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제의 목요칼럼] 이타카로 가는 길
‘이것이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곳에 닿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평생 찾아 헤매는 이타카일 것이다.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아내와 영화를 보았다. 예매율 1위를 달리는 ‘오디세이’였다. 172분의 상영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가 돌아가려 했던 곳은 이타카였다. 트로이 전쟁이 끝났지만 귀향은 또 하나의 지난한 투쟁이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내가 가야 할 귀향은 어디인가’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젊은 날 우리는 멀리 가는 법부터 배웠다. 더 높은 곳에 오르고, 더 많이 갖고,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쉼 없이 노를 움직였다. 어느 순간 무심한 일상에서 삶은 뜻밖의 질문을 툭 던진다. 나는 지금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가.
인생의 길에서 우리는 이타카를 찾는다. 젊을 때는 부모가 정한 길, 학교가 정한 기준,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의 기준을 따라간다. 그런데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얻고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할 때가 있다. 그때 비로소 묻게 된다.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가.
자기에게 돌아온다는 것은 ‘남의 기준으로 살던 삶을 멈추고 자신의 기준을 회복하는 일’이다. 내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다시 묻는 것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긴다면 실제로 가족을 위한 시간을 내야 한다. 말로는 가족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하루 대부분을 돈과 경쟁에 바친다면 그것은 가치관이 아닌 희망 사항에 가까운 것이다. 결국 시간을 어디에 쓰는지가 그 사람의 진짜 가치관을 말해준다. 시간은 삶에서 가장 정직한 화폐다.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노래를 듣기 위해 자신을 돛대에 묶었던 장면도 의미 깊다. 그는 자신의 의지를 과신하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경계를 만들었다. 정말 지키고 싶은 것을 위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절제하는 힘. 그것이 성숙한 자유다.
남의 시계에서 내려와 자신의 시간으로 돌아오는 것. 세상의 박수보다 자신의 양심에 귀 기울이는 것. 그리고 사랑해야 할 것을 다시 선택하는 것. 그것이 자기에게 돌아오는 길이다. 돌아가는 길이 길어도 괜찮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남들이 정해놓은 목적지에 먼저 도착하는 것이 아니다. 긴 항해 끝에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의 주인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남의 기대가 아니라 내 가치로 선택하는 것은 삶의 선택에서 중요한 갈림길이다.
사람은 평생 어딘가를 향해 부지런히 가지만 정작 자신에게 돌아가는 길은 너무 늦게 발견한다.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의 주인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살 것인지 결정하고, 그 선택에 책임지며, 마침내 내 삶의 중요한 시간을 내가 믿는 가치에 바치는 것이다.
오디세우스가 이타카로 돌아갔다는 것은 단순히 집으로 돌아갔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를 다시 확인한다는 뜻에 가깝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싶은가? 영화 ‘오디세이’가 오래된 신화의 옷을 입고 우리에게 건네는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이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곳에 닿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평생 찾아 헤매는 이타카일 것이다. 그 길은 지금 이 순간 우리 앞에서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진로융합교육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