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위클리피플= 이민영 기자]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도전정신으로

난치성 혈액질환 치료의 길을 개척하다


김병수 고려대학교 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고려대학교 의료원 교육수련실장|의학박사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발전한 의료기술로 현대에는 과거에 밝히지 못했던 병명을 밝히고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병들을 치료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현재의 의료기술만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난치병들이 있으며 환경이 변하면서 새로운 병들도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그 중, 산소 및 영양소 운반기능, 면역기능과 체온조절기능을 담당하는 혈액은 우리 몸의 생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만큼 문제가 생기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이에 이번호 주간인물은 끊임없는 연구로 혁신적인 신기술을 개발하며 난치성 혈액질환을 앓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혈액질환의 최고 권위자,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의 김병수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_취재/글  이민영 기자

 

과거의 ‘약점’을 현재의 ‘강점’으로

 

 수학과 과학보다는 역사와 사회를 좋아했던 문과 성향의 김 교수는 딱히 의대 진학에 꿈이 있진 않았다. 그런 그를 의료인의 길로 이끈 것은 전쟁 포로로 이북에서 이남으로 내려오신 부친의 뜻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부친이 이북에 계실 당시 김 교수의 조부는 불안한 국내 정세의 흐름을 고려하여 부친에게 ‘기술자나 의사가 되어라. 그 둘은 체제나 시대의 변화에 영향 없이 생계를 이어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하셨고, 그 말에 따라 이남으로 내려와 기술자가 된 부친은 자신의 아들인 김 교수가 의사가 되길 바라셨다. 그리고 이러한 집안의 기대와 더불어 어렸을 적 몸이 약했기에 환자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어려운 이를 돕고자 하는 종교적인 신앙심으로 김 교수는 의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의료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한 김 교수가 백혈병과 림프종, 다발성골수증과 재생불량성 빈혈 등 난치성 혈액질환의 최고 권위자로 활동을 이어오며 줄기세포와 관련된 국책 연구과제까지 수행한 그간의 연구 성과와 업적들을 볼 때, 그의 천생은 혈액학 연구를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의대를 졸업 후 내과 전공의가 된 김 교수는 당시 인공신장실을 개원하는 것이 목표였고, 교수가 돼야겠다는 생각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뛰어난 재주와 능력은 저절로 드러나기 마련이듯, 김 교수의 재능을 눈여겨 본 여러 교수들은 그에게 교직을 맡음과 동시에 고대 병원에 존재하지 않던 혈액내과를 개척해주기를 권유했다. 처음엔 자신의 전공 분야도 아니고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라 김 교수도 고민을 했지만, 당시 혈액학 분야의 선두에 있던 국내 타 병원에서의 연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획기적인 제안까지 더해지니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한 혈액학 공부와 연구. 하지만 그것만으로 지금의 자리에까지 올랐다고 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어 보였는데, 역시 그 뒤에는 그의 끊임없는 노력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구심점이 되었던 학창시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번에도 김 교수는 자신이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며 예상치 못한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의사라면 당연히 학창시절에 1,2등은 했겠지’라고 생각하실 텐데, 초등학교 때에도 그렇고 중, 고등학교 시절에도 그렇고 저는 성적이 잘 나와 봐야 10등 안에 들었어요.  공부를 해도 성적이 잘 나오질 않았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더 열심히, 더 성실히 공부에 매진하려고 노력했고, 그게 습관으로 몸에 배었던 거죠. 그런데 역시 그러한 노력들이 빛을 발하는 때가 오더라고요. 중3이나 고3때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은 종합시험에서는 그 동안 꾸준히 준비하며 쌓인 학습 지식들로 높은 점수를 받으며 최상위권에 들었고, 그 덕분에 의대에까지 진학을 할 수 있었어요. 결국,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았던 과거의 ‘약점’을 그에 맞는 해결책을 찾아 준비함으로써 현재의 ‘강점’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죠.”

 

삶의 원동력, 호기심과 열정

 

 앞서 말했듯, 김 교수의 연구 성과와 업적들은 그의 끈기와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들인데, 어느 일이나 그 시작도 중요한 법. 김 교수가 이룬 결과물들의 시초는 그의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물론 주변의 권유가 있긴 했지만 처음 혈액학 공부를 시작할 때에도 새로운 학문에 대한 자신의 호기심이 작용한 바가 컸고, 줄기세포에 관한 국책 연구의 참여 역시 학교 측의 제안은 있었지만 결정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은 ‘다른 이들이 가보지 않은 길’이라는 것에 대한 그의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일단 시작하면 무엇이든 성실하고 꾸준하게 하는 그의 ‘몸에 밴 습관’ 덕분에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일지라도 자연스레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조혈모세포 및 면역세포 생산 신기술을 연구하여 특허등록을 하고 세계적인 학술상을 수상함으로써 안암병원이 ‘믿을 수 있는 조혈모세포이식 시술기관’으로 선정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혈액종양 부문의 의학적 발전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하며 세계 3대 인명사전에 모두 등재되는 ‘트뤼플 크라운’ 달성의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다시 그의 호기심과 도전정신을 발휘하여 의료 행정과 교육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조혈모세포이식에 관한 연구를 하며 행정 지식의 필요성을 느낀 그는 의학박사 과정을 이수했음에도 고려대 보건대학원 보건정책 및 병원관리학과에 입학하여 의료정책과 행정에 대한 전문소양을 연구하며 보건학 석사를 취득하였고, 국내 최초로 병원원가 관리체계 관련 특허를 등록했다. 뿐만 아니라 대학교수로서는 드물게 ‘병원경영진단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교육 쪽에도 흥미를 가지고 있던 그는 고려대 의과대학 의학교육학 교실 주임교수 및 교육부학장, 고려대 대학원 의무계열 부원장을 역임하였을 뿐 아니라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전문위원, 기본의학교육평가집행위원장, 교육부 의치의학제도개선위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우리나라 의학교육 및 평가 체계를 구성하고 개선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과 업적을 인정받아 김 교수는 고려대 의과대학에서 ‘우수교원상’을 2회 연달아 수상하였고, 최근에는 ‘석탑강의상’을 받은 바 있다. 교육부학장직을 끝낸 후에는 새로운 도전으로 보건의료연구의 중추를 담당하는 보건산업진흥원 R&D 진흥본부 중개연구단장의 직분을 수행하면서 우리나라 중개연구의 개념을 설정하고 발전시키고자 최선을 다해 그 성과 또한 인정받은 그는 현재 고려대학교 의료원 졸업 후 의사교육을 총괄하는 교육수련실장으로 또 다른 도전을 행하고 있다.  

 

의사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해야

 

 하지만 그런 김 교수도 순탄한 길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었다. 2000년도에 일어난 의약 분업 파동은 많은 개원의들이 병원 문을 닫게 하고, 인턴과 레지던트들까지 병원을 떠나게 했다. 이 때문에 간호사의 도움만을 받아 환자들을 진료해야 하는 어려운 시기였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가진 의사로서의 재능은 하느님이 주신 것인 만큼 현재 처한 상황에서 맡은 바 소명을 다해야한다는 신념으로 김 교수는 병원에 남아 자신을 믿고 찾아오는 환자들을 맞이했고, ‘비 온 뒤에 땅이 굳듯’ 오히려 그때의 경험이 자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개척하는 과정에는 늘 어려움이 따르듯, 줄기세포를 연구하던 때에도 생각처럼 결과가 나오질 않아 막막하고 답답한 마음이 컸지만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연구원들과 합심하여 마음을 다잡으며 낙관적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해 버팀으로써 또 한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의료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고난을 헤쳐 온 그이기 때문일까? 김 교수는 이야기 도중 현재의 의대 진학 시스템에 대한 걱정도 털어 놨다. “지금과 같이 사회적인 덕목이나 인성적인 측면에 대한 고려 없이 단순히 높은 수능 점수만을 기준으로 하여 의대 진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과연 진실한 의료인을 양성하고 의학을 발전시키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인지 매우 우려스럽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실제로 자신이 교육하는 학생들에게만 이라도  의사는 끊임없이 연구하는 연구자여야 함을 누누이 전하며, 그들의 목표가 의대 진학이라는 일차원적 차원에서 그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켜준다고 했다.

 

 솔직하면서도 소탈한 그와의 인터뷰를 마칠 즈음, 환자들에게 어떤 의료인으로 남기를 원하는지 묻자 이번에도 그의 대답은 보란 듯이 기자의 예상을 깨고 말았다.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않는 의사로 남고 싶다”며 덤덤하게 말하는 그에게 그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의사를 만나는 건 건강에 문제가 있어서죠. 그러니 언제라도 의사를 생각하면 아팠던 기억도 함께 떠오르게 될 텐데, 저는 환자분이 저를 기억함으로써 그때의 고통을 회상하게끔 해드리고 싶지 않아요. 이렇다보니 의사는 잠시 머물렀다 가는 ‘나그네’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도 하고요. 조용히 나타나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다 어느 순간 이별을 고하면 잠시의 아쉬움이 있을 뿐 며칠 후면 그를 잊고 다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나그네와 같은 존재 말입니다. 환자분들에게도 의사라는 존재가 아플 때 찾아왔다가 병이 나으면 떠나가고 잊히는 그런 나그네가 되었으면 좋겠어요.(웃음)”
 

 

 ‘나그네 정신’과 더불어 의사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환자가 당연히 받아야 할 치료의 권리를 이행해주는 사람일 뿐이기에 더더욱 기억되어야할 필요는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김병수 교수. 이처럼 정상의 자리에 있음에도 거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며 늘 새로운 도전을 꾀하는 그가 더욱 높이 비상하길 주간인물이 응원한다.
 
profile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현)
고려대학교 의료원 교육수련실장 (현)
혈액학회 학술이사 (현)
줄기세포학회 이사 (현)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전문위원 (현)
의료기관평가인증원 현장평가팀장 (현)
병원경영진단사회 부회장 (현)
보건산업진흥원 R&D 진흥본부 중개연구단장 (2012. 5 ∼ 2014. 8)
고려대학교 줄기세포연구소 소장 (2008. 9 ∼ 2013. 8)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IRB 위원장 (2009. 12 ∼ 2013. 3)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육부학장 (2007. 10 ∼ 2011. 12)
고려대학교 대학원 의무계열 부원장 (2007. 10  ∼ 2010. 9)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교육학교실 주임교수 (2007. 3  ∼ 2010. 2)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고려대학교 병원 김병수 종양혈액내과 교수 특별 인터뷰] 도전과 함께 난치성 혈액질환 치료의 길 개척하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