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교육연합신문=김현구 기자]
 
가을 저녁노을이 선연하게 비추는 수원의 인계동 사거리 한적한 골목길 커피숍 2층. 편안한 낭만리스트 차림의 신사 한 분, 빛이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서 기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제1시집 ‘그늘’로부터 제20집 ‘풍금처럼 살고 싶다’를 펴낸, 박효석 시인은 1978년 ‘시문학’으로 문단 등단하였고,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한국현대시인협회 고문이며, 한국시사문단작가협회 회장이기도 하다.
 
현재 심한 당뇨병으로 병마를 안고 살지만 남은 인생을 시(詩) 창작과 시집 출간만 하겠다며, 1년에 1권의 시집 출간을 목표로 일상의 생활을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픈 후부터 1년에 1권의 출간을 하는 이유로 우울증을 없애고 신념 등으로 정신적 힘을 얻기 위한 하나의 극복을 위한 치유 방법이라고 했다.
 
1947년생인 박효석 시인이 문학을 선택한 이유로는 젊은 그때는 형편이 안돼서, 나의 가난한 상황을 보니 ‘종이와 연필’은 돈이 안 들었다. 내 생활이 여유로웠으면 단연코 그림이나 음악을 선택하였을 것이었다고 말했다.
 
고아원에서의 삶, 외로운 고독과 절망, 그에게는 詩를 쓴다는 것이 혈육이고, 구세주였다.
 
고아의 생활은 4살 때부터 수원에서 시작되었다. 고아원에서는 외로운 고독과 절망들과도 싸워야 했다. 이때부터 그는 시(詩)가 필요했다. 죽음의 사선... 고2 때 자살을 두 번이나 겪게 되면서도 특히, 그에게는 시(詩)가 그를 붙잡았다. 시(詩)를 쓴다는 것이 종교 이상이고 신념이었다고 말했다.
 
국민학교(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수원서 나오고, 힘들었지만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낸다’는 세상의 말처럼, 고등학교는 서울로 다니게 되었으나 공부보다는 배고픔에 더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
 
그 시절 초등 3년 때 ‘전국어린이 글짓기대회‘ 시(詩) 관련 ’최고상‘, 고등학교 ‘전국대회 백일장 수상’으로 ‘문학인의 입지’를 쌓아가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고 했다.
 
청년시절의 기이한 행동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다.
 
청년시절 수원에서의 일이었다. 시내 한복판에 신문지를 엉덩이에 깔고 앉아 기인 형태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그중 한 명에게 말을 붙였다.
 
20대에게 "당신이 맘에 드니, 나랑 술 한잔 하자",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중학교 미술선생이라고 했다는데, "좀 살펴보니 당신은 선생이란 직업 보다, 더 유명한 인물이 될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라"고 대화를 나누며, 술 한잔 한 후 헤어졌다고 했다.
 
박효석 시인이 결혼도 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TV에서 유명한 ‘프랑스 초청 전시회’서 서양화가를 소개하고 있는데, 중앙대학교 서양화과 ‘안병석’ 교수로 소개된 적이 있었다. 그때 20대 청년시절에 술 한잔 했던 중학교 미술선생이었던 것이었다.
 
생업으로 수원에서 ‘클래식 음악감상실’을 운영하다.
 
수원에서 지금까지 한 지역으로 살아왔으며, 한때 ‘클래식 음악감상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전국에 ‘클래식 음악감상실’은 3곳이었는데, 서울 ’바로크‘, 대전 ’Y하우스‘, 그리고 수원의 ‘공간사랑’만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 ‘공간사랑‘은 종합예술의 장소로 화랑 겸 작은 음악회, 시(詩)낭송 등을 하는 곳이었다.
 
이후 ‘시인과 농부’로 운영되며 주인은 3번 바뀌기도 했으며, 홍상수 감독이 연출하고 김민희 배우가 주연한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클래식 음악감상실’을 운영하면서 그때 만난 사랑하는 여인, 지금의 아내가 있었다. 결혼을 하기까지 처가 집안의 부모님들은 고아출신에 ‘시인’이고 가난한 그를 인정해주지를 않았다고 한다.
 
처가에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매달린 5년여 끝에 결혼을 승낙받아서, 지금의 혈연의 핏줄들로 딸과 아들을 낳아주었고, 현재 동화작가인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의 결실인 가족이 형성되었다고 말했다.
 
정치적인 합류의 권유와 회유, 문학인에게 군부세력의 집요한 감시...
 
그 당시 야당의 수원 정치가들의 합류 권유와 끈질긴 줄달음이 있기도 했다.
또, 1970년대 독재정권 때였다. 필화사건(筆禍事件)이 있었다. 문예지에 어두운 단어가 들어가면 출판물이 까맣게 칠해져서 나오던 때를 말한다.
 
독재정권 시대의 문학인으로 감시와 수사가 있어서, 그와 함께 어울렸던 그림 그리는 친구들까지도 고초를 겪게 한 적도 있었다. 군생활도 감시의 생활이었고, 시(詩)를 쓴다고, 중앙정보부로 끌려가서 총기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경찰대학 강의를 시작으로 ‘효석문학상’ 제정과 더불어 많은 학생을 등단시키기도 했다.
 
경찰대학 강의 시절 제자 지도관이 있었다. 신설학교인 경찰대학 축제 때 ‘시와 음악’, ‘시화전’ 등 ‘문학반’을 운영하는 밤을 계기로 작곡가와 성악가들도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를 시작으로 하여 외교관이자 작곡가인 변훈 선생과 함께 수원의 음악감상실에 ‘명태’, ‘떠나가는 배’의 곡을 주로 틀었는데 같이 들으며 이를 통해 친하게 어울리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변훈 선생은 가곡집에도 있는 나의 시(詩) ‘순이야’, ‘수원의 노래’를 곡으로 만들기도 했다. 또한 오현명 성악가의 가곡으로 ‘시(詩)와 가곡의 밤’ 등을 통해 유명한 성악가와 전국 공연을 많이 다니기도 했다.
 
경찰대학의 ‘시(詩) 문학의 밤’ 등 축제 때 전문 강의를 시작으로 쭉 30여 년간의 강의를 통해 많은 제자들을 배출했다. 또한, ‘전국 고등학교 백일장’을 실시, 그 당시 신생학교인 경찰대학을 홍보하고 교내에서는 1년 1회 문집을 내는 기회가 되었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색안경의 눈으로 필화사건(筆禍事件)을 겪고서도 경찰과 붙어서 강의한다는 오해도 있었지만, 경찰들에게 문학을 배우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경찰공직 직무상 어떤 상황결정의 판단 때 문학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기억되는 경우로 제자 중 (전)전북지방경찰청장의 배출 등 다양한 분야의 경찰 요직에 재직 중인 시인 등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즉, ‘문학하는 경찰’을 배출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2000년도, 삼성전자(주) 사원들에게 시(詩) 창작에 대해 가르친 지 20주년이 되는 해에는 박효석 시인의 이름을 딴 ‘효석문학상’이 제정되어 9회에 걸쳐 전국의 시인들을 대상으로 15명의 시인들에게 ‘수상의 영예’를 주기도 했다.
 
또한, 2015년엔 경찰대학의 강단에서 30여 년을 강의한  노고를 축하하는 큰 자리에서 경찰졸업생 시인 제자들의 참여로 자리를 마련한 것이 인생에서의 기쁨으로 기억된다고 했다.
 
남은 생을 오로지 시(詩)를 생각하며 시 창작(詩創作)에만 몰두하며 생명을 쏟아붓고...
 
평상시 시(詩) 작업의 형태는, 시(詩)는 아침부터 습작으로 쓰고, 옮기는 것은 저녁에 정리를 한다고 한다.
 
시(詩) 창작은 다른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바라보고 상상해서 시(詩)를 쓰는 일들이라서 그들의 생애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세상을 살는지는 모르지만 깊은 지병과 동거하는 한에 있어서는 오로지 시(詩)만 생각하며 사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했다.
 
그는 그의 (詩)시가 누구에겐가 강한 위로가 되었으면 너무 좋겠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그런 시(詩)를 쓰는 날까지 오로지 시만 바라보며 시(詩)와 운명을 함께할 것이라고 한다. 
 
박효석 시인은 앞으로 1년 후인 시집까지도 2018년 ‘물고기들이 꿈꾸는 잠’이라고 제목을 달았고, 모든 준비는 다 끝냈으며 출판 준비 중이라고  힘주어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 박효석 시인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78년 ‘시문학’으로 문단 등단
경기도시인협회 창립 초대 사무국장 역임(1980)
한국문인협회 경기도지부 사무국장 역임 / 경기도문인협회 초대 사무국장 역임
월간 문예사조 기획실장 및 신인상 심사위원 역임
월간 순수문학 편집위원 및 신인상 심사위원 역임
월간 시사문단 회장 / 한국현대시인협회 고문
월간 시사문학 편집고문 및 신인상 심사위원 역임
월간 시사문단문학상 심사위원 및 풀잎문학상심사위원, 해외문학상 심사위원
2015년 오산문학상 대상 및 신인상 심사위원장
경기도 청소년예술제추진위원 및 문학부문 심사위원장
경기도 예술상 운영위원장. 노작 홍사용문학상, 나혜석 미술상, 홍영후 음악상운영위원장
효석문학상, 청맥문학상, 미석문학상 운영위원장
1994년 한국문화예술진흥기금 수혜자
1994년 경기도문화예술진흥기금 수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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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석 시인, 시(詩)는 '극복을 위한 치유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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