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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자기를 잃어버리고 산다
[교육연합신문=송근식 기고] 인생을 어느 정도 살다 보면 자기가 자신을 제일 잘 안다. 그렇지만 습관 때문에 곧 자신을 잊어버리고 반복된 행동을 한다. 인생길은 앞을 보면 까마득하고 뒤돌아보면 허망한 것 같다. 예습도 복습도 없는 단 한 번의 길이기 때문에 잘 준비하고, 준비된 것에 최선을 다해 열정을 쏟아부어 스스로 승화(昇化)시켜 나가야 한다. 나는 내 삶의 주체이고 삶을 이끌고 가는 주인이다. 삶이란 출생과 죽음 사이의 살아가는 과정으로 생명 있는 존재로서 길흉화복 관리, 생사 운명 주재, 영과 육 관리, 윤회가 있는지, 종교가 무엇인지 등 실존적 불안을 느끼며 끝없는 고민과 번뇌를 갖고 살아가는 존재다. 서산대사는 삶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나는 것이고, 죽음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달관했다. 몽테뉴는 삶의 효용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 How long~?)'가 아니고 '어떻게 사는지(How live~?)'로 결정된다고 했다. 이보다 이천 년 전 공자도 삶의 시간적 길이보다는 삶의 내용을 충실히 함으로써 죽음에 이르러 유감이 없도록 함이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라 했다. 무엇을 부여잡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나를 돌아보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자신의 안목을 충족시키려는 노력과 아울러 안목을 한 단계씩 높이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일수사견(一水四見)'이란 말이 있다. 자기 안목에 따라 달리 보인다는 것이다. 바다를 예를 들면, 사람에게는 물로 보이고, 천신에게는 쟁반으로 보이고, 물고기에게는 집으로, 아귀에게는 불로 보일 것이다. 안목을 키우는 방법은 역시 교육이 중요하다. 공감할 수 있는 능력 교육이 필요하다. 열심히 하면 삶이 나아진다는 확신이 들어야 하는데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후 불과 30년 만의 노력으로 급격한 경제성장과 급변한 생활환경의 변화로 코인과 주식으로 일확천금을 얻게 되면서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노동의욕을 상실하고 창의력과 혁신의지가 없으며, 아이 출산도 거부한 채 황폐한 나라로 전략해 가고 있다. 한마디로 경제위기에 직면하는 아이러니를 겪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1776년)에서 인간의 욕망(desire)은 자본주의 경제의 원동력이고 개인 탐욕(greed)이 넘치면 경제 불안정으로 다수의 피해가 온다고 강조했다. 지금 이 상태가 우리 젊은이들이 빠져 있는 현실이고 우리가 조속히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이럴 땐 탐욕보단 비움이 더 필요한 자세다. 불교에서 6바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 바라밀) 특히 보시와 지계 바라밀을 통해 베풀면서 자신을 통제하는 탐욕에서 해탈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이 몸(身)과 이 마음(心)이 곧 나(我)라는 그릇된 관념에서 벗어나, 보시(베풂)를 통해 당기는 에너지를 주는 에너지로 전환해 욕됨을 참고 꾸준히 연습해서 탐욕을 억제하고 베푸는 에너지로 활기를 채우면 되는데 그것이 말보다 참 어려운 일이다. 기독교에서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계명 즉,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에서 이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보다 못한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고 배려하라는 것인데 실천하기 어렵다. 베풀려면 욕심과 집착을 버려야 가능하고 베푸는 삶이 손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촛불 한 개로 많은 촛불에 불을 붙여도 처음 촛불의 빛은 약해지지 않는다. 탈무드의 핵심도 베풂이다. AI 시대는 더욱더 나를 잃어버리고 정제된 자아가 더 없어져 버린다. 얼마 전 어떤 단체에서 토론행사의 패널로 초청돼 '교육과 청렴'이란 원고를 청탁받은 적이 있다. 사무실 젊은 직원에게 챗GPT 사용법을 배워 간단히 원고 작성을 하려 했는데, 너무 무성의하게 보여 먼저 내 원고를 완성한 후 챗GPT로 교육과 청렴원고를 부탁했더니 몇 편의 원고를 어려움 없이 단 몇 초만에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론 원고 작성뿐 아니라 각 외국어 번역, 회화 등은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인성교육이고 특히 겸손, 공감, 배려는 더욱 중요할 것 같다. 옛날에는 가정교육(home schooling)과 밥상머리 교육(Table schooling)이 해결했지만 요즘은 입시교육과 인권교육에 밀려 어디에서 교육을 해야 할까? “겸손은 크게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라 마음을 숙이는 것, 상대를 존중하고 역지사지 마음으로 진솔하게 이해하면서 인정하는 것”이라고 슈바이처 박사가 잘 설명했다. 학교장 시절 월 1회 전체모임을 하면 학교장 훈화 순서가 있었다. 준비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무척 공들여 열심히 했는데 듣는 학생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여고생들의 수용 태도는 좋은 편이고 남고생들은 보통, 중학생들은 아주 심각할 정도로 듣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결론은 무조건 짧게 하는 것이다. 역사 이야기, 인성교육, 청렴교육, 바른 삶, 미래의 직업 등 다양한 주제로 준비를 한다. 단, 듣는 학생이 20%뿐이라 해도 열심히 준비를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좋은 추억이었다. 이런 어린 학생들이 훗날 나이가 들면 또 스스로 발전해 느낄 때도 있을 거다. 우리의 삶은 때론 불행하고 때론 행복할 수 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고, 또 한 번 생각나는 삶이었다고 반추해 볼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인생의 끝자락에라도 아름다운 긍정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길 희망해 본다. 자존감(self-esteem), 자기 존중감, 자긍심, 자기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려는 감정을, 자신을 돌아보면서 키워나가는 멋진 사람이 되어 보자. 또, 때로는 무지계율(無知戒律)을 스스로 강조해 보자. “모른다”는 선언을 통해 나를 비워(겸손) 타인이 들어올 수 있는 소통 공간도 만들어 보자. 소중한 것이 내 손안에 있을 때는 귀함을 알 수 없고 그것이 없어졌을 때 아쉬움과 후회가 남게 된다. 내 삶도 가끔 한 번씩 멀리 떨어져서 관조하며 내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넘치는지 또는 부족하고 채워야 할 것, 충만해서 절제해야 할 것 등 가끔씩 자기(自己)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5천 년을 배고프게 살아온 우리 대한민국은 초고속으로 압축 성장한 얼마나 잘 사는 나라인가! 스마트폰 하나면 카드결제를 비롯 교통카드, 아파트 열쇠 등 모든 것이 해결되고, 아파트나 주택엔 자동차가 넘쳐 주차난이 심각하며, 울창한 숲, 거미줄같이 뻗은 고속도로, 다목적 댐, 넘쳐나는 먹거리 등 이렇게 편리하고 풍요롭게 살면서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불안하고 불만스럽게 지내는지 외국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나를, 이웃을,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돌아보고 잃어버린 나(我)를 찾아 한번쯤 돌아보며 살자. ▣ 송근식 ◇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 前부산예문여고·광명고·경혜여고·건국중학교 교장 ◇ 학교법인 선화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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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장의 따뜻한 학교 이야기] 학교는 삶의 향기를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그릇
[교육연합신문=김미영 기고] 학생들에게 학교는 한 권의 책이자 하나의 감상 작품이다. 학생들은 교과서를 읽듯이 학교를 읽고 듣는다. 학교 시설 자체가 하나의 텍스트로서 학생들의 배움의 도구가 되어야 하고 예술성이 있고 감상이 가능한 건축물이 돼야 한다. 이러한 예술성을 가진 건물이 돼야 역사적 건물로 남을 수 있어 그 역사성은 학교로부터 읽기· 듣기를 끝낸 학생들의 쓰기· 말하기를 통해 하나의 큰 원으로 완결될 수 있다. 이제 학교는 학교의 공간과 구조를 포함한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고 교육 외부에서의 눈이 아닌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학교의 환경, 공간, 구조 등의 디자인을 고찰해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교육에 대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가지는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의 물리적 환경은 지금껏 교사들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다. 대부분 관리자의 몫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여기서 말하는 학교디자인이란 학교 교사들의 관점에서 학교 환경과 공간을 기능적이고 아름다운 공간으로 디자인하고 개선점을 탐색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며 학교환경과 학교교육을 합쳐서 학교디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학교디자인에 대해 관심이 많은 김교장, 퇴직한 지금도 그 관심은 진행 중이다. 김 교장이 근무하던 부산한솔학교(특수학교)의 학교디자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교실안내판 이야기▶ 일반적으로 학교에 가보면 학급(일반교실) 출입문 옆에는 담임 그리고 간단한 학급소개 안내판이 모두 부착되어 있다. 그러나 교사연구실, 특별실, 행정실 등에는 팻말 부착이 거의 대부분이다. 김 교장은 부임하면서 학교의 특별실을 포함한 모든 실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사진과 함께 필요한 간단한 내용을 담은 안내판을 부착했다. 그리고 교장실에도 학교장을 소개하는 짧은 게시글과 함께 사진을 소개했다. 학교에는 교사 외에도 다양한 군의 근무자들이 있고 제일 중요한 우리 학생들이 있다. 각 교실에 누가 근무하고 무엇을 하는 곳인지 쉽게 알 수 있는 배려와 소통의 학교디자인인 것이다. ◀교문의 나비조형물 이야기▶ 교문은 막힌 울타리의 입구이고 그 학교의 얼굴이다. 학교 건물과 연계하여 더 상징적으로 디자인되어야 한다. 거창할 필요는 없지만 하나의 소박한 조형물로 기능해야 하며 그 지역의 특색이나 예술성까지도 포함이 된다면 역사적 조형물로서의 가치도 포함이 될 것이다. 지역별로 여행하며 학교 교문을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요즈음 조금씩 달라지고 있기는 하지만 학교마다 건물이 비슷하듯 교문 또한 개성이 없는 학교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의 금정산 기슭에 위치한 금성초의 교문은 등교하는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 하려고 애쓴 흔적이 있는 디자인이라 마음이 따뜻해졌던 기억이 있다. 차량통행을 제한하는 설치물도 정감이 넘치는 디자인이다. 아침 등교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어떨지는 보지 않아도 그림이 그려지는 학교이다. 부산한솔학교 교문의 나비조형물은 개교 당시에 설치된 조형물이 아니다. 부산교육청과 함께 외부기관에서 주최한 ‘아름다운 학교상' 공모에 당선되어 받은 상금을 김 교장은 의미있게 사용하고 싶어 여러 방안을 고민하던 중에 교사들의 의견을 모아 우리 학생들과 지역주민과의 소통을 위한 희망의 상징으로 교문에 조형물을 설치하게 됐다. ◀중앙현관 바닥화 이야기▶ 현관에서 학교 숲으로 향하는 넓은 중앙 홀 바닥에는 '나비와 꽃'(2x2m)그림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학교 숲으로 가는 입구라는 안내이기도 하고 학생들의 등교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그림이기도 한 화사하고 감성적인 작품이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아궁이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그림은 밟지 못하도록 차단되어 있지는 않다. 오히려 학생들이 밟고 다니며 느낄 수 있도록 제작된 그림이다. 꽃에 앉아 나비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학생들도 있다. ◀학교외벽 LED 조명시계▶ 개교하고 학교 건물 외벽에 좀 특별한 대형시계를 설치하기 위해 많은 시간 고민을 했다. 학교는 밤에 불이 꺼지면 적막한 공간이 돼 있고 후미진 외곽에 위치한 학교나 도심에 위치한 학교 모두 약간의 기능적 조명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저녁에는 아파트의 가로등이나 조명등이 더 따뜻해 보이고 학교는 오히려 주변 시설이 보내는 조명의 덕을 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교는 지역사회의 중심이 되고 도움을 주는 역할이 돼야 하고 야간에도 지역사회에 따뜻한 빛을 줄 수 있는 다양한 디자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부산한솔학교에 설치한 조명시계와 같이 아파트의 긴 옹벽을 따라 설치된 환경조형물에 조명등 역할을 부여해 밝은 밤거리를 조성하는 환경디자인은 범죄를 예방하기도 하고 건강을 위한 산책을 유도하기도 한다. 김 교장은 학교시계는 대부분 시계탑이나 동그란 모양으로 현관 중앙의 높은 곳에 설치한다는 편견을 깨고 반영구 LED전구와 함께 숫자 하나 하나를 외벽에 설치해 고급 전시관에 온 느낌의 외벽시계를 설치했다. 오후 8시부터 새벽4시까지로 자동 세팅하여 인근 지역도 따뜻하고 밝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학교를 방문하는 손님들이 감탄사를 보내오기도 했다. 비용 문제는 김 교장이 인근 2~3개 아파트시공업체 대표를 만나 위의 내용을 브리핑해 기부로 해결을 했지만 학교를 지을 때부터 이런 환경적인 학교디자인을 고민해 본다면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자신만의 색깔을 살린 학교는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학생을 기를 수 있다. 창조적인 학교를 만든다는 것은 창조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이고 이것은 창조적인 인재가 될 다양한 사람들이 활동할 무대를 만드는 것이다. 교육은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긍정에서 출발한다. 창의성 있는 학생을 기르고 싶으면 창의적으로 디자인된 학교를 지어야 할 것이다. 교과과정뿐만 아니라 교육과정 전체에 창의성이 부여되어야 한다. 교과와 거기에서 다루는 내용의 배열을 뜻하는 교과과정이 아니라 학습의 내용으로서 교과과정과 그것을 다루는 활동계획과 교육방법의 계획도 포함하는 교육과정을 담는 그릇으로서 학교를 새로이 디자인해야 할 것이다. 학교디자인의 고민은 조화로운 공간 환경을 추구해 더 나은 학교를 만들고 이를 사용하고 경험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는 어쩔 수 없이 오는 곳이 아니라 오고 싶어 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공부는 진지한 것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미래의 사회는 잘 놀 줄도 알아야 한다. 웃음, 게임, 놀이, 유머 등을 즐길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놀이적 감성의 반영을 통하여 오감이 살아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학교는 삶의 향기를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그릇이 되는 것이다. 메마른 사막에는 모래밖에 없지만 풍요로운 오아시스에는 나무와 물이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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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학교는 아이들에게 화재대응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교육연합신문=황진성 기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화재대응 방연용품의 비치 및 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라 학교 및 공공시설, 아동어린이 시설 등 다중 이용시설의 화재발생 시 유독가스 흡입 및 안전을 위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최근 학교에 화재대응 방연용품을 구입하도록 하되, 많게는 300만 원에서 적게는 20만 원의 예산이 책정되었다. 학교의 구매 관계자는 화재대응 방연용품 구매 시 조달사업에 관한 법률 제27조와 관련해 구매면책으로 보호받아야 하고, 학교장은 주어진 예산으로 다수의 학생이 화재 시 유독가스로부터 안전한 환경을 구축하게 해야 한다. 그럼에도 요즘 들리는 소리는 학교장과 업체가 결탁해 물품선정위원회 실무자에게 업체가 제공한 터무니없는 가격과 무인증 제품을 결정토록 하는 사례들이 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간다. 있을 수 없는 일들이 학교 현장에서 번연히 일어나고 있다. 화재대응 방연용품 예산 집행 후 구매면책이 보장된 제품인지, 화마로부터 다수의 아이들이 생존할 수 있는 행안부 재난안전인증 제품인지, 감사를 통해 잘못된 예산 집행에 대해서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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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운칠기삼(運七 技三)
[교육연합신문=송근식 기고] 우리는 생각(思)을 하면 말(言)이 되고 말은 행동(行)이 되며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習慣)이 되고 습관은 곧 운명(運命)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운은 우리 자신이 만드는 부분도 많다. 의사출신 경제학자 김현철 교수(홍콩과기대)는 시골 보건소 왕진의사를 할 때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을 더 받는 것을 보고 사회병을 고치기 위해 실증주의 경제학자로 전환, 코넬대 교수에서 가사도우미 비용이 미국보다 홍콩이 저렴해 대학을 옮긴 그 교수도 “인생은 능력일까, 운일까?”에 대한 질문의 답으로 인생 8할이 운이 결정한다고 답했다.(물론 위대한 영웅, 과학자 등 특별한 능력자는 제외, 범인(凡人)들 중에서 일어나는 것) 세상에는 수없는 사람들이 혼신을 다해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다. 노력한 만큼 얻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떤 때는 신(神)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운칠기삼'이란 말은 운이 7할(70%) 기술(능력)이 3할(30%)이란 뜻이고 고스톱판에서는 자주 쓰이는데 꾼이 아닌 재미로, 오락으로 즐기는 우리도 정말 수긍될 때가 많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후보자도 한 번 보자. 김종필은 40대 국무총리를 지냈고 혁명정부의 2인자로 평생을 대권의 야망을 갖고 때를 기다렸지만, 80년도 서울의 봄이 왔을 때 전두환의 등장으로 사라졌고, 이회창은 소위 경기고, 서울법대, 대법원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최고 엘리트인데도 M상고 출신 김대중에게, 두 번째는 B상고 출신인 노무현에게 연달아 패하며 사라졌고, 윤석열 검찰총장은 기라성 같은 정치인들을 제치고 단 한 번만에 대통령이 된 것은 단순한 능력만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지자막여복자(智者莫如福者)' 삼국지에 조조가 장비 군사가 숲 속으로 피신하여 전멸시키려고 화공(火攻)술을 펼쳐 전소시킬 절호의 기회에 갑자기 먹구름이 일고 폭우가 쏟아져 허사로 끝났을 때 쓴 말이 아무리 똑똑한 놈도 복 많은 놈을 따를 수 없다고 한탄한 이 말도 운 좋은 사람을 나타낸 말이다. 살아가면서 관운, 재운, 명예운, 부부운, 애정운, 자녀운, 부모운, 학운, 친구운, 국운 등등 많은 복을 갖는 사람도 주변에서 많이 본다. 1997년도 부산 Y여고 교장실로 선배 교장이 친구 한 명과 함께 찾아왔다. 차를 마시면서 유심히 나를 보더니 나는 관운은 좋은데 재운이 없겠다고 했다. 웃으면서 관이 있으면 재물은 동반되는데 무슨 뜻이냐고 했더니 절대 과욕을 버리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충청도 공주 마곡사에서 다년간 공부를 한 사람이라고 했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를 돌아보니 너무 맞는 예견이고 나의 운명이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담임을 해 보면 꼭 실력만이 아닌 때도 간혹 있다. 평소 알찬 실력과 노력으로 기대했던 학생들이 실수 혹은 상상 이상으로 나쁜 성적이 나오는가 하면 어떤 학생은 학력고사 혹은 수능이 너무 기대 이상으로 나와 주변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90년대 초 내가 잘 아는 집 학생은 성적이 상위권이었는데 수능이 전문대학 진학도 불가한 점수가 나왔다. 방법은 1차에 기적을 바라볼 뿐 딴 방법은 없었다. D대 원서를 써서 본인과 함께 오후 늦게 그 대학으로 갔다. 그런데 그 학교 담임이 거절할 뿐 아니라 학급 전체 학생들 앞에서 '네가 여기 합격하면 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고 무안을 줬다고 했다. 나도 오기가 생겨 입시의 점을 이용, 접수 마감 30분 전에 미달학과 몇 개 챙겨 그중 제일 센 학과에 접수할 각오로 있었다. 왜냐면 이 점수로는 끝까지 미달돼야만 합격할 수 있고, 한 명만 넘어도 탈락하기 때문이다. 마침 6시 마감까지 정원보다 3명이 미달돼 합격의 영광을 안았고 무사히 그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해 잘살고 있다. 이 얼마나 행운이고 기적인가? 그 학생은 소위 학운이 좋은 것이다. 그때 그 담임은 손가락에 장을 지졌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또, 내가 담임한 학생은 어머니가 경북의 명문여고를 졸업했지만 가정이 어려워 서울에 가고 싶은 대학을 진학 못 했고 부산의 약사 남편과 결혼, 시내에서 약국을 경영하고 있었다. 첫 면담 때 본인이 가난 때문에 이루지 못한 꿈을 이 딸에게서 꼭 실현하고파 초등학교부터 계획된 학습프로그램으로 키워왔으니 꼭 성취하길 바란다고 소원했다. 간혹 한 번씩 멋진 도시락을 진학실로 보내 주기도 했고, 나도 최선의 노력을 했다. 그런데 학생 본인은 그 어머니의 지극 정성이 부담스러웠고 힘겨워, 무언의 반항감도 있었다. 학생은 인물도, 심성도 고우면서도 결국 그 소망이 거부된 채 서울의 다른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었고, 지금도 내가 더 안타까움이 남는 학생이다. 1986년도에는 대학입시에서 영어가 제2외국어로 지정된 유일한 해가 있었다. 그 해 나는 3학년 부장을 맡았고 일본어를 제2외국어로 하는 선택반을 만들어 담임을 맡았다. 한마디로 인문계 7개 반 중 모의고사 성적은 최하위였지만 열심히 한 결과 일본어 평균점수가 43점(50점 만점)으로(영어는 평균 30점 대) 수학 점수까지 만회가 되었다. 고려대 일문과 1명, 부산대 일문과 7명 등 전국 일문과에 대다수가 진학했다. 그 제도가 아니었다면 4년제 대학 진학조차 거의 불가능했고, 이건 국가가 만들어 준 행운이었다. 교직은 평교사는 특별한 일 없으면 정년까지 편안히 마칠 수 있지만, 사립학교 관리자(교장)는 사립학교법 정관 규정에 따라 임용되어 정해진 임기(그 당시 2~4년 연임, 요즘은 4년 중임)를 따라야 하며 또 설립자가 다른 타 사립학교 간 인사이동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 나는 운칠기삼이 아닌 운 49%, 능력 51%(능력 중시)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 신설 Y여고에서 첫 교감을 맡은 2년 후에 이사장님께서 교장으로 승진하라고 했다. 난 정년이 18년이나 남았고 재단의 친인척도 아니서 극구 사양했는데 결국 그 2년 후에는 부득이 40대 교장이 됐고, 또 전임교에서 강력한 초빙으로 이동과 동시에 운명의 세월을 보내면서 4개 학교를 돌고 돌아 정년퇴임을 하게 됐다. 대신 부산의 최연소 교감, 최연소 교장, 최다학교 교장의 타이틀을 가진 영광은 얻었다. 내가 신설교 초대 교감일 때 이사장님의 총애를 받았던 것도 돌이켜 보면 1992년도에 개교 준비를 위해 교직원 책걸상 등 집기를 구입하러 광복동의 동영강철사에 이사장님과 동행했다. 그 사장과 한참 얘기를 나누면서 가격 흥정에 조율을 못했다. 그때 내가 이사장님께 현금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가능하다고 해서 사장보고 현금지불(그 당시는 대부분 6개월 당좌수표 거래) 조건으로 50%로 할인 가격으로 해라. 대신 2년간 연속 이 집에서 구매하겠다고 했더니 주인이 쾌히 승낙을 했고 그 후 약속대로 이행했다. 그때 이사장님께서 장사 50년을 한 자기보다 학교 선생이 어떻게 그런 방법을 아느냐고 했고, 전임교 이사장께 배웠다고 했더니 그것이 학교 경영을 맡겨도 된다고 생각한 것 같았고, 인물도, 학벌도, 능력도 없는 나를 40대 교장으로 인준한 것 같았다.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정년퇴임 해인 1월에 동창 아들 결혼식장에 갔는데 사업하던 친구가 퇴임 후 계획을 묻길래 별 뜻 없이 택시 기사나 아파트 경비라도 할 거라 했더니 자기 회사에 출근하라고 했다. 그 당시는 덕담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3월 초 서울 아들 집에 가 있는데 전화가 와 왜 출근하지 않느냐며 당장 내려와 내일부터 출근하란다. 직원이 270여 명이나 되는 중견 공장이고 나는 인사·총무 담당 상무를 2년간 했다. 그 후 제1회 대한민국 독서박람회 운영위원장,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등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은 순전히 운이며 좀 과대 표현하면 욕파불능(欲罷不能-그만두고자 해도 그만둘 수가 없다)이란 말이 생각되기도 한다. 부산 모 국회의원과 차담을 하면서 능력은 물론이지만 운도 참 좋았다고 했더니 그 백 모 의원은 겸손하게도 "운이 7할, 천운이 3할"이라고 해서 함께 웃었던 적이 있다. 나는 항상 운이 49% 능력이 51%라고 생각하며, 지난날도, 지금도 모두에게 감사하며 지낸다. ▣ 송근식 ◇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 前부산예문여고·광명고·경혜여고·건국중학교 교장 ◇ 학교법인 선화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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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장의 따뜻한 학교 이야기] 교장실부터 바꾸어 보자! 무엇이 달라지는가!
[교육연합신문=김미영 기고] 대부분 학교에서의 교장실 출입문은 행정실과 연결되어 있고, 학교에 따라 교장실 출입문을 폐쇄하고 행정실을 통해 출입하는 경우가 간혹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행정실에서 들어가는 출입문과 교장실로 직접 들어가는 출입문으로 구분되어 있다. 교장실이 투명하지 않으면 학교장이 교장실에서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볼 수가 없다. 불투명 유리나 블라인드로 가린 경우 복도를 지나가는 학생들과 선생들은 교장실 문을 열지 않는 한 학교장이 무엇을 하는지 볼 수가 없다. 십여 년 전부터 새로 짓는 학교에서는 모든 교실의 창을 투명창으로 설계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 학교도 창호공사를 통하여 투명창으로 교체되고 있다. 바람직한 변화이다. 그럼에도 교장실만큼은 아직도 변화가 필요한 곳이 많이 남아 있는 실정이다. 투명해진 유리창은 학생들에게는 교장실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교사들에게는 행정실로 번거롭게 들어가서 부재 여부를 알거나 부재 여부를 알기 위한 노크를 하는 일이 없어진다. 일반적인 문과 비교하면 전면 유리창을 가진 문은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차이가 있다. 링컨도 항상 누구든 자신을 찾아올 수 있도록 집무실을 항상 열어두었다고 한다. 교장실의 투명 유리창은 만남을 촉진하는 상징적 표현이며,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교장의 비전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막힌 권위가 아니라 소통하는 권위이다. 핀란드의 디자인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유는 디자인의 본질인 비관료적이고 민주주의적 원칙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의사결정 방식은 수평순환 구조이다. 우리의 조직문화는 달라지고 있기는 하지만 수직선형적 구조이며, 상명하달식의 의사전달이 대부분이다. 결국 이러한 사회는 위로 올라가는 것이 지상최대의 목표이다. 업무의 전문성에 대한 열정이나 천착, 자신의 개성이나 특기를 함양하려는 관심은 애당초 부족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개인의 자아실현, 일상의 행복 등 삶의 가 치에 많은 관심을 기울일 여지는 수평적 조직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교장실의 투명 유리창으로 교직사회의 현실이 개선될 수는 없지만, 지금 현재 학교 구성원 누군가는 무엇인가를 실천해야 우리의 미래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은 개개인이 타인, 그리고 사회와 바르고 원만한 관계를 맺어나가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모든 리더가 ‘친화력’을 자신의 가장 큰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김 교장은 개교 학교 교장으로 첫 발령을 받고 일반교실과 똑같이 교장실을 투명창으로 교체했고 두 번째 학교인 '신나는 학교, 신남'에서도 발령 첫날, 교장실 창문부터 화끈하게 투명으로 교체하고 아이들과 선생들이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교장실로 꾸몄다. 자연스러운 소통의 시작이다. 김 교장은 출근하면 교장실 출입문부터 활짝 열어두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선생들이 업무차 들어왔다 나가면 꼭 문을 닫아준다. 그러면 또 쫓아가서 열어 놓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니 '교장 선생, 문은 그냥 열어 둘까?'하며 나간다. 열려 있는 문은 누구든지 언제든 들어와도 된다는 '소통'의 상징적인 의미이다. 선생, 학부모, 직원, 아이들 모두가 지나가다 들어와서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들여다보고 인사만 하고 가기도 한다. 특히 우리 아이들의 관심이 가장 많다. 하루는 2학년 귀요미 4명이 김 교장에게 신기한 것 보여준다며 별을 만들 수 있다고 들어왔다. "우와, 너무 신기하다"며 "4명이 힘을 모으니 별도 만들 수 있네. 대단하다!"고 폭풍 칭찬을 했다. 그리고 교장실 구경해도 되냐고 물어본다. '암만 암만'... 궁금이들의 궁금증을 그렇게 해결했다. 하루에 평균 20여 명의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교장실에 놀러 온다. 이 친구들 응대하느라 심심할 틈이 없는 김 교장이다. △교장선생님, 뭐하세요?' △교장선생님, 이거 어디 갇다 놓으면 되요?' △교장선생님, 애들이 싸워요. 빨리 와 보세요!' △교장선생님, 이거 뭐예요?' △교장선생님', 파마 하셨어요?' △교장선생님, 글씨는 언제부터 잘 적었어요?' △교장선생님, 행정실이 어디에요?' △교장선생님, 이리 와 보세요. 저기 이상한 거 있어요.' △교장선생님, 이거 제가 만든거예요. 잘 했죠?' △교장선생님, 내 꿈이 뭔지 아세요?' 교장실 앞을 아이들의 놀이터로 만들 생각이고 아이들의 꿈을 소재로 소통하려고 출입구 옆 벽면을 '꿈 낙서판'으로 만들어 주었다. 자신의 꿈을 문자화함으로써 꿈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정년 후, 교장의 꿈도 아이들과 함께 함께 적어 보았다. 뭔가 분명해지는 듯하다. 아이들의 소중한 꿈 낙서가 빼곡히 채워지면 훌륭한 미술작품으로 탄생될 것이다 매일 아이들의 꿈을 읽으며 응원도 하고, 힐링도 하고 있다. 선생들도 가끔씩 와서 살펴보고 살짝 적기도 한다. 2월이 되면 액자로 만들어 작품으로 전시하고, 3월에 새 낙서판을 준비할 것이다.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어, 고등학생이 되어, 이 다음에 '어릴 때의 꿈'을 보게 된다면 과연 어떤 마음일까? 우리 아이들이 꿈을 가지고 있고 그 꿈을 향해 노력하고 도전하여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응원한다. 점심시간에는 김 교장이 아이들이 노는 운동장이나 뒷마당으로 나간다. '얘들아, 무슨 놀이 하노? 교장선생님도 같이 해도 되나?' '거기는 위험해. 이리 와.' '왜 울어? 빨리 눈물 닦고 친구들과 같이 놀아.' '이거 어떻게 차는 건데?' 그러고 보니 교장실에서는 아이들이 김 교장에게 많이 물어보고 운동장에서는 김 교장이 아이들에게 많이 물어보고 있다. 매일 아침 수업 시작 전 교장실에서 '10분 데이트'를 하는 한 남자가 있다. 김 교장이 매일 아침 등교맞이를 하는 교문 앞에서 만나면 반갑게 '하이파이브!'를 먼저 신청하는 씩씩한 남자다. 교장실 들어올 때는 5분밖에 시간이 없다고 튕겨 놓고 나갈 생각도 안 하는 시크한 남자다. '싫어요! 몰라요! 왜요! 왜 알아야 되는데요! 몰라도 되요!‘로 대화가 다 되는 엉뚱한 남자이다. 본인의 이름 외에는 아무 글자에도 관심이 없는 이 남자가 어느 날 로봇을 그렸다. "아하, 우리 OO이가 건담로봇을 좋아하는구나." 건담로봇을 그렸다는 것을 알아주니 김 교장에게 시크한 미소를 보내준다. 그나마 김 교장과는 쿵짝이 잘 맞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OO아, 네가 가장 가까이 만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 보자.' 우리 집도 알아야 하고, 우리 학교도 알아야 하고, 우리 부모, 선생, 친구까지 점점 관심을 넓혀 나가자. 할 수 있겠지? 넌 할 수 있어! 그렇게 김 교장이 있는 교장실은 아이들과 선생님들, 학부모들이 마음 편하게 들어와서 따뜻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김 교장은 그렇게 교육의 해답을 찾아간다. ▣ 김미영 ◇ 前신남초등학교 교장 ◇ 前부산한솔학교 교장 ◇ [특수교육 교구 제작의 이론과 실제] 저자 ◇ [학교디자인의 실제] 공동 저자 ◇ 부산교육대상 수상 ◇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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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전설이 된 추억 ①
[교육연합신문=송근식 기고] 교직에 일생을 바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지울 수 없는 전설 같은 추억 몇 개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인간은 아름답다고 느꼈을 때 비로소 마음의 행복과 힐링을 경험한다. 수구초심(首丘初心)으로 돌아가 잠시 마음속 추억을 그리움으로 회고해 본다. 요즘 젊은이들 표현을 빌면 팬덤(Fandom) 현상이라 하겠다. 나는 70년대 신설 사립 인문 여고에 교원 채용 응시를 했을 때, 유일하게 총각이라 1년 안에 결혼하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임용됐다. 결혼이란 것이 어디 쉬운 문제가 아니어서 몇 년이 흘렸다. 그 당시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없는 그야말로 아날로그 시대였기에 학생들은 TV와 학교 선생들이 유일한 소통의 대상이다. 당시는 또 교사들에 대한 인기투표도 있어 총각 선생은 항상 특혜를 누렸고 보통 몇 명의 팬들이 확보돼 있었다. 부산 구포 소재 K여고 교장실로 40대 중년의 아름답고 세련된 미인이 들어섰다. 학부모는 아닌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바로 전임학교 졸업생 장 모 양이었다. 그 학생은 재학 중 미스코리아에 출전 전력이 있는 자타가 인정하는 인물로 예쁘고 심성도 고운 학생이다. 매일 아침 일찍 등교해 내 자리를 정돈해 놓고 커피도 두곤 했다.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는 이미 소문이 날 정도로 나의 팬이었다. 졸업 때쯤 되어 면담을 요청해 상담실 아닌 예배실에서 만나자고 했다. 뭔가 긴장된 중요한 일 같아 뒷자리를 잡고 얘기를 들었다. 가벼운 것부터 시작, 예상대로 최후의 통첩 같은 말을 했다. 본인은 졸업과 동시에 나와 결혼을 하겠다. 내가 나이가 많아 본인은 대학을 포기하고 먼저 결혼 후 꼭 대학을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공부도 이미 포기했고 오직 결혼 결정만 했단다. 순간 머릿속이 하얀 상태로 변했고 어떻게 설득할까? 부모들은 알고 계시냐? 바로 결혼한다면 나도 먼저 학교를 옮겨야 한다. 어떻게 이 학교에 근무할 수 있겠나? 직장 이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 상태로는 결혼은 불가하니 너부터 재수해서 대학 진학부터 하자. 먼저 입시 준비를 하자고 했더니 갑자기 어깨가 들썩들썩하더니 오열을 터뜨리고 졸도를 했고 넘어졌다. 순식간 일이라 목사님이 양호선생을 호출하여 응급처치를 한 한참 후에 진정이 됐다. 그 후 그 학생은 졸업과 동시 대학을 포기하고 멀리 대구에 있는 교사와 결혼해 가버렸다. 20년 후 만나 즐겁게 식사를 하며 전설 같은 추억과 아련한 기억을 함께 먹었다. 에피소드(1) 조 모양은 학급 반장으로 같은 반 또 다른 학생과 나를 두고 너무 심각하게 다투어 학기말에 결국 마산으로 전학을 갔다. 모든 것이 해결된 듯했는데 다음 해 3학년 초에 다시 전학을 왔다. 보통 선생을 좋아하는 학생들은 무조건 대학을 가라. 대학 가서도 마음 변치 않으면 결혼해 주겠다고 설득하면 대부분 학생들은 왜 그때 선생처럼 못난 사람을 좋아했는지 서로 웃음을 짓고 과거를 추억한다. 그런데 이 학생은 서울로 진학을 했고 대학원을 마치고 학원과 대학에도 출강을 하면서 내가 결혼을 한 후에는 학원 영어 강사와 결혼을 했단다. 그것도 나와 닮았다는 이유 하나로 유부남에게... 이성의 문제는 지식의 차원을 넘어 이해할 수 없는 참 불가사의한 문제다. 에피소드(2) 또 하나 재미나는 추억은, 김 모 양은 자기는 부산대 간호과를 꼭 진학하여 나의 건강을 책임지겠다고 했다. 내가 너무 허약하게 보여 전문적 공부를 해 확실하게 책임지겠단다. 기특하기도 하고 놀라워서 고맙기도 했지만, 나는 이미 결혼도 했고 사회적 제약도 많으니 너 하고 싶은 전공을 택해 가고 싶은 대학에 가서 재미나게 살아라고 했다. 결혼은 이혼이란 제도를 이용하면 되고, 학생 본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제자라는 관계이기 때문에 내가 자기를 기피한다고 생각하고 그해 말에 경남여고로 전학을 가 버렸다. 일주일에 한 번씩 꼭 편지가 왔고 열심히 해 목표한 대학에 진학을 했단다. 그해 스승의 날에 학교를 찾아와 커피를 나누면서 지금도 그 마음 유효한지 물었다. 해맑은 표정으로 대학에서 새로운 친구도 만나고 미팅도 하면서 폭넓은 시간을 보내니깐 옛날은 까마득히 잊고 한 때의 추억이고 성장 과정이었으며 정말 선생이 고마웠다고 인사를 했다. 또 선생을 괴롭히지 않는 것이 좋은 인연으로 생각한다며 어른 같은 말에 후련하면서도 섭섭함을 느낀 것은 여고생답지 않은 저돌적 행동과 지금의 냉정한 마음의 변화 때문이었을까? 에피소드(3) 몇 년 전 한 40대 제자로부터 광안리 커피숍에서 전화가 왔다. 점심식사를 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만나보니 얼굴이 기억났고 아주 세련된 중년이었다. 차를 나누면서 고3으로 돌아가 담임이 누구였고 친구들 이야기, 재미났던 추억들을 소환하면서 먼 과거 교정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본인은 공부를 잘하는 편이 못됐고 내성적 성격이라 다른 애들처럼 호불호를 표현 못했고, 3년간 좋아하면서도 말도 못하고 서울로 진학했는데, 적응을 못해 친척이 있는 미국으로 중도 유학을 떠났다고 했다. 환경이 바뀌고 고국과 멀리 떨어진 타국에서 생활하니까 친구 몇 명과 남자라곤 마음속 간직한 나를 더 그리워하고 사랑했단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도 하고 가족들도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부모들의 주선으로 결혼도 했고 자녀들도 생기면서 잠시 잊고 있었는데 마침 가족 행사로 한국을 방문하면서 꼭 용기를 내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단다. 마침 중학교 교사로 있는 여고 동창에게 연락이 돼 내 번호를 수소문해 알았다고 했다. 20여 년 만에 털어낸 그녀의 속마음을 들으면서 그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니 꼭 단발머리 여고생으로 환생되었다. 맛있게 점심 식사를 하면서 보낸 그 시간은 참 많은 기억을 더듬어 주었다. 에피소드(4) 지난해 여름 KTX를 타고 서울 가는 중 광명고 행정실에서 전화가 왔다. 어떤 여자분이 제자라고 하는데 전화번호를 알려줘도 되느냐고 했다. 승낙 후 바로 한 통의 전화가 왔는데 S여고 몇 회 졸업생인데 하고 자기소개를 했다. 며칠 후 만나 과거사를 들어보니 중3 때 연합고사 감독으로 내가 들어왔고 그때부터 관심을 가졌는데 또 우연히 S여고에 배정을 받아 3년간을 나를 좋아했지만 직접 표현은 못한 채 내가 복도를 지나가면 반 친구들이 대신 OOO!, OOO!이라고 외쳤다고 했다. 대학 영문과를 나와 오랜 시간 학원 강사를 했고 지금은 직접 경영한다고 했다. 결혼도 하고 자녀들이 곧 결혼 준비 중에 있으며, 60대 초입으로 잘 살고 있는 모습이 얼굴에서 보였다. 요즘도 가끔 전화하며 한 번씩 차를 나누며 40년 전의 얘기를 추억하는 천사 같은 제자다. 난 관리자를 교사보다 오래 한 불행한 선생이지만 이런 제자들을 생각하면 참 행운이란 생각이 든다. 감사하다.(교사는 담임, 특히 고3 담임이 가장 보람 있다. 그런데 나는 간부직, 관리직을 더 많이 했다.) 불과 40년 전 만해도 우리는 초등학교만 남녀공학이고, 도시의 대부분은 여중, 여고로 분리돼 컴퓨터, 스마트폰은 상상 속의 일이고 오직 공통된 교복만 입고 다닌, 저 먼 달나라 속 얘기 같은 시대임. ▣ 송근식 ◇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 前부산예문여고·광명고·경혜여고·건국중학교 교장 ◇ 학교법인 선화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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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가꾸는 학생의 꿈을 키우자 - 인천제물포고 전재학 교감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기고] 필자가 재직하는 학교는 학년별로 본관, 후관, 별관으로 나눠 생활한다. 워낙 넓은 공간이라 대학 캠퍼스를 연상하는 교사동이 아름다운 전경을 이루고 있다. 어느 날 야간에 자기주도 학습을 실시하기 전에 3학년이 생활하는 별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한 학생이 전날 내린 봄비에 젖은 땅을 정성껏 삽으로 파면서 텃밭을 일구고 있었다. 학생과의 대화를 통해 그는 3학년 학생으로 ‘텃밭 가꾸기’ 동아리의 회장이었다. 6명으로 이뤄진 자율동아리를 운영하면서 그는 제법 능숙한 손길로 땅을 파고 흙을 고르게 일구며 감자를 심고 있었다. 지금 심으면 6월경에 수확을 한다며 열심히 설명하는 그 학생에게 나는 ‘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말을 해줬다. 그 순간에 가슴에 꽂히는 무언가를 느낀 듯 아, 참 좋은 말이네요. 나무에 푯말을 걸어서 늘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씽긋 웃는 것이 아닌가. 그 표정이 너무도 순박하고 진실한 농부의 모습과 같았다. 그 후 몇 차례 저녁 시간이면 텃밭에 나와서 열심히 땅을 일구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텃밭을 가꾸는 모습에 한 마디 격려를 덧붙여 “요즘 일본은 농과대학의 인기가 부활하고 농작물이 국가안보에 연계돼 그 중요성이 날로 증대된다.”고 말해주니 “저는 중국에 화훼산업으로 도전장을 내려고 합니다. 5조 9천억의 시장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어떤 근거로 그러한 수치를 제시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무언가 열심히 자신의 꿈을 생각하며 키우는 모습이라 생각하니 그 학생을 다시 쳐다보게 됐다. 그렇다. 무기력한 요즘 학생들이 그런 꿈과 목표를 가지고 자신의 미래인생을 준비한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그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단다. 네가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그 꿈을 꼭 성취하길 바란다. 나중에 성공하면 교감 샘도 잊지 않고 연락을 할거지?"하고 되물으니 "물론이지요. 제가 꼭 성공해서 학교와 교감 샘에게도 자랑스러운 제자가 되겠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참으로 감동적인 학생과의 만남으로 그날은 힘든 줄로 모르고 하루를 마감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학생들의 무기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비판하며 한탄한다. 필자는 그 무기력의 원인이 어쩌면 우리 어른들에게 있다고 느끼지는 않는지 되묻고 싶다. 실제로 학생들은 자신들이 절대로 꿈을 포기하거나 삶을 그럭저럭 되는대로 살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그들이 과연 생각 없이 사는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들은 고민하고 힘겨워하면서 자신들의 꿈과 목표를 생각한다. 다만 어느 순간에 어떠한 계기가 발생해 그 꿈과 목표를 좌절당하거나 절망을 느끼기 때문에 심하게 무기력하게 된다. 이때 우리 어른들, 부모나 교사들이 나서서 그들을 이해하고 혼내지 말며 낙심하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는 청소년들을 달리 보자. 그들 편에 서서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격려하자. 그들은 우리의 미래이다. 그들이 3포, 5포, 7포, N포 세대라 비하하며 살아갈 때 우리의 미래는 무너진다. 출산율 저하로 인해서 언젠가 이 지구상에서 우리 대한민국이 가장 먼저 사라질 운명이라는 전문가들의 진단에 우리는 과연 얼마나 긴장하고 미래를 위해 대비하며 살아가는가? 그저 생색을 내는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 획기적이고 구체적인 활동이 국가적으로 뒤따라야 한다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과제이다. 그 중심에 자신의 꿈과 목표를 향해 살아가는 우리의 미래 주인공들에겐 모두가 적극적으로 나서 칭찬과 격려와 환대, 그리고 그들과 연대해 그 꿈을 키워주고 응원하는 어른이 돼야 하지 않을까? 텃밭을 가꾸는 청소년의 꿈을 존중하고 그들을 단지 공부를 하지 않는 불량한 학생으로 간주하면서 소중한 꿈을 포기하고 살아가도록 통제하고 억압하는 과오를 범하는 어리석은 어른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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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가꾸는 학생의 꿈을 키우자 - 인천제물포고 전재학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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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쌤의 희망램프] “여러분, 전적으로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 [교육연합신문=김진희 논설위원]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설레는 발걸음으로 등교하는 아이들 머리 위로 위풍당당한 현수막이 눈에 띈다. 공기업 취업 00명, 금융권 취업 00명, 특급호텔 취업 00명... 일반고등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흔치 않은 장면들이 해마다 펼쳐진다. 일찌감치 취업을 목표로 특성화고에 입학하여 3년간 열심히 전공과목 공부와 관련 실습을 통해 능력을 키우고, 그 결과 취업에 성공한 자랑스러운 이름들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자기소개서를 들고 노크를 하는 희망찬 목소리들로 취업지원 센터 내부가 시끌벅적하다.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결정한, 그럼에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말을 무기로 삼는 아이들의 확고한 의지가 담긴 종이 한 장엔 다듬어지지 않은, 그러나 순수하기 그지없는 무한한 가능성들로 빛이 난다. 오늘도 나는 아이들의 꿈과 노력이 녹아있는 수십 개의 취업 자료를 검토한다. 그 원석을 다듬어주고 본인의 적성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일. 오늘도 학교 안 취업지원센터는 여전히 바쁘다. 이곳은 특성화고 취업지원센터이다. 내가 만나는 특성화고 학생들은 용기가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또래들의 삶보다 좀 더 앞선, 그래서 때로는 버티기 힘들 수 있는 시선과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좌절하지 않는다. 알고 있다시피 취업을 목표로 특성화고에 진학한다는 것은 고학력자가 넘쳐나는 현실에서 꽤 용기 있는 선택이다. 경제적 부담이 될 수 있는 대학 등록금에 대한 염려, 청소년기에 꿈꾸는 낭만적인 캠퍼스 라이프를 접어두고 대학 진학이 아닌 취업을 선택한 그들의 나이는 중3의 시기, 16세~17세 남짓이다. 누구나 어렵던 우리네 시절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선택의 여지없이 산업의 동력으로 키워졌던 시절에 비하면 요즘의 아이들에게는 비교적 진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또 미래에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지 다각도로 탐색하는 과정을 거쳐 진학과 취업의 갈림길에서 최종 진로를 선택하여 고교를 진학한다. 인생의 큰 선택 중 하나인 진학과 취업의 고민에서 후자를 선택한 특성화고 학생들은 재학 중 희망 취업분야의 직무수행에 필요한 기본역량을 갖추고 졸업과 함께 산업현장에 진출한다. 일정기간 실무경력을 쌓은 후, 해당 직무에 요구되는 지적 요구와 자기계발의 필요 등에 의해 추후 진학의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필자의 직업은 진로와 인성 교육 전문가이며, 취업컨설턴트로서 현재 특성화고 취업지원센터의 취업지원관이다. 그동안 현직 강사와 취업컨설턴트로 활동하며 취업을 준비하는 여러 대상들, 예를 들어, 특성화고 학생들, 전문대를 포함한 대졸 취업준비생, 경력단절 여성들, 인생의 이모작을 설계하는 50대 이상의 신중년 취업 예비자, 자활의 꿈을 위해 도전하는 전국의 지역자활센터 사업단 등과 함께 취업을 위해 갖춰야 할 소양과 역량을 키우는 데 동행하여 왔다. 긴 호흡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의 길에서 누구나 자신의 뜻을 펼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함께 걷는 나의 직업, 보람을 넘어 기쁨으로 소통하는 이 일을 하고 있음에 감사한다. 꽃소식에 앞서 미세먼지가 온 하늘을 뒤덮으며 시작한 2019년 봄은 취업률이 뉴스의 정점에 있다. 우리의 취업에 대한 도전은 성공으로 언제나 '맑음' 상태가 될 수 있도록 현장의 생생한 취업 이야기와 취업을 위해 꼭 필요한 정보를 교육연합신문의 지면을 통해 나누고자 한다. “여러분, 전적으로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 김진희 논설위원 ◈ 교육N플러스 대표 ◈ 특성화고 취업지원관 ◈ 인천광역시차세대여성지도자연합회 고문 ◈ 前인천광역시 시민행복정책자문단 교육위원 ◈ 前인천광역시차세대여성지도자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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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쌤의 희망램프] “여러분, 전적으로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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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말과 글 그리고 세상 이치
- [교육연합신문=文德根 漢字語敎育硏究所長]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터인가 외국어를 외래어로 포장해서 쓰고, 우리말을 써도 충분한데 대화 중간에 ‘외국어’를 섞어 쓰는 바람에 계층 간 , 집단 간 소통이 안 되고 있다. 더 나아가 소통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는 안타까움과 불안감마저 밀려온다. 이제까지 우리 사회에서 영어는 성공의 언어로 인식되어 왔다. 특히 세계화가 밀려오면서 영어의 무분별한 사용은 더욱 극성이다. 모든 분야에서 영어 낱말을 온통 남발하거나 엉터리로 갖다 붙여 사용한 나머지 한국인지 외국인지도 모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전담반’이라 하면 될 것을 ‘TF’, ‘왕따’를 ‘패싱’, ‘귀띔’을 ‘tip’, ‘흉내 내는’ 것을 ‘코스프레’, ‘자체 감사’를 ‘셀프 감사’, ‘학교 앞’이라고 하면 될 것을 ‘스쿨 존’이라 쓰는 등 전문가도 알아먹을 수 없는 지경이다. 그래서 법정 스님이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것은 말 뒤에 숨은 뜻을 모르기 때문이다. 엄마들이 아기의 서투른 말을 알아듣는 것은 말소리보다 뜻에 귀 기울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라도 인문학 열풍이 불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인문학이란 삶 자체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에 말과 글의 어원을 아는 것은 인간을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글의 어원은 상당 부분을 漢字에 말미암고 있다. 漢字에 있어서 말은 소리요, 글은 그림이며, 뜻은 이치이자 마음이다. 이 세 가지는 바람직한 이치로써 밝은 세상을 이끄는 축이 된다. 그래서 우리말의 바탕인 漢字의 語源을 살펴 말과 글에 담긴 이치를 깊이 파악하는 것이 먼저이다. 옳은 말과 옳은 글이 옳은 뜻으로 새겨질 때 바람직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말의 70~80%가 한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한자를 모르면 개념이 정립되지 못한다. 또한 한자는 철학, 역사, 문화를 담고 있는 글자인 것이다. 그런데 한자를 공부하면서 훈과 음만을 배우고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면, 中庸이라는 한자어를 가운데 중(中,) 떳떳할 용(庸)이라고 읽고 쓰면서 그 속에 담긴 뜻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中이라는 글자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부터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中이란 과녁판을 설치해서 그 가운데에 새(鳥) 등을 그려놓고 맞추는 것이다. 거기에다 맞추기도 하지만 과녁을 뚫는 것을 貫革이라고 하다가 우리말로 과녁이 된 것이다. 그래서 과녁에 적중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中이란 가운데이면서 맞추는 것을 의미하면서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까지를 함의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운데’라는 말은 ‘中央’, ‘中心’의 뜻을 갖는다. ‘中心’은 누가 뭐라고 한다고 해도 움직이지 않음을 의미하고, 위 아래로 연결하면 ‘忠’으로 나의 중심을 바로 잡는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변된 마음, 즉 사사롭지 않고 공정하고 정당한 마음을 일컫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中心, 즉 忠을 잡으면 누구에게나 恕(용서할 서), 즉 똑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중’이라고 말하면 ‘스님, 중요하다. 무겁다’ 등의 뜻으로 생각하게 되지만 ‘中’, ‘重’으로 쓰면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요즘 길을 걷다보면 기관의 이름을 한글로 쓰고 그 밑에 영어로 쓰는 경우를 자주 본다. 기관의 이름은 그 기관이 무엇을 하는지를 국민들이 알도록 해서 쉽게 민원을 해결하는 것이 먼저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이 우선인가? 한글로 써진 글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漢字語를 병기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뜻글자라는 것은 이치를 정확히 관찰해서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거의 말과 실천으로 판단한다. 조선시대 최고의 독서광인 김득신은 한유의《사설》을 1만 3천 번 정독했으며, 《노자전》과 《중용》의 서문을 2만 번 씩 읽었고, 《백이전》은 무려 11만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책에서 찾으려고 한 독서 대가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책만 읽은 것도 중요하지만 읽은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즉 말과 행동에 담겨져야 하는 것이다. ‘신독’이라는 말도 ‘신독(愼獨)’이라고 써야 그 의미가 명확해서 보는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안내할 수 있는 것이다. 愼을 파자하면 忄(心: 마음 심)과 眞(참 진)으로 이루어짐을 볼 수 있다. 즉 진실한 마음을 일컫는 것이다. 속담에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듯이, 요즈음은 온통 새와 쥐로 덮인 세상이 되었다. 즉 CCTV 등이 온 세상을 뒤덮고 녹음을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漢字는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우리말인 것이다. 愼獨은 중국고전 <대학>과 <중용>에 나오는 말로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있을 때 더욱 삼가고 경계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중국계 미국인인 쑤린 하버드대 교수가 이 愼獨을 '하버드대 정신'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쑤린 교수는 빌 게이츠와 전설적인 미식축구 선수 제리 라이스를 예로 들면서 하버드 정신은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자신의 행동을 단속하고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도덕이나 규칙에 어긋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2000년 전 한자문화권에서 통용되던 덕목이 이 시대에 더 요망되는 가치로 자리를 잡은 것이지 않는가? 나무의 뿌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닌 것처럼, 한글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바탕에는 한자가 있어서 그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현재의 한글 전용 정책은 그 의미를 그냥 지나치면서 읽을 줄은 알지만 뜻을 모르는 사람을 길러내는 愚民化 정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두 번째를 마다하면 첫 번째의 수고로움마저 잃게 되며, 두 번째를 하게 되면 잃어버리는 것과 두 배로 늘어나는 차이가 있다는 삼국지 유비의 말처럼 한자를 공부하지 않으면 한글의 위대함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명심할 때다. 말과 글의 근본에 대해 나지막이 물어보자. 말과 글은 무어라고 대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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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말과 글 그리고 세상 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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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때’를 알아야 - 임오숙 화순도곡초 교장
- [교육연합신문=임오숙 기고] TV프로그램 ‘다큐 3일’에서 86세의 할머니가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라는 PD의 말에 주저 없이 “공부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다. 무슨 공부를 하고 싶으냐는 말에 진짜 공부를 하고 싶다며 ‘때’를 놓쳐서 공부를 할 수 없었다고 하셨다. 태평양 전쟁, 6. 25 사변, 제주 4. 3 폭동 등으로 공부할 ‘때’를 놓쳤다는 것이다. 농산물도 제 값을 받으려면 때를 맞춰 키워야 한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새벽 일찍부터 산지를 찾아 트럭을 몰고 다니며, 사온 상품을 가장 긴급하게 찾는 소비자를 만나는 때를 맞춘다. 이처럼 때를 맞추는 것은 잘 사는 방법의 하나이며, 세상살이도 때를 따라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눈을 뜨면 어제 같은 하루가 다시 시작되지만 어제의 하루가 아니다. 그 하루도 아침을 어떻게 시작하고, 낮에는 무엇을 하며, 저녁을 어떻게 맞느냐에 따라 다르게 되는 것이다. 來日의 ‘來(올 래)’는 봄에 때 맞춰 씨앗을 뿌리고, 정성으로 가꾸면 가을에 튼실한 열매를 얻어 올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來日이란 그저 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때에 맞춰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맞이하는 새로운 날이라는 깊은 속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때에 맞춰서 말을 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해가 뜨고 지면서 아침, 낮, 저녁이 모여 하루가 되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모여 사계절이 만들어지며, 유아기, 청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가 쌓여 인생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 ‘때’에 어떤 일을 하였는지에 따라 한 사람의 희노애락이 영글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때에 따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나를 보면서 어른들은 얼마나 조급했을까? 선생님 또한 그렇게 놀기만 하면 안 된다고 안타까워하진 않으셨을까? 지금 생각하면 옳은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진짜 어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보면 아이들이 요구하고 학부모가 바라는 대로 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이 때에 따라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알려주고, 하게 해야 하는 것이 우리 어른들 또는 선생님들이 할 일일 것이다. 매일 치킨을 먹고 싶다는 자녀에게 늘 사주는 부모가 현명한 부모일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녀를 이기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맛있는 반찬에만 손이 가는 어린 자녀에게 계속 먹게 하는 부모의 행동은 과연 아이의 건강과 미래를 생각한 것일까? 세계에서 노벨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민족이 유대인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교육을 긍정적으로 여기며 유대인 관련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유대인들은 밥상머리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들은 자녀가 한 가지 반찬만 계속 먹으면 그 반찬은 밥상 아래로 내려놓고 다른 반찬을 다 먹으면 내놓는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할 일을 하지 않고 컴퓨터 게임이나 스마트폰에만 매달리는 아이에게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아이가 바라는 것이니까 그대로 지켜보아야만 하는 것이 어른다운 행동일까? 그리고 어려운 일은 하지 않으려 하고 쉬운 일만 하려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무엇이든 사달라고 하는 자녀들에게 아이의 요구니까 무조건 들어주어야만 하는 것인가? 이와 같이 우리말의 바탕이 한자와 한자어이기 때문에 가르쳐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아이들이 어려워하고, 싫어하기 때문에 시킬 수 없다고 말하는 부모들에게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과연 이것이 수요자 중심 교육이라고 말 할 수 있는가? 대학 입학을 앞둔 학생들이 ‘국어 낱말 풀이’ 학원을 찾는 것을 보면 초등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이제는 방향을 바로 잡아야 할 ‘때’이다. 사람은 때를 따라 움직일 때 행복한 삶에 이를 수 있다. 먹을 때 먹고, 잘 때 자고, 쉴 때 쉬며, 공부할 때 공부하고, 일할 때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을 실천하지 않았을 때 후회가 많은 삶을 살게 되어 있다는 이치를 배우는 것이 ‘공부’이다. 사람을 보고 ‘철이 들었다.’고 하는 것은 바로 ‘때’를 구별할 줄 아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을 ‘節不知(철부지)’라고 한다. 우리 황하문명권에서는 ‘때’를 가장 강조했던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때를 놓치면 농사도 지을 수도 없고, 한 사람의 인생도 행복하게 마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때를 한자로는 ‘時(때 시)’라고 한다. 時는 日(날 일)과 寺(관청 시)’로 파자할 수 있다. 그래서 관청(寺)에서는 백성들에게 日(때)를 알려주는 것을 가장 우선시하여 새해는 책력, 즉 달력을 만들어 배포하였다. 이처럼 때를 아는 것으로 시작해서 때에 맞춰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이치를 깨닫는 최고의 ‘工夫’이다. 대졸자의 文解力 조사에서 우리나라가 OECD 22개 국가 중 꼴찌를 하였다는 것은 정말 놀랍고도 부끄러운 일이다. 일본은 한자 교육을 중시하여 창의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우리글은 한글의 바탕인 한자와 한자어 교육이 함께 이루어 질 때 위대해질 수 있다. 지금처럼 훈과 음만을 외우는 암기식 한자 공부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파자를 통해 뜻글자 본래의 의미를 알아가며 암기식이 아니라 이해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 모두가 깨우쳐서 지금이라도 한자 공부를 바르게 시작해야 하는 ‘때’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또한 실천해야 한다. 지금이라는 ‘때’를 놓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국가적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렇게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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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때’를 알아야 - 임오숙 화순도곡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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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덮어놓고 하는 공부’, 사전(辭典) 찾아 공부해야
- [교육연합신문=성명제 기고] 전국 한자교육 운동 총 연합회 진태하 이사장님께서 서거 하신지도 벌써 1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한자교육을 위해 많은 세월동안 불철주야로 애쓰셨던 발자취가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그분은 한 대학의 교수, 학자로 머물지 않고 평생을 오로지 전 국민이 한자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알게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셨습니다. 매월 ‘한글+漢字문화’를 발간, 국내외에 배포하여 한자교육의 필요성과 고품격 한자문화를 알리는 한편 한자교육 찬성을 이끌어 내기 위한 수많은 대규모 집회를 주도하고 관계요로에 협조를 얻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간절히 소망하던 뜻을 끝내 못 이루시고 영면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분의 못 다한 유업을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재도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나라에는 초등학교 한자교육실시를 열망하는 수많은 지지자들의 강력한 힘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저마다의 삶터에서 끊임없이 소원하고 한자교육에 세우점지(細雨漸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진 박사님의 거국적 견지에서 펼친 운동을 구체적·실질적으로 극대화시킨 분들도 많습니다. 성균관대 전광진 교수는 십년 전에 한자사전인 ‘속뜻사전’을 출판하여 전국에 보급·홍보함으로써 교육현장의 오랜 타성인 무조건 암기교육위주 교육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번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폐기한 초등학교 한자교육 실시안은 사실상 전 교수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초등학생 딸이 어떤 날 물어보는 수학용어의 뜻을 가르쳐 주다가 맞춤형 학습 사전의 필요성을 깨닫고 12년간의 산고 끝에 출판했답니다. 당초에는 출판사에 원고를 의뢰했는데 모든 곳에서 거절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본인의 사재를 들여서 출판을 했다고 합니다. 상업적 이익을 기대했다기보다 오직 학자적인 양심과 의지로 학교교육에 보탬을 위해서였다고 봅니다. 전 교수가 만든 사전은 기종 사전의 부족함을 채운 한발 진화한 사전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기존 사전은 한자어의 경우 해당 한자는 괄호 안에 표기가 되어 있는데 한자를 배우지 않는 학생의 눈에는 그냥 액세서리처럼 붙어 있을 뿐이고 많은 한자어의 뜻풀이는 어려워서 사전의 만족도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한 초등학교 학생용 사전에서 ‘재적(在籍’)을 찾아보면 풀이가 ‘호적·학적 등에 있음.’이라고 했습니다. 초등학생이 ‘학적’,‘호적’의 뜻을 알 길이 없으니 혹 때려다 혹 붙인 꼴입니다. 그런데 그 사전은 한자의 훈과 음을 표기하여 학습자가 낱말의 뜻을 알기 쉽게 했습니다. 예를 들어 보면 기존사전이 ‘불면(不眠)’을 ‘잠을 자지 아니함.’이라고만 풀이했는데, 그 사전은 한자 각각의 훈과 음을 ‘아닐 불, 잠잘 면’으로 나타내어 한자를 몰라도 익힐 수 있게 하고 ‘잠을 자지(眠 )않음(不)’로 풀이하여 그 낱말의 뜻이 왜 그런 뜻인가를 분명히 알게 함으로써 순간의 기쁨과 통쾌함을 맞보게 하고 있습니다. 무조건 외우게 한 암기위주교육에서 벗어나서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할 수 있고 언제나 가까이 할 수가 있는 친구 같은 도구가 되게 하였습니다. 필자도 한자를 지도하면서 그런 사전이 나오기를 오래전부터 바랐는데 마침 그 사전을 접하고 좋은 친구를 만난 것처럼 무척 반겼습니다. 재직하는 학교에서 곧바로 교사들의 동의를 얻고 4학년 이상이 이 사전을 활용하여 교과서에 나오는 한자어를 지도하게 하였습니다. 본인도 직접 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 1회도서관에서 가르쳤습니다. 가르친 효과가 어떨까 가끔 궁금하기도 했는데, 퇴직하고 한참 된 작년에 일이었습니다. 필자가 직접 지도했을 때 열심이었던 당시 5학년 오기준이란 학생의 학부모가 생각지도 않게 전화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교장선생님께서 가르친 한자를 잘 배우고 학습에 잘 활용해서 고대에 입학했다”고 하면서 좋아했습니다. 그 학부모 가족은 그 사전을 거실에 놓고 신문이나 TV뉴스를 볼 때 모르는 한자어가 나오면 보곤 했다고 합니다. 또 목동에서 한 학부모를 만난 일이 있는데 자기 아들이 그 사전으로 공부를 잘해서 과학 고등학교에 들어갔다고 하면서 감사하다고도 했습니다. 사전을 찾으며 공부를 해서 효과를 많이 봤다는 예기를 여기저기서 들을 때마다 ‘그렇게 산 내 인생은 꽤 괜찮았구나!. ’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속뜻사전을 통한 교육에 열심이었던 분들은 필자가 알기에도 여러분들이 있습니다. 전남 함평의 김승호 전 교육장은 ‘속뜻사전’이 한자어지도에 안성맞춤임을 깨닫고 관내 학교 보급에 적극 힘쓰고 연수를 통해서 효율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방안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서울 목운초등 학교 박인화 교장은 재동학교 재직 시에 동창회의 협조로 사전을 기증받아 해마다 재학생들 전원에게 나눠주며 가르쳤습니다. 그런가하면 원정환 교장은 여러 학교를 옮길 때마다 한자어쓰기 학습장까지 창안하여 사전학습교육을 실시하고 교사들이 잘 가르치도록 도왔습니다. 서울묘곡초의 민기식 선생은 속뜻사전 활용을 습관화시키기 위해서 학생들이 어려운 낱말을 찾을 때마다 특별히 여러 색깔의 스티커를 해당 페이지에 붙이게 하여 재미를 느끼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동료교사에게도 활용의 필요성과 효과를 입증 하는데 힘썼습니다. 이상과 같이 수많은 학교에서 이 사전 찾기 교육을 한 결과 학력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사전읽기를 통해서 인생역전 드라마를 쓴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2012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중국의 작가 모엔(莫言)은 공식 학력이 초등학교 5학년 중퇴입니다. 그 이후에는 집에서 혼자 사전 읽기를 생활화함으로써 세계적인 문호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고 합니다. 또한 분은 우리나라의 대표 시인 고은입니다. 그분은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매일같이 국어사전을 통독하였다고 합니다. 출감이후 ‘만인보(萬人譜)’라는 대작을 쓰게 된 것은 바로 사전통독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선진국 중에는 사전교육을 강화해서 국력을 키우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미국 같은 나라는 학교교육의 뿌리를 튼튼하게 한 ‘Dictionary Project’가 있습니다. 그들이 내세운 슬로건은 Reading makes a country great’(독서가 나라를 강하게 만든다)입니다. 미국을 더욱 강대한 나라로 만드는 이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해서 우리의 국어사전에 해당하는 영어사전을 해마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기증합니다. 우리교육이 무상으로 급식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일로 골몰할 때 저들은 학생들의 머리를 채우는 사전 기증운동에 몰두하고 있던 셈입니다. 가까운 나라 일본도 초대형 교육기업 베네세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사전 찾기’ 학습 열풍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1989년에 처음 실시된 ’사전 찾기 수업‘ 방식은 아이치(愛知)현 가리야(刹谷)시에 있는 구성(龜城)초등학교 후카야 게에스케(深谷奎助)선생님이었습니다. 이 수업은 학교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사전과 친해지는 계기가 되어 ’자기 주도적 학습‘열풍을 일으켰고 초등학생들의 학력을 높이는데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국민적인 주목을 받아 그 열풍이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시작된 이 수업방식이 중고등학교로 확산되었고, 전국의 수많은 학생들과 교사, 학부모들이 열정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앞서의 선진국들이 일찍부터 사전교육의 중요성을 알고 어휘력을 키우기 위해 사전보급과 지도에 힘쓰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미미한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암기위주교육, 일제 식 지도가 문제입니다. 교실에서는 학생들의 질문이 말랐고 정답만 외우는 구태의연한 공부가 이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제 이런 병폐와 결별할 때가 되었습니다. 인공지능시대에 무조건 외우는 식의 공부는 통하지 않습니다. 공부란 끊임없이 솟구치는 의문 을 풀어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학문(學問)’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교육은 학생들의 질문을 유도하고 질문에 성실히 답변하는가 하면 토론의 장에서 답을 구하는 학습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런 교육풍토에서 자란 국민들이 노벨상을 23%나 차지하는 데는 우연이 아닙니다. 공부의 기본은 글을 읽을 때 모르는 어휘가 나오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반드시 알고 넘어가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은 글을 읽다가 몰라도 대수롭게 여기고 지나가는 습관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옳지 못한 이런 습관은 학교교육에 책임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국어교육과정에서 사전학습이 3,4학년 때 몇 단원이 나오지만 활용방법만 지도하고 그걸 학생들이 공부할 때 습관화하도록 하는 지도가 없습니다. 공부할 때 사전 찾기가 몸에 배어 뭔가 모르는 것이 나올 때마다 스스로 알아보려는 주도적인 학습태도를 지니게 하는 교육이 중요합니다. 논어에서는 學而不思則罔(생각이 없는 배움은 얻을게 없다)이라고 했습니다.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덮어놓고 하는 일이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공부할 때 의례건 사전을 옆에 두고 모르는 어휘의 뜻을 알게 해야 학생 각자의 학력향상은 물론 국가의 교육 경쟁력을 키울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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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덮어놓고 하는 공부’, 사전(辭典) 찾아 공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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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인간, 인권 그리고 경찰
- [교육연합신문=신병철 기고]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인간의 인권을 대한민국 헌법 제 10조에 정의되어 있다. 인권은 사람이 사람답게,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한 보편적인 인간의 모든 정치·경제·문화 등 권리 및 지위와 자격들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여기서, 타인의 인권을 유린한 범죄자의 인권은 존중되어야 하는가가 문제가 된다. 범죄 처벌과 관련해, 가해자가 피해자 수준이나 피해자의 고통보다 더한 처벌을 받아야하는가는 피해자가 받은 피해를 가해자에게 똑같이 가한다고 해서 피해자의 인권이 충족되지 않는다. 범죄자의 인권 보호와 피해자의 인권 보호는 서로 상관관계가 없는 별개의 문제이다. 경찰은 범죄를 예방하고, 범인을 검거, 약자를 보호해 주는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경찰의 업무는 국민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사회에서 경찰은 강압적인 경찰관, 단속하는 경찰관 등으로 인식이 되어있다. 경찰의 주된 업무인 단속, 범인검거, 시위를 막는 등의 과정에서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기에 경찰과 인권은 상호 밀접한 관계에 있다. 경찰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심야조사를 자제하고, 범죄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피해자보호전담관을 운영, 학교·가정 내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하는 등 제도와 지침을 개선하고 경찰개혁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 경찰 개인 마다 도덕적이고 윤리적 규범을 지키는 인식을 변화하고 있으며 국민 안전 확보와 사회적 약자보호를 위해 올바른 인권의식 정립을 해 나가고 있다. 국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경찰의 인권의식이 국민들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크기에 인권보호를 위해 사회 인식의 전환과 법률상 권리를 적정하게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인권피해를 최소화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 경남창원서부경찰서 의창파출소 경장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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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인간, 인권 그리고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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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一言一藥"
- [교육연합신문=임오숙 화순도곡초 교장] 나의 어린 시절과 너무나 다른 요즘 젊은 세대들은 아주 어린 유아들부터 스마트폰 사용을 좋아하고, 청소년들과 청년들은 인터넷 과다 사용, 과도한 SNS와 게임에 몰입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며 과연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하는 걱정에 걱정을 이어가는 기성세대들의 하소연을 자주 듣곤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의 원인과 처방에 대한 근원을 찾는 일이 시급하지 않을까? 아이들의 특정한 행동의 원인에 대해 ‘요즘 아이들은 본래 그래. 사춘기니까 그러지. 취업이 안 되어 그러지.’ 등 자신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으로, 더 나아가 아이들 개개인의 구체적인 현상을 이론에 맞춰 설명하는 상황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아이들의 교육환경, 학부모들의 변화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만, 그 속에서 자신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역할을 찾아서 실천하는 어른들의 문제가 아닐까? 우리의 미래이고 우리의 자녀들이지 않는가? ‘한 마디 말로 천하의 근심을 다스린다.’는 뜻의 ‘一言一藥’이라는 사자성어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마음에서 우러나는 기쁨에서 시작하는 배움은 수평적으로는 스스로 서고자 하는 만큼 남을 서게 해 주며, 수직적으로는 가르침을 힘써 전해 제자들을 기르고 각자 뜻을 펴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인간’을 알아야 하고, 그렇게 되려면‘말’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현재 상영 중인 '말모이'라는 영화를 보면 일제강점기의 삼엄한 감시 속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말을 모아서 ‘우리말 사전’을 만들어 가는 힘든 우리 조상들의 목숨 바친 노고를 알 수 있다. 말이란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또한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정신세계가 바로 말인 것 이다. 그래서 그토록 힘든 일을 우리 조상들은 해낸 것이리라. 信(믿을 신)이라는 글자를 보면 人+言으로 구성되어 있다. 天地人의 하나인 사람이 하는 말은 天地間을 울리므로 그 말한 바를 지키고 이해하는 데서 미더움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언어라고 이해한다면 반드시 행동이 따라야 하기에, 그러지 않는 현실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사람과 실천이 필요한 것이다. 믿음은 내적으로는 信念과 自信感으로, 외적으로는 信義와 信用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신념과 자신감이 없으면 스스로 설 수 없고, 남들에게 신의나 신용을 지키지 못하면 더불어 일을 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말이란 그 사람 전부를 표현하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의 한 마디는 그 사람 자체를 말하는 것이고 그 사람의 사람됨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가 자식을 가르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배우는 자녀가 부모의 사람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말과 그 사람은 별개로 인식되어져 가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마치 말과 사람이 따로 국밥인 것처럼……. 그 사람과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출처가 다름으로 인해 혼돈의 사회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오직 말과 실제를 통합화는 一言一藥으로만이 가능하다. 사람들에게 인간의 문제에 대해 눈을 뜨게 하고, 사람 노릇 하는 방법은 공자의 ‘一言一藥’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의사도 병원을 찾는 환자의 증상에 따라 처방을 한다. 같은 감기 환자일지라도 무조건 같은 약을 처방하지는 않듯이, 하나의 아이에게 필요한 말 한 마디, 유일한 처방을 찾는 것이 전문직이 할 일이고, 그러한 처방전을 찾아 치유하는 역할이 우리 어른들의 몫일 것이다. 제자들의 같은 질문에도 그 제자의 성품이나 처한 상황에 따라 각자 다른 처방을 내리는 孔子의 ‘一言一藥’의 지혜를 공부해야 한다. 말을 할 때에도 기준은 앞에 있는 상대여야 하고, 상황과 목적에 맞게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말이 바뀐다는 것은 그 사람이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맞게 처방전을 내려 행동하게 하는 것이 ‘一言一 藥’의 개별적인 처방전이 아닐까 한다. 보고 읽고 외워 말하는 것보다 그 사람에게 맞는 생각을 담아 그릇을 빚듯이 말을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를 말하는 것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전문직이다. 따라서 전문직일수록 어휘력과 독해력이 필수이며, 더 나아가 생활용어에 대한 공부가 깊고 넓어야 한다. 그래야 개개인에게 적합한 말을 적절하게 할 수 있고, 듣는 사람도 知行合一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말의 70% 이상이 한자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한자 어원을 모르고는 우리말의 개념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을 가장 큰 문제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을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80~90代 기성세대와 20~30代의 청년들이 말귀가 트일 수 있도록 낱말의 어원을 따져서 바르게 사용하는 교육이 이루어 져야 한다. 우리말을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일은 교육 정책 담당자들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지 않을까? 모든 공직자들 또한 앞장서서 우리말을 공부하며, ‘一言一藥’의 올바른 처방전을 배우는 학습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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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一言一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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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회장 재완목중·고 동문회 개최
- [교육연합신문=윤창훈 기자] 재완목중고 동문회가 2019년 1월 23일수요일6시 완도에있는 수협회센터 에서 개최 했다. 김진호(28회)동문 회장은 5회 부터 45회 까지 많은 완도 도서 에 거주 하는 목포고·목중 동문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고 전했다. 이번 동문회는 정석호(29회)완도부군수,김충관(31)완도해양경찰서장 등 동문이 새로 입회하여 축하와 많은 선후배들의 격려와 친목도모를 갖었다. 김동문회장 은 도서로 이루어지는 특수한 상황에서도 해마다 많은 동문이 참석하여 준것에 대해 감사 를 하고 앞으로도 심기일전하여 동문에 발전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축하의 인사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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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회장 재완목중·고 동문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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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교과서 漢字語 敎育 40年
- [교육연합신문= 성명제 전 서울목동초교장․ 한국어문회이사] 1. 漢字와의 만남 - ‘隱退’를 영어로 리타이어(retire)라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영어사전에도 없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리’에 힘을 주어서 발음하면 ‘재취업’의 뜻이라고 한다. 나의 경우는 재취업은 아니지만 교직을 退職하고서도 여전히 하던 일(가르치고 배우는일)을 계속하고 있으니 感謝할 따름이다. 누가 자기 앞날의 인생을 ‘닳아서 스러질지언정 녹슬지 않겠다고 했다.’는데 나도 그와 같은 마음으로 살고자 한다. 或者는 이글의 題目을 보면서 ‘왜 하필 교과서 漢字語敎育이라고 했을까?’ 疑問을 가질 수가 있겠다. 누구나 한자에 관심을 갖고 처음으로 배울 때는 이런저런 動機가 있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敎師로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무척 唐惶한 일이 있었다. 1979년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자연과 수업 중에 “ 양서류에는 개구리, 거북이 같은 동물이 있다.”고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어린이가 “그런데요, 왜 개구리가 양서류예요?”하고 물어봤다. 바로 대답을 못해주고 수업이 끝난 뒤에야 참고서를 보니‘어류와 파충류의 중간에 위치하는 척추 동물의 한 무리’라고 풀이되어 있었다. 이 뜻대로 말해주면 또 질문이 계속될 것 같았다. ‘파충류’는 뭐며 ‘척추동물’의 뜻은 무언가 선생인 나 자체부터 疑問이 생겼다. 내친김에 확실한 뜻을 알고자 했다. 한자에서 온 뜻인 것 같아 玉篇을 찾아보니 ‘양’은 ‘두 (兩)량 자’요, ‘서’는‘ 살 서(棲 )자, ’류‘는 ’무리(類)‘여서 ’양서류‘란 뜻은 ‘육지와 물의 양편에서 사는 무리’라고 명확히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양서류’의 뜻을 찾아본 過程은 어린이들에게는 알고자하는 뜻을 好奇心을 갖고 찾는 동안 발견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探索過程이 될 수가 있음을 아는 순간 이었다. 나는 자신 있고 밝은 표정으로 그 뜻을 설명 할 수 있었다. 수업 중에 이런 곤란한 일이 있고나서부터는 가르칠 때마다 중요한 한자어는 꼭 漢字의 뜻을 찾아 指導하였다. 그렇게 하였더니 수업에 자신이 붙었고 아이들은 쉽게 이해하였다. 관련한 이야기까지 드문드문 곁들여줬더니 재미있어 하였다. 예를 들어 ‘영광의 굴비’를 지도할 때 ‘굴비’의 ‘굴’은 ‘屈(굽힐 굴)’, ‘비’은 ‘非는(아닐 비), 여서 ’굴비‘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는 뜻임을 알게 하였다. 아울러 이 뜻은 高麗 仁宗때 李資謙이 流配 중 ‘조기’를 잡아서 정성껏 임금에게 올렸지만 자신의 신념은 굽히지 않았다는 故事에서 나온 이야기임을 들려주었다. 설명을 듣던 아이들이 재미있어하여 그 시간의 수업이 살아난 적이 있었다. ’교재연구는 다른게 없구나!,‘ 아이들은 사실 글을 배우러 학교에 오는데 글의 뜻부터 잘 지도해줘야겠구나 ’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교사 초년시절부터 교실 칠판에다가 의례히 아침 自習用 漢字를 써놓고 학생들이 反復해서 쓰게 하였다. 선배교사들이 하니까 그저 따라 했었지 한자지도의 必要性을 느껴서 지도 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아침시간에 나보다 일찍이 온 아이들이 떠들고 장난을 칠까봐 조용히 시키려고 그걸 쓰게 한 것뿐이었다. 교사인 내가 그런 非敎育的인 目標를 가지고 한자지도를 했으니 학생들이 제대로 배울 리가 없었다. 한번은 한 어린이가 한자를 공책에 쓰는데 10번을 써서 익히라고 했더니 각 劃을 순서대로 10번씩 써서 조립식 장난감 맞추듯 썼다. 오히려 한자에 嫌惡感이나 쓸모없는 글자라는 認識만 심어줬던 것이다. 2.배우며 가르치며 - 교과서 한자어지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그후 나는 자연스럽게 한자어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게 되었다. 自進해서 硏修도 많이 받았다. 초등교과서에는 漢字가 한글자도 없다. 그러나 한글로 표기된 漢字語가 70%나 되는데 이걸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지도는 수박겉핧기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초등교과서 전체에 1만 단어 이상이나 되는 한자어를 일일이 國語辭典 찾고 玉篇을 또 찾아서 지도 하기란 쉬운 일을 아니다. 한자어를 간편하게 지도할 수 있는 사전은 없을까 찾아보아도 市中의 사전은 어느 것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낱말 옆에 括弧하고 한자는 倂記했으나 그 音과 訓을 알 길이 없고 풀이도 어려웠다. 그러던 중에 어느 날 조선일보에 成大 全廣鎭 敎授가 한자어 사전을 펴냈다는 記事를 읽었다. 소원했던 좋은 사전인 것 같아 購入하려고 하는 참에 뜻밖에도 그분이 직접 내가 근무하는 교장실을 사전을 갖고 방문했다. 그때 나는 강서교육청내 초등한자교육연구회를 맡고 있었는데 교육청의 안내로 오게 되었던 것이다. 설명을 들으면서 辭典을 檢討해보았다. 역시 좋은 학습 자료였다. 한자어의 音과 訓을 넣고 거기에 따른 풀이를 어린이수준에 맞게 했다. 한자를 다소 몰라도 누구나 배울 수가 있게 構成되어 있었다. 교사들과 사전 採擇을 協議하였다. 심의한 결과 찬성이 대체적으로 많아 우선 학교도서관에 두 학급 분량을 구입했다. 그런 후에 3학년 이상 어린이들 중 한자를 배우려는 어린이들의 申請을 받아 내가 직접 1주일에 2시간씩 가르쳤다. 과연 학급 담임 수준에서 어떻게 가르칠 수 있겠는가 미리 探索해 보는 뜻이 있었다. 교과서를 읽으며 나오는 어려운 한자어를 중심으로 가르쳤다. 한자어와 관련된 이야기도 들려주면서 뜻을 찾아 쓰게 했다. 어린이들이 공부가 쉽고 재미있다는 점을 發見하도록 授業을 展開하였다. 얼마후에 40명의 어린이가 거의 빠지지 않고 출석을 하는 걸 보고 효과가 있음을 알았다. 1학기를 가르치고 나서 교사연수회를 가졌다. 내가 가르친 방법과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수업 기술을 안내해 주었다. 연수를 전체적으로도 하고 학년별로도 하였다. 처음에는 많은 교사들이 다소 消極的인 反應을 보였으나 차츰 관심을 가질 때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가르치도록 하였다. 3. 교사 ․ 학부모 대상 講義를 시작하다.- 교사만 硏修해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학부모연수회를 열었다. 강의를 거듭할 때마다 나는 더 熱情을 갖고 호소력 있게 준비하느라고 애썼다. 校長協議會 때에도 안내하여 인근 15개 학교에도 연수회를 실시하였다. 심지어 대전 등 지방에도, 양천경찰서 700여 직원들에게도 하였다. 나는 가는 곳마다 한자교육 특히 교과서 한자어교육이 절실히 필요함을 力說하였다. 千字文, 四字小學 등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한자 때문에 겪는 학습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語彙力을 키워주는 교육이 더 중요함을 알려주는데 노력하였다. 국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한자어지도를 放棄하는 교육은 마치 한 農夫가 자기의 땅 70%를 耕作을 안하고서 糧食이 부족하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배우는 글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외우는 묻지마식 교육은 하루빨리 淸算되어야할 과제라는 점을 한글專用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들어 설명하였다. 시간이 부족한 교과시간에 최소 5분만이라도 그 단원의 주요 槪念이 되는 한자어를 쉽게 재미있게 풀어준다면 공부를 잘할 수 있는 動機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아울러 나 한자어사전을 이용하여 언제 어디서나 自己主導的 학습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을 호소하였다. 학부모에게는 실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알도록 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였다. 가정의 생활용품이나 어린이용품의 이름을 한자로 써 붙여서 필요에 따라 익히게 하였다. 또 한자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辭典을 비치 해놓고 대화중이나 TV시청을 함께 할 때나 인터넷을 볼 때 나오는 語彙를 찾아보게 하라고 勸誘하였다. 4. 교과서 한자어지도 활성화를 위한 소먕 - 내가 퇴임한 학교는 校長公募制 學校였다. 公募할 때 반드시 교과서 한자어를 실시하도록 조건을 제시하고 選出하였다. 벌써 3년여가 넘었지만 바라는 대로 선출된 교장은 한자어사전을 통한 지도가 잘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을 최근에 내게 전해서 무엇보다도 기뻤다. 서울교육청에서는 작년 9월에 특색사업의 하나로 서울시내 교과서 한자어 지도를 위한 才能寄附團을 構成하여 원하는 학교부터 지도를 시작했다. 마땅히 正規課程이 되어야 할 교육이 邊方 개념으로 이뤄지는 게 안타깝다. 역대 교육부 장관들은 임기를 마치고 나와서야 뒤늦게 한자 교육의 필요함을 認定하였다. 다행히 그분들 중에서 文龍麟 長官만이 敎育監이 되어서 所信을 貫徹하였다. 대다수의 학부모들이 무엇보다 잘한 일라고 評價하고 있다고 한다. 더욱 확대하여 정규교과시간에 담임 차원에서 단원의 중요핵심 개념어 몇 개만이라도 관심을 갖고 지도한다면 學習效果가 漸增하리라고 확신한다. 아울러 쉽게 지도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가 공급되어야 한다고 본다. 孔子는 일찍이 ‘本立而道生’이라고 했다. 根本을 바로 세워야 대한민국 萬歲가 될 수 있다. 世宗大王께서는 백성의 글이 어려워 뜻을 펼 수가 없는 형편을 안타깝게 여기셔서 한글創製를 하셨다. 국가지도자가 살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荒弊해가는 나라의 글을 바로잡는 일은 국가의 根本이요 正體性을 確立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새해에 文大統領은 初等學校 漢字敎育 未實施를 더 이상 放置하지 말고 勇斷을 내려서 국민의 언어생활에 불편을 덜고 名實相符한 敎育强國이 되게 해주기를 祈願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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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교과서 漢字語 敎育 40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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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끄러움과 용기
- [교육연합신문=文德根 漢字語敎育硏究所長]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서시’ 는 우리 민족(民族)이 가장 사랑하는 시로 손꼽힌다. 핵심 시상은 ‘부끄러움’이다. 부끄러움을 느끼기에 화자는 ‘세상의 죽어 가는 것들을 사랑하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겠다.’고 선언(善言)한다. 부끄러움은 유교 전통과도 맞닿아 있다. 맹자(孟子)는 부끄러움을 인간다움의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부도덕한 행동(行動)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타인의 악행에 분노를 느끼는 마음’이 인간의 본질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사람은 부끄러움이 없어서는 안 된다.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부끄러워질 일이 없다’고 역설했다. 부끄러움은 외부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감정이다. 한 집단이 설정한 도덕(道德) 기준을 어기거나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줬을 때 나타나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共感) 능력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지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공동체(共同體)라는 의식이 없으면 부끄러움도 자연히 사라지는 것이다. 어쩌다가 타인의 고통쯤은 아랑곳하지 않는 사회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자랑스러운 역사만이 역사일 수는 없다. 부끄러운 역사도 역사다. 자랑스러운 역사는 배우고 계승하면서 그 전통을 오래도록 보존해야 할 것이며, 부끄러운 역사는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철저히 반성하면서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중요한 이유이고 목적이다. 그래서 역사는 직시(直視)하고 직서(直書)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를 배우자’는 말이 표어인 사회가 되어버렸다. 누구의 잘잘못인지 구별 없이 자랑스러운 역사만 기억한다고 해서 부끄러운 역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부끄러운 역사를 왜곡하고 은폐하여 자랑스러운 역사로 만든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부끄러운 역사일수록 사실 그대로 더 기억해야 한다. 부끄러운 것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 반성도 없게 되고, 반성이 없으면, 지난 잘못은 오늘도 내일도 끊임없이 되풀이되어, 역사는 발전하지 못하고 퇴행(退行)하기 마련이다. 요즘의 세태는 법망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하는 일이 부끄러운 일인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 유명한 로펌을 사서, 법에서 무죄를 받으면 부끄러움은 면하게 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모든 것을 돈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는 현실에 쓴 소리하는 원로들은 모두 산으로 은둔했단 말인가? 어찌 생각하면 은둔은 가장 비겁한 일인지도 모른다. 恥(부끄러울 치)라는 글자도 耳와 心으로 구성되어 ‘남들이 이러쿵저러쿵 하는 말을 듣고 마음에 느끼는 떳떳치 못한 감정’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관계가 경제적(經濟的) 거래로 바뀌었다. 거래 관계는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취급한다. 감탄고토(甘呑苦吐)의 사회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람조차도 하나의 도구로 간주하는 이 사회에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사라져버렸다. ‘공부를 잘해야 돈을 많이 번다.’ ‘의사가 되어야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다.’ ‘돈을 벌어야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사회는 당연히 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 돈이 주인 된 사회에서는 부끄러움과 배려가 사라지게 마련이다. 사람의 관계와 만남이 없는 사회에선 부끄러움이 없다. 가족끼리 식사를 해도 휴대전화만 작동하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부끄러움이 회복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자기의 행동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알 때, 비로소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먼저 행동하는 사회, 멈춰 서서 돌이켜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하다. 부끄러움과 배려의 사회는 만남이 곧 목적이 된다. 이렇게 공동체가 회복되어야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역사가 말해주듯이 인간의 존엄을 신발 한 켤레로 바꾸어 버린 사회는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존엄이 사람의 길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마음의 길을 갈고 닦고, 또 따라가야 한다. 그 길을 닦지 않으면 잡풀이 나는 것이다. ‘저렇게 해야 하겠구나!’ ‘저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고 분별하여 실천하는 지혜를 스스로 익히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반부논여(半部論語)라는 말이 있다. ‘天下를 일으키는데, 논어 반 권만 읽으면 되고, 天下를 지키는 데에도 논어 반 권이면 된다.’는 말이다. 좋은 글이란 우리에게 통합적 안목을 제공하고 우리 생활의 좋은 방편이 되는 것이다. 좋은 글은 부끄러움을 깨닫게 해주는 보고인 것이다.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알고 용기 있게 실천하는 사회가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가 아닐까? 하늘과 땅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 배움이고, 이를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르침일 것이다. 부끄러움을 느끼고 부끄러움을 내치는 용기 있는 사회로 거듭나는 것은 오직 바른 배움과 가르침으로 시작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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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끄러움과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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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74세, 나는 중학교 3학년, 운이 좋아 두 세상을 사는 사람"
- [교육연합신문=조만철 기자] 정영자(74세) 씨는 전북 고창에서 7남매의 맏딸로 태어나 6.25사변이 나던 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가 전쟁이 나면서 학교를 못 나간 것이 끝내 배움의 길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섯 명의 동생들 공부하는 어깨 너머로 익힌 한글로 평생을 살면서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 애쓰며 살았다. 남편과 사별하고 삶의 의욕을 잃고 살던 중 며느리 소개로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문해교육프로그램’에서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문해반 졸업을 하면서는 중학교에 입학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했다. 이 나이에 중학교에 가면 뭐할까. 하지만 곁에 있는 문해반에서 한글공부 10년 했다는 사람도 나와 별다를 게 없었다. 해마다 같은 글자 같은 내용만을 반복할 뿐 새로운 것이 없었다. 중학교는 영자 씨가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세계였다. 73세 중학교 1학년. 아침에 출근하는 아들의 차를 타고 목포제일정보중학교에 도착하면 아직 교문도 열지 않은 상태이다. 학교 주위를 몇 바퀴 돌며 운동하다가 문이 열리면 1등으로 등교하여 공부할 준비를 한다. 국어 영어 사회 컴퓨터 한문 등의 과목을 공부하다보면 어느새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린다. 알아듣는 것은 알아듣고 모르는 것은 모르고. 공부 욕심부리지 않으니 학교생활이 즐겁다. 이 나이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음이 자랑스러울 뿐이다. 오후에는 문인화 동아리에 들어가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수묵화에 푹 빠지기도 한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 1년은 컴퓨터가 무서워 빙빙 돌기만 했다. 그러다가 나도 한 번 도전해보자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조금 겁도 났다. 그런데 참 신기했다. ㄱ 을 누르면 ㄱ 이 나오고, ㄴ을 누르면 ㄴ이 나오는 것이 참 신기했다.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누르다 보니 조금씩 익숙해져서 쓰고 싶은 글을 쓸 수가 있다. 초등학교 2학년 손녀에게 컴퓨터 좀 가르쳐주라고 했더니 “할머니 자판 연습이나 더 하세요.” 한다. “그래, 오냐오냐. 내 강아지.” 학교가 끝난 뒤 집에 돌아오면 숙제도 하고 책도 보고 바쁘다. 시간 참 잘 간다. 학교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긴 시간을 어찌 TV만 보고 앉아있었을까. 밤에도 잠이 안 올 때는 벌떡 일어나 한자를 한 자씩 써내려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잠이 온다. 매일 밤 꿀잠이다. 새해, 75세에는 꿈 많은 여고생이 된다. 영자 씨는 공부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목욕탕 월권 끊어서 매일 목욕만 다니면 뭐해? 그리고 노인당에서 십 원짜리 화투치면 뭐한당가? ” 한 자씩 배우는 기쁨 속에 74세 중학교 3학년 영자 씨는 오늘도 즐겁다. 영자 씨에게 두 번째 인생을 선물한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는 2019학년도 신입생을 선착순으로 모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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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74세, 나는 중학교 3학년, 운이 좋아 두 세상을 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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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글과 漢字
- [교육연합신문=임오숙 기고] 기성세대는 우리말인 국어를 학원에서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사교육의 1번지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국어 설명회가 가장 빨리 마감될 정도로 국어 사교육이 성업 중이라고 합니다. 초등 취학 전 아이들조차 학습지로 우리글을 배우고, 독서도 사교육으로 배우며 모국어인 국어조차 전 생애 주기에 걸쳐 사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러한 상황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언제부터인가 우리 모두는 핑계와 변명을 찾기만 합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학부모, 교육제도, 아이들에게서 그 원인을 찾으며, 이론과 관련지으며,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처럼 치부만 하고 있지는 않는지 가슴이 먹먹할 때가 있습니다. 국어를 가르치는 현장 교사들은 요즘 학생들이 글은 읽을 줄 알지만 그 안의 생각과 뜻을 이해하지 못해 ‘문맹이 됐다.’는 말을 합니다. 국어의 4대 영역인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에서 전반적인 장애가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의 수능 정책, 양으로 승부하는 독서 지도, 맥락과 배경지식까지 외우는 현실에서 기인하지는 않았을까요?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어의 기초 개념은 70% 이상 초등학교 때 익혀야만 중·고등학교에 가서 비평적인 읽기 및 쓰기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우리말의 70%, 학술용어의 90% 이상이 漢字語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역사 속에서 2,000년이나 사용해왔던 漢文은 반세기도 안 되는 기간에 완전히 외국어가 되어 버린 것과 마찬가지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초학자들의 한문 공부를 제대로 가르칠 만한 선생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초학자들이나 중급자들이 무엇을 가지고 공부해야 할지를 모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글자를 배우는 목적이 어디에 있을까요? 글자 하나하나가 담고 있는 이치를 깨우쳐서 제 갈 길을 스스로 찾아 가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그래서 ‘習’은 외우는 것이 아니라, 배운 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먼저는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실천을 하고, 나아가 주변으로 넓혀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배운 것과 실천을 별개로 여기는 우리의 현실!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한문교사들의 학습지도는 한자의 훈과 음을 가르치는 수준이며, 한문 급수 시험이 훈과 음만을 알아맞히는 급수 시험으로 전락된 행태는 또 다른 무지의 소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직 훈과 음을 붙여 ‘天(하늘 천)이라고 외우고 쓰기보다는 글자를 배우는 목적을 살리며 그 속에 담고 있는 세상 살아가는 이치까지 깨달아 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것은 모르는 것에서부터 비롯됩니다. 뜻은 멀리 두고 외우기만 하는 교육방식이야말로 얼마나 답답하고 황당한지 모릅니다.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학교에 보내는 부모님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분별이 안 되는 사람을 節(철)부지라고 합니다. 知識이라는 말도 知(알 지), 識(알 식)입니다. 똑같이 ‘안다.’는 의미인 두 글자를 왜 썼을까요? 知는 바르게 정확히 아는 것이고, 識은 대화에서 상대방이 하는 말과 소리가 이치에 맞는지를 구별해서 받아들일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일입니다. 이처럼 한자는 표의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글자인데, 뜻을 모르고 무조건 훈과 음을 외우게 하는 교육 방법은 방향을 상실한 국민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현재 초․중학교 교과서에 쓰인 한자어는 한글전용으로 쓰여 있으나 그 의미는 한자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說(말씀 설)은 言(말씀 언)과 兌(기쁠 태)로 구성되어 있어서, 말이란 듣는 사람을 기쁘게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고, ‘種(종자 종)’이라는 글자도 禾(벼 화)+重(무거울 중)의 합체자로, 볍씨를 소금물에 넣어서 가라앉는 것만 골라서 종자로 썼다는 의미입니다. 이렇듯 한자는 우리 조상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문화이고 유산입니다. 더 나아가서 ‘泉(샘 천)’은 자연스럽게 물이 퐁퐁 나오면서, 공기와 만나서 공기방울지면서 물이 하얗게 보이는 모습을 그대로 그린 것이다. 그래서 글자는 인류의 생활사인 것입니다. 한글만 아는 사람보다 한자까지도 아는 사람은 생각의 깊이와 인성이 함께 자라게 됩니다. 한자는 생각의 도구이고 한자어는 그 모양 자체가 세상의 이치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자 공부는 모양을 관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한 사물에 대한 세밀한 관찰로부터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를 배워서 그대로 본받는 것입니다. 한자를 안다는 것은 우리말을 더 정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국어 어휘의 70%, 학술 용어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한자어인데도 한자어 교육을 소홀히 하는 것은 한글만 알아도 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다고 잘못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라도 한자와 한글 공부를 병행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뜻도 모른 채 외우기만 하는 현실에서 낱말의 뜻을 스스로 찾고 익히면서 삶의 방식을 스스로 찾아가는 이해식 학습으로 문을 열어야 합니다. 시험을 보고 나면 흔적도 없이 머리와 몸에서 사라지는 암기식 공부를 언제까지 후손에게 유산으로 남길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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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글과 漢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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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왜 漢字이고 漢字語인가?"
- [교육연합신문=文德根 漢字語敎育硏究所長] 우리의 공통적인 관심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의 길이고, 어떻게 사는 길이 행복으로 가는 문일까?’의 문제로 귀결될 것 같다. 그런데 ‘행복’의 문제를 찾고 고민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문제로 여기지는 세태가 되어가고 있지는 않는가? 그렇다. 문제를 해결되어야 할 심각한 현상으로 보지 않고, 그저 문제로 남겨두는 사람들의 인식이 큰 문제인 것 같다.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터인가 문제를 인식하고 그 원인에 대한 분석과 해석은 다음의 문제로 남겨두고, 또 다른 문제에 떠밀려서 입과 발을 옮기는 세태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사람이 가야 할 길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것 같다. 그러나 그 길에 대한 根源的인 물음에 대한 답변을 가르쳐 준 사람도, 학교 교육도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한 번 가보고, 그 다음 사람이 좋아서 가고, 또 계속해서 사람들이 좋다고 가야 바른 길이 되는 것이다. 수 천만 년 동안 다니고 살아왔던 길, 생각하고 말하며, 발로 옮겨왔던 그 길이 ‘道’인 것이다. 수 천 년 동안 변함없이 사람의 마음에 담겨 있고, ‘지금도 이렇게 살아라.’고 변함없이 외치는 그 길이 ‘古典’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머리가 희끗해져서야 가능한 세상이 되어버린 것은 아마 교육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등한시 하는 위정자들의 책임이 더 막중하다 할 것이다. 위정자들의 이러한 작태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른들을 믿을 수 없는 존재로 희화시켜 버렸다. 즉 體에 대한 교육에서 벗어나 겉모습만 강조하는 用의 교육으로 변질시켜 버린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현실을 보지 않으려는 사회적 인식이 더 팽배함에 큰 슬픔이 담겨 있는 것이다. 孔子는 삶의 자세를 한 말로 ‘吾道는 一以貫之.’라 하였다. 이는 농경문화의 사상적 토대인 동시에 우리 문화의 기초․기본인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 바탕 위에 있으면서 말로는 一以貫之하면서, 실제로 一以貫之란 무슨 뜻인지? 거기에 담겨 있는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해가 뜨고 지면서 하늘의 기운을 받아 만물을 생성하는 것이 자연이다. 즉 겨울에 잠장되어 있던 씨앗이 봄이 되면 싹이 트고, 生長하며 가을이 되면 익어서 저장을 하게 된다. 또 봄이 되면 새싹이 나오는 과정이 一貫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천지만물은 陰陽消長과 盈虛消息의 理致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해가 뜨고 지면서 四季節이 생겨나듯, 인간의 삶도 아동기․청년기․장년기․노년기를 거치게 된다는 순환의 의미를 깨닫고 거기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은 순환하더라도 자신은 언제나 거기에 있을 것이고, 그럴 것이라 믿고, 그러한 인생을 꿈꾸는 우리의 모습은 무엇을 말하는가? 바뀌고 바뀌는 때에 맞추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이치를 일찍 깨달은 사람들이 있다. 伏羲氏․文王․周公․孔子인 것이다. 성인이란 모든 사람들이 천지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면 모두가 행복하다는 것을 괘와 글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들은 聖人의 卦와 글을 읽고 그대로 따라서 하면 되는 것이다. ‘孝’라는 의미도 천지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도리를 본받아서 그대로 하는 것을 이름한 것이다. 이러한 일관된 이치를 담고 있는 글이 漢字語로 되어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理致를 누가 강요해서 배워야 하겠는가? 온통 세상이 불통의 문제로 다투게 되고, 심지어는 폭력에까지 이르고 있으며, 위정자들이 민심을 모르는 문제도 결국은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글의 배움과 이해, 실천이 엇박자를 나타내고 있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다. ‘海’라는 글자를 두고 대부분의 현장에서는 ‘바다 해’라고 읽고 쓰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한자는 괴로운 것이라는 깨달음을 주고, 배움에서 떠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수업은 뜻글자를 소리글자 방식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광경이다. 수업이란 느낌과 감동 그리고 다짐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조건 외우기만 하는 수업에서 이러한 감동과 다짐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바다라는 뜻을 가진 ‘海‘’는 ‘氵(물 수)+人(만물)+母(어미 모)’ 모임으로 이루어져, 낱개의 글자가 갖는 의미를 연결해서 자신만의 생각으로 가다듬어 보는 창작의 과정을 통해, 선현들의 사고와 자신의 생각을 비교해보면서 같음과 다름을 배우게 되고, 본받게 되는 과정으로 이어지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 속에서 ‘물은 만물의 어머니다. 즉 물은 만물의 근원’이라는 사고의 틀을 형성하고 그리고 물을 실제로 관찰하면서 물의 모양과 흐름을 통해 물의 기능을 유추해서, 자신의 삶에 적용을 반복하면서 물을 이해하고, 또 다른 사물과 견주어 보는 과정이 수업인 것이다. 우리말의 70%, 학술용어의 90% 이상이 漢字語로 이루어졌다고 말만 하는 어른이 우리 아이들이 본받아야 할 어른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우리말의 어원이 漢字語임을 인정하고 한자․한글 공용 정책으로의 전환을 주장해야 하는가? 아직 교육현장에서도 우리말의 어원을 찾고 제대로 된 낱말의 뜻을 찾는 교육 방법의 전환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훈과 음을 외우기만 하는 漢字指導方法은 우수한 우리 아이들을 愚民化의 길로 내몰고 있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현재 방과후학교 한자 지도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한자는 周易의 卦와 陰陽五行에 입각하여 만들어진 글자라는 것을 알고 지도하고 있는지? 국민 모두가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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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왜 漢字이고 漢字語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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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4대강사업 비리를 끝까지 밝혀야 하는 이유
- [교육연합신문=윤창훈 기자] 사필귀정(事必歸正), 즉 모든것은 반드시 바르게 되돌아온다, 많은 이들이 이 사자성어를 언급했다. 형사소송법은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 해도 신분이 명확하고 도주 우려가 없을 경우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법원이 이명박을 구속해서 수사토록 한 것은 범죄의 중대성 등을 고려해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재임 기간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 호언장담했던 이명박 정부는 앞서 비리 혐의로 구속된 당시 정권 실세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물론 이명박 본인마저 법의 심판을 기다리게 됐다. 이명박은 지난 4월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무술옥사(戊戌獄事)'라며 불편한 심기를 올렸다. 한마디로 자신의 구속은 정치보복이라서, "검찰 수사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이명박 주장처럼 정말 정치보복일까? 관련 국민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지난 2월 28일 TBS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실시한 조사 결과 이명박 구속 수사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67.5퍼센트에 달했다. 3월 16~17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명박 구속 수사에 찬성의견이 75.1퍼센트로 반대 의견 19.8퍼센트를 압도했다. 찬성 비율 중 '매우 찬성한다'가 49.8퍼센트로 '대체로 찬성한다' 25.3퍼센트의 배에 가깝다. 같은 조사에서 '정치보복이라는 주장에 공감하지 않는다'가 72.5퍼센트에 이르렀다. 검찰이 밝힌 이명박 혐의는 110억 원대 뇌물수수와 350억 원대 횡령 등 모두 16가지에 달한다. 다스 실소유와 관련한 횡령과 배임, 그리고 삼성전자가 다스 미국 소송비를 대납하게 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어 국정원 특수 활동비 및 인사 청탁과 관련한 뇌물을 수수했으며, 영포빌딩 지하창고에 청와대 문건을 불법 반출, 은닉한 혐의와 친인척 명의 차명 부동산을 보유한 혐의도 받고 있다. 막대한 권력을 지녔던 이들의 부당 행위에 책임을 묻지 않는 건 정치뿐 아니라 사회의 기본인 정의를 마비시키는 행위다. 법 앞에서는 대통령을 지냈건, 일개 필부건 다 평등해야 한다는 게 교과서에 기록된 내용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명박 구속은 정치보복이라기보다 적폐 청산이자 사회정의 실현으로 봐야 한다. 사람과 자연 모두 엄청난 피해 입힌 4대강사업 은 이명박이 받고 있는 혐의 중에는 대보그룹이 건넨 5억 원의 뇌물 수수도 있다. 이명박은 2007년 9월부터 11월까지 김백준 전 청와대 기획관을 통해 대보그룹 최등규 회장이 건넨 돈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이명박은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서 차기 대선에 유력주자였고, 국토 전체를 개발 광풍으로 몰고 가는 한반도대운하를 핵심공약으로 삼고 있었다. JTBC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대보그룹 뇌물이 직무와 관련된, 즉 4대강사업에 참여하게 된 배경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실제 대보그룹의 대보건설은 4대강사업 한강 여주 구간에서 공사를 맡았고, 4대강사업 공로로 훈장까지 받았다. 과연 대보그룹만일까? 이런 의구심은 4대강사업 성격에 비추어 봤을 때 당연히 떠오를 수밖에 없는 합리적 의심이다. 4대강사업을 되짚어 보자. 4대강사업은 2007년 대선 시기 이명박 공약인 한반도대운하가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파동으로 시작된 국민 촛불 저항으로 좌절되자, '4대강 정비(이후 '4대강 살리기')'라는 명칭으로 추진된 사업이다. 한반도와 역사를 같이해, 그래서 '민족의 젖줄'이라 불리는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에 물의 흐름을 막는 16개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들어섰고, 다양한 생물의 서식처이자 오염원을 걸러주는 모래와 자갈 4.5억 세제곱미터(㎥)가 파헤쳐졌다. 2009년 11월 시작된 공사는 2012년 중반기 마무리되면서 국민 혈세 22.2조 원이 들어갔다. 이런 4대강사업을 두고 이명박 정부는 '환경을 살리는 강으로 태어났다', '국가의 격을 올렸다'며 '성공'이라 자평했다. 그러나 국내외 전문가와 민간단체는 4대강사업을 두고 '대국민 사기극', '국토환경에 대한 반역, 반란', '복원을 가장한 파괴', '단군 이래 최악의 사업'이라 평가하고 있다. 4대강사업의 물리적 공사가 완료된 지 만 5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 사업이 성공했다는 증거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녹조라떼'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의 수질악화, 일상적인 물고기 떼죽음과 큰빗이끼벌레 등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생물 종이 출현하는 등 4대강사업의 부작용을 드러내는 증거들이 쏟아졌다. 근원적 홍수와 가뭄 해소라고 했지만, 실제 효과는 미미했다는 것이 당시 야당과 국가 공식 위원회의 평가다. 36만 개의 일자리 창출, 40조 원의 생산유발 효과 역시 1만6000여 개와 13조~26조 원뿐이란 평가다. 이명박 정부가 하지 않은 4대강사업 비용편익 분석(B/C)에 대해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0.16~0.24, 즉 1000원을 투자하면 최대 840원을 낭비하는 사업이라 분석했다. 경기도의회는 4대강사업으로 여주, 이천의 인구 증가, 관광객 증가 효과가 거의 없다고 평가했다. 오히려 여주 관내에 쌓여 있는 준설토 적치장 때문에 지금도 예산만 빠져나가고 있다. 이러한 4대강사업에 대해 국제적 평가도 좋을 리 없다. 2012년 세계습지네트워크는 4대강사업을 아시아 최악의 습지 파괴 사례로서 'Grey'상에 선정했고, 2013년 프랑스 <르몽드>는 '4대강사업은 부패, 건설 결함, 환경 문제로 생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큰 실패로 기록되게 됐다'고 보도했다. 2017년 11월 영국 <가디언>은 '세계 10대 자본의 낭비성 사업'으로 4대강사업을 선정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4대강사업은 국제적 망신거리란 말이다. 한반도 대운하를 비롯해 4대강사업에 대해 일부 공사 해당 지역 여론이 우호적이었지만, 국민 전체 여론은 반대가 우세했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민의를 수렴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4대강사업을 강행할 수 있었던 것은, 특히 '고인 물이 썩는다'라는 인류의 상식이자 과학적 진실을 부정하는 사업이 강행된 데에는 최고 권력층의 욕망에 따라 국가 모든 기관이 총동원됐기 때문이었다. 국토부, 환경부 등 정부 부처뿐만 아니라 대북 정보활동을 주 업무로 하는 국정원 등 사정기관마저도 동원됐다. 결국 4대강사업은 이명박 등 권력층이 실패가 예견된 사업을 국가권력을 총동원해 밀어붙여 혈세를 낭비케 하고 국토를 파괴한 '사건'이었고, 이 땅의 민주주의와 우리 사회의 이성과 상식을 후퇴시킨 '사태'였다. 2017년 11월 더불어민주당은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적폐현황' 문건을 통해 2007년 이명박 대선경선 비용 기부자들의 4대강사업 공사 수주 및 이명박 정부 낙하산 수혜 여부 문제를 지적했다. 대보건설 외에 국내 대형 건설사가 대선 자금을 지원하고 4대강사업 공사를 수주했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으로 대운하공약 당시 건설사로부터 선매입도식으로 불법자금을 수수하여 대운하홍보 테이프 제작, 경선비용에 유용하였는지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상득(이명박 친형, 전 국회의원) 외에 장석효(전 서울시 2부시장, 한반도대운하 TF 팀장), 김건호(전 수공사장), 이지송(전 현대건설대표, 경인운하대표), 심명필(4대강살리기 추진본부장), 정종환(전 국토부장관) 등 이른바 4대강사업 부역자들의 4대강사업 개입 실상과 '삼정승' 모임 등 대운하, 4대강사업 공사 나눠 먹기 및 대우건설 등 불법비자금 제공 의혹, 동지상고 출신 건설사의 낙동강 황금공구 싹쓸이 경위 등에서도 조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을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현재 진행 중에 있는 4대강사업 4차 감사에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의 4대강사업에 대해서는 더 근본적인 의문이 있다. 2013년 7월 감사원은 4대강 3차 감사 결과 발표에서 '4대강사업은 대운하를 염두에 뒀다'고 밝혔다. 이명박은 퇴임 즈음해서 '이제 차기 대통령이 갑문만 달면 된다'며 스스로 대운하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럼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이명박은 왜 대운하에 그토록 집착했을까?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이미 철도와 도로교통이 발달한 상황에서, 그리고 미국과 유럽 등에서도 이미 운하는 사양 산업이라는 것이 알려진 상황에서 이명박은 왜 한반도대운하에 목을 맸을까? 한때 이명박의 복심으로 불린 전 국회의원 정두언은 이명박이 1980년대 한강종합개발 경험과 청계천 등을 통해 물과 관련된 사업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즉 자신을 치적화하고 싶은 욕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충분한 설명이 아니라고 본다. 더욱 근원적인 건 결국 '돈'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이에 대해서는 별도로 조사가 진행되어야 한다. 사실 4대강사업이 강행된 데에는 관료 집단과 전문가 집단, 언론의 부역도 지대했다. 문재인 당선 이후 작가 유시민은 대한민국 권력 중 정치권력만 교체됐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보수적인 다른 권력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이전 정부의 적폐 청산에 저항이 클 것이란 의미다. 실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사업 후속 대책과정에서 이런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4대강사업에 부역한 관료, 전문가집단은 통합물관리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지속하고 있고, 주류 언론 역시 이들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4대강 복원이 단지 강줄기의 회복만이 아닌 사회의 회복, 즉 민주주의와 우리 사회의 이성과 상식의 회복도 함께 될 때 진정한 복원이 된다는 걸 말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4대강 비리는 더욱 철저하게 밝혀져야 한다. 단언컨대 4대강사업과 관련한 이명박과 부역한 이들의 비리가 드러나고 그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지난 시기 훼손된 우리 사회를 회복시키는 핵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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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4대강사업 비리를 끝까지 밝혀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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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전남교육감 출마자에게 듣는다'를 기획하면서...
- [교육연합신문=조만철 기자] 6.13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전라남도교육감 출마자들의 철학과 교육관 그리고 현장에서 궁금해하는 것들을 포함 5번의 질의를 했다. 후보자들 중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답변을 주신 분도 있었고 일부 질문에 반응이 없으신 분도 있었다. 필자는 교육의 가장 기본은 소통이라 생각한다. 질문에 답이 없어서 소통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인을 꿈꾸는 사람으로서 불편한 질문도 답해야 하는 의무가 있지 않을까? 지금도 과거 시절의 '나를 따르라'는 문화가 공직사회 주변에 만연하고 있다. 현재 학교교육이 토론과 학생민주자치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변환하는 과정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공동체는 자기 표현과 상대 표현을 통해 나와 다름을 인정하면서 민주주의 사회로 되어 가는 과정이 아닐까? 입으로 표현을 하고 행동을 보여주지 않으면 우리는 거짓으로 이해한다. 교육감이 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보다 진실된 행동과 양심의 소유자를 우리는 소망한다. 유권자의 선택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한다. 패거리 민주주의에서 벗어나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올바르지 않은 나의 사심은 아이들이 받아야 할 고통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과거 몇몇 지도자를 잘못 선택한 후유증으로 충분히 고통을 받아 왔다. 다시는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아야 한다. 유권자는 자신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지를 잘 모를 때가 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식의 투표보다는 유권자 스스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해야 한다. 내 소중한 한 표를 결정하기 전에 분석과 학습을 통하여 성실하고 능력 있는 일꾼을 뽑아 미래 세대에게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주는 것 또한 유권자 한 표 한 표의 몫이다. 정녕 당신의 선택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한다. 일부 유권자 중 후보자와 이권과 관련한 사심이 들어 있다면 그 몫은 개인을 넘어서 대한민국 국민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필자는 전남교육감 후보자들은 개인적으로 모두 탁월하신 분이라 생각한다. 그분들 중 한 분을 선택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택을 해야 한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선배가.. 친구가.. 아버지가.. 이권이..' 등을 떠나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나의 한 표다. 다시 한번 올바른 선택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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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전남교육감 출마자에게 듣는다'를 기획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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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먼저 그리고..."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미래교육포럼 공동대표] 퇴직을 한 후 요즈음은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고등학교 동창들과 매주 수요일이면 무등산으로 산행을 하는 재미가 삶이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포근함을 준다. 오랜 삶과 철학 속에서 나오는 그들의 인생 역정을 들어보면 모두가 대하소설 속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에까지 미친다. 대하소설의 멋진 지속과 마침을 위한 길은 ‘自我’를 버리고 虛像인 내 자신을 낮추려는 자세가 절실하다는 생각에 행동으로 옮기려고 하는데 이제까지 쌓아온 여정의 단단함에 그리 녹녹치는 않다. 어제는 산을 오르다가 절에 있는 종을 보면서 우리가 흔히 일이라고 하는 ‘事’는 절의 ‘종’이 걸려 있는 모양을 그렸다는 유래를 떠올려 보았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성실한 종의 모습을 보면서 ‘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라는 생각에까지 미쳐 혼자 피식 웃었지만 마음 한 구석으로 다짐을 하고 또 한다. 이제 얼마 있으면 지방자치단체의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 저마다 자신만이 나라와 지역을 이끌 인재라고 소리치며, 자신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달곤 한다. 그 사람들은 저 높은 곳에서 누릴 수 있는 자리에만 온통 가 있는 것은 아닌지? 그들이 가고 싶은 地位라는 말의 유래와 뜻을 생각해 본적은 있을까? 아마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도 또한 우리 교육의 맹점 중의 하나일 것이다. 새로운 내용을 접하면 먼저 모르는 낱말을 사전에서 찾고, 그 낱말이 어떤 상황과 맥락에서 쓰이고 있는지를 살피는 개념 정립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地位란? 가장 낮은 곳에 처하며 천지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높은 데 오르려면 낮은 데부터 시작해야한다는 登高自卑의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순서와 차례가 있다는 엄숙하고 엄연한 삶의 철학인 것이다. 우리말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어쩌다가 경험은 무시되고, 뿌리도 없는 말과 선전만이 난무하게 된 원인은 누구에게서 찾아야만 하는가? 속담을 그저 시험 점수 올리기에 급급한 오늘의 현실 또한 위정자들의 몫이고, 오늘의 선거에 뛰어든 일부 사람들의 부추김에 힘입는 바 클 것이다. 산정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 출발하는 것이 정석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꿈과 사랑 등 인생사 자체가 등고자비 과정의 연속이다. 일의 순서와 차례 그리고 경험이 무시되는, 말만의 盛饌 時代가 열리고, 그런 지도자 상은 언제부터인가? 김수현이 부른 'Dreaming'(작사: 박진영, 작곡: 박진영·개미) 노랫말은 꿈을 쫒는 발걸음을 등고자비 과정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윤종신이 부른 '오르막길'(작사: 윤종신, 작곡: 윤종신·이근호) 노랫말도 등고자비의 예를 적절히 보여준다. 마음 속 저 밑바닥 깊고 낮은 곳부터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내딛을 준비를 한다. 고공을 향해 그리고 목표 실현을 위해 과감히 도전을 선언한다. 누구든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지금부터 서서히 활용해보자. 마지막에 기회의 최고 정점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나라와 지역의 지도자가 되기를 꿈꾸어야 한다. 때가 되면 피고, 또 때가 되면 지고 말뿐, 집착을 하지 않는 저 야생화가 가르쳐주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이 되고, 지도자들의 삶이 되며, 또한 그러한 삶을 외치는 지도자가 나올 때는 언제일까? 무작정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쳐야 하는가? 아니면 각자의 자리에서 그러한 문화와 철학을 두드리고 몸부림만을 쳐야 하는가? 우리 교육은 아이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돕는 교육, 진로교육만 했지 퇴로교육은 하지 않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어떻게 내려올 지에 대한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나아가는 방법만 가르치는 교육은 결국 정당한 절차는 무시한 채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만을 강요하는 약육강식의 동물적 행태만을 쫓는 것은 아닌가? 나아가서 물러나고, 다시 나아갈 수 있는 사회적 제도 마련은 요원한 일인가? 사람으로서 가장 큰 바람은 至善(지극히 선한 사회)의 사회를 꿈꾸어야 하지 않겠는가? 至善의 사회는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 앞장서야 할 사람은 지도자이고 지식인이여야 한다. 앞장을 서기 때문에 차가운 바람도, 날선 비판도, 혼자만의 외로움도 견뎌왔던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사람을 찾고 신뢰하며 존경하는 문화 시민을 키워가는 것은 누구의 몫이어야 하는가? 지금 우리 사회를 위험과 위기라고 말하고 있다. 위험이란 ‘내가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가장 무서운 적은 자포자기의 마음인 것이다. 위험에 자신의 전체를 내 맡길 때, 과거의 나는 죽고 새로운 내가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맹자’에서 ‘행하고도 얻지 못함이 있거든 모두 돌이켜 자기 자신에게서 구하라(行有不得者 皆反求諸己).’는 말과 같다. 내 앞에 놓인 험한 길과 고통도 사실은 내가 만들어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깨달을 때 비로소 자신이 극복하고자 하는 온갖 어려움이 스스로가 만든 것임을 알게 된다. 이러한 어려움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기 위한 것임도 알게 된다. 나부터 어려움에 봉착하면 그 원인을 항상 밖에서 찾는다. 모든 어려움은 ‘구조적으로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이 착취하기 때문’이라는 등의 이유를 달고 억울해 했던 사람이 바로 지난날의 나였다. 어려움의 원인을 밖에서 찾으며 사람과 사회를 미워하고 나를 무던히 학대했었다. 그러나 괴물과 싸우는 왕자는 필연적으로 괴물이 될 수밖에 없다. 진정한 변화는 증오심과 적대감이 아니라 오직 ‘현재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오늘날의 학교는 아이들에게 논리적으로 따지는 법만 가르치지 사랑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 국어사전을 놓고 ‘사랑’이라는 낱말의 뜻을 찾고, 사랑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을 감고 그려보며, 짝꿍과 서로의 생각을 교환해보며 깨달아가는 수업! 그래서 말과 행동에서 사랑이 묻어나는 변화된 자신의 모습에 ‘내가 이렇게 달라졌어요.’하고 느끼게 하는 교육은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工夫란 여러 상황을 잘 살펴서 어떻게 해야 나와 너를 보존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일에 ‘먼저 그리고’를 생활화하는 나와 너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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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먼저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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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람이 먼저, 교통약자 인권을 지켜주세요
- [교육연합신문=신병철 기고]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특히 교통약자(노인·어린이) 사망자는 선진국 대비 높은 수준으로 교통약자의 생명과 인권을 보호하여야 한다. 2017년 보행자 사고가 전체 47,377건 발생, 1,675명이 사망하고, 경남에서만 2,635건 발생에 117명이 사망하였다. 보행사고 예방을 위해 경찰, 지자체와 도로교통공단, 교통안전공단 등 관계기관 합동으로 보행사고 다발지역 안전진단을 통한 기반 조성을 하고 있으며, 매년 교통사고 예방진단 결과 및 사고 추이를 종합하여 지역별 교통안전지수를 공개, 교통사고 예방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고 효과적인 교통사고 예방 정책 추진하는 단초를 마련하고, 보행자의 생명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안전한 보행환경 개선에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출·퇴근 시 교통경찰이 신호기를 직접 제어하는 소통관리 방식은 주변 교차로에 또 다른 정체를 유발하는 결과를 발생하여 교통센터에서 전반적인 교통흐름을 고려, 신호제어 방식으로 전환하여 상습정체구간은 신호 연동시스템 개선을 통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한다. 보행자 사고 예방 주체는 운전자임에도 차량중심 문화의 영향으로 보행자에게만 안전보행 습관화를 강조, 운전자의 운전습관 개선이 미흡한 현실로 교통약자(노인·어린이)에 대한 교육 병행, 전략적으로 운전자의 보행자 보호운전을 중점적으로 강조, 의식 개선 유도하는 범국민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교통약자의 생명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스쿨존에서는 ‘어린이 먼저 교통문화’ 패러다임 전환을 도로에서는 ‘보호자가 먼저인 교통문화’ 정착으로 이어지도록 추진동력이 확보되어야 하며, 보행자가 차를 조심하는 차 중심 교통문화에서 운전자가 보행자를 주의하는 문화로 개선하기 위한 실효적인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 경남창원서부경찰서 의창파출소 경장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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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람이 먼저, 교통약자 인권을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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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왜, 漢字와 漢字工夫인가? - 미래교육포럼 공동대표· 敎育學博士 愚虛 文 德 根
- [교육연합신문=편집국] 요즘 언론 및 뉴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다가오는 지방 선거일 것이다. 선거는 어쩌면 우리를 설레게 하는 측면도, 그들만의 잔치라고 애써 외면하는 부분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바꿔지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로 부풀게 한다. 출마자들의 공약을 보면 선거가 끝나자마자 천국의 문이 열리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더욱 관심을 갖게 하는 부분은 교육 관련 선거 공약이다.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도 근본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에 대해서는 철학의 부재를 드러내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 ‘왜, 이렇게,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한 성찰이 우선이다. 국가 교육 정책을 창의성 신장에 두고 있으면서 수능에서는 EBS 강의에서 거의 그대로 출제를 한다고 안내와 홍보를 하는 나라가 세계에서 과연 몇 나라나 될 것인가? 우리의 교육이란, 언제나 정답을 찾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래서 학교에서, 그리고 학원에서, 아이들은 정답을 찾는 법을 배운다. 누가 더 정답을 잘 찾는 지가 모든 평가의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답 찾기는 정답이 필요하고 존재했던 세계에서는 무척 유용한 방법이었다. 문제는 이제까지의 방법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새로운 세상을, 그리고 새로워질 세상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 더 큰 문제는 학교에서 말하는 그 정답에 관해서 누구도 의심해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그 시험지 안의 정답을 답안지에 기입하는가를 배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을 가장 빈약한 어른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고민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새 학기가 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학교에서 교과목 관련 용어를 가르치는 학교는 얼마나 될까? 교과서의 대강을 설명해주는 학교는 과연 있을까? 아니면 그런 생각이나 해보았을까? 그냥 학기가 되면 교과서를 나누어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닌가? 파충류·양서류, 화성암·퇴적암, 인수분해 등의 용어에 담긴 뜻도 모른 채 배웠다. 이러한 낱말이 漢字로 쓴다는 것을 아는 것은 어른이 되어서다. 그 이름에 쓰인 漢字를 알았더라면 훨씬 재미있고 쉽게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인식을 하고도 고치기는커녕, 교육 방법이 이렇게 가야 한다고 크게 외치는 사람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가르치는 사람은 깊고 넓게 배워서 가장 쉬운 낱말과 방법으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처음 배울 때 선생님이 왜 이런 이름인지 뜻풀이를 해주었더라면 그렇게 헤매지는 않았을 것 같다. 지금도 학교 현장에서는 한자 공부를 소리글자 공부하듯이 하는 경우가 많다고들 한다. 학생들은 漢字하면 세상에서 제일 따분하고 제일 재미없는 工夫라고 느끼며, 왜 그런 어려운 글자를 배우는지도 모르겠다고 한단다. 왜일까? 한자를 가르쳐 주고, 그 글자가 왜 이런 모양을 가졌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품게 하는 과정과, 그 글자에 대한 유래와 의미를 가르쳐 주지는 않으면서 적어도 10번 이상 쓰고 외우게만 하는 것은 어닌가? 漢文은 지금도 살아서 펄펄 뛰는 글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곰팡이 냄새 풀풀 나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이것은 뜻글자의 의미를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漢文은 우리 생활 속에 있는 우리 글자 중의 하나다. 중국 글자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은 우리 어른들의 잘못된 시각에서 연유한 것이다. 한자는 뜻글자이다. 이런 뜻글자는 소리글자 공부하듯이 하면 안 된다. 漢字 工夫는 글자의 모습에서 배울 내용을 익혀야 하며, 무엇을 배울 것인가도 거기에 들어 있다. 그래서 인문학인 것이다. 몇 년 전 고교생 프로그램인 KBS ‘골든벨’에서 “이비인후과는 어디가 아픈 사람이 갈까요?”라는 문제가 나왔는데, 틀린 학생이 무더기로 나왔다고 한다. 제작진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耳가 귀, 鼻가 코, 咽喉가 목구멍을 뜻한다는 것만 알면 쉽게 맞힐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닌가? 漢字는 陰陽五行과 井田法에 근거하고 있다. 그래서 한자는 천지자연의 이치와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익힐 수 있는 것이다. 나뭇잎은 가을이 되어 생명을 다하게 되면, 열매가 떨어진 다음에 낙엽이 되어 떨어진다. 이것은 떨어진 열매가 짐승과 추위에 잘 견딜 수 있도록 하는 즉, 보호하는 순환과 생명존중의 원리가 담겨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자 교육도 중요하지만, 먼저는 가르치는 사람이 음양오행, 정전법 등을 깊고 넓게 배워서 쉽고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도록 자질이 담보되어야 하는 것이다. 국어사전에 실린 우리말 어휘 가운데 한자어가 70% 이상이라고 한다. 교과서에 실린 학술용어는 90% 이상이나 된다. 한자를 모르는 어린 세대가 한글로만 쓰인 교과서를 배우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임산부가 진통(陣痛)을 한다고 할 때의 진통과,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진통(鎭痛) 주사를 맞을 때의 진통을 구별하지 못하는 의료인도 있다고 한다. 2009년 교육부 설문 조사 결과 학부모 중 초등학교 한자 교육에 찬성 의사를 밝힌 응답자는 무려 89.1%였다고 한다. 이제부터라도 한글과 한자 두 기둥으로 하는 교육이 시작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뜻글자와 소리글자를 함께 활용하는 최초의 국가로 거듭날 것이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소통하기 위해서, 더 나아가 우리의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학문적 보편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한자와 한자 공부가 적극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그것도 뜻글자의 올바른 지도 방법으로부터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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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왜, 漢字와 漢字工夫인가? - 미래교육포럼 공동대표· 敎育學博士 愚虛 文 德 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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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00세 시대 대사증후군과 심뇌혈관 초비상
- [교육연합신문=배석문 논설위원] 인간이라면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질병은 100세 시대 최대의 이슈이자 경제적 트렌드인 웰니스 시대에 가난을 비롯하여 모든 인류가 극복해야 할 5대 사회악 중의 하나이다. 만시지탄이지만 대사증후군(Metabolic Syndrome)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국가경쟁력 제고의 시스템이 되었으며 심뇌혈관으로 진행되는 길목 차단의 단계적 예방체계이기도 하기에 국가에서도 혈세를 투입하여 100세 시대를 대비해가고 있다. 현대의학의 현실적 한계와 화학약의 심각한 부작용은 이미 세계 제약업계의 데이터 등을 통하여 점차 알려지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병원, 약국에 습관적으로 의지하는 안타까운 현실이고 예방의학시대가 도래하였음에도 국가나 지자체의 홍보 부족과 안일하고 타성에 젖은 관련 업계와 기관들의 현실적 이해관계 때문에 국민들은 돈 벌자고 건강 망치고 건강 회복하고자 번 돈을 다 써버리고 결국 나이가 들면 가난과 질병의 고통스러운 늪에서 허우적대다가 요양병원 등에서 생을 마감하는 눈물 나는 현실이 우리의 현재 모습이기도 하다. 혈관성 질환인 치매나 뇌출혈, 중풍 등은 암보다 무서운 질병으로 본인은 물론 가족들 전체의 인생 체계를 무너뜨리는 정말 심각한 상황이며 증가하는 아동, 청소년, 여성, 젊은 층의 대사증후군과 심뇌 혈관 질환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어쩌면 일자리보다도 더 시급한 국가적 해결 이슈의 우선순위라고도 할 수 있다. 건강(Health)이란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전 상태를 의미하는 WHO의 정의에 입각한다면 우리는 건강한 삶을 통하여 궁극적인 자아실현의 인생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요건일진대 육체적 건강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결국 정신적, 사회적 건강의 시작도 못하게 되는 비참한 수준을 탈피하기가 너무도 어렵게 되고 결국 개인의 경쟁력 약화가 단체, 조직, 국가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은 대사증후군 예방과 치유에 혼심을 다하기 위한 법과 제도 그리고 시스템을 이미 적극 추진하고 있다. 70여 년간 쌓인 적폐들이 워낙 산더미 같아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커다란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 건강을 위한 실질적인 드라이빙은 아직 한참 미흡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민 스스로 의식이 절대적으로 바뀌어야 하며 셀프메디컬(Self medical)시대에 각자가 우리 몸에 대하여 그리고 건강에 대하여 이제는 알아야 하고 공부하여야 하고 홍보하여야 한다. 대사증후군은 물론이고 심각한 부작용을 수반하는 ETC류의 화학 약과 OTC류의 천연 치유제, 동종요법(Homeopathy), 국민병이 되어버린 고혈압과 당뇨, 그리고 심뇌혈관과 비만에 대해서도 국민적 이슈로 다루어져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바이오스라이프라는 브랜드로 이러한 국가적이고 세계적인 문제인 대사증후군과 심뇌혈관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예방하고 케어하는 제품이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기소, 바셀린, 안티푸라민 등 우리가 익히 들어본 바 있는 제품을 출시한 회사로1903년에 시작된 렉솔이라는 미국 제약회사의 도움이며 1957년 독일의 그뤼넨탈 제약회사의 입덧완화제 속에 포함된 '탈리도마이드' 성분의 부작용에 의한 수많은 사지 결손아 출생의 고통을 인지하고 렉솔은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라이너스 폴링' 박사를 초대 연구소장으로 약과 같은 효능은 있지만 부작용이 없는 동종요법 치유제(Homeopathic Medicine)를 개발, 임상학적, 의학적, 과학적으로 입증, 의사들의 처방전인 PDR에 등록되어 세계 50개 이상의 국가에 공급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다행스럽게도 2010년부터 본격 가동되어 지금은 널리 파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제1세대인 각종 즙류의 건강보조식품, 제2세대인 캡슐류의 건강기능식품을 넘어 이제는 제3세대의 동종요법 치유제(HOM) 시대로 이동한다는 것을 국가나 지자체 그리고 의학계에서도 널리 홍보하고 계도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50대 이후 그리고 60세가 넘은 분들의 집안에는 그리고 주머니에는 화학 약봉지가 늘 쌓여있고 질병의 화마와 싸우는 현실 속에서도 그간의 지식과 고정관념으로 병을 키우고 몸을 망치는 사람들이 아직도 대부분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가고 스스로 건강을 찾기 위해 각종 정보와 의학적 지식들을 공부해가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는 앞으로 더욱 증가될 것이다. “건강관리혁명“의 100세 시대가 이미 도래한 것이다. 나라다운 나라가 무엇인가? 우선 주인인 국민이 건강하고 가난에서 탈피하고 상식이 통하고 특권과 반칙이 없는 비정상들의 정상화가 아니던가?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진리 앞에서 이제는 현대의학의 문제와 화학약의 부작용 또한 적폐 중의 하나로 규정하고 청산 또는 정상화로 나아가야 한다. 바이오스라이프라는 브랜드를 사명으로 알리는 사람들 또한 소중한 가치와 정보를 전파하고 더불어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데 앞장서는 애국자들이다. 답이 없는 일자리 창출의 빈곤 시대에 조건 없이 엄청난 일자리를 창출하고 청년, 여성, 실버세대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위대한 사회복지(Great Social Welfare)를 실현하는 사람들이다. 지금 시대는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문맹이라 하지 않는다.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문맹이라 한다. ”내 치즈는 어디로 갔을까“ 아무리 내 치즈를 찾아도 없는 시대이다. 건강도 가난도 마찬가지다. 두 가지는 혈맹과 같아서 늘 붙어 다닌다. 우선 건강이라도 잘 챙기고 지키는 일은 인간으로서 기본적 의무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이오스라이프는 또 그 일을 하는 분들은 국가와 현대의학이 제대로 해결해 주지 못하는 질병과 가난 두 가지를 모두 해결해주는 위대한 가치 전달 전도사라 할 수 있다. 고혈압, 당뇨, 비만을 비롯한 대사증후군과 심뇌혈관 문제는 이미 초비상의 국가적 이슈이다. 우리 모두 다시 한번 생각을 바꾸고 셀프 메디컬 시대를 잘 살아가는 웰니스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 나는 혹시 문맹이 아닐까? 고정관념으로 사는 건 아닐까? 그러한 자기와의 대화가 곧 100세시대의 기본적 소양이자 바람직한 자세이며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데 일조하기 위해서라도 각자의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 갑자기 쓰러지고 아직도 응급실에서 중환자실에서 요양병원에서 그리고 집안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통과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소중한 나의 가족, 이웃, 친구들의 눈물 나는 모습을 직면해있거나 상상해본다면 우리는 이제 정신을 바짝 차려도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 건강관리 혁명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에 성공과 자아실현은 미흡하더라도 질병과 가난에 허덕이며 일상을 반복하는 인생이라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마음과 귀를 열고 문맹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일신우일신 긍정의 자세가 곧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주인의 모습일 것이다. 대사증후군과 바이오스라이프, 알아볼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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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00세 시대 대사증후군과 심뇌혈관 초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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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그 사람 - 미래교육포럼 공동대표 문덕근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우리는 어쩌면 가야 할 길이 있기 때문에 가고,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한다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가야 할 길과 해야 할 일에 대한 사고의 다름으로 인해 갈등이 일어나고, 그 갈등의 해결 과정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소외와 섭섭함은 지역과 세대 그리고 사람 사이에서 대화조차도 잃게 하는 불신과 증오의 악으로 치닫고 있지는 않는가? 그리고 그 자체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는가? 해결을 위한 생각? 아니 문제 자체에 대한 관심마저도 희미해지는 요즘이 아닌가? 밖으로는 고민을 쏟아내면서도 안으로는 이러한 현상을 즐기고 있는 사람은 과연 없는 것일까? 진보와 보수를 표방하는 신진과 기존의 갈등, 부모와 자녀간의 불신, 경영자와 노동자 간의 대립, 학생과 교원간의 심리적 갈등과 좌절로 속출하는 학생들의 자살, 땅에 떨어진 스승과 학교의 권위는 어떤 결과를 잉태할 것인지에 대해 답을 찾는 숙고의 과정은 없고, 각자가 책이나 남의 이야기를 베껴서 토하고만 있지는 않은가? 흔히 이러한 책임을 거의 교육에 묻고 있으면서도 철학과 자질이 우수한 교육 지도자는 숨어버리는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교육! 세대를 넘어선 우리 모두의 영원한 화두이다. 화두가 되면서도 지금의 교육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학생이 학문을 좋아하지 않고 교사와 친하지도 않으며, 학습의 곤란에 괴로움을 느낄 뿐, 그 대처과정에서 어려움을 스스로 이겨내고 보람을 찾는 과정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말로는 세상을 냉혹하다고 하면서 온실만을 제공하고 있지는 않은가? 스승과 제자의 본분을 '禮記'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잘못된 행동이 일어난 후에 책망하고 금지시키면 반감으로 이겨내지 못하고, 시의적절한 때를 놓친 뒤에 가르치려 하면 학습에 힘만 들 뿐 성과가 없으며, 이것저것 너무 많이 가르치려만 하면 머리가 어지러워져 순서대로 학습이 제대로 안 된다.’면서 교육의 폐해로 지적하고 있음을 한번쯤은 상고해봄직하다. 스승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좋은 학생이 될 수 있는가? 스승의 권위가 서야 그 가르침도 존귀해진다는 ‘師嚴道尊’이라는 말은 스승으로서의 엄격한 자질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스승에 대한 존경은 구걸하고 강요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거듭나는 처절한 産苦의 과정을 겼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는 학문에 대한 깊고 폭넓은 이해와 경험이 농축되어야 한다. 그래서 뿌리까지 철저히 파헤쳐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과 재미있는 방법으로 다가서는 자세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학습 동기는 쉽고 재미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차가운 물에 손을 넣어보고 뜨거운 불에 가까이 가보아야 그 사물의 이치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내고 그 변화 이치를 배우고 난 다음 실제로 그 변화가 주는 수많은 결과들을 다시 공부하고, 삶 속에 녹여 내야만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식물을 잘 기르려면 그 식물이 어느 정도의 물과 햇빛 그리고 어떤 토양을 좋아하는지를 먼저 배우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다음에 體가 갖추어져 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운전을 해보지도 않은 사람에게 운전대을 맡기자고 외치는 사람, 또 그 사람에게 박수를 치는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 ‘하루에도 오만 가지’라는 말이 있듯이 책상에서는 한 가지이지만 실재에서는 수만 가지가 되는 것이 일상이다. 이는 실제로 해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실천해 보지 않은 배움은 허공을 맴도는 메아리일 뿐이다. 하물며 교육에서는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한자어에서 가르친다는 것을 斅(가르칠 효)라고 한다. 배움에 두드림을 합(學+攵)한 글자이다. 즉 가르침은 배움에 더하여 두드림이 필요한 것이다. 두드림이란 방향 제시와 길 안내이며 責善과 是是非非 능력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배움과 그 배움을 실재에 적용하는 실천이 없이는 스승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왜 아이들이 말을 거칠게 하고, 폭력적이 되었을까? 문제에 대한 분석도 중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회적 병리 현상인 것이다. 어떻게 하자는 외침도 중요하고, 외침에 귀 기울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게 된 현상의 일부는 ‘나, 우리의 가정과 사회, 어른’에게 있지는 않을까 하는 사고의 접근이 더 문제 해결에 더 가까이 가는 것은 아닐까? 스승을 나타내는 글자인 師는 阝(阝←阜: 언덕 부)+帀(두를 잡)으로 이루어져 있다. 스승은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라 무리 중에서 자연적으로 선택되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사람이 갖추고 있는 자질과 능력, 태 도 등을 보고 무리들이 자연스럽게 지도자로 모시고 따른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아닌 것을 아니다.’라고 할 수 있는 엄격함과 지혜를 요구하는 것이다. 스승이 학생을 잘 가르치려면 배움이 함께 해야 크게 되는 것이다. 이 음식은 짜다고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맛을 보고 느껴야 이치를 알고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이란 과정은 보이지 않은데 수많은 반복으로 몸이 느끼고 따라가는 것이다. 書라는 글자가 聿+曰로 이루어진 이유인 것이다. 글공부는 말로 하고 손으로 직접 써야 한다는 깊은 이치가 들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위에서 사용하는 낱말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사용이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런데 멀리를 중요시 하고, 더 나아가 외국의 것에만 매달리는 현실은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가? 가르침이란 배우도록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부족함을 알아서 스스로 반성하게 되고 그 과정의 힘듦을 느낀 후에 대처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배움의 과정에서 외우고 반복하는 것이 아닌 ‘왜 이러지?’ 하는 원리를 깨닫는 과정을 통해서 즐거움으로 나아가는 길을 스스로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 가르침이다. 이것을 가르침과 배움이 함께 큰다고 말하는 것이다. 말에게 수레를 끌게 하려면 말을 수레 뒤로 보내어 먼저 어미 말이 하는 것을 보게 하는 것이다. 이때 어미 말은 어떤 말이어야 하는가? 교육 현장을 멀리서 보기만 했던 사람이 스승의 길로,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려는 행태를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교육 현장이 왜 우리의 골칫거리가 되었을까? 우리의 정체성을 외국에서만 찾고 있는 것에서가 아닐까? 아니면 우리가 갖고 있던 스승과 제자 사이의 마땅한 도리, 교육이념, 교육방법 등을 우리가 제대로 배우거나 가르치지 못해서, 스승과 제자가 함께 공부하는 학문의 길벗이 아니라 가르침을 강요하고 강요받는 갑을 관계로 만든 우리들의 생각 없음 때문은 아닐까? 교육! 백년지대계라고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교육을 노래하고, 현장의 어려움에 눈물을 삼켜본 사람, 다양한 위치에서 곤란의 경험을 깨달음으로, 그 깨달음이 철학으로 몸에 배인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자신의 사사로운 마음을 이겨서 능히 해낼 수 있는 ‘克明德’의 지도자는 없는 것일까? 아니면 숨어버린 것일까? 세상은 만나야 할 곳에서 맞물려 돌아가야 할 그 사람을 찾고 있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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