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순수 민간 주도, 지자체 적극 지원,

자원봉사의 새로운 민관협력모델로 눈길 끌어

    

봉사란 말은 받들고(奉) 섬긴다(仕)는 뜻을 지닌 말이다. 여섯시도 안 돼 해넘이가 시작되고 밤이 길어질수록, 온도계의 수은주가 내려갈수록 봉사란 말은 더 자주 듣게 된다.

 

일상 속에서 생활화되고 선진화 된, 세련된 느낌(?)마저 주는 서구의 봉사와 품앗이, 두레, 수눌음(제주 특유의 품앗이 형태) 등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우리의 전통적 봉사는 적어도 그 원형에 있어서는 같은 뜻을 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우리의 걸음걸이가 빨라질수록 봉사란 두 글자는 어느덧 고리타분하고 심지어 식상한 느낌마저 주는 말이 되고 있다. 남을 돌아볼 겨를이 없어서일까?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오히려 도움을 받아도 모자랄 사람들이, 그래서 남을 돌아볼 겨를로 치자면 도무지 그럴 여유가 없을 사람들이 참 태연한 모습으로 내 품에서 먹을 것, 입을 것을 다른 이에게 내어놓는다.

 

그러면서 왜 그러느냐 물을라치면 그게 뭐 궁금하냐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묻는 이를 바라본다. 그 눈빛이 물어보는 이를 민망하고 당혹스럽게 만든다.

 

그렇다면 봉사가 식상하게 된 것은 남을 돌아볼 겨를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한 겨울 구세군 앞에 놓인 빨간 냄비통에 쌓이는 돈을 봐도 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못사는 동네, 아니 찢어지게 가난한 동네에 놓인 냄비통의 무게가 도심 한가운데 대로변에 놓인 냄비통의 무게보다 덜하지 않으니 말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아니 봉사가 식상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드는 묘약 같은 것은 없을까?

 

가난은 나라님도 어찌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이 세상이 삐걱대면서도 이만큼이나 돌아가는 데는 받들고 섬기는 일이 일상인 이름 모를 우리네 이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묘약은 아니더라도 봉사가 일상 속 생활의 일과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까?

 

봉사를 처음 생각하는 어리석은 초심자들이 겁먹지 않도록 너무 무겁거나 혹은 너무 진지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가진 아주 작은 힘과 시간이 뻥튀기처럼 부풀어올라 다른 이에게 희망과 웃음이 될 수 있음을 친절하게 알려줄 수 있는 초심자를 위한 ‘봉사가이드’는 없을까?

 

봉사를 첫 시작하는 초심자에게는 이미 일가를 이루신 선종(善終)하신 선우경식 원장(영등포 요셉의원 설립자)이나 성산 장기려 선생(국내 공공의료보험의 효시인 청십자의료보험 조직) 같은 분들은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지만 감히 그 모습을 흉내내기초자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담 없이 봉사의 맛을 느끼고 그 맛에 점점 더 익숙하게 이끌어 줄 수 있는 친절한 도우미가 필요하다. 홍어를 먹을 때도 초심자는 먼저 덜 삭힌 홍어로 만든 삼합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그래서 오늘은 ‘봉사초심자’를 위한 친절한 ‘봉사가이드’를 만나본다.

 

아울러 가이드를 돕는 친절한 보조자도 함께 만나본다.

 

 

김명희(左) 회장은 서울 강남에 위치한 대치2동 자원봉사회장이다.

 

10여년전 개인적으로 결식아동을 위한 봉사를 시작한 이래 학생과 청소년을 위한 상담과 지도, 자원봉사 교육, 장학회 사업, 학부모 상담과 교육, 가정법원 국선보조인, 보호처분 학생에 대한 장기 상담 등 주로 청소년 상담과 교육, 장학 사업을 중심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강남 구룡중학교에서의 학생상담 봉사는 시작한지 10년이 넘었다.

 

이 같은 공로로 작년 서울시 시민상을 수상했다.

 

이동호(右) 대치2동장은 민간 주도의 봉사활동에 관(官)은 ‘지원하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김명희 회장의 자원봉사활동을 정성을 다해 돕는 숨은 보조자이다. 

 

수많은 자원봉사자 중 김 회장을 ‘봉사초심자’를 위한 ‘봉사가이드’로 선정한데는 바로 일상 속 생활의 일과와도 같은 자원봉사를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계속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자원봉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김명희 회장 : 지금부터 약 12년전이었다.

 

그때까지는 나 또한 주변을 둘러볼 겨를 없이 정신없이 일만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다.

 

지친 심신을 달랠 겸 큰마음을 먹고 캐나다 여행길에 올랐다.

 

그런데 여행 중에 조난을 당할 어려움에 처했다. 폭설이 내리는 가운데 길을 잃고 차까지 눈에 빠져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우연히 길을 가던 한 캐나다인이 차에서 내려 우리가 처한 상황을 알아차리고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정말 헌신적이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켜도 할 수 없을 만큼 성심을 다해 우리를 도왔고 내리는 눈발이 흐르는 땀과 만나 그의 얼굴에는 고드름까지 피어났다.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는 그분의 도움으로 무사히 차를 눈에서 꺼내고 그로부터 목적지까지 가는 자세한 길 안내를 받았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몇 달러가 있었다.

 

얼마 안 되는 작은 돈이었으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표시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분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내게 받은 도움에 대한 감사는 다른 사람이 지금 당신들과 같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들을 돕는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부끄러웠다. 나와 내 가족만을 생각하며 보낸 지난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자원봉사는 어떻게 시작했나?

 

김명희 회장 :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주위에 결식아동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고 작은 후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좀 더 체계적으로 자원봉사를 배우고 싶어 한양대에서 청소년상담과정을 배웠다.

 

이때 동료의 권유로 자원봉사센터에서 학생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상담과 교육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학교로 자원봉사교육을 갔다가 돈이 없어 점심을 굶는 학생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고 아파트 주민들과 함께 뜻을 모아 조그만 모임을 만들어 학비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지금 강남 미도장학회의 첫 시작이었다. 


강남에 결식아동이 많다는 말은 솔직히 낯설다.

 

이동호 동장 : 결식아동뿐만 아니라 갑작스런 부도 등 가정의 어려움으로 학업중단의 위기에 놓인 학생도 많다.

 

또 생계곤란 등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도 상당히 많다.

 

참고로 강남 지역 기초생활수급권자의 수가 모두 5,216가구에 9,300여명으로 서울 전체 25개 구 중 6위에 이를 정도로 많다.

 

언론에서 비춰진 화려하고 사치스런 강남의 모습은 강남 중 일부의 모습이다.

 

강남에 산다고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강남하면 떠오르는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모습들은 사실 많이 과장되었다.

 

김명희 회장 : 낯설어 하는 것을 이해 할 수 있지만 이곳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소 과장되고 왜곡되었을 뿐 결식아동과 학업중단의 어려움에 처한 학생들이 다른 지역 못지않게 많다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다.

 

다행히 강남구청의 도움으로 지금은 돈이 없어 밥을 굶는 학생은 크게 줄었다.

 

장학회 활동에 대해 소개해 달라.

 

김명희 회장 : 앞서 말한 대로 내가 살던 아파트(미도아파트) 주민들이 모여 결식아동과 학업중단의 위기에 놓은 학생들의 학비를 지원하면서 시작했다.

 

그때가 2003년이었으니 이제 약 7년이 되었다.

 

지금은 6개의 중학교와 4개의 고등학교에 학교 당 2명씩 모두 20명의 학생들에게 매월 학비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결식문제는 구청의 도움으로 해결이 되었으나 등록금과 급식비가 지원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어린 학생들에게 해 줄 것을 다해줬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어린 학생들이 상처받지 않고 구김살 없이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특히 올해 4월에는 기존의 미도장학회가 바탕이 돼 대치자원봉사회가 구성됐다.

 

이제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부모와 지역주민들에게도 자원봉사에 대한 교육과 홍보를 할 수 있고 더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순수하게 지역주민이 만든 자원봉사회가 주민자치센터의 직능단체로 편입된 것은 이번이 전국에서 처음일 것이다.       


주민자체센터가 자원봉사회를 지원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동호 동장 : 구청에서 근무할 때 만두를 빚는 한 식당 사장님이 있었다.

 

매 달 정기적으로 20박스의 만두를 만들어 인근 노인정 등에 보내달라고 전화를 하시곤 했다.

 

나누는 물건의 크기나 가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마음이 고맙고 인상적이었다.

 

김 회장을 돕기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봉사회에 대한 관심과 참여율을 더욱 높일 수 있도록 홍보를 적극 돕고 장소를 무상 제공하는 등 할 수 있는 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으려고 한다.

     

십년 넘게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봉사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명희 회장 :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내 이웃과 나누는 것이다.

 

봉사는 결코 어려운 것도 대단한 것도 아니다.

 

큰돈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배운 게 많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특별한 소명을 받은 성직자와 같은 분들만이 하는 것도 아니다.

 

한 마디로 자원봉사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바로 내 이웃에게 내가 가진 그 무엇인가를 내 형편에 맞게 나눠주는 것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볼 때 사회지도층과 여론주도층에 있는 이른바 ‘가진 자’와 ‘있는 자’가 봉사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

 

이들이 먼저 이웃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이 가진 전문적인 기술과 지식, 노하우와 경험 등을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흔쾌히 나누는 모습이 일상화되어야 한다.  


가장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김명희 회장 : 가장 안타까운 것은 자원봉사를 바라보는 이중적인 시선이다.

 

한편으로는 마음은 있어도 자원봉사를 너무 어렵게 생각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봉사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봉사를 마치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시간이 많은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왜곡해 본다.

 

정작 도움이 절실한 이웃의 어려움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면서 잘못된 점만을 말한다.

 

정말 이웃에게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직접 자원봉사에 참여하면서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자원봉사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자원봉사에 대해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

 

김명희 회장 : 자원봉사는 어려서부터 몸에 베이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어린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자원봉사 기초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려서부터 자원봉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만 이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런 자원봉사를 실천할 것이고 다시 그 자녀가 이들을 보고 배우며 일상생활 속 자원봉사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과 청소년을 위한 자원봉사 교육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명희 회장 : 명문대의 진학만이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딸이 고3이었을 때 가족모두가 함께 3주간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그때 학교에서는 딸의 대학진학을 포기할 것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시간이 흘러 얼마 전 딸이 그런 말을 했다. 그때 여행이 가장 행복했었다고

 

지금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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