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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 크루즈관광의 허와 실, 크루즈관광객 100만 시대 부산은 무엇을 얻을 것인가
[교육연합신문=이상헌 기고] 크루즈선이 부산항에 입항하면 항구는 활기를 띤다. 거대한 선박과 수천 명의 외국인 관광객은 부산이 세계적인 해양관광도시로 도약하고 있다는 기대를 높인다. 부산항만공사는 2030년까지 크루즈선 520항차, 관광객 100만 명 달성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제시된 전망에 따르면 2026년에는 상반기에만 219항차, 약 32만 명이 부산항을 찾았고, 연간 이용객은 약 7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부산을 찾는 크루즈 관광객이 늘어나는 것과 부산 시민의 삶이 나아지는 것은 과연 같은 일인가. 크루즈관광의 성공을 입항 횟수와 방문객 수만으로 판단한다면 정작 중요한 경제적 가치를 놓칠 수 있다. 이제 부산의 크루즈관광은 양적 성장의 성과를 넘어 질적 성장의 실효성을 검증해야 할 시점이다. 숫자는 성장하지만, 지역경제의 체감 효과는 별개의 문제다. 크루즈관광은 일반적인 숙박형 관광과 구조가 다르다. 관광객들은 선박 안에서 숙박과 식사를 해결하고, 기항지에서는 제한된 시간 동안 관광과 쇼핑을 즐긴다. 선박이 몇 시간 정박하는 동안 수천 명이 부산을 방문하더라도 이들이 실제로 부산 지역 상점과 식당에서 얼마를 소비하는지는 별도로 살펴봐야 한다. 관광객 수가 증가했다고 해서 지역경제의 수익도 같은 비율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관광객이 대형 관광버스를 타고 주요 명소 몇 곳을 둘러본 뒤 다시 선박으로 돌아간다면, 방문객 수는 통계에 잡히지만 동네 식당과 전통시장, 골목상권이 얻는 경제적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관광상품의 구성과 소비 경로에 따라 수익이 일부 대형 사업자에게 집중될 가능성도 있다. 이는 부산 크루즈관광이 실패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관광객 증가라는 기회를 지역경제의 실질적 성장으로 연결하는 장치가 얼마나 잘 마련돼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뜻이다. 앞으로 부산은 방문객 수뿐 아니라 관광객 1인당 지역 내 소비액, 체류시간, 지역 소상공인 매출 기여도, 지역 고용 효과, 재방문 의향 등을 함께 측정해야 한다. 그래야 크루즈관광이 부산에 얼마나 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부산의 매력은 충분하다. 문제는 관광상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부산에는 크루즈관광의 경쟁력이 될 만한 자산이 풍부하다. 해운대와 광안리의 해안 경관,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의 생활문화, 감천문화마을의 독특한 풍경, 한국전쟁의 역사를 간직한 원도심, 부산 특유의 해양문화와 음식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산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관광객이 그 가치를 충분히 경험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관광객이 유명 관광지 몇 곳에서 사진만 남기고 떠나는 것과 부산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고 지역 음식을 맛보며 도시의 이야기를 경험하는 것은 전혀 다른 관광이다. 부산은 관광지를 단순히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험을 설계해야 한다. 외국인 관광객이 자갈치시장에서 부산의 해산물 문화를 이해하고, 원도심에서 도시의 역사와 산업 발전을 배우며, 지역 상점에서 부산의 생활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관광 안내와 해설의 품질이 중요하다. 언어를 단순히 번역하는 수준을 넘어 부산의 역사와 문화, 음식의 의미를 외국인의 눈높이에 맞춰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관광객이 도시를 깊이 이해할수록 관광 경험의 만족도와 소비의 폭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결국 관광의 경쟁력은 관광지의 개수보다 그곳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어떤 기억을 가져가는가에 달려 있다. 체류시간을 늘리는 것이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출발점이다. 부산시가 크루즈관광 활성화 전략에서 체류 확대와 재방문 설계를 강조하고, 24시간 크루즈터미널 운영을 기반으로 오버나잇 크루즈 유치에 나선 것은 주목할 만하다. 부산항만공사 역시 기항 중심에서 모항 중심으로 전환하고 1박 2일 체류형 상품을 확대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크루즈관광의 경제적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방향이다. 낮에 잠시 방문하는 관광객보다 밤까지 머무는 관광객에게는 저녁 식사, 야간 관광, 공연과 문화체험, 숙박 전후의 추가 소비 기회가 더 많이 생긴다. 물론 체류시간이 늘어난다고 소비가 자동으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관광객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콘텐츠, 편리한 교통, 안전한 이동 환경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부산은 광안리 야경과 해변 문화, 원도심 역사 탐방, 지역 미식, 공연과 전시를 결합한 시간대별 관광상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크루즈 입항 시간에 맞춰 시장과 음식점, 문화시설이 연계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관광객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다국어 안내와 교통정보도 제공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관광객을 더 오래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다. 부산에서 더 많은 가치를 경험하도록 만들고, 그 경험이 지역 소비와 재방문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이다. 크루즈 모항 육성은 관광을 넘어 산업의 문제다. 크루즈관광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부산을 잠시 들르는 기항지에서 출발과 도착이 이뤄지는 모항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모항은 관광객의 승선과 하선뿐 아니라 항공·철도 연계, 숙박, 식음료, 선박 정비, 연료와 식자재 공급, 물류와 전문서비스 등 다양한 산업과 연결된다. 부산에서 출발하는 크루즈가 늘어나면 관광산업의 파급효과가 선박 운항과 관련 서비스 분야로 확대될 수 있다. 다만 모항 육성에는 국제선 연결성, 선사의 운항계획, 안정적인 수요, 터미널 수용능력, 출입국 절차의 효율성 등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시설 확충만으로 경쟁력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부산은 크루즈 선사 유치와 함께 지역기업이 선용품 공급, 관광서비스, 운송, 콘텐츠 제작 등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관광객이 부산에 와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크루즈 산업의 공급망 자체가 부산에서 성장하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모항 전략의 경제적 의미다. 다섯 가지 전환이 필요하다. 부산 크루즈관광이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방문객 중심에서 지역경제 가치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입항 횟수와 관광객 수에 더해 지역 내 소비액, 소상공인 매출 기여도, 체류시간, 재방문율을 함께 공개하고 평가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단체 관광 중심에서 선택형 체험관광으로 확대해야 한다. 부산의 음식, 역사, 해양문화, 전통시장, 예술과 지역 생활을 연결한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관광객이 자신의 관심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낮 중심 기항에서 야간·체류형 관광으로 전환해야 한다. 야간 콘텐츠와 대중교통, 다국어 안내, 안전관리 체계를 함께 구축해 체류 확대가 실제 소비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넷째, 관광 유치에서 산업 생태계 육성으로 발전해야 한다. 지역기업과 선사 간 거래를 확대하고, 부산의 식품·수산물·서비스·문화콘텐츠가 크루즈 산업의 공급망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다섯째, 관광객의 만족을 재방문과 추천으로 연결해야 한다. 크루즈 여행에서 부산을 경험한 관광객이 다음에는 부산에 며칠간 머무는 개별여행객으로 돌아오도록 후속 관광상품과 맞춤형 홍보를 설계해야 한다. 크루즈는 부산을 세계에 알리는 첫 번째 관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전략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부산시와 부산항만공사, 관광업계, 지역 상인, 교통사업자, 문화기관이 함께 성과를 관리해야 한다. 관광객 증가의 혜택이 지역사회에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부산 크루즈관광의 진정한 성공은 배가 떠난 뒤에 결정된다. 크루즈관광은 부산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국제적인 접근성, 해양도시라는 정체성, 풍부한 문화자산을 활용한다면 부산은 동북아 크루즈관광의 주요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크루즈선이 많이 들어온다는 사실만으로 관광도시의 성공을 선언할 수는 없다. 관광객이 부산을 얼마나 깊이 경험했는지, 지역 상권이 얼마나 혜택을 얻었는지, 부산의 기업과 시민에게 어떤 새로운 기회가 생겼는지를 함께 물어야 한다. 크루즈관광의 성패는 배가 몇 척 들어왔느냐가 아니라, 배가 떠난 뒤 부산에 무엇이 남았느냐로 판단해야 한다. 관광객의 발길이 지역 상권의 매출로 이어지고, 일회성 방문이 재방문으로 연결되며, 관광 수요가 부산의 일자리와 연관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질 때 크루즈관광은 비로소 지속 가능한 산업이 된다. 2030년 관광객 100만 명이라는 목표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부산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는 그 숫자 자체가 아니다. 부산을 찾은 세계인이 다시 방문하고 싶어 하는 도시, 지역기업이 관광산업의 성장에 참여하는 도시, 시민이 관광의 혜택을 체감하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부산의 크루즈관광은 이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는가”에서 “얼마나 큰 가치를 함께 만들었는가”로 질문을 바꿔야 한다.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부산은 단순한 크루즈 기항지를 넘어 세계인이 기억하고 다시 찾는 해양관광도시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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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건물은 세워진다, 도시는 기획된다
[교육연합신문=이상헌 기고] 세계적인 관광도시를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화려한 야경일까, 유명한 축제일까, 아니면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는 랜드마크일까. 물론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세계적인 도시의 경쟁력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다른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은 건물만 보러 도시를 찾지 않는다. 그 도시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계획한다. 그리고 그 경험이 기대 이상일 때, 도시는 관광지를 넘어 목적지가 된다. 부산은 이미 적지 않은 것을 갖추고 있다. 국제적인 축제와 다양한 공연, 해변과 항구가 만들어 내는 독특한 풍경, 역동적인 음식문화가 있다. 부산콘서트홀이 문을 열었고, 2027년에는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도 예정돼 있다. 이제 부산 관광의 과제는 무엇을 더 지을 것인가보다, 이미 가진 자산으로 어떤 도시의 미래를 만들어 낼 것인가에 있다. 세계적인 관광도시는 명소의 숫자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도시를 찾아야 할 이유가 얼마나 분명한가에 따라 완성된다. 파리의 문화적 매력은 에펠탑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런던의 관광 경쟁력도 빅벤이나 버킹엄궁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두 도시에는 예술과 공연, 전시와 스포츠, 미식과 일상이 끊임없이 새로운 방문 동기를 만들어 내는 구조가 있다. 관광객은 특정 장소를 방문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신이 여행하는 시기에 그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을 경험하기 위해 움직인다. 여기서 부산이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다. 부산에도 축제는 많고 공연도 열린다. 문제는 행사의 유무가 아니라 개별 행사가 도시 전체의 매력으로 얼마나 연결되는가에 있다. 각각의 축제와 공연이 저마다의 성과를 내는 것과, 그 모든 경험이 ‘부산에 가야 하는 이유’로 축적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관광객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부산을 여행하려는 외국인이 특정 공연을 발견하고, 그 일정에 맞춰 항공편과 숙박을 예약하며, 낮에는 도시를 둘러보고 저녁에는 공연을 관람한다면 공연은 단순한 문화행사가 아니다. 여행을 결정하게 만든 핵심 동기가 된다. 반대로 공연이 열려도 해외에서 정보를 접하기 어렵고, 예약과 관람이 불편하며, 여행 일정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잠재력은 충분히 발휘되기 어렵다. 이 차이가 부산 관광의 다음 단계를 결정할 수 있다. ■ 오페라하우스가 부산의 미래를 대신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2027년 개관을 앞둔 부산오페라하우스는 부산의 문화와 관광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세계적인 수준의 공연을 유치하고, 부산의 예술적 위상을 높이며, 북항을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발전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건축물이 완성되는 순간 세계적인 오페라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공연장은 외관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평가받는다. 어떤 작품을 올리는가, 어떤 예술가를 키우는가, 얼마나 지속적으로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이는가, 시민과 관광객이 얼마나 자주 그곳을 찾는가가 중요하다. 개관 기념 공연이 세계적인 관심을 끄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다음 해, 그다음 시즌에도 사람들이 부산오페라하우스의 공연을 기다리게 만드는 일이다. 한 번의 화려한 개관보다 오랜 시간 축적되는 예술적 신뢰가 도시의 브랜드를 만든다. 또한, 오페라하우스가 독립된 섬처럼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부산콘서트홀과 기존 공연장, 영화제와 지역 축제, 전시공간과 관광업계가 서로의 관객을 연결해야 한다. 클래식 공연을 보러 온 사람이 부산의 다른 문화공간을 찾고, 축제를 즐기러 온 관광객이 다음 공연을 예약하는 순환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부산오페라하우스의 진정한 성공은 그 건물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어오는가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 공간이 부산 전체의 문화적 활력을 얼마나 확장하는가로 평가해야 한다. ■ 축제의 도시에서 ‘문화적 목적지’로 부산은 축제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하는 도시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축제와 공연을 새로운 관점에서 연결해야 하는 도시다. 필요한 것은 행사 목록의 확대가 아니라 도시 전체를 하나의 문화 프로그램처럼 기획하는 발상이다. 봄에는 어떤 예술을 경험할 수 있고, 여름에는 바다와 음악이 어떻게 만나며, 가을에는 영화와 공연이 어떤 분위기를 만들고, 겨울에는 부산에서만 즐길 수 있는 문화적 경험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계절별 축제를 배치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부산을 방문하는 사람이 자신의 관심사와 여행 시기에 따라 도시의 문화를 발견할 수 있도록, 흩어진 프로그램을 하나의 이야기로 편집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해외 관객이 부산의 오페라 공연을 예약하면 인근 전시와 관광 프로그램을 함께 발견할 수 있고, 영화제를 찾은 방문객이 지역 공연과 미식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을 넓힐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행사가 관객을 놓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부산 체류를 함께 풍성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러한 연결은 홍보의 문제인 동시에 산업의 문제다. 공연 기획자와 관광업계, 숙박업계, 지역 상권이 일정과 상품을 함께 설계한다면 문화행사의 효과는 공연장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문화예술은 관광 소비를 이끌고, 관광은 다시 예술의 관객과 재원을 넓히는 관계가 될 수 있다. ■ 세계인의 시선보다 먼저, 관객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세계적인 관광도시를 지향할수록 해외 유명 공연과 국제적인 이벤트에 관심이 쏠리기 쉽다. 그러나 외부의 명성을 빌려오는 것만으로는 도시의 문화적 자립성을 확보할 수 없다. 세계적인 예술단체를 초청하는 일과 함께 부산의 예술가들이 성장하고, 지역의 공연단체가 새로운 작품을 만들며, 부산에서 제작한 콘텐츠가 다른 나라의 무대에 오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세계의 예술이 부산에 도착하는 도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산의 예술이 세계로 나가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시민의 역할도 중요하다. 시민이 일상적으로 공연장을 찾고 축제를 즐기며 지역 예술을 지지할 때 문화 인프라는 비로소 살아 있는 자산이 된다. 관광객만을 위해 만들어진 문화공간은 특정 시기의 방문객에 의존하기 쉽지만,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이용하는 공간은 도시의 문화적 기반을 더 튼튼하게 만든다. 결국 관광객에게 제공하는 경험의 수준은 그 도시가 평소 축적해 온 문화의 수준과 무관하지 않다. 관광객을 위한 특별한 장면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시민이 평소에도 좋은 공연과 예술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 관광객 수를 넘어, 도시의 선택받는 힘으로 관광객 수는 분명 중요한 지표다. 부산이 세계적인 관광도시들과 경쟁하려면 방문객 규모를 확대하는 노력도 지속해야 한다. 다만 숫자의 성장만으로 도시의 국제적 위상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부산을 방문한 사람이 왜 이곳을 선택했는지, 여행 중 무엇을 가장 인상 깊게 경험했는지,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 다시 방문할 의향이 있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특히, 공연과 축제가 실제로 숙박 예약과 지역 소비, 재방문으로 이어지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문화행사의 관객 수와 관광객의 만족도, 지역경제에 미친 효과를 함께 분석해야 다음 기획도 정교해질 수 있다. 이제 부산 관광정책에는 관광과 문화예술을 따로 바라보지 않는 관점이 필요하다. 공연장은 문화시설이면서 관광 동기이고, 축제는 시민의 문화행사이면서 도시의 국제적인 홍보 자산이다. 이 둘을 연결하는 능력이 앞으로 부산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 부산은 더 이상 세계적인 관광도시가 되기 위해 무엇인가를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 도시가 아니다. 이미 가진 자산을 어떤 순서와 방식으로 연결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도시다. 오페라하우스의 개관은 그 가능성을 시험할 중요한 기회다. 건물의 완공을 도시의 성취로 끝낼 것인지, 새로운 문화관광 시대의 출발점으로 만들 것인지는 앞으로의 운영과 기획에 달려 있다. ■ 도시는 건축으로 모습을 갖추지만, 기획으로 기억된다. 부산이 지향해야 할 세계적인 관광도시는 명소가 많고 축제가 화려한 도시만이 아니다. 세계인이 부산의 공연을 보기 위해 여행을 계획하고, 축제의 일정에 맞춰 방문하며, 그 경험 때문에 다시 돌아오는 도시다. 부산에는 이미 무대가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무대들을 하나의 도시적 경험으로 연결하는 안목과 실행력이다. 오페라하우스의 불이 켜지는 날, 부산의 관광도 함께 새로운 막을 올릴 수 있어야 한다. 그때 부산은 세계적인 관광도시를 꿈꾸는 데 머물지 않고, 세계인이 찾아올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도시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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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늘봄학교 전면화의 명암
[교육연합신문=박진우 칼럼] 초등 방과 후와 돌봄을 통합한 '늘봄학교'가 전국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초등 1~2학년까지 정착되며 학부모의 양육 부담 완화와 국가 책임 돌봄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기존 돌봄교실의 높은 대기 수요를 흡수하고 다양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해 아이들에게 안전한 일상을 보장하겠다는 정책적 취지는 교육 가족 모두가 깊이 공감하는 바다. 그러나 제도가 현장에 안착해 가는 과정에서 학교가 겪는 공간의 과밀화와 관리 체계의 과부하는 지속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엄중한 과제다. 실제로 교육부가 발표한 「2026년 늘봄학교 추진 현황」에 따르면, 초등 1~2학년으로 대상이 확대된 이후 참여율은 80%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기존의 돌봄 대기 수요를 사실상 해소하는 가시적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양적 성장의 이면에서 나타난 공간 여건의 격차는 여전히 깊은 고민을 안겨준다.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대도시 과밀 지역의 경우 일반 정규 교실을 늘봄과 함께 쓰는 '겸용 교실' 비율이 늘면서 교사의 수업 연구 및 학생 상담 공간이 잠식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반면 농어촌 및 원도심 학교는 전문 강사 수급의 어려움과 방과 후 안전 관리 인력 부족이라는 상반된 난관에 직면해 있다. 학교 담장 안으로 모든 돌봄 수요를 흡수하려는 물리적 집중이 낳은 구조적 한계다. 학교는 통계표 위의 숫자 하나로 환원될 수 없는 배움의 터전이자 아이들의 삶이 자라나는 공간이다. 모든 돌봄과 보육의 책무를 학교라는 단일 기관의 울타리 안에만 가두려 한다면, 교원은 본연의 교수·학습 연구와 학생 지도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고 돌봄 서비스의 질적 도약 또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질 높은 교육'과 '안정적인 공공 돌봄'이 조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학교와 지역사회가 유기적으로 역할을 나누는 패러다임의 확장이 요구된다. 우선, 학교 중심의 돌봄을 넘어선 '지자체 책임형 협력 거버넌스' 확대가 절실하다. 학교 밖 유휴 공공시설, 청소년수련관, 주민자치센터, 도서관 등을 거점형 늘봄센터로 적극 발굴·연계해야 한다. 공간이 부족한 학교의 아이들이 안전하게 이동해 질 높은 예체능 및 놀이 프로그램을 누릴 수 있도록 지자체가 통학 및 공간 운영을 전담하는 '온 마을 돌봄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학교 내 '교육'과 '돌봄'의 운영 체계를 행정적·공간적으로 정교하게 분리해야 한다. 정규 교육과정을 담당하는 교원 조직과 늘봄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늘봄지원실 전담 인력의 업무 경계를 명확히 확립해야 한다. 늘봄전담사 및 관리 인력의 고용 안정성과 전문성을 높이고, 안전 관리와 시설 유지보수, 예산 집행 등의 행정 부담이 일반 교사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제도적 지원을 빈틈없이 갖추어야 한다. 나아가 '양적 수용'을 넘어 아이들의 정서적 쉼을 보장하는 '돌봄 질의 내실화'가 필요하다.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학교에 머무는 아이들에게 단순한 시간 때우기식 프로그램이나 과도한 특별활동을 강요하기보다, 자유 놀이와 쉼, 또래 간의 정서적 교감이 가능한 아동 친화적 쉼터를 조성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종일 이어지는 빽빽한 통제가 아니라 안전 속에서 마음 놓고 숨 쉴 수 있는 편안한 품이다. 국가가 책임지는 돌봄의 완성을 위해서는 학교에만 모든 짐을 지우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자체와 지역사회가 함께 아이들의 성장을 보듬는 성숙한 교육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 박진우 ◇ 교육학 박사 ◇ 부산 칠암초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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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의 왕 김광휘] 2027 대입논술 비법 - 고려대학교 논술
[교육연합신문=김광휘 논술] 고려대학교 논술은 단순히 글을 잘 쓰는 시험이 아니다. 주어진 제시문과 자료를 정확히 읽고, 문제의 요구에 맞게 핵심 개념을 뽑아내며, 그것을 논리적인 답안 구조로 연결하는 시험이다. 김광휘 ‘논술의 왕’식으로 정리하면 고려대 논술의 핵심은 다음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문제의 요구를 먼저 파악하고, 제시문을 요약이 아니라 논거로 바꾸어라.” 수험생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고려대 논술 대비 비법은 다음과 같다. ■ 제시문보다 문제를 먼저 읽어라 논술 답안의 방향은 제시문이 아니라 문제의 명령어에서 결정된다. ‘비교하라’, ‘분석하라’, ‘비판하라’, ‘평가하라’, ‘설명하라’, ‘해결방안을 제시하라’는 지시어에 따라 답안의 구조가 완전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 ‘비교하라’는 문제에서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모두 밝혀야 하고, ‘비판하라’는 문제에서는 대상의 한계나 논리적 약점을 지적해야 한다. ‘해결방안’을 요구하는 문제에서 제시문 요약만 반복하면 좋은 답안이 될 수 없다. ○ 비법 포인트 문제를 읽을 때 명령어에 밑줄을 긋고, 답안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먼저 결정하라. ■ 제시문은 따로 읽지 말고 관계 속에서 읽어라 고려대 논술에서 중요한 것은 제시문 하나하나의 단순 요약이 아니다. 여러 제시문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는지 파악해야 한다. 제시문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관계로 연결된다. ▲같은 문제를 서로 다른 관점에서 설명한다. ▲한 제시문이 다른 제시문의 한계를 보완한다. ▲두 제시문이 서로 대립하는 가치관을 보여준다. ▲하나의 제시문은 원인을, 다른 제시문은 해결 방향을 제시한다. 따라서 제시문을 읽을 때는 “이 글이 무슨 내용인가?”에서 멈추지 말고, “다른 제시문과 어떤 관계인가?”까지 파악해야 한다. ○ 비법 포인트 고려대 논술의 핵심은 제시문 요약이 아니라 제시문 간 상관관계 파악이다. ■ 공통 개념을 뽑아라 여러 제시문과 자료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을 찾아야 답안의 중심이 잡힌다. 예를 들어 자유, 평등, 공정성, 경쟁, 연대, 공동체, 다양성, 책임, 효율성, 인간 존엄, 기술 발전, 사회적 약자, 불평등 같은 개념들이 자주 활용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키워드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제시문 속에서 어떤 가치가 충돌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 예시 ▲자유 vs 평등 ▲경쟁 vs 연대 ▲효율성 vs 공정성 ▲개인의 권리 vs 공동체의 책임 ▲성장 vs 분배 ▲기술 발전 vs 인간성 ▲다양성 vs 사회 통합 ○ 비법 포인트 주제를 외우지 말고, 주제 속에 숨어 있는 가치 대립 구조를 찾아라. ■ 자료는 나열하지 말고 한 문장으로 묶어라 표, 그래프, 통계, 사례 자료가 나올 경우 수험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자료를 하나씩 설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좋은 답안은 자료들을 관통하는 공통 의미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예를 들어 여러 자료가 소득 격차, 교육 기회 차이, 지역 불균형을 보여준다면 다음과 같이 묶을 수 있다. “제시된 자료들은 사회적 불평등과 기회 격차가 여러 영역에서 구조적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자료를 종합해 핵심 문제를 규정해야 이후 원인 분석과 해결방안 제시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 비법 포인트 자료를 설명하지 말고, 자료가 함께 가리키는 사회문제를 찾아라. ■ 제시문은 요약하지 말고 논거로 바꿔라 논술 답안에서 제시문은 단순히 정리하는 대상이 아니다. 자신의 주장이나 판단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해야 한다. ▲나쁜 답안 : 제시문 A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좋은 답안 : 제시문 A가 강조하는 공동체적 연대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문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사회적 협력과 제도적 지원이 함께 필요하다. 이처럼 제시문의 내용을 자신의 논리 안으로 끌어와야 한다. ○ 비법 포인트 “이 제시문은 무엇을 말하는가?”보다 “이 제시문을 내 주장에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생각하라. ■ 답안은 결론부터 설계하라 논술 답안을 처음부터 써 내려가면 논지가 흔들리기 쉽다. 먼저 결론을 정하고, 그 결론을 뒷받침할 근거를 배치해야 한다. 예를 들어 결론이 다음과 같다고 하자. “사회적 불평등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제도적 개선과 공동체적 연대가 함께 필요하다.” 그러면 본론은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불평등의 원인 분석 ▲개인 책임론의 한계 ▲사회적·제도적 해결방안 제시 ○ 비법 포인트 답안은 쓰는 것이 아니라 설계하는 것이다. 결론을 먼저 정하고 본론을 배치하라. ■ 해결방안은 개인·사회·제도 차원으로 구체화하라 해결방안 문제에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와 같은 추상적 표현만 쓰면 설득력이 약하다. 해결방안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효과적인 방식은 세 층위로 나누는 것이다. ▢ 개인 차원 개인은 편견과 고정관념을 줄이고, 타인의 권리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 사회 차원 사회는 공감, 연대, 협력의 문화를 확산하고, 차별과 배제를 줄이는 공론장을 마련해야 한다. ▢ 제도 차원 국가와 제도는 교육,복지,노동,지역 정책 등을 통해 구조적 불평등을 완화해 공정한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 비법 포인트 해결방안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드러나야 한다. ■ 옹호·비판형 문제는 입장을 끝까지 유지하라 특정 주장에 대해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문제가 나오면 입장의 일관성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비판한다고 해놓고 본론에서 옹호 논리를 쓰거나, 결론에서 애매하게 “둘 다중요하다”고 마무리 하면 답안의 힘이 떨어진다. ■ 안정적인 구성은 다음과 같다. ▲ 대상 주장의 핵심 정리 ▲자신의 입장 제시 ▲제시문을 근거로 활용 ▲반대 입장 간단 검토 ▲자신의 결론 재확인 ○ 비법 포인트 어느 입장을 선택했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입장을 끝까지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 반드시 피해야 할 답안 유형 고려대 논술에서 피해야 할 답안은 다음과 같다. ▢ 제시문 요약형 답안 ▲제시문 내용을 반복하지만 자신의 논리로 연결하지 못하는 답안 ▢ 자료 나열형 답안 ▲표와 그래프를 하나씩 설명하지만 공통 의미를 찾지 못하는 답안 ▢ 입장 혼란형 답안 ▲옹호와 비판이 뒤섞여 논지가 흔들리는 답안 ▢ 구호형 답안 ▲ “노력해야 한다”,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만 반복하는 답안 ▢ 배경지식 과시형 답안 ▲ 문제와 직접 관련 없는 이론이나 시사 사례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답안 ○ 비법 포인트 논술은 많이 쓰는 시험이 아니라 정확히 쓰는 시험이다. ■ 실전 답안 기본 공식 고려대 논술 답안은 다음 공식으로 정리할 수 있다. 문제 명령어 확인 → 제시문 핵심 파악 → 공통 개념 추출 → 자료 종합 → 입장 결정→ 근거 배치 → 결론 정리 사회문제 해결형 문항이라면 다음 틀을 활용할 수 있다. 제시된 자료들은 ○○ 문제가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문제의 원인은 ○○에 있으며, 제시문 A는 이를 □□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또한 제시문 B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접근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인식 변화, 사회적 연대, 제도적 개선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옹호·비판형 문항이라면 다음 틀이 안정적이다. 제시된 주장의 핵심은 ○○이다. 나는 이 주장을 옹호한다/비판한다. ▲첫째, 제시문 A는 ○○의 측면에서 이 주장의 타당성/한계를 보여준다. ▲둘째, 제시문 B는 □□의 관점에서 이를 뒷받침한다. 물론 반대 입장에서는 ○○라고 볼 수 있으나, 이는 ○○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다.따라서 이 주장은 옹호/비판되어야 한다. ■ 최종 정리 김광휘 ‘논술의 왕’식 고려대 논술 비법은 결국 다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정확히 읽고, 관계를 파악하고, 구조적으로 써라.고려대 논술은 예상 주제를 맞히는 시험이 아니다. 낯선 제시문과 자료가 나오더라도 문제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핵심 개념을 뽑아내며, 제시문을 자신의 논거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이다. 따라서 수험생은 배경지식 암기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문제 독해, 제시문 분석, 자료 해석, 논거 구성, 답안 구조화 훈련을 반복해야 한다. ● 한 줄 비법 고려대 논술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주어진 자료를 정확히 읽고 논리적으로 연결하는 사람이 이긴다. ▣ 김광휘 ◇ 前현광문리학원 원장 ◇ 前부산종로학원 원장 ◇ 前부산학원 부원장 ◇ 언어영역 문학(창과창) ◇ 언어영역 독해(한샘출판사) ◇ 홀로서기 논술(대학진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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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학생 감소 시대, 특수교육의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
[교육연합신문=신동현 칼럼] 우리나라 학생 수는 계속 줄고 있습니다. 학교마다 빈 교실이 생기고 소규모학교도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흐름과 반대로 빠르게 늘어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바로 특수교육대상자입니다. 「2026 특수교육통계」에 따르면 특수교육대상자는 2022년 10만 3,695명에서 2023년 10만 9,703명, 2024년 11만 5,610명, 2025년 12만 735명, 2026년 12만 4,195명으로 해마다 증가했습니다. 4년 만에 2만 500명, 19.8%가 늘어난 것입니다. 특히 자폐성장애 학생은 같은 기간 1만 7,024명에서 2만 8,798명으로 69.2% 증가했습니다. 학생들이 배우는 곳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2026년 특수교육대상자 가운데 특수학교에서 배우는 학생은 3만 1,993명인 반면, 일반학교 특수학급 학생은 7만 2,784명, 일반학급에서 통합교육을 받는 학생도 1만 9,202명입니다. 전체의 74%가량이 일반학교에서 생활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제 특수교육은 특수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학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특수교육 체계는 이렇게 빠르게 늘고 다양해지는 교육수요를 제대로 감당하고 있을까요? 현행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시행령」 제22조는 특수교육 담당 교원을 특수교육대상자 4명마다 1명씩 배치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네 명이라도 필요한 지원은 전혀 다릅니다. 수업지원만 필요한 학생이 있는가 하면 의사소통, 이동, 신변처리, 행동·감각조절 등에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한 학생도 있습니다. 교사가 한 학생의 위기상황이나 신변처리를 지원하는 동안 다른 학생의 수업이 멈출 수도 있습니다. 결국 교사와 지원인력의 부족은 학생이 받아야 할 교육의 부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수학교를 계속 늘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2022년 192교였던 특수학교는 2026년 199교로 7교 늘어난 데 그쳤습니다. 반면 일반학교 특수학급은 같은 기간 1만 2,712학급에서 1만 5,426학급으로 2,714학급, 21.3% 증가했습니다. 우리는 2017년 서울 강서구에서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싼 일부 주민의 반대 과정에서 장애학생 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학교 설립을 호소했던 일도 경험했습니다. 특수학교가 필요하다고 해서 필요한 지역에 곧바로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닌 현실도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특수학교를 더 짓고 특수학급을 하나씩 늘리는 기존 방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변화한 교육환경에 맞는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의 대안은 학생 감소로 여유 공간이 생기는 일반학교, 특히 소규모학교를 활용한 ‘거점형 특수학급’입니다. 지역의 특수교육 수요와 접근성을 고려해 몇몇 학교를 거점으로 정하고, 일반 특수학급보다 충분한 특수교사와 지원인력을 배치하는 것입니다. 감각조절실·심리안정공간·신변처리시설을 갖추고 행동·의사소통 지원 등 전문적인 기능도 함께 두는 것입니다. 거점의 전문인력이 인근 학교를 찾아가 학생과 교사를 지원하는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을 한 학교에 모으자는 것이 아닙니다. 특수교육의 전문성과 인력을 거점에 모아 여러 학교가 함께 활용하자는 것입니다. 해외에서도 그 가능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영국은 일반학교 안에 ‘SEN Unit’과 ‘Resourced Provision’을 두어 전문적인 인력과 시설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모든 학교가 모든 전문인력과 시설을 각각 갖추기 어렵다면, 일반학교 안에 전문성을 집중하면서 일반교육과 특수교육을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도 이제 ‘일반학교냐 특수학교냐’라는 두 가지 선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학급과 순회지원, 일반 특수학급, 거점형 특수학급, 특수학교로 이어지는 촘촘한 지원체계를 만들고 학생 수뿐 아니라 실제 지원요구도에 따라 교사와 지원인력을 배치해야 합니다. 한쪽에서는 학생이 줄어 교실이 비어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특수교육을 받을 공간과 교사, 전문인력이 부족합니다. 이 두 문제를 따로 바라볼 이유가 없습니다. 학생이 줄어드는 학교의 공간과 특수교육의 전문성을 연결하는 것. ‘한 명의 특수교사가 모든 것을 책임지는 특수교육’에서 ‘여러 교사와 전문가, 지역의 학교가 한 아이를 함께 지원하는 특수교육’으로 바꾸는 것. 그곳에서 학생 감소 시대, 우리 특수교육의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 신동현 ◇ 부산 강서초등학교 교장 ◇ 前 부산 장서초등학교 교감 ◇ 前 부산광역시교육청 학교정책과 장학관 ◇ 前 부산광역시교육청 초등교육과 장학관 ◇ 前 부산광역시교육청 정책연구소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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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지구가 보낸 경고장…국가와 교육이 답할 '기후재난'의 골든타임
[교육연합신문=박진우 칼럼] 해마다 지구촌을 강타하는 이상기후는 이제 일시적인 자연현상이 아닌 인류의 일상을 파고드는 복합 재난으로 고착화되었다. 올해만 보더라도 유럽 전역에서는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폭염으로 수만 명의 초과 사망자가 발생했고, 북미와 아시아 곳곳은 기습적인 집중호우로 도시 전체가 침수되는 비극을 겪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기존의 장마 공식은 무너진 지 오래며, 예고 없는 국지성 폭우와 폭염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와 UN이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를 넘어 '지구 열열화(Global Boiling)' 시대가 왔다"고 경고했듯, 기후재난의 발생 빈도와 피해 범위가 매년 가파르게 확산하는 현상에 대해 우리는 엄중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이상기후는 단지 어쩌다 찾아오는 계절적 불운이 아니라 인류와 미래 세대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국가적 재난이다. 과학자들은 오늘 우리가 겪는 혹독한 더위와 기습 폭우가 앞으로 맞이할 수많은 날 중 ‘가장 온화했던 날’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 브뤼노 라투르가 언급했듯 인류는 이미 '기후적 난민'의 시대에 진입했다. 이러한 시점에서 교육현장의 학사 운영 중 폭우나 폭염이 엄습할 때 단축수업이나 휴업을 안내하고 주의를 당부하는 수준의 임시방편으로는 다가올 미래를 감당할 수 없다. 국가 차원에서 기후위기를 '국가 안보 및 국민 생존'의 문제로 규정하고, 이에 발맞추어 미래 세대를 길러내는 교육의 방향성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학교 현장과 사회가 체감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은 무엇인가. 첫째, 국가 차원의 '기후적응형 학교 인프라 표준화'와 재정 지원이다. 학교 건물 자체의 단열 성능을 극대화하고 옥상 녹화 및 빗물 저류 시설을 의무화하는 '그린 스마트 건축 기준'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폭염 시에도 학생들이 안전하게 신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모듈러형 실내 체육/놀이 공간' 확충을 국가 예산으로 우선 지원해야 한다. 둘째, 체계적인 '기후 데이터 기반 학사운영 예측 시스템' 구축이다. 각 지자체 및 기상청과 연계하여 지역별·학교별 기후 위험도를 실시간 측정하고, 이에 따른 단계별 대응 매뉴얼(체육 수업 전환, 등하교 시간 자율 조정, 온라인 수업 전환 기준 등)이 현장에서 혼선 없이 작동하도록 행정적·법적 근거를 명확히 정비해야 한다. 셋째, 지식 전달을 넘어선 '실천형 기후 안보·생태 교육'으로의 대전환이다. 기후변화 교육을 단순한 환경 과목의 일부가 아니라, 아이들이 생존 역량을 키우고 탄소중립 사회를 이끌어갈 '기후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필수 교육과정으로 재편해야 한다. 학교 내 에너지 소비를 학생들이 직접 측정하고 줄여보는 실천형 프로젝트 교육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중국의 고전 『서경』에는 "사전에 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라는 가르침과 함께, "망한 뒤에 도모하면 이미 늦다"는 경고가 전해진다. 교육의 본질은 우리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마음껏 배우며 미래를 꿈꾸도록 울타리가 되어주는 데 있다. 이상기후라는 엄중한 시대적 경고 앞에서, 국가의 선제적 장기 대책과 교육 현장의 과감한 실천을 통해 국민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든든히 지켜내야 할 때다. ▣ 박진우 ◇ 부산 해빛초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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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无首, 無我의 지혜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보통 자연스러운 감정과 본능을 극복하고 얻어진 능력을 ‘지적 능력’이라고 한다. 자연스러운 감정에 따르면 조그마한 것도 과시하고 싶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겸손은 수준 높은 지적 능력임을 모두가 알지만 행하기가 그렇게 어렵다. 겸손한 사람이 겸손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성공할 확률도 커지고, 더 나은 사람이 될 확률도 커지는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용기를 ‘지적 능력’이라고 정의한 것일까? 그래서 실천이 중요하다. 그것도 지속적인 실천이다. 앎을 실천하기는 항상 어렵다. 하지만, 앎은 실천을 거치며 크고 단단해진다. 우리 사회가 갈등과 대립, 불신이 만연하게 된 것은 성현들의 말씀만 기억하고 말씀과 행동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은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듣기보다는 그 사람의 행동을 본다고 한다. 그래서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덕이 있는 사람을 따른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더 근본적인 것은 실천이 다른 사람이 부과한 것이 아니라 자청한 것이어야 한다. 외부에서 부과된 것은 오래 할 수 없다. 자청한 것은 오래 할 수 있다. 그래서 진리는 실천을 자청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실천하지 않는 지식이야말로 사회의 병폐로 남는다. 실천은 반복해야 한다. 반복해야 넓어지고 차이가 생긴다. 인격적인 변화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저 사람 달라졌네.’ 하는 소리가 들릴 때, 인격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곤 한다. 『論語』를 공부하는데 선생마다 다 다른 해석을 내놓아 난감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누구의 『論語』가 진짜 『論語』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한다. 어디서 제대로 된 『論語』를 배울 수 있는지를 묻곤 한다. 『論語』를 찾아가는 규칙을 오래오래 지키면, 언젠가는 넓어지고 차이가 만들어져서 자신의 반복이 허락하는 언젠가에 진짜 『論語』를 만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을 해준다. 말씀에서 지혜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실천에서 지식이 나오고 지혜가 움트는 것이다. 앎이 실천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세상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行이지, 앎 자체가 아니다. 행하면 반드시 알게 되지만, 앎은 행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마음을 비운다는 말은 어떤 특정한 관점, 이념, 창, 틀로 이 세계를 바라보거나 해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면 봐야 하는 대로 보거나 보고 싶은 대로 보지 않고, 보이는 대로 볼 수 있게 된다. 『淮南子』의 「繆稱」편에 ‘信在言前也’라는 말이 있다. 지도자가 보통 사람들이 쓰는 똑같은 언어로 말을 해도 백성들이 그것을 믿는 것은 그 믿음이 언어 이전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도자가 위에서 지랄발광을 해도 백성이 콧방귀도 뀌지 않는 것은 그 지도자의 진정성과 정책이 따로 놀기 때문이다. 그래서 『周易』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亢龍에게는 후회할 일만 남아 있다.” 믿음이 간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실천한다는 말에 다름이 아니다. 山雷頤卦의 대상전은 말하고 있다. 山下有雷, 頤. 君子以愼言語, 節飮食. 군자는 이 괘의 형상을 본받아 입에서 나가는 언어를 신중히 하여 덕을 기르고,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절제하여 몸을 기른다. 입과 언어와 음식은 존재의 삼위일체다. 우리나라 지도자들에게는 채움에 관한 반추가 없다고 한다. 입안을 충실히 채우고 있는 자들이 그 채움에 관해 반추를 하지 않고, 한없이 먹으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나의 구실(口實)이 무엇인지? 내가 왜 먹고 있는지를 반성함이 없다는 것이다. 검찰이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환경에 처하고 있다고 해도, 왜 권력을 휘둘러야 하는지에 대한 반추가 있어야 한다. 음식은 養生, 養形과 연계되어야 한다. 둘째로 ‘愼言語’의 미덕을 결하고 있다. 윤석열이 입을 열기만 하면 국민들은 불안해 한다. 너무도 ‘愼’을 모른다. 아니면 모른 체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특히 외국에 나가면, 그가 또 어떤 사고를 칠까, 무슨 엉뚱한 약속을 할까, 이번에는 어떤 망언을 쏟아놓을까, 불안해서 잠을 못 이룬다고 한다. 지도자가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고 백성이 지도자를 걱정하는 세상이 되었다. 말은 養德, 養仁과 이어져야 한다. 經綸이란? 세상의 틀을 새로 짜는 것이다. 즉, 사유의 틀을 만드는 것이다(水雷屯, 象曰, 雲雷, 屯. 君子以經綸). 그래서 교육이 중요한 것이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세상을 바로잡고 질서 지우는 것이며, 세상에 대한 학문이지 세상을 버리는 학문은 없다.’고 한 南冥 曺植의 강단과 기개가 그립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經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세계를 어떻게 짜들어 가느냐에 있다. 철학도 예술도 문학도 경륜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조화를 달성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존재의 조화 방식을 배워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愼獨이 전제되어야 한다. 愼獨은 자기 존재의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숙한 인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기 과시, 분열이 아닌 조화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동양 사상의 핵심인 것이다. 우리의 교육의 명제도 공존과 조화에 두어야 한다. 나아갈 때 나아가고 멈출 때를 알고 멈춰야 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학문이다. 人事를 통해서 天理를 논하지 않으면 그것은 天理가 아니다, 하학(下學)을 해서 상달(上達)하는 것이다(南冥 曺植). 과식(過食) 하나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우리는 매일 공부한다. 공부를 통해서 삶에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면 아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진실로 안다면, 그 앎을 통해서 변화가 일어난다. 진실을 알아가면서 변화를 경험하고, 그 변화로 말미암아 달라지고 성장하는 것이다. 안다고 하지만 진짜로 아는 것이 아닐 때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입으로는 안다고 할 수 있지만 진실로 알기는 매우 어렵다. 진실로 안다면 그 앎을 통해서 자신에게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論語』를 몇 번 읽었다고, 더 나아가 四書三經을 몇 번이나 읽었다고 하는 사람들을 흔히 본다. 그런데 그 사람의 언행을 보면 믿음이 가지 않는다. 공자의 말을 외우고 있을 뿐, 공자의 삶을 실천하지는 않는 것이다. 공자의 말씀을 읽었다면 공자의 말씀이 그 사람의 언행 속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그래서 학문은 믿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다. 유학은 외우는 것이 아니라 실현하는 것이다. 言行으로 구체화 하는 것이다.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는 앎은 진짜가 아니다. 앎이 지식으로 멈추지 않고, 내 삶과 자신에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안타까운 점의 하나는 ‘德’, ‘丈人’ 등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낱말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경험이 풍부한 유덕한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丈人을 찾고 모시는 문화,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립다. 자기가 아는 사람, 관계된 사람만 찾고 있다. 이는 갈등과 대립, 파벌만 만들 뿐이다. 먹이사슬처럼 얽혀만 가고 있는 세상이다. 그래서 孔子는 말한다: ‘멈추지 않는 이상, 얼마나 천천히 가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요즘은 교사들이 아이들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고 한다. 어린이는 예찬의 대상이 아니라 교육의 대상이다. 방임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삶에 책임을 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훈도(訓導)의 대상이다. “예법에 아이가 스스로 찾아와서 배운다는 말은 있어도, 선생이 아이에게 찾아가서 가르쳐준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禮問來學, 不聞往敎.)(『禮記』 「曲禮」). 어릴 때야말로 가장 아름답게 교육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이다. 교육은 조임(규제)과 풀림의 조화다. 즉 리듬이 있어야 한다. 어린이들이 공동체의 윤리를 수용할 수 있도록 교육시켜야한다. 커서 가르치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린이에게 해가 뜨고 지는 장면을 보게 하라.’는 소파 방정환 선생이 주는 교육의 의미가 이제야 내 마음에 걸어 들어온다. 어린이를 교육시키겠다고 찾아가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린이들이 자발적으로 교육을 받겠다고 찾아오도록 하는 세상,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匪我求童蒙, 童蒙求我).(『周易』山水蒙卦). 우리는 왜? 공부하는가? 왜 역사를 배워야만 하는가? 역사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 역사로부터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철저한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구원할 수 있을 뿐이다. 儒者들에게 이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가는 책임이 있다. 이들이 잘해야 이 세계는 평온해지고 모든 사람이 잘 살아갈 수 있다. 철저하게 지식인의 책임을 묻는 큰 가르침이 儒敎라는 말이다. 하늘의 뜻이 인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있는 소리라는 것을 철학화 한 것이 儒敎다. 인간이 어떻게 자기를 깨달아서 천명을 구현해 가느냐 하는 것이 유교의 위대함이다. 안다고 하는 것은 지혜로울 수밖에 없다. 안다고 하면서 지혜롭지 못하다고 하는 것은 진짜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저 사람은 아는 것은 많은데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위대한 유학자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묻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신은 무지한 존재라는 전제를 가지고 죽을 때까지 노력하는 인간이 修身하는 儒學者의 모습이다. 儒學을 알지만 儒學의 맛을 아는 선비가 그립다. 大義를 향한 憂患 의식, 염려, 걱정에서 君子로 되어가는 긍정적 자기 변혁의 주체가 儒學者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안개 정국으로 세상이 온통 뿌옇다. 지천태 괘의 효사인 ‘무평불피(无平不陂) 무왕불복(无往不)’: 추운 겨울이 가야지만 따듯한 봄이 오듯이, 돌아옴 없는 떠남 또한 있을 수 없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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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无首, 無我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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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근하신년(謹賀新年)의 덕담
- [교육연합신문=송근식 기고] 갑진년 값진 한 해가 벌써 지나가고 을사년 새해를 맞은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지만 곧 설이 다가오기 때문에 이 인사의 글을 올려도 늦지는 않아 현직에서 학생들에게 신년사로 한 번씩 했던 '근하신년'을 내 방식대로 풀이해 보고자 한다. 새해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마음으로 희망찬 한 해의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고 멋진 한 해, 새로운 나로 태어나 보겠다고 굳은 약속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아예 이루지 못한 과거의 습관 때문에 새해 결심을 하지도 않는 사람들도 많다. 아일랜드의 시인, 소설가, 극작가인 오스카 와일드는 “새해 결심의 결과는 결국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고, 어떤 성과(成果) 심리학 전문가는 새해 결심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루지 못한 이유에 대해 “자신을 점검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새해가 되면 연하장을 주고받는데 ‘근하신년’이란 말을 가장 많이 쓴다. 그 네 글자를 나의 억지 방식으로 풀이해 보면 참 좋은 덕담이 된다. 첫째 근(謹)은 '삼갈 근'으로 말을 삼가라는 뜻으로 옛날 우리 성현들은 스스로 말을 조심하고 경계하며 삼가는 말과 행동을 아주 중요하게 여겨 왔다. 특히 율곡 이이 선생께서는 20세 때 지은 자경문(自警文)에서 자신을 성찰하게 된 11개의 좌우명을 기록해 마음을 다짐하고 각오를 한 후 이듬해 21살 때 장원급제를 했다. 그중 두 번째가 과언(寡言)으로 말을 적게 하자는 뜻인데 바로 말을 삼가자는 근(謹)과 상통한다. 둘째 하(賀)는 '加+貝(조개패; 화폐)'로 돈을 더하다는 뜻으로 ‘부자 되소서’라는 덕담으로 젊은이들에게도 적당한 경제교육은 조기에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꼭 부자가 되고 돈이 넉넉해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윤택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행복은 꼭 돈만으로 좌우할 수는 없고, 돈이 넉넉하지 않아 조금 불편할 수는 있지만 불행하지는 않다. 하지만 단란한 가정, 절친한 친구 유지, 건강활동을 위한 모임, 삶을 윤택하게 하는 각종 종교활동, 균형 잡힌 식단, 건강예방을 위한 정기 검진 등 삶을 영위하는 데는 기본적 경제비용이 필요하므로 건전한 인격을 위한 돈은 반드시 필요하다. 셋째 신(新)은 '立+木+斤(도끼근)' 자로 나무에 올라서서 열심히 도끼질을 하는 모습으로 새해에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라’는 뜻이다. 노력하지 않는 결과는 없고 준비 없는 성공은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年은 '人+干(방패간)'으로 사람에겐 아무런 방패도 필요 없는, 한 점 부끄럼 없는 정직하고 반듯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 보자는 충고를 말한다. 다시 말해 새해에는 말을 삼가고(謹), 부자 되고(賀), 열심히 노력하고(新), 반듯한 사람이 되는(年) 근하신년이 되었으면 한다. 나는 지난 2023년 끝자락에 ”나의 인생사용설명서 7가지“(1.웃으며 즐겁게 살자. 2.소박하게 살자. 3.틈나는 대로 책을 읽자. 4.감사하며 살자. 5.희망을 가지자. 6.보탬이 되는 삶을 살자. 7.가끔 친구들과 연락하며 살자)를 정해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노력해 보겠다는 결심을 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다. 위의 목표들은 건전한 식습관, 규칙적인 운동, 수면 습관 같은 일반적 라이프 스타일에 관련된 것도 아니고 해외 여행하기, 재정관리와 저축, 오락이나 취미, 자격증 취득하기, 독서하기 등과 같은 단발성 계획이 아닌 해를 두고 지속적으로 보다 더 나은 자신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자, 인격과 아울러 은퇴한 노후의 나만의 삶을 사유(思惟)하고 설계하면서 여유롭고 한가한 생활을 즐겨 보자는 소박한 목표였다. 그중 7번째 친구들과 가끔 연락하면서 살자가 가장 어려웠다. 어릴 때 시골서 함께 자란 소꿉친구들과 선후배들로부터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까지, 또 20대 후반부터 젊은 시절의 직장동료이자 우정 관계를 가진 사람들 등 다양한 친구들이 있는데도 모임을 결성해 월별로 만나는 단체 친구들 외는 특별히 맘속으로만 기억하고 추억하며 그리워할 뿐 얼굴도 보고, 밥도 함께 먹고, 차도 마시고, 술도 한잔 하며 안부도 묻고 회포도 풀며 즐겨보는 사람 사는 세상을 올해도 소원해 본다. 올해 2025년 새해를 맞아 잠시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보며 못다 한 목표들을 다시 챙기고 새로운 계획도 세워 진정한 결심과 아름다운 생활로 나만의 성취감을 맛보는 한 해로 키워 나갈 예정이다. ▣ 송근식 ◇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 前부산예문여고·광명고·경혜여고·건국중학교 교장 ◇ 학교법인 선화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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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근하신년(謹賀新年)의 덕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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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부산교육감 재선거, 후보단일화 추진 기구 단일화가 더 시급
- [교육연합신문=이정현 기자] 하윤수 前부산시교육감의 선거법 위반으로 인한 당선무효형 확정 후 그동안 야심차게 진행됐던 부산교육의 개혁드라이브가 정지가 된 상태다. 하 前교육감은 부산교육을 빠르게 정상화하는 데 기여해 왔으나 안타깝게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중도 하차하는 바람에 부산교육 정책이 멈춰버린 상태여서 부산의 시민단체와 학부모들은 하루빨리 부산교육이 정상화되어 하윤수 前교육감이 추진해 왔던 정책들을 계승해 주길 바라고 있다. 이런 부산시민들의 열망이 너무나 커서인지 중도·보수 후보 단일화를 추진하기 위한 기구들이 난립하는 양상이다. 지난 1월 2일 부산교총에서 기자회견을 연 '미래를 여는 교육감 추진위원회'(미교추)와 1월 6일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출범을 알린 '바른 부산교육감 후보단일화 추진위원회'(바교추)다. 그리고 또 다른 교육감 후보단일화 기구가 출범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중도·보수 교육감 후보 단일화 기구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정작 교육감 후보들은 어느 단일화 추진 기구에 합류해야 할지 난색을 표하고 있다. 단일화 기구부터 단일화가 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또한, 단일화 기구에서 보수와 진보 후보를 놓고 어떻게 구분을 해야 하는지도 고민되는 양상이라 후보 단일화 기구들의 실효성을 판단해 교육감 후보들이 어느 단일화 기구에 합류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루빨리 단일화 기구부터 단일화가 완성되어 후보들이 마음놓고 단일화에 참여해 정말로 아이들을 위한 부산교육정책을 펼쳐 하윤수 前교육감이 추진해 왔던 혁신과 개혁정책을 계승하길 부산시민들은 바라고 있다. 아침체인지, 독서체인지, 학력체인지 그리고 전국 최우수교육청 선정 등 부산교육의 성과가 빛이 바래기 전에 하루빨리 정상화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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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부산교육감 재선거, 후보단일화 추진 기구 단일화가 더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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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유와 성장의 선택 '기억 전달자'가 전하는 청소년 자립의 메시지
- [교육연합신문=유정걸 기고] 우리는 한 권의 冊을 check하며 어른이지만 여전히 미숙한 이 시대의 어른아이와 아이지만 어른들만큼 과중한 무게를 지고 살아가는 아이어른이 상호 존중과 배려의 자세로 살아가길 바란다. □ 자유와 성장의 선택 : 《기억 전달자》가 전하는 청소년 자립의 메시지 로이스 로리의 소설 기억 전달자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통제된 사회 속에서 인간다움과 자유가 억압당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 작품은 단순한 디스토피아 소설을 넘어, 권위와 자유, 선택의 의미에 대해 성찰하도록 만든다. 주인공 조너스(Jonas)는 자신이 속한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사회의 틀을 넘어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며 여정을 떠난다. 이는 청소년기, 즉 '아이어른'들에게 중요한 통찰을 전한다. 부모와 사회적 규칙이 성장의 토대를 이루지만, 그 틀을 넘어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자립과 독립을 이루는 것이 진정한 성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기억 전달자는 그러한 선택의 중요성을 강렬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 조너스의 선택 : 자유를 향한 용기 조너스는 통제와 안정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태어나 그 원칙을 충실히 따르며 살아왔다. 그러나 "기억 전달자"라는 임무를 맡아 고통과 기쁨, 사랑과 슬픔이 담긴 과거의 기억을 접하게 되면서, 그가 살던 세계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조너스는 자신을 둘러싼 체계가 인간다움을 억압하고 있음을 인지하며, 기존의 안락함을 버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한다. 이는 청소년기의 성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부모와 사회가 제공하는 규칙을 따르면서 동시에 그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기, 즉 '아이어른'으로서의 청소년기는 독립과 자립을 향한 과정이다. 조너스가 감수한 고통과 불확실성은 바로 청소년들이 자아를 발견하고 성장하는 데 필요한 용기를 상징한다. 그 과정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성숙한 어른으로 나아가는 성찰의 시간이다. □ 권위에 맞선 역사적 인물들과의 연결 역사를 돌아보면, 권위에 도전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던 인물들은 시대를 변화시켰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당시 교회의 종교적 권위에 맞서 지동설을 주장하며 과학적 진리를 밝혔고, 말콤 엑스는 억압적 사회 체계에 저항하며 인종 평등을 외쳤다. 이들의 선택은 안락함을 포기하고, 고통 속에서도 진리를 추구했던 여정이었다. 조너스의 이야기도 이들과 맥락을 같이한다. 조너스가 안정된 사회의 틀을 벗어나 자유와 진실을 찾아 떠났듯, 청소년들도 기존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고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이는 단순히 사회를 변화시키는 문제를 넘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길이기도 하다. □ 부모의 권위와 청소년의 독립 청소년기의 부모는 보호자이자 권위의 상징이다. 부모의 가르침은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지나치게 통제적일 경우 자녀의 독립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 기억 전달자에서 조너스의 부모 역시 사회의 틀 안에서 진정한 감정과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조너스는 이러한 권위를 수용하기보다 자신의 선택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다. 이 메시지는 부모와 청소년 모두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부모는 자녀가 자신의 선택을 통해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지해야 하며, 청소년은 부모의 권위를 무조건적으로 따르기보다 스스로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는 단순한 반항이 아닌,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다. □ 선택의 중요성 : 자유로 나아가는 첫걸음 기억 전달자는 조너스가 통제된 사회 속에서도 진실과 자유를 선택하며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그의 이야기는 청소년들이 권위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때 진정한 성숙과 자유를 얻을 수 있음을 일깨운다. 이는 성장의 필수적인 과정이며, 때로는 고통스럽더라도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열쇠다. 갈릴레오와 말콤 엑스처럼, 기존의 틀을 넘어선 선택은 언제나 사회를 변화시키는 첫걸음이 되어 왔다. 조너스의 이야기는 오늘날의 청소년들에게 스스로의 선택과 책임을 강조하며, 삶의 주체가 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와 성숙의 길임을 가르친다. □ 마무리하며 : "자유로운 선택을 두려워하지 말라" 자유를 향한 조너스의 여정은 청소년들에게 선택과 자립의 중요성을 강렬하게 전한다. 아이어른 시기의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존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 수용이 아니라, 스스로의 신념과 선택을 통해 삶의 방향을 결정하려는 노력이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성장을 넘어, 세상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길이다.기억 전달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어른들의 말을 무조건 믿지 말라. 믿음과 선택의 주체는 너희다." 청소년들이 이 말을 가슴에 새길 때, 진정한 자립과 자유의 세계가 열릴 것이다. ▣ 유정걸 원장 ◇ 비창문해력학원·의문을열다학원 원장 ◇ (주)인무늬교육공동체 대표이사 ◇ 진학일보사 편집부 부국장 ◇ 창작문예예술인협회 회원 ◇ 2019 대한문학세계 신인문학상 ◇ 2000 (주)교육과 인터넷 전국경연대회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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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유와 성장의 선택 '기억 전달자'가 전하는 청소년 자립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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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의대만 가면 행복한 학생인가요?
- [교육연합신문=윤도연 기고] 오후 1시 5분부터 40분까지 비행기마저 착륙하지 못하는, 한국인 모두가 한 마음으로 배려하는 ‘수능’이 끝났다. 그중 유독 관심을 받는 학생이 있다. 바로 수능 만점자 11명 중 유일한 일반고 고3 학생인 서OO 군이다. 그가 주목 받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수능 만점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의대 진학을 하지 않고 공대에 진학하기 때문이다. 그의 결정은 뉴스 제목으로 “의대 생각 없다”, “의대 갈 생각 없어요” 등이 될 만큼 화두가 되었다. 개인의 전공 선택이 뉴스가 될 만큼 한국에서 의대, 특히 ‘서울대 의대’가 가지는 의미는 크다. 이왕 대학을 갈 거면 인(in)서울, 그중에서도 상위권, 가능하다면 의대. 이미 우리는 위계적 피라미드를 손쉽게 상상할 수 있다. 따라서 피라미드 꼭대기를 선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하지 않은 서OO 군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에게도 ‘서울대 의대’가 피라미드 꼭대기일까. 아니다. 어릴 적부터 컴퓨터 공학에 관심을 가진 그에게 가장 최고의 선택은 바로 ‘컴퓨터 공학과’이다. 타인의 전공 선택이 뉴스로 도배되는 세상. 언제부턴가 대학과 전공은 개인의 선호가 아닌, 피라미드 순서에 맞춰 들어가는 관문이 되었다. 서OO 군의 고등학교도 이슈가 되었다. 해당 고등학교에서 서울대 합격자가 몇 명이 나왔는지 해당 학교가 어떤 학습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지 등에 대한 정보가 계속해 올라온다. 해당 고등학교만 가면 서울대에 갈 확률이 높아지는 것마냥 학부모의 관심들도 뜨겁다. 실제로 소위 ‘상위권 대학’에 잘 보내는 고등학교는 인기가 많다. 그리고 그런 소위 ‘명문고’는 대부분의 서울에 있다. 2024년 서울대 지역별 최초 합격자만 보더라도, 서울이 35.4%로 압도적으로 높다. 그중에서도 강남구가 7%로 가장 많으며, 이후 종로구, 성남시, 서초구 순이다. 분명 똑똑한 아이가 많으면 경쟁이 더 심화될 텐데도 불구하고 교육에 있어서 서울 선호 현상은 줄어들지 않는다. 위장 전입부터 학원 투어까지의 소식은 끊이질 않는다. 대학을 잘 가고싶은 사람들이 서울로 모이고 대학을 잘 보내준다는 사람들도 서울에 모인다. 경쟁과 정보 모두 한 곳으로 모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교육적 관심도로부터 소외당하는 지역이 생기기 마련이다. 문화자본과 경제자본의 격차를 고려해 농어촌전형 등 다양한 제도적 뒷받침을 해주고자 하나, 문제는 여전하다. 격정적인 경쟁을 거친 아이들 사이, 은밀한 차별이 생기기 때문이다. 같은 대학 내에서도 또 다른 위계 질서가 생겨난다. 러닝이 유행하니 ‘러닝화 계급도’가 유행하는 사회다. 오래 전부터 위계 질서가 사회 시스템 내에 자리잡은 탓이다. 문제는 교육과 미래 선택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대학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써 기능하자 ‘대학 순위’가 공고해졌다. 물질만능주의가 계속되자 수입이 ‘직업 선호도’를 결정짓는 기준이 되었다. 서울에 가면 혹은 명문고에 가면 ‘좋은 학벌’,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니. ‘서울, 명문고’와 ‘비서울, 일반고’ 사이의 빗금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격차는 단순 지역 차이 등을 넘어 실질적 학업 성취의 격차를 만들어내고 위계적 피라미드 계급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어쩌면 가장 평등해야 할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불평등하다니.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아온 ‘계급도’는 한순간에 바뀌기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지역이나 학교가 다르다고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절망하고 순응하지 않도록. 어릴 때부터 인생이 결정되지 않도록 말이다. 그 노력 속에는 전문성을 가진 교사, 차등 없는 교육 기회, 자식을 계층 이동 사다리로 여기지 않는 학부모, 대학별 위계서열을 완화하고자 하는 사회 등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개정된 2022 교육과정의 목표가 주체적인 글로벌 인재를 기르는 게 목표라면 우리는 정말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학교에서 온, 다양한 직업의 아이들을 만나고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보다 다양한 사회를 위한 한 걸음이다. 우리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을 의대만을 목표로 하는 아이로 교육하지 않는 것. ▣ 윤도연 ◇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석사 졸업 ◇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전공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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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의대만 가면 행복한 학생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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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少子懷之 - "젊은이들로부터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辭也者, 各指其所之『繫辭傳』3-2. 말 하나하나가 인생이 지향해야 바를 가리키고 있다는 말이다. 말은 함부로 해서도 안 되며,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세상은 찾고 있고 그리워한다. 사람은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이다. 이 말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모든 것은 언어 속에 담겨 있다는 뜻이다. 꽃을 꽃이라 불러야 꽃이 되듯이, 사람도 주변에 있는 가족, 친지, 지인에 대해 합당한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되며, 이때부터 자신이 무엇이라 부르는 사람과의 올바른 인간관계가 성립된다. 그래서 “言行, 君子之樞機”(『繫辭傳』8-2)라고 하지 않는가? “언행이야말로 추기와도 같이 군자가 천지를 움직이는 소이의 핵심이다.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언어는 본디 미추(美醜)의 관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아울러 미추의 관념이 존재해서도 안 된다. 어디까지니 사실을 사실 그대로 나타내고 표현할 뿐이다. 신체의 각 부분을 가리키는 언어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신체를 가리키는 우리말은 신체 각 부위가 담당하고 있는 역할이나 생긴 모양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말로 사실 그대로 나타내주고 있다. ‘아버지’라는 말은 ‘아부지’가 바른말이라고 한다. 아부지는 ‘아+부+지’의 합성어라고 한다. 여기서 ‘아’는 ‘아이’를 뜻하고, ‘부’는 ‘부르다.’이며, ‘지’는 ‘신체의 일부나 남성의 오지’를 가리킨다. 풀이하면 ‘아이를 이 세상에 불러오거나 낳아준 사람’이라는 뜻이며, 자식이 생부를 부를 때만 사용할 수 있는 호칭이라고 한다. 한유의 말을 빌린다. “글을 쓴다고 하는 것은 반드시 그 문장이 나타내고자 하는 절박한 실제 내용이 있어야 한다.” 고(古)의 도(道)란 반드시 도(道)를 밝히는 것이 되어야 한다(文以明道). 그것은 도를 전하는 도구이며 그 자체로 굴러가는 의미 없는 허깨비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고(古)의 도(道)는 세인들을 구차스럽게 칭찬하거나 비방하는 데 쓰잘데 없는 언어를 낭비하지 않는다. 문장이란 화려한 기교를 과시하기 위하여 쓰는 언어의 유희가 아니다. 한유의 말이 이어진다. 고인(古人)을 사모해도 직접 만나볼 길은 없다. 그러나 古道를 배운다는 것은 반드시 그 고인들의 문사(文辭)를 포괄적으로 통달해야 한다. 그 문사를 통달한다고 하는 것은 근원적으로 그 古道에 뜻을 두어야 한다. 道란 古道를 말하는 것이다. 古道란 선왕(先王)의 예악형정(禮樂刑政)이요 인간 의식주행(衣食住行)의 구체적 길(道)이었다. 고문이라 해서 고(古)로 돌아갈 수는 없다. 절실한 創新의 古였다. 고(古)란 현실에 대한 예리한 비판정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도 『논리-철학 논고』에서 “도대체 말하여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하여질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우리들은 침묵해야 한다.”고 말한다. 길거리를 지나는 무학(無學)의 노파에게 자작시를 들려주고 쉽게 알아듣지 못하는 구절은 뜯어고쳤다는 전설을 남긴 백거이(白居易)의 언어관과도 동일한 시대정신의 표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시대를 특정 짓는 시대정신(독일어 표현"Zeitgeist"과 영어식 표현 "spirit of the age, spirit of the time")이란 용어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걸쳐 독일의 철학자 요한 고트프리드 헤러더가 제시한 민족정신 개념으로 시작했다. 그는 인류사를 인간 정신 완성으로 향하는 보편적 역사로 파악하여 주장했고 실제 우리의 역사 또한 조금씩 서구와 동양의 정신들이 결합되고 부정되면서 어떤 전체적인 흐름을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시대정신은 한 시대에 지배적인 지적·정치적·사회적인 정신적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 시대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 통일 열망과 같은 사회적 상식을 가리켜 '시대정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운동이 몸에 대한 신뢰라면, 인간 사회의 시작점은 말에 대한 신뢰이다. 사람은 ‘말에 대한 신뢰’라는 얄팍하고 변덕스러운 감정으로 살아간다. 말을 신뢰하지 않으면 앎과 경험을 주고받을 수 없다. 우리는 타인이 진실을 말한다고 믿는 편이다. ‘지금 밖에 비가 온다.’는 말을 들으면 정말로 지금 비가 내리겠거니 생각한다. 누군가가 하는 말을 믿을지 말지 매 순간 달라지겠지만, 대체로 믿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하지만 모든 말을 똑같은 무게로 신뢰하는 건 아니다. 누구 말은 신뢰하지만 누구 말은 결코 믿지 않는다. 신뢰하지 않는 사람의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안 믿는다. 신뢰하는 사람의 말은 ‘메주에 물을 주면 꽃이 핀다.’고 해도 믿는다. 신뢰는 사적인 인연과 감정에 따라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사회적 공통 감각, 배경지식, 직업․지위․성별․지역․나이․정치적 성향에 따라 집단적이고 체계적으로, 그리고 차별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어른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한다. 세상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하면서 모든 것에 조건을 단다. “멋있게 남 보란 듯이 살고 싶니? 그러면 열심히 돈 벌어야지!” 이런 투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토록 바라던 어른이 된 뒤에 다시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고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사실 아무리 어른이 되어도 모든 것을 알고 책임질 수 있으며, 실수하지 않고 감정에 흔들리지 않으며 매사에 합리적인 사람은 없다. 아무리 어른이어도 빈틈이 있고 실수도 한다. 더구나 인간이기에 나이 들어도 감정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른도 운다. 어른도 겁을 내고 무서울 때가 있다. 어른도 아이 같은 면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린 시절 우리가 원했던 이상적인 부모의 모습을 어른이란 이름에 덮어씌운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든든하게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완벽한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다. 어른이란 제 인생의 짐을 제가 들고 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아직 힘이 없던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과 사회가 그 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이 되면 나 스스로 그 짐을 들어야 한다. 그 짐은 무겁고 힘들지만 좋은 점도 참 많다. 부모님이 내 짐을 들어 줄 때는 싫든 좋든 부모님이 이끄는 방향으로 가야만 했다. 그러나 내가 그 짐을 드는 순간, 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었다 가거나 시냇물에 발을 담글 수도 있다. 오솔길로 가도 되고, 큰길로 가도 된다. 가다가 낮잠을 잘 수도 있고 마음에 드는 것을 주울 수도 있다. 물론 그러다 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래도 어쨌든 내 선택에 의한 것이기에 기꺼이 책임질 수 있다. 내 짐을 내가 들고 인생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그 인생길을 가는 동안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만나지 않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아마도 그것이 나잇값의 대가로 얻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지난 조선 500년 동안 사회의 어른을 유림이라 칭하였다. 유학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말하면 ‘인(仁)’이라는 데 모든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럼 ‘인(仁)’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씨’, ‘씨앗’이라는 의미다. 씨앗은 싹이 터서 나무가 되어가는 과정을 밟는다. 그 과정에서 주변의 모든 상황과 교섭하면서 자란다. 주변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랄 수가 없다. 따라서 씨앗은 우주를 느끼는 존재인 것이다. ‘누가 여기 다쳐서 누워 있다. 피를 흘리고 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그 어려움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안다고 하는 것, 이것이 인(仁)이다. 여러 제후들이 공자에게 훌륭한 제자들을 보내달라고 하니까, 염구, 자로 등을 소개하면서 마지막에 한 말은 仁한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인(仁)’이라고 하는 것을 가장 지고의 인생 목표로 삼은 것이다. 仁이란 계속 깨어 있어야 하고, 느낄 줄 알고, 받아들일 줄 아는 공감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도 맞추어주고 저기에도 맞추어주는, 상황에 맞게 느낄 줄 알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儒는 지도자를 말한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민중을 위해 하늘에 비는 사람을 儒林이라 한다. 그러한 儒를 가르치는 사람이 孔子였다. 이런 儒林이 얼마나 있을까?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은 유학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나아가 고전을 안다고 하는 것은 유교를 도외시 하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나’부터 日新富有하는 사람으로 태어나는 다짐을 한다. 오늘날 지식인 되고자 하는 사람, 바른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유교의 가르침을 자기 몸에 습득해야 한다. 그런 유교적 소양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유림이라는 말을 입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표현해야 한다. 유학은 禮만 따로, 樂만 따로 말하지 않는다. 禮樂을 언제나 붙여서 말한다. 왜일까? 이러한 孔子의 뜻을 깊이 새겨보는 오늘, 禮異, 樂同의 의미를 깊이 느끼는 유림, 젊은이들로부터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그런 유림을 꿈꾸어 본다. 니체의 말을 빌어서 오늘을 정리한다. “신념이 있는 사람은 왠지 모르게 위대해 보이지만 그 사람은 자신의 과거 의견을 계속 가지고 있을 뿐, 그 시절부터 정신 또한 멈춰 버린 사람에 불과하다. 결국 정신의 태만이 신념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아무리 옳은 듯 보이는 의견이나 주장도 끊임없이 신진대사를 반복하고, 시대의 변화 속에서 사고를 수정하여 다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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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少子懷之 - "젊은이들로부터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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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三時天下'에 그친 비상계엄의 진실은 무엇인가?
- [교육연합신문=이정현 기자] 국민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12월 3일 밤의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다음날 새벽 국회의 계엄해제결의안 가결로 채 3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원위치로 돌아갔지만 그에 따른 후폭풍은 만만치 않음을 예고했다. 국회 의석 분포를 볼 때 계엄해제 의결 정족수가 충분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윤 대통령은 왜 무리한 비상계엄을 감행했을까? 검찰총장까지 지낸 법 전문가인 그가 그런 간단한 결과를 예상 못했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가 계엄해제 요구를 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국회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왜 그런 '계엄 쇼'를 벌였던 것일까? 윤석열 대통령은 판을 흔들고 싶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총선 패배 후 대통령의 개인기로 만회가 가능한 외교, 국방, 방산, 원전 수출 같은 분야를 제외하면 사실상 완전히 마비된 상태다. 거기에 정치판은 몇 년째 민생은 뒤로 하고 정쟁에만 매달려 온 상태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 쇼를 통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재판 지연과 김건희 관련 이슈에 매몰된 기존의 정치 구도를 타파하고 '윤석열 vs 반국가 세력'으로 정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이재명 대표가 재판을 지연시키고 김건희를 물고 늘어지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미끼가 되어 뛰어든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동안 민주당과 지지자들 즉, 윤 대통령의 '반국가 세력'이 김건희를 물고 늘어졌던 건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고 싶어도 이렇다 할 빌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상당히 선명한 명분이 생겼고, 민주당은 바라던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건 독이 든 성배일 수 있다.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민주당 주도로 발의된다 해도 국민의힘 의원들의 동조 없이는 국회를 통과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라는 최종 관문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통령 탄핵이 무위로 돌아간다면 민주당은 더 이상 탄핵을 정치 화두로 삼을 동력을 잃게 될 것이고, 그렇다고 다시 김건희 이슈로 분위기를 되돌릴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질 수도 있다. 반면에 윤석열 대통령은 더 잃을 지지율도 없는 마당에 탄핵이란 이슈를 통해 지지층을 규합하는 효과와 김건희 이슈 소거, 검사 및 여러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 소거 등의 성과를 얻게 된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도박이 과연 성공으로 끝날지는 미지수지만 그래도 민주당의 방해로 모든 게 지지부진한 현재의 상황보다는 나쁠 게 없다는 판단에서 '삼일천하'도 아닌 '삼시천하' 비상계엄 카드를 뽑아 든 것이 아닐까?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이라는 정치적 도박은 적지 않은 후폭풍을 몰고 왔다. 비상계엄은 해제되었지만 아직도 국민들은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세계 각국의 주요 정상들은 예정됐던 한국 방문 일정을 속속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있다. 한국을 '여행 위험국가'로 지정하고 자국민들의 한국 관광을 자제시키면서 자국민 보호조치에 나서는 국가가 늘고 있다. 주식시장에서는 외국인들의 자본 이탈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가뜩이나 내수 경기도 부진한데 이래저래 내우외환의 상황에 몰리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의 '반국가 세력'을 상대로 벌였던 도박판에서 비상계엄 카드로 "묻고 따블로 가" 보겠다는 판단의 결과가 그에게 얼마나 큰 정치적 이득을 가져다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벌인 도박판의 도박 빚은 고스란히 우리 국민들 몫으로 남았다. 영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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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三時天下'에 그친 비상계엄의 진실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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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매년 이맘때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보도블록 교체 공사
- [교육연합신문=이정현 기자] 연말이 다가오면 항상 보는 풍경들이 있다. 각 백화점마다 LED로 만든 크리스마스트리, 그리고 빨간 옷을 입고 종을 흔들고 있는 구세군의 모습들을 보면 올 한 해도 마무리되나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풍경을 보면 연말을 느끼는 장면이 있다. 바로 멀쩡했던 보도블록을 파헤쳐서 노인분들과 어린이들 보행은 물론 출근길 교통상황을 악화시키는 볼썽사나운 풍경이다. 쓰일 예산들을 아끼고 아끼다 멀쩡한 도로를 파헤쳐 예산을 쏟아부어야만 할까? 매년 보면서도 의아심이 가는 장면이다. 하물며 포장된 지 얼마 안 돼 노란 선들과 아스콘 색깔이 그대로인 곳을 파헤치는 곳도 있다. 물론 필요해서 하는 곳도 있겠지만 이제는 시민들의 눈에는 '또, 시작이구나'를 연발하게 한다. 이제 부산시와 각 구청들도 좀 바뀔 때도 됐는데 연말만 되면 바뀌지 않고 이 장면들이 연출돼 시민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이걸 일자리 창출로 이해해야 되는 걸까? 어려운 경기 속에서 국민들이 낸 혈세가 새고 있는 것을 보면 가슴 아프다. 행정을 보는 공무원들은 이런 것을 알까? 다른 예산들을 쓰려고 할 때는 항상 예산부족을 이유로 반려된 사업들이 많은데 유독 멀쩡한 도로를 파 헤집는 데는 빠짐없이 예산이 들어간다. 그것도 연말에... 관계자의 말을 빌리자면 "쓰지 않은 예산은 돌려줘야 하기에 연도에 다 써야 해서 일부러 다쓰는 경우도 있다"라고 한다. 국민들의 혈세를 좀 더 짜임새 있게 쓰일 수 있도록 확실한 계획이 필요하다. 지자체 단체장들은 한 번 더 꼼꼼하게 국민의 혈세가 집행되고 있는지를 살피고, 더 이상 이런 장면을 시민들이 보지 않았으면 한다. 2025년 연말에는 파헤쳐진 도로보다는 예쁘게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를 봤으면 좋겠고, 동맥경화에 걸린 도로가 아닌 확 뚫린 도로를 지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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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매년 이맘때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보도블록 교체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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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어른아이'와 '아이어른'의 여정에 대하여
- [교육연합신문=유정걸 기고] 어른이 됐지만 태어나 처음 겪는 삶 앞에서 미숙함을 드러내는 어른아이와, 아직 아이이지만 어른처럼 삶의 무게를 짊어진 아이어른이 있다. 우리는 모두 성장과 성숙이라는 여정을 걷지만, 그 길은 언제나 명확하지 않다. 본고는 '어른아이'와 '아이어른'이라는 관점으로 삶에서 성장과 성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탐구한다. 그 탐구는 문학작품을 통해 성장과 성숙의 여러 단면을 마주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지금부터 冊을 통해 ‘나와 우리’를 Check하는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 시련을 통해 성장하는 아이들: 안도현의 소설 <연어>가 주는 교훈 안도현의 소설 <연어>는 단순히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한 마리 연어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삶 속에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시련과 이를 극복해 성장하는 과정을 담아낸 아름다운 비유적 서사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청소년기를 연어의 여정에 비추어, 아이어른들이 겪는 시련의 의미와 어른아이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를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 연어의 여정과 청소년의 삶 연어는 태어나던 강을 떠나 바다로 나아간다. 넓은 세계를 경험해 성장하지만, 결국 태어난 강으로 돌아가기 위해 거친 여정을 시작한다. 물살은 거세고, 바위와 장애물이 길을 막아도 연어는 끝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간다. 이 여정은 바로 "시련이 곧 성장"임을 상징한다. 우리 아이어른들도 중,고교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비슷한 여정을 겪는다. 초등학교라는 익숙한 세계를 떠나, 학업과 진로 고민, 친구 관계 등 다양한 시련을 마주하며 성장해 나간다. 친구와의 갈등이나 성적 압박은 마치 연어가 부딪히는 강물의 바위와도 같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내면의 힘을 키우며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어 간다. □ 시련 속에서 얻는 성장 소설 속 강물과 바위, 물살은 연어의 시련을 상징해, 동시에 청소년들이 마주하는 현실의 고난을 떠올리게 한다. 시간이 강물 흐르듯 할 때 아이어른들의 성장 과정도 쉼 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장애물은 필연적으로 등장한다. 아이어른들은 이런 시련 속에서 방향을 잃기도 하지만, 연어처럼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성공 이후에도 시련은 끝나지 않는다. 연어가 산란 후에도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듯, 인생의 성공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의 시작임을 보여준다. 시험에 합격하거나 목표를 달성한 후에도, 아이어른들은 여전히 새로운 과제를 만나며 끊임없이 성장해 나간다. □ 부모의 역할: 시련의 동반자 어른아이들인 부모로서 우리는 아이어른들이 겪는 어려움을 대신 해결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나 연어는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성장이 이루어진다고 이야기한다. 아이어른들이 시련을 온전히 경험해 스스로 극복하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낮은 시험 성적으로 낙담한 아이에게 "다음엔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까?"라고 격려하는 말, 친구와의 갈등에 "서로의 입장을 들어보면 어떨까?"라고 조언하는 태도는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힘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존중해, 그 과정을 지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 시련은 성숙으로 가는 길 <연어>는 연어의 거친 여정을 통해 인생의 시련이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과정임을 알려준다. 우리 아이어른들도 학교생활과 학업, 관계에서의 어려움을 통해 스스로를 완성해 간다. 어른아이인 부모는 그 여정에서 빛이 되어주며, 아이가 물살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잃지 않도록 응원해야 한다. 시련은 두렵지만, 그것 없이는 성장이 없다.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오르며 완성된 존재로 거듭나듯, 아이들도 그들만의 시련을 통해 진정한 성숙을 찾아갈 것이다. 어른아이인 부모 역시 아이어른들의 시련을 함께 해 더 깊은 이해와 성숙한 마음을 지닌 동반자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는 ‘성격과 성향’이 ‘성장과 성숙’을 거듭할 것이며, 기어이 시련과 고난 너머의 ‘성공과 성취’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다. ▣ 유정걸 원장 ◇ 비창문해력학원·의문을열다학원 원장 ◇ (주)인무늬교육공동체 대표이사 ◇ 진학일보사 편집부 부국장 ◇ 창작문예예술인협회 회원 ◇ 2019 대한문학세계 신인문학상 ◇ 2000 (주)교육과 인터넷 전국경연대회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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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어른아이'와 '아이어른'의 여정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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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왜, 지금 '징비록'인가?
- [교육연합신문=편집국] 인간은 미래에 대해 궁금해한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것인지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역사를 배우고 역사에 대한 책을 읽는다면, 과거에 선배들이 내린 옳지 못한 선택들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과거에 대한 인식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역사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 역사를 잊는 자에게는 미래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징비(懲毖)란 말의 어원은 동양의 고전인 시경(詩經)의 “내가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하여 뒤에 환란(患亂)이 없도록 조심한다(予其懲而毖後患: 여기징이비후환).”에서 유래하고 있다. 특히 국가의 지도자나 기업의 CEO, 개인들이 상황 판단을 잘못해 중요한 국사를 그르치거나 공익, 개인의 일을 크게 해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다. 신발도 끌고 다니면 바닥이 쉽게 닳기 마련이고 쉬 헌 신발이 될 뿐만 아니라 사람 꼴도 반듯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렸을 적에 부모로부터 지적을 여러 차례 당한 경험이 있다. 소소하지만 역시 역사 교육이나 가정교육이란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속담에 ‘집안의 우환이 도둑이다.’란 말이 있다. 나라나 지자체가 하는 짓을 보면 집안 우환이 날이 갈수록 다들 앓아누울 지경이나 다름 없다. “나라에 변고가 생겼는데 책임지는 이가 없다면 이 나라는 허깨비가 됩니다. 장차 후학들이 뭘 배우고 뭐가 되겠습니까?” 과거 KBS에서 방영되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징비록>에서 류성룡 역을 맡은 배우 김상중이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로 언급한 대목이다. 이 드라마는 조선 선조 때 영의정까지 지냈던 서애 류성룡이 임진왜란을 기록한 『징비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에 걸친 전란의 원인, 전황 등을 담았는데, 말하자면, 과거 조정의 잘못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다시는 그런 전란을 겪지 않도록 대비하자는 유비무환의 기록이다. 왜, 지금 '징비록'인가? 오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졌는지? 그것을 성찰하는 것이, 어쩌면 역사의 또 다른 중요한 목표일 수 있다. 그럼, 왜 우리가 지금부터 한참 오래전에 존재했던 조선 시대의 국제 관계를 오늘날 살펴볼 필요가 있는지 그 얘기부터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자 한다. 한반도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쎈 네 나라의 입김 속에서 살고 있다. 지역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 그리고 과거 글로벌 강국이었던 소련의 후예인 러시아, 그리고 여전히 세계 최강국인 일본의 영향력 아래 살고 있다. 그런데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우리의 역사적 조건이 과거라고 달랐던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자, 한반도가 이렇게 민감한 지역에 있다 보니까 조선 시대를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강대국의 입김 속에서 살아야 했던 조선이라는 나라의 지정학적 현실을 복배수적(腹背受敵)이라는 말로 표현을 했다. 배와 등 양쪽에서 적을 맞이한다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한반도의 정면부에 있는 중국 대륙, 그리고 배후에 있는 일본 열도라는 이 강대국의 존재를 의식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는 그런 의미이겠지요. ‘생각하는 능력이 있으면 잘못한 후에 그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마음을 써서 반성한다. 생각하는 능력이 없으면 마음을 써서 반성하지 못하므로 잘못을 반복한다. 우리에게는 반성한 후에 남긴 기록물이 귀하다. 생각하는 능력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환란을 겪었는지보다 환란에 대하여 어떤 마음을 가지는가가 더 중요하다. 치욕을 또 당하지 않으려면, 환란의 진실을 마주하려는 자신을 잘 살필 일이다. 환란 속에서도 사적 이익에 눈이 먼 벼슬아치들에 싸인 채, 국가 경영의 길을 잃고 정치 공학에만 빠져 있던 선조가 제일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우리에게는 그래도 류성룡과 이순신이 있었다. 지금은 누가 선조인가. 누가 류성룡이고 누가 이순신인가. 나는 누구인가’라고 최진석 교수는 묻고 있다. 그럼 유성룡은 누구인가? 류성룡은 네 살에 글을 읽고, 여덟 살에 『맹자』를 읽었다. 고향은 안동이지만, 공부는 한양에서 했다. 퇴계 이황 문하에서 몇 달간 수업을 받았다. 퇴계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퇴계의 칭찬을 받은 큰 제자로서 이후 퇴계학파의 한 줄기를 이뤘다. 영민했던 류성룡은 25세에 문과에 급제, 벼슬길에 올랐다. 29세에 경연에 들어가 제일의 강관(講官? 경연 시간에 임금에게 경서를 강의하던 문관)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당시는 당파 간 갈등이 심했고 류성룡도 이런 갈등의 파고를 타고 고향과 한양을 오르내려야 했다. 그러다 좌의정 재임 중인 1592년 임진년 전쟁이 일어났다. 1년 뒤 영의정에 임명되 전쟁이 끝나가는 1598년까지 정치와 군사를 책임지는 도체찰사를 겸임했다. 조선에서 전쟁을 수행한 주요 벼슬아치들은 류성룡, 이순신, 이원익, 이덕형, 이항복 등이었다. 전쟁이 시작됐을 때 이들은 좌의정(정1품), 좌수사(정3품), 이판(정2품), 대사헌(종2품), 도승지(정3품)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 위의 수장이었다. 1598년 8월 1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었다. 조선에는 10월에 그 소식이 전해졌다. 마지막 전투는 11월 19일 노량에서 일어났고 이순신 장군이 전사했다. 실질적으로 임진왜란의 7년 전쟁이 끝났다. 그렇다면 류성룡은 전쟁의 시기에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징비록』에서는 일본을 너무 몰랐다고 말한다. 류성룡은 신숙주가 일본을 알라고 했던 유언을 떠올리면서 우리가 소홀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하면서 『징비록』을 집필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명, 일본, 여진에 대한 시각을 보면, 선조는 겉으론 명나라의 은혜로 산다고 했지만, 류성룡은 남을 구원하는 것과 남에게 구원을 바라는 것은 사정이 다르다면서 명나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중재에 나섰다고 보았다.” 류성룡은 전쟁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백성의 마음이 왜 떠났을까. 민심을 무너뜨린 임금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닐까. 류성룡은 전투를 줄 세워놓고 이를 분석하면서 하나의 사건이 다음 사건에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파악하고자 했다. 다채로운 사건에 대해 자신의 시각과 평가로 체계를 세웠다. 특히 백성들이 나라의 근간이자 근본임을 알아야 한다며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전투를 수행하지 못함을 강조했다. 전쟁도 중요하지만 백성들이 굶어죽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했던 사람이었다. “전투 현장을 샅샅이 봤던 사람으로서 류성룡은 꼼꼼히 정책들을 내놓았다. 전쟁 중이지만 전쟁 중이기에 그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류성룡은 영의정, 도제찰사, 훈련도감, 안집도감 도제조를 거치면서 훈련도감을 설치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을 발탁해서 썼다. 진관제 복구, 곡물을 쌀로 바치게 하는 작미법(대동법의 근간) 시행, 이순신도 같은 생각을 했던 둔전, 염전 등의 건의를 시행했다. 북방 여진족에 대비한 건의도 많이 했다. 이 중 사대부들이 특히 좋아하지 않은 것이 작미법과 훈련도감 설치였다. 또 노비를 군사로 돌리거나 공을 세웠을 때 면천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대부들은 반대했다.” 우리는 『징비록』 이후 징비했는가? “류성룡은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돌아봤을까?『서애문집』을 보면 죽기 전 일주일 전에 쓴 詩가 있다. 이 詩에 그의 심정이 잘 드러난다. 『징비록』을 보면, 한 시대의 전쟁을 겪어낸 사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를 추측할 수 있다. 류성룡은 이런 것을 반복하지 말라며 『징비록』을 썼는데 조선은 과연 징비했을까?” 산은 말이 없고 두견새는 우는데 두견새 울어대도 산은 답하지 않네. 산은 비록 말 없으나 뜻은 이미 족하니 희부연 달 떠올라 매화 가지 끝이 희구나. - 류성룡, 1607년 4월 30일 - 임진왜란 후에도 조선은 징비를 하지 않았고 청일전쟁 때는 결국 나라를 잃는 상황까지 왔다. 지금 우리는 징비를 하고 있을까? 지금 상황을 보면, 징비를 않고 있다. 사회가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도 받지 못한다. 갈등 상황도 심하고 국가 전체가 새로운 꿈을 꾸거나 젊은 사람에게 꿈을 꾸도록 하는 것 같지 않다. 『징비록』이 지금 대두되는 것도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국가적인 위기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에 따라 한 나라의 힘을 볼 수 있는데, 임진왜란처럼 어쩔 수 없이 일어난 국난에 닥쳤을 때 이를 해결하고 책임지는 자세가 중요하다. 다음 세대에게 그렇게 어려울 때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우리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부끄럽다. 자, 그렇다면 이렇게 유성룡이 징비록에서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대비한다고 라고 하는 정신을 강조했는데, 이 징비록의 정신은 계승되었는가? 유감스럽게도 계승되지 않았다. 위기가 사라지니까 위기의식도 사라졌고, 개혁을 하겠다라고 하는 의지도 사라졌다. 또 군대를 양성해야 한다고 하는 것도 위기가 사라지고 나니까 역시 공염불 비슷하게 사라진다. 2012년,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서 국치일을 앞두고 모 방송의 화면에 충격적인 장면이 잡혔다. 저 양재동에 가면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다. 카메라에 비친 기념관의 상황은 그야말로 경악하지 못해 처절했다. 벽에는 녹이 슬었고, 전기료가 없어서, 찜통 같은 더위 속에 윤봉길이 남긴 친필들은 전부 썩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관할하고 있는 구청, 보훈처, 서울시는 서로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상대방에게 떠넘긴다. 말로는 항일을, 극일을 열심히 강조하지만, 윤봉길과 같은 인물의 기념관조차 변변히 간수하지 못하는 우리가 이웃 나라에게 다음 세대들에게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이런 얘기를 한가로이 할 수 있을까? 징비록에 나타난 임진왜란 당시의 여러 상황을 놓고 보면, 외교와 교섭의 힘은 한 나라가 갖고 있는 능력과 힘에 딱 비례한다. 이글은 징비록에 대해 교훈의 말씀을 주신 분들의 덕택이라고 말씀드립니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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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왜, 지금 '징비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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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한 번쯤 기억하면 좋은 말들 ②
- [교육연합신문=송근식 기고] 학교 현장에서 담임, 부장, 교감,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회의 혹은 학교장 훈화를 통해 인용했던 말들을 한번 소환해 본다. 간략하게 몇 번 나누어 연재할 예정이니 재미삼아 가볍게 읽어 주시고 참고하시기 바란다. ”둔필승총(鈍筆勝摠)“이란 말을 다산 정약용 선생은 자주 사용했다. 천재의 기억력(총명)보다는 둔재의 메모가 더 낫다는 뜻이다. 여기 글들도 20여년 전 나의 교무수첩에 기록된 내용들이다. □ 성공의 루틴(routine) 가. 누가 봐도 선생은 성공한 사람이다. 성공 비결을 말씀하신다면? 나. 침묵하고 있다가 공식 하나를 적어 주었다. S = X+ Y +Z 가. 이게 무슨 뜻인가요 ? 나. S( Success)를 도출해 내기 위해서는 다음 조건이 필요하다. X.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 Y. 생활을 즐기는 것 Z. 고요한 시간 가. 성공에 왜 고요한 시간이 필요한가? 나. 고요히 자기 자신을 들어다 볼 시간이 없다면 목표가 빗나가기 때문이다. 위 내용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실천하긴 어렵다. 학생을 교육할 때도 필요하지만 성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귀가 둘인 것은 많이 들으라는 것이고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을 성숙시키고 말하는 방법과 상대의 지식도 터득하게 된다. 일에 미치고 공부에 미치는 것도 극단적이긴 해도 자신을 즐기는 것이고 고요한 시간을 갖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것은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불교의 3학인 계(戒), 정(定), 혜(慧)처럼 말을 조심(경계)하고 고요한 시간(定)을 가져 삶을 즐기는 지혜(慧)를 갖는 자신의 성공한 삶을 살도록 하자. □ 권력이나 부(富)보다 정신교육 강조 영국계 Angro-Saxion 족-북미진출인권, 자유 및 청교도 정신을 국가 이념으로 정신 강조 그 결과 인권, 자유 그리고 부(富)도 건설했다. 남유럽계 Latin족-남미지역 진출권력과 부의 국가 건설, 식민지 확장은 성공 250년 후 지금 상태는 반대 현상이다. 따라서 올바른 정신을 심어주는 교육이 중요(학교나 직장 조직도 정신교육 우선-이것은 종교에서 가장 잘 나타남) ”정신은 총칼에 의해 정복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영혼에 의해 정복되어 지는 것이다“란 베르고송 (Bergosong)의 말처럼 마음교육, 정신교육을 우리 가정이나 학교, 사회에서 앞서야 하는데 지금 우리의 교육 현실은 모든 곳에서 흐트려져 암담하고 참혹할 뿐이다. □ Leader의 자질 알파벳 Leader 속에 포함된 지도자의 뜻 1. Listening(겸손-타인 말에 귀 기울이기는 어려운 일)-듣고 귀기울일 줄 알고 2. explaining(설득력-인간미 갖추고 감화를 주려면 솔선수범 필요)-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하고 3. Assitance(동질감, 조력자-자만심, 자부심보다 평등 의식)-명령 보다는 도와 주어야 하고 4. discuss(합리성, 자신감-해박한 지식 소유하고 아집 버려야 한다)-토론 할 자신감 가져야 하고 5. evaluation(평가, 탁월한 지식 소유-적당한 지적 수준 유지해야 타인 평가 가능)-남을 평가하려면 자신이 먼저 해박한 지식을 가져야 하고 6. respect or responsibility(존경과 책임감, 신뢰-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질 때 구성원들에게 존경받는다) 통제 중심의 강한 조직보다 유연성 있는 부드러운 조직이 결국 더 오래 지탱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 탈무드에도 ”신은 모든 곳에 다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어머니를 창조했다”(God couldn’t be everywhere, so he created Mother)어머니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조직이 더 중요하고 삼국지의 유비처럼 덕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 지도자는 상황 따라 지도력을 다르게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해야 한다. 반드시 유연해서만은 안된다. 때론 강한 독재적인 지도자가 될 필요도 있다. 어떤 조직은 엄하고 강하게, 또 어떤 조직은 구성원에게 맡기되 중간 관리자를 잘 활용하고, 또 어떤 조직은 유연하게 할 줄 아는 결단력을 겸비해야 한다. 즉 지도자는 성(誠), 애(愛), 용(勇), 지(智)의 건전한 인격을 소유해야 한다. □ 말(言)은 말(馬)과 닮았다 말(馬)은 문만 열면 뛰어나가려는 본능이 있다. 말(言)도 혀끝에서 말이 꿈틀거리면 무심코 입을 벌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말로 입은 상처는 평생을 간다. 특히 관리자나 지도자의 위치에 있을 때 파워를 가지고 함부로 내뱉는 말은 조심해야 한다. 말에 대한 속담은 수없이 많은 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처럼 언어의 힘과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있고,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처럼 항상 말조심해야 한다는 경고와 “발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은 말의 전파력을 경계하고 언행을 조심하라는 말로 우리의 마음속에 항상 되새김질해야 한다. □ 장낙(長樂)과 장춘(長春)은 없다 늘 즐거운 봄날은 없다. 다만 오늘의 시간이 첫날이라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불교 경전에서도 이미 제행무상(諸行無常) 즉 모든 것은 불변의 도가 없다는 말로 허무주의가 아닌 중도로 좋은 일도 어려운 일도 ‘이 또한 지나 가리라’는 말과 같이 좋은 일도 궂은일도 항상 준비하며 살자. 우리가 잘 나가고 호황일 때 그 순간에 도취해 허비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할 줄 알라는 지엄한 명령인 것이다. 노후의 어려움과 빈곤은 인간 3대 비극 중의 하나인데 젊어서 그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 비익연리(比翼連理) 중국 전설에 나오는 비익조(比翼鳥)와 연리지(連理枝)를 뜻함 ▪ 비익조는 상상의 새로서 암수의 날개, 눈이 각각 1개여서 언제나 깃을 가지런히 하여 나는 새. 협동, 부부의 지극한 화락함을 비유하는 새. ▪ 연리지는 두 나무가 서로 맞닿아서 결이 서로 통한 것으로 화목한 부부나 깊은 남녀관계를 뜻한다.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백낙천(白樂天)은 장한가(長恨歌)에서 현종과 양귀비의 비련 관계를 ’하늘에서는 비익의 새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의 나무가 되리라‘고 표현했다. □ 타이타닉호의 침몰 영국의 자부심은 여러 면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1912년 4월 “타이타닉호” 침몰 때도 그 일면을 본다. 공포 속에서도 2,224명의 탑승자들은 선장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 영국인들의 질서 의식은 타의 귀감. 아이들과 부녀자, 노약자부터 먼저 구하고 나머지는 영국국가와 함께 침몰하는 모습은 신사 나라의 자부심이었다.(710명 구조, 1514명 사망) 이런 큰 사건을 당할 때 강한 소신을 가지고 시련을 이겨내는 의연함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것은 가정교육과 학교 교육 등 국격을 갖춘 고도의 인격에서 나온다. □ 인격자(人格者)답다 “ ~ 답다”는 곧 아름다움이고 답지 못하다는 추함이다. 신사답다, 숙녀답다, 사람답다, 선생답다, 엄마답다, 학생답다, 청년답다, 배우답다 등 등. “~ 답다”를 붙일 때 우리는 더 무게감을 느낀다. 의연하고 정중함까지 느낀다. 살아가면서 사람다움을 행하면서 수양하고 품격도 가져 보자. 이런 '~답게'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매스컴 등 스포츠, 오락 심지어 북콘서트 등에서도 주인공만 영웅으로 띄워 자기 통제(self-ruling)가 불가능한 젊은이들의 가치 형성에 영향을 끼치고 이런 '~답게'를 허용하지 않는다. 몇몇 분들의 인격적 요소를 보면 공자-지.인.용(知.仁,勇)/ 플라톤-지혜, 절제, 용, 정의의 4원덕/ 기독교-사랑, 믿음, 소망/ 불교-지혜와 자비/ 페스탈로치-머리(지식), 손(기술), 가슴, 도덕의 조화/ 괴테-의욕, 당위, 능력/ 칸트-자율의 원리와 책임능력 강조/ 도산-덕, 체, 지 3육 / 에디슨-99%노력과 1%의 영감 강조함. □ 2000년대 초 학생들이 원하는 담임 상(모 고교 설문조사 중) 1.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선생 같은 열정적인 사람 2. 천사들의 합창에 나오는 히메나처럼 외유내강의 천사같은 선생 3. 유덕화처럼 수려한 외모를 소유한 사람 4. 아놀드 슈할츠 제네그 처럼 남성미 소유한 사람 5. 맥가이버 같은 두뇌 소유한 사람 6. 나플레옹처럼 야망을 소유한 남자 7. 최불암처럼 인정 많고 자상한 담임 8. 대학교수 같은 지성미에 예리한 판단을 소유한 사람 등등. . . 어떤 조직이든 조직 구성원이 요구하는 리더들의 바람직한 상은 있지만 지금은 한 학급에 20명 내외의 학생들이고 내가 근무했던 고교의 설문조사 당시는 학급당 학생수가 60여 명 정도였기 때문에 개별 지도가 거의 불가능했고 위 희망 사항을 보면 교사는 만능인이 되어야 하며 돌이켜 보면 나는 비록 무능했지만 좋은 시대에 무난히 교직을 잘 마치고 정년퇴임을 했으니 감사할 뿐이다. □ 사나이=싸나이-사내, 남자(男子) cf 계집애 한창 혈기 왕성할 때의 남자를 이르는 말. 원래 장정을 뜻하는 “산과 아해”의 합성어로 장정아이 즉 산과 아이가 사나이로 점차 바뀜. 우스개로 사(四)나이로 풀이해 보면 1. 四나이 ; 유아기 (4살 전후까지) 2. 思나이 ; 사춘기 3. 事나이 ; 청.장년기 4. 死나이 ; 노년기, 관조의 시기 四, 思, 事, 死(4) 사나이를 격하게 발음해서 싸나이로, 마침 四가지(인, 의, 예, 지)가 없는 사람을 싸가지가 없다고 하듯이 재미로 4나이를 만든 것도 재치있는 일이다. 수없는 유행가 가사에도 등장하지만 싸나이들은 건강하고 용감하기도 해야 하고 의리와 순정도 지녀야 한다. 2번째 思나이 즉 사춘기 때를 잘 보내어야 하고, 이때 꿈과 이상을 품고 희망하는 대학과 직장을 잘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事나이 때 적성과 능력에 맞는 직장을 가져야 결혼도 하고 가정도 꾸리고 자식도 낳아 양육하며 공부도 시키고 결혼까지 시켜 분가해 자립시키려면 그 싸나이의 눈물을 얼마나 흘려야 할지 모른다. 단순한 용기를 떠나 모든 일에 열정을 쏟고 능력을 발휘할 때 싸나이를 빛낼 수 있다. □ 인사는 웃으며 다정하게, 말씨는 상냥하고 정중하게, 대화는 자상하고 부드럽게, 태도는 공손하고 단정하게. 어느 해 학급 급훈으로 사용했던 문구들이라 한번 기억해 본다. 어떤 가정이나 조직에서도 이런 인사, 말씨, 대화, 태도를 견지하고 습관화된다면 그것은 훌륭한 신사이고 이상적 국가의 주인으로 우뚝서게 될 것이다. □ 오늘의 문제는 싸우는 것이요, 내일의 문제는 이기는 것이요, 모든 날의 문제는 죽는 것이다. -빅토르 위고의 말 중에서. 인생은 투쟁에 비유된다. 산다는 것은 싸우는 것이다. 싸움에는 인간과 자연과의 싸움, 인간과 인간의 싸움, 자기와 자기와의 싸움이 있다. 싸운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이긴다는 것도 힘든 것이다. 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승리에는 영광과 환희와 긍지가 따르고 패배에는 고통과 비애가 따른다. 우리는 싸우면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이겨도 져도 큰 고통이 동반한다. 19세기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천재 음악가 니콜로 파가니니.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도 인생 자체는 실패자다. 인류역사상 최초 한줄 음악회를 가진 파가니니도 모세환상곡을 3줄이 끊어진 상태에서 한 줄로 연주했던 일화로 유명했고 8세때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했는데 써놓고 자기도 어려워서 연주를 못했다는 일화, 하루는 걸인이 연주를 하는데 대신 연주를 했더니 그 소리에 매혹돼 걸인에게 많은 돈을 주었다는 일화도 있다. 이런 위대한 연주자도 도박 등에 빠져 결혼, 가정, 인생 등 자신과의 싸움에선 실패했고 많은 예술가, 과학자, 정치가 등 수없는 실패자를 우리는 흔하게 많이 본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줄들이 하나하나 뚝 뚝 소리내면서 끊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좌절이나 비애에 빠지지 말고, 아직 남아있는 한 줄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 송근식 ◇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 前부산예문여고·광명고·경혜여고·건국중학교 교장 ◇ 학교법인 선화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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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한 번쯤 기억하면 좋은 말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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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부산시 교통카드시스템 사업자 공모자격 논란
- [교육연합신문=이정현 기자] 부산시가 교통카드 정산시스템을 운영할 새로운 사업자 공모를 추진하자 현 사업자인 (주)마이비가 "영구사업권"을 주장(부산일보 10월 14일 자 3면 등 보도)하고 나서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부산교통카드시스템은 구축 이후 27년 넘게 단일 사업자 체제로 운영되다 보니 신기술 도입이 더디고, 서비스 개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여러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부산시가 적극적으로 경쟁 체제를 도입해 서비스 혁신을 유도함으로써 시민 편익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이에 마이비 측은 반박을 통해 "'교통카드시스템' 단일 사업자 체제는 당연한 일이다. 교통카드를 개발한 회사가 그 운영을 전담하는 것을 이상하게 보는 그 눈길이 오히려 이상하다. 마이비가 전담하는 것이 눈꼴사나우면 부산시가 교통카드를 사서 그 운영을 다른 업체 맡기면 된다. 그리고 그 업체가 마음에 안 들면 공개모집을 통해 바꾸면 된다."라고 10월 23일 밝혔다. 부산일보에서 보도된 것 중 20일 부산시와 대중교통업계 등에 따르면 부산시는 지난해 발표한 '부산형 대중교통 혁신방안'에 따라 교통카드시스템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와 인천 등 전국 지자체들은 택시호출서비스, 비접촉결제시스템(태그리스) 통합 교통수단 예약, 결제 같은 첨단 모빌리티 서비스를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부산은 여전히 전통적인 요금징수 시스템에 머물러 있어 시민 편익이 뒤떨어진다는 평가에 다른 것'이라고 보도한 것에 마이비 측은 반박하고 있다. 마이비 측은 반박문을 통해 "서울시가 하고 있는 신기술 도입, 부산 마이비도 못할 게 없다. 서울시가 먼저 했을 뿐이다. 마이비가 늦은 이유는 그동안의 적자 때문이다. 적자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에 마이비는 365억 원을 투자했다. 서울시 티머니는 흑자 운영 중이고 서울시가 티머니 주인이다. 부산시와는 사정이 다르다. 부산시는 그동안 단 한 푼도 하나로카드에 지원하지 않았다. 교통카드가 공공재임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았다."라고 반박했다. 부산시는 내년 8월 현사업자인 마이비와의 협약기간 종료를 앞두고 새 교통카드 사업자 선정 공모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내년 8월에 종료되는 협약은 마이비의 사업권 존속 여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협약이다. 이 협약은 교통카드시스템 개선을 위한 협약인데 이는 구체적으로 교통공사와 버스조합과 마이비와의 협약이다. 이 협약을 부산시와 맺은 이유는 대중교통개선계획이라는 부산시의 한시적 프로젝트 때문이다. 그래서 부산시는 이협약에서 구체적인 협약은 교통공사+버스조합이 마이비와 다시 협약을 맺어 추진토록 한 것이다, 이 협약은 한시적 프로젝트형 협약이라 협약이 종료된다고 해서 다시 또 협약을 맺어야 할 이유는 없다. 단지 교통카드시스템은 10년 정도 되면 개선을 할 필요성이 있으므로 교통공사+버스조합은 계속해서 마이비와 협약 또는 계약을 맺어 개선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한 것을 부산시가 아예 교통카드사업자를 '새로운 사업자'로 바꾸려 드니 문제가 된 것이라고 마이비 측은 말한다. 부산시가 '새로운 사업자'를 공개모집 하려면 교통공사+버스조합이 마이비에게 판 하나로 카드 사업권을 도로 사들인 후 공개적으로 운영사업자를 모집해서 맡기면 된다. 그러나 마이비가 과연 그 사업권을 팔 것인가? 하나로교통카드를 개발했던 주역들이 만든 기업, 마이비가 자신의 발명품을 왜 팔겠는가?라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하나로교통카드는 민간에서 개발했고 민간인 마이비가 주인이다. 부산시가 교통카드의 주인이 아니다. 교통카드 운영과 관련해 부산시가 마이비와 계약을 맺은 적도 없고 계약을 맺을 사안도 아니다. 하나로교통카드 개발은 민간이 주도했고 부산시(지하철과 버스)는 마이비가 개발한 카드를 사용하는 기관이다. 시민은 카드 이용자다. 이 관계는 계약이 아니라 협약을 통해 이뤄지고 그래서 맺은 것이 운영협약이다. 지방계약법 같은 것이 끼어들 것이 아닌데 끼어넣어 비교하니 기가 막히다고 마이비 측은 말한다. 서울시가 부산과는 다른 점이 있다. 서울시는 티머니 카드 주인이다. 부산시는 하나로교통카드의 주인이 아니다. 서울시는 티머니 주인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사업자를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부산은 카드의 주인이 마이비이고 때문에 사업자 또한 마이비이다. 부산시가 서울처럼 주인이 되려면 마이비로부터 교통카드 관련 일체의 권한과 의무를 돈을 주고 사야 한다. 서울시가 티머니 사업권을 두고 경쟁체제를 도입하든 말든 그것은 주인인 서울시 마음대로다. 그러나 부산은 서울과는 경우가 다르다고 마이비 관계자는 말한다. 부산시가 뒤늦게 법리 검토를 하겠다고 나선 것은 사유재산인 하나로카드 사업권을 부산시가 법률 검토도 없이 마음대로 공개경쟁 시장에 내다 팔겠다는 발상이 잘못됐음을 인지했기 때문이 아닐까? 부산시는 하나로카드의 주인이 마이비와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서울 티머니 카드에 넘기려다 지금 곤욕을 치르고 있다. 특히 지역 기업을 두고 서울에 있는 기업에게 팔려고 했다는 것이 더 아쉬운 대목이다. 여기에 지역언론이 중립을 지켜야 할 때 부산시 대리인양 보도를 한 것에 마이비 측은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다. 부산 A법무법인에서 이 모든 것을 종합 부산시의 교통카드시스템 운영사업자 선정계획에 '부산시는 사업자 공모할 권한이 없다'는 부산하나로카드(주)의 입장에 대한 법리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A법무법인은 법리검토 과정에서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 제1호' '지방자치단체는 대중교통서비스의 향상을 위하여 새로운 교통수단의 보급과 시설, 장비의 확충 및 지원을 강화할 의무가 있고,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관련 법령을 적용할 수 있는지 중점적으로 본 것으로 전해졌다. 검토 결과 부산시가 정책수립과 시행을 넘어 교통 운영기관 즉 부산교통공사와 부산버스운송사업조합의 교통카드시스템 운영 등에 관한 의사를 결정하거나 운영사업 시행자를 선정할 권한은 법령에 부여돼 있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쨌든 버스와 지하철 모든 교통수단은 시민들의 발이다. 부산시와 마이비의 싸움으로 시민들의 발이 불편을 느껴서는 안 된다. 원만한 해결을 통해 부산시민들이 불편함이 없이 더욱 세련된 교통서비스를 받기를 바란다. 그리고 부산시는 부산 지역업체에 우선순위를 두고 타협해 나가는 현명한 판단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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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부산시 교통카드시스템 사업자 공모자격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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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도자, 어떠해야 하는가?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분수령이 되는 순간인 대전환의 시기엔 그 어느 때보다 섬세한 지식과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닌 지도자가 필요하다. 지도자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찾지 않고 그 사회와 시대가 앓는 병을 함께 아파해야 한다. 시대의 병을 시대 문제라고 하고, 그 병을 치료하는 의지가 통치 내지는 정치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도자는 어떠한가? 또 우리 조직, 단체의 지도자는? 현재 우리에게 보이는 지도자는 ‘운명공동체’의 지도자가 아니고 ‘이익공동체’의 대표자라는 느낌이 든다.’ 일인자로서 책임과 반성이 없고 교만하며 무절제한 자신감만 있는 ‘아무 말, 행동 대 잔치’라는 연속극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보통 우리가 민주주의 정치에서 채택하는 어떤 규칙, 관행, 문화가 적용되지 않는 지도자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옌쉐퉁 중국 칭화대 국제관계연구원장(72)은 이런 세계적인 현상을, “앞으로 10년 동안 탈세계화는 더 심해지고, 인권은 더 억압되며, 전제 지도자는 더 많이 나타날 겁니다.”라는 말로 변론했다. 갈등 부추기와 편 가르기, 혐오가 자신의 존재감을 키우는 기본적 장치가 되고, ‘탈진실이라는 배경과 맞물려 편 가르기와 상대를 죽이는 행태가 도를 넘고, 상대를 교묘히 헐뜯는 낱말 찾기 대행진의 기획처가 되어버린 우리의 현실’, 이것이 우리 지도자들의 민낯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참 뻔뻔한 세상이다. 부끄러움을 모른다. 의롭지 못한 행위에 대해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신에게 이로우면 그만이라는 태도를 취하는 이들이 널린 사회다.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마음이 이들을 떠난 지 이미 오래다. 그저 깃발을 따라 좌충우돌할 뿐이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만 그렇고 다른 지도자들은 그렇지 않은가? TV 뉴스에 나오는 사람도 그런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아첨과 변신의 최전선들 달리는 사람이다.’라는? 논어 위정편에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라는 글이 있다. 이 내용을 축약한 것이 ‘유치차격(有恥且格)’이다.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품격이 갖추어진다’는 의미다. 그러기 위해서 정치는 덕(德)이 있어야 하고 교육은 예(禮)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 우리 사회의 이 같은 모습을 경계한 공자의 예견이었다. 논어 위정편의 부끄러움(恥)이란 낱말을 보며 지금 우리 사회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라는 생각을 해본다. 거리낌과 두려움이 없는 사회를 일컫는다. 無忌憚의 사회다. 덕치를 하지 못하고 유치한 싸움만 일삼는 정치도 책임이 크다. 윤리와 도덕을 바탕으로 한 예(禮)를 가르치지 못한 교육의 책임은 더 크다. 결국 예(禮)를 가르치지 못한 사회가 직면할 모습이 지금 우리 사회다. 공자가 예견한 옳은 사회와 정반대에 와있다. 사회의 근간을 세우는 기본은 말과 문자이다. 따라서 말과 문자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 말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에 대한 이해를 위한 교육이 절실하다. ‘말’을 왜 ‘말’이라고 하지? 하는 물음의 일상화가 필요하다. ‘말은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라는 생각이다. 문제는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다. 학교 교육이 잘못됐다는 것을 사회가 인지하고도 바꾸거나 고치지 못한 것이 이미 30년이 넘었다. 문제는 지금 당장 교육이 바뀌어도 상식이 정상화되는 데도 최소한 20~30년이 걸리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아직도 학교 교육이 인성교육은 고사하고 교권 회복도 하지 못하고 있는 처지다. 이제 사회가 인성교육이 무너진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 시작했다. 민본사회 건설을 꿈꾸었던 조선의 대유학자 정도전에게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만 올바르게 사는 것이냐 하는 인간론적 물음’이 그의 삶을 집요하게 지배했다. 그에게는 삶의 철학이 정권의 쟁취보다 앞서는 것이었다. 사유의 결론은 지도자의 위(位)는 인(仁)으로만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치자(治者)가 치자의 위치를 보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천지가 끊임없이 만물을 생성하듯이, 仁한 마음을 지닐 수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작금의 지도자들은 삶의 철학보다는 정권의 쟁취가, 국민의 삶보다는 지도자 자신의 안위와 부귀, 더 나아가 아첨꾼들과의 동거동락, 연회가 더 중요하다. 불신의 정권이 지속되는 유일한 방법은 국민을 전쟁의 위협을 느끼게 몰고 가는 것이라는 얄팍하고 낯 뜨거운 지식을 만천하에 과시하고 있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다. 정도전은 말하고 있다. 단 한 번이라도 그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참으로 크게 걱정할 만한 일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아래에 있는 뭇 백성은 지극히 약하게 보이지만 힘으로 겁줄 수 없는 것이요, 지극히 어리석게 보이지만 지혜로써 속일 수도 없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얻으면 그들은 복종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그들은 곧 이반해버린다. 떠나고 붙는 것이 터럭만큼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옌쉐퉁 중국 칭화대 국제관계연구원장(72)은 갈등을 조장하는 정부 정책에 용감하게 목소리를 내는 시민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독재자의 정책 방향을 바꾸라는 일반 시민의 요구도 거세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향후 10년간 국제질서는 어떤 모습으로 진행될까?’라는 물음에 대해서, “탈세계화는 더 심해지고 국제규범을 어기는 경우도 늘어날 것이다.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일이 더 많아지고 전제 지도자는 더 많이 나타날 것이다.” “일단 좋은 성품을 가진 최고지도자가 당분간 많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변화를 바란다면, 먼저 정책이 곳곳에서 벽에 부딪혀야 한다. 정책 방향을 바꾸라는 사회적 요구가 거세져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子曰: ”舜其大知也與! 舜好問而好察邇言. 『繫辭傳』6-1 道行, 道明의 사례를 孔子는 舜이라는 탁월한 지도자의 大知(큰 지혜)를 들어 말하고 있다. 道는 정치권력으로 행하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만 행하여질 수 있는 것이다. 큰 지혜란 자기 스스로 큰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그 제1의 조건이다. 자기가 아는 것을 남에게 하달하거나 명령하거나 강요하는 일방적 방식은 우선 지혜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변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누구의 스승이 된 적이 없습니다. 오직 물었을 뿐입니다. 묻는 것을 중단할 수는 없습니다.” 위대한 지도자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묻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의미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儒敎의 물음은 자신을 깨우치기 위한 물음이다. 끊임없이 자신은 무지한 존재라는 전제를 가지고 죽을 때까지 노력하는 존재, 이것이 修身의 과정이다. 孔子는 “나를 믿으라.” “나를 따르라.”라는 말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스승으로서의 삶의 도리를 보여주었을 뿐이다. 『易 』도 점이 아니라 삶의 “물음”이었을 뿐이다. 청와대에 있었던 사람이건, 용산에 앉은 사람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묻기만 해야 한다. ‘내가 다 아노라.’ ‘국민들이여 나를 따르라.’라는 행태를 보여서는 아니 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자신에게 가장 가깝고 시시하게 보이는 말들을 잘 살펴야 한다.’ ‘아녀자들의 말이라도 그게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어린애가 말하는 그 소리에 하나님의 소리가 들어 있다.’라는 해월 최시형 선생의 말씀이 귓전을 맴돈다. 묻지 않는 자는 배울 수가 없다. ‘내가 다 해봤어.’라는 말은 천지자연의 이치인 『易』에 대해 공부해야 함을 웅변한다. 노동판에서 놀았다고 해서 노동자를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지금 노동자와 그때 노동자의 형편은 다르다. 모든 게 달라지고 있는데, 어떻게 다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해본 것은 현시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다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지금 우리는 끊임없이 새롭게 묻지 않으면 뒤지는 사람이 되고 만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태에 대해서 물어야 한다. 끊임없이 묻고 배우는 것을 공유하는 사람이야말로 지도자의 자질을 갖추는 것이다. 모든 교육은 학생이 아니라 지도자를 기르는 것이다. 『學記』 자기를 비우고 아는 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는 것이 없는 것처럼 그 상황 상황에서 묻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위대한 지식의 획득 방법이다. 모든 지식은 반드시 살아 있는 時中의 지식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죽은 지식은 도서관의 서가에 얼마든지 꽂혀 있다.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삶의 상황 속에서 우리의 앎 그 자체를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孔子에게서 문제 시 되는 것은 “궁극적 앎”이 아니라 “삶의 상황”이다. 상황의 매 순간마다 닥쳐오는 삶의 문제 해결을 묻는 것이다. 敎育의 목적은 “것”이 아니라 “함”이다. 배울 學의 어원은 ‘하다.’임을 아는 것은 지도자로서 철 발걸음을 떼는 것이다. “信在言前也” 『淮南子』「繆稱」편에 나오는 이 말에 사람이 있고 지도자가 있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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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도자, 어떠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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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한 번쯤 기억하면 좋은 말들
- [교육연합신문=송근식 기고] 학교 현장에서 담임, 부장, 교감,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회의 혹은 학교장 훈화를 통해 인용했던 말들을 한번 소환해 본다. 간략하게 몇 번 나누어 연재할 예정이니 재미삼아 가볍게 읽어 주시고 참고하시기 바란다. □ 가시나무새 수많은 전설의 새 중에서 예리한 가시에 찔려 그 처절한 고통을 아름다운 울음으로 승화시켜 100년마다 한 번 우는 새, 우리는 이 새에서 고통의 아름다움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이 새를 좋아한다. 인생 앞날엔 무수한 고통이 전개된다. 희망도 기쁨도 존재하지만 어렵고 힘들 때마다 가시나무새의 교훈을 기억하자. ▪ 사랑의 비극은 죽음도 이별도 아니다. 오직 한 쪽이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 것 즉, 사랑의 무관심이다. - 섬머셋 모흠의 The Red(빨강머리) 중에서 어떤 이는 짝사랑을 사랑의 극치이며 아름다움이라고도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서로 주고받을 때 완성된다. ▪ 나는 싸울 용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체와 친화한다. 나는 의심할 용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체를 믿는다. - 데카르트의 방법서설(方法序說)중에서 용기 없는 자의 겸손이라고도 할 수 있고 자기방어와 합리화라고도 할 수 있지만 자신에 대한 용기와 충만감은 항상 중요하다. ▪ 명예는 상사(上司)에게 ▪ 훈장은 부하(部下)에게 ▪ 책임은 자기(自己)에게, 강한 개인주의 성향을 표출하는 요즘 MZ세대에는 상사가 시키면 "왜 내가요?"라는 젊은이들에게는 전혀 불가능한 얘기지만 선한 행동은 언젠가는 자기에게 다 돌아오게 되는 것이 삶의 원리다. 우선 손해 보는 듯해도 자신의 마음을 가장 평온하게 만들어 준다. ▪ 덕(德)없는 지식(知識)은 악(惡)의 씨가 되고 체(體)없는 지식은 불평불만을 잉태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지덕체(智德體)를 강조하지만 도산 안창호 선생은 덕체지를 강조해 덕과 체의 함양을 역설했다. 조선시대 실학자 최한기는 덕은 심성이고 더불어사는 사회의 7할을 차지, 지는 2할, 체는 용모로서 1할을 갖는다고 정의했다. -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 중에서 □ 많이 인용한 도산 말씀 ▪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나라가 망한다. 청년을 신체의 보이지 않는 곳에 비유하여 항상 활동하고 있는 상태 또 젊은이들의 교육을 강조하고 청년학우회, 점진학교, 대성학교, 흥사단 등을 창립했다. ▪ 힘을 기르자: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내가 인물될 공부를 하지 않아서이다. 흥사단의 마크를 선비士(기러기 표시)로 하고 선비는 엘리트이며, 기러기는 반드시 무리 지어 날므로 단결(힘) 강조. ▪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 꿈에라도 거짓말을 하였거든 통회하라.(신의 강조) ▪ 나는 사람을 가리켜 개조하는 동물이라 하오.(국토, 사회, 성격, 생활, 정신개조 주창. 동물은 개조 능력 없음) 비전(vision) 강조, 민족개조론 저작. ▪ 주인정신 강조: 5대 주인정신 (내 인생, 내 운명의 주인, 가정의 주인, 직장의 주인(니체-직업은 인생의 등뼈와 같다) ▪ 지역사회의 주인 ▪ 국가, 민족의 주인(국가와 민족은 선택 아닌 운명적이다) □ 인격자 강조: 지(知)보다 덕.체(德.體)를 강조,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그대가 먼저 건전한 인격을 가져라. 훈훈한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얼굴: 웃음은 본인의 건강에도 타인에도 좋다. 돈 들이지 않고, 힘들이지 않고, 시간들이지 않고 화장하는 것이 미소이다. 잠깐 지어도 영원한 것이 된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필자는 건국중학교 교장 4년간 이 문구를 플래카드로 본관 현관에 걸어 놓고 수시로 강조했다. ▪ 도산 사상은 새나라 건설, 새 사람, 새 정신 창조이다 □ 우리의 신조(교사) 교육의 열매는 교단에서 영근다. 모든 학생들에게 보다 많은 칭찬, 보다 많은 사랑, 보다 높은 이상, 보다 넓은 자유를 펼쳐 주고, 교육현장에는 더 많은 즐거움, 더 깊은 밀도, 더 높은 기량, 더 굳센 신념으로 가득 채운다.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기에 해마다 신년 수첩에 옮겨 적어 자아실현(自我實現)을 위해 노력해 보자. □ 교사의 길은 땅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소리를 듣는다. 세상의 유혹에 귀 기울이지 않고 보다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소리를 듣는다. 외부의 잡음은 듣지 않고 양심의 지엄한 목소리를 듣는다. 물질적 보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의 거룩한 목소리를 듣는다. - 오천석(吳天錫, 1901~1987))교육학·철학박사 □ 사도 3락(師道3樂) ▪ 고귀한 성직에 종사하는 낙 ▪ 학문하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낙 ▪ 성실하고 유능한 국가사회에 동량지재(棟梁之材)를 길러내는 낙. 공자의 3락과 맹자의 3락은 각자의 성장 환경과 활동 배경이 달라 그 시대 경험의 표현이다. 권력과 명성은 행복과 무관하다고 달관한 공자와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하기 전 군웅이 활거하는 전국시대를 지켜본 맹자와 비교된다. 현대인들 속에 이를 극복하는 과제는 어렵고 힘들다. 각자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스스로 인격 수양해 행동하는 양심이 직업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 참고 : 교학상장;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모두 자신의 학업을 성장시키는 것, 동량지재; 한 집안이나 나라의 기둥이 될 만한 인재 □ 학교 경영관 ▪ 학생을 보고 교육 한다(교육의 대상) ▪ 자기 힘껏 한다(자아의 실현) ▪ 할 바에는 잘해 본다(교육의 선진) ▪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상대방을 생각한다(상대방 입장) □ 20여년 전 ㈜농심(農心)이 설문조사한 '바람직한 직장인상 8가지' ▪ 모성애형 - 일종의 주인의식으로 모든일에 능동적 대처 (남의 업무에도 관심을 갖고 협조) ▪ 예의 범절형 - 상하에 예의 중시하고 따뜻한 인사 나눔 ▪ 솔선수범형 - 항상 일을 찿아 한다 ▪ 책임 의식 투철함 - 자기 일에 대한 책임 ▪ 희망 지향형 - 매사에 희망을 갖고 생각 ▪ 왕발형 - 대인관계 원만 ▪ 미래 발전형 -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앞날을 내다보고 행동 ▪ 초침 관리형 - 자기 통제를 엄격히 함 사내의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이 나온 ‘직장인의 상’이지만 AI시대 현대 직장인들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는 추억 같은 내용들이다. 그래도 회사를 경영하거나 직장인으로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은 한 번쯤 기억해 보고 실행해 볼 필요가 있다. ▣ 송근식 ◇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 前부산예문여고·광명고·경혜여고·건국중학교 교장 ◇ 학교법인 선화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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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한 번쯤 기억하면 좋은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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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안전교육의 역사를 새로 쓰는 일
- [교육연합신문=서동욱 기고] 제24회 불조심어린이마당 전국대회 본선 결과가 발표되었다. 불조심어린이마당은 소방청과 한국화재보험협회가 공동 주최하는 대회로 교육부에서 후원하며 전국 각지에서 해마다 1만여 명의 초등학생, 약 400여 개 학급이 참여하는 대규모 안전교육 퀴즈대회다. 필자가 지도하는 학생들은 대회 24년 역사상 처음으로 5년 연속 전국 대회 수상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동일한 학교가 5년 연속으로 이 대회에서 수상한 적은 없거니와 그중 전국 1위인 대상을 4회 수상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즉 우리 반 학생들은 불조심어린이마당에서 새로운 역사를 쓴 학생들인 것이다. 그동안 학생들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갓 3학년을 벗어난 3월의 장난기가 넘치던 모습에서 이제는 제법 의젓한 11살 4학년 학생들이 되었다. 그동안의 한국119청소년단 체험활동과 훈련, 연습을 통해 학생들은 다양한 안전 지식을 습득하고 실천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게 되었다. 그 역량으로 불조심어린이마당에서 5학년 학생들을 제치고 4학년들이 처음으로 1위를 하여 경남도지상을 수상하였으며 전국대회에도 출전하여 위와 같은 성과를 거둔 것이다. 지도를 하는 동안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행동하도록 변화시키고자 부단히 노력하였다. 나는 절대 학생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학생의 의견을 존중하기 때문에 학생이 하지 않겠다고 하면 절대 권유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안전역량을 습득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은 학생이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것도 학생이며 수상하는 것도 학생이다. 학생이 주체이며 교사는 그저 옆에서 가야 할 길을 말해 줄 뿐이다. 그 길을 가느냐 가지 않느냐는 학생이 선택할 문제이며 그 선택과 결과에 각자 책임을 지면 된다. 이렇게 지도를 하면 학생들은 안전은 스스로의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오히려 더욱 열심히 안전교육에 참여하게 된다. 지난 6년간의 대회 참여 경험을 통해 나는 이것을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안전교육의 성과는 교사가 학교와 소방서와의 교류를 지속적으로 유도하였기에 가능했다. 소방서는 지역 주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안전 유관기관이다. 그리고 학교는 지역 학생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 유관기관이다. 그 중간 지점에서 안전과 교육이 만나서 실질적인 안전교육이 이루어지고 한국119청소년단이 원활하게 운영되는 것이다. 나는 이제 주변 선생님들에게 한국119청소년단을 추천하곤 한다. 한국119청소년 단원이 된 학생들의 변화 모습을 보면 이 단체는 안전교육에 정말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축 역할을 하는 것은 교사다. 교사가 핵심이 되어 이러한 안전교육 환경을 만든다면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안전에 대한 의식은 바뀔 것이고 지역 사회의 안전 문화 확산 또한 쉽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교사이자 소방안전교육사, 안전교육전문가로서 나의 사명을 다하고자 한다. 2019년부터 이어진 이런 노력은 어린이 소방관을 약 300여 명 길러내는 성과를 거두었고 안전의식이 투철한 이 어린이들이 자라면 우리 사회는 조금 더 안전해지지 않을까. ▣ 서동욱 ◇ 초등학교 교사 ◇ 미국 화재폭발조사관(CFEI) ◇ 소방안전교육사 및 소방학교 외래강사 ◇ 한국119청소년단 지도교사 ◇ 소방안전교육사 국민안전교육실무 교재 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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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안전교육의 역사를 새로 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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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청(自請)하는 효(孝)!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우리는 근대화와 서구화를 동일한 개념으로 인식하고 근대화를 시작했기 때문에 근대화는 곧 서구화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구화를 앞당기기 위해서 우리의 고전과 전통을 척결하고자 애를 썼습니다. 서구화를 위해서 변법개조(變法改造)와 전반서화(全般西化)를 동시에 결행했다는 말입니다. 서구사회에서 구축한 물리적 체계와 정신적․사회적 체계를 수용하고자 일체의 학문체계를 서구의 학문으로 대체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서구화는 미국화였습니다. 학문도 철학도 교육도 미국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미국을 본받으려고 유학길에 올랐고, 대학 강단 등에서 실력 있는 강사가 되려면 남들이 알아먹을 수 없는 영어로 하고, 듣는 사람은 무슨 말인지도 몰라야 명강사로 일컬어졌습니다. 지금도 그런 풍습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우리나라 문해력과 소통 능력은 세계에서 꼴찌를 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명문 리버럴아츠 칼리지로 꼽히는 애머스트대 마이클 엘리엇 총장은 지난 1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인공지능 시대에는 다른 사람과 소통하며 문화, 역사, 언어의 복잡성을 이해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며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마음속 호기심에 따라 지적 열정을 찾아보라.”고 조언했다고 합니다. “AI 시대에도 인문학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어쩌면 지금보다 중요성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물론 AI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AI를 향해 어떤 질문을 던질지는 인간이 결정해야 합니다. 창의력, 의사소통 능력,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 중요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AI가 가져올 수많은 도전과 해결책을 이해하고 문화, 역사, 언어의 복잡성을 알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합니다. 이런 능력을 인문학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고 한 말을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인의 가치관도 20세기를 통해 미국화를 지향할 뿐이었습니다. 말도 옷도 더 나아가 책 제목도 영어로 쓰여 있어야 지식인의 취급을 받았습니다. 20세기 미국 문명은 세계 지성인들의 합심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미국 쌀이라고 하면 안심하고 먹었다고 합니다. 미제(美製)라고 하면 선택의 최우선 기준이었다는 것이지요. 가전도 음식 이름도, 상품 이름도, 음식점 이름도 미제를 최고 가치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세계를 불안하게 만들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놓는 제국주의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도덕성과 보편성, 분별성의 부재를 낳고 있지요. 오늘날 미국 여권(旅券; 패스포트)를 가지고 다니면 봉변을 당한다고 합니다. 도덕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대접받지 못하는, 나쁜 나라, ‘나뿐인 나라’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존재는 유한하며, 태어남과 죽음을 반드시 공유하며, 인간존재의 연속은 무한하다는 것이 우리 동양 철학입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분을 위한 집을 사당이라고 하여 집의 뒤쪽 높은 곳에 짓습니다. 사당에 모셔진 조상은 살아 있는 집식구들과 동일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밖에 나갔다 오면 먼저 사당에 가서 인사를 하고 부모님을 뵙게 되어 있었습니다. 죽은 자가 죽음으로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연속되는 것이 제사입니다. 죽어도 생명으로 살아남는 것입니다. ‘주역’ ‘계사전’에서도 “生生之謂易”(생생지위역) 곧 “낳고 낳음을 역이라 한다”고 했습니다. 생생(生生)은 달리 말하면 “생겨나고 생겨남”입니다. 모든 생겨나는 것은 곧 죽고, 죽지 않는 것은 생겨나지 않는 것뿐이라는 의미입니다. “효(孝)”라는 언어와 그 관념은 우리 민족에게 끊임없이 도덕성의 근거를 제공해 온 위대한 무형자산입니다. 한국은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더 충실하게 그 전통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孝”라는 개념은 오직 한자문화권의 사람들에게만 통용되는 인간관의 소산입니다. 서양인들에게는 “孝”라는 단일한 관념도 언어도 없습니다. 따라서 “孝”의 가치관이나 미담도 없습니다. 우리는 개화기를 통하여 서양인들의 이러한 ‘상스러움’을 ‘독립심 고양’이라는 맥락으로 오히려 찬양하여 왔습니다. 이게 천손(天孫)이라는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까? 현재 우리 사회에는 청년들에게 헌신하고 또 야단치는 어른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분위기 조성을 위한 국민 모두의 관심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입니다. 영국의 역사가인 아널드 조지프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CH, 1889년 4월 14일~1975년 10월 22일)는 세상을 뜨기 2년 전인 1973년에 국회의원을 지낸 임덕규 씨의 방문을 받아 한국의 '효 사상과 경로사상, 가족제도' 등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때 86세의 노인이었던 토인비는 그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한국의 효 사상에 대한 설명을 듣고 보니 이는 인류를 위해 가장 필요한 사상"이라며 "한국뿐 아니라 서양에도 '효' 문화가 전파되었으면 좋겠다"라며 개인적인 희망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13經 중의 하나로 경(經)의 자격을 획득한 경전이 『孝經(효경)』입니다. 경(經)이라는 글자는 당대의 모든 사람들이 따르면 좋겠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시대적 가치, 이념, 가치관 등이 담겨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경전(經典)이란 소명(召命)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실행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공부를 합니다. 공부를 통해서 행복해졌는지? 지혜가 커졌는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돌아보는 진실한 태도가 일상화되었는지? 등을 살피는 과정에서 경(經)의 참된 의미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고루한 동네 향원(鄕愿)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멈추면 끝입니다. 사람으로 완성되는 길을 걷기 위해서는 건너가기를 해야 합니다. 깨달음이란 생경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단순한 행위를 오랫동안 반복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공부할 때는 모두 다 함께 지켜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 이런 규칙은 근본적인 의미에서는 자청한 것이어야지 부과되면 안 됩니다. 남으로부터 부과된 것은 오래 할 수 없습니다. 자청한 것은 오래 할 수 있습니다. 부과된 것을 오래 하는 사람은 바보일 가능성이 큽니다. 자청은 지치지 않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도덕경》에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無爲만 읽고 無不爲를 읽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위하면 되지 않을 것이 없다’라는 내용입니다. 노자의 시선은 무위보다는 ‘되지 않을 것이 없다’라는 뜻인 무불위를 향해 있습니다. 무불위 중에 궁극의 경지는 취천하(取天下), 즉 천하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그냥 자신이 읽고 싶은 것만 읽어서는 세상을 알 수 없습니다. 힘 빼는 데 3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운동을 배울 때는 힘 빼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하고 듣습니다. 힘을 빼는 이유는 더 큰 힘을 더 정확히 구사하기 위함에 있습니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는 이유는 물러섬 그 자체에 있지 않고, 더 앞서기 위한 희망에 있습니다. 목적은 결국 앞서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주나라를 세운 힘은 계력 → 문왕 → 무왕으로 이어지는 3대 문명의 작위와 상통합니다. 주나라를 일으킴은 효의 전범이며 혁명의 3대로 칭송되고 있습니다. 孝의 바탕이 없는 혁명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혁명은 당대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3대의 축적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태조 이성계 → 태종 이방원 → 세종의 경우를 보아도 문화를 바꾸는 것도 孝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孝란 무엇일까요? "중용"에 좋은 정의가 있습니다. “부효자 선계인지지 선술인지사야(夫孝者 善繼人之志 善述人之事也)” ‘무릇 효란 사람의 좋은 뜻(유지)을 잘 이어받고 훌륭한 사람의 일(유업)을 잘 저술해서 남기는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신사임당(申師任堂)의 師任은 주나라 혁명의 장본인인 문왕(文王)을 낳은 태임(太任)을 본받겠다는 간절한 의지 표현입니다. 조선왕조의 신기원을 이룩할만한 자식을 키우겠다는 결의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申師任堂은 거대한 인문과 정치 혁명의 어머니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孝”는 자신의 존재를 역사 속에 남기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만드는 일입니다. 협애한 가문, 명예의 연속이 아니라 인간세의 근원적이고도 보편적인 도덕성의 연원입니다. 또한 자신을 역사 속에 보장받는 제도입니다. 역사에 더러운 이름을 남기지 않으려고 자청하는 것이 “孝”의 근원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역사가 심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진정한 아가페(agepe)적인 사랑은 두 가지입니다. 어머니와 태양입니다. 태양은 일방적으로 사랑을 줍니다. 생명의 모든 근원은 태양입니다. 태양은 feedback을 하지 않습니다. 대기권에 있는 모든 것은 feedback 체제입니다. 태양처럼 위대한 아가페(agepe)는 없습니다. 태양에 해당하는 삶이 또 하나 있습니다.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효孝”입니다. 반복하고, 반복하면, 감동이 일어나고, 감동이 일어나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구일효 일일효 우일효(苟日孝 日日孝 又日孝)’ 하고 외치고 또 외치는 우리의 일상을 기대합니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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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청(自請)하는 효(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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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사회규범으로서 교육의 필요성과 도움 행동 간의 근접성
- [교육연합신문=김홍태 기고] 지난 9월 20일(금) 오전 10시경 전북 김제시 금구면에서 김제시내로 가던 중 빗길에 승용차 한 대가 전복됐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갈 길을 멈추고 차분히 사고차량의 운전자 한 사람을 꺼낸다. 그리고 의식이 있는지 안심을 시키킨 후 주위를 정리한다. 한 시민은 100m 전방에 위험삼각대를 설치하고 119에 신고한다. 또 다른 시민은 고속으로 질주하는 차들의 속도를 제지하고 무사히 사고현장을 빠져나가도록 조치한다. 잠시 후 119 구급대가 도착하고 경찰차가 도착하고 신속히 사고 현장을 정리한다. 그 와중에 한 20대 후반 여성이 침착하게 행동을 함으로써 후속 사고를 예방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녀의 직업은 김제시내에서 ‘은혜식탁’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인데 “제가 선택한 일에 후회 안 하고 행복하게 사는 게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라며 담담히 이야기하는 도중에 내면의 깊이를 알 수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도움행동을 하는 이유는 보상의 극대화와 비용의 최소화를 목표로 두는데 이를 사회심리학자는 사회교환 이론(social exchange theory)이라고 하고 철학자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라고 한다. 이들 이론은 도움을 줄 때 시간, 주위환경, 불편함 등에 드는 비용을 죄책감의 감소, 사회적 인정, 좋은 감정, 종교적 헌신 등이 이득과 대비시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도움행동을 통한 보상이 비용을 능가할 것이라고 예상하며 돕는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 책임규범(social-responsibility norm)도 있다. 비록 비용이 이득의 가치를 넘더라도 결식아동이나 전쟁 또는 자연재해로 인한 난민들을 당연히 도와야 한다는 규범도 학습하게 된다. 하지만 당연한 학습을 해 왔을지라도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많은 용기와 실천력이 필요하다. 개인주의가 판치는 현대사회에서 능동적이고 헌신적인 도움행동을 하는 자체가 ‘그래도 살 가치가 있는’ 세상이 아닌가 싶다. 신속히 달려와준 119 대원들, 경찰분들이 참으로 아름답고 감사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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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사회규범으로서 교육의 필요성과 도움 행동 간의 근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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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중대재해처벌법을 통한 국민안전문화 확대
- [교육연합신문=김성제 기고] 2024년 8월 22일 저녁 7시 34분경 경기도 부천시 모 호텔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사망하고 12명이 중경상을 당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에 경찰 당국은 즉시 수사본부를 구성하였고 8월 26일 형법상의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혐의를 적용해 호텔 실소유주 ㄱ씨와 업주 ㄴ씨를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치를 하였다. 형법상의 문제는 차치하고 '중대재해 처벌에 관한 법률'상의 중대시민재해에 관해 논의해 본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기업 관련해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를 발생시켰을 때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법이다. 동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중대시민재해’란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재해를 말한다. 우선, 의무 주체는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다. 둘째로 의무 대상은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이다. 셋째로 재해원인은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재해이다. 넷째로 피해자는 그 이용자 또는 그 밖의 사람의 생명, 신체의 안전에 중대한 시민재해를 발생당한 사람이다. 만약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며, 동일한 사고로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10명 이상 발생, 동일한 원인으로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가 10명 이상 발생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중대시민재해의 양벌규정 및 징벌적 손해배상은 중대산업재해와 동일하다. 이러한 재해발생에 대해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 평소에 사업주, 경영책임자 등은 공중이용시설·공중교통수단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시행령 11조)를 다해야 한다. 안전보건 관계법령이란 해당 공중이용시설·공중교통수단에 적용되는 것으로서 이용자의 안전·보건을 보호하는데 관련되는 법령을 말한다. ‘안전보건 관계법령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는 원료 및 제조물 관련 중대시민재해와 동일하다. 그리고 안전보건 관계법령에 따른 공중이용시설의 안전을 관리하는 자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시설 및 설비를 정비·점검하는 종사자가 필요한 교육을 이수하였는지 연 1회 이상 직접 확인하거나 보고 받고, 교육을 실시하지 않은 경우, 교육 실시 등 필요한 조치를 하거나 지시해야 한다. 공중이용시설의 붕괴나 대형 운송사고 같이 불특정 다수 시민에게 피해를 주는 중대시민재해는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에게 설계, 설치, 관리상의 결함으로 인한 그 이용자 또는 그 밖의 사람의 생명, 신체의 안전을 위하여 조치의무가 부과되어 있다. 안전보건 관계법령의 업무 수행에 따른 인력이 적정 규모로 배치되고 수립된 안전계획의 시행에 필요한 인력이 구성되어 적정한 업무를 부여하고 수행한다. 인력·시설 및 장비 등의 확보·유지, 안전점검과 수립된 안전계획의 시행에 필요한 예산을 편성하고 편성된 안전 관련 예산이 목적에 부합하게 집행하도록 관리한다. 안전보건 관계법령에 따른 안전점검 등이 적절하게 수행되었는지를 직접 확인하거나 보고받아야 하며, 공중이용시설 및 교통수단의 결함 등이 발견된 경우 그 설계, 제조에 대한 보완 요청 또는 보강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필요시 이용을 제한해야 한다. 안전관리계획은 안전과 유지관리를 위한 인력의 확보, 안전점검 또는 정밀안전진단 실시와 점검·정비, 보수·보강 등 유지관리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여 연 1회 이상 수립하여 이행하는지 점검 및 점검 결과를 보고 받는다. 관련 규정된 사항을 반기 1회 이상 점검하거나 점검하지 않는 경우 점검결과를 보고 받는다. 그리고 결과에 따라 필요한 경우 안전계획의 내용을 수정, 인력을 배치하거나 예산을 추가로 편성하여 집행하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실시한다. 중대시민재해 예방을 위해서는 다음 사항을 포함한 업무처리 절차를 마련하고 이행해야 한다. 첫째, 유해·위험요인의 확인·점검에 관한 사항, 둘째, 안전을 관리하는 자, 종사자 또는 이용자 등이 유해·위험요인을 발견한 경우 해당 사항의 신고 조치 요구 및 개선에 관한 사항, 셋째, 중대시민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상자 등에 대한 긴급구호조치, 시설 또는 교통수단의 긴급안전점검, 위험표지설치 등 추가 피해방지 조치, 관계기관 등에 대한 보고, 재해 원인조사 및 재해대책 사항, 넷째, 비상대응계획 등 안전관리체계 수립 여부 및 점검, 다섯째, 비상상황 또는 위급상황 발생 시 대피훈련에 관한 사항, 비상 상황의 위기사항 또는 재해사항이 발생한 경우를 대비하여 비상대응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대피훈련을 실시하여야 한다. 이번 제반 사안에 관해 현재 종합적인 수사가 진행 중인 상태이며, 「중대재해 처벌에 관한 법률」에 대한 구체적인 적용내용이 불확실한 상태이다. 관련 법령에 따른 이행점검 시 관련 법령의 의미가 기존 법령인지 현행 법령인지도 다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과거의 선례와 같이 무고한 다수의 시민이 사망하고 중경상을 당한 가운데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법으로 처벌에서 빠져나가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정확한 법의 기준이 적용되기를 기대해 본다. 애초에 근세 이후 국민들이 필요에 의해 주권재민사상에 기초해 국가를 만들었고, 국가를 위해 일할 국회의원 등에게 권한을 위임해 국민들의 안전복지행정을 담당하게 하였다. 안전문화는 남의 안전을 고려하며 신뢰사회를 형성하게 만드는 바, 국민안전문화 확산으로 상호존중과 남과 공존할 수 있는 함께 사는 공동체를 구현하는 기반이 되기에 중요시된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한국 2023. 12. 31. 기준 1인당 GNI 3만 6194달러)이 되면 안전과 보건 그리고 건강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국민들이 대부분인 사회로 전화(轉化)되는 바, 지금은 과도기적인 현상으로 분석되고 있다. 때로는 규제행정으로 인해 CEO 등 개별적인 국민들에게 애로사항이 있겠지만 좋은 규제와 중대시민재해 예방전략이 곧 모든 국민들에게 안전행복을 주는 정책으로 작용할 것으로 믿는다. ▣ 김성제 ◇ 前건국대 대학원 안보재난관리학과 겸임교수 ◇ 서울시립대 대학원 재난과학박사(Ph.D) ◇ 고용노동부 평가위원, 안전기술과 미래경영, ESG 경영전략 공저출판 ◇ 수필가, (사)한국문인협회, (사)한무리창조문인협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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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중대재해처벌법을 통한 국민안전문화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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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장의 따뜻한 학교 이야기] 생각하는 학교 디자인
- [교육연합신문=김미영 기고] 교육적 상상력이란 교사들이 실제 학생들에게 의미 있고 만족스러운 다양한 학습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교육목표와 교육내용을 학생들에게 적합한 형태로 변형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의 정답, 가치, 신념을 갖고 있으면 교육적 상상력은 길러질 수 없고 발휘될 수 없다. 학교디자인 측면에서 교육적 상상력과 교육적 감성을 정리하자면, 교사의 눈으로 보는 시각은 교육적 상상력이며. 학생과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바라보는 시각은 교육적 감성이다. 온실 속 화초를 가꾸듯이 보호하려만 들지 않고 생명력을 발산할 수 있도록 하고 보다 넓은 세계를 경험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도록 도약하는 것이 교육적 상상력이다. 아이들은 낮에 혼신을 다해 놀다가 해가 저물면 집으로 들어온다. 언제나 따뜻하게 반겨주는 집은 고향이나 어머니에 비유된다. 그들은 우리가 바르게 설 수 있을 때까지 지켜 봐준다. 아이들은 언젠가는 부모의 보호를 벗어나야 한다. 놀이는 혼자 날기를 연습하는 활동이고 놀이터는 아이들에게 둥지를 떠나서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연습을 하는 공간이다. 이러한 시간을 허용하는 것이 바로 사회와 학교 그리고 가정에서의 교육이다. 교육적 상상력과 교육적 감성은 독일의 놀이터 디자인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독일의 놀이터 디자인의 첫인상은 한 마디로 알록달록 색을 입힌 우리 놀이터에 비하면 너무나 소박하다는 것이다. 대부분 원목으로 아이들의 놀이터를 구성해 있고 튀어나온 작은 가시를 그냥 두기도 한다.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다소 위험한 부분도 과감하게 적용하고 있고 매우 활동적이다. 그렇다고 소홀하다거나 아무렇게나 디자인한 것이 아니라 그 위험성조차도 의도된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놀이터는 아이들이 탐색해 체험하는 공간으로써 놀이터는 다소 위험할 수도 있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 환경으로 보는 것이다. 사실 우리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뛰어놀 때 바위나 돌, 나무나 벌레들로부터의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놀이터의 채색도 그런 맥락에서 나무의 원래 색상 그대로 둔다. 다양한 색상의 옷을 입은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면서 그대로 아름다운 색들이 연출되는 것이다. 인위적인 구조나 인공적인 느낌을 배제해 가장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놀이터를 구성하고 있다. 처음부터 놀이터를 통한 아이들의 자유로운 체험을 방해할 수도 있는 완벽하게 안전한 디자인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독일의 놀이터 디자인에서 교육적 상상력과 교육적 감성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가장 자연스러운 환경이 가장 교육적이라는 바탕 위에서 아이들에게 놀이터와 놀이기구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배움조차도 배제하지 않으려는 감성과 아이들에 뛰어다니는 공간 속에서 놀이기구만 고려하지 않고 놀이기구와 아이들이 어울려 있는 풍경에 대한 교육적 상상력이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놀이터를 통해 아이들이 배울 것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이 상상력을 통해서 아이들도 상상력을 키운다. 요즘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몸을 숨길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어른이 통제하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디자인이 되어 있는 곳이 있다. 이렇게 아이들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바로 교육적 감성이다. 그리고 장애아동을 위한 놀이터를 따로 분리해서 만들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의 몸과 상상력으로 자유롭고 개성있게 놀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감성이라는 중심이 강할수록 상상력은 높이 높이 오른다. 교육적 감성과 교육적 상상력이 잘 반영된 학교는 학생들이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제약하여 보호하며, 단호하고 선명하게 반응해 대응성이 높아 학생과 구성원들에게 활력을 준다. 지나친 배려는 지나친 제약이 되고 아이들의 경우 결국 과잉보호가 된다. 도움은 상대가 필요한 만큼 지원되어야 한다. 학교디자인의 목적으로 '도전과 안전' 이 두 가지의 요소는 상상력과 감성으로 바꾸어 표현된다. 도전은 상상력을 펼칠 기회를 통해서 날개를 펼 수 있고, 그러한 도전은 항상 안전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양자의 적절한 조화와 균형이 학교디자인의 핵심이며, 교육적 상상력과 교육적 감성은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필요와 요구를 제공하는 것이 학교의 본질적 역할에 충실한 것이다. ▣ 김미영 ◇ 前신남초등학교 교장 ◇ 前부산한솔학교 교장 ◇ [특수교육 교구 제작의 이론과 실제] 저자 ◇ [학교디자인의 실제] 공동 저자 ◇ 부산교육대상 수상 ◇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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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장의 따뜻한 학교 이야기] 생각하는 학교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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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유학자(儒學者)의 덕(德)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길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등굣길, 출근길, 뱃길, 철길, 고속 도로, 산길, 들길은 그냥 자연 현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간곡한 인간만의 언어다. 그래서 길은 경건한 부름이다. 부름을 받아, 가고 온 길, 하나하나가 모두 인생이 지향해야 할 바를 가리키고 가르치며 부르는 말이다. 그 길로 가는 것에 대해 순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其善者僞也”, 즉 인간이 힘써야 할 것은 積僞다. 積僞(僞란; 거짓과 위선이라기보다는 人爲의 僞로 해석)란? 인위적인 노력을 쌓아가는 과정이며, 그것이 인생의 길을 여는 물음과 답이다. 더 나아가 自問自答으로만이 자신만의 고유한 길로 들어서는 발걸음이며, 인생의 마지막에 나지막이 자신만의 미소를 만들어가는 숭고함과 자족이지 않을까? 존재의 근본 상태를 우리는 ‘덕(德)’이라고 말한다. 덕이 있는 사람은 타인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추종하고 싶어 한다. 기차 안에서도 전화가 오면 전화를 받는 기능에 빠지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 통로로 걸어 나가는 불편을 감수한다. 교회에 갈 때도 이웃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차를 몰고 가지 않는 불편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우리 세계에서 불편과 수고, 불안, 경쟁은 인간 존재의 조건이다. 불안과 경쟁, 불편과 수고를 품는 넉넉함, 불편과 수고스러움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필수조건이다. 살아가는 힘은 지적인 수고와 불안을 감내하는 강인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불평 이전에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다. 주어진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고 다음은 무엇을 먼저 할 것인지를 자신에게 묻는 일이다. 자신의 삶은 자신만이 물을 수 있고 답을 할 수 있다. 자신의 온몸으로 원하여 얻는 답만이 자신만의 세계가 된다. 우리의 삶은 철저히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노력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감각과 본능을 이겨내는 인위적인 활동으로 인간은 완성된다. 눕고 싶어도 눕지 않고, 먹고 싶어도 먹지 않고, 자고 싶어도 자지 않을 수 있고, 말하고 싶어도 말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데에서 그 사람의 참모습이 드러난다. 제대로 사는 일은 힘이 들고 불편하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일을 비판하기는 쉽고, 자신이 직접 쓰레기를 줍는 일은 더 힘들다. 이웃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편리를 위해 차를 끌고 오기는 쉽고, 이웃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불편하다. 남에게 공부하라고 하기는 쉽다. 그러나 자신이 책상에 앉아서 공부 하기는 어렵고 책을 보면 눈이 감긴다. 다른 사람에게 생각 좀 하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자신이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공부는 질문에서 시작하고, 질문이야말로 수업의 밀도를 높인다. 그런데 질문은 어렵고 대답은 쉽다. 학생들에게는 질문하라고 한다. 그러나 자신은 질문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질문하면 짜증을 낸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과정은 불편한 것들로 짜여 있다. 살이(살아감)에는 불편함이 가득 차 있다는 깨달음이 중요하다. 이웃 사랑을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려면 반드시 일정 정도의 불편과 노고를 감수해야 한다. 德스러운 삶에는 반드시 불편을 감수하려는 강인함과 태도, 더 나아가 불편을 자초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사람의 본바탕이 작동하는 일은 이렇게 어렵고 불편하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天地와 더불어 사는 것이고, 인간이 天地 사이에서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인간이 천지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만큼 인간에게는 책임 의식이 절실하다. 그러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철저한 실천을 주문하고 있는 바가 주역의 부름이다. 계사전 3-2에 “震无咎者, 存乎悔”라는 문장이 있다. 허물을 고쳐서 허물이 없는 것으로 만드는 마음을 격동시킬 수 있는 것은 후회할 줄 아는 마음에 달린 것이라고. 그때 내가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후회를 한다는 것은 후회되는 일이 일어났던 단초(기미, 갈림길)를 명백히 파악하여 자기를 단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후회, 자기반성이라는 게 없다고들 한다. 대신 뭉개는 것만 있다고 한다. 이 말을 공자가 들으면 무엇이라고 할까? ‘내가 생각이 짧았어’, ‘나는 부족한 게 많아’, ‘노력할게’. 조선 역성혁명의 기초를 마련한 정도전은 “天地之大德曰生, 聖人之大寶曰位, 何以守位曰仁.”(계사 하)을 인용하지 않고 聖人之大寶曰位를 앞세운다. 그의 문제의식은 天地보다도 聖人에 두었다. 성인의 철학이 백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간파한 것이다. 천지 대자연의 마음은 만물을 生하는 마음이다. 반면에 인간의 마음은 서로 죽이고 미워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성인은 天地之大德과 같은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래서 백성들이 살고 싶다고, 그래서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마음이 들도록 민본주의 길을 마련한 것이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다. `당신 때문에 못 살겠다', `당신 때문에 되는 게 없다'고 악다구니를 퍼붓거나 그런 마음을 속으로 담아두면 정말 그리되고 만다. `아파도 당신 덕분에 낳을 것 같다고', `힘들어도 당신 덕분에 이 난관을 헤쳐 나간다고' 속삭여야 한다. 이쯤에서 자신에게 묻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며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되는 게 없다고 불평을 늘어놓고 사는지, 아니면 애써 웃으며 `누구 덕분에', `무엇 덕분에' 일이 잘 풀리고 살만하다고 너스레를 떨고 사는지를 물어보고 답도 써보자. 우리는 잘못을 덮어씌울 사람을 찾는 게 일상이다. 이제는 `덕분에'로 갈아타자. 머뭇거리지 말고 지금 당장. 당신의 남은 생은 물론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이와 모든 것들을 위해. `때문에'는 공멸과 나락의 화근이자 지름길이고 `덕분에'는 상생과 공영의 마중물이자 촉진제이며 인간관계의 디딤돌이다. 인간이 天地 사이에 들어와서 天地가 위태롭게 되었다는 것을 성현들이 깨닫고, 인간에게 바른 위치를 인식하게 하려고 周易을 만든 계기라고 한다. 길은 부름이다. 부름을 따라 태어나는 게 인간이 아닐까? 성현들의 말과 글, 성현들의 일상이 우리를 부른다. 길의 부름은 희망이기도 하며, 기다림이기도 하다. 인간이 삶을 꾸리는 세계인 문명은 인간이 그려 넣은(文) 세계다. 인간의 길에서 각자 누리는 문명의 수준이나 내용은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에 좌우된다. 그 생각은 자신을 고유한 걸음걸이를 걷게 한다. 혜강 최한기(惠岡 崔漢綺, 1803∼1877) 선생은 지금의 한국은행 본점 자리에 살았는데, 그 안에 4채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부자가 말년에는 거의 빈털터리가 되었는데, “今吾不勞而坐致之, 購書雖費, 不猶愈於齎糧而適遠乎?”(내가 성현들을 만나려면, 보통 같으면, 그 천리만리 길을 걸어가서, 말을 타고, 종을 데리고 가도 만날까 말까 하는 그런 사람들을, 이 책이라는 것을 통해서 이렇게 모셔다 놓고, 언제든지 나를 기다리고 있게 하고, 내가 만나고 싶을 때 가서 만난다.)라는 말로 자신만의 길을 만든 선각자가 아닌가? 또한 매천 황현은 "다만 국가에서 선비를 길러온 지 500년이 됐는데, 나라가 망한 날을 맞아 한 사람도 죽지 않는다면 어찌 통탄스러운 일이 아니겠느냐? 내가 위로는 하늘이 준 양심을 지키고, 아래로는 읽은 글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영원히 잠드는 것이니, 너희들은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했다. 그의 말은, 자기 죽음이 임금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식인으로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한 행동이라는 뜻이다. 요즘 학교 수업의 일부를 보면 학생들은 등교하자마자 책상에 엎드려 잔다고 한다. 담임 선생님의 말씀도 귓등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한다니, 외부 강사들의 이야기야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실태를 듣곤 한다.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고 허물을 줄이려는 태도가 아쉽다. 덮어 놓지 말고 벗겨 놓고 살펴야 고칠 수 있다. 교육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다. 민주 질서란 位가 없는 질서가 아니라 位가 正命을 얻는 일이다. 선생님이라는 位가 없이는 학생들을 지도할 수가 없다. 대통령도 位가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역할을 수행할 수가 있다. 位가 없는 사회란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位는 모든 조직의 위계적 원리를 의미한다. 길에도 位가 있고 있어야 한다. 내 집이 없다면? 내 나라가 없다면? 내 집도 내 길이 만들고 내 나라도 우리의 길이 만든다. 내 집과 내 나라를 위해 불편과 수고를 감수하고 자초하는 일은 가장 원초적이고 중요한 길이지 않을까? 古의 훌륭함을 인정하면 동시에 今의 훌륭함도 인정해야 한다. 옛사람이 훌륭했다고 하면 오늘에 사는 사람도 훌륭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我의 훌륭함을 인정하면 동시에 他의 훌륭함도 인정해야 한다. 자기의 잘난 것만 말하지 말고 남의 잘난 것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큰길(大道)이지 않을까? 유교는 윤리며 상식의 합의일 뿐이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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