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식 칼럼] AI의 시대, 다시 인문학의 시간을 걷다
"우리가 고유한 인간성을 잃지 않으면서 거센 기술의 파도를 넘는 주체가 될 때, 비로소 교육은 그 존재의 이유와 근본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연합신문=김춘식 칼럼]

불과 몇 년 전까지 교육 현장과 우리 사회는 '코딩', '3D프린팅', '메타버스'라는 기술적 주문(呪文)에 함몰되어 있었다. 모든 교육의 지향점은 기계적 숙련도에 매몰되었고, 대학의 인문학은 취업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숨을 죽인 채 고사(枯死) 위기에 내몰렸다. 그러나 2026년 오늘, 우리는 거대한 역설의 시대를 목격하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이 정점에 다다를수록 세상은 오히려 가장 ‘인간다운 것’을 강력하게 호출하고 있으며, 인문학적 사유와 소통 능력이 기술적 기량을 압도하는 핵심 자본이 되는 ‘인류사적 디지털 르네상스’가 그 서막을 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담론이 아닌 실증적 지표로 증명되고 있다. AI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안드레이 카파시(Andrej Karpathy)는 최근 “이제 가장 핫한 프로그래밍 언어는 인간의 언어”라고 단언했다. 복잡한 코딩 언어보다 문제를 정의하는 ‘비판적 사고력’과 협업을 이끌어내는 ‘공감 능력’이 AI 활용의 성패를 가른다는 뜻이다.
실제로 뉴욕 연방준비은행(New York Fed)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이공계 전공자의 실업률(5.9~7.2%)보다 인문학 전공자의 실업률(3.0~3.8%)이 현저히 낮게 나타났다. 이는 기술의 유효기간이 급격히 짧아지는 시대에 특정 기술에만 매몰되기보다, 변화하는 환경을 유연하게 읽어내고 맥락을 짚어내는 인문학적 소양이 노동시장에서 훨씬 더 높은 생존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방증이다. 파편화된 정보를 엮어 통찰을 만드는 능력이 AI 시대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 셈이다.
한국 교육은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며 2023년 이래 ‘국제 컴퓨터·정보 소양 연구(ICILS)’ 등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어 왔다. 하지만 자부심 이면에 도사린 과제는 무겁다. 이제는 하드웨어의 확충을 넘어 그 안을 채울 ‘질적 소프트웨어’, 즉 교육의 본질을 혁신해야 한다. 기술 도입에 앞서 ‘비판적 미디어 수용 능력’을 최우선 가치로 세워야 하며,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기술이 사회와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성찰하게 하는 교육 모델로의 전격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가장 시급한 실천은 교사의 역할 재정의다. 지식의 전달은 AI가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겠지만, 학생의 윤리적 판단력을 길러주고 기술적 한계를 비판적으로 조망하게 하는 것은 오직 인간 교사만이 가능하다. 교사는 이제 지식 공급자가 아니라 인문학적 성찰을 이끄는 ‘조력자’이자 기술의 오남용을 막는 ‘윤리적 등대’가 되어야 한다. 교육 현장은 이제 단순히 기기를 다루는 법이 아니라, AI의 결과물을 의심하고 재해석하는 능력을 키우는 '질문의 장'으로 변모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성찰을 넘어 구체적인 교육 혁신에 나서야 한다. 첫째, 교과 과정을 기술 습득과 더불어 인문학적 사유와 비판적 글쓰기를 동시에 함양할 수 있는 구조로 재편해야 한다. 둘째, AI 학습 도구 활용 시 기술적 오류와 편향성을 탐색하는 ‘디지털 혹은 인공지능 문해력(AI Literacy)’ 교육을 정규 과정에 전면 배치해야 한다. 셋째, 정답을 찾는 경쟁보다 인간과 기술의 공존 방안을 모색하는 프로젝트형 인문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나아가 이러한 교육적 실천은 교실의 담장을 넘어 사회적 연대로 확장되어야 한다. AI가 가져올 고용 구조의 변화와 윤리적 혼란은 어느 한 분야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학·연이 머리를 맞대어 인문학적 통찰이 기술 개발의 가이드라인이 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시민사회가 기술의 공공성을 감시하는 역량을 키울 때 비로소 우리는 기술에 매몰되지 않는 단단한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다.
인문학적 가치는 결코 먼지 쌓인 옛 유물이 아니라, AI 시대를 당당하게 헤쳐 나갈 가장 품격 있는 삶의 전략이다. 우리가 고유한 인간성을 잃지 않으면서 거센 기술의 파도를 넘는 주체가 될 때, 비로소 교육은 그 존재의 이유와 근본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교육 현장의 체질을 인문학적 성찰 중심으로 유연하게 바꾸는 실천이 필요하다. 그것이 이 시대 인문학이 우리에게 부여한 소중한 과업이자, 인간과 기술이 공존하는 미래를 열어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 김춘식
◇ 동신대학교 교수
◇ 교육연합신문 논설위원
◇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 한국독일네트워크(ADeKo) 이사 겸 인문교육위원장
◇ 2024 칼만 해외석학
◇ 前국가교육위원회 전문위원
◇ 前한국전문대학평가인증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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