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위클리피플=오미경 기자, 신재윤 기자]

 

한국 농업의 발전 현장엔 항상 그가 있었다!


평생 한 길 걸으며 ‘농촌 희망’ 만들어 온 아름다운 여정의 주인공

 

박해상 한국단미사료협회 회장

 

농업환경의 변화로 인해 많은 어려움에 직면한 국내 농업의 현실을 두고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地大本)’이라는 말이 이제는 무색하다고 하지만, 인류가 존재하는 한 농업은 영원한 인류의 생명줄임에는 변함이 없다. 게다가 문화, 전통, 지역사회를 존재케 하는 농업의 다양한 역할을 생각한다면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불행 중 다행으로 세계의 흐름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다양한 각도에서 농업의 중요성이 재조명되고 있는 가운데, 현장과 행정을 누비며 ‘농업의 가치’를 삶 그 자체로 말해 온 이가 있어 주간인물이 만났다. 한국단미사료협회 박해상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취재_오미경, 신재윤 기자/ 글_오미경 기자

 

 

한국단미사료협회, “궁극적인 농업 발전에 기여 하겠다”


 한국단미사료협회는 1978년 창립된 이래, 한 가지 원료로 이뤄진 단미사료와 이를 이용해 만든 배합사료의 제조기술 향상 및 사료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농경사회를 지원해 온 주요 단체이다. 지난 7월, 보궐선거를 통해 제 16 대 회장에 선출된 박해상 회장은 그만큼 어깨가 무겁다고 했지만, 포부를 전하는 모습은 자신감이 넘쳤다. “앞으로 육류 소비가 늘어날 것을 대비해 양질의 사료를 공급하는 것이 협회의 첫 번째 임무입니다. 그리고 양질의 사료를 해외로 수출하여 우리 축산의 위상을 높이고 국내 사료업계도 활성화 시키고자 해요. 이미 수출협의회를 구성했고, 그 밖에 사료 분석소와 함께 연구소를 확대시켜 축산 농가와 회원사에 도움이 될 방향을 적극 고민하고 있습니다.” 명료한 그의 포부에서 한국단미사료협회가 궁극적인 농업 발전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농업 전문가로 살아 온 그의 삶이 특별한 이유            


 박해상 회장이 농업인의 길에 접어든 건 운명에 가까웠다. 경북 청도가 고향인 그는 학교에 다녀오면 책보를 내려놓기가 무섭게 산으로 들로 가축을 몰고 다니기 바빴던 유·소년기를 보내면서 자연스레 농업을 가까이 했고, ‘식량자급’이 국가 캐치프레이즈 였을 당시 높았던 농업대의 위상과 비전을 따라 국립 경북대학교 농학과에 진학한 농촌 토박이다. 대학을 졸업하면서는 기술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몸을 담았고, 이후 농림부 차관까지 지내며 다양한 위치에서 농업 전문가로서의 길을 걸어 왔다. 

 


 농림부에 있을 당시 식량자급 과제 및 친환경농업 육성의 초석을 다지는데 크게 기여했던 박해상 회장은 특히 차관보를 지내면서 현장과 행정을 접목해 농업의 실정을 탁월하게 돌봐온 것으로 유명하다. “이론을 먼저 세워 계획을 짠 뒤, 현장에 반영하는 행정이 통상적이었지만 사실 농촌 현장은 이론과 다른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먼저 현장을 알고, 그것을 행정에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는 수행자도 대동하지 않고, 사전에 예고도 없이 농촌 현장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누구도 보인 적 없는 행보에 때론 그가 차관임을 믿지 않는 이들도 있었고, 현장의 거친 반응에 고달플 때도 있었지만 박 회장은 이를 통해 농민들끼리의 정보 공유 장을 만들기도 하고, 생생한 농촌의 목소리를 담아 정책으로 도출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당시 그가 기록한 현장의 경험들이 책으로 엮어지자 농림부 공무원들의 주문 요청이 물밀 듯 밀려든 일이 있었을 정도로 일에 대한 박해상 회장의 원칙과 역량은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었다. 또한 그는 고위관료를 지낸 사람 중 보기 드물게 분야의 인재 육성에도 기여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농업전문학교 학장과 농협대학교 총장직 등을 역임한 것이 그것인데 특히 농협대학교 에서는 농협중앙회와 얽혀있는 인사이동 문제를 개선해 대학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드는 등 50여 년 농협대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남긴 바 있다.

 

“우리만의 특색으로 농업 경쟁력 만들고, 농촌에 활력 불어 넣어야”    

             
 다양한 위치에서 역량을 보여준 박해상 회장은 여전히 바쁘다. 한국단미사료협회 회장직 외에 고향을 향한 마음을 담아 경북 농어업 FTA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그는 단순히 FTA 대응을 위한 활동 차원이 아닌, 사실상 전반적인 농업경쟁력 향상에 대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위원장으로서 “길게 보면 개방과 세계화는 피할 수 없고, 빠른 속도로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고 있는 만큼 무엇보다 기후든, 토지든 우리만의 특색을 찾아 고민하고,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그는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어 농업을 활성화 시켜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급격한 산업적 성장으로 우리나라의 농업 생산 비중이 급감하고, 고령화 시대로 빠르게 진입하면서 농촌 사회의 활기가 떨어져 농업이 위축된 만큼 회복을 위한 활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농촌은 국가의 기틀입니다. 세계 석학들도 농업을 미래 경제의 핵심으로 보고 있죠. 다행히도 귀촌 및 귀농 인구가 늘고 있는 등 우리 농업도 희망은 있어요. 농촌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혁신경제를 이끌 대표적인 네 가지 IT, BT(바이오테크, 생명공학), NT(나노테크), NT(뉴로테크, 신경계 테크닉)의 많은 부분이 농업에 기반을 두는 만큼 이것의 활성화와 전문가 육성, 농가소득 향상을 위한 농업 6차 산업화의 흐름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등이 필요합니다.” 또한 그는 농업 환경의 변화에 따라 우리 농업의 방향을 고민하는데 있어 “대량생산화, 지형적인 여건을 살린 특화, 농업직불제와 같은 세 부류의 형태 중 어느 한 쪽 면만 보기보다 우리의 정확한 실정에 맞는 절충안을 고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흔들리지 말고 피어나라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그는 천생 농업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농사란 것이 계절을 버티고 인고의 열매를 맺는 정직함 그 자체이듯, 평생을 한 길만 걸어온 그 역시 공직에 있으면서 3년 간 하루도 쉰 날 없이 일하기도 했을 만큼 바쁜 나날 속에 중책을 맡아왔음에도, 농업 분야에 중심을 튼 신념만은 흔들림 없이 꼿꼿했다. 아니나 다를까. 농림부 시절, 일에 있어 그의 별명은 불도저였단다. “자기분야에 있어 ‘일로 만든 백 그라운드’가 최고의 무기라 생각합니다. 겉치레는 결국 바닥을 보이기 마련이죠. 젊은이들에게도 흐름에 영합하기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자기 길을 가라고 해주고 싶어요.”

 그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신념은 인연이다. 인간관계에서 더불어 사는 것을 중요시하는 그는 조직 관리를 함에 있어서도 화합, 협동, 인화단결을 핵심으로 본다. 직원들과 격식 없는 소통을 하는 모습 역시 그가 말하는 화합의 기본이다. 요즘 박 회장은 새로운 경험으로 고양검찰청 시민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단독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시민사회의 다양한 사안을 해결하는 보람도 느끼고 있다. 여전히 에너지 넘치는 그의 남은 꿈은 무엇일까. “그간의 경험을 받침 삼아 능력이 소진 될 때까지는 농업 분야에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평생 한 우물을 파는 이의 모습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다. 우리네 농민의 삶이 그러하듯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오직 농업 분야 한 길만을 바라보며 무던히 걸어온 박해상 회장의 삶 또한 그래서 아름다웠다. 농촌에 뿌리 내린 박 회장의 한결 같은 열정을 마주한 오늘, <주간인물>은 분명 그 속에서 빛나는 우리 농업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profile.
< 학 력 >
●경북대학교 농과대학 졸업 (1976) : 농학사
●고려대학교 식량개발대학원 졸업 (1989) : 경제학석사
●경북대학교 농업생명대학원 졸업 (2005) : 농학박사

< 경 력 >
●제12회 기술고등고시(농림직)합격 (1976)
●농림수산부 농산국(비료수급, 미산계장 등) (1977 ~ 1987)
●농림부 종자공급소 평택, 밀양 지소장,
  농림부 농산, 환경농업과장 (1988 ~ 1998)
●농림부 식물검역소장, 식량생산국장 (1999 ~ 2001)
●한국 농수산대학 총장(교장, 학장) (2002. 2 ~ 2004. 2)
●농림부 차관보 (2004. 3 ~ 2006. 7)
●농림부 차관 (2006. 8 ~ 2008. 2)
●농촌사랑지도자 연수원장 (2008. 6 ~ 2011. 1)
●농협대학 총장(2009. 2 ~2013. 1, 연수원장 겸직 2년)
●의정부 지방검찰청 고양지청 검찰시민위원회 위원장 (2012. 10 ~)
●경상북도 농어업 자유무역협정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 (2013. 3 ~)

< 상 훈 >
●근정포상 (1982)                     ●황조근정훈장 (2008)
●홍조근정훈장(1998)                  ●자랑스러운 경대인상(20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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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단미사료협회 박해상 회장 특별 인터뷰] 한국 농업 발전 현장엔 항상 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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