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11-03(화)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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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사에 획기적인 기원을 이룩한 찰스 다윈, 그의 생물학적 메타포였던 ‘적자생존(適者生存, Survival of the Fittest)’이 오늘날 우리 교육과 사회 현장에서 한층 경이로운 비유로 재탄생하고 있다. 즉, “적자생존(積字生存):자기 사유를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명제가 그것이다. 지금은 생성형 AI와 디지털 미디어가 지식의 생산과 소비를 완전히 전복시킨 ‘만인 저작 시대’다. 스스로 읽고 쓰며 자신의 행위와 사유를 서사적 기록으로 승화시키는 능력은  인간의 존엄과 지적 생존을 결정짓는 교육의 핵심 역량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교육 현장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극심한 ‘문해력의 빈곤’과 ‘글쓰기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타인이 만든 숏폼 영상과 인공지능이 즉석에서 출력해 주는 문장에 일상을 내맡긴 아이들은 점차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가는 것이다. 텍스트를 능동적으로 재구성하고 자신의 언어로 정립하는 단계를 건너뛴 채, 선다형 정답만을 빠르게 찾아내는 획일화된 교육의 그늘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사유의 도구여야 할 글쓰기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사회는 결국 자율적 사고를 포기한 수동적인 인간을 양성할 뿐이다. 

 

우리는 왜 다시 글쓰기로 돌아가야 하는가?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한 문장의 나열이 아니라, 파편화되어 떠도는 감정과 생각에 정교한 형상을 부여하는 높은 차원의 자아 성찰이자 지적 연마 과정이기 때문이다. 동양의 고전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편에는 “자장서저신(子張書諸紳)”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공자의 제자 자장이 스승의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해 자신의 띠(紳)에 즉시 기록했다는 장면이다. 기록은 흘러가 버릴 찰나의 사유를 불멸의 철학으로 고정하는 강력한 힘을 지닌다. 또한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 역시 유배지라는 절망적 환경 속에서 500권에 달하는 저술을 남기며 “붓을 들지 않는 사유는 안개와 같다”고 경계했다. 결국 끊임없이 적고 구성해 ‘적자(積字·記字)’만이 영원히 생존함을 증명한 것이다. 

 

글쓰기 교육은 결코 청소년기나 대학 진학을 앞두고 급조할 수 있는 단기 테크닉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을 쓰고 기록하는 일이 숨 쉬듯 자연스러운 ‘생활습관’으로 자리 잡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일기, 독서록, 나만의 경험을 담은 작은 관찰기록들은 아이들에게 세상을 관조하는 또 하나의 눈을 키워줄 수 있다. 자신의 행동을 서사로 기록하는 습관을 들인 아이는 자신의 삶에 책임감을 느끼며, 정서적 위기 상황에서도 주체적으로 자아를 통제하는 강력한 심리적 탄력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 교육 패러다임은 근본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첫째, 학교 현장에서의 글쓰기가 ‘평가를 위한 시험’에서 ‘자기표현과 소통을 위한 즐거운 여정’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정해진 모범답안에 맞춰 문장을 반복하는 주입식 교육을 지양하고, 아이들이 느낀 솔직한 감정과 개성 있는 시각이 존중받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둘째, 가정과 지역사회가 함께 작동하는 ‘일상적 기록’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부모와 자녀가 매일 한 줄의 문장을 나누고, 지역 도서관과 학교가 연계하여 어린이들의 기록을 한 권의 책이나 디지털 서사로 출판해 주는 경험을 제공할 때, 아이들은 비로소 ‘글쓰기의 효능감’을 체득하게 될 것이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가 1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글쓰기 수업(Harvard College Writing Program)을 전 학생 필수 과정으로 고집하며 “좋은 사고를 하려면 반드시 좋은 글쓰기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를 깊이 되새길 필요가 있다. AI가 순식간에 수만 줄의 문장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문명적 전환기일수록, 역설적으로 ‘직접 고민하고, 손으로 적어 내려가는 인간의 사유’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독보적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명제는 경쟁 사회의 비정한 도생(圖生)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스스로 기록함으로써 자기 삶의 주인으로 거듭나고, 거친 타자의 언어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진실을 지켜내는 영혼의 자립을 의미한다. 지금은 아이들의 손에 다시 펜을 쥐여주고, 세상을 향해 자신만의 서사를 담대히 적을 수 있도록 공교육의 사명을 다해야 할 때다. 기록하는 아이가 미래를 지배하고, 기록하는 사회만이 결코 흔들림이 없는 지적 유산을 대대손손(代代孫孫) 물려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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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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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적자생존(積字生存)’, 기록하는 인간만이 미래를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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