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11-06(금)
 

[교육연합신문=이윤서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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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11월, 나라를 잃어가는 시대 속에서 한 청년이 태어났다. 훗날 몽골에서 의술을 펼치고 독립운동에 헌신한 의사 이태준이다.

 

이태준은 경상남도 함안에서 태어나 1907년 세브란스의학교에 입학했다. 재학 중 안창호를 만나 비밀결사단체인 청년학우회에 가입하며 독립운동에 발을 들였다. 이후 의학교를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에서 근무했지만, 날로 심해지는 일제의 침략과 탄압을 지켜보며 조국의 현실에 분노했다. 결국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으로 동료들이 체포될 위기에 처하자 중국 난징으로 망명한다. 

 

1914년, 이태준은 몽골 울란바토르로 향한다. 그곳에서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열고 근대적인 의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당시 몽골에는 전염병이 널리 퍼져 있었고, 이태준은 수많은 환자를 치료하며 몽골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다. 그의 의술은 몽골 왕실에도 알려져 마지막 황제 보그드 칸의 어의가 되었으며, 외국인에게 수여되는 최고 등급의 국가훈장까지 받았다. 

 

하지만 이태준은 의사로서의 삶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몽골과 중국을 오가는 독립운동가들에게 숙식과 이동 편의를 제공하고,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려던 김규식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는 등 해외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썼다.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의술로 몽골 사회에 기여하는 동시에, 조국의 자유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도 이어 나간 것이다. 

 

그러나 1921년, 몽골을 점령한 러시아 백위파 운게른 군대에 의해 이태준은 목숨을 잃는다. 겨우 38세의 나이였다. 몽골에서 의술을 펼치며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그의 삶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이태준은 총과 무기를 들고 국내에서 싸운 독립운동가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의사라는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사람들을 치료하고, 해외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며 조국의 독립에 기여했다. 독립운동에는 하나의 정해진 방법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태준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의술과 헌신으로 독립을 향한 길을 개척했다. 

 

오늘날 몽골에는 그의 이름을 딴 기념공원과 기념관이 남아 있다. 한 나라의 의사로서, 또 다른 나라의 독립을 꿈꾼 청년으로서 살아갔던 이태준. 2026년, 몽골에서 '몽골의 슈바이처'로 기억되는 그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한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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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몽골의 별이 된 의사, 이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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