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7(화)
 

[교육연합신문=김현균 기자]

 

지난 28일 오후 늦은 시간 숙대입구역 근처 커피전문점에서 미소가 예쁜 재기발랄한 한 소녀를 만났다.

독립영화 '원스'를 보고 무작정 기타와 작곡을 배우고, 또 독립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에 무작정 취업전선에 뛰어들기도 하는 엉뚱한 열정소녀 김해완(19)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학교와 집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내 '뜻'을 세우는 삶을 살고 싶다고 당차게 외친 중졸 백수인 그녀가, 이번엔 세상 모든 존재에게 열정 가득 담긴 책 한 권을 넌지시 건넸다.

책 '다른 십대의 탄생-소녀는 인문학을 읽는다'는 열여섯에 학교를 나온 저자가 '연구공간 수유+너머' 세미나에서 얻은 공부와 고민, 그리고 그녀만의 치열한 삶의 흔적과 생채기를 고스란히 담았다.

얼굴은 아직 누구보다 앳된 열아홉 소녀지만, 세상을 바라보고 읽는 힘은 누구보다 당차고 성숙한 그녀와 진지한 고민을 몇 가지 나눠봤다.

 

- 니체, 맑스, 푸코, 들뢰즈 등 이름만 들어도 어려운 사상가들의 책을 읽고 있는 것으로 안다. 연구자들도 쉽게 읽기 어려운 책들인데, 혹시 저자만의 공부법이 있는가?

 

△ 공부는 누구에게나 어렵다. 나 역시 책을 볼 때 '흰 것이 종이요, 까만 것이 글씨다' 라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책장을 덮으면 안 된다. 내가 사고 싶은 물건은 바로 살 수 있지만, 공부는 내가 살 수 있는 범위 밖에 존재한다. 힘을 들여도 바로 눈으로 확인할 수 없기에 공부하는 사람들은 쉽게들 지치고 하는 것이다.

모든 책 속에는 비수 같은 문장들이 곳곳에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장들을 책이라는 심연에서 길어 올리는 것 역시 기본적인 독법이 되겠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려운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 역시 공부를 할 때 아주 중요한 지점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비수 같은 문장들이 삶에 꽂혀서 내 삶에 변화가 일어나는 그 놀라움이다. 이게 바로 인문학 공부의 아주 큰 '힘'이며, 쉽지 않은 공부를 계속 하게 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공부란 혼자서 하기에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큰 노력과 오랜 시간을 들여서 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차라리 마음 맞는 다른 누군가들과 같이 하는 공부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내가 공부를 통해 알지 못했던 날카로움은 내 머리가 아닌 다른 이의 말을 통해 나오기 때문이다.
 
- 근래 생각해 본 뜨거운 사회문제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 요즘 '자유'라는 단어에 물음표를 달고 있다. 오늘날은 예전 군부독재 시대와 같은 누군가를 억압하는 시대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얘기하듯, 지금은 자유로운 시대임이 틀림없다.
그렇게 누구나 자유롭다고 말하고, 심지어 자유라는 단어가 남발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들의 말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느끼기에는 분명 무리가 따른다고 본다.
알고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부과하고 있는 것들 투성이다. 자유라는 단어 속에 '선택 제한'이라는 또 다른 괄호 하나가 쳐져 있는 셈이다.
가령 오늘날 '자기주도적'이란 말은 곧잘 사용한다. '자기주도적'이라는 말은 분명 단어 자체만 놓고 본다면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비춰봤을 때 모순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자기주도적'이란 말은 결코 자율적이지 못하다. 좀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자기주도적'이라는 단어는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사회의 룰을 따르는 것을 의미하게 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 사회는 '자기주도적'이라는 이름 아래, '너는 순전히 네 자유로 이런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심어줌으로써 모든 결과를 '자기 책임'으로 돌려버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자유는 그런 단어에 포섭되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다른 이의 욕망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자기가 스스로 해야 비로소 '자유'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거기에 열정과 책임을 다하는 것이 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대안이 아닐까 생각한다.

 

“국가에도, 가족에도, 학교에도 포섭되지 않는 내 삶은 특정한 공간이나 특정한 관계가 보장해 주지 않았다. 하긴, 한 인간이 바꿀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지 않은가.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내 뜻'을 세우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나의 언어로 완성해 가는 과정이다.”

-'다른 십대의 탄생' 중에서

 

- '독립'에 대한 주제로 쓴 글들이 많다. 다른 십대들이라면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문제일 텐데, 유독 '독립'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있는가?

 

△ 어릴 때부터 독립에 대한 동경이 남달랐던 것 같다. 부모님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음에도 그런 보호의 그늘 아래에서 벗어나고픈 충동에 시달렸다.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좋은 환경과 조건들이 내 삶에 있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족이란 울타리를 벗어나 한 명의 독립적인 주체로서 치열하게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독립은 '나'만의 의미를 가지는 능동적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는 의미의 독립과는 거리가 있을지 모른다. 내가 말한 독립은 자신이 속한 특정한 조건―어쩌면 우연일지도 우발적일지도 모르는 공간과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나만의 조건―속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가는 일종의 작업이다.

 

- 저자의 경우 삶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문제,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한 것 같다. 그 '어떻게'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을 찾았는가?

 

△ 아직 구체적인 답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마쓰모토 하지메의 '가난뱅이의 역습'이라는 책을 읽고 많은 영감을 얻었다.
이 책의 저자는 '돈'을 두고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이 '돈'을 가지고 '어떻게 놀 것인가'에 역점을 둔다. 저자는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즐겁게 사는 법'을 창안할 때, '가난'이라는 척도, 기준은 아예 사라진다고 본다.
나 역시 그런 발상의 전환을 공부라는 길 속에서 찾고 싶다. 정말 죽은 듯이 공부만 하고 싶다. 어쩌면 내가 속한 조건이 공부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할 수밖에 없는 맥락 속에 있다는 것이 맞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내 길이 옳다고만은 할 수 없다. 열심히 공부해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 또 나처럼 책을 독파하고 세상을 공부해나는 것은 각자의 삶의 유형이라 생각한다. 나는 내 삶의 조건에서 배치된 가장 이상적인 꿈을 재기발랄하게 실현하고 싶다.

“기계부속품의 일부로서의 나. 카운터에서 버튼을 누르는 일을 통해 나는 도대체 무슨 기술을 습득할 수 있을까? 맥도날드 메뉴 전체를 외우게 되었고, 어떻게 메뉴를 조합해서 시켜야 가장 유리한지도 알게 되었지만, 나는 앞으로 맥도날드에서는 햄버거를 사먹지 않을 생각이기 때문에 이것은 별로 필요 없는 기술이다. 나는 카운터 '김해완'이 아니라 이름 없는 '1번 카운터'다.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고, 나 역시 언제든지 이 일을 포기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알바시간은 언제나 '4,110원' 그 이상의 의미도 이하의 의미도 아니다.”

 -'다른 십대의 탄생' 중에서

- '88만원 세대', '백수' '하위문화', '루저' 등이 이 시대를 대변하는 열쇳말로 불리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 예전에 맥도날드에서 일하면서 든 단순한 생각 중 하나가 '시급이 적다'라는 것이었다.

먹고 살고 싶은데 그만큼의 환경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맘때 나는 '스펙'을 쌓아서 '좋은 회사'에 취직해야 먹고 사는 게 가능한 사회라는 것을 확인했다.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어차피 나는 이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고, 그 속에서 '스펙'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여러 가지 생존전략들을 창안해야 한다. 그 중 하나가 소비패턴을 바꾸는 것이다. 물건을 사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생활환경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나는 '백수'라는 단어가 가진 힘을 믿는다. '백수'라는 단어 속에 사회에서 작동하는 가치 척도들, 가령 나이·직업·성별 등등 자유롭게 관계 맺는 것을 방해하는 이런 장벽을 깡그리 무화시키는 놀라운 기능이 있다. 누구보다 놀라운 능력을 숨기고 있는 유동적인 유목민인 셈이다.
나는 오히려 다른 가능성을 계속해서 찾아가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 현재 생활하고 있는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실이 궁금하다. 간단하게 소개해준다면?

 

△ 연구실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공간이다.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지식인과 일반인들이 함께 섞여서 책을 읽고 글을 생산해낸다. 공부 뿐만이 아니라 같이 밥을 차려먹는 등 생활을 공유하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현재는 남산에 있고, 올해 서울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예정이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 내 삶의 '멘토'이기도 한 푸코의 저작들을 계속해서 읽고 싶다.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나 넓게 보는 시야를 기르고 싶다.

 

- 마지막으로 인문학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 현재 나의 보잘 것 없는 내공으로 인문학의 정의를 내린다면 사변적인 말이 될 것이다. 나는 인문학의 정의보다는 내가 믿고 있는 인문학의 힘을 이야기하고 싶다. 현재 내가 인문학에 대해 어렴풋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언제나 한 쪽에 묵직하게 짊어지고 가는 것이다. 인문학은 이 질문에 답을 주진 않지만 현재 내 삶을 바꿀 수 있다.

 

∥나 김해완은...

 

김해완, 93년 12월생.

광주광역시 산부인과에서 태어났으나, 때 되면 이사가는 철새가족이었으므로 고향은 따로 없음.

공식적인 신분은 '중졸 백수'이지만, 현재 학교 다닐 때보다 더 바쁘게 수유+너머 연구실에서 인문학공부를 하고 있음.

17살에 학교를 나왔고 18살에 집에서 나왔으며 19살인 현재 10대인 나를 잘 떠나는 것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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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만나다] '재기발랄 중졸백수' 김해완 저자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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