 인구는 늘어나는데 입양시설의 아이 입양이 늘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생명의 무게에 대소가 없지만 인간 생명 무게가 동물 복지보다 낮아서 되겠는가.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학생교육문화원 예술진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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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18
  • [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올바르지 않은, 올바른 선택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메데이아는 콜키스 왕 아이에테스의 딸이자 이아손의 아내다. 남편 이아손을 배반한 펠리아스를 죽이고 추방되어 코린도스로 옮겨와 살지만, 이민족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다. 그런 메데이아에게 싫증을 느낀 이아손이 코린토스의 왕 크레온의 딸과 결혼하기로 하자 크레온과 크레온의 딸을 죽이고 자식들 역시 자신의 손으로 죽인다. 이아손이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진 것을 확인한 메데이아는 이아손을 향해 조롱하며 용 수레를 타고 아테나이로 도망간다. 메데이아의 대략적인 줄거리다. 여성의 지위가 남성에 비해 한없이 연약하고 초라할 수밖에 없었던 고대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는 그야말로 보잘것없었을 것이다. 어린아이와 여성에게는 국가행사 참여는 물론 투표권도 허락되지 않았고, 남편이 여성의 존엄 자체를 짓밟는 발언과 행동도 서슴지 않았던 시대였다. 당신들 여자들은 어떤가 하면, 결혼 생활만 원만하면 모든 걸 다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결혼 생활이 여의치 않으면 가장 훌륭하고 가장 아름다운 것조차 가장 적대적인 것으로 여기지. 사람들이 다른 방법으로 자식을 낳고, 여자 같은 것은 없어져 버렸으면 좋으련만! 그러면 인간들에게도 불행이란 것이 없어질 텐데! -<메데이아>570-575, 이아손의 독백 남편인 이아손의 바람직하지 않은 선택, 즉 왕족의 피를 이어받은 공주와의 결혼을 두고 메데이아는 이아손의 어리석음을 지적하지만, 이아손은 공주와의 결합이 아내의 행복과 가정의 평화가 아닌 가문의 영광과 영화를 위한 선택임을 이야기한다. 당신을 구하고 자녀들에게 왕족의 피를 받은 형제자매를 낳아 주어 우리 집안의 울이 되게 하려는 것이란 말이오. -<메데이아>595-597, 이아손의 대답 남편에게 아내는 가정의 수호자이며 영육의 동반자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삶의 동반자나 자녀의 선한 인도자로 생각하기보다는, 오직 집안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 가정에 충실해야 하는 순종적인 여인 정도로 생각하는 가장의 경우를 많이 본다. 언젠가 모임에서 페미니즘(혹은 페미니스트)에 대한 토론을 경험한 적이 있다. 모임의 인도자는 페미니즘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옹호하는 입장이었고, 페미니즘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또다른 한 분은 여성이었다. 이야기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잘 진행되었는데, 대화를 나누던 중에 약간의 오해가 발생했다. 그러자 금세 냉랭한 기운이 맴돌았고, 스스럼없는 대화에서 약간의 불협화음을 띠게 되는 경험을 했다. 다행히 지적 능력이 뛰어난 분들이었기에 곧 자신들의 실수를 언급하며 서로에게 양해를 구했고 이전과 같은 토론이 진행되었지만,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상당히 민감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여지는 주제임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나 역시 여성의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생활과 성장을 위한 페미니즘 운동 그 자체는 적극 지지하고 찬성하는 바이지만, 일각에서는 레디컬 페미니즘 radical feminism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퇴행성 세력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기에 성별을 무론하고 어느 한쪽의 일반적인 성장과 성취를 두둔하기란 어렵다. 다만 작품 속에서 메데이아가 보여주는 사고의 흐름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영웅적인 요소를 보인다는 점에서 여성이 갖추어야 할 남성적인 면모를 볼 수 있는 반면, 일차원적인 생각과 사고의 흐름을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마침내 비극으로 마주하는 모습에서 광기와 잔악성을 갖춘 어리석은 인간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아! 어떡하지? 애들의 반짝이는 눈을 보니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아요, 여인들이여. 차마 못하겠어. 지금까지의 계획은 사라져 버려라! 나는 내 자식들을 이 나라에서 데리고 나가겠어. 왜 애들의 불행으로 애들 아버지에게 고통을 주려다가 나 스스로 두 배의 고통을 당하는 거야? 그건 안 돼! 그런 계획들은 사라져 버려라! 내가 뭐 잘못된 것 아니야? 원수들을 응징하지 않고 내버려 둠으로써 웃음거리가 되겠다고? 해치워야지! 부드러운 말에 마음이 솔깃해지다니 나야말로 얼마나 비겁한가! 얘들아, 집안으로 들어가거라! -<메데이아>1042-1053, 메데이아의 독백 메데이아는 이아손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서(메데이아 1399) 자식들을 죽였으며, 아이들을 죽인 것은 아버지의 악덕과 교만, 그리고 새 장가로 말미암았다(메데이아 1363-1366)고 이야기한다. 메데이아는 자식으로 인해 겪는 고통이 신들로부터 비롯된 운명과 같은 것이며, 그렇기에 자신의 손으로 자식들을 죽이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메데이아 1105-1115)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일차원적인 생각의 결과다. 자식은 하늘의 선물이며, 가정에 따사로운 빛을 선사하는 귀중한 보물이기도 하다. 자식을 죽이는 것은 저주이며, 분명히 잘못된 선택이다. 자신의 선택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메데이아의 분노는 남성에게 억압받는 여성들의 마음에 숨어 있는 영웅의 심리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 내릴 수 있지만, 그 행위 자체가 결코 올바른 선택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오오, 제우스에게서 태어난 빛이여, 그녀를 막고 저지하고 이 집에서 내쫓아 주소서! 그녀는 살의에 찬 악령들에게 쫓기는 가련한 복수의 여신이에요. -<메데이아>1258-1260, 코로스 좌 제 혈육에게 저지르는 범행은 지상의 인간들에게 가혹한 벌을 가져다주는 법. 제 혈육을 살해한 자들에게 걸맞은 재앙이 신들에 의해 그들의 집에 떨어진다네. -<메데이아>1267-1270, 코로스 우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페미니즘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종속적 존재, 조건적 평등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여성은 남성들에 비해 일반적으로 과소평가받아온 것이 사실이며, 작품 속에도 그러한 평가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듯하다. 그러나 남성 우월주의에 대한 항거, 복수를 위한 비이성적인 선택을 체면, 혹은 남성에 대한 분노로 돌리려는 인물 정도로 메데이아를 평가한다면 곤란할 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이며, 다양한 선택 속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오랫동안 저울질하는 존재(그 저울질이 자신에 선택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할 듯하다. 결국 모든 인간은 메데이아처럼 올바른 선택을 위하여 올바르지 않은 선택을 습관적으로 하는 존재이니까 말이다. ▣ 전준우 ◇ 작가, 강연가, 책쓰기컨설턴트 ◇ 前국제대안고등학교 영어교사 ◇ [한국자살방지운동본부] ◇ [한국청소년심리상담센터] 채널운영자 ◇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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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16
  • [육우균의 周易산책] 우물-공동체 정신과 인간 삶의 근원(수풍정)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물은 많은 면에서 고요하고 정적인 존재처럼 보이지만, 그 심오한 의미와 상징성은 우리의 삶과 공동체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전달한다. 「대상전」에 수풍정괘를 보면 ‘나무 위에 물이 있는 모습이다. 이때 풍은 나무를 가리킨다. 나무가 물 밑으로 깊게 들어가 물 위로 나온다는 것은 우물을 긷는 모습을 말한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백성들을 위하여 근로하며, 또 백성들로 하여금 서로를 도울 것을 권면한다.’고 되어 있다. ‘수풍정(水風井)’의 ‘정(井)’은 ‘우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우물은 원형이고, 중국의 우물은 사각형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이는 명백하다. 만주의 고조선, 고구려, 발해 영역의 옛 우물들은 모두 원형으로 남아 있다. 중국의 우물이 사각인 것은 바로 이 ‘우물정(井)’의 모양에서 출발한다. 사방 1리의 밭(田)을 9등분하여 주변의 8개를 사전(私田)으로 하고, 가운데 하나를 공전(公田)과 택지로 사용했는데, 그 중앙에는 반드시 우물이 있어, 공동으로 사용했다. 우물은 문명의 센터다.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생명의 근원을 나누어 준다. 그리고 끊임없이 퍼내어도 샘물이 솟아난다는 새로움의 이미지가 우물에 겯들여져 있다. 우물은 생명의 젖줄이다. 우물은 인간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선물이다. 사람은 물을 마시지 않고는 생명을 유지하지 못한다. 그 물을 공급하여 주는 것이 우물이다. 인류의 생활은 물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원시인들은 사냥으로, 방목으로, 어로로, 그들의 유랑 생활을 이어가는 동안 항상 물 있는 곳을 찾아다녔을 것이다. 물 있는 곳에 생활의 근거가 되어 정착했을 것이다. 우물은 자아의 근원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윤동주의 「자화상」을 보자.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리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자화상은 원래 화가가 스스로 자기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뜻하는 말이다. 화가들이 흔히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듯이, 윤동주는 자신의 삶에 대해 반성하면서 시에 이런 제목을 붙인 것일 터다. 이 시에서 우물은 거울과 똑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시적 화자 자신의 근원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시인은 그 우물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신에 대한 사랑과 부끄러움으로 인한 미움 사이에서 계속 갈등하고 있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이란 결벽이라고까지 할 만한 시인의 양심과 그 양심을 지키며 살기에는 너무도 어려웠던 일제 강점하의 암울한 현실로 말미암은 것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우물은 공동체 정신이다. 우물을 중심으로 자연 발생적인 부락이 구성되고 공동 생활이 시작되었다. 인류의 사회 생활도, 문화도, 역사도 우물과 더불어 시작되고 우물과 더불어 살아왔다. 그 유구한 세월을 우물은 인류의 목을 축여 주고 마음을 적셔 주고, 정서를 길러 주고 생명을 키워 주었던 것이다. 우물은 끊임없이 자기 갱신을 도모하는 창조의 상징이다. 우물은 언제나 맑고 시원한 물을 가득 담고 있어서 불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다. 퍼서 쓰면 쓸수록 새로운 맑은 물이 고이는 것이다. 언제나 누구나 자유로이 마실 수 있는 개방성을 갖추었다. 그러나 우물은 반드시 두레박이 있어야 물을 퍼 올려 마실 수 있다. 수풍정괘는 의욕과 노력이 있는 자에게는 대성을 약속하는 행운의 괘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흉운의 괘인 것이다. 행운이냐 흉운이냐는 오직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고, 그것을 실천하느냐의 차이로 결정된다. 그래서 정이천은 「대상전」에서 ‘로민권상’이라 했다. 로민(勞民)은 우물의 쓰임을 본받는 것이고, 권상(勸相)은 우물의 베풂을 본받는 것이다. 정(井)은 우물, 우물의 두레박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형상이다. 가득한 맑은 물도 두레박이 없으면 퍼 올릴 수 없다. 두레박이 있어도 퍼 올리려는 의욕과 노력 없이는 될 수 없다. 우물은 사람의 일상생활에 없을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이것을 퍼올려려는 의욕과 노력을 가지라. 우물은 퍼낼수록 새로운 물이 솟아오르는 것, 자신만의 목마름을 풀어주려 하지 않고 남에게도 봉사해야 한다는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남의 위에 있는 사람은 부하의 노고를 위로하고 그 목마름을 풀어줄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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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15
  • [김홍제의 목요칼럼] 부끄러움을 아는 교육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는 소설가 박완서(1931-2011)가 1970년대를 배경으로 쓴 단편소설 제목이다. 종로 학원가에서 가이드가 이곳에서는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일본인 단체 관광객에게 일본말로 소근거린다. 중년여성 화자인 나는 일본어를 알아듣고 모처럼 찾아온 ‘부끄러움의 통증’과 그것을 만인이 공유하고 싶은 간절한 심경을 말한다. “처음엔 나는 왜 내가 그 말뜻을 알아들었을까 하고 무척 미안하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몸이 더워 오면서 어떤 느낌이 왔다. 아 그것은 부끄러움이었다. 그 느낌은 고통스럽게 왔다. 나는 마치 내 내부에 불이 켜진 듯이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나는 각종 학원의 아크릴 간판의 밀림 사이에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깃발을 펄러덩펄러덩 훨훨 휘날리고 싶다. 아니, 굳이 깃발이 아니라도 좋다. 조그만 손수건이라도 팔랑팔랑 날려야 할 것 같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고. 아아, 꼭 그래야 할 것 같다. 모처럼 돌아온 내 부끄러움이 나만의 것이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것이 소설의 ‘나’뿐만은 아니다. 후안무치, 적반하장, 견리망의. 정작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이 지도층이라면 더욱 서글프다. 맹자가 성선설의 싹에 해당하는 4단(端) 중에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밝힌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맹자는 ‘염치를 모르면 인간이 아니다’라고까지 말한다. ‘유교경(遺敎經)’에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금수와 다를 바가 없다’고 했다. 부끄러움은 내적 두려움이고 양심의 발로이다. 창피함은 외적 두려움이다. 부끄러움은 자신에게 부끄러운 것이고 창피한 것은 타인에게 부끄러운 것이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면 세상은 동물의 왕국이 된다. 야만의 시대에는 저항하는 사람을 억압하고 없는 죄를 만들어 가둔다. 검투사처럼 상대방을 죽여야 자신이 산다고 생각한다.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는 케스토스 히마스(Kestos Himas)라는 마법의 허리띠로 어떤 남자라도 유혹할 수 있었다. 그 허리띠는 부끄러움이다. 부끄러움은 매력이고 아름다움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인을 믿고 나라를 맡길 수 있는가. 지식이 부족해서 사회가 불안한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되는 일은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중요한 일이다. 한동안 인간답다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해본 기억이 있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인간다움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전에는 부모들이 부끄러움을 가르쳤다. 이제 어디서도 부끄러움을 가르치지 않는다. ‘모처럼 찾아온 부끄러움이 나만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은 교육자들이 되새겨야 할 인간교육의 사명이다. 사람다운 사람을 키우는 것이 교육이라면 모름지기 양심과 연민과 공감을 깨워야 한다. 잠들어 있는 부끄러움을 깨워야 한다. 부끄러움은 모두에게 있다. 교육이 할 일은 그것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학생교육문화원 예술진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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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11
  • [육우균의 周易산책] 기제는 미제로 가는 노정이다(수화기제)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수화기제괘는 64괘 중 가장 음양의 위치가 바르고 서로 호응하는 상태를 갖춘 이상적인 괘다. 기제(旣濟)는 ‘이미 성취하였다’는 뜻이다. 성취한 것을 그 상태로 유지하는데 힘쓰고 있는 시기를 표현한다. 모든 것이 흐뭇하고 만족한 상태에 있다. 이러한 가득찬 상태는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균형을 유지하도록 크게 힘써야 한다. 현상 유지는 전진하는 것보다 더욱 힘드는 일, 교만하거나 해이하는 일이 없어야 행운을 유지할 수 있다. 새로운 일에 착수하거나, 더 큰 성공에 욕심을 부리면 크게 전락할 위험이 있다. 현재의 일을 그대로 한결같이 계속하라.고 『주역』에는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삶의 성취를 되돌아보면 기제(旣濟)는 종종 하찮은 느낌이 들곤 한다. ‘내가 이걸 이루려고 젊을 때 그렇게 노력했나’하는 허망함이 밀려온다. 김국환의 노래 「타타타」를 보자. ”산다는 건 좋은 거지/수지맞는 장사잖소./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한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무슨 재미/그런 게 덤이잖소.“ 결국 우리가 힘들게 버텨온 한평생이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알몸으로 태어나 옷 한 벌 입고 가는 것이다. 삶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나라 탕왕은 자신의 청동거울에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을 새겨 놓아 나날이 새롭게 태어남을 기뻐했다. 이렇게 허무한 인생에서 우리는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에 있는 싯구에서 위안을 찾아야 한다. 시인은 어느 날 저녁 자신이 머물고 있는 좁은 방에서 외로움과 쓸쓸함에 잠겨 있다. 희미한 전등의 지친듯한 불빛과 그 아래 걸린 낡은 셔츠의 피곤한 그림자가 시인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이렇게 외로움에 잠겨 있는 시인의 눈앞, 바람막이로 친 흰 벽 위에, 마치 스크린에 영상이 지나가듯 그리운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의 가난하고 늙은 어머니와 이제는 남의 아내가 된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이. 추운 겨울날 차가운 물에 무와 배추를 씻고 있을 늙은 어머니의 가난하고 고달픈 삶을 떠올리며, 시인은 자신의 불효를 생각하고 회한과 아픔에 젖는다. 그리고 그의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포구 마을의 집에서 남편과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고 있을 모습을 떠올리며 쓸쓸함과 외로움을 곱씹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신의 삶 앞에서, 시인은 자신의 드높은 운명을 생각하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한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는 것이다. 자신의 외롭고 가난하고 쓸쓸한 삶은, 높은 것을 지향하며 이루고 살도록 하려는 하늘의 뜻에 따른 것이라 생각해 보는 것이다. 프란시스 잼과 도연명,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같은 시인이 쓸쓸하고 외롭게 살아갔듯이, 하늘이 가장 사랑하는 이들을 그렇게 가난과 외로움, 쓸쓸함 속에서 사랑과 슬픔을 느끼며 살아가게 했듯이 말이다. 인생의 허무함을 느낄 때 이 구절을 묵상해보자. 위로의 원천이 된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허망했던 마음이 눈 녹듯 풀어진다. 전문을 읽어볼수록 백석의 절창 중 한 편이라 할 수 있다. 빼어난 명작이다. 우리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 잠재력을 계발하는데 온 힘을 써야 한다. 결국 인생은 잠재력의 실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잠재력의 실현 후에는 허무함, 허망함이 찾아오기에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따라서 기제는 미제로 가는 노정이라 할 수 있다. 「대상전」에 수화기제괘를 보면 ‘물이 불 위에 있는 모습이다. 물이 불 위에 있으면 물은 불을 꺼트린다. 군자는 그런 일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방지한다.’고 되어 있다. 수화기제(水火旣濟)의 ‘기제(旣濟)’는 ‘이미 끝났다’, ‘이미 넘어갔다’, ‘이미 건넜다’, ‘개울을 건넌다’는 의미다. 생명의 완성을 의미한다. 불이 밑에서 물을 끓일 수 있고, 물은 아래로 불을 제어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기제는 생명의 완성인 동시에 생명의 쇠락이다. 물과 불이 각기 자기의 위치를 지니고 있어서 서로 잘 교섭할 수 있고 또 서로에게 쓰임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건물을 세우는 사람들은 그 일에 몇 년이라는 세월을 바치기도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그 일을 끝내게 된다. 그리고 그 일을 마치는 순간, 그는 자신이 쌓아올린 벽 안에 갇히게 된다. 건물을 세우는 일이 끝나면 그 삶은 의미를 잃게 되는 것이다.(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브리다』 참조) 미완성이 좋은 것이다. 우리말에 ‘거의’란 말이 있다. “밥이 거의 다 됐어!”, 혹은 “거의 다 왔어”라고 말한다. ‘거의’란 말은 기제로 향하는 길의 막바지를 뜻한다. 그래서 이 낱말을 좋아한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직전의 과정, ‘거의’의 과정에 도달했을 때 기쁨과 즐거움은 절정에 오른다. 목적지에 도달하면 기쁨이나 즐거움도 그 과정에 비해 반감된다. 완성 직전.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점 하나 찍기 직전의 기쁨과 짜릿함, 그 비어 있는 마지막 공간이 있을 때, 삶은 새벽별처럼 빛나는 것이다. 화룡점정하는 순간, 즉 완성이 이루어지는 순간 그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과 짜릿함은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수화기제괘의 효사 95를 보면 ‘하느님은 완전보다 불완전, 완성보다 미완성을 사랑하신다’고 되어 있다. 또 효사 64에도 ‘완성의 길에는 항상 위험의 씨앗이 도사리고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 기제는 처음에는 길하지만 끝은 어지럽다. 완성은 비극이다. 완성은 일종(一終)일 뿐이다. 미완성을 성취하라. 기제는 미제로 가는 노정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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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8
  • [전재학의 교육칼럼] 2024년, ‘갈등’을 ‘공존’으로 ‘함께하는 교육운동’이 필요하다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최근 야당 대표의 테러 사건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 구성원 간의 ‘갈등’이 날로 악화되어 이제는 ‘혐오’로 굳어진 것 같다. 그 배경에는 일찍이 보수와 진보의 거대 양당 체제로 적대적 공생 관계를 유지하던 정치 구조가 이제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급기야는 중도층의 압도적인 증가를 불러 공고하게 구축된 거대 양당 체제의 불합리한 점들을 깨고 다당 체제로의 변화를 모색하려는 제3지대의 신당창당 흐름은 국민적 관심과 지지를 얻어가면서 정치세력화를 추구하고 있다. 갈등은 늘 우리 사회에 존재해 왔다. 하지만 지금처럼 우리의 정치 구조가 이념적 편가르기에 의한 양분화로 굳어짐에 따라 철지난 낡은 이념 대결로 다시금 복귀하고 있다. ‘좌빨’ ‘빨갱이’로 불리며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공산전체주의 세력으로 내몰린 진보 진영과 ‘극우’ ‘태극기부대’로 불리며 운동권 특권세력의 세대교체를 부르짖는 보수 진영은 이미 서로 돌아올 수 없는 외나무다리를 건너 상호 간에 극한 혐오로 굳어졌고 이의 추종자들은 서로 상대방 죽이기에 나서 백주(白晝)에 테러도 불사한 채 갈등을 악화시키는 정치저급화를 초래하고 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공존’의 필요성이 날로 증대되고 있다. 공존은 양당 체제의 차이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고 상호 인정과 존중으로 갈등을 차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갈등을 차단하거나 해소하려는 대화와 소통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엔 소위 칼자루를 쥔 주인공인 국가 지도자의 독단과 아집으로 아예 대화 자체를 거부하거나 또는 국정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여론을 강력하게 차단하려 검찰통치의 수단을 강화하는 것이 큰 문제다. 하지만 정치적 반대편에 선 야당도 과거 운동권의 특권의식으로 시대의 흐름에 부적절한 한계를 노출하는 것도 또한 문제다. 마치 한반도의 남과 북이 정치적 이념으로 양분되어 상호 체제의 고수와 우월함을 내세워 끝없는 대치 상태에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제 우리는 공존의 개념과 사상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공존은 갈등과 함께 가는 것이다. 갈등 없이는 상호 발전과 성장이 불가하다. 갈등 없는 안정 추구는 획일적인 사상을 부르고 이는 전체주의적 문제해결의 발상을 초래한다. 강력한 법치주의를 지향하는 것도 사실은 긍정적인 민주제도의 명분을 넘어 그 이면에는 인도주의적 해결이나 상호 존중과 배려의 차원을 제거하고 오직 차갑고 냉정한 법의 심판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으로 우려된다. 오늘날 우리의 유⋅초⋅중등학교 체제는 구성원 간의 갈등을 오직 법으로만 해결하려는 ‘교육의 사법화’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는 실로 교육적 관점에서 볼 때 ‘교육의 부재’를 크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상호 존중과 배려 없이 오직 냉정한 법의 논리로 인간적인 교육행위를 처음부터 차단하는 부정적인 ‘교육 법정주의’는 그래서 기계적이며 반교육적이고 창조적인 인간행위가 배제된 인공지능(AI)의 로봇에 의한 문제해결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공정하고 갈등이 없는 것으로 합리화를 내세우나 결국은 인간의 삶을 무미건조하게 만드는 주범으로 결코 높이 평가할 수는 없는 소위 필요악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학교에 토론 문화를 시급하게 정착시켜야 한다. 갈등을 관리하는 것은 대화와 소통으로 가는 토론이 적격이기 때문이다. 부모와 이견이 있다고 인연을 끊을 수 없는 것처럼 현재와 같이 학교 구성원들 간에 심한 갈등이 있다고 교육행위를 포기할 수는 없다. 소란이 두려워 갈등의 장을 마련하지 않는 것은 편견이고 이는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유발한다. 새해 들어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상대에게서 어짊과 지혜를 발견하는 ‘견인견지(見仁見智)’의 자세로 공존의 교육을 실현하겠다는 신년사를 발표했다. 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 간에 상호 경청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가장 강력한 공존의 조건은 교류와 소통이다. 상대에 대한 열린 마음과 애정 어린 눈길로 학교에서의 모든 교육활동에 임하자. 이것이 갈등을 해소하고 소통하는 교육이다. 그래서 2024년은 ‘함께 하는 교육 운동’이 더욱 필요하고 중요하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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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7
  • [김홍제의 목요칼럼] 죽음으로 증명해야 하는 슬픔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유명 영화배우가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다가 유서를 남기고 숨졌다. 수사 당시에 비공개 소환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망하기 하루 전까지 두 달 동안 유튜브 동영상과 언론 기사 수가 1만이 넘었다. 그렇게 많은 기사가 모두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작년에 4년 동안 학부모 악성 민원에 시달렸고 아동학대 가해자로 신고당해 힘든 생활을 하던 초등학교 교사도 생을 달리했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은 학부모 민원에 대한 후폭풍을 남겼다. 죽음으로 자신의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시도는 노동자나 교사를 가리지 않고 일어났다. 죽기 전까지 때로는 죽을 때까지 법적 고소로 약자를 괴롭히는 법은 공정의 수호자이기보다 유전무죄를 굳건하게 믿고 있는 특권 계층의 수호자가 된 듯하다. 한국 사회가 죽음으로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사회가 되었다면 우울하고 암담한 일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죽음의 의미를 자신들의 입장에서 왜곡하는 일도 안타깝다. 목숨을 스스로 버려야 관심을 끌 수 있다면 정당한 소통이 차단된 사회다. ‘경찰, 언론, 유튜브’로 이어지는 선정적 보도의 순환 고리는 견고하다. 이익을 얻으려 하는 고리이다. 유튜브는 조회 수, 슈퍼챗(후원)으로 금전적 이익을 얻기 때문에 고리가 더 복잡하다. 언론과 검찰, 경찰, 악성 민원은 약자에 대하여 유독 강하고 잔인하다. 죽음으로 고발하는 억울함은 잠시 이목을 끌다가 사라진다. 마치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듯 억울한 죽음이 끝나면 다른 방향으로 채널을 돌리는 것으로 끝난다.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로 넘어간다. 언론기관과 법 집행기관은 국민을 권력, 범죄,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사회가 용인해준 권력기관이다. 그 권력을 자신들의 집단이익을 위해 사용한다면 ‘서울의 봄’에 나온 쿠데타와 무엇이 다른가. 국민 보호를 위해 군인에게 세금을 쓰고 권한을 주었는데 정치적인 야망을 위해 쿠데타를 한 집단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국민을 위해 준 권력을 자신들의 카르텔을 위한 무기로 쓰는 집단에게는 국민이 준 권한을 빼앗거나 감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권한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 강한 권력을 가진 자에게는 반드시 강한 견제를 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속도가 빠른 자동차일수록 더 강하고 효율적인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중요한 도구인 법 집행, 언론, 댓글문화가 사회적 흉기가 되면 안 된다. 언론과 검찰과 사회관계망서비스는 자유와 행복을 위한 도구이자 장치이다. 이 막강한 힘은 사회의 약자와 민주주의를 향상하는 일에 써야 한다. 그것을 감시해야 하는 것이 민주시민의 역할이고 교육의 역할이다. 약자들이 죽음으로 자신의 결백함이나 고통을 증명해야 하는 사회는 억압적 기제가 강한 사회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는 그러한 사회가 아니다. 대중의 성숙하고 올바른 시민의식이 필요하고 여기에 교육의 지속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자정과 자성이 필요하다. 스스로 자정이 어려울 때는 국가와 사회가 강제적인 수단으로 마땅히 제재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학생교육문화원 예술진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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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4
  • [육우균의 周易산책] '연을 쫓는 아이'에게서 '지천태'의 모습을 본다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대상전」에 지천태괘를 보면 ‘하늘과 땅이 서로 자리를 바꾸어 교섭하는 소통의 모습이다. 천지가 소통(교태)함으로써 보통 사람들의 삶이 풍족해지도록 만든다.’고 되어 있다. 음은 가라앉고 양은 올라가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땅은 무거워 가라앉고, 하늘은 가벼워 떠오른다. 그런데 지천태괘의 자리를 보면 땅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려 하고, 하늘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려는 접점에 있는 모습이다. 서로 도와 화합하는 모습이다. 즉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면 만물이 생성되고 세상이 태평하게 된다. 자연과 문명의 상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64괘 중 가장 이상적인 괘라 할 수 있다. 갑진년 새해 벽두 지천태괘로 시작한다. 얼마 전 뉴스에서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보다 조금 더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자전축 때문에 사계절이 생기는데, 최근 연구에 의하면 자전축이 더 기울어진 원인이 바로 70억 인간들이 지하수를 마구 퍼내어 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연 파괴의 모든 원인은 인간에게 있다. 언제부터 지구라는 행성을 인간이 독점해도 된다고 했는가? 걷는 발자국 위에 개미가 한 마리 지나갈 때 무슨 생각이 드나? 이 땅은 인간만이 생활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지구는 이 땅에 사는 모든 생물의 공유지다. 어떻게 인간만이 지구의 회전축이 될 수 있겠는가. 자연의 자원을 인간 마음대로 쓰다 보니 자연이 황폐화되고 결국에는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보다 더 기울어지는 사태까지 왔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최근 소설인 『꿀벌의 예언』에도 “꿀벌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순간 인간에게 남은 시간은 4년뿐이다.”라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뒤 중세가 끝나고 근대가 시작되었다.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가 되었다. 이제는 인간이 신이 되는 호모 데우스의 시대다. 이 시대에 지구는 망가져 가고 있다. 지구는 인간의 것이 아니다. 지구의 자원을 잠시 빌려 쓰는 것이다. 빌리고 내려놓는 찰나의 순간인 우리의 삶처럼 존재의 순환성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생의 선순환이 되느냐 파괴의 악순환이 되느냐 하는 중요한 시대에 당대를살고 있는 우리의 몫이 우리가 남기는 유산이 결정된다. ‘지천태(地天泰)’의 ‘태(泰)’ 는 ‘태평’, ‘평화’를 의미한다. 도올에 의하면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는 것은 해부학적 사실이고, 땅이 하늘의 자리에 있고 하늘이 땅의 자리로 내려가 있는 것은 생리학적 진실이라면서 우리 생명의 생존 자체가 ‘다름’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탁견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 것도 중력에 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든다. 하늘이 땅의 자리에 있고 땅이 하늘의 자리에 있을 때만, 즉 지천태의 모습이 되어야만, 이 다름을 화해하려는 음양의 화합이 일어나게 된다. 생명은 무차별한 평등이 아니라 다름의 조화다. 작게 가고 크게 온다는 ‘소왕대래(小往大來)’는 조화로운 존재를 약속하는 장엄한 화해인 지천태의 모습을 담고 있다. 흥미롭게도 할레드 호세이니의 장편소설 『연을 쫓는 아이』는 지천태의 정신을 유난히 잘 담아내고 있다. 이 소설은 1970년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1990년대 탈레반의 부상을 배경으로 한다. 또한 주인공 아미르의 여정이 펼쳐지며 인간관계와 연민의 심오한 영향을 강조한다. 이 이야기는 갈등이 개인, 가족, 공동체에 미치는 파괴적인 결과를 탐구하며, 궁극적으로 용서의 변혁적인 힘과 인간 존엄성의 회복을 강조한다. 이러한 주제에 대한 탐구를 통해 소설은 공감과 이해가 보다 평화로운 세상을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아미르와 그의 친구 하산의 관계는 인간관계와 연민이 어떻게 인종, 종교, 국적의 장벽을 초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평화는 다름의 조화"라는 표현은 현대적 맥락에서 해석한다면,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 신념, 의견을 분별할 수 있지만 여전히 조화롭게 함께 사는 방법을 찾을 때 진정한 평화가 달성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여기서 차별은 부정적이거나 편견이 있는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관점과 관점을 구별하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즉, 평화는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인정하며 공통의 기반과 이해를 찾기 위해 노력할 때에만 달성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색깔의 옷을 입고 평화라는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의 모임이라 생각한다. 소랍의 엷은 미소나, 아미르의 환한 미소처럼 이 소설은 서로의 미소를 이해하는 것이 평화의 보물창고를 여는 심오한 열쇠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현대 고전이 된 이 놀라운 소설은 마음을 열고, 마음이 국경을 넘어 통합할 때 펼쳐지는 무한한 잠재력을 숙고하도록 손짓하며, 우리가 공유하는 인류의 실에서 조화가 짜여지는 미래를 예고한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인 소랍의 엷은 미소든, 아미르의 환한 미소든, 그 미소를 서로 바라볼 줄 아는 자세가 더소중하다. 소통은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벽이 없는 마음, 벽을 넘어서는 마음에서 진정한 소통은 이루어진다. 진정한 평화는 그렇게 찾아온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공식 로고송으로 코리아나가 부른 「손에 손 잡고」는 이런 지천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체 가사 중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란 구절이 지천태와 딱 맞는 말이다. 손에 손을 잡고 자신의 고정 관념을 버리고, 분별심을 버리면 평화는 다름의 조화가 되고 오해의 벽, 분별심의 벽을 넘게 된다. 서로의 손을 잡을 때 공감이 더욱 커지고 벽이 무너지고 지속적인 평화가 정당한 자리를 찾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여기서 잠깐! 샛길로. 『연을 쫓는 아이』의 주인공 아미르의 여정을 따라가며 지천태의 효사를 풀어보자. 지(地)의 자리다. 이 소설에서 아미르와 그의 친구 하산은 인간관계와 연민이 어떻게 인종, 종교, 국적의 장벽을 초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아미르(Amir)는 하인인 하산(Hassan)과 함께 형제처럼 자란다. 태어난 순간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진 못했지만 그는 하산과 함께 책을 읽고 놀이를 하며 비교적 즐겁게 어린 시절을 보낸다. 효사(초9)와 같이 뿌리가 뒤엉켜 있는 모습이다. 인(人)의 자리다. 어느 날 언덕으로 놀러가는 아미르와 하산을 불량배 아세프 일당이 막아서고 하산의 새총 덕에 두 사람은 위기를 모면한다. 연싸움 대회에서 우승함으로써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었던 아미르는 마침내 대회에서 우승하고 하산은 마지막으로 잘린 연을 쫓아 달려간다. 하산을 찾아나선 아미르는 하산이 아세프 일당에게 붙잡혀서 성폭행당하는 모습을 목격하지만 겁이 나서 나서질 못하고 골목에 숨어버린다. 그후 하산을 보기 괴로운 아미르는 하산을 도둑으로 몰아서 결국 집에서 내쫓아버린다. 효사(93)처럼 태평하던 국면이 기울어진 것이다. 소설가로 성공한 아미르에게 아버지의 친구이자 아미르의 어릴적 정신적 지주였던 라힘 칸이 전화를 걸어온다. 파키스탄으로 라힘 칸을 찾아간 아미르는 라힘 칸에게서 하산이 이복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이 하산의 진짜 아버지이며 아미르와 하산이 형제 사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평생을 산 아버지의 죄와 어린 시절 하산을 구하지 못한 자신의 비겁함을 속죄한다. 효사(93)의 내면의 성실함을 다하는 아미르의 모습이다. 아미르는 탈레반에게 처형당한 하산의 아들 소랍을 구하러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효사(94)의 모습이다. 이상을 향해 날개를 펄럭이는 모습이다. 성실한 아미르의 속죄의 씻음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 하산에게 진 마음의 빚을 해결한다. 소랍을 파키스탄으로 피신시킨다. 이윽고 아미르는 소랍을 미국으로 입양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천(天)의 자리다. 미국으로 온 소랍은 실어증 증세를 보이며 감정적 반응을 전혀 표현하지 않는다. 어느 날 공원에서 소랍과 함께 연싸움을 하게 된 아미르는 처음으로 소랍의 눈에서 생기를 발견하고 그를 위해 연을 쫓아 달려간다. 효사(상6)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 옛날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었던 아미르가 연싸움 대회에서 우승하고, 잘린 연을 쫓아 달려갔던 하산의 순수했던 표정이 오버랩되는 것은 필자만의 감정일까.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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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3
  • [문화재지킴이기자단] 2023 국제교류문화진흥원 한마당 개최…문화재지킴이 활동 격려
    [교육연합신문= 신주란 학생기자] 지난 12월 30일 국제교류문화진흥원 사옥에서 '2023 국제교류문화진흥원 한마당'이 개최됐다. '2023 국제교류문화진흥원 한마당'은 2023년 한 해 동안 국제교류문화진흥원의 활동을 기념하고 국가유산 보호 및 홍보 활동에 기여한 청소년과 지도자를 격려하고 포상하는 자리였다. 이날 행사는 청문단(청소년 문화유산 해설사) 단원들 및 졸업단원, 마리이야기 단원, 국제교류문화진흥원 소속 교사 및 교수들 총 35명이 자리를 빛냈다. 행사는 사업보고>우수 활동자 시상식>단원 간 교류 및 친목활동>대학부 활동 계획>차년도 교육계획 순으로 진행됐다. 여성가족부장관상 시상은 국제교류문화진흥원 청소년문화단 단원대표 이우찬 학생과 단원 서지훈 학생에게 표창이 수여됐다. 한국청소년단체 협의회 시상은 한국청소년단체 협의회 창립 58주년을 기념해 청소년문화단 단원 홍정서, 배서연, 이민영 학생에게 표창이 수여됐다. 국제교류문화진흥원의 우수 청소년 문화단원 시상은 신주란(온곡중학교 2학년), 최희수(용현여자중학교 1학년), 신효린(용인한빛중학교 1학년), 임승택(인천송림초등학교 6학년), 김민지(청심국제중학교 1학년), 최서연(철산중학교 2학년), 배서진(인천사리울중학교 1학년)에게 상장과 부상이 수여됐다. 교육연합신문 시상은 청소년 문화재지킴이 기자단 신주란(온곡중학교 2학년)에게 상장이 수여됐다. 국제교류문화진흥원 유정희 원장은 개회사에서 "입시제도의 변화로 청소년 활동이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열심히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있어 감사하다."라며 감사를 표했다. 2023 국제교류문화진흥원 한마당에 참가한 청소년 문화단 단원 배서진(인천사리울중학교 1학년)은 "1년 동안 청문단 활동을 열심히 한 것은 너무 보람찬 경험이었던것 같다. 앞으로도 열심히 청문단활동에 참여해 우리나라의 국가유산(문화재)이 보호되는 데 동참하고 싶다."라며 국가유산을 향한 진심을 말했다. 국제교류문화진흥원 박지환 간사는 "국제교류문화진흥원에 애정을 가지고 앞으로도 함께할 분들이 많이 와주셔서 준비한 보람이 있었고 대내외적으로 청소년문화단 문화재지킴이 학생들의 활동을 인정받아 기쁜 시간이었다."라며 "내년에는 더욱 알차고 좋은 프로그램들로 청소년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활동들을 많이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내년 교육계획에 대해 말했다. 국제교류문화진흥원은 '어제를 담아 내일을 전할 대한민국의 미래, 바로 당신입니다.'라는 슬로건으로 대한민국의 국가유산(문화재) 보호와 홍보에 힘쓰는 단체이다. 앞으로도 국제교류문화진흥원은 국가유산보호와 청소년 문화해설사 발굴에 더욱더 힘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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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1
  • [김홍제의 목요칼럼] 어린 왕자가 사는 별의 바오바브(baobab)나무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160여 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정식 판매 부수가 8,000만 부가 넘는 책이 있다. 1943년 4월 6일 뉴욕에서 영어판과 프랑스어판으로 동시 출간한 그 책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이다. 비행기 고장으로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사가 작은 별에서 우주여행을 온 어린 왕자와 만나서 나누는 이 이야기는 어른을 위한 동화이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은 겨우 집 한 채보다 클까 말까 하다. 내가 사는 아파트 공간 크기가 어쩌면 소혹성 B612호와 비슷할 듯하다. 지구는 어린 왕자가 찾아오는 일곱 번째 별이다. 그 전에 방문한 별은 이상한 어른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명예와 허영과 술과 일에 매몰된 자기 폐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비행사를 만난 어린 왕자가 처음 한 말은 ‘양 한 마리만 그려주세요.’였다. 왜 어린 왕자는 맨 처음 본 사람에게 양을 그려달라는 부탁부터 했을까. 절실함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사는 별을 구하기 위해서다. 그 별의 위기를 막기 위해서다. 무엇이 위기인가. 바오바브나무 씨앗이 너무 큰 나무로 커져서 별이 부서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어린 왕자는 양이 바오바브나무를 먹을 수 있냐고 묻는다. 씨앗에는 이로운 씨앗과 해로운 씨앗이 있다. 바오바브나무는 조금이라도 자라면 영영 없애 버릴 수가 없게 된다. 어린 왕자는 바오바브나무 씨앗이 큰 나무로 자라기 전에 없애지 않으면 나중에 재앙이 온다고 걱정했다. 그것 때문에 어린 왕자는 바오바브나무를 먹어 없애는 양이 필요했던 것이다. 바오바브나무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의 종류로 알려져 있다. 나무가 너무 커버리면 작은 별 전체는 나무로 가득 찬다. 나무뿌리가 별을 뚫는다. 별은 작은데 바오바브나무가 많으면 별이 산산조각이 나버리는 것이다. 어린 왕자는 규칙적으로 신경을 써서 바오바브나무를 뽑아야 한다고 한다. 어린 왕자는 게으름뱅이가 살고 있는 어느 별을 이야기한다. 다른 별에 사는 게으름뱅이가 작은 바오바브나무 세 그루를 무심히 내버려 두었다가 낭패를 당할 것을 걱정한다. 우리도 자기만의 특성을 지닌 작은 행성이다. 외로운 작은 별이다. 자신의 작은 행성에 많은 씨앗들이 날아온다. 씨앗이 장미가 될지 바오바브나무가 될지는 모른다. 자신의 몸과 내면을 망가지게 하는 씨앗은 어린 왕자가 한 것처럼 계속 정리를 해 주어야 한다. 잘못된 만남은 암처럼 속도가 빠르다. 새해가 온다. 자그마한 씨앗 중에도 바오바브나무처럼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거대한 인습이 되는 씨앗이 있다. 바오바브나무 씨앗들이 더 크기 전에 정리하자. 새해에는 나쁜 습관의 씨앗이 커가지 못하게 부지런하게 뽑아내자. 바오바브나무가 소중한 행성에 멋대로 커나가게 둘 것인가. 학교든 자신이든 바오바브나무 씨앗과 같은 파괴적 조짐은 뿌리를 내리기 전에 단호하고 꾸준하게 정리를 해야 한다. 세 그루 바오바브나무를 방치해서 자신의 별을 바오바브나무에게 온전히 내 준 게으름뱅이처럼 되지 않으려면.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학생교육문화원 예술진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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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28
  • [육우균의 周易산책] 현실적 평등의 실현(산택손)–덜어내고 보탬으로 나아가는 길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연말연시다.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눈에 들어오는 계절이다. 자신의 한 해 농사가 잘 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시기다. 산택손괘를 생각나게 한다. 「대상전」에 산택손괘를 보면 ‘산 아래에 못이 있는 모습이다. 못의 흙을 파내어 산을 더 높게 만드는 것이니 자기 몸을 깎아 이상을 드높게 만드는 이미지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나의 몸에 내재하는 분노와 욕망을 덜어내어 버린다. 즉 분노를 억제하고 사욕을 제압한다.’고 되어 있다. ‘산택손(山澤損)의 ‘손(損)’은 ‘扌(손)으로 鼎(솥)의 음식물을 덜어내다’에서 나왔다. 그래서 ‘손해보다’, ‘던다’, ‘덜어내다’, ‘줄이다’의 의미다. 손괘는 연못 바닥의 흙을 준설하여 산의 흙에 보태어 더 높게 만든다는 의미를 가진다. 즉 못이 깊으면 깊을수록 산은 높아진다. 따라서 기쁨으로서 위를 받든다는 의미가 있다. 특히 손(損)은 아래를 덜어 위를 보탠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임시방편이라는 뜻이 아니라, 아래 민중의 것을 빼앗아 자기를 살찌우게 하면 그것은 곧 손이 되는 것이다. 어차피 인간 세상도 집단생활을 하고 국가 사회의 유지를 위하여 세금을 거둬들인다. 손(損)은 현실이다. 덜어내고 보탬으로 나아가는 것은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을 덜어내고 보태며 현실적 평등을 실현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성실함과 성찰을 통해 가능하며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현실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이다. 덜어냄과 보탬에 대해 정민 교수는 ‘덜어냄은 등잔에 기름이 줄어듦과 같아 보이지 않는 사이에 없어진다. 보탬은 벼의 싹이 자라는 것과 한가지라 깨닫지 못하는 틈에 홀연 무성해진다. 그래서 몸을 닦고 성품을 기름은 세세한 것을 부지런히 하기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또 ‘대숲이 빽빽해도 물을 막지 못한다. 구름은 높은 산을 탓하는 법이 없다. 하루하루를 허투루 살지 않아야 삶의 기쁨이 내 안에 고인다’고 전했다. ‘절미통’이란 말을 아는가. 절미통은 부뚜막 옆에 놓여있는 항아리를 가리킨다. 옛날 어머니들이 밥을 지을 때마다 쌀 한 주걱씩을 절미통에 넣었다가 나중에 난리가 나서 쌀이 떨어졌을 때 요긴하게 쓸 수 있게 만든 항아리다. 절미통에 쌀을 조금씩 덜어놓았던 우리 어머니들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고 했다. 필자가 지금도 존경하는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었던 임완수 선생님(그때 우리 반 급훈은 ‘책임완수’였다)은 점심시간이 되면 빈 도시락 뚜껑을 맨 앞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에게 주신다. 그러면 차례로 자기가 싸 가지고 온 도시락에 반찬 한 가지를 그 빈 도시락 뚜껑에 담는다. 반찬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밥을 한 숟가락 덜어놓는다. 그리고 뒤로 전달. 그렇게 한 바퀴 돌고 나면 선생님 책상 앞에 놓은 도시락 뚜껑에 반찬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선생님은 좋겠다, 저렇게 맛있는 반찬을 많이 먹을 수 있으니까’ 생각했다. 선생님은 “자아, 식사 끝났으면 운동장에 나가 놀아라” 하셨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우루루 밖으로 나갔다.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반 아이들 중 점심을 못 먹는 가난한 아이들 세 명을 불러 선생님 책상에 둘러 앉힌다. 그렇게 밥을 같이 먹는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다. 복도에서 유리창으로 그 광경을 본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소문을 낸 것이다. 지금은 안 계시지만 필자의 가슴 속에선 늘 선선한 미소를 짓는 담임 선생님이 살아계신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의 습관 하나. 수업 시간에 설명하시다가 학생이 딴짓을 하거나 잡담을 하면 분필을 세 번 천장으로 던졌다 받곤 하신다. 처음에는 왜 그러나 했는데, 본인의 화를 참고 계신 중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요즘엔 정말 보기 드문 스승이셨다.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시며 지나가시다가 아이들에게 손짓으로 인사하시던 우리 담임 선생님. 그때 이미 우리 선생님은 산택손괘를 아셨으리라. 아니 모르셨어도 이미 실천하고 계셨던 것이리라. 사회 생활을 하면서 위로 올라가려면 점점 좁아지는 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 문을 통과하려면 자신이 아껴온 것들을 덜어내야 한다. 다 덜어내고 나면 자존심 하나가 남는다. 그 자존심마저 버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덜어내고 보태는 방법은 성실함에 있다. 「대상전」에서도 산택손괘는 ‘징분질욕(懲忿窒慾)’이라 했다. ‘분노를 억제하고 사욕을 제압하라’는 의미다. 이것은 인민에 대한 손(損)을 완화시키는 것이다. 군자는 이러한 손괘의 ‘자기 깎음’을 본받아 내 몸에 내재하고 있는 분노와 욕망을 덜어내어 버려야 한다. 겉으로 화려한 장식보다 덜어내어 내면에 깃든 진실한 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여기서 잠깐! 샛길로. 산택손괘의 효사를 보자. 지의 자리다. 산택손의 괘는 모든 일이 형식에 있지 않고 성의에 있음을 말한다. 성의만 있다면 두 개의 대나무 그릇에 곡식을 담은 간소한 제물만으로도 신에게 제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머니가 호스피스 병동에 계실 때 병동 안에 차려진 성당에 미사를 보러 천주교인들이 찾아왔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흘러 나중에 도착한 사람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뒷문에 기대어 서서 기도를 드렸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간절히 기도드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필자는 그곳 복도를 지나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그의 기도가 이루어졌으면 하고 바랐다.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도 그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랐는데, 하나님이야 당연히 들어주시지 않겠는가. 그의 성의가 진실되었으므로. 산택손은 덜어내는 것을 상징한다. 그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웃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선의를 수행하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아랫사람이 웃사람을 위하여 받들어 섬기는 일이다. 전자는 자발적인 것이고, 후자는 당위적인 것이다. 인의 자리다. 그러기에 진정한 웃사람에게 보탬이 되는 일은 그 나타난 형식이나 눈에 보이는구체적 이익의 크고 작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참된 성의에 있는 것이다. 천의 자리다. 결국 이 괘는 소아(小我)를 희생하여 대아(大我)를 살리고, 사사로운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중시함으로써 손(損)하여 도리어 커다란 익(益)을 성취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산택손괘는 뒤가 길한 괘다. 당신이 상대자를 봉사해 줌으로써 장래에 그것이 몇 배로 되돌아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손(損)은 익 (益)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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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26
  • [전재학의 교육칼럼] 청소년의 행복교육을 위한 ‘Future Self’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근래 재직하던 학교의 학생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당당하게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를 말하기보다는 “꿈이 없어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꿈을 꾸기가 두려워요”,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을 건데 꿈을 꾸어 무엇해요?”라는 의외의 대답이었다. 필자는 순간 호흡이 멈추었다. 그것은 청춘의 시기에 어울리는 용기와 도전의 호연지기와는 달리 안타깝게도 청소년들이 지쳐 시들어가고 있었다. 이는 경쟁교육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고정된 틀에 얽매여 살아가는 그들에게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뿐이랴. 무언가 해야 할 행동에 대해서 “생각은 해봤어?” 하고 물으면 “아뇨. 생각하기가 귀찮고 피곤해요.” 또는 “아뇨. 저는 그냥 다른 애들 따라서 하면 되요.” 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왜 생각하기를 기피하고 피곤해 할까? 그리고 자기의 생각 말고 남의 생각만을 따르려고 할까? 그들은 한 마디로 주체적인 판단과 행동으로 자신의 삶을 운영하기보다는 수동적이고 남이 생각하고 마련해 놓은 길만을 편하게 밟고 지나려 한다. 마치 음식점에서 “무엇을 먹을래?”하고 물으면 “아무거나요” 또는 “같은 걸로요”라고 대답하는 것과 유사하다. 독일의 어느 대학 철학과에서 실험을 했다. 학생들에게 백지를 주고 10분 동안 목표를 적어보라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다 되어도 학생들은 한숨만 쉴 뿐 아무것도 적지 못했다. 교수가 말했다. “여러분의 생명은 1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버킷 리스트를 써보세요.” 그러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학생들이 백지를 채웠다. 교수가 앞서 말한 목표와 버킷 리스트는 비슷한 개념인데 왜 결과가 달랐을까? 이른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상상은 이렇게 단어 하나의 차이에서 엄청난 심리적 반응의 차이를 가져왔다. 요즘 항간에 벤저민 하디의 『Future Self』가 사람들의 이목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는 ‘미래의 나’를 상상해 현재에 접목시킴으로써 현재와 미래가 달라지는 놀라운 혁명을 파생시키는 엄청난 효과를 제시하고 있다. ‘Future Self(미래의 나)’를 통한 교육의 효과는 철저하게 심리학의 이론과 결과에 근거하고 있다. 그것은 ▶행동과 태도를 좌우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모든 목표는 접근 또는 회피라는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 ▶미래의 나와 연결되면 현재를 수용하고 사랑하며 그 가치를 인식할 수 있다. ▶미래의 나와 연결하는 것이 현재의 목적과 의미를 만들어 낸다. ▶장기적인 미래의 나와 연결하면 오늘 더욱 훌륭하고 탁월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로 요약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미래의 나와 연결될 때 행복하고 생산적이며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기대하는 것을 본다. 나아가 어떤 모습을 간절하게 이루고 싶고 그렇게 하겠다고 결심하면 그런 생각과 일치한 행동을 하게 된다. 즉, 믿음이 행동과 힘을 끌어내는 원리인 것이다. 사상가이자 시인은 랠프 월도 에머슨은 “당신이 무언가 하겠다고 결심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그 일이 이루어지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성경에서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라고 말한다. 믿음으로 산을 옮길 수 있다고도 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미래를 기대해야만 살 수 있는 것이 인간의 특징이다”고 했다. 전술한 것처럼 청소년들에게 ‘메멘토 모리’의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여기에 더해 ‘타임캡슐’의 제작을 통한 효과도 그러할 것이다. 6개월, 12개월, 5년, 10년 후에 열어볼 타임캡슐을 만들어 놓고 지금 ‘미래의 나’가 되도록 한다면 과연 청소년들은 얼마나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삶의 의미를 소유하며 의지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지 그 상상은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청소년들이 꿈이 없고 생각이 없다고 비난하기 전에 현재의 나에 대한 연민과 공감, 사랑하는 능력을 키워 주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이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들에게 과거의 모습과 미래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은 ‘Future Self’를 간직하고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며 이는 행복교육의 또 하나의 지침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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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24
  • [김홍제의 목요칼럼] 언어 장벽의 무너짐과 한국어의 발전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SK텔레콤은 최근 통화 중 실시간 통역 서비스를 공개했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동시 통화가 가능하다. 컴퓨터를 이용해 언어를 번역하려는 시도는 1950년대부터 시작됐다.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기술은 인공지능 기반의 인공신경망 기계 번역이다. 통신업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상상한 서비스가 현실화하고 있다며 내년은 서비스 상용화의 원년이 될 것이라 말한다. 인공지능이 언어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외국어 공포증에서 벗어날 날이 머지않았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한국어로 길을 물어볼 수 있는 때가 올 수 있을까? 이것이 중학생 시절에 처음 영어를 배우며 가졌던 꿈이었다. 영어처럼 한국어 시험에 통과해야 입사가 되고 대입시험과목에 들어가는 날이 올까? 평생 자가용을 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당시로서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꿈이었다. 영어 단어를 외우면서 계속 쏟아지는 새로운 영어 단어가 마치 테트리스 블록처럼 느껴졌다. 영어 단어 시험을 보고 성적에 따라 손바닥을 맞는 체벌을 경험했다. 영어시험은 성장해 가는 길에서도 수문장처럼 곳곳에 서 있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독일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했다. 관사를 외우던 기억밖에 없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영어권 사람들이 편하게 영어로 대화하며 예약하고 여행하는 모습을 보면 부러웠다. 영어를 배워서 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군대에서 야전잠바에 영어책을 넣고 다니다 상관에게 기합을 받았다. 한국 국력이 커지면 한국어 교사 수요가 폭발하리라 확신했다. 한국어 해외교육은 기대한 만큼은 확산하지 못했다. 학창시절은 의미도 잘 모르는 팝송을 눈만 뜨면 듣던 시대였다. 파란 눈과 금발머리는 모두 멋있어 보였다. 수십 년이 지나 비틀즈만큼 유명한 그룹이 한국에서 나오리라고 상상조차 못했다. 한국 노래가사를 미국, 남미, 유럽에서 따라 부르는 것을 예상할 수 없었다. 21세기 '비틀스(Beatles)로 불리는 '방탄소년단(BTS)'이 미국, 유럽, 중동, 아시아 등으로 인기가 확산되자 한국어 학습이 확산되고 있다. 2022년 말 기준으로 세계 105개국에 1,348개 대학, 3,000여 개의 각급 기관단체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국제언어연구원에 따르면 세계에 약 3백만 명 이상이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통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2022년 언어 앱 듀오링고에서 7번째로 가장 많이 공부하는 언어가 한국어다. 2023년 앱이 네 번째 글로벌 언어 보고서를 출시했을 때 한국어는 6위로 뛰어올라 이탈리아어보다 더 인기 있는 언어가 되었다. 이런 날을 보게 된 것만 해도 우리 세대는 가슴이 벅차다. 한국어로 세계여행을 하면서 핸드폰 없이도 길을 물어볼 수 있는 시대에 대한 소망은 여전하다. 1949년 한글타자기를 발명한 공병우 선생님은 이런 말을 남겼다. 한글은 금이요, 로마자는 은이요, 일본 가나는 동이요, 한자는 철이다. 우리의 멋진 한글이 인공지능시대에도 세계로 번성하기를 소망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학생교육문화원 예술진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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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21
  • [오피니언리더스] 김미애 국회의원, '약자와의 동행 기부금' 전달식
    [교육연합신문=이정현 기자] 국민의힘 해운대구을 김미애 국회의원은 정당의 힘겨루기에 지친 국민들에게 따뜻한 희망을 선물처럼 안겨주는 훈훈한 미담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경북 포항에서 태어난 김 의원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17세에 부산 태광실업 여공생활을 하면서 독학으로 사법고시를 패스한 입지전적인 인물로 지난 21대 총선에서 화제를 몰고 온 국회의원이다. 현재는 21대 국회보건복지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국민의힘 약자와의동행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했을 때의 국민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지난 12월 14일(목) 약자와의 동행 기부금 전달식을 통해 올해도 세비 30프로를 적립해 기부금 3300만 원을 부산 해운대지역 각 복지관과 재활원 그리고 어린이집에 골고루 돌아갈 수 있게 했다. 국회의원이 된 이후 지금까지 1억 2000만 원을 기부했다. 반송복지관에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복지관 등에 지정기부하는 행사가 이제 3년째 진행되는 연례행사가 되고 복지관 쪽에서는 추경예산에도 포함하는 등 이날을 기대하고 있다. 김미애 의원은 "제가 국회의원 첫 월급을 받을 당시 코로나19로 힘든 국민들과 함께하는 뜻에서 2020년 12월까지 세비 30% 기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2021년 여전히 코로나19로 우리 국민들은 힘든데 국민의 세금으로 매월 월급을 따박따박 받는 것이 몹시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 의원은 코로나19로 어려운 소상공인들을 위해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힘든 의정활동 중에도 지역구에 오면 식당이나 매장에서 소상공인들에 힘을 보태주는 캠페인을 열기도 해 지역구민들과 함께 소통하는 정치인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또한, 국회보건복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이번에 원활한 발달재활서비스 지원 등을 위한 미등록 장애아동 지원 대상을 현행 6세에서 9세로 확대하는 '장애아동복지법'과 복지부의 요양기관 현지조사 시 건보공단 등 관계기관 업무지원 근거 마련을 위한 '국민건강보험법' 발의를 통과시키는 열의도 보였다. 가슴으로 낳은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미애 의원은 입양 아동들의 권리보호를 위해서라면 물심양면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번 기부금 전달식에서 김 의원은 "정치인의 기부행위는 상당히 조심스럽다. 자칫 잘못하면 위법이 되기에 적법하기 위해 방법을 찾다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지정기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2021년 7월부터 하고 있다. 올해도 힘든 이웃이 많다. 이럴 때일수록 조금이라도 주변의 어려운 우리 이웃들과 함께 나누면 세상이 좀 더 밝아지리라고 믿는다. 제게 이런 나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모든 환경을 허락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모두 따뜻한 크리스마스와 행복한 연말연시를 보내시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김미애 국회의원의 '약자와의 동행'이 롤 모델이 되어 나눔과 베풂으로 국민들을 섬기는 정치인들이 많이 나와서 대한민국의 미래가 더욱 밝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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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20
  • [오피니언리더스] 제29대 부산교총 회장에 동의대 강재철 교수 연임
    [교육연합신문=백성언 기자] "부산교총 회장으로 재신임돼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나누고자 한다. 많은 유·초·중·고·대 선생, 교수들의 지지와 신뢰에 감사한다." 동의대 디자인조형학과 강재철 교수가 부산광역시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부산교총) 제29대 회장에 당선되며 연임에 성공했다. 임기는 오는 2024년 3월 1일부터 2027년 2월 28일까지 3년간이다. 강재철 교수는 지난 12월 5일부터 7일까지 실시된 부산교총 제29대 회장단 선거에서 총 투표인원 4,604명 중 2,443표(53.04%)를 획득해 제28대 회장에 이어 연임을 확정했다. 이번 선거에서 러닝메이트로 출마한 사동초 이용하 교장이 수석부회장을 맡게 되며 양운초 강태휘 교사, 학산여고 김수주 교사, 계성여고 마석황 교장, 동의과학대 배영훈 교수가 부회장으로 당선됐다. 부산교총 회장에 재선된 강재철 회장은 "부산교총은 부산교육의 미래를 이끌어갈 교육의 중심으로서 큰 책임을 안고 있다. 지역 교육 환경을 향상시키고, 학생들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특히 협력과 소통을 기반으로 모든 관계자들과 함께하며, 교육의 질을 높이고 교육지원체계를 강화하는 데 주력했다."라며, "지난 선거 기간 동안 여러분들과의 소중한 만남에서 많은 아이디어와 통찰력을 얻었다. 이제는 그 경험을 쌓아 새로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힘쓸 때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강재철 회장은 유·초·중·고·대 교사, 교수들의 다양한 역량과 경험을 모아 함께 나아가며, 아래의 공약을 지키며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강 회장은 "마지막으로 이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함께 힘을 모아 부산의 교육을 더욱 발전시키는 여정에서 여러분과 손을 맞잡고 함께 하겠다."라고 전했다. 한편, 강 회장은 제29대 부산교총 회장에 출마하면서 아래와 같은 공약 사항을 밝힌 바 있다. ■공약사항■ 첫째, 아동학대 면책 특권 확보를 통한 교권 안전망 구축 둘째, 교원, 교수 수당 인상을 통한 대체보상효과의 증대 셋째, 학폭 업무 경찰 이관을 통한 실질적 행정 업무 축소 방안 마련 넷째, 사립학교 간 인사 교류 확대를 통한 교사수급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 마련 언제나 당당한 선생! 유·초·중·고·대 의 大통합 大화합 大융합 3박자 교육!! With POWER 부산교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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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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