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기획·연재
Home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실시간 오피니언리더스 기사

  • [위클리피플 신년 특집 인터뷰]고립 없이 모두가 어울려 사는 사회를 꿈꾸는 노인병 전문가를 만나다!
    [위클리피플= 오미경 기자] “고립 없이 모두가 어울려 사는 사회를 꿈꿉니다!” ‘치매’라고 쓰고 ‘사랑’이라 읽는 노인병전문가의 이야기 이상일 <이상일 의원> 원장/ 서울시 120다산콜센터 산업보건주치의/ 소설가 현대인들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치고 힘겹다고 토로하곤 한다. 하지만 어느 날, 그 일상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결국엔 완전히 무너져 단 하나의 일상생활조차 가능하지 않은 상황을 맞이한다면 어떻겠는가? 치매 환자에게는 이 무서운 상상이 현실이 되어 버린다. 매일 오가던 집을 찾지 못하고, 금방 먹은 밥을 또 내놓으라며 소리치거나, 심지어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하는, 흔히 생각하는 치매 환자의 이미지처럼 말이다. 의도치 않게 가족의 일상까지도 무너뜨리는 치매는 환자로 하여금 자신이 병에 걸렸단 사실도 망각하게 하는 잔인한 병이고, 그래서 암보다 무섭다. 급속하게 노령화 시대에 접어들며 환자수가 늘어나고, 발병 연령도 낮아지면서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 치매, 그리고 그 속에 잔재한 현대인의 고독. <주간인물>은 국내 최고의 노인병 전문가로 꼽히는 <이상일 의원> 이상일 원장을 만나 더불어 사는 건강한 사회에 대한 꿈이 담긴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_취재 이선진 기자/ 글 오미경 기자 최고의 신경정신과&노인병 전문 병원 <이상일 의원> 이상일 원장은 웬만한 연예인보다 유명한 의사다. 그가 각종 매체를 통해 다양한 건강 정보를 전해주었던 덕에 취재진은 낯설음을 덜고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이상일 의원>은 신경정신과·호스피스·내과·노인병 전문 병원이다. 국내에 치매 치료가 전무했던 시절부터 15년 이상 환자 치료에 앞장 서온 이상일 원장의 노하우를 통해 환자들로부터 꾸준한 신뢰와 명성을 얻고 있다. 이 원장은 현대인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커뮤니케이션이 고립되지 않는 것과 건강해야만 가능한 내 맘대로 하고 사는 자율성의 문제”라고 꼽으며 이에 맞게 진화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뇌졸중·치매·기억력 감퇴의 예방 및 뇌 손상 후 재활, 치매치료 등 세분화된 클리닉 서비스 뿐 아니라 영양·요양·호스피스·복지행정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전문적인 진료와 다양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WHO에서 발표된 국제표준규격의 완화의료 권장사항을 충족시키는 국내 유일의 민간 센터로 기존의 치료 목적의 병원과는 달리 환자와 가족의 고통감소 및 보존을 위한 케어 전문기관입니다.” 특히 대학병원과 비교해도 월등히 높은 치매클리닉의 치료율 및 성과를 자랑하는 이곳은 원격을 통한 협진으로 치료의 전문성을 높이고, 미국 FDA로부터 인증 받은 치료약을 모두 구비하고 있는 보기 드문 병원이다. 또 병원 내 환자뿐 아니라 네트워크를 통해 약 3000여 세대의 데이터를 가지고 환자의 안부와 상태 등을 점검하는 해피콜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이 원장은 “병이 눈에 드러나야 치료 기관을 찾는 경향이 많고, 독거사 하는 노인도 늘고 있어 찾아오는 환자만 보는 것이 아닌 능동적인 진료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활발한 해외교류를 통해 선진시스템 도입에도 적극적인 <이상일 의원>에서는 노화방지 프로그램과 근골격계 관리 프로그램의 도입으로 최근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할리우드 명배우나 선진국이 애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노화방지 프로그램은 일반인들에게도 뛰어난 효과를 입증 받았고, 근골격관리계 관리 프로그램은 중장년층은 물론 젊은 층에게도 호응을 얻어 일본에서 시술을 배우러 올 정도이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치료의 주안점을 두고, 새로운 해법으로 변화하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공포의 대상인 치매, 제대로 알자 치매에 걸린 여주인공과 그녀의 가족, 사랑하는 사람간의 아픔을 그려낸 영화와 드라마가 화제를 모은 적 있다. 흔치 않은 경우지만 최근에는 치매 환자의 연령층이 노년을 넘어 중장년, 2030세대로 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치매는 ‘늙어서 걸리는 병’, ‘노망’ 등으로 불리며 대중의 낮은 의식 수준 속에서 동정이나 외면의 대상으로 자리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 원장은 “병에 대한 관심 부족으로 갑작스레 발병하여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며 치매를 설명했다. “뇌의 인지 기능이 점차 감소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해지는 질병인 치매는 알츠하이머성, 혈관성, 기타 치매 등으로 분류하는데 초기 증상으로는 후각과 미각이 떨어지는 것이 대표적이고, 짜증을 많이 내거나 기억력이 떨어지면서 피해망상이 생깁니다. 조금 더 심해지면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고 언어와 실행 장애가 나타나며 증상이 깊어짐에 따라 말기단계로 진행됩니다.” 이 원장은 일반인들의 인식과는 달리 치매는 약물비약물적 방법으로 병의 진행 속도를 최대한 늦추거나 치료까지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조기발견과 조기치료가 가장 중요 하다고 거듭 강조하며 이를 위해 정기 검진 또한 철저히 지켜줄 것을 당부했다. 또 “복지관이나 교회, 모임 등에 꾸준히 나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생활하고, 스스로를 점검하는 것도 훌륭한 예방법 중 하나”라고 설명하며 “치매가 다양하고 복잡한 원인과 증상을 갖는 질병인 만큼 전문가를 찾아 진단과 치료를 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환자 유병율 이나 관리 실태를 감안할 때 고령화 시대에 치매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차원의 관리가 필요한 질병이다. 이 원장은 이를 두고 국가가 통계상의 질병 역학적 특징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다며 “노령화 시대라 해서 치매 환자가 계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선이 되면 유지가 되는 병이기에 정확한 유지 선을 찾아 그에 맞는 질병관리 예산과 정책을 가시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살아가는 의사 이상일 환자 수요도 많지 않고, 공부할 분야와 양도 방대해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을 치매 치료 분야에서 지금의 위치까지 오른 노인의학전문가 이상일 원장. 그의 의료 인생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성적이 좋아 권유로 연세대 의대에 진학한 그는 졸업 후, 전공 결정 시기에 가장 쉬울 거라 생각한 정신과 지원이 10:1의 경쟁률을 보여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포기하려던 찰나에 전공 규정이 군 미필자 선발로 변경되며 미필자인 그에게 선택의 기회가 왔고, 괴짜로 통하던 그 시절, 주변의 낮은 기대치를 엎고 당당히 전문의 시험까지 합격하기에 이르렀다. 군 제대 후에도 모교 병원에서 보직 잡기가 쉽지 않았던 그는 운명처럼 치매 환자를 접하게 되어 지금까지 노인 환자들을 만나오고 있다. “저에게 오는 환자는 일반적인 환자 군과 다르게 수술이나 치료보다는 일상생활의 불편함, 정신적 질병과 부결되는 아픔을 호소하는 분들 인만큼 더 큰 관심으로 도움을 줘야 해요.” 이 원장은 “노년층에 대한 배려와 복지는 우리를 있게 한 선인에 대한 당연한 이치”라 말하며 “가까이서 환자들을 보면서 다양한 가족관계를 접하는 동안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분위기가 되길 희망하게 됐다”고 밝혔다. 구청장 표창, 시장표창, 봉사단 표창 등 주변의 존경이 담긴 수많은 그의 수상 이력들은 여느 병원들의 홍보성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이 원장의 신념을 짐작케 했다. 각종 학술활동은 물론, 다방면으로 지역 봉사활동을 해온 그는 현재 '서울시 120다산콜센터 산업보건주치의'로서 서울시 전 지역의 보건 취약 지구를 순회, 치매환자 관리와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상일 원장에게는 신경정신과 전문의, 노인의학전문가, 방송인, 방송작가, 행동과학 전문가 등 다양한 직함이 있다. 우연한 계기로 SBS해석남녀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이 원장 특유의 따뜻한 인품이 방송에서 빛을 발하면서 여기저기서 그를 찾았고, 유명방송인이 되었다. 게다가 방송 구성작가로 활약한 것도 모자라 틈틈이 집필하여 연애심리학 관련 저서를 여러 권 출간한 그는 얼마 전, 계간 ‘문학과 의식’의 2012년 겨울 호에서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 등단까지 했다. “방송 출연을 계기로 ‘나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배우는 자세로 창작 활동을 하고 싶어요”라고 소감을 밝힌 이 원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의 본업이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나은 시스템과 체제를 정비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계획을 전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만 명이나 되는 사람의 임종을 지켜본 이상일 원장이 남긴 한 마디는 그의 삶 면면에서 느낄 수 있었던 ‘사람과 사랑’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게 했다. “우리는 너무 복잡하게 살고 있어요. 걱정과 분노, 비관으로 일그러뜨리기에 삶은 그다지 길지 않습니다. 욕심을 덜고 삶을 간단하게 접근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존재조차 기억할 수 없게 하는 외로운 병을 더욱 쓸쓸하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사회의 차가운 시선일 뿐, 환자와 주변의 관심과 의지만 있다면 치매 환자의 내일은 훨씬 희망적이다. 이상일 원장의 바람처럼 치매 환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모아져 모두가 고립 없이 더불어 사는 대한민국으로 거듭나길 <주간인물>이 간절히 기원한다. profile.<경력사항>이상일 의원 병원장정신과 전문의/신경과 전문가/뇌파 및 신경 생리 전문가전자 신경 심리 전문가/노인 의학 전문가/행동과학 전문가방송인/방송구성작가/작가근로복지공단 정신과 분야 자문위원 2007서울시120다산콜센터산업보건주치의 2011- 현재<표창 경력>강원도 원주시 법원, 검찰 자문관 (1997) 노인 복지 기여로 강남 구청장 표창 (1998) 복지 법인 한국 구조 봉사회 감사패 (2009) 인터넷 사회봉사카페 별빛 연가 표창 (2008) 노인복지 기여로 서울 시장 표창 (2005) 노인 복지 기여로 로타리클럽 회장상 (2006,2008)지역 복지 기여로 역삼 2동장 표창 (2007) SBS 감사패 ,해석남녀, 호기심천국 등 기여 (2000)노인복지 기여로 강남 구청장 표창 (2006) 영월경찰서장 표창, 경찰 활동에 대한 기여 (2007)서울시 복지 사업 기여로 서울시장 표창 (2009) 그 외 저서 출간 및 칼럼 기고, 방송경력 다수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3-01-28
  • [아이앤유안과 류익희 원장 특별 인터뷰] ‘안내렌즈삽입수술’로 세계 속 한국 의술의 위상을 드높인 Dr. Ryu!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이준영 기자] 세계 속 한국 의술의 위상을 드높인 Dr. Ryu!특화된 경쟁력 ‘안내렌즈삽입수술’의 名醫류익희 아이앤유안과 대표원장 _취재 이준영 기자, 글 이선진 기자 뛰어난 ‘안내렌즈삽입술’로 자신만의 색깔을 낸 명의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 안과 외래교수를 역임한 류익희 원장은 개원 전 국내 3대 대형 굴절교정전문병원 중 하나인 강남밝은세상안과에서 프리미엄지정원장 및 진료과장을 맡으며 수술 실력을 인정받아온 국내 최고의 안과 전문의이다. 류 원장은 그를 믿고 찾아와 준 환자들에게 최고의 진료로 보답하고 수술 ‘전’과 ‘후’ 일련의 과정을 돌보고자 자신만의 색깔을 담은 아이앤유안과를 개원했다. 이 병원은 굴절교정수술을 전문으로 하되 안내렌즈삽입술에 특화된 전문 병원으로 환자들의 높은 만족도를 자랑하는데, 렌즈삽입술로 특화된 병원은 전국에서 한 두 군데밖에 없을 정도의 희소성 있는 전문실력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또한 아이앤유안과에서는 라식·라섹·안내렌즈삽입술 후 발생한 근시퇴행(시력감소) 난시발생 및 야간빛번짐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위해 재수술·재교정 클리닉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굴절교정수술에는 라식, 라섹, 안내렌즈삽입술이 있다. 그 중 안내렌즈삽입술은 라식병원에서 같이하는 시술 중 하나로만 여겨져 왔다. 그도 그럴 것이 라식·라섹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이 수술이 장비만 있으면 손쉽게 할 수 있는 수술임에 반해, 안내렌즈삽입술은 수술자의 경험이나 술기가 상당히 중요시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굴절교정수술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Mass Product의 성격으로 진화하면 할수록 단위시간당 수익률이 높은 라식·라섹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병원의 경제적 측면에 의해서가 아니라 환자의 눈에 맞는 최적화된 수술을 할 수 있도록 렌즈삽입술을 적극 소개하여 선택의 폭을 넓혀줘야 한다고 말하는 류 원장은 다음과 같이 입을 열었다.“한국인들은 고도근시가 많습니다. 초고도근시 환자, 라식·라섹 수술이 곤란한 이들에게 주로 이뤄져왔던 렌즈삽입술은 시술의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2011년 미국 FDA에서 지난 5년간의 데이터 추적 결과, 수술 후 시간이 흐를수록 환자 만족도 면에서 렌즈삽입술이 라식·라섹보다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최근 유럽에서의 변화로도 알 수 있듯이 라식·라섹수술이 가능한 일반근시 환자들까지도 좀 더 안정적인 시력을 원하거나 좋은 시력의 질을 원할 경우 렌즈삽입술을 받고자 하는 움직임이 크게 일고 있습니다.” 안내렌즈삽입술은 100년의 역사를 가진 백내장수술을 이용한 수술방법이기 때문에 안전성이나 부작용 면에서 별 다른 문제가 없으며, 렌즈를 제거할 경우 다시 원래의 내 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 중 하나이다. 류 원장에게 수술을 앞둔 환자들이 알아야 할 조언을 부탁했다. “안내렌즈삽입술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어떤 렌즈가 자신의 눈에 적합할지 렌즈의 종류를 잘 선택하는 것이 다음의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이앤유안과에는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7가지 종류의 모든 렌즈가 갖춰져 있어, 어떠한 이유 때문에 7개 렌즈 중 특정 렌즈가 본인에게 잘 맞는지 설명해주고 시술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라식병원에서 이뤄지는 안내렌즈삽입술은 메인이 아닌 부수적인 수술로 행해져 환자의 눈 상태보다는 수술자 자신이 잘하고 하기 편한 렌즈로 시술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안내렌즈삽입술에 쓰이는 렌즈는 전부 외국산이다. 그렇기에 개발 단계부터 기존의 모든 자료들이 외국인 눈에 맞춰져 있다. “한국인 눈에 맞는 지표들을 새롭게 세우고 싶었습니다.” 라식·라섹·안내렌즈삽입수술에 13,000례 이상의 풍부한 수술을 집도한 류 원장은 안내렌즈삽입술의 경우 한국인 눈에 최적화된 렌즈 선택 및 술기, 수술 시 고려할 점 등을 끊임없이 연구하여 논문으로 발표하고 있다. 의원급에서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류 원장이 피땀 흘린 노력의 결과로써 수많은 지표로 입증해보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신을 믿고 찾아온 환자에게만큼은 제대로 정확하게 수술해주고 싶은 욕심에 있었다”고 그는 전한다. 안내렌즈삽입술에 사용되는 렌즈 제조회사들은 자회사 렌즈를 갖고 시술하는 의료기관의 수술경험치에 따라 엄정한 평가로 선정, 우수함을 인정해주고 있다. 이에 아이앤유안과는 안전하고 정확한 검사 및 다년간의 수술, 성공적인 결과를 바탕으로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었으며, 류 원장 또한 다수의 성공사례들로 그 실력을 입증받고 있었다. 미국 Staar사는 자사에서 만든 ICL 렌즈에 대한 최근 몇 년간의 데이터를 뽑아 수술경험 및 성적을 바탕으로 베스트닥터를 선정했는데, 류 원장이 Global expert Doctor로 선정되었다. Artisan/Artiflex 렌즈를 제조한 네덜란드 Ophtec사에서도 그를 Best Skilled User로 인증했으며, 작년 연말에는 우수한 안내렌즈삽입수술 결과와 수술횟수를 바탕으로 2012년 한해 알티플렉스 렌즈삽입수술 최대 성장한 안과로 아이앤유안과를 선정, 수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한편 류 원장은 SCHWIND사 한국파트너로, SCHWIND Amaris Research partner로 임명 받아 전세계 의사들을 교육하고 정보를 공유하는데 앞장서는 선구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엑시머 레이저 hardware/software 부분의 R&D파트와도 긴밀하게 움직이며 기존의 레이저를 응용할 뿐 아니라 향후 새로운 레이저 장비 개발과 운영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열정과 의지로 안과 의료계를 짊어지다!어린 시절 류 원장은 언론사 특파원으로 해외 근무를 하게 된 부친을 따라 미국에서 중·고등학교 일부를 다녔다고 한다. “중학교 졸업 전, 자율실습수업이 있었는데 방과 후 한 달 동안 직업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때 한인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큰 병원에서 소아과 과장을 하고 계시는 의사선생님께 부탁하여 운좋게 4주간 진료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지요. 미숙아를 돌보셨던 선생님의 일과 삶을 보며 저는 4주간의 행복한 시간에 빠져들었습니다.”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의사란 직업을 피부로 느끼며 그 길로 진로를 확고히 정한 류 원장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 해외우수학술상을 수상하며 대학원을 졸업하기에 이른다. “지금의 강남세브란스병원인 영동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생활 당시 2001년은 100명이 넘는 인턴 중 1, 2등의 최우등 졸업이 아니면 안과를 전공할 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인턴 때 각 과별로 한 달씩 돌며 적성을 찾을 기회가 있었는데 소아정형외과와 소아안과를 희망했던 저에게 안과 스케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와 바꿔 소중한 체험을 할 수 있었고 일주일의 휴가도 반납하면서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었을까. 레지던트끼리의 면접인 1차 면접과 그의 가능성을 믿어준 2차 교수실 면접에서 그는 호평을 얻으며 안과전공, 안과전문의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의과대학을 진학하며 소아과를 전공할 줄 알았던 그는 대학원 시절 소아 파트 중 안내렌즈삽입술과 상관된 석사논문을 쓰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게 되었다고 한다. 대학병원측 데이터로는 논문을 쓸 수 없었던 당시, 강남밝은세상안과 김진국 원장이 자신의 병원에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터이니 논문을 써보라고 독려한 것이다. 류 원장은 짬이 날 때마다 병원을 방문하여 “논문에 필요한 데이터이니 5분만 시간을 내 검사에 응해달라”며 환자에게 일일이 설득을 구했다. 환자와 대화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어 이를 눈여겨 보았던 김 원장은 그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했고, 결국 그는 김 원장의 뜻을 받아들여 입사를 하게 된다. 그 후 그가 K병원에서 재직한 기간이 3년 반, 김 원장과 인연을 같이 한 세월로만 6년이 넘었으니, 오랜 기간 늘 최선을 다했던 그 모습 그대로 김 원장의 높은 신임을 받기에 충분했을 터. 연배 많으신 의료진들을 뒤로하고 진료과장직을 맡으며 핵심멤버로 병원을 끌고 나갔던 그가 개원을 하겠노라 발표했을 때 김 원장의 실망감과 섭섭함은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이다. 사실 지척에서 병원을 오픈할 경우 경쟁상대가 되기에 달갑지 않은 일임에도, 그가 병원을 떠나는 날 이 병원에서 봉직하던 의사들 중 처음으로 그에게 ‘감사패’가 수여되었던 광경은 역대 이례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병원 가까이에 계셔서 지금도 가끔씩 찾아뵙고 있는 강남세브란스병원 한승한 교수님과 강남밝은세상안과 김진국 원장님은 제가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하는 두 분입니다.” 환자와 교감하는 따뜻한 의사의 꿈자신이 수술한 환자를 끝까지 돌보고 싶었지만 큰 조직에 있다 보니 시스템적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환경이 안타까웠다는 류익희 원장. 그는 이제 자신이 아우르는 울타리 안에서 환자와 마음껏 교감하고 소통하며 행복해한다. “보람은 매일매일이에요. 시력을 되찾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 그들의 불편함을 제가 해결해줬을 때 그 뿌듯함은 말로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를 묻자 “강원도에 사는 환자가 수술 후 너무나 감사하다며 고구마를 밤새 쪄 와서 온 가족과 병원 식구가 배불리 먹었던 기억”과 “한 환자분이 수술 후 너무나 기뻐하며 자신의 가족은 물론 일가친척까지 데려와 전 가족의 눈을 시술했던 보람된 기억”을 전하며 그는 감사함을 표했다. 류 원장은 하이닥·네이버지식IN 자문의사 활동에 베스트지식IN 전문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식IN 자문의사 활동은, 인터넷 상에서 현혹되기 쉬운 병원 광고나 잘못된 정보를 보고 한 가지 수술만을 고집하는 환자들을 일선에서 접하며 “제대로 된 정보를 주다보면 온라인 상에서도 정화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다. “아파서 오시는 분들을 잘 치료할 수 있는 안과전문기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불편함을 해소하는 부분이 아니라 역량이나 규모를 갖춘 전문병원으로 키워서 아픈 분들에게 꼭 도움을 주는 의료기관으로 일궈나가고 싶습니다”라며 현재에 충실한 것이 우선이라는 그는 그와 같은 생각, 같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전문성을 더 강화해 갈 생각이란다. 인터뷰 내내 어느 하나 버릴 수 없는 알찬 내용으로 열정적인 인터뷰를 이어갔던 류익희 원장. 그의 일과를 채워나가는 모든 노력과 연구 활동들은 오직 환자 중심의 생각, 올곧은 신념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2013년, 대한민국 의료계의 혁신적인 안과전문기관으로 도약할 아이앤유안과와 류익희 원장의 큰 꿈을 위클리피플이 함께 응원한다. 아이앤유안과 http://www.eyenu.co.kr/ ◈profile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학사) / 동 대학원 졸업 (의학 석사 - 해외우수학술상 수상)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수련의 / 안과전공의 / 안과전문의 전)연천보건의료원 및 경기도립의료원 수원병원 진료과장 전)비앤빛강남밝은세상안과 프리미엄지정의 및 진료과장 전)연세대학교 강남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의국 강사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안과 외래교수메디스캔 건강검진센터 자문 의사 하이닥 / 네이버지식IN 자문의사 - 베스트 지식IN 전문가 선정Schwind社 공식인증 Global Research Partner doctor (국내 유일)ICL 렌즈삽입수술 Global Expert doctor알티플렉스 / 알티산 렌즈삽입수술 Best skilled user Wavelight社 EX500 Certified doctorSchwind Amaris Global User Meeting 초청발표 Wavelight Global User Meeting 초청발표 Ziemmer LDV Korea-Japan User Meeting 초청발표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3-01-24
  • [위클리피플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 국내 최초 부위마취 종아리 신경차단법 개발한 백인구 원장!
    [위클리피플=이준영 기자] 국내 최초 부위마취 종아리 신경차단법 개발한종아리 퇴축술의 ‘명의’, 백인구 원장! 위클리피플 선정 의료계 올해의 인물 지움성형외과원장/성형외과전문의/성균관대학교 외래교수 새해를 맞이하여 사회 곳곳의 움직임이 더욱 활기를 띄고 있는 가운데 <주간인물>에서는 신년특집으로 각 분야를 대표할 [올해의 인물]을 선정, 독자들에게 계사년 희망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변함없이 아름다움을 향한 많은 이들의 고군분투의 노력이 계속 될 2013년, 여성들의 미와 자신감을 책임지고 있는 성형외과 부문의 ‘올해의 인물’로 지움성형외과 백인구 원장이 선정됐다. 종아리 퇴축술이라는 특화 분야의 전문의로 유명한 지움성형외과의 백인구 원장을 만나 올해의 목표와 의료철학에 대해 들어 보았다. 취재/글_이준영 기자 강남의 지움성형외과에서 백인구 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백 원장은 “병원이 그리 큰 것도 아닌데 이런 상을 받기 조금 부끄럽습니다.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종아리수술 부분을 묵묵히 해왔다는 것을 인정해 주었다고 생각 하겠습니다”라는 겸손한 대답으로 인터뷰 소감을 대신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와 덧붙여 “요즘 비전문의가 많아지면서 성형외과시장이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의사 본연의 자세가 사라지고 비즈니스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요. 한 분야를 깊이 있게 파고드는 전문가·전문의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워킹스쿨 설립과 개인저서 집필 계획중 새해에도 종아리 성형 전문의로서 백인구 원장의 의료 활동은 계속 될 전망이다. 백 원장은 꾸준한 의료 활동뿐만 아니라 환자를 위한 보행자세 교정에도 도움을 줄 생각이다. “종아리 수술은 사후관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병원 내에 ‘워킹스쿨’을 설립해서 종아리 수술 환자들의 보행자세교정을 해줄 계획이 있어요.” 지움성형외과에서 수술 받은 환자는 물론이고 타병원에서 종아리 수술을 받은 환자까지, 종아리 수술 후 사후관리를 ‘워킹스쿨’을 통해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백 원장은 개인적으로 저서 집필을 준비 중이다. 그는 종아리 성형 부분의 논문이 매우 적다고 말하면서, 새로이 병원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자신의 노하우와 의료철학이 담긴 책을 집필하려고 준비 중이라 밝혔다. 새해의 계획을 알차게 세우고 있는 지움성형외과는 수많은 성형외과 속에서도 뛰어난 실력으로 15년의 관록을 자랑하는 종아리 전문 병원이다. 백인구 원장은 체계화 되어있지 않았던 종아리 성형 분야에서 꾸준한 연구를 통해 국내 최초로 부위마취 종아리 신경차단법을 개발한 바 있다. 다중신경차단법으로 수술하여 낮아진 재발율, 최신형인 미국 cosman사의 장비를 이용한 최소침습적 수술로 남지 않는 흉터, 종아리 신경차단법을 통한 무통수술 등의 장점으로 유명한 이 병원은 현재 타 병원에 불만이 생긴 환자들이 입소문을 듣고 찾아올 정도로 인정받는 병원이 되었다. 백인구 원장이 말하는 성형의 美 종아리 성형의 ‘명의’ 백인구 원장에게 성형의 美란 무엇일까? 백 원장은 시대가 변화하면서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도 달라졌다고 말한다. “조선시대처럼 자신을 꾸미는 것에 대해 소극적인 시대가 이제는 아닙니다. 현대 사회에서 외모는 경쟁력이 되었어요.” 백인구 원장은 자신의 의료기술을 통해 사람들이 부족한 부분을 매우고 ‘자신감’을 찾게 해주는 것이 자신의 일이며 성형의 가치라고 밝혔다. 2013년에도 남들이 잘 하지 않는 길을 꾸준하고 묵묵하게 나아가는 백인구 원장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움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의료 활동을 펼칠지 기대된다.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3-01-22
  • [노은정형외과 양동현 원장 특별 인터뷰] 따뜻한 의료 실천으로 훈훈한 감동을 전하는 관절의 名醫, 양동현 원장을 만나다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따뜻한 의료 실천으로 훈훈한 감동을 전하는관절·척추·스포츠 재활치료의 名醫,양동현 원장을 만나다! 양동현 노은정형외과 원장 | 정형외과 전문의 | 대전광역시 야구연합회 의무부회장 과거 노인층에서 척추, 관절 질환이 많이 발병했던 반면, 최근에는 잘못된 자세와 스포츠 손상으로 젊은 환자층이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에, 국민 건강을 유지·증진시키기 위해 꾸준한 운동을 할 것과 치료에 앞선 예방 교육을 강조하며 건강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려나가는 양동현 원장을 <주간인물 특집 신지식인 명의(名醫)>로 소개하여 그의 훈훈한 인생커버스토리를 들어보았다. _취재 전준호 기자 / 글 이선진 기자 교과서적인 진료, 정통학적 치료의 ‘정형외과 명의’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위치한 노은정형외과 병원에 전문의의 실력은 기본이요, 오직 환자 중심의 의료 신념을 갖고 있는 정형외과 명의가 있다 하여 기자는 서울에서 대전으로 한걸음 달려갔다. 한눈에 보기에도 커다란 눈매에 서글서글한 모습이 인상 깊었던 양동현 원장은 따뜻한 커피를 건네며 기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병원은 평일에도 많은 환자들로 북적였는데, 바쁜 진료 시간을 쪼개준 그 덕분에 점심 무렵 어렵사리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가 운영하는 노은정형외과는 지역민들의 건강을 유지·증진시키는 역할을 담당해온 관절 특화 전문병원으로 대전에서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찾아올 정도로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관절 치료부터 수술, 재활까지 일련의 모든 과정들이 원스톱 서비스로 이뤄지고 있다. “사람이 아프면 마음도 여려지잖아요. 작은 것에도 섬세하게 환자 입장에서 배려해드리면 감동을 받으시더라고요. 혹자는 수술 후 드레싱까지 제가 다 하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원장님이 직접 하시냐고 놀라기도 하세요. 수술부터 드레싱, 재활 관리까지 제가 직접 환자를 돌보는데, 이렇듯 치료에 표준성과 일관성이 있다는 점은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대학병원보다 접근성이 좋다는 점도 장점이지요.” 과거에는 노인층의 퇴행성 무릎 관절 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많았던 반면, 요즘에는 스포츠 손상을 입고 오는 젊은층이 많다고 한다. 여가생활이 발달함에 따라, 비단 스포츠 선수 뿐 아니라 취미로 운동을 하다가 인대를 다치거나 골절을 입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바빠서 평소에 운동을 잘 안하다가도 갑자기 운동할 때면 땀을 뻘뻘 흘리며 하려는 등 욕심을 많이 낸다”며 “지나친 욕심을 갖고 운동을 하려다 보면 다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어서 “너무 욕심내지 말고 살짝 땀 흘리는 정도로 운동할 것과 평소 꾸준히 운동할 것”을 당부했다. 그가 말하는 운동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요즘 직장인들을 보면 너무 바쁘시잖아요. 평소 꾸준한 운동을 하셔야 한다고 당부하면 다들 시간이 없다고 하십니다. 꼭 헬스클럽을 끊어 몇 시간씩 운동해야 하는 게 아니거든요. 하루에 5분도 좋고 10분도 좋고 꾸준한 운동이 중요합니다. 하루 30분 정도씩 집에서 타는 사이클로 운동하시면 기초체력 관리와 특히 근력운동에 도움이 됩니다.” 관절, 척추, 스포츠 손상 치료의 명의로 정평이 난 양 원장은 교과서적인 진료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정형외과 교과서에 나온 한 줄은 수천, 수만 명의 임상경험과 치료결과를 바탕으로 쓰여진 한 줄입니다. 모든 치료의 근본은 일반적인 치료에 있기 때문에 교과서적인 진료를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의료수가 문제로 수술을 권유하는 것이 알게 모르게 보편화된 병원 실정이지만, 그는 최대한 비수술적 치료를 해본 후 더 이상 호전이 안 되거나 기능상에 이상이 있을 시, 통증이 있을 경우 가장 마지막에 수술적 요법의 치료를 한다. 무릎 인대손상을 입은 경우 10년 전에는 절개를 했지만, 최근에는 관절경을 이용한 재건술이 각광받고 있는데 그는 이 수술을 잘 하기로도 유명하다. 양 원장은 “무릎 관절 안에 있는 십자인대가 파열된 경우 골절된 뼈와 달리 자연적으로 붙지 않기 때문에 재건 수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최근에는 초소형 카메라를 이용하여 십자인대 수술이 가능하며 기존의 수술에 비해 절개 부위가 작고 출혈이 적어 빠른 회복과 재활치료가 가능합니다”라고 밝히며 관절경 십자인대 재건술을 소개하였다. ‘Quality of Life!’ 그에게 의료인으로서의 사명과 보람에 대해 물었다. “정형외과란 과목은 생명과는 크게 관계 없지만 삶의 질과 연관된 부분이거든요. 수술 전에는 통증이 심하고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던 환자가 수술 후에 운동도 복귀하고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면 정형외과를 선택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치료를 꾸준히 하고 관리가 잘 되면 금방 좋아지는 모습이 보이곤 하지요. 그래서 환자들에게 꼭 들었음 하는 얘기가 ‘좋아졌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언젠가 83세의 고령 환자가 아들과 함께 그를 찾아왔다. “할머니께서 다리가 너무 아프시다 하여 자제분이 꼭 수술을 해달라며 부탁을 했습니다. 할머니 연세가 많은 탓에, 수술 후 합병증이 올 수도 있고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수술이었습니다만 성공적으로 인공관절수술을 마쳤습니다. 그 자제분도 불편한 곳이 있으면 가끔 병원에 들르곤 하는데, 그때마다 할머니 생각이 나서 안부를 꼭 여쭙는데요. 수술 후 할머니가 이제는 다리가 전혀 안 아프다며 수술한 것을 너무나 좋아하신다는 말을 들을 때면 참 보람되고 기쁩니다.” 하얀 의사 가운이 꼭 맞는 옷처럼 잘 어울려보였던 양 원장은 “건강에 기본을 항상 거듭 강조하고 있다며, 환자에게 최대한 말을 많이 해주자”고 늘 다짐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건강수칙도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에 잊혀진 걸 각인시켜주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환자를 마주할 때마다 일깨워준다는 것. 환자 이야기에 여념이 없었던 양 원장의 모습에 함박웃음꽃이 피는 것을 보니 천생 의사다 싶었다. 남을 돕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 물씬 느껴졌던 양 원장은 재능기부로써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대전광역시 야구연합회 의무부회장을 맡게 된 그는 일반인 야구인들을 위해 스포츠 손상 치료에 아낌없는 조언으로 도움을 준다. 환자와 지역민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여준 지역주치의 양 원장이 의사 면허를 딴 후 처음 맡은 역은 공주교도소 의무관이었다고 한다. 당시의 1년은, 편하고 쾌락적인 것에 빠져 사는 마약 중독자들, 재소자들을 보며 ‘가정환경이,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 ‘왜 마약하면 안되는지’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고. 어려서부터 소년원을 들락날락 할 수밖에 없었던 재소자들의 뒷 배경에는 여지없이 ‘가족의 붕괴’라는 어두운 사연이 따라 다녔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가족의 소중함’을 깊이 느꼈다고 한다. 또한 대전지부 ‘생명의 전화’ 이사직을 맡고 있기도 한 양 원장은 “세계 제일의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사회가 행복의 보금자리로 바뀔 수 있기를 소망한다”며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했다. 한국 생명의전화는 전국 16개의 지역에 센터가 있으며 ‘자살예방콜센터’가 24시간 운영, 사회봉사를 통해 고통에 처한 사람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어주고 있다. “은혜를 입은 만큼 베푸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한편 노은정형외과가 대한민국 대표 관절 전문병원이자 대전광역시 명의병원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에는 양 원장 주변의 ‘좋은 사람들’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준 ‘가족’이 있었고, 그의 뜻을 잘 헤아려주는 ‘직원’이 있었으며, 그를 전적으로 신뢰해준 ‘환자’들이 있었다. 자상하고 부드러운 가장이기도 한 양 원장은 그 특별한 가족애를 들려주었다.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아내를 만나 결혼한 것입니다. 사랑하고 항상 제 곁에 있어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일에 믿음으로 격려해주어 고맙고, 감성적인 저에게 때로는 이성적인 조언을 해주며 현명한 길로 안내해주는 아내가 참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역민들의 건강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아온 그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물었다. “대한민국 의료는 치료 중심에 있지 않습니까? 예방 중심의 교육을 활성화하여 환자분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사회적으로, 의료계에서도 관심을 갖고 예방 교육의 중요성에 보다 무게를 실어주었으면 좋겠어요.” 걷는 습관, 앉아있는 습관 등 기본적인 것들을 알려주고 싶고 척추측만증과 같은 전문적인 부분에 학생 건강검진을 실시하는 등 건강을 위한 예방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싶단다. 그는 베푸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어려운 분들을 위해 좀 더 봉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가난하고 형편이 어려운 분들이 더 아플 수밖에 없거든요. 이러한 분들 덕분에 병원이 유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도움을 받은 만큼 그분들에게 넉넉히 되돌려주고 싶습니다.” 인터뷰 시간 내내 훈훈한 인간미를 매력적으로 보여주었던 양동현 원장. 그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오랫동안 지역민들에게 얻어온 ‘신뢰’는 환자 한 명 한 명을 소중하게 대했던 그의 ‘진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사람들을 이야기할 때면 촉촉하게 깊어졌던 그의 눈망울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 Profile[진료과목]정형외과/재활의학과/신경외과 외 [전문분야]관절경, 십자인대 재건술, 스포츠손상, 어깨관절 인공관절, 재활의 [약력]충남의대졸업 (1999.2) 공주교도소 의무관 (1999.4~2000.3)공주시 반포보건지소장 (2000.4~2002.4)을지대학병원 정형외과 전공의 (2002.5~2007.2)을지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 (2007.3~2008.2) 現 노은정형외과 원장대한정형외과학회 회원대한슬관절학회 회원대한견주관절학회 회원대한관절경학회 회원대한정형외과스포츠의학회 회원대한정형외과 초음파학회 회원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3-01-22
  • [위클리피플 특집 인터뷰] 대한민국 소통의 열쇠는 인문학, 한국철학회 김혜숙 학회장을 만나다!
    [위클리피플=오미경 기자, 이준영 기자] "인문학의 힘은 자기 성찰" 창립 60주년 맞은 한국철학회, 대립을 넘어 소통을 끌어내다! 김혜숙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교수 / 한국철학회 학회장 / 한국인문학연합회 초대대표 이른 바 ‘인문학 열풍’이라고도 불리며 철학, 역사, 문학 등에 관련된 각종 인문학 서적과 인문학 강의가 홍수처럼 밀려나오고 있는 가운데, 지난 한 해 인문학을 통해 우리 사회 곳곳의 경직된 분위기가 잠시 ‘힐링 타임’을 가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해가 밝았지만 여전히 경제 위기와 취업난이란 말이 새로울 것도 없는 현실에서 2013년에도 인문학 열풍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주간인물>은 올해 창립 60주년을 맡은 한국철학회 김혜숙 회장을 만나 한국철학회의 60년을 돌아보고, 인문학이 나아가야 할 길과 과도한 비교 경쟁 사회 속에서 이념과 정치의 갈등을 넘어 새로운 시대로 향할 대한민국을 그려보았다. 취재_ 오미경 기자/ 글_ 이준영 기자 최초의 여성 학회장, 한국철학회의 명맥을 잇다 한국철학회는 60년 동안 꾸준히 한국 철학을 위해 힘써온 전통 있는 학회로 1953년 6.25전후의 척박한 지적 환경 속에서 만들어졌다. 한국철학회 회장인 이화여대 철학과 김혜숙 교수는 “전후의 우리나라 사정을 비추어 볼 때 이는 굉장히 놀라운 일”이라며 “지적풍토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기에 가능했다. 자긍심을 가져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동양과 서양 철학의 조화를 모색하고 한국철학의 방향성을 끊임없이 고민, 해방 후 한국 철학계를 이끌었던 박종홍 전 서울대 교수를 대표적인 선학으로 꼽으며 “한국철학회의 지금을 있게 한 선학들의 치열한 열정과 정신을 본받아 그 명맥을 이어가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한국철학회는 2008년 전 세계 150여 개국 3,000여명의 철학자들이 참여한 세계철학대회를 서울에서 개최, 성황리에 마친바 있다. 한국철학회의 60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철학자인 김혜숙 교수가 학회장에 취임하면서 안팎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사실 동서양 철학의 수많은 텍스트들 속에서 여성 비하적 글들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철학이 여성친화적인 학문은 아닌데다 유교문화인 한국에서는 더욱 그러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여성이 역사적·사회적으로 많은 차별을 받아왔기 때문에 여성 철학자로서 한국 철학계를 대표하는 자리에 섰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전하며 자신을 비롯한 많은 여성철학자들의 노력이 사상 최초의 한국철학회 여성 학회장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말했다. 철학계 내에서 여성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많은 활약을 한 김혜숙 교수는 1997년 정식 출범한 아시아 최초의 여성철학회인 한국여성철학회 4대 회장을 역임, 2008년에는 세계여성철학자대회를 유치했다. 인문학의 힘은 자기성찰, 마음의 여유 필요해... 김혜숙 교수는 “우리나라가 6.25 전후의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말 그대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 하는 데에 집중했고, 그 결과로 괄목한 경제성장을 이룬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에만 집중하다보니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는 부분을 간과하게 된 것”이라고 인문학 열풍의 원인을 진단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기성세대들이 꿈꾸던 이상과 다른 현실에 부딪히면서 오는 허무, 불안, 우울함이 현대인의 정신적 질병으로 나타나거나, 그들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아가기도 하고 있어요. 이러한 세태가 사람들에게 지적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죠. 종교나 친목 모임도 어느 정도 정신적 치유의 역할을 해주는 부분이 있지만, 한계가 있다 보니 지적인 허기가 남게 됩니다. 인문학은 바로 그런 지적허기를 채워줄 수 있는 가장 기초 학문이기에 사람들이 각종 인문학 강좌와 서적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김혜숙 교수는 인문학의 힘은 자기성찰에 있다고 거듭 강조하며 요즘 종종 일어나는 자살사건들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삶에서 한발 물러서서 자신을 돌아보면 분명 다른 길이 보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반성적 사고를 하는 훈련을 받지 못한 것 같아요. 경쟁적으로 자기 삶을 타인과 비교하려 하지 말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해요. 이것은 다양한 인간상황에 대한 이해를 가져다주는 인문학을 통해 가능할 것입니다.” 이에 덧붙여 김 교수는 우주의 시선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보면 우리는 그저 찰나의 시간을 사는 존재이고, 하루하루 살아있음 자체가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라며 현재 내 앞에 닥친 문제에만 집중하지 말고 긴 시간의 관점에서 삶을 살아갈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아무 문제도 없는 대단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저도 살면서 여러 가지 문제를 두고 끊임없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을 통해 다양한 인간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로부터 인문학 열풍의 이면에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온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인문학 인력의 수요에 비해 공급이 과다하게 많은 측면이 있습니다. 지방대학교 육성을 위해 인문학 박사학위가 허용되면서 인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반면에 인문학 박사들이 설 자리는 그만큼 줄어든 것이 사실이거든요. 또 인문 정책을 기획·평가하는 제대로 된 기관이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체계적·계획적으로 인문학 정책 사업을 총괄할 기구가 필요합니다.” 인문학 전공자들의 취업에 관련된 사항도 인문학 위기론의 한 부분이다. 김혜숙 교수는 인문학부 전공자들의 취업에 긍정적인 견해를 내비췄다. 취업난은 인문학 전공자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모든 젊은이들의 문제라는 것이다. 오히려 인문학 전공자들이 다양한 방향으로 융통성 있게 취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 대기업에서 인문학 전공자들이 많은 활약을 하면서 인문학 전공자에 대한 편견이 깨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뾰족하게 높기만 한 탑은 쓰러지기 쉬우나 기초가 튼튼한 탑은 잘 쓰러지지 않습니다.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 기초가 튼튼한 탑과 같아요.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은 인문학 전공자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인문학 전공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더욱 다양한 방향으로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교육은 답이 아니라 질문을 주는 것 한국 철학계의 명사로 이름 높은 김 교수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그녀는 인문학에 대한 욕망을 키우고 성인이 되어 직업을 선택하기까지 꿈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할 수 없었다며 짙은 아쉬움을 담아 이야기 했다. “당시 아무도 무엇을 원하는지, 꿈이 무엇인지 질문해 주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런 것이 암묵적으로 금기시된 사회였던 것 같아요. 주변의 분위기에 쓸려 공부하고 직장에 들어가며 살아갔던 거죠.” 김 교수는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당시와 현재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지, 꿈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사회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학생들에게 항상 ‘마음속에 하나의 물음만 가지고 학기를 마친다면 성공한 것’ 이라고 이야기 한다”며 교육자의 역할은 학생들에게 알고자하는 욕망을 가지게 하는 것이고,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물음을 던질 수 있게 하는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학부모의 자녀 교육에 대해서는 ‘아이들을 기다려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가치관이 형성되기 이전에 이미 자신의 가치관을 아이에게 부여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아이들이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당장 성적이 나오지 않더라도 자녀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실패하고, 못나고, 어설픈 아이라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믿어주는 부모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세계 속에 한국철학 알리는 소스북 작업 착수 한국철학회는 올 한해 중요한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한국의 철학 사상을 외국에 소개하는 영문 철학 자료집 제작이 그것이다. 김혜숙 교수는 “외국인 교수들이 해외 대학 강의에서 한국 문화에 대해 가르칠 때 심층적으로 접근할 만한 영어 자료집이 없는 실정”이라면서 1963년 영국의 프린스턴 대학에서 중국 철학 소스북으로 편찬한 것이 동양철학 소스북의 전부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2012년에 일본에서 일본 철학 소스북을 출간하면서 한국 철학만의 특징을 다룰 소스북이 꼭 필요 하겠다는 위기의식이 강해졌고, 1960년대까지의 한국사상을 총 정리한 한국 철학 소스북 편찬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또한 “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 2세들은 가치관의 갈등을 겪으면서 결국에 자신의 뿌리를 알고자 하는 부분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 부분을 충족시켜줄 한국학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제대로 된 한국을 배우지 못하고 있다” 며 한국학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김 교수는 이화여대 인문과학대학이 주관하고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하는 <통일을 바라보는 인문학>이라는 시민인문강좌가 진행 중 이라고 소개하며 이것이 새터민들에게 한국의 역사와 철학, 문학과 글쓰기 등의 강의를 제공하여 남한의 문화에 적응 할 수 있도록 도울 뿐 아니라, 북한과 북한문화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한국인들이 새터민과 소통할 수 있는 매뉴얼이 되어 크게는 미래 통일 한국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리라 기대했다. 2012년 9월에 시작하여 일반인과 청소년 대상의 강좌로 나누어 각각의 특성에 맞게 진행되고 있는 이번 강좌는 올해 8월까지 1년간 진행되는 사업이다. 김혜숙 교수는 한국철학회 학회장으로서의 임기가 끝나도 꾸준히 한국 철학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우리나라는 정치적·이념적으로 심하게 양분되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철학자들이 시민적 합리성을 확보하고 개인의 자기 정체성을 함양하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또한 현재의 진보·보수에 대한 대립을 완화하는 데도 철학자들이 노력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인문학의 발전 속에서 대립보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서로 소통하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하며 <주간인물>이 한국철학회와 김혜숙 교수의 활약을 힘차게 응원한다. ◆profile학력사항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B.A.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철학전공) M.A.The University of Chicago 철학과 대학원 Ph.D. 경력사항전) Fulbright 교환교수(시카고 로욜라 대학)전) 이화여자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원장전) 스크랜튼대학 학장전)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연구위원 역임전) 한국분석철학회 회장 역임전) 한국여성철학회 회장 역임 현) 이화여재대학교 철학과 교수현) 한국철학회 회장현) 한국인문학총연합회 대표회장현) 한국연구재단 정책자문위원현) 『지식의 지평』 (학술협의회) 편집위원 연구분야철학 방법론/인식론 저서 『포스트모더니즘과 철학』 (편저, 1995) 『여성과 철학』 (공저, 1999), 『예술과 사상』 (공저, 2007), 『칸트: 경계의 철학, 철학의 경계』 (2011)역서 『예술의 언어들』(공역, 2002)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3-01-16
  • [위클리피플 신년 특집 인터뷰] 국내 최초 중소기업경영학과 신설로 전문 인재 육성 나선 김만균 교수, 대한민국 희망경제를 말하다!
    [위클리피플=오미경 기자] 중소기업의 미래가 대한민국의 희망을 만듭니다! 국내 최초 중소기업경영학과 신설로 전문 인재육성에 나서다 김만균 경기과학기술대학교 중소기업경영학과 교수 변화와 갈등의 물결 속에 한 해가 저물고 2013년이 밝았다. 그만큼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와 국가 경제 활력을 바라는 국민의 관심도 어느 때보다 크다. 이에 <주간인물>에서는 국가 경제 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도하는 신지식인 명사를 만나 ‘2013년 희망경제 대한민국’을 그려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풍부한 기업경영 진단 노하우로 시대의 변화를 읽고, 지역사회와 강단에서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남다른 열정을 펼치고 있는 경기과학기술대학교 중소기업경영학과 김만균 교수, 그가 안내하는 대한민국의 희망으로 가는 길을 따라가 보자. 국내 최초의 중소기업 맞춤형 전문 인재육성 학과 종강을 했지만 남은 학사처리 일과로 바쁜 김만균 교수는 인터뷰를 위해 취재진이 사전에 보낸 질문 리스트에 꼼꼼하게 답변을 달아 두툼한 서면을 준비했을 만큼 성실하고 철저한 인품이 먼저 눈에 띄는 인물이었다. 그가 소속된 경기과학기술대학교 중소기업경영학과는 경제성장 및 산업패러다임의 다양한 변화와 이론실무를 겸비한 전문 인재 육성이라는 대학 설립의 목적에 발맞춰 2009년 한영수 초대총장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신설된 국내 최초의 중소기업경영학과이다. 김 교수는 “이제 우리 기업들의 경영 패러다임도 과거와는 달라져야 합니다. 과거에는 방향이 명확한 상태에서 누가 빨리 실행하느냐에 기업경영의 초점을 맞추었지만, 지금은 누가 남들보다 빠르게, 다르게 생각하고 방향을 설정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업 경영의 초점이 ‘실행’에서 ‘창조’의 패러다임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변화에 신속하게 부응하기 위하여 중소기업경영과를 신설하게 된 것입니다.” 약 8,000 여개의 중소기업이 밀집된 한국 산업단지 공단에 위치한 대학의 지리적 이점을 토대로 세분화된 커리큘럼, 현장 중심의 실무 수업 편성, 10년 이상의 경영 실무자로 구성된 교수진의 실력 등이 더해지며 기업 맞춤형 교육 과정과 학업 특성화를 이룬 이 학과는 2012년 수도권 45개 대학 중 최초로 유일하게 세계적 수준의 전문대학(WCC)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을 뿐 아니라, 1회 졸업생을 배출한 2012년도 학과 취업률이 81.6%로 상위권을 유지하며 명품학과로서 안정적인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게다가 인근 산업체 계속 교육을 위한 산업체 재직자 특별반과 전공심화과정을 인가 받아 전문학사과정과 전공심화과정 학급을 개설하게 됨으로써 이 지역 경제의 기반이 되는 전문 인력 양성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기업경영진단 전문가, 강단에 서다 경기과기대의 전 교명인 경기공업대학 시절 품질경영과에 부임한 김 교수는 품질이 기업 성장의 중요한 요건이었던 과거와 달리 포괄적인 기업경쟁력이 요구되는 기업 경영 패러다임의 변화를 먼저 읽고, 부임 1년 만인 2001년에 품질경영학과를 산업경영시스템학과로, 다시 산업경영과로 변경했다. 그리고 2009년 중소기업경영학과로 신설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학과는 물론, 지역 중소기업의 발전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김 교수가 쉽지 만은 않은 변화의 뜻을 관철 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학에 오기 전, 13년 6개월간 근무했던 대우그룹에서의 경험이 큰 몫을 했다. 당시 계열사 및 협력사들의 경영 전반에 대한 진단 업무를 했던 그는 수많은 국내 기업의 경영실태를 접하며 경영의 중요성과 중소기업의 경영마인드 부족으로 인한 경쟁력 상실이 국가적 손실까지도 일으킬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졌고, 그룹 총수가 보여준 중소기업과의 상생과 동반 성장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아 경영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김 교수는 학생들에게 전문 경영인으로서의 실력 못지않게 정직과 성실성을 갖춘 인격체의 완성이 중요함을 가르쳤다. 또 그는 “내성적이었던 자신도 스스로 다양한 자발적 노력을 통해 꿈을 향한 열정을 만들어 냈다”며 젊은이들의 무한한 자기 성장의 가능성을 거듭 강조했다. 학교 밖으로도 많은 활약을 보인 김 교수는 지난 12월, 학과 설립 3주년을 기념하는 ‘중소기업 경영인의 날’ 행사를 추진하며 인근 중소기업들과의 상생 기회를 만든데 이어 앞으로 인재 양성 외에도 중소기업들의 경영 능력과 전문성, 창의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학과 차원의 지속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대기업 선호현상, 다각도로 해결 노력 필요해 취업시장에서의 대기업 선호 현상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교육현장에서 느끼는 그 심각성은 더하다고 설명하는 김 교수는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이 무조건적으로 평가 절하되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구직자를 비롯한 사회·국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목소릴 높였다. “현재의 제도적 장치는 한계가 있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실질적인 상생 경영을 위해 중소기업이 튼튼하게 경영할 수 있는 환경 즉, 기술적 지원보다 중소기업 고용안정기금, 사업장 근로 환경 개선 등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고, 정부는 유망 중소기업 발굴 육성을 위해 체계적이고 특화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해요.”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 구직자 스스로도 실속 있는 구직 활동을 하길 바란다며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되라’는 말과 같이 사고에 대한 발상의 전환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파도 녹일 정도의 열정적인 인터뷰를 이어가던 김만균 교수는 ‘희망’이란 단어에 생기를 불어넣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희망이란 뭇 짐승과 사람의 걸음이 쌓이고 채여 제 모습을 갖춘 길이 되듯이 여럿의 뜻이 하나로 모아질 때 나타나는 것이죠. 중소기업의 미래가 국가 경제의 미래입니다. 그 미래에 희망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허물을 벗고 태어나는 혁신의 상징인 뱀의 해, 2013년은 그의 바람처럼 “중소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모두의 뜻이 한데 모아져 대한민국이 새로운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길 간절히 기원한다. profile.◆ 학력사항 1980년 2월 유신고등학교 졸업 1986년 8월 프랑스 낭뜨대학교 ENSM 교환학생 1학기 유학 1987년 2월 아주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공학과 졸업(공학 학사) 1992년 2월 한양대학교 대학원 산업공학과 졸업(공학 석사 취득) 1998년 2월 아주대학교 대학원 공학 박사학위 취득(산업공학 전공) ◆ 경력사항 1988년 12월 1995년 02월 대우그룹 고등기술연구원 기획실 근무 1995년 03월 2000년 05월 대우그룹 회장비서실(구 기획조정실) 경영진단팀 근무 2000년 06월 현재 경기과학기술대학교 중소기업경영과 교수 ◆ 대외활동 2003년 1월 1일 한국직업능력개발원, e-Training 심사위원 위촉 2007년 1월 2일 대한설비관리학회 제6-7대 기획이사 위촉 2010년 1월 2일 대한설비관리학회 제8대 기획/총무이사 위촉 2010년 7월 20일 사단법인 U-경기포럼 보건정책정보위원회 이사 위촉 ◆ 수상경력 2007년 02월 09일 : 표창장, 대통령직속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위원장 염홍철 2007년 05월 22일 : 공로상, 한국경제신문사 사장 신상민 2007년 12월 06일 : 공로상, 사단법인 한국피엘협회 회장 정수웅 2008년 01월 25일 : 표창장, 중소기업청장 이현재 2008년 01월 31일 : 표창장, 국회의원 조정식 2008년 02월 21일 : 표창장, 대통령직속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위원장 노준영 2009년 09월 24일 : 표창장, 대한설비관리학회 회장 송태영 2010년 01월 08일 : 표창장, 경기도지사 김문수 2010년 01월 29일 : 표창장, 경기신용보증재단 이사장 박해진 2011년 09월 30일 : 표창장, 국회의원 이찬열 2011년 11월 25일 : 표창장,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송종호 2012년 12월 07일 : 표창장,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원장 윤도근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3-01-11
  • [하이큐 검진네트워크 홍광일 대표원장 인터뷰] 지역 내 의료기관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걸음!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지역 내 의료기관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걸음‘하이큐 검진네트워크’의 홍광일 원장을 만나다!홍광일 하이큐홍내과 원장 | 하이큐 검진네트워크 대표원장 대형 병원이나 종합병원에 비해 의원급 의료기관은 대기시간이 적으면서도 검진 비용이 저렴하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음에도 의원급 의료기관은 장비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러한 생각을 깨고, 의원급 의료기관의 상향평준화를 위해 2009년 5월, 실력과 인심으로 각 지역에서 신뢰를 얻은 6개의 내과병원들이 모여 표준화된 검진의료서비스를 구축한 ‘하이큐 검진네트워크’가 출범했다. 2013년 현재 10개의 병원과 1개의 중앙검진센터가 가입되어 있는 ‘하이큐 검진네트워크’의 홍광일 대표원장을 <주간인물 특집 신지식인 명의(名醫)>로 선정,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취재 이선진 기자 / 글 유광석 기자 20년간 지역과 소통해온 ‘내과’ 명의 ‘하이큐 검진네트워크’의 중심 지점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홍내과’의 병원 내부는 우리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병원이었다. 공휴일 다음날이라 진료해야할 환자가 많아 분주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돌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92년도에 이곳 인천에서 개원을 했으니 벌써 개원 한지도 20년이 넘었네요.” 개원보다는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고 말하지만 한 지역에서 별 탈 없이 꾸준히 지내왔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을 보면 천생 의사의 기질이 그를 개원으로 이끈 것으로 보인다. 그가 병원장으로 있는 ‘하이큐홍내과’는 수면 위 내시경검사 및 수면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할 수 있는 ‘소화기질환’ 진료와 고혈압·당뇨·동맥경화 등의 진단을 할 수 있는 ‘심혈관질환’ 진료, 갑상선 미세침 흡입조직검사·중추골 검사 등의 ‘내분비질환’ 진료, 폐기능 검사 등을 할 수 있는 ‘호흡기질환’ 진료를 특화시켜 전문적으로 진료하고 있다. 특히 미세한 주사바늘을 통해 갑상선암을 진단하는 ‘갑상선 미세침 흡입세포검사’는 누구보다도 자신 있다고 자평하며, 국내와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정보공유 및 경영지원을 위한 ‘네트워크’ 구축 그의 이야기를 하기에 ‘하이큐 검진네트워크’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하이큐 검진네트워크는 현재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있는 내과 병원들이 모여 검진 서비스를 표준화함으로써, 회원병원 내 어떤 병원에서 검진을 받아도 검사와 치료의 일관성 및 지속성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다. “네트워크화를 통해 검진 데이터가 회원 병원 사이에서 공유됩니다. 환자가 여러 병원에서 동일한 중복 검진을 피할 수 있다는 것과 정보 공유를 통한 선순환이 장점이죠.” 현재 인천시 서구 홍내과와 연희내과, 계양구 송석호내과, 부평구 부평내과, 남동구 우리내과와 서창내과, 남구 행복한내과와 김동수내과, 남동구 인천상쾌한속내과, 제주 상쾌한속내과 및 부평구 중앙검진센터로 10개 의원과 1개 검진센터가 하이큐 검진네트워크의 구성원이며 이들 내과는 모두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지정한 건강검진기관이다. 이 네트워크의 시작은 사람들의 인식 변화와 스스로의 수준을 높이자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의원급 의료 기관에서도 충분히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음에도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에 대형병원에 비해 시설 혹은 검진의 질에 대한 부분에 의문을 갖는 분들이 많습니다”며 “그래서 네트워크를 구성할 때 이 점을 염두에 두고 규모가 있는 병원을 선정해서 우리 스스로 수준을 높여보자, 서로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보자 하는 취지에서 만들었죠.” 각 병원들의 경제적인 부분을 아껴보자는 것도 한 몫을 했다. 공동의 마케팅을 통해 홍보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공동의 마케팅 등을 통해 병원을 경영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그 비용을 통해 장비 구입 등 좀 더 좋은 서비스를 환자분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환자의 진료를 위해 실력을 중요시한다. “진료와 치료를 위한 장비들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실력도 중요하지요. 학계의 동향이나 트렌드 등을 회원 병원장들이 모여 워크숍을 하고 있습니다. 시대에 맞게 변화해야지 뒤처지면 안 되니까요.” ‘하이큐 검진네트워크’는 인천에서 뿐만이 아니라, 국내외 의료소외계층을 위한 의료봉사 활동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2010년에는 사단법인 ‘지구촌보건복지’와 함께 국내 및 해외 환자들을 위한 의료봉사 및 초청진료를 위한 업무제휴협약서(MOU)를 체결했으며, 하이큐 검진네트워크의 의료진들이 몽골을 방문, 의료장비 기증 및 의료봉사를 하며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기도 했다. 대한양궁협회에도 공식후원을 하며 선수들의 진료를 돕고 있다. 홍광일 원장이 가지고 있는 ‘애정’ “저는 진료시간이 긴 편입니다. 환자에 대한 진료도 하지만 상담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죠. 기다리시는 분들이 오래 기다린다고 성화를 낼 때도 있지만 진료를 받고, 상담을 받고 나서는 다들 만족하시며 나가십니다.” 홍광일 원장은 개원 초기에 자신이 실수할까, 미처 진료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까 두려웠다고 한다. “제가 실수를 하고, 그것에 대해 사고가 나지 않을까 두려웠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두려움은 사라졌습니다. 단순히 진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관심을 가지다보니 애정이 생기더군요. 애정을 가지고 진료를 꼼꼼히 하니 지역 내에서도 계속 찾아주시고 좋은 일이 쌓이니까 신뢰를 받은 것 같습니다.” 2013년 새해부터 그는 더욱 더 바빠진다. “저희가 지금 하고 있는 네트워크를 확장시키려 합니다. 개인병원이 가장 어려운 것은 경영이에요. 저희가 하고 있는 병영경영지원(MSO)를 더 확장해 개인병원들이 여유를 가지게 하고 싶습니다. 또 인천지역을 기반으로 센터 병원을 전국적 규모로 확장하려 하고 있습니다. 특히 2014년에 아시안게임이 열리는데 병원의 확장, 저희 네트워크의 확장을 통해 지역에서도 역할을 다하고 싶습니다.” 홍광일 원장은 건강에 대해 무엇보다도 검진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검진비가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돈을 아끼다 큰 병이 들면 더 큰 돈을 지불합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은 필수적이며 조기검진은 매우 중요합니다.” profile내과전문의소화기내시경 전문의대한노인의학회 인정의 심초음파학회회원한림의대 한강성심병원 외래교수인하대병원 외래교수가천의대 길병원 외래교수인천시 개원내과의사회 임원(부회장)위장내시경학회 상임이사인천지방법원 조정위원 하이큐 검진네트워크 대표원장 하이큐홍내과 원장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3-01-03
  • [위클리피플 신년 특집 인터뷰] 세계 최초로 아교세포의 신호전달 물질 분비 기능 밝혀낸 젊은 여성 과학자
    [위클리피플=오미경 기자] 열정과 의지로 신경과학계의 미래를 짊어지다! 세계 최초로 아교세포의 신호전달 물질 분비 기능 밝혀낸 젊은 여성 과학자 윤보은 단국대학교 나노바이오의과학과 교수 그녀의 첫 인상은 생각보다 더 어려 보였다. 교수님으로서 강단에 서는 모습이 선뜻 상상되지 않을 정도로 귀엽고 앳된 여대생 느낌마저 풍겼다. 그러나 첫 인상은 첫 인상일 뿐, 인터뷰 내내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짚으며 후학양성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서 예사롭지 않은 젊은 학자의 열정이 묻어났다. 그리고 그녀는 꿈과 멀어지는 요즘 학생들의 현실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는 ‘꿈꾸는 교육자’였다. 주인공은 바로 세계적인 과학저널에 이름을 올리며 만 29세의 나이로 대학 교수에 임용 된 단국대학교 나노바이오의과학과 윤보은 교수. 촉망받는 젊은 여성 과학자 윤보은 교수의 삶과 꿈을 꺼내보는 시간에 주간인물이 동행했다. 취재_이선진 기자/ 글_오미경 기자 뛰어난 연구 성과로 교수직에 오르기까지 “생명과학 및 치·의·약학 분야에 나노바이오물질 소재 기술, 유기화학 및 고분자화학기술, 정보과학기술 등을 접목시킨 융합생명과학분야로 현대의 의생명과학기술 발전에 중요한 역할이 기대되는 첨단 학문분야가 나노바이오의과학입니다.” 막 종강을 한 여유로운 캠퍼스연구실에서 만난 윤보은 교수는 2009년에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에 신설된 나노바이오의과학과를 소개할 수 있어 기쁘기도 하다며 인터뷰 소감을 밝혔다. 윤 교수가 이 학교 신설학과에 둥지를 틀게 된 것은 4년제 종합대학으로서 다양한 학문의 발전과 함께 캠퍼스별 특성화 교육에 주력하고자 하는 단국대학 측의 목표에 따라 의생명과학 분야에 우수한 연구 성과를 보인 교수들을 임용한 것이 맞물리면서 실현됐다. 윤 교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인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재학 시절, 신경세포인 뉴런만이 신호전달 물질을 전달한다는 기존의 학계 이론을 뒤엎고, 비신경세포인 아교 세포가 뉴런의 서포트 역할을 넘어 신호전달 물질 분비라는 능동적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논문으로 세계 3대 과학 저널 중 하나인 사이언스에 1저자로 이름을 올리며 화제를 모았다. 수적으로 신경세포보다 훨씬 많은 비신경세포의 기능적 한계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한 이 연구 논문은 아교세포에서 분비되는 신호전달 물질이 음이온 채널로 분비된다는 사실과 신경비신경세포의 억제성흥분성 상호 작용 및 비신경세포를 통한 흥분억제 기전을 세계 최초로 입증 했고, 우울증과 불면증, 운동성 소실 등 신경성 질환 치료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연구 논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향후 신경과학계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키리란 평가도 받았다. 이후 다양한 연구와 논문을 통해 과학 열정을 펼친 윤 교수는 학계에서도 10년~20년 된 연구 대가들만이 한다는 리뷰논문을 쓰는 기회까지 얻으며 실력을 인정받아 UST 졸업과 동시에 2012년 가을, 만 29세의 나이로 단국대 나노바이오의과학과에 임용되었다. 그녀는 이러한 결과를 두고 “의지와 열정만 있다면 무엇이든 실험연구가 가능했던 정부출연연구기관의 환경적 장점이 큰 도움이 됐다”고 밝히며, 그 성과를 이어 현재 신경질환 모델 관련 연구도 진행 중이라 말했다. 국내 과학인재 육성의 빛과 그림자 과학 기술력에 있어 양적·질적으로 국제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이지만 이공계 기피 현상, 우수 연구 인력의 해외 유출 문제 등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윤 교수는 정부의 선별적인 연구 지원이 아쉽다고 입을 열었다. 소위 연구 성과가 잘 나오리라 기대되는 사업단과 분야에 예산이 편중되어 지원받지 못하는 다수의 연구실은 열악한 환경에 놓일 수밖에 없고, 이는 전체 과학자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떨어뜨려 이공계 기피현상을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졸업 이후에 취직할 수 있는 정규직이 부족한 현실과 학위를 따기까지 들인 노력 및 투자에 상응하는 수준의 성과 보장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학생들의 인식 이 더해지며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계 뿐 아니라 다수 학생들이 당장의 현실에 맞춰 꿈을 설정하고 포기하는 일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까워요. 대학교육이 취업이나 고시패스가 목적이 아닌 전문지식인 양성이라는 학문적 본질을 되찾고, 정부에서도 대학의 취업률 평가에 소모적인 낭비를 할 게 아니라 각 대학만의 장점을 살려 양질의 특성화 교육을 하도록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무엇보다 폭넓은 연구 지원을 통해 기초과학의 단계적 육성을 독려해 줄 것을 당부했다. 나의 꿈, 나의 멘토 단지 평범하고, 안정된 직장에 대한 꿈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능력과 관심을 살려 전문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윤 교수는 원래 연세대학교에서 전문 의료 직종으로의 진출이 가능한 임상병리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졸업을 앞두고 그녀는 단순한 의료인보다 의·과학 기술 분야에 좀 더 능동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을 하면서 신경과학 분야의 비전을 발견했고, ‘꿈’에 대한 열정 하나로 ‘안정’을 버리고 ‘도전’을 택했다. "KIST에 들어간 이후 실험이 뜻대로 안되거나 다른 친구들이 안정된 길을 가는 것을 보면서 상실감과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석사과정 까지만 하고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때 부모님이 처음으로 저의 결정을 반대하며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주셨어요.” 순탄치 만은 않았던 과정이었지만 윤 교수에겐 가족이란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자녀의 눈높이에 맞추어 존중하되 ‘자율성 속의 관리’란 방식으로 지도했던 부모님의 교육은 그녀에게 자신감과 독립심을 키워주었고, 대학원 결정과 같은 중요한 시기에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인 윤 교수의 삼촌은 지금도 그녀에게 많은 힘이 되어주고 있다. 또한 그녀의 학위 과정 지도교수였던 이창준 교수의 가르침은 연구 성과 뿐 아니라 과학자로서의 인내심과 끈기를 키워준 빼놓을 수 없는 멘토였다. 쉽지 않은 과학자의 길에서 성공적으로 걸음을 떼고, 교육자로서도 무사히 첫 단추를 끼운 윤보은 교수. 그녀의 남은 꿈이 궁금했다. “앞으로 연구자로서 작게는 아교세포 연구를 이어가며 좋은 성과를 내고 싶고, 학과 내 다른 교수님들과 협력하여 신경성질환에 관계된 기전을 밝혀 치료물질이나 약물 개발에서도 결실을 맺고 싶어요. 그리고 교육자로서도 학생들이 현실적인 문제로 꿈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힘닿는 데까지 길잡이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차분하면서도 단호하게 더 많은 연구·교육 활동을 통해 기초과학 발전에 이바지 하고 싶다는 최종 꿈을 밝힌 그녀는 자신이 노력한 만큼 학생들도 받아들인다는 것을 느꼈다며, 이제는 자신이 그들의 멘토가 되고자 했다. <주간인물>은 지금까지의 시간보다 더 길게 남은 그녀의 과학 인생에 조심스레 노벨상 수상이라는 꿈을 하나 더 얹으며 젊은 여성 과학자 윤보은 교수의 다짐을 힘차게 응원한다. profile.<학력 및 경력 사항>연세대학교 임상병리학과 보건학사 과학기술연합대학원 대학교 생체신경과학 석,박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KIST) 박사과정연구원 미국 듀크대학교 신경생리학 방문연구원일본 국립생리학연구소 교환연구원<주요수상내역>2011.10.07 한국 분자세포생물학회 차세대 연구자상 2011.11.09 아시아여성에코사이언스포럼 최우수 발표상 2011.11.09. 한국여성과학기술인총연합회 미래 인재상 <주요논문>1. Channel-mediated Tonic GABA Release from Glia. (Science/2010.11.05.)2. T-type channels control the opioidergic descending analgesia at the low threshold-spiking GABAergic neurons in the periaqueductal gray. (PNAS/ 2010.07.12.)3. The amount of astrocytic GABA positivelycorrelates with the degree of tonic inhibition in hippocampal CA1 and cerebellum.(Molecular Brain/2011.11.22.)4. Astrocytes as GABAergic and GABAceptive cells. (Neurochemical research/ 2012.06.15.)5. TREK-1 and Best1 Channels Mediate Fast and Slow Glutamate Release in Astrocytes upon GPCR Activation. (Cell/2012.09.28)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3-01-02
  • 위클리피플닷컴 올해의 인물 선정, 티켓몬스터 신현성 대표이사 특별 인터뷰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오미경 기자] <신년특집 "올해의 한국인"> 끊임없는 혁신으로 일궈낸 대한민국 희망경제스토리세계를 무대로 비상하는 ‘티켓몬스터’!신현성 티켓몬스터 대표이사 _취재 오미경 기자, 글 이선진 기자 소셜커머스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전자상거래를 가리키는 말로, 일정 수 이상의 구매자가 모일 경우 파격적인 할인가로 상품을 제공하는 판매 방식이다. 제품가격에 높은 할인율이 제공되는 것은 판매업체가 박리다매와 홍보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상품 판매는 광고와 마케팅 의존도가 높지만 소셜커머스는 소비자들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하여 자발적으로 상품을 홍보하면서 구매자를 모으기 때문에 마케팅에 들어가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소셜커머스는 제휴하고 있는 업체들에게 신규 고객을 보내주어 고객이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며 기업의 마케팅 홍보를 효율적으로 도와줍니다. 기존의 유통모델은 큰 제조사 위주로 돌아가는 반면 티켓몬스터 제휴 파트너의 경우 작은 제조사들도 열심히 하는 긍정적인 모습들이 자주 눈에 띕니다. 그동안 숨겨져 있던, 알려지지 않았던 업체나 브랜드들이 알려지고 성장할 때 그 첫 단계가 티몬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뿌듯합니다. 좋은 브랜드를 발굴하고 역량 있게 키우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티몬이 다른 업체보다 훨씬 더 도전적이라 생각합니다.” 티켓몬스터 신현성 대표의 일성이다. 신현성 대표를 포함한 신성윤, 권기현, 김동현, 이지호 氏 이 다섯 명이 한 집에 모여 살며 창업한 벤처 회사인 티켓몬스터는 2010년 5월 10일 서비스를 시작한 후 회원 약 600만명, 사원 약 1,000명(계약직 및 협력사 포함)의 회사로 성장했다.티켓몬스터는 국내에 소셜커머스를 처음으로 등장시킨 주인공이자, 불과 2년 사이에 소셜커머스를 거대한 산업이자 하나의 생활문화로 굳건히 자리매김하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동안의 온라인 쇼핑을 주도했던 오픈마켓과 홈쇼핑의 양분 구조에서 신개념의 트렌드 마케팅인 소셜커머스는 애플리케이션 발달과 함께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티켓몬스터는 올해 모바일 거래액만으로도 1,500억이 넘는 성과를 달성했다. 사업 전반으로도 두 배 이상 커졌다. “티켓몬스터는 모바일 전자상거래의 1, 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경쟁사의 경우 통신사를 기반으로 한 경쟁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티켓몬스터는 다른 기반 없이 자체적인 성장으로 이 같은 성과를 이뤄낸 것은 미래의 시장 가능성을 말해주는 긍정적인 신호라 생각합니다.” 지난 해 9월, 국내 1위 소셜커머스 업체 티켓몬스터는 세계 2위인 미국의 리빙소셜에 인수합병 됐다. 당시의 배경 설명을 하자면 글로벌 기업으로의 성장 발전을 위해 티몬이 투자 유치를 하려던 시점, 여러 투자회사들과 긍정적 검토를 하던 중 리빙소셜이 한국 소셜커머스 시장의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품고 티켓몬스터에 투자 의사를 밝혀온 것이다. 티켓몬스터는 이왕 투자를 받을 거라면 같은 고민, 같은 혁신을 만들려는 팀과 조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투자 건을 구체화 시키면서 일반적인 투자가 아니라 인수합병을 통해 글로벌화한 회사를 만드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에 주주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이들이 꿈꾸는 회사는 구글처럼 글로벌한 기업이었고, 리스크 차원에서 보더라도 어느 한 마켓이 안 될 경우 다른 마켓에서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점, 1세대 벤처에서 일했던 경험의 리빙소셜 구성원들이 뛰어나다는 점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시너지 효과가 기대됐다. 리빙소셜과 인수합병 절차를 최종 마무리한 지난해 9월, 신현성 대표가 “티켓몬스터는 리빙소셜과의 다양한 협력과 대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아시아 신흥시장을 비롯, 전세계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해 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밝힌 바 같이, 티켓몬스터는 전 세계시장을 무대로 더 큰 가능성과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티켓몬스터는 올해 집중적으로 실행한 사업 영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배송 상품 쪽으로 많이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티몬스토어 그중 패션, 육아, 식품 등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종합몰을 뛰어넘는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으며 고객들도 홈쇼핑이나 오픈마켓보다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고객센터 강화, 빠른배송 서비스, 정품 가품 감별을 위한 프로세스, 협력사 선정을 위한 엄정하고 객관적인 판단 등 고객만족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이 같은 노력들을 인정받아 티켓몬스터는 2012 소셜커머스 부문 한국 소비자 신뢰 대상 1위, 2012 한국산업 고객만족도 KCSI 1위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최근에는 업계 최초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주관하는 소비자 중심경영(CCM) 인증 획득에 성공하기도 했다. 올해 티몬은 고객관리 프로그램 ‘티몬플러스’을 출시했는데, 자영업자들을 위해 개발했다는 이 서비스는 시범 시행부터 당시 서비스 안정화와 시범 서비스 업주들의 좋은 반응을 얻어 100일 만에 정식서비스로 전환이 되었다. 티몬플러스는 방문객들의 손쉬운 적립 과정을 통해 소비자의 방문 이력과 지출 패턴, 이탈 현황 등 업주에게 필요한 맞춤형 정보를 확보하기 쉽다. 또 이러한 정보에 대한 분석을 자영업자들에게 주기적으로 지원하여 업주들의 ‘단골’ 확보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이는 전국의 모든 업종에 적용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점과 소비자 입장에서는 실속 있는 혜택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신현성 대표는 이 같은 런칭 서비스가 한국에서 잘 되면 이를 발판으로 세계화될 서비스로 가능해질 것이고 이것이 리빙소셜과의 인수합병으로 얻게 된 비전이라며 자신 있게 말했다. 지난해 정부의 G20 정상회의 개최를 경험한 ‘G20세대’ 대표주자이자 ‘제2의 벤처 붐’의 상징같은 존재인 신현성 대표는 성공한 20대 벤처 기업인이자 청소년들의 롤모델로 꼽히며 기업체 및 학교, 국공기관들로부터 종종 특강을 요청받기도 한다. 그에게 청년들을 위한 조언 한 마디를 부탁했다. “세상은 훨씬 큰데, 다 똑같은 것을 바라본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마찬가지였지만요. 제 전공 학부에서는 모두가 파이낸스만 바라보고 공부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파이낸스에 들어가고 싶어하니 나도 들어가야겠다 라는 심정으로 입사를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는데 막상 인턴을 해보고 선배들한테 물어보니 아무도 행복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내가 창업을 하는 옵션도 있고 창업을 하여 성장하는 회사에서 함께 역량을 키워가며 일할 수 있는 옵션도 있고 다양한 옵션이 있는 건데, 대기업 입사를 꿈꾼다든가 등등 모두가 한곳의 목표만을 바라본다는 점은 안타까운 것 같아요. 청년들에게는, 대기업에 입사해 그 안에서의 같은 목표인 승진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라기보다는 급성장하는 전도 유망한 회사에 들어가 기여하고 그곳에서 임팩트를 만들라고 조언해주고 싶네요.” 누구보다도 도전정신이 강한, 꿈 많은 젊은 청년 신현성 대표가 2013년 계획하는 그림은 무언가 특별할 것 같았다. 그는 크게 재편되는 소셜커머스 안에서 영원한 1위, 부동의 1위, 전자상거래 1위로 자리잡는 게 목표고 계획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해 월 단위 흑자전환은 되었지만 큰 이익은 내지 못했기에 2013년에는 큰 수익을 내는 한 해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내비친 신현성 대표. 그 수익을 바탕으로 직원들을 위한 투자나 공격적인 혁신의 발판을 삼는 등 다각도로 더 멋진 티몬으로 도약하기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겠단다. “급성장한 소셜커머스 시장을 바라보는 비전이나 전망도 크지만 서비스 불만에 대한 문제들이 기사화 되면서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라는 기자의 말에 “일말의 부풀려진 기사라 할지라도 자그마한 사실이 있다면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들을 계속할 것이다. 끊임없는 노력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으로 문제를 적극 풀어나갈 것이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말하는 신현성 대표. 그의 소신 있는 한 마디 한 마디 말에 진정성과 신뢰가 크게 느껴졌다. 그가 가는 길이 소셜커머스 산업의 희망이 되고, 지표가 되길 기대해 본다. 티켓몬스터 신현성 대표이사는 위클리피플닷컴이 2012년 한해를 마감하면서 전문 분야에서 두드러진 공적과 대외적 인지도를 통해 신뢰를 높이 받은 인물들 중 소셜커머스 분야의 국내를 대표하는 올해의 한국인으로 선정되었다. <티켓몬스터 연혁 및 수상 내역>2010년 5월 주식회사 티켓몬스터 설립, 서울 지역 상품 판매 시작 2010년 12월 대한민국 인터넷 대상 후원사상 수상 2011년 1월 ㈜데일리픽 인수 2011년 1월 기술보증기금 벤처기업인증 획득 2011년 5월 디지털조선일보 앱코리아어워드 2011 Best App 30 선정 2011년 5월 말레이시아 Everyday.com.my 인수 2011년 7월 아스트릭스 인수 실시간 위치기반서비스 티몬나우 런칭2011년 8월 글로벌 소셜커머스 업체 리빙소셜과 인수합병 2011년 10월 신개념 패션 브랜드 ‘페르쉐(www.perche.co.kr) 오픈2011년 12월 소비자경제 소비자만족 최고 명품브랜드 대상 2012년 5월 업계 최초 쿠폰자동화시스템 '티몬 클릭' 런칭2012년 9월 업계 최초 고객관리 프로그램 ‘티몬 플러스’ 런칭2012년 10월 한국능률협회컨설팅 주관 한국산업 고객만족도(KCSI) 소셜커머스 부문 1위 수상 <티몬 온라인>티몬 홈페이지 www.tmon.co.kr기업 블로그 blog.ticketmonster.co.kr오감만족 블로그 blog.naver.com/tmonster트위터 twitter.com/tmonkr페이스북 facebook.com/tmonkr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 위클리피플닷컴과 교육연합신문이 기사콘텐츠 제휴에 의해 제공되며 무단배포를 금합니다.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2-12-28
  • 박종필 단월드 대표이사, 위클리피플닷컴 선정 대한민국 글로벌 리더 브랜드대상 수상!
    [위클리피플=오미경 기자] 2012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경직됐던 사회 곳곳에서 ‘힐링’을 화두로 한 목소리가 유난히 높았던 1년을 돌아보며 위클리피플 닷컴이 올 한해 사회공헌과 국가 발전에 남다른 기여를 한 [2012 大韓民國 글로벌 리더 대상]을 선정했다. 한국 고유의 호흡과 명상법으로 한국의 정신을 세계에 알려온 세계적인 명상기업 ㈜단월드 박종필 대표이사를 만났다. 위클리피플 닷컴 선정 2012 대한민국 글로벌 리더 대상-(주)단월드 박종필 대표이사 "휴식도 이젠 경쟁력" 21세기 멘탈헬스 시대를 선도하다 드라마나 K-Pop 등 대중문화 상품이 최근 몇 년 한류 열풍을 이끈 화려한 주역이었다면, 단월드는 지속적인 정신 한류 바람을 일으키며 지난 20여 년 간 세계 속에 한국의 정신문화 전통 심신수련법을 알려온 주인공이다. ■ 세계적인 명상기업 단월드와의 만남 1985년에 설립된 단월드는 한국을 포함한 미국, 일본, 캐나다, 유럽, 러시아 등 8개국에 걸쳐 1,000여개의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관공서나 학교, 기업 등 유·무료 수련장까지 더하면 단월드의 규모는 약 1만 여 개에 이른다. ‘브레인 명상’ 수련과 뇌 교육을 97년 해외 시장에 진출 시킨 뒤, 2003년 ISO9001인증을 획득한 단월드는 2009년에는 미국 워싱턴 DC와 뉴욕시 등 22개 도시에 ‘뇌교육의 날’이 지정되는 성과를 거두며 세계적인 명상 기업으로 새로운 멘탈헬스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 단월드의 박종필 대표는 “대한민국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정신을 바탕으로 한 한국 정통 명상 수련법과 뇌 교육이 정신 한류로서 세계화 된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2012 글로벌 리더 대상’에 선정된 소감을 밝혔다. 박종필 대표가 단월드와 인연을 맺은 것은 갑작스런 그의 건강 문제에서 시작됐다.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전도유망한 인재였던 그는 세상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꾸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으로 국내외 대기업의 경영컨설팅을 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계속된 손 저림 증상과 컨디션 악화로 병원을 찾았던 박 대표는 전신마비가 될 수도 있다는 척수내종양 진단을 받았다. 절망감과 막막함에 삶의 나락으로 내몰리던 그에게 한의사 친구 한 명이 단월드 수련을 추천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하루 6시간 까지 명상과 호흡 수련법에 임할 정도로 열심이었던 박 대표는 6개월 뒤, 다시 찾은 병원에서 기적 같은 완치 진단을 받았다. 생명을 위협하던 종양이 말끔히 사라진 것이다, 이후에도 계속된 명상·호흡 수련으로 건강 뿐 아니라 직무에 대한 능력과 마음가짐의 변화를 느끼며 제2의 인생을 걷게 된 그는 단월드 서울 지역 컨설팅을 하며 발군의 실력을 보였고, 그것을 계기로 대표직 제안을 받았다. 수련 경험으로 직접 느낀 단월드 명상법의 가치를 자부했던 그는 망설임 없이 단월드 대표직을 수락했다. 그는 꾸준한 수련으로 지금도 남들보다 젊은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 새로운 멘탈헬스 시대를 선도하다. 단월드의 기업정신은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이화세계’이다. 설립자인 이승헌 총장(글로벌사이버대학교)의 삶에 대한 근원적 고민과 해답에서 출발한 단월드의 정신은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바라는 꿈이 담겨 있다. 박종필 대표는 우리말에는 깨달음이 담겨 있다고 설명하면서 ‘좋다’는 조화롭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홍익의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고, ‘나쁘다’는 나 뿐 이라는 것으로 나만 아는 이기적인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단월드가 추구하는 정신은 누구나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홍익정신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단월드는 건강 기업을 넘어 궁극적으로 멘탈헬스 시대의 진정한 행복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멘탈헬스는 심신건강을 뜻합니다. 현대인의 모든 질병은 심인성질환으로부터 시작되는데, 건강과 행복은 마음에 달려 있고, 마음이 곧 뇌입니다. 뇌를 잘 활용하는 사람은 건강 뿐 아니라 행복을 만들고 성공하는 삶을 스스로 창조할 수 있죠. 멘탈헬스는 이 모든 것을 위한 새로운 시대의 핵심적인 키(key)입니다.” 단월드는 공원에서부터 시작한 설립자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지난 30년 간 전국 2천여 개의 공원과 관공서, 노인정 등에서 무료 수련지도를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 얼 찾기 국민 운동’에 후원사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 대표는 단월드가 이와 같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데에는 뇌 교육과 멘탈헬스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이승헌 총장의 노력과 영향이 컸다고 밝혔다. “뇌를 잘 활용한다는 것을 삶 속에서 실천으로 보여주고 계시는 분이 바로 이승헌 총장님입니다. 홍익의 철학을 시대에 맞게 전하기 위해 늘 새로운 것을 연구하고, 창조하는 모습을 뵈면 이 시대의 홍익인간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배우게 됩니다.” 단월드 뇌파진동 명상의 효과는 최근 서울대학교병원 및 일본 토호대, 영국 런던대 등 국내외 유수 연구진의 연구 결과로 입증되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뇌파진동 명상은 스트레스 및 우울증 감소, 수면 질 향상에 매우 효과적이며 기억력과 인지력 증진, 치매예방에도 도움이 된다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런 흐름에 맞게 박 대표는 단월드 프로그램에 대한 접근성을 넓히기 위해 온오프라인을 통합하여 무료 수련을 포함한 전 국민적인 멘탈헬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에는 새로운 비즈니스 방식으로 명상 앱 서비스 등 모바일 콘텐츠 서비스를 구체화 하여 대중적인 멘탈헬스의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회 양극화, 학교 폭력, 자살 문제 등 인간성이 상실되고 물질문명이 고도화된 현실을 볼 때, 건강과 행복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과 멘탈헬스가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습니다. 단월드는 이런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뇌 교육 수련법은 뇌를 활용하고, 자신의 가치를 찾기 위한 최고의 방법입니다. 수련을 통해서 모두가 건강 하고 행복해지는 것이 좋은 세상, 홍익세상의 꿈을 실현하는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30여 년간 크고 작은 역경 속에서도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한국의 전통 정신문화를 전하며 세계적인 명상 기업으로 자리매김 한 단월드의 내일이 더욱 기대된다. 아쉬움과 설레임이 교차하는 2012년 끝에서 좋은 세상의 희망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담아 그 꿈을 힘차게 응원한다. 단월드 홈페이지: www.dahnworld.com/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2-12-21
  •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임정빈 교수 특별 인터뷰] 한국 바이오산업의 길에 등불을 밝히다!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오미경 기자] 한국 바이오산업의 길에 등불을 밝혀준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임정빈 교수의 ‘나의 꿈, 나의 인생’임정빈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 아태 국제분자생물네트워크 회장 / 국제분자생물사이버랩 소장 임정빈 교수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수채화를 취미로 그리셨다. 그가 자연을 벗삼아 노는 동안 아버지는 뚝딱 2-3장의 풍경화를 완성하셨고 돌아오는 길에는 근처 원두막에서 수박을 먹으며 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함께 바라보곤 했었다. 한번은 “아버지, 하늘에 별이 몇 개나 있나요?”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840개라는 것이었다. 동쪽에도 서쪽에도, 사방이 빽빽하니 800이고, 가운데 스무스무 하니 840개라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법학을 공부하신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최상의 답이었을 것이다. 은하수에만 해도 1000억 개의 별이 있고 그 거리가 십만 광년이나 되니 아버지의 짐작은 많이 빗나갔지만, 그런 보고 들은 경험들이 어린 시절 그가 우주의 광활함이나 신비함에 관심을 갖게 한 계기가 되었다. 그가 아끼는 물건 중 하나는 ‘지구본’인데, 그 기억은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로부터 지구본 하나를 선물 받았습니다. 지구본에 나와 있는 나라와 도시의 이름을 외우며 나라며, 섬, 호수의 크기 등 비교하며 얻은 지식을 또래 친구들에게 자랑하곤 했지요. 아버지의 지구본은 없어진지 오래고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새 것으로 바뀌었지만, 아버지의 추억과 함께 한 지구본은 지금까지 제 곁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성장하며 자연과학과 생명신비에 호기심을 갖게 된 임 교수는 이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택했다. 그는 교수로서 학자로서 대한민국 생명과학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이뤘는데 Nature, Science, Cell, J. Biol. Chem. 등에 그가 논문 발표를 한 것은 무려 150여편에 이른다. 생화학, 이학박사이자 분자생물학의 세계적인 석학 임정빈 교수. 눈발이 내리치던 날 아침, 어렵사리 시간을 내어준 그를 만나 그의 연구 발자취와 계획, 국내 생명과학 분야의 발전상에 대해 들어보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_취재 오미경 기자, 글 이선진 기자 집념의 연구와 후학 양성으로 국내 생명과학 분야의 발전을 이끌다미국 M. I. T.에서 생화학 박사 학위를 받은 임정빈 교수는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 연구원, 독일 콘스탄츠 대학교 화학과 객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임 교수는 그의 논문들이 오랫동안 다수의 문헌에 인용되며 인류의 학문발전에 큰 공헌을 남긴 세계적인 권위자이다. 그는 서울대학교 유전공학연구소 소장, 서울대학교 생명공학 공동연구원 원장, (사)한국 미생물학회 회장, (사)한국 분자세포생물학회 회장을 맡으며 한국 과학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가 주력으로 했던 대표적인 연구 분야는 테리딘(Pteridine) 화합물 생합성 및 대사 조절작용이었는데, 나비의 날개에서 발견된 테리딘이란 화합물은 1960년대에 와서 중요한 조효소의 기능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조효소의 기능이 바로 테리딘이란 물질에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조효소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은 어떤 것이 있는가’를 연구한 것이 그의 주된 업적이었다. 그는 초파리를 대상으로 많은 연구를 진행했다. 특히 빨간색 눈색깔이 아닌 돌연변이 초파리들을 테리딘의 생합성 경로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활용하였다. 초파리의 여러 눈색깔의 돌연변이 형질이 생화학적 효소학적인 측면에서 왜 이러한 돌연변이가 일어나게 되는지 그에 관여하는 유전자 분석을 연구해온 것이다. 그는 테리딘 전문 국제학술지에 편집장을 8년간 역임하였으며 테리딘에 대한 연구로 1994년에는 한국과학상을 수상하는 등 생명과학 분야에서 큰 획을 그었다. 1997년 그는 과기부에서 크게 시작한 창의적연구사업의 제1회 단장으로 전 세계 훌륭한 석학들이 모인 연구단을 이끌기도 했다. 매년 10억씩 뒷받침되는 연구사업비의 재원으로, 모든 성체 생명현상의 시발점이고 핵심이 되는 수정란과 그 안에 있는 유전자들의 시공간적인 발현조절상태를 연구했다. 특히 초파리의 초기 발생과정에 관여하는 중요한 유전자를 찾아내고 기능을 밝히는 연구에 몰입했다. “휴먼 지놈프로젝트를 통해 인간 DNA에 있는 30억쌍의 염기서열 정보가 알려졌고, 이를 기초로 Postgenomic era가 도래함에 따라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인간 유전자들의 기능을 알아내는 것이 앞으로의 도전과제입니다.” 그는 서울대학교 유전공학연구소 소장을 6년간 지냈다. 서울대 유전공학연구소를 맡으면서 해외 유수의 대학과 교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 그는 동경대학 의과학연구소와 매년 교수, 학생들이 참여하는 심포지움을 개최하기 시작했다. 두 개의 연구소 간 교류로 시작된 것이 지금은 상해, 대만, 교토대에 있는 6개의 institute로 확장, 매년 개최하며 서로간에 연구, 발표하는 연례행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94년부터 시작된 것이 올해로 벌써 19회를 맞는다 한다.1997년부터는 아시아태평양지역 분자생물학네트워크(A-IMBN) 창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2004년 방콕회의 때 회장으로 선출된 임 교수는 지금도 활발한 활동 중에 있다. 유럽의 엠보(EMBO)를 모델로 아태지역의 분자생물학·생명공학 진흥을 목적으로 설립된 A-IMBN은 이 지역 16개 참여국에서 대표적인 연구소들이 참여하여 전 세계 과학자들이 함께 컨퍼런스를 여는 연례행사로 시행되고 있다. 1998년 제 1회 A-IMBN Conference가 서울에서 열린 이래, 각종 심포지움, 워크샵, 첨단 BT분야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훈련프로그램을 개최하고 있다. 아태 국제분자생물네트워크는 2005년부터는 APEC의 지원 하에 아태지역 분자생물학 분야의 우수한 과학자, 연구실, 연구기관을 네트웍화 하여 사이버상에서 연구 결과의 교환 토론을 통한 연구활동 지원을 목적으로 국제분자생물사이버랩(eIMBL)을 설립 운영하고 있으며, Nature Asia-Pacific사와 공동으로 “A-IMBN Research” 웹 저널을 발간하고 있다. 아시아에서의 이러한 활동에 관심을 갖고 주목하던 EMBO측으로부터 초청을 받은 그는 2007년 독일 Heidelberg를 방문, A-IMBN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 결과 EMBO Reports지에 “Science in the Orient”제하로 소개된 인터뷰 기사에서 A-IMBN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학술활동들, A-IMBN 소속기관 연구자들의 벤처 창업과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한 투자회사 IMBN Venture 관련 활동, 아시아 주요 대학에서 일고 있는 국제화 노력 등을 알릴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런 그가 서울대학교 교수직으로 부임해 의미 있게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국제적인 경쟁력을 얻기 위해서는 다학제적인 협력연구가 서울대학교 BT분야 발전에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2000년쯤 서울대 BT분야 발전 마스터 플랜의 일환으로 서울대학교 생명공학공동연구원(Bio-MAX Institute)를 설립했지요.” 서울대학교는 SNU Bio-MAX 프로젝트의 실행을 통해 세계 최우수의 연구 결과를 창출, 산업화하여 차세대 BT분야의 리더를 양성하며 21세기 한국 BT발전을 선도해 나가겠다는 원대한 꿈을 이뤄나가고 있다. “서울대의 7개 바이오 관련 대학인 자연과학대학, 의과대학, 약학대학, 농업생명과학대학, 수의과대학, 공과대학, 치과대학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연구인력과 연구 지원인력들이 국내 BT분야 발전을 위해 함께 힘을 합쳐 연구 노력할 수 있었던 점은 무척이나 보람되고 고무적인 일로 기억됩니다.” 활발한 국제협력 교류·연구로 한국 바이오산업의 위상을 드높일 것한평생 교육자의 길을 걸어온 그에게 학생들을 향한 애정 어린 조언 한마디를 부탁했다. “사회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고 좋은 환경적 조건들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이전에 비해 새로운 직업이나 가능성이 더 많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기회가 있는 만큼 대학과정을 통해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알아내고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생물학을 전공한다고 해서 전공과목만을 파고들 것이 아니라 물리, 화학 등의 기초학문과 인문학을 공부하여 넓은 시각을 가져야 하며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통해 폭넓은 사고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통신은 빠른 속도로 발달하고 있고 세계는 하나다, 사이언스는 하나며 국경이 없다”라고 말하는 임 교수는 국제적인 교류와 경험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렇기에 국제학회나 공동연구에 학생들을 가능한 한 많이 참여시켜 외국에 갈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열어주고자 노력한다고 했다. 어느덧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는 그는 그가 집념을 갖고 몰두해왔던 연구만큼이나 교육에 대한 열정도 가득해 보였다. “매 학기를 시작하기 전, 방학 때면 다음 학기의 더 나은 강의를 위해 스스로 공부하고 준비를 합니다. 매번 강의를 더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욕심을 내는데 항상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 아쉽더군요.” 벼 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했던가. 인품과 지식 모든 면에서 존경받을 만한 그는 당당함 속에 겸손한 미덕이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후의 시간 중에 1/4은 지금까지 계속해온 연구와 교육 일에 힘쓸 것이고 1/4은 아태 국제분자생물네트워크의 컨퍼런스와 같은 국제협력활동과, 바이오벤처, 웹저널 등 생명과학분야 발전을 위한 대외활동에 쓰고 싶습니다. 1/4은 가족과 함께하는 일에, 내 자신을 위해서도 할애하고 싶네요. 내 자신에게 라는 건 특별할 건 없고 그간 못 다 했던 책읽기나 운동 등에서 여유를 갖고 싶다는 의미에서고, 딸아이가 결혼해 이제 (제가) 할아버지도 됐으니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아내와 강아지와의 산책 같은 소소한 일상들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나머지 1/4은 남겨두고 싶네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쓰고 싶은데 섣불리 시작했다가 쉽게 그만둬서는 또 안 되는 일이지 않습니까. 아직 구체화하거나 시작한 게 아니라 뭐라고 말씀 드릴 수는 없지만 몇 가지 구상만 해놓은 상태라 의미 있게 채워나가고 싶습니다.” 가르치고 연구한 것이 나의 본업인데 사실 은퇴라는 것이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며 아쉬움을 내비친 임 교수. 매 학기를 마칠 때마다 더 철저히 준비하고 연구하여 후학양성에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었던 점에 대해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는 그는 천생 교육자이자 시대가 요구하는 학자였다. 한편으로는 그간의 발자취를 정리하고 남은 일생을 앞둔 과정에서 한 단계로 생각한다면 은퇴라는 것이 필요도 하겠다 라며 담담히 말하던 임 교수. 그의 한 마디 한 마디 말에 깊은 연륜과 철학이 느껴졌다.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훌륭한 인재를 배출해왔던 교육인생, 그리고 끊임없이 해왔던 연구 활동들로 물 흐르듯 펼쳐질 아름다운 그의 인생 2막을 기대하며 그의 건승과 국내 생명과학 분야의 희망찬 앞날을 위클리피플이 함께 응원한다. 위클리피플닷컴은 창간 21주년을 맞이하여 바이오산업분야를 선도하는 리더로서 높은 지명을 얻고 있는 임정빈 교수를 ‘대한민국을 빛낸 올해의 인물’로 인터뷰하였다. ◈profile<학력>1960-1966 경기 중, 고등학교1966-1970 서강대학교 생물학, 이학사1971-1975 미국 M. I. T. 생화학, 이학박사 (지도교수: Gene M. Brown) <경력>1976-1978 미국 Oak Ridge National Laboratory, 연구원1981-1982 사우디 King Abdulaziz 대학교 생화학과, 초빙교수1988-1989 독일 Konstanz 대학교 화학과 객원교수 (Humboldt Fellow)1978-현재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교수 1993-1999 서울대학교 유전공학연구소, 소장1997-2003 과기부 창의적 연구진흥사업 연구단장 (유전자 재프로그래밍 연구단)2003-2005 서울대학교 생명공학공동연구원 (Bio-MAX Institute), 원장2004-현재 아태 국제분자생물네트웤 (A-IMBN), 회장2005-현재 국제분자생물사이버랩 (eIMBL), 소장 <산·학 활동>1993-1999 전국대학부설유전공학연구소 협의회, 회장1997-현재 The American Society for Biochemistry and Molecular Biology, 정회원1997-현재 Human Genome Organization (HUGO), 정회원1999-1999 (사단법인) 한국미생물학회, 회장2000-현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2002-2003 한국초파리연구회, 회장2003-2003 (사단법인)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 회장2005-현재 일본 SymBio Pharmaceuticals Ltd., Scientific Advisor2006-현재 아이엠비엔벤처(주) CEO & President2012-현재 남앤남 국제특허법률 사무소, 기술고문 1994-2001 “Pteridines” (International Society of Pteridinology), Editor-in-Chief1995-1997 “Molecules and Cells”, (Kor Soc for Mol & Cell Biol.), Editor-in-Chief2006-현재 “IUBMB Life”, (Int’l Union of Biochem & Mol Biol.), Editor2006-현재 “Biochemical Journal”, (Biochemical Society of UK), Editor2009-현재 “Pteridines” (International Society of Pteridinology), Editor <수상>1994 “한국과학상” (생명과학분야)2005 “Outstanding Achievement Award” (Marshall School of Business, USC)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2-12-12
  • 고사이판 김충정 대표와 함께하는 ‘사람이 中心’인 ‘여행다운 여행’
    [위클리피플=박아람 기자] 고사이판 김충정 대표와 함께하는 ‘사람이 中心’인 ‘여행다운 여행’ 김충정 웹리조트마케팅 대표이사 겸 여행저널리스트 올 한해를 마무지 짓는 12월 연말이 다가왔다. 지난 시즌에 미처 휴가를 떠나지 못했던 사람들과 일년간 쌓였던 일에 파묻혀 정작 자신의 시간을 갖지 못했던 사람들이 연인, 가족단위로 해외여행을 즐기려하는 사람들이 몰리는 시기이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여행자수는 12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이른바 ‘불경기’로 일컫고 있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해외여행자수는 증가하고 있다. 특히 지역별로는 동남아 여행객이 36.8%(2012년 10월기준)정도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추세임을 밝혔다. 또한 같은 여행지를 관광하더라도 보편적인 패키지여행보다는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 위한 여행계획이 가능한 상품을 찾는 고객이 늘고 있다. 이에 위클리피플닷컴은 자신만의 여행계획으로 동남아 지역, 특히 사이판을 필두로 세부, 괌,하이난, 발리, 푸켓, 코타키나발루 지역의 참다운 매력을 느끼도록 도와주는 국내 유일의 온라인 전문여행사 웹리조트마케팅 김충정 대표를 만났다. _박아람 기자 여행객이 만드는 여행의 본질을 추구하다 김충정 대표는 평소 현지 문화와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능숙한 영어를 구사하는 김 대표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현지와의 전화통화로 관광객들의 만족도를 직접 체크한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피땀 흘리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 대표는 밑바닥부터 여행분야의 일들을 익혔다. 그는 대형 패키지 여행사에 입사해 가장 말단사원이 해야 하는 문서복사, 여행객 여권관리, 상담, 모객, 판매 등 차근차근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질적인 여행상품 교육도 철저치 받으면서, 상품개발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그는 캐나다와 미주 담당으로 캐나다의 스키장에 매료된 후 한국에 이런 여행상품을 소개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1997년 처음으로 캐나다에서 스키를 타면서 여행할 수 있는 상품을 한국에 접목시켰다. 사실 처음에는 이 캐나다 여행상품은 다른 주력여행상품에 끼워 소개됐었지만, 당시 여행객들에게 폭발적이 반응을 얻게 되면서 개별적인 상품으로 성장하게 됐다. 그때 당시에 비싼 여행상품이었지만 매진사례를 이어갔으며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게 됐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김충정 대표는 고사이판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여행을 팔려는 사람보다 여행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여행을 즐겁게 할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여행은 여행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충 호텔에서 주는 밥을 먹고, 주어진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그런 획일화된 여행이 아니라, 새로운 여행지에서 문화적으로 경험하며, 접촉해보고 심지어 충격적인 경험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여행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여행이란 허술하고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휴양의 개념에 중점을 두고 계획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김충정 대표는 고사이판의 여행상품을 개발하는데 어느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해 앞장서고 있다. 김충정 대표는 자신만의 철저한 여행관념을 갖고 고객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고사이판은 어떠한 여행상품이라도 각각의 매력을 갖게 된 것이다. 여행‘쇼핑’에서 ‘휴양’여행으로 김충정 대표가 운영하는 고사이판은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패키지여행이 아닌 여행객 개별 성향을 맞춘 개인형 여행과 성향, 연령에 따라 팀을 구성해 여행지의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는 여행이 사람에게 맞춰져야 한다는 생각에 ‘자유여행’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이런 타이틀을 내걸고 여행객 자신이 직접 기획하는 여행을 준비하도록 도와주고, 고객에게 맞는 여행컨셉, 테마를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에어텔이란 기본적 개념에서 더해 항공과 이동수단, 숙식 등의 서비스는 기반으로 주변에 지역정보와 음식, 풍경, 관광명소, 특별한 예술문화 분야 등 고객 스타일에 맞춰 다각화된 여행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각 지역마다 특색 있는 축제와 그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경험을 테마로 설정해 어느 여행객이라도 만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모든 여행 일정과 식사를 임의로 재조정할 수 있는 선택도 가능하도록 기획했다. 이런 ‘자유여행’의 서비스를 바탕으로 여행을 처음으로 시작하는 고객들과 일정이 바쁜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패키지여행도 진행하면서, 의미있는 여행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특히 김충정 대표는 한국에는 많은 사람들이 도입이 어렵다고 생각했던 상품들을 한국에 접목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다양한 테마를 제안하기 위해 직접 필드에서 경험해보고, 고객을 상대하면서 여행의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바로 여행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라고 말하는 김충정 대표는 ‘옵션투어’란 여행에 문제를 제기하며, 근절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고사이판은 해외여행에는 가이드들의 횡포를 비롯해 여행의 본질에서 벗어나 ‘반나절’씩이나 쇼핑에 투자하는 여행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으로, 현지 지역 체제로 불필요한 중간 유통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내세웠다. 또한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을 구축해 관광지에 대한 세부적인 할인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며, 가이드 본연의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도록 전문적인 교육을 해왔다. “물론 처음에는 척박한 시장이다 보니 ‘자유여행’이란 타이틀로 무턱대고 시작한 비슷한 여행사가 있었습니다. 경쟁을 하면서 두 시즌정도는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처음해보는 시스템이다 보니 가이드들도 케어가 안 되고, 안한다 하더라고요”라며 어려움이 있었다고 고백한 김충정 대표는 고사이판만의 가이드라인을 잡기 시작했다. 여행사를 시작할 초반에는 사이판에서 택시기사를 하던 조선족친구를 가이드로 교육하고, 여행고객들의 아이들에게 간식을 사주고 놀아주기를 비롯해 사직도 찍어주면서 친근한 가이드로 먼저 다가가도록 유도했다. 이에 여행객들은 가이드를 믿고 여행하면서, 여행객 스스로 쇼핑을 제안한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물론 김충정 대표도 이런 시스템을 정착시키기까지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직접 가이드로 참여하면서 시행착오를 겪고 철저한 교육을 시켰다. 이러한 과정으로 ‘옵션’에서 자유롭고 부당한 계획으로 여행에 차질이 빚어지는 일이 없도록 했다. 무엇보다 고사이판은 원가 이하의 저가상품으로 여행 서비스의 본질을 상실하거나 각종 불합리한 일정의 문제를 배제한 합리적인 가격정책 시행하면서, 신뢰있는 여행을 주도해왔다. 여행지역에서 특급이하의 호텔들은 절대 계약하지 않아 서비스가 부족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 “여행업도 서비스라 다양한 고객들을 상담합니다. 싸고 저렴한 가격을 고집하면서, 좋은 여행을 추구하는 고객들에게는 정중히 거절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저희는 여행사도 손님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저희와 맞는 고객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노력합니다. 이에 처음에는 고가정책이지만 더 성실히 상담하고, 의논한 뒤에는 상품가격이 나춰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행고객들에게 유익한 여행이 되도록 다각화된 여행테마를 제공하고 맞춰주는 것이 중요하죠"라는 김충정 대표. 이러한 노력으로 문의 후 70~80%정도 고객을 유치하는 성과를 나타내기도 했다. 가족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여행이어야 한다 주로 여행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취향과 선호도를 맞추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가족이 함께 하는 경우라면 어른과 아이들의 입맛과 일정을 기획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 여행하는 내내 지치기도 한다. 이에 고사이판에서는 아이와 함께 하는 가족여행을 모티브로 아이들의 성향과 연령대까지도 맞추는 테마여행을 권장하고 있다. 특히 이번 2012년 겨울 성수기에는 아이들이 참여하는 퀴즈프로그램을 실시하여 여행의 재미를 더해 주기도 한다. 함께 하는 부모님들은 개별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며, 관광과 휴양의 개념인 여행을 체험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에는 교육적인 요소도 가미시켰다. 각 호텔과 리조트마다 기획의도가 다양해 양궁, 수영 등의 장애물 놀이를 비롯해 영어로 토론하기, 그림 그리기,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 영상을 보기도 한다. 또한 바닷가에서 청소를 직접해보면서 미래의 깨끗한 지구를 위해 봉사하기도 하며, ‘1달러’로 나눔 씨앗을 심어보기란 교육과정도 참여할 수 있다. 특히 2012년 겨울시즌에는 가족여행과 골프투어를 함께 접목시킨 상품도 기획했다. 이에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Activity한 활동을 기본으로 어른들에게는 그동안 촉박한 시간에 라운딩을 했어야 하는 틀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저희 아이랑 함께 다니는 여행모임에서 제가 계획하고 준비하면, 가격을 물어본다든지 어떤 질문도 하지 않고 신뢰하면서 쫓아오는 경우를 볼 때 정말 기쁩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의 본질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사소한 부분에도 보람을 느끼는 김충정 대표에게 앞으로의 방향과 비전에 대해 물었다.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테마로 현재보다 더 많은 지역을 다변화시키고, 직접 현지에 참여해 손님들과 만나고 경험하고 싶어요. 그리고 가족여행을 하는 아이들에게도 해양스포츠를 레슨하는 등 직접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 합니다”라는 포부를 전했다. “여행에서는 사람이 포커스”라고 당연하게 말한 김충정 대표. 앞으로 그를 통해 다수의 여행객들이 다양한 지역에서 ‘휴양’을 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고사이판 홈페이지 www.gosaipan.co.kr / 문의 02-730-7272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2-12-10
  • [서울알레르기클리닉 노건웅 의학 박사 특별 인터뷰] 21세기 의학의 해결과제 아토피 피부염, 한국 의학자의 손으로 해결되다!
    [위클리피플=오미경 기자] 21세기 의학의 해결과제 “알레르기 질환” 한국의 의학자가 아토피 피부염과 함께 해결하다! 아토피 치료의 세계 표준화를 제시한 최고의 권위자 노건웅 박사 | 서울알레르기클리닉 대표원장 | 충남대학병원 소아과 연구전임의 | 서울 알레르기 및 면역학 연구회 학술위원 20세기의 의학적 과제가 암의 치료였다면, 21세기의 의학의 해결과제는 알레르기 질환이라고 한다. 아토피 피부염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난치성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얼마 전 발표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의하면 최근 5년 동안 아토피 피부염으로 요양기관을 방문한 환자 중 50% 이상이 9세 이하 환자의 비중일 정도로 심각한 수준의 어린 아토피 환자의 실태가 나타났다. 아이만이 아니라 성인 환자도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아토피 피부염에 대한 치료법이 대부분 유명무실했던 가운데, 오로지 아토피 피부염에 대한 연구와 진단치료 개발로 15년의 시간을 바친 결과 세계적 수준의 ‘아토피 피부염 진단과 치료 메커니즘’을 정립한 한국의 의학자가 있어 <주간인물>이 만났다. 바로 <서울알레르기클리닉>의 노건웅 박사가 그 주인공. 수많은 난관을 이겨 낸 그의 이야기 속에서 현대 인류의 난제로 알려진 아토피 피부염 치료의 새 시대를 그리는 시간을 가져보자. _취재 이선진 기자 / 글 오미경 기자 아토피 환자의 희망을 열어 준 <서울알레르기클리닉> 서울알레르기클리닉은 노건웅 박사가 소아 면역학 석사와 소아 알레르기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소아과 조교수 및 삼성제일병원 알레르기센터 소장 직 역임을 거쳐 2000년에 문을 연, 알레르기피부염 환자들에겐 기적 같은 희망으로 통하는 전문 치료 클리닉이다. 멀리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는 물론, 해외에서 찾아온 외국 환자가 근처에 잠시 살 곳을 얻어 치료를 하고 갈 정도로 환자들의 입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취재진이 이 곳을 찾았을 땐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오전부터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와 어린 환자들로 북적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진료를 마친 어린 환자들이 일제히 두부 등의 음식을 받아들고 먹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현대인의 골칫거리와도 같은 심각한 질환으로 꼽히며 몸과 마음, 환자와 그 가족까지 피폐하게 만든다는 알레르기 피부염을 과연 서울알레르기클리닉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핵심은 체계적인 검사와 명확한 해석을 통해 환자 저마다의 원인을 진단하고 그 원인을 치료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아토피치료는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대학병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병의원에서도 일반적으로 겨우 ‘알레르기가 있다, 없다’ 정도에 따른 주의 권고, 항히스타민제나 스테로이드제 등의 처방 수준으로 이뤄졌었는데, 이는 원인적 치료가 아니라 오히려 내부적으로는 알레르기를 진행시키는 방법으로 알레르기 수치에 변화를 주지 못하거나 지속적인 약 복용 시 오히려 수치가 증가하는 원인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최후의 방법으로 써야 하죠. 저희 클리닉은 세계적으로 논문을 통해서 평가 인증 받은 아토피 진단 치료법을 통해 근본적인 발병 원인 치료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요.” 노건웅 박사는 삼성의료원 근무 당시, 과거 원인을 잘 몰라 만성 질환으로 여겨졌던 아토피 피부염 전문 치료를 하던 중 우연히 식품알레르기가 아토피 피부염의 주요한 원인임을 알게 되었고, 이를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발표하였다. 그 계기로 아토피 피부염을 지속적으로 추적 관찰하여 환자의 절반 이상이 식품알레르기를 갖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얻고, 아토피 피부염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거듭한 결과, 아토피 피부염 치료를 세계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원인은 잘 알려지지 않은 4형 지연성 습진형 식품 알레르기를 밝히지 못한 것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침내 노건웅 박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토피 식품알레르기인 지연성 습진형 식품알레르기와 생명까지 위독할 수 있는 1형 급성 쇼크성 알레르기를 치료하는 식품관용유도 치료법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하게 되었고, 이후 10년에 걸쳐 치료법을 정립하였다. 서울알레르기클리닉이 세계 아토피 피부염 치료의 표준화를 이루며 세계 최초로 병에 대한 검사 및 진단, 치료의 정립을 만들어 부작용과 확신 없는 치료로 이중 고통 받던 아토피 환자들에게 새 희망을 열어 주게 된 것이다. 식품알레르기 관용유도 치료, 무엇이 다른가? 연구와 치료 넘어 예방관리 사업까지 서울알레르기클리닉에서 아토피 치료의 헤게모니를 만든 노건웅 박사는 혈액 검사를 비롯한 피부단자 검사, 경구식품유발 검사 등 다양한 검사를 통해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고 식이요법, IFN-r(면역치료제) 및 아로마 요법 등으로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특히 식품 알레르기가 아토피 피부염의 근본 원인임을 밝힌 ‘식품 알레르기 관용유도 치료법’은 지연성 알레르기반응과 급성쇼크 알레르기반응에 면역 조절제인 인터페론 감마를 주사해 면역체계를 정상화 시키고, 알레르기 유발 식품 섭취를 조금씩 늘려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식품을 먹어도 더 이상 특이 반응이 없는 관용의 상태로 만들어 내는 방법이다. 뛰어난 치료법일 뿐 아니라 “강한 학문적 사대주의로 인해 한국의 의학 발전이 저해 되고 있는 국내 의료계의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우리만의 이론과 치료법을 세웠다는데 더욱 의미가 깊다”고 노 박사는 말했다. 또 그는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체계적인 식품알레르기 유발원인의 정확한 진단을 하기위해 직접 먹어보는 경구식품유발 검사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 박사가 고안한 세계 최초의 이 식품알레르기 관용유도 치료법은 아토피성 식품알레르기의 경우 2003년에, 급성 알레르기의 경우 2009년에 각각 유럽 알레르기 및 임상면역학회에 보고되었으며, 국제 의학서적과 학술지에 잇따라 논문으로 게재하는 등 모호하고 중구난방이던 아토피 피부염의 총체적인 정립을 이루어 국제 사회에서 대단한 화제가 되었다. 노건웅 박사의 활약은 학계나 병원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식품 첨가물과 아토피 피부염의 유관성을 토대로 학교 및 어린이집 등에 연계한 서울시의 다양한 예방 관리 사업에 꾸준히 참여 하여 누구보다 아토피에 대한 사회 인식 개선에 앞장 서 왔다. 그러나 그는 아토피 정책 사업의 운영이 다원화로 추진되어 비체계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적 치료 없이 대증요법에 의한 알맹이 없는 치료에 그쳐 결국 실패했다고 꼬집었다. 심지어 관할 시 측의 ‘보여주기 식’ 사업 추진 태도에 화가 나 다시는 관 사업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그다. 그런 그가 얼마 전, 경기도의 아토피 정책 사업 추진 동참 요청에 다시 힘을 모으기로 했다. 노건웅 박사는 “이번 사업은 환자 분석과 진단 치료에 대한 경기도 측의 체계적인 계획 및 식품 알레르기 치료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가 있어 기대가 남다르다” 며 앞으로 한 푼의 예산이라도 헛되이 사용해선 안 되는 국책 사업에서 아토피 피부염의 근본적인 치료를 통해 유병률을 낮추고, 환자가 치료를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추진 될 것이라 자신했다. 아토피 피부염과 함께 한 순탄치 않았던 삶의사로서의 사명감이 그를 지켜 지금까지 아토피 피부염 분야에 관련해 SCI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수만 30여 편이 넘고, 국내와 영국, 독일 등에 3권의 저서를 냈으며, 수십 건에 이르는 학회 발표로 아토피 피부염 치료의 업적을 인정받아 세계 인명사전에도 여러 차례 등재됐던 노건웅 박사. 그러나 그는 이토록 대단한 업적과 노력에 비해 국내에서 크게 환영 받지 못하는 의학자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토피 피부염 치료의 표준화를 이루며 국제 학계에서는 그 업적을 충분히 인정받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오히려 소규모 연구회의 연구 업적에 대한 일부 대학병원이나 학계의 경계, 핍박에 부딪혀 녹록치 않은 15년의 세월을 걸어왔다고 하겠다. 특히 최근 몇 년은 그에게 의사생활 최대의 고비였다. 2003년 인터페론 감마 사용과 치료를 두고 복지부로부터 9억여 원 환수, 1년의 업무정지 처분을 받으며 병원은 물론 집까지 위기에 처하고, 많은 것을 잃었다. “학술적으로 환자의 치료를 위하여 이 약 밖에 쓸 수 없고, 식품 알레르기에는 특히 더 그러한데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치료법임에도 불구하고 불분명한 법을 이유로 탄압받는 현실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의사로서 할 일은 해야 한다고 봐요”라고 말하며 노 박사는 굴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1심에서 승소한 이 건은 현재 계류된 상태다. 계속되는 외압에 병원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단 생각에 그는 오늘이 마지막 진료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이 순간의 환자 진료에 소신껏,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설사 자신이 이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후진을 위하여 자신이 얻은 지식과 경험을 글로써 남기리란 일념 하에 지금도 꾸준히 논문과 책을 쓰고 있다. 아토피 피부염 치료의 뛰어난 업적 뒤에 이런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가 견뎌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환자가 저로 하여금 이 길을 걷게 했고, 앞으로도 걷게 할 스승이자 원동력인 것 같아요. 국내에 선진 치료법에 대한 이유 없는 편견과 벽이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고 안타깝긴 하지만, 저를 찾아와 병을 치료한 그간의 환자들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고 생각해요.” 노 박사는 아토피 피부염의 치료에 관한 현재 의료계를 비롯한 사회 현실을 두고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의 56장의 첫 구절인 지자불언 언자부지 (知者不言 言者不知,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 한다’)라는 한마디로 표현했다. 그와 함께 치료를 한 뒤, 생애 처음으로 생일 케익을 먹게 된 사실에 눈물 흘리던 어린 환자와 그 가족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는 노 박사는 그래서 자신의 치료로 환자의 병이 나았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끼며, 언젠가는 이 노력이 주목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가 못하는 것은 남도 안 된다”고 하는 생각, “내가 모르면 아니다”라고 하는 발상은 질병 치료의 관점에서 봤을 때 전체의 자멸을 부를 수도 있는 것으로, 정말로 환자를 생각한다면 할 수 없는 위험한 발상이다. 노건웅 박사는 곳곳에 남아 있는 이 위험한 발상에 맞서 오랜 시간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들이 보기에 외로운 싸움처럼 보일지도 모르는 힘든 길이지만, 그에게는 피부염 치료와 함께 하는 삶이 투쟁의 의미라기보다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의사로서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을 하겠다는 본분의 의미가 더 앞서는 일인 듯하다. 그렇기에 결코 지지 않을 싸움이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아토피 피부염 없는 건강한 대한민국을 위해서 한 꺼풀 덮여있던 노건웅 박사의 진가가 제대로 빛을 발할 그 날을 <주간인물>이 힘껏 응원한다. Profile연세대학교 의과대학 1988년 졸업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 소아과 전문의 1996년연세대학교 대학원 의학과 소아면역학 1993년 석사학위 취득연세대학교 대학원 의학과 소아알레르기 1997년 박사학위 취득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소아과 조교수 1998년미국 미시간 대학교 초청교수 2000년충남대학교 소아과 전임의 2009-2012 현재서울 알레르기 클리닉 2000-현재 - 세계 인명사전 Who ‘s Who 아토피 피부염 연구, 치료 업적으로 2004년, 식품알레르기 연구, 치료 업적으로 2011년 등 2회 등재- 2011년 영국 King’s College의 Victor R Preedy 교수와 “Handbook of Diet, Nutrition and the Skin”에서 “아토피 피부염” 공저- 2011년 독일 Charitie University의 Jorge Esparza-Gordillo 교수와 공저 “아토피 피부염”에서 “아토피 피부염에서 식품알레르기” 공저- 서울알레르기 및 면역학 연구회 학술위원 2001년-현재- 경기도 아토피 포럼 의료 정책자문위원 2010-현재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2-12-04
  • [인사이드잡 최윤석 대표 특별 인터뷰] 모두가 행복한 Job World를 꿈꾸는 명장 CEO!
    [위클리피플=오미경 기자]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낼 수 없는 길을 가다!명장을 꿈꾸는 CEO의 모두가 행복한 Job World 이야기 최윤석 (주)인사이드잡 대표이사 올해 마지막 화두이자 국민 최고의 관심사인 18대 대선이 이제 정말 코앞으로 다가왔다. 대선과 맞물리면서 많은 후보들의 공약이 줄을 잇는 가운데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문제 등 민생안정과 직결되는 사안에 대한 공약들이 연일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이를 두고 선거철이면 돌아오는 ‘표심 얻기 식 공약’이라는 여론의 목소리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취업난과 실업률이 동반 상승하는 모순된 현실이 이어지고, 소규모 자영업에 도전하는 이들의 실패가 반복되는 어려운 경기 침체의 상황이 계속 되는 가운데 고용 및 경제 정책에 대한 기대 반 걱정 반의 국민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주간인물>은 국민, 기업, 국가가 상생하는 건강한 대한민국을 목표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 온 전문 경영인을 [대한민국을 빛내는 올해의 신지식인 CEO]로 선정, 시대 흐름에 맞는 인력 창출 전문 서비스를 통해 아웃소싱업계의 내실 있는 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주)인사이드잡 최윤석 대표를 만났다. “모두가 행복한 Job World”를 꿈꾸는 그와의 만남을 동행 해보자. _취재 이선진 기자 / 글 오미경 기자 기업과 인재를 하나로, (주)인사이드잡 인터뷰를 위해 사무실에 들어서자 두 가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대표이사 명패 없이 서류 뭉치로 가득한 책상과 업무에 관한 메모들이 빼곡히 적힌 화이트 보드였다. 악수를 건넨 최윤석 대표의 첫 인상은 푸근해 보이면서도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에너지 넘치는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주)인사이드잡은 2003년 최윤석 대표가 9년간 아웃소싱 회사에서 스텝으로 일한 경험을 토대로 설립한, 내년이면 10년차로 접어드는 HR 아웃소싱 전문 기업이다. “아웃소싱이란 말조차 잘 쓰지 않던 시절, IMF가 겹치고 취업 창출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면서 구인·구직자 입장에서 최적의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뜻을 두고 인재를 체계적으로 수급하고 관리하기 위해 시작했다”고 입을 연 최윤석 대표는 ‘기업과 인재를 하나로’라는 모토 아래 현재 60여 개의 고객사에 토탈 아웃소싱 서비스를 구현하고 있다. 회사명도 남다른 뜻이 있다. 사람이 우선이 아니라 인재가 더 우선인 클라이언트의 필요성을 절실히 알기에 체계적인 인재 발굴과 관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많은 인재DB가 기본이 되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취업 포털 사이트의 개념을 접목하여 인재를 모으고, 클라이언트들에게 맞춤 인재를 공유하겠다는 뜻으로 지은 것이다. 그렇게 뼈대를 만든 인사이드잡은 설립 초기부터 많은 아웃소싱 기업들과는 차별화된 DB관리 시스템을 구축하여 현재 30만 명이 넘는 인재 DB를 보유하고 있으며, 마포에 인재 전문 교육센터를 두고 고객사에 직종과 분야별로 다양한 맞춤인재 지원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내적인 실력으로 강소기업의 면모를 보여주다 국내 아웃소싱 기업 평균 1200 여개. 무분별하고 검증 안 된 활동에 대한 제재가 필요 할 정도다. 인사이드잡은 큰 기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그들만의 장점을 극대화하여 오로지 내적인 실력으로 승부해왔다. 무엇보다 인력의 수급 및 관리가 중요한 파견아웃소싱업계에서 인사이드잡이 뛰어난 DB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데는 직원들의 힘이 컸다. 인사이드잡의 전 직원들은 단순 중개인의 개념을 넘어 실무능력에 인사, 노무, 회계 등 전문가적인 이론 지식을 더한 인재파견지도사 자격증을 가지고 최상의 컨설팅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쪽 업계에서 구직자를 관리하는 잡매니저들의 평균 근속 기간이 얼마나 되는 줄 아십니까? 불과 6~8개월에 그칠 정도로 짧아요. 그렇다보니 규모가 큰 기업에서도 퇴사한 사람들이나 신규 고객DB에 대한 업데이트 및 지속적인 관리가 체계적으로 될 수 없는 병폐가 있지요. 그러나 인사이드잡은 다릅니다. 저는 무엇보다 직원들에게 오너이자 멘토로서 소통의 창구를 열어놓고 일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며 비전을 만들어 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것이 우리 회사 직원들이 오랫동안 함께 인사이드잡을 키우게 한 힘이 되었습니다.” 기업에 인재를 주기 위해서는 잡매니저 스스로가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최 대표의 지휘와 뜻에 따라 직원들은 파견 아웃소싱 분야의 전문 인력이 될 수 있었다. 인사이드잡은 현재 3차에 걸쳐 구직자를 선발하는 탄탄한 시스템을 자랑하며 적합한 인재를 지원하고 있다. 또 최 대표는 엄밀히 말해 고객사들이 내부의 프로젝트에 의한 인재 채용을 위해 제 3자에게 위탁 처리할 때 뭘 원하고 어필해야할지 정확히 알고 부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컨설팅을 해야 한다며 법률, 비용, 관리적인 측면을 모두 고려하여 전사적으로 컨설팅 지원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사이드잡이 눈길을 끄는 또 하나는 계약주체인 기업의 80%이상이 서울·수도권에 밀집되어 있는 부분에서 2005년부터 직영 및 제휴를 통한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지역별 구도에 따른 아웃소싱을 시행하고 있는 것인데, 수도권 인력 쏠림 현상으로 인한 경제 불균형 문제에도 시사 하는바가 있어 의미가 깊다. 최 대표는 이것이 주로 일시적이고 간헐적인 업무에 집중되어 있으며 물류, 생산, 판매 등 지역 특성에 맞는 분야에 맞춤 지원이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얼마 전 치러진 여수세계박람회와 관련된 행사에도 500여 명의 인력을 지원했다고 전했다. CEO 최윤석,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낼 수 없는 길을 가다 오랜 시간 한 우물만 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가다 보면 다른 길이 눈에 들어올 수도 있고, 갖가지 장애물에 걸려 그대로 주저앉아 버릴 수도 있는 게 삶이니까. 최윤석 대표에게도 굴곡은 있었다. “사회인으로서 첫 발을 내딛은 뒤, 저에게 맞춤이라고 생각하고 18년간 이 업계에 몸담아 오면서 느낀 가장 큰 한 가지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낼 수는 없는 일이란 것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스텝의 경험으로 얻은 영업력과 의지는 있었지만 경영자로서의 마인드와 운영이 미흡했었어요. 그리고 우리 기업의 내적인 실력이 아니라 ‘회사의 자본은 얼마인지, 매출이나 실적은 어떻게 되는지’ 와 같은 기업의 외적 규모나 능력을 더 우선시 한 현실과 부딪칠 때 힘들었죠. 결국 부족한 역량과 현실의 벽을 체감하고 시작한지 7개월 만에 자본이 잠식 되었어요. 힘든 현실을 뼈저리게 깨달으며 새롭게 재기하기위한 발판으로 사무실 위치를 강남에서 여의도로 옮겼고, 제 스스로의 변화에 대한 열정과 직원들이 노력이 따라주어 1년 6개월 만에 기적처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웃음)” 최 대표는 직원들에게 권위주의적으로 비춰지던 모습에서 벗어나 소통과 배려, 자율적 책임을 통한 개선을 화두로 삼고 다양한 소통 기회를 늘려갔고, 한양대 경영대학원 AMP과정을 이수 하는 등 운영이 아닌 경영을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했다. 스텝으로 일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그 때 회사에 무엇을 원했었는지 계속 고민하니 복리후생과 제대로 된 역량평가를 받고자 하는 것이 크리라고 생각했다는 최윤석 대표. 그는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며 격려한다는 마음으로 첫 입사한 직원에게 직접 명함 지갑을 골라 이름을 새겨 선물하고, 1년차가 되어 주임을 달면 기념이 되도록 고유의 펜에도 이름을 새겨 선물했다. 입사 5년차가 되는 직원에게는 차를 선물하기도 할 정도로 직원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단순히 혜택을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회사를 이끌어가는 직원에게 배려의 마음을 담아 전하겠다는 뜻입니다.” 직원들과의 수평적인 소통과 배려를 실천한 그의 노력은 직원들 스스로가 자율적 책임을 통한 개선을 하도록 만들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직원들끼리의 직무 워크샵을 진행하는 이프데이(insidejob family day)등 인사이드잡만의 기업문화가 형성된 것이 바로 그 예다. 최윤석 대표에게 또 하나 어려움으로 다가 왔던 것은 아웃소싱 사업에 대한 사회의 인식 구조였다.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조차 잘 모를 정도로 휴먼 아웃소싱 개념이 부족했던 우리나라는 심지어 아웃소싱을 용역이나 직업소개소라는 인식으로 폄하시키며 잘못된 편견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는 기업에 인사이드잡과 기업 사이의 필요충분조건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잣대를 제시하며 차츰 인식의 전환을 꾀했다고 말했다. 회사 안팎으로 최 대표의 이런 노력이 바탕이 되어 인사이드잡은 4년 만에 자체 사업장을 마련하며 매년 매출 25%이상의 성장을 보여 왔고, 2005년 산업자원부 후원 한국 아웃소싱서비스대상 특별상 수상, 2009년 지식경제부 후원 고객만족대상 최우수상 수상, 2005년~2012년까지 7년 연속 대한민국 100대 아웃소싱 기업에 선정 되는 쾌거를 이뤄냈다. 모두가 행복한 Job world상생에 대한 인식의 전환부터 이뤄져야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기업의 체질 개선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시대적 필요에 의해 아웃소싱 사업의 성장이 더욱 가속화 되는 가운데 갈수록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최윤석 대표는 “우리나라 비정규직 보호법은 근무기간 2년이 도래하면 자동 퇴사로 되어있는 등 바뀌어야 될 게 많다”며 비정규직 문제의 갈등에서 우선적으로 정부와 기업, 근로자 간에 상생에 대한 인식의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생산성 향상과 인력의 유연성 확보 등 기업의 비정규직 활용의 불가피성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고, 비정규직 보호법에 맞춰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로의 사회 인식이 확대되어야 구직자들도 맞춤 구직 활동을 할 것” 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편 최 대표는 취업난과 실업률, 창업 실패율이 동반 상승하고 있는 어려운 경제 상황에 대해 취업 새내기들에게 냉정하고도 진정성 있는 눈높이를 가지라고 당부했다. “꿈, 꾼, 끼, 꾀, 꼴, 깡, 끈, 끝이라는 ‘8가지의 ㄲ법칙’에 대해 취업새내기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먼저 세상에 비추어지는 비전을 가질 (꿈)이 있어야 하고, 그걸 이루려면 전문가(꾼)가 되어야 해요. 잠재된 자신의 탈렌트(끼)를 끌어낼 수 있어야 하고, 가슴은 뜨겁되 머리는 차가운 이성적 (꾀)와 지식이 필요하며, 자신의 현주소와 상황을 헤아리고 잘 파악하여 직시할 줄 아는 (꼴)이, 그리고 ‘나’라는 객체가 집단군에 완전히 하나가 되기까지는 근성 있고 뚝심 있는 (깡)이 있어야 하죠. 그리고 평생 인맥인 (끈)은 나의 인간관계에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고, 무엇을 하든 시작한 이상 (끝)을 보는 노력이 필요 하다고 봐요.” 그는 자신도 부족한 것이 많아 채우려 하다 보니 목표와 욕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리고 욕심이 생기다 보니 지지 않는 법을 알았다며 CEO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누구에게나 ‘NO.1’ 일 것처럼 보이지 말고, 지금 당장의 현실에 맞는 ‘Only 1’이 되라”고도 강조했다. “거래업체와 구직자를 통틀어 모든 고객에게 넘버원의 기업으로 남기보다 인사이드잡 만이 할 수 있는 적재적소의 맞춤 인재 지원에 대한 노력으로 신뢰와 만족감을 주자. 내 고객으로 하여금 오직 하나 뿐인 기업으로서 존재 가치를 심어주자”는 것이 최 대표가 말하는 인사이드잡의 길이다. 매번 만나는 만남을 소중한 一期一會(일기일회)로 여긴다는 최윤석 대표의 다음 계획이 궁금했다. “내실을 더 다져서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특화 분야를 정하고 사업을 다각화 할 계획입니다. 세분화한 사업으로 전문성을 더욱 키울 것이고요. 그리고 반드시 법적 변화가 오리라 믿는 만큼 법 개정에 맞춰 정보를 교류하며 노동시장에 적법하게 대처하는 기업으로 이끌어 가고 싶습니다.” 인사이드잡의 지금이 있기까지 터를 잡고 기반을 닦아 온 날들을 미완성이라 한다면 2013년은 각자 역할에 따라 더 큰 그릇을 채워 나갈 참된 시작, ‘ Real Start의 해’라고 그는 말했다. 각오부터 남다르다. 기업에게 인사이드잡이 부여하는 인재의 적합성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고 싶어 이 일을 시작했고, 그래서 이 일을 버리지 못한다는 최윤석 대표. 그에게 CEO라는 단순한 수식어는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지난 20여 년간 이어졌던 외길 성공 스토리를 담아내기에 부족해 보였다. 그런 그는 지금 명장을 꿈꾸고 있다.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 일자리”를 위해 명장 최윤석 대표가 이끄는 인사이드잡의 내일을 <주간인물>이 힘차게 응원한다. Profile<학력>서울고등학교 졸업숭실대학교 졸업한양대학교 경영대학원 AMP <경력>한국경제 ‘마케팅전략전문가과정’성신여자대학교 특강(주제 :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2008 아웃소싱 전문가(최고경영자부문)산업자원부 후원 제5회 한국아웃소싱서비스대상 ‘특별상’지식경제부 후원 ‘2009 아웃소싱서비스 고객만족대상 최우수상’ 지식경제부 후원 ‘2010 아웃소싱서비스 고객만족대상 대상’ [신성장부문]2005년 ~ 2012년 7년 연속 ‘대한민국 100대 아웃소싱기업’ 선정 경영철학 : 책임경영 / 신뢰경영 / 고객우선주의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2-12-03
  • [뇌신경계질환의 권위자 이태규 원장 특별 인터뷰] 환자 위한 4H철학으로 전문 치료에 앞장서다!
    [위클리피플=오미경 기자] 최고의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신경과의 중심에 서다! 4H의 철학으로 환자를 위한 꿈을 그리는 의사 이태규 이태규뇌리신경내과 원장 | 서울의대 신경과 겸임교수 드라마를 보면 갈등의 국면에서 흔히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인물들 간 결정적인 대립의 순간에 누군가 충격을 받아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장면이나 머리에 흰 두건을 싸매고 누워 괴로워하는 장면이 그것인데, 극의 전개상 등장하는 큰 의미 없는 장면일 수도 있지만 상황을 현실로 옮겨서 생각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갑작스레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경우, 십중팔구가 뇌경색 또는 뇌출혈로 이는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질병이다. 드라마에서는 주로 나이 있는 배역들이 소화하는 단골 레퍼토리였지만 실상 요즘은 비교적 젊은 층에서도 뇌졸중 증세가 문제가 되고 있다. 머리가 지끈 거리는 두통 역시 마찬가지다. 살면서 대부분 경험하는 아픔이다보니 오히려 그 심각성을 잘 몰라 때로는 위험한 질병이고,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에 주간인물은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 잘못된 생활 습관 등으로 현대인들의 뇌신경계 질환 발병률과 심각성이 커지는 가운데 전문적인 뇌졸중 예방 검진과 국내 최초의 두통 클리닉 개설로 신경과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이태규 뇌리신경내과> 이태규 원장을 만나 건강한 대한민국을 위해 쉼 없이 달리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_오미경 기자 <이태규 뇌리 신경내과>가 최고일 수밖에 없는 이유 찬바람이 몹시 불던 지난 14일, 취재를 위해 찾은 이태규 신경내과는 진료시간이 끝났음에도 계속 이어지는 환자들의 방문으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던 시간을 조금 넘기고서야 한숨을 돌리고 취재진을 맞이한 이태규 원장은 지친 기색이 엿보였다. 그러나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라며 날씨가 추워지면서 더 늘어나고 있는 환자들에 대한 걱정부터 풀어놓는 천상 의사였다. 그러나 사실 먼저 눈이 가는 건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의 화려한 이력이다. 이태규 원장은 서울대 의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신경과 전문의 과정을 마친 뒤, 미국 하버드 의대 MGH병원, 클리블랜드 클리닉 재단 병원 등에서 임상 전임 의사로 약 3년간의 경력을 쌓았다. 그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신경과 학회인 미국신경과학회에서 94년 외국인 학술상과 97년 젊은 두통연구자상을 수상한데 이어 귀국 후에는 대한두통학회를 창립하고 국내 신경과 분야의 치료 전문성을 높이는데 누구보다 앞장 서온 인물이다. 그리고 2002년 병원을 개원하며 국내 최초의 두통 클리닉과 국내 유일의 뇌졸중 예방 검진 센터를 설립, 명실 공히 최고의 신경과 전문의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신경과 분야는 뇌신경계와 근육계 질환을 아우르는 분야로 어느 진료과보다도 철저한 검사와 분석, 고도의 전문성이 중요합니다. 그런 만큼 예약제를 통해 진료대기 시간을 줄여 환자 한 명 한 명 에게 보다 질 좋은 진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첨단 기종의 장비로 진료의 정확성을 높여 환자들의 편의를 높이고자 합니다.” 신경과 개원가 중에서 MRI기계 도입이 국내 최초로 이루어진 <이태규 뇌리 신경내과>는 개인병원 임에도 불구하고 그 외에도 첨단 뇌혈류초음파기계, 고압 산소치료기, 경동맥 초음파기계 등 최상의 전문적 시설과 장비를 보유하고 있어 혈액검사를 제외한 자체 검사결과들을 하루 안에 알 수 있다. 올 12월 이면 문을 연지 10년이 되는 <이태규 뇌리 신경내과>는 이처럼 검사의 전문성·정확성·다양성, 결과의 신속성을 중요시 하는 이 원장의 명성과 병원의 인지도에 힘입어 그간 찾아온 환자 수만 3만 6천여 명에 이르고, 지금도 하루 평균 80~90명의 환자들이 방문하며, 특히 지방에서 입소문을 듣고 찾는 환자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신경과 질병에는 유전적 요인과 함께 생활 습관적 요인이 다양하게 산재해 있기 때문에 제대로 진료하기 위해서는 우선 환자로부터 병에 대한 배경을 자세히 듣는 것이 중요해요. 의사로서 환자와의 교감과 신뢰가 진료의 가장 기본이니까요.” 이태규 원장은 정성어린 치료(Hearty care)와 친절(Hospitality), 최고수준의 자부심(Honour), 인도주의(Humanism)라는 4H의 철학을 바탕으로 진료에 임한다고 덧붙이며 이것을 고루 지키면서 병원을 이끌어 가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은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가능하다면서 앞으로도 계속 이 철학을 이어가리라 밝혔다. 뇌졸중 예방 검진 및 두통 치료, 어떻게 특화되었나? 다양한 신경계 질환 가운데 이태규 신경내과는 뇌졸중 예방 및 검진, 두통 치료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으로 정평이 나있다. “뇌졸중은 흔히 중풍이라 부르는 질환으로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뇌손상 및 신체장애가 나타나는 것을 통칭합니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과 같은 성인병이 주요 원인이 되는데 이러한 기저 질환들의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병인 셈이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일 질환으로는 암보다 사망률이 높은 무서운 병이지만, 암과는 달리 혈관 검사 등을 통해 현재의 상태를 알 수 있어 충분히 예방이 가능 하다는 것입니다.” 이태규 원장은 뇌졸중 예방 진료의 핵심 방법으로 MRI, MRA 검진과 함께 뇌혈관 및 목 혈관 초음파 검진을 통해 정확한 중풍 위험 정보를 진단하여 예방하고 있으며 이것은 비교적 간단하지만 의사의 전문성과 기술력이 필수적인 방법이라 자신 있게 쓰는 의사들이 많지 않다. 이태규 원장은 뇌졸중의 치료방법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예방이 알파오메가”라 말하면서 예방을 위해서는 초기 진단과 검진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 했다. 전조증상이자 뇌졸중 증상인 반신마비, 언어능력 저하, 보행 장애, 갑작스런 의식장애, 극심한 구토 및 어지럼증 등이 발생하면 이미 치료하기에 늦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대학 병원에서 조차 뇌졸중 예방보다는 경과된 증상과 치료에 대한 연구 위주로 돌아가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대한 두통학회를 창립한 이태규 원장은 국내 최초로 두통 전문 클리닉을 개설하여 화제를 모았다. 살면서 한 번 쯤은 겪어 보는 두통은 흔한 증상 정도로 인식 되다 보니 치료에 관한 전문성을 갖춘 의료 기관이 많지 않을뿐더러 다양한 형태로 아픔을 동반하기 때문에 진단과 치료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이 원장의 활약이 더욱 눈에 띈다. “대부분의 두통은 긴장성 두통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우리 병원을 찾는 두통 환자의 대다수는 심한 편두통이나 뇌수막염, 축농증 혈관에 이상이 생기는 뇌 혈관병 등 난치성 환자들이에요. 이런 것을 감별해내는 것이 두통 클리닉의 주 역할인데 고압산소치료와 바이오피드백(근육 이완 훈련), 뇌혈류 초음파 검사 등을 통해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추구하고 있죠.” 이 원장은 제도적으로 아직 두통 응급실의 설치가 불가하지만 각종 두통 환자가 늘고 있는 현대에 꼭 필요한 시스템이라며 두통 치료에 관한 선구자로서 더 나은 의료 환경 구축 의지를 불태웠다. 열혈 의사 이태규, 길 위에서 방향을 제시하다 수많은 환자들의 병을 예방하고 치료해 오던 이태규 원장에게 얼마 전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누적된 스트레스와 과로로 개원한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문을 닫고 병원에 입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치료를 위한 휴식마저도 하루에 그쳤을 정도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그가 신경과 의사란 어려운 길을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의과대 공부는 주로 방대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주로 암기식 공부가 많은데 신경과는 논리성이 바탕이 되는 분야라서 일단 적성에 잘 맞았어요. 그리고 미국에서 알츠하이머에 대한 연구와 치료가 활발해지던 80년대 중반 저의 인턴시절은 신경과 분야가 전도유망한 분야였고요. 저는 두통 환자들이 일상생활에 지장 없이 복귀하거나 그냥 두면 뇌졸중에 걸렸을 위험한 환자들이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가며 큰 병을 막고 건강해지는 것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미력이나마 의사로서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다짐이 스스로의 원동력이라 말하는 이태규 원장은 전공 분야를 통한 사회 기여 외에도 봉사를 통해 자신의 뜻을 꾸준히 펼쳐왔다. 경남 통영의 시골 출신인 그에게 배움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컸던 탓일까? 이 원장은 통영을 비롯한 장흥, 태안 지역 등의 아이들에게 많은 책을 기증하고 컴퓨터를 무상 교체 해주는 등 교육 소외지역에 대한 사회봉사를 묵묵히 하고 있다. 한편, 이태규 원장은 대형 병원 위주로 환자들이 쏠리는 문제를 안타까워했다. 그는 “병원은 의사의 전문성과 경험이 가장 중요한 만큼 무조건적인 큰 병원의 선호는 환자의 돈과 시간 낭비 뿐 아니라 병에 대한 진단 및 해결의 부족함이 따를 수 있으니 충분한 정보 비교 후, 개인 전문가를 찾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라 말했다. 그리고 만성 질환이 있는 환자의 경우 약의 효과를 보려면 의사의 권고에 따라야 하며 약을 너무 꺼려하지 말라고도 당부했다. 이태규 원장은 우리나라 의료계가 의사의 희생을 강요하는 시스템이 되어버렸다며 제도적인 불합리가 많다는 현실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언뜻 생각하면 의사는 그저 명예로운 직업으로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의사가 하루 진료하는 환자 수는 15~20명 정도인 반면, 우리나라는 제도나 병원 경영상 의사 한 명이 하루 수십 명이 넘는 환자를 봐야 하는 형편이라 건강을 말하는 의사들이 역설적으로 스트레스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 문제가 있어요. 또 진료 시간과 난이도에 상관없이 책정되어 있는 진료비 역시 불합리한 구조라고 봐요. 이런 것들이 나아가서는 병원의 과잉 경쟁 등 의료의 질적 수준을 떨어트리는 악순환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그는 몇몇 불합리한 제도의 개선이 궁극적으로는 “환자를 위한 최상의 의료 서비스 구현으로 이어 진다”고 확신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진료 마감시간을 두 시간 넘긴 늦은 저녁 이었지만 진료실 밖에는 그를 기다리는 환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태규 원장은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한 듯 잠시 취재진에게 양해를 구하고 서둘러 환자를 맞이했다. 꽤 긴 시간의 진료가 끝난 후 문을 열고 나온 이 원장에게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꿈이 있는지 물었다. “언제가 될 진 몰라도 더 많은 환자들에게 더 좋은 치료를 전할 수 있는 규모와 시설을 갖춘 국내 최고의 뇌신경 전문 병원을 만들고 싶습니다.(웃음)” 수식어 없이 담백한 대답은 어찌 보면 소박했지만 그 만의 원대한 꿈을 담고 있었다. 의사로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환자를 만나겠다는 그의 신념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태규 뇌리 신경내과>의 이름이 빛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www.friendclinic.com Profile서울 의대 및 동대학원 졸업하버드 의대 MGH 병원 임상 전임의(혈관 신경학)클리블랜드 클리닉 재단병원 임상 전임의경희의대 신경과 교수(현)서울대 겸임 교수(현)이태규 뇌리신경내과 원장대한 뇌졸중 학회, 임상신경 생리학회 정회원대한 노인신경학회, 치매학회 정회원대한 신경과학회 정책위원회 위원(현)대한 뇌신경 초음파학회 이사대한 두통학회 이사미국 신경과학회(AAN) ‘외국인 학술상’ 수상미국 신경과학회 교육문화재단 ‘젊은 두통 연구자상’ 수상Marquis Who's Who 세계 인명사전 3회 수록(Science&Engineering 부문, in America 부문, in the world 부문)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2-12-03
  •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대장·직장암 명의 김선한 교수 특별 인터뷰] 복강경 수술과 로봇 수술 시대를 연 희망스토리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오미경 기자] 복강경 수술과 로봇 수술 시대를 연 희망스토리대장·직장암 수술의 세계적인 권위자를 만나다!김선한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외과 교수 | 대한복강경대장수술연구회 회장 | 대한내시경복강경외과학회 학술위원장 | 싱가포르국립대학병원 초빙교수 대장·직장암 수술 세계 최고의 권위자 김선한 교수를 만나기 위해 찾았던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의 월요일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이른 아침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그를 만나 그의 인생커버 성공스토리에 담겨진 대장·직장암 수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어보았다. _취재 오미경 기자 / 글 이선진 기자 대장암 名醫가 전하는 건강을 위한 조언 30년 전만 해도 대장암은 동양인에게 많이 발병되지 않는 병이자 서구에서 많이 생기는 병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 통계로 볼 때 아시아권에서 대장암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나라는 싱가포르, 타이완으로 이들 나라에서의 암 발생률 1위는 단연 대장암으로 기록되고 있다. 지금 한국인에게도 위암에 이어 두 번째로 발생하는 암이 바로 대장암이다. 김선한 교수는 “5~10년 뒤에는 대장암이 국내 암 발생률 1위가 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한다. 대장암은 자각증세가 없으며 증상이 무척 다양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소장과 항문 사이에 위치하며 길이가 1.2m~2m인 대장은 암이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증상이 많이 달라진다. “우측 대장암의 증상은 빈혈로 나타나곤 합니다. 좌측 대장은 직경이 작기 때문에 이곳에 암이 생기면 통증이 많이 옵니다. 설사, 빈혈, 복통 등 증상은 굉장히 다양해요. 갑자기 설사를 자주 하거나 변비가 생기는 등 배변습관에 이상이 생기면 간과하지 말고 이상증세가 지속된다면 반드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김선한 교수는 여러 발병 요인들 중에서 대장암 발병요인으로 가장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식생활의 서구화’라고 말한다. 예방법이라 한다면 서구식 식사를 피하는 것인데 항상 채식만 먹을 수도 없는 일. “육류 섭취는 양보다 조리방법이 중요한데, 고온에서 요리하고 튀기는 것은 가장 지양해야 할 조리법입니다. 또한 섬유질은 대장 통과시간이 빨라 장내 발암물질과 장벽의 접촉을 줄이고 해로운 담즙산을 중화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섬유질 섭취를 많이 늘리면 대장암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그 외의 예방법으로는 조기 건강검진이 무척 중요합니다. 전체 대장암 중 20~25%는 유전적 요인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다음의 3가지 조건을 다 충족하는 경우에는 발병률이 높으므로 유전적인 영향을 고려해야 합니다. 대를 잇는 병력, 가족 중 3명 이상이 발병, 그 중 한명이 50대 이전에 발병했다는 점이 3가지 조건이며 이에 해당된다면 가족적 위험인자를 가졌다고 볼 수 있으므로 건강검진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세계를 석권한 복강경과 로봇 수술의 1인자 대장·직장암 수술 세계 최고의 권위자인 김 교수는 대장암 한 분야에만 연구에 매진해왔다. 1988년도에 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그는 1994년 대장항문외과로 세부전공을 정했고 미래의 수술 분야는 무엇이 될지, 어느 분야에 집중해야 의학발전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을지를 고민할 무렵, 복강경 수술을 접하게 됐다. 복강경 수술이 다른 수술 분야에 보편화 되는 것을 보고 대장암에도 복강경 수술이 대세가 되리라는 비전을 바라본 그는 서울대학교 박재갑 교수의 추천으로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클리닉에서 연수를 받게 된다. 미국에서도 복강경 수술이 시작할 단계였던 1995년, 그는 미국 복강경 대장암 수술의 선구자 Jeffrey Milsom교수와 2년간 함께하며 복강경 수술 기법을 연구·연마한다. 더욱 효과적이고 안전한 복강경 수술을 위해 매 환자별 케이스를 사례로 연구하며 복강경 수술에 대한 기본을 확립한 기간이었다. 연수시절 그는 최우수외과연구원상인 outstanding surgical research fellow award를 수상하기도 했다. 미국에는 fellow가 1년마다 바뀌는데 임상 fellow와 research fellow 각각의 분야에 전 세계 의료인을 대상으로 1명씩만 선정하는 award에 그가 수상인물로 선정된 점은 무척이나 영예로운 일이었다. 1997년 김 교수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복강경 수술은 위험하니 안 된다는 국내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김 교수는 그가 쌓은 데이터와 노하우를 바탕으로 학회에 발표도 하고 다수의 국외 학술지 논문을 게재하며 대장암 복강경 수술을 통한 임상실적을 꾸준히 냈다. 그러던 중 2005년 미국에서는 cost연구(다기관 무작위 비교연구-복강경 vs 개복수술의 치료 효과를 여러 병원이 참여해서 연구, 비교한 것)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때 메이요클리닉의 연구 주도자 하이디넬슨에 의한 미국 대장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결과인즉슨 복강경과 개복수술이 암수술에 있어 안전성 면에서 문제가 없으며 심지어 복강경 수술이 덜 아프며 회복이 빠르고 장기 생존률에서 차이가 없다는 점이었다. 발표 현장에서 기존의 복강경 수술을 반대했던 미국의 의사들조차 박수치며 환호했고, 이 발표를 고대했던 김 교수는 그 일대 변혁의 사건을 계기로 승승장구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수많은 데이터를 축적하여 우수성을 입증했던 김 교수의 대장암 복강경 수술을 전 세계가 인정을 하고 의료진들 사이에서 수술 시연과 강의 요청이 그에게 물 밀 듯이 밀려왔다. 한국에서 대장암 복강경 수술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었던 의료인들도 뒤늦게 이 수술기법을 배우고자 노력하는 분위기였다. 김 교수는 다시 대학으로 돌아왔다. 수백 수천 개의 수술보다는 젊은 의사들을 교육시키는 후학양성이 더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장암 수술에 대한 끊임없는 그의 연구와 노력은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았다. 2007년 하이테크놀러지를 접목한 신 의료기술이 도입되던 시대적 상황, 직장암 복강경 수술은 전 세계적으로 20%정도 밖에 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어려운 수술이었고 이를 극복한 방법으로 로봇 수술이 대두되었다. 미국에서 직장암과 비슷한 전립선암을 로봇 수술로 시술한 것이 50%나 되는 것을 알게 된 김 교수는 직장암 로봇 수술에 관심을 갖고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2008년 초, 김 교수는 학회에서 기존 복강경 수술의 한계를 로봇 수술로 극복, 대체할 수 있다는 혁신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이를 참관한 미국 인튜이티브사(수술용 로봇인 다빈치를 개발·판매·교육하는 기업) 관계자는 ‘로봇의 장점이 극대화되는 수술법’이라 극찬하며 그에게 공동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이로써 ‘김선한 교수의 직장암 로봇 수술법’은 로봇 수술의 세계적인 표준으로 기록되는 사건을 남기게 된다. 미 인튜이티브사 측에서 그의 로봇 시술과정을 녹화한 뒤 이를 교육용 CD와 매뉴얼로 만들어 전 세계 의료진에게 배포하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완성된 교육자료는 2008년 5월 미국 대장항문학회를 통해 발표, 배포되었고 그는 대장·직장암 수술의 세계적인 명의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2009년에는 세계 정상급 의료기관인 클리브랜드 클리닉에 로봇 수술 생중계를 하며 이 분야 세계 최고임을 증명했다. “1995년 7월부터 2년간 클리브랜드 클리닉 대장외과에서 연수 받은 경험이 있던 제가 12년이 지난 후 클리브랜드 클리닉 의료진에게 로봇 수술법을 직접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감회가 정말 새로웠습니다.” 그는 국제학회나 해외병원 초청으로 무수히 많은 수술 시연(Live Surgery)을 하며 정상급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가 임시면허를 받아 각 나라에서 시연 및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자격을 부여받은 나라는 11개국이나 된다. 아직까지 로봇 수술은 비용적 부담과 단기간 내 로봇 도입으로 무분별하게 로봇 수술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미래에는 당연히 수술비용도 줄어들 것이고 더 좋은 기술을 접목시킨 새로운 로봇이 나올 것이라고 김 교수는 기대했다. “로봇 수술은 외과의사의 환경을 바꿀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손목에는 영광의 수술 흉터가 남아있다. 수없이 많이 집도했던 복강경 수술로 손목과 인대를 많이 써서 오래 전에 생긴 혹이 점점 커지는 바람에 그가 직업을 이어가기 힘든 상황까지 갔던 것이다. 지금은 혹 제거 수술을 받고 손이 저리거나 수술 할 때의 별다른 지장은 없지만 이렇듯 다년간 복강경 시술을 한 의사라면 손목이니 팔이니 손가락이니 어느 하나 성한 데가 없다고 한다.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이야기한다면 의사가 받는 이점은 고스란히 환자들이 받는 이점으로 돌아가며, 특히 로봇 수술이 복강경 수술을 일정 부분 보완해 준다는 점에서 미래에 거스를 수 없는 대세란 바로 로봇 수술이라며 김 교수는 힘주어 말했다. 주어진 시간 동안 의사의 본분과 역할에 충실하고파 그는 수술실에 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환자들은 의사의 말을 생각보다 훨씬 더 절대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다보니 환자가 수술대에 누워 자신의 몸을 맡긴다는 것에 큰 책임감을 느끼게 되고요. 때문에 한 치도 소홀할 수가 없습니다.” 가장 최선의 수술 상황은 매순간 딱 하나밖에 없다고 말하는 그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를 예를 들어 이야기를 풀어갔다. “정경화 씨가 연주할 때 왜 인상을 쓰는지 아시나요? 가장 완벽한 음을 내기 위해 그 순간 최대한 집중을 하다보면 인상이 써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수술도 마찬가지예요. 처음 시작부터 끝까지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가위질은 무엇인가, 최선의 수술기법은 무엇인가... 이렇게 최선의 것들이 모여 1초, 그 1초들이 모이면 1시간이 되고 2, 3시간의 수술이 되는 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수술이 성공적으로 잘 될 경우 느끼는 희열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지요.” 한 분야에 오롯이 열정적인 삶을 살아온 그에게 남다른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만으로 54세인 저는 제 나이에서 은퇴가 언제일지 생각하게 됩니다. 이유는 이 분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를 셈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디까지가 내 역할일까, 그 기간에 내가 무얼 해야 하나, 그러니 이 계획은 내가 세워야겠다 하고 말이지요.” 이어서 김 교수는 희망에 부푼 꿈을 이야기했다. “첫 번째로 로봇 수술을 보편화 시키는 것. 그러려면 전 세계 여러 의사들과 병원, 기관, 회사들이 열심히 개발을 하고 있는 가운데 그 결실로 새로운 로봇이 개발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많은 의료진들이 쉽게 로봇 수술을 배울 수 있도록 해야겠고요. 끝으로 복강경 수술도 잘 교육시킬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의료진들이 복강경 수술을 일반화 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는데, 다른 나라의 경우 좋은 교육이 없든지, 시설이 없든지 복강경 수술을 제대로 도입시키기에 마련되지 않은 환경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국제학회 등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열어주어 국내외적으로 많은 의사들에게 교육시키는 역할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는 의사들의 피땀 어린 노력들이 궁극적으로 많은 환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기를 원한다. 개인적 바람으로는 환자들이 자신의 몸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의사로 자신을 불러주기를 원한다. 또한 그에 못지않게 그가 이 분야에서 몸담고 있는 전문성, 그 최고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그가 가진 능력, 달란트를 환자들에게 넉넉히 베풀기를 소망한다. 김 교수는 환자들로부터 불리는 별명 중에 가장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다는 특별한 별명을 소개했다.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어느 영화배우의 부친이 붙여준 ‘철인’이라는 별명인데 의미인즉슨, 강철 같은 체력이 있다는 것과 철저하다는 뜻을 내포한 말이란다. 의약분업이 일던 시기, 한창 바쁠 때도 아침과 밤으로 끄떡없이 회진을 돌았고 응급실장까지 맡고 있던 힘든 상황에서도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철저하게 돌봐주었던 그 한결같은 모습 때문이었다. EBS 메디컬 다큐멘터리 ‘명의’에 출연, 방송되기도 했던 김 교수는 그가 환자로부터 철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데에는 그만큼 가정에 희생이 따랐기 때문이라며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을 표했다. “1월 1일 신년 가정예배 때였어요. 예배만 마치고 병원에 간다고 나오니깐 급기야 아내가 오늘 같은 날도 가야하냐며 ‘환자가 중요해요? 가족이 중요해요?’라고 물었습니다. 아내의 말을 빌자면 제가 1초의 주저함 없이 ‘환자가 중요하다’고 이야기 했다지요. ‘나는 뭔가, 우리 가족은 무언가’ 섭섭했던 아내는 방송에서 이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흘렸는데 그 바람에 프로그램 시청률이 5위 안에 들었어요. 지금 다시 묻는다면 ‘가족이 더 소중하다’고 말할 겁니다.(웃음)” 하루 24시간이 짧은 외과의사로서의 고된 삶, 복강경 수술에 매료돼 밤낮없이 대장암과 직장암 수술에 매진했던 지난날의 시절들. 오로지 한 분야에 쏟아 부었던 김 교수의 집념과 열정은 한국 의술의 세계화 및 후학양성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대장·직장암으로 고통 받는 수많은 환자들에게 새 삶을 선물해주었다. 언제나처럼 신뢰와 존경 받는 의사로, 교수로, 아버지로 그가 가진 달란트를 마음껏 펼쳐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회의 밑거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Profile고려대학교병원 외과교수대한복강경대장수술연구회 회장싱가포르국립대학병원 초빙교수대한내시경복강경외과학회 학술위원장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졸업동 대학원 석, 박사 졸업 미국 대장항문학회(ASCRS) 정회원미국 소화기내시경외과학회(SAGES) 정회원유럽대장항문학회(ESCP) 정회원국제 소화기외과학회(ISDS) 정회원SCI 논문심사위원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2-11-26
  • [유니베라 이병훈 대표이사 특별 인터뷰] 자연의 혜택을 인류에게 전하는 진정한 웰니스기업을 지향하다!
    [위클리피플= 이미나 기자, 오미경 기자] 유니베라, 웰니스 기업의 중심으로 거듭나다! ‘자연의 혜택을 인류에게’ 전하는 CEO 이병훈 (주)유니베라 대표이사 웰빙의 시대는 갔다. 이제는 웰니스다. 참살이(웰빙)와 행복(happiness)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진 웰니스는 육체적 건강을 위하는 단계를 넘어 마음의 풍요로움과 영혼의 건강까지 삶에 녹여내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내 몸과 마음의 건강함, 사회적인 책임과 가치 실현을 통한 영혼의 건강함을 위해”라는 보다 적극적인 건강 지향의 개념이다. 그 바람을 타고 곳곳에서 웰니스산업이 IT산업 이후 최고의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가운데 <주간인물>은 국내 최고의 알로에 기업을 넘어 글로벌 천연물 기업으로 도약, 회사 안팎으로 진정한 웰니스 기업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주)유니베라 이병훈 대표를 [대한민국을 빛낸 올해의 CEO]로 선정하여 ‘오직 하나의 진실’로 승부를 걸어 온 유니베라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_취재 이미나 기자 / 글 오미경 기자 (주)남양알로에, 웰니스 기업 유니베라로 다시 태어나다 알로에에 관한 세대 간의 인식 차이는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알로에 산업을 개척 해 온 국내 최고의 기업으로 남양알로에를 꼽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유니베라는 바로 이 (주)남양알로에의 새로운 이름으로 이병훈 대표의 선친 故 청강 이연호 회장으로부터 그 역사가 시작 됐다. 청강 이연호 회장은 40대 중반 간염을 앓던 중 우연히 알로에를 복용하여 톡톡한 효과를 보았고, 그 뒤 자신이 얻은 자연의 혜택을 모두에게 나눠주겠다는 일념으로 알로에를 기반으로 한 건강보조식품과 화장품 사업을 시작하여 유니베라의 전신을 일구어냈다. 그러나 이병훈 대표는 처음부터 이 길을 택한 것이 아니었다. “사회학도였던 저는 전공을 살려 학계에서 활동하려고 했지 사업은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다 대학원 재학 시절, 우연히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알로에라는 소재의 유익한 가치와 자연적인 선순환 기업 모델을 지향하는 사업 내용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유난히 사이가 좋았다는 이들 부자간에 사업적으로 연결 고리가 생긴 것은 바로 ‘자연의 혜택을 인류에게’에게 라는 故 청강 이연호 회장의 창업 이념이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업을 좋은 방법으로 잘 키워서 많은 사람들이 일하도록 하면 그들이 행복해질 것이고, 행복해진 그들이 좋은 일을 하면서 자식을 키워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업의 선순환”이라고 이연호 회장은 강조했다. 지난 2006년, 남양알로에의 30주년을 기점으로 회사명을 바꾼 유니베라는 국내 알로에 시장의 45%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전국적으로 400여개의 대리점과 16,800여 명의 UP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지식경제부가 주관하는 세계 일류상품에 2003년부터 9년 연속 선정되는 등 업계 선두로서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알로에 소재의 연구에 대한 노하우를 통해 천연물 소재로까지 연구 영역을 넓혀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등 웰니스 시장 진출을 본격화 하고 있다. 유니베라의 천연물 연구 경쟁력, 이렇게 키웠다 알로에 명가 유니베라는 현재 다양한 천연물 연구 개발 경쟁력을 갖추고 글로벌 천연물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유니베라의 연구 경쟁력은 크게 몇 가지로 정리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매년 매출의 10%이상 R&D투자가 이뤄지는 점이다. 1989년부터 꾸준히 이어온 연구개발의 투자로 유니베라는 8종의 천연추출물을 발견, 국내외 48개국에 특허를 출원하여 세계적 표준으로 통용될 수 있는 유니베라만의 천연물 품질 기준을 확립하고 독보적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활발하게 지속되어 온 R&D 투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천연물 DB, 파이토로직스를 구축하게 되는 또 다른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유니베라는 민간으로서는 가장 많은 숫자인 1만3,000여 종에 이르는 천연물 정보 DB기술력을 바탕으로 천연물 관련 특허도 총 400개 이상의 최대 규모를 보유하고 있다. 유니베라의 고유 기업 모델인 에코넷 시스템은 천연물을 직접 키워서 직접 소재화, 직접 제품화 하여 제품을 전달하는 판매 시스템까지 망라한 개념으로 어느 기업도 섣불리 구축할 수 없는 혁신적인 경영 모델로 평가 받는다. “효율적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이 시스템이 왜 없을까 생각했는데 힘들기 때문이었어요. 천연물은 기후 조건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재배에서 실패하기 쉽고, 연구 역시 변수가 많아 실패의 위험이 크니까요. 그러나 유니베라는 처음부터 이 시스템을 구축했어요. 위기도 많았지만 농부의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유익한 제품을 세상에 전한다는 비즈니스모델의 근본은 절대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안정된 시스템 궤도에 올라 설 수 있었죠.” 유니베라는 고유의 연구 경쟁력을 통해 알로에 공정의 효율성을 증대시켜 2009년 알로에 유효성분의 손실은 최소화 되고 효능은 극대화 된 안정된 4세대 액티브알로에, 큐매트릭스 알로에를 생산했다. 이를 통해 세계 최초로 미국 FDA인증을 획득했을 뿐 아니라 2000년 중국 경공업청의 알로에 품질 기준으로 채택되는 등 글로벌 시장에 유니베라의 입지를 또 한 번 당당히 선보였다. 그 외에도 GAP글로벌 인증 획득으로 농산물 관리의 안전성을, GMP인증을 획득하여 제조 및 품질관리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인정받았다. 여의도의 12배에 달하는 크기의 대규모 해외 농장 운영으로 원료를 직접 재배하고, 에코넷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 이병훈 대표는 국가기후 및 코스트 요인과 함께 1980년대를 회상하며 말했다. “당시 국내에 알로에 붐이 일던 시기였는데 그 붐을 타고 가짜 알로에가 판을 치자 진짜 제대로 된 알로에를 확보하는 일과 그 품질을 유지하는 일, 그리고 품질을 유지하여 생산하는 일을 옳은 방법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짜 알로에가 아닌 진짜 자연의 혜택을 담은 천연물을 고객에게 전하겠다는 일념으로 알로에가 자라기 좋은 조건을 찾아 농장을 개척하고, 표준 품질 기준을 자체적으로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유니베라는 1988년 미국 텍사스 힐탑가든 농장 설립을 시작으로 89년 세계 최대 규모의 멕시코 탐피코 농장, 98년 러시아 크라스키노 농장, 2008년 중국의 하이난 농장과 공장을 완공 하였고, 유니베라 연구력으로 밝혀진 효능을 담고 있는 최적의 자원이 있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든 생산 기지를 마련하리란 계획을 밝혔다. 마음과 영혼을 생각하는 유니베라의 진정한 웰니스! 이 대표는 건강기능식품과 함께 화장품 브랜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유니베라는 피부에 좋지 않다고 통념적으로만 아는 유해물질까지도 모두 빼고 화장품을 만듭니다. 대표적으로 리니시에 W389는 도라지 난초 뿌리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만든 것인데 현존하는 피부 미백제로는 가장 강력한 제품으로 개발되어 모든 피부에 안심하고 쓸 수 있어요.” 이 제품의 성분은 유명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회사에도 유니젠(유니베라 천연물 연구 계열사)이 공급하고 있다. 또 하나 자신 있게 말하는 제품 ‘빌리브웰니스푸드’는 몸의 웰니스를 실천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식습관 균형을 위한 고단백 저열량 건강식품이다. 천연원료 40여 가지가 균형 있게 들어갔고, 특히 원료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콩은 역사적으로 콩의 기원지로 알려진 연해주 지역, 러시아 크라스키노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것이라 그 의미와 품질이 남다르다. 품질과 효능 면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유니베라 제품을 방문 판매 위주로만 만나 볼 수 있다는 것에 아쉬움과 궁금함을 담아 또 다른 마케팅 판로 개척 계획은 없는지 이병훈 대표에게 물었다. “UP님들의 연령대가 주로 30대 후반부터 있다 보니 젊은 층 마케팅은 물론 한계가 있겠죠. 그러나 사람의 온정을 느끼면서 비즈니스를 하는 직접 판매 구조는 우리의 미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수할 생각입니다. 16,800여 명의 UP님들이 유니베라의 웰니스를 이끌어가는 동지에요. 우리가 연구한 제품으로 그 분들이 사업과 생활을 영위하고, 꿈을 그려나가는 것도 중요한데 그 손을 놓고 다른 것을 생각할 수는 없어요.” UP를 통해 여성의 사회참여를 독려하는 ‘유니베라 커뮤니티’에 대한 소신과 의지가 돋보였다. 유니베라는 진정한 웰니스를 위해 이웃과 마음을 나눈다는 생각으로 ‘힐링잎의 기적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모든 유니베라 제품에 표시된 힐링잎 환산 숫자가 고객 구매 시 자동 적립되어 전 세계 영양 결핍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에게 비타민을 전달하게 되는 캠페인으로 2012년 11월 지금까지 약 227만 여명의 소중한 생명에게 사랑을 전했다. 그 외에도 직장모금 나눔 캠페인, 문화적 소외를 받는 지역민을 위한 음악회, 소년 소녀가장 집 고쳐주기 등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펼치며 사업적 미션과 함께 ‘꿈을 함께 하는 행복한 일터’라는 유니베라 커뮤니티의 미션을 실천하고 있다. 성공한 경영인 이병훈, 그가 말하는 CEO의 삶 웰니스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는 유니베라의 오늘이 있기까지 이병훈 대표는 CEO로서 어떻게 고비를 극복했을까? “태생이 긍정적이긴 하지만 자연재해와 같이 가정대로 안 되는 1% 때문에 힘든 적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이기려고 노력했어요. ‘내가 이 일을 왜 하나’ 되짚어 보면 답은 자연의 혜택을 인류에게 전하겠다는 우리 기업의 출발점과 항상 맞닿아있었어요.(웃음)” 고비마다 이 일을 시작한 원동력이 그의 해결책이 되었다. 더불어 CEO로서 그는 국가 차원의 창업 장려 활동은 지향해야 한다며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새로운 기업의 탄생으로 자본, 학연, 지연에 묶여 닫혀있던 기회의 문이 열린 것을 긍정적 변화라고 말했다. “그러나 단, 사업은 책임을 지는 일이기에 흐름만을 따라 시작해서는 안 되고 철저한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CEO의 책임을 위한 제 1의 덕목으로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꼽았다. 사회학을 전공하고 사업에는 관심이 없던 그가 유니베라의 최고 경영자로서 선친의 명성을 지금까지 잇고 있는 것도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근성이 있기에 가능했다. 유니베라의 이름은 창업주 故 청강 이연호 회장이 지은 것으로 ‘유니’는 하나, 단일의 의미이고, ‘베라’는 veritas라는 라틴어 어원으로 진실, 진리라는 의미이다. 즉, 유니베라는 ‘오직 하나의 진실(진리)’이라는 뜻이다. 이병훈 대표는 “자연에서 얻은 각종 천연물의 혜택을 가장 자연주의적인 방법으로 사업화하고, 그 사업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돈이 목적이 아닌 더 좋은 일을 하여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 그것이 바로 유니베라가 지향하는 변할 수 없는 고집이자 오직 하나의 진실“이라 말했다. 그의 말처럼 유니베라의 뜻에 담긴 고집과 진실이 더욱 빛을 발하여 세계적인 웰니스 기업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될 그 날을 <주간인물>이 응원한다. www.univera.com Profile<학 력> 1981. 경복고등학교 졸업1986.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 졸업 (사회학 전공 학사)1987. 미국 위스콘신 대학원 졸업 (사회학 전공 석사) <주요경력>1988~1998 미국 알로콥(ALOECORP)설립 및 대표이사 1995~1998 미국 유니젠생명과학(Unigen Pharmaceuticals)설립 및 대표이사1996~2006.4.4 (주)남양알로에 대표이사2000~현재 (주)남양 대표이사, 미국 에코넷 홀딩스(ECONET,Inc.)설립 및 대표 이사 (주)유니젠 설립 및 이사회 의장2006.4.5~현재 (주)유니베라 대표이사 총괄사장/ ECONET 총괄사장 <주요사회활동>1988 국제알로에기준심의협회(IASC) 이사1989 알로에 연구재단(ARF) 부회장2000 국제 알로에 기준 심의협회(IASC) 회장2001 국제 알로에 기준 심의협회(IASC) 명예의 전당 헌정2003 세계 경제포럼(WEF) 차세대 리더 2004 위원회 의장2007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 회장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2-11-21
  • [알레르기 면역치료의 권위자 유태준 교수 특별 인터뷰] 난치병 환우들을 위한 새 생명 희망스토리!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난치병 환우들을 위한 새 생명 희망스토리알레르기 면역치료의 세계적인 권위자를 만나다!유태준 교수 | 의학박사 | 유태준의원 원장 | 임뮤젠 이사장 | 前 테네시 의과대학 교수 기자가 만난 유태준 교수는 일흔 여덟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젊은 열정이 가득한 학자의 모습이었다. 그는 연구하는 게 행복하다 했고 불치병을 고치는 것이 그의 취미라고 소개했다. 그는 다음 세 가지를 갖춘 이상적인 대학교수의 상을 밝히며 이를 항상 꿈꿔왔다고 한다. 첫째로 풍부한 임상실험을 통해 환자를 잘 고쳐야 하고, 둘째로 다져온 실력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잘 가르쳐야 하며, 셋째로 자신의 연구분야에서 업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 기자가 본 유 교수의 모습은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이상적인 교수이자 참 의료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실제로, 면역질환 분야의 권위자인 유태준 교수는 이비인후과 저널 상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인물로 높은 명성을 자랑한다. 그는 알레르기성 비염, 기관지 천식, 아토피 피부염 등 알레르기 환자를 위한 근본적인 면역치료와 난청치료의 권위자이며 세계적인 명의이다. _취재 ・ 글 이선진 기자 / 사진 이미나 기자 면역질환ㆍ알츠하이머ㆍ난청 치료에 희망의 빛이 되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유태준 교수는 우리나라 전체 의과대학 중 전문분야에서 단 2명을 뽑았던 원자력 유학생으로 선발돼 1959년 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에 입학했다. 그는 4년간의 biophysics 공부를 마치고 박사학위를 받게 된다. University of Tennessee 의과대학 교수를 지낸 유 교수는 면역학을 공부하며 환자를 진료해오던 중에 새로운 분자생물학 연구에 대한 강한 열망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후 그는 노벨상 수상인물이 23명 배출될 정도로 유명한 Caltech(캘리포니아 공과대학)으로 옮겨 분자생물학 연구에 매진한다. 1990년, 그의 나이 55세 때였다. 그는 System Biology의 선조인 Leroy Hood 교수와 교수실을 함께 쓰며 분자생물학을 연구하여 유전자 치료에 깊은 조예를 갖게 된다. 후에 유전자 구조 분석의 알레르기 치료를 연구한 유 교수는 주사 한 번으로 집먼지 진드기 알레르기를 낫게 하는 DNA 백신 면역치료에 2008년 특허를 받게 된다. 그의 지적 호기심은 전문분야와 연계된 또 다른 학문으로 이어졌다. Washington University, Barnes Hospital에서 내과 인턴, 레지던트와 fellow를 지낸 유 교수에게는 당시 면역학의 지식이 한계를 드러내던 때, 면역학자가 되어야겠다는 부푼 꿈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워싱턴대학 재직 후 임상면역학 분야의 지식을 더 높이기 위해 David Pressman 교수를 찾아가 그와 함께 연구하며 Senior Research Fellow를 지내게 된다. David Pressman 교수는 면역학의 시초인 ‘Linus Pauling 교수’의 수제자인데, ‘Linus Pauling’은 노벨 평화상과 노벨 화학상을 모두 수상하며 학문에 업적을 남긴 미국의 유명한 화학자이다. 유 교수는 David Pressman 교수와 함께한 연구시절, 중요한 학문 발표를 하게 되는데 내용인즉슨 이러하다. 항체구조는 heavy chain과 light chain으로 이뤄져 있는데, light chain에 결합능력이 있다는 것이 그가 최초로 발견한 부분이다. light chain에 결합능력이 있다 함은 heavy chain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준 계기이자, light chain 역시 굉장히 중요하다는 의미를 증명한 사건이 되었다. 버클리대학에서 생물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유 교수는 light chain에 결합능력이 있다는 확정적 증명을 물리화학적 방법으로 증명과 학문발표를 통해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인 사이언스지에 이름이 등재되기까지 했다. 이후 베트남전쟁으로 인한 징집에 군입대를 1년 연기한 그는 1968년, 뉴욕대학에 가서 류마티스 필드 상에서 영웅처럼 유명한 인물인 플랭클린 교수와 함께 연구하며 1년을 지냈다. 이때 monoclonal 항체의 결합능력을 관찰해 발표함으로써 자가면역병의 이해에 새 장을 여는 등 그는 자신의 연구 분야에 한계를 두지 않았다. 미군 육군 군의 중령이던 34세 때 한국에서 군 생활을 하겠다는 그의 의지대로 국내로 와 내과부장을 맡았던 유 교수는 후에 샌프란시스코 Letterman General Hospital에 들어가 알레르기 면역학 부과장을 지낸다. 밤낮없이 비염과 천식치료에만 매달린 날들이었다. 이때 그는 새로운 발견을 통해 또 하나의 큰 업적을 남기게 된다. 유 교수는 겨울에 많은 천식 환자들이 Junifer tree pollen의 알레르기로 발생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Junifer Tree 항원의 구조와 교차반응연구’를 했다. Junifer Tree의 꽃가루로 인한 알러지 천식은 Junifer Tree에 속하는 항원이 14가지가 되는데 이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밝힌 내용이다. 명쾌하게 증명된 그의 학문발표는 오랫동안 다수의 문헌에 인용되는 기록을 남겼다. 이후 그는 알레르기 전문분야에서 중요한 발표 사례를 수없이 남겼는데, 그 중 대표적인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1972년 미국 아이오대학에서 내과 조교수, 부교수를 지낸 시절 유 교수는 HLA항원(사람의 주요 조직적합 항원계)과 알레르기 유전이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는 알레르기항원의 구조만 알면 알레르기 치료가 가능하며 가족의 유전현상에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하였다. 두 번째 사례로, 그는 알레르기가 면역치료로 낫는 이유를 최초로 발견했다. 면역치료로 알레르기를 완치할 수 있는 이유는 임파세포의 반응을 저하시키는 세포가 면역억제 세포(supressor cell)이며 이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즉, 조절T세포(지금의)가 약하면 알레르기가 생기게 되는데, 면역치료를 하면 조절T세포가 올라가 알레르기가 낫게 된다는 학설이다. 본 학문발표를 비롯하여 유 교수가 새롭게 발표한 업적들은 인류의 학문발전에 큰 공헌을 남기게 된다. 그는 1989년부터 틈틈이 한국으로 건너와 알레르기성 비염, 천식환자를 진료했다. 국내 비염환자가 800만, 천식환자가 200만명에 이를 정도로 많다보니 이들을 치료해줘야겠다는 사명감이 확고했고 우리나라를 위해 인생의 10%는 기부하고 환원해야겠다는 소명의식이 충만했던 이유였다. 유 교수는 한국으로 돌아와 2009년 9월부터 6개월 이상을 줄기세포를 이용한 난치병 치료에 힘을 쏟았고 2010년부터는 줄기세포 연구를 병행하며 유태준의원에서의 진료에 열정을 발휘했다. 그는 궁극적 치료이자 원인치료인 면역치료로 알레르기를 치료하며 장기적인 면역주사로 환자의 증상을 호전시켰다. 특별히 치료 목표로 연구한 의료분야는 알러지천식, 자가면역병, 난청, 알러지와 치매용의 DNA백신이며 성인 자가유래 줄기세포 치료 효과 체험부분은 난청회복, 관절염, 다발성경화증, 갑상선염, 궤양성대장염, 만성폐쇄성폐질환, 아토피성피부염, 최근엔 당뇨병으로 인한 혈관병, 눈병 등 18개의 불치병에 주요 진전을 기록하였다. 알레르기 면역 치료에 세계적인 권위자 유태준 교수. 유 교수에 대한 입소문을 듣고 치료를 받기를 희망하는 환자들이 전국 곳곳에서는 물론 해외 먼 나라에서도 찾아오는데, 인터뷰가 진행되었던 당일에도 휴진일인줄 모르고 유태준의원을 방문해 발걸음을 돌리는 이들이 꽤 많았던 터. 기자는 인터뷰 진행 중에도 그가 세계적인 명의임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유 교수에게 보람된 기억을 묻자, 그가 연구한 의료분야에서 배출한 100여명 이상의 의료인들이 세계의과학계에서 선진의술을 발휘하고 의과학계 국제무대의 리더로서 활동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이탈리아 제자들이 많고, 한국에서 배출된 교수가 30여명, 일본에서 18명, 그 18명 중 4명이 주임교수라 하니, 그의 별명이 ‘King Maker’로 통할 정도. 그의 손에서 김용 세계은행 총재(다트머스 대학교 제 17대 총장)를 비롯한 전 세계 정상급 전문의료인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몇 해 전 자가면역질환으로 청력을 거의 잃다시피 한 19세 여대생(클로이)에게 자가줄기세포를 주입한 결과, 2개월 만에 청력이 정상치에 가깝게 회복됐다는 보고가 나와 주목을 받았다. 유태준 교수와 알앤엘바이오 측이 15살 때부터 청력이 점차 소실되는 자가면역질환을 앓아온 미국인 클로이 양에게 지방줄기세포를 추출, 배양한 뒤 정맥 등으로 주사한 결과 2개월 만에 청력이 회복되었음을 밝혔던 사례다. 줄기세포 시술 후 클로이양의 왼쪽 귀는 청각이 완전히 소실됐던 상태에서 정상치 대비 약 50% 정도의 청력을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청력이 50% 정도 감소해있던 오른쪽 귀는 정상의 90%에 달할 정도로 회복되었다. 유 교수는 이 같은 임상결과를 국제지방줄기세포학회에서 발표했다. 그는 “체내에 주입된 줄기세포가 면역질환을 관장하는 체내 T-세포에 영향을 미쳐 효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며 앞으로 환자 자신의 지방줄기세포를 이용해 난청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자가면역성 난청질환의 발병 기전과 치유과정을 유전자 레벨에서 규명하여 지난 4월 미국 특허청에서 특허를 받았으며 수많은 논문이 발표되고 특히 미국 science 잡지, 영국 nature 잡지 gene therapy에 발표되어 해외언론의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유전자치료로 자가면역질환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유 교수는 30년간 내이 면역학의 분자면역학적 기반을 세워 난청치료를 가능케 한 것처럼 치매도 고쳐보리라는 일념 하에 연구에 몰두했고 노인성 치매를 위한 백신을 개발해 인류의 건강증진에 공헌했다. 유 교수는 치매 백신이 임상실험을 통해 시판된다면 치매 예방은 물론 현재 치매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의 증세 또한 호전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치매 백신 외에도 집먼지 진드기에 의한 천식 백신, 자가면역 난청에 의한 백신 특허를 받았다. 특히 치매 백신은 전 세계를 상대로 특허 신청을 해 현재 미국, 러시아, 멕시코, 뉴질랜드에서 특허등록 승인을 받았으며 심사 중인 각 나라에서도 승인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불치병 환우들을 위한 삶, 그의 꿈은 현재진행형 여든의 나이를 바라보는 유 교수는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그는 소식을 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하며 항노화제가 들어있는 포도, 와인을 즐겨 먹는다. 종류가 75여 가지가 되는 세상의 불치병 치료를 위해 그간 쉼 없이 달려온 그는 현재까지 이룬 것도 많지만 아직 해야 될 일이 더 많다고 한다. “3가지의 불치병을 2년 안에 치료할 계획을 갖고 있어요. 그러니 제가 앞으로 50년은 더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불치병, 난치병 치료를 위해 하나님이 이 땅에 저를 보내셨으니 살게 해 주시겠지요. 저는 내과의사로서 체험하고 연구한 의술 노하우를 불치병 환우들에게 베풀어 치료 희망을 주는 의사로서 남은 여생을 과감하게 헌신, 봉사할 사명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그는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유 교수는 특히 미래 의과학계의 의료산업 동력이라 일컫는 줄기세포 치료 센터 역할을 감당할 StemGen과 ImmuGen을 설립하여 치매 알츠하이머의 백신 개발 등에 전심전력을 다하겠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전했다. 2008년부터 줄기세포치료를 연구 개발하여 2009년 초 퇴행성관절염을 앓고 있는 환자를 2주만에 고쳐 미국 FOX TV에 방영되기도 한 유 교수는 줄기세포치료에 대한 강한 확신을 드러냈다. “12월에 브라질에 가서 줄기세포 강의를 할 계획입니다. 줄기세포치료는 세상의 많은 난치성 질환 치료의 열쇠가 될 테니까요. 저는 줄기세포회사를 전 세계 각 나라에 세워 네트워킹을 이루고 세상의 모든 난치병을 꼭 치료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있습니다.” 그는 새로운 도전에 거침이 없다. 알레르기와 관련된 질환이라면 더 이상의 도전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에이즈 치료와 유방암, 전립선암 분야에 도전할 계획이란다. 유 교수에게는 세 명의 딸들이 있다. 큰 딸은 작가이며, 둘째 딸은 영화 감독(한인 최초의 할리우드 여성 감독 ‘크리스틴 유’ /데뷔작: 웨딩팰리스), 셋째 딸은 변호사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그는 항상 도움의 손길이 되어주었다는 가족과 지인을 향한 감사 인사 또한 잊지 않았다. 포근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따뜻하게 취재진을 맞이해준 그는 ‘면역 치료의 세계적인 권위자’라는 타이틀이 무색하도록 겸손하고 온유한 모습이었다. “줄기세포치료로 난치병을 고친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이었다”, “세상의 모든 불치병이 사라질 그날의 기적을 믿는다”라고 전하는 유 교수. 그 잔잔하지만 힘 있는 고백에 깊은 감동과 소명의식이 물씬 느껴졌다. 인류의 행복과 건강을 염원하는 그의 꿈과 큰 뜻을 위클리피플이 함께 응원한다. 유태준의원 www.krallergy.comTel. 02-543-8606~7 ◈Profile유태준(Tai-June Yoo, M.D.,Ph.D.) 1953-1959 서울대학교 의과대학(M.D.)1959-1963 University of Califonia at Berkeley(Ph.D.)1972-1975 lowa 주립대학교 의과대학 조교수1975-1980 lowa 주립대학교 의과대학 부교수1980-2010 University of Tennessee 의과대학 내과 교수 알레르기/면역학과 주임교수 이비인후과 교수 이비인후과 연구소 공동연구 소장(겸임) 분자과학과 교수(겸임) 신경의학 프로그램교수(겸임) Founder/CEO2009 ImmuGen Inc. 치매병유전자치료회사 Founder/CEO StemGen Inc. 성체줄기세포치료회사2010 University of Tennesse Grad school of Business Administration Knoxville,T.N. (M.B.A.) 주요포상내용1972-1975 Clinical Investigator U.S.V.A. Hospital1998 함춘원 상 서울대학교 의과대학1999 자랑스러운 서울 의대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2005 한국 분자세포 생물학회 2005년 과학상 일천상 수상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2-11-21
  • [카오리온 코스메틱스 오창록 대표이사 특별 인터뷰] 이야기가 있는 천연화장품 브랜드, 카오리온 코스메틱스
    [위클리피플=오미경 기자, 유하라 기자] “끈기를 가지고 버텨라!” 브랜드에 이야기를 담는 젊은 CEO 오창록 (주)카오리온 코스메틱스 대표이사 청년층 체감실업률이 22%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은퇴한 베이비부머들 약 50%가 소자본 창업에 뛰어들어, 한해 평균 60만개 업소가 생기고 58만개 업소가 폐업을 선언한다는 통계도 발표됐다. 과거 건실했던 중소기업들 또한 글로벌 재정 위기와 내수부진 등의 원인으로 연쇄 도산하면서, 우리 사회는 IMF 때와 비슷한 경제 불황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 불황과 거대 기업의 등쌀에도 굴하지 않고, 성장에 가속도를 내고 있는 기업이 있다. 바로 국내 최초 천연화장품 회사인 (주)카오리온 코스메틱스(이하 카오리온)다. 사실 외국계 거대 기업은 물론 내로라하는 국내 기업들도 발을 담그고 있는 화장품 업계에서 이 같은 성장세를 보이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에 주간인물은 카오리온 오창록 대표이사를 대한민국을 빛내는 젊은 CEO로 선정하여, 카오리온만의 성공 비결과 예비 CEO들을 위한 실질적 조언 등을 들어보았다. _취재 오미경 기자 / 글 유하라 기자 정직한 제품으로 소비자 신뢰 쌓은 (주)카오리온 코스메틱스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이 연이어 사망 선고를 받는 가운데, 얄미울 만큼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카오리온의 성공비결은 단 몇 가지로 정리된다. 제품의 정직함, 정직함에 따른 높은 제품 만족도와 신뢰도, 그리고 제품에 대한 철학이다. 한 번 카오리온 제품을 사용한 소비자들은 쉽사리 다른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 즉 소비자를 완벽한 ‘내 편’ 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거대 기업 사이에서 승승장구하는 중소기업 대부분의 성공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이는 역으로 제품 또한 소비자를 배신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포함되어 있다. 1995년, 카오리온은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무색소, 무방부제, 무향료, 무알코올 제품만을 출시한다는 신념을 저버린 적이 없다. 카오리온 창업주(주진영)가 ‘화장품 먹는 여자’ 라는 별명을 얻은 것처럼, 창업주는 모든 제품을 직접 개발하고, 발라보는 것도 모자라 먹어본 후에 출시한다. 이러한 고집이 화려한 광고나 스타 모델 기용 없이 제품 하나만으로 소비자에게 꾸준한 선택을 받아온 이유이다. “정직한 제품이라는 것은 자신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제품의 모든 원료를 최고 등급만 사용하고 있어요. 예컨대 보습제품의 필수 성분인 히알루론산도 등급이 있는데, 등급을 일부러 표기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낮은 것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카오리온은 늘 1등급 원료만을 사용해 왔습니다. 이 때문에 제품의 원가가 비교적 높은 편인데, 광고비 대신 제품에 투자했고, 고객 관리에 신경 써왔습니다. 광고로 제품을 알리기보다 고객에게 인정받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화장품은 시각적·후각적인 면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당시 무색소, 무알코올, 무향료 제품 출시는 상당히 충격적이고 위험한 시도였다. 화장품에 알코올은 방부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발랐을 때 일시적인 흡수감이 좋기 때문에 타 업체에선 카오리온의 무알코올 화장품을 두고 ‘미쳤다’는 소리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알코올은 장기적으로 사용할 시 피부 건조, 안면홍조증 유발, 피부노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카오리온은 과감하게 알코올을 빼고 알코올이 가진 살균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식물성 성분을 첨가하는 방법을 택했다. “일시적으로 눈에 보이는 효과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꾸준히 사용해보면 우리 제품이 왜 좋은지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위기의 카오리온 화장품을오창록 대표는 어떻게 구원했나 오창록 대표는 대학 재학시절부터 벤처동아리에 가입할 만큼 창업에 관심이 많았지만 화장품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그런 그가 화장품 사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우연히 남자 연예인이 여자 화장품을 사용하는 것을 알게 된 후였다. 그러던 중 카오리온코스메틱스의 전신인 카오리온 화장품을 만나게 됐다. 종합화장품 코너 유통구조가 활성화되었던 90년대 후반, 카오리온 화장품은 국내 몇 없는 천연화장품 회사로서 메이저급 화장품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러나 유통구조가 로드샵이나 온라인 판매로 변하면서, 흐름을 놓친 카오리온 화장품은 서서히 도태되기 시작했고 유행에 민감한 소비자들의 기억에서 잊히는 듯 했다. 그렇다면 오 대표가 ‘한물간(?)’ 회사의 대표를 맡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브랜드의 가치를 높게 봤습니다. 일단 창업주가 화장품 먹는 여자로 유명했었고,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세포라(sephora)에 입점해 있는 기업이었고요. 특히 브랜드의 히스토리가 분명한 기업이었습니다. 제품이 정직하기 때문에 마케팅 전략만 잘 짜면 얼마든지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2006년 카오리온 대표이사에 취임하고, 2009년에 카오리온의 최대 히트상품인 모공수축팩을 출시했다. 3년 만에 이뤄낸 쾌거였다. “브랜드 마케팅에서 아이템 마케팅으로 전략 전환을 시도했습니다. 즉 브랜드로 제품을 알리는 게 아니라, 좋은 제품 하나를 스타로 만들어 브랜드를 알리는 거죠. 그 스타 아이템이 바로 모공수축팩입니다. 제품의 이름을 단순화 한 것도 제품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었고요.” 오 대표의 마케팅 전략은 완벽하게 성공했고, 카오리온은 모공수축팩 출시와 동시에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카오리온이라는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다시금 상기시켜준 모공수축팩. 미백, 수분, 노화 방지 등 각종 기능성 화장품이 출시되는 가운데 카오리온이 유독 모공 관리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 대표 말에 따르면 모공 관리는 피부 관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관리라는 것이다. 모공 관리만 신경 써도 피부 노화 방지와 트러블을 완화·예방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특히 카오리온 모공수축팩에는 화학성분은 일절 첨가되어 있지 않으며, 수분크림과 비슷한 양의 보습제가 함유되어 있어 팩을 한 후에도 촉촉함과 청량감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 외에 각질과 노폐물제거 등의 기능도 있기 때문에 바쁜 현대인의 경우 아침 세안 시 클렌저 대신 모공수축팩을 사용해도 좋다. 물론 어떤 자극적인 성분도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매일 사용해도 피부에 무리가 없다. 바로 이 점에 카오리온 제품의 강점이다. 카오리온 코스메틱스를 되살린 오창록 대표예비 CEO에게 말한다! 최근 은퇴한 베이비부머와 업무량에 비해 턱없이 적은 연봉과 고용불안을 견디지 못한 청년들이 소자본 창업에 뛰어들고 있다. 사회구조적 문제와 과당경쟁 등으로 10명 중 9명이 창업에 실패하고 빚더미에 앉았지만, 정부는 창업률을 대학평가에 반영하거나 청년창업사관학교를 개설하는 등 오히려 창업을 부추기는듯하다. 참 아이러니하다. 여하튼 무한 경쟁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예비 CEO들은 창업에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쓰러져 가는 카오리온을 다시금 세상에 알린 오창록 대표에게 CEO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에 대해 물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끈기입니다. CEO는 정말 외로운 자리거든요. 저 또한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밥 먹듯이 하는 야근은 오히려 괜찮았어요. 그보다 모든 결정을 스스로 해야 하고, 결정에 따른 책임도 제게 있다는 점이 굉장히 부담스러웠습니다. 또 고충이 있어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게 CEO거든요. 무척 외로웠죠.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일까지 꼼꼼하게 신경 써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었고요. 하지만 그런 감정들을 잘 컨트롤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버텨내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네트워크가 생기고 그 사이에 예상하지 못했던 기회도 올 수 있는 법입니다. 십년 배고프고 일 년 만에 백년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는 게 사업이라고 하잖아요. 그만큼 힘든 과정을 겪어내야 하는 것이 바로 CEO 입니다.” 그는 이 외에도 직원들의 고충과 소비자의 요구를 CEO가 직접 부딪쳐가며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더불어 오 대표는 “대학에서 하는 경영수업은 대부분 대기업 중심의 교육 시스템입니다. 많은 경영학도들이 전부 대기업 사장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중소기업이 되기 전 단계의 CEO들이 보고 배울 매뉴얼이 없습니다. 창업에 도전할 분들은 대기업 사장의 성공 스토리가 아닌, 처음부터 시작해서 성공한 선배들을 찾아가 실무적인 부분에 대해 많이 묻고 디테일하게 배워야 합니다. 저 같은 경우 회사가 초기에는 잘됐다가 어려워졌던 상황을 모두 지켜봐왔고, 몸소 체험했던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됐습니다. 예비 CEO들은 이러한 경험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멘토를 정해놓고 배우면 성공확률이 더 높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한 기업의 제품에 이상할 만큼 열광하는 광경을 우리는 최근 목격했다. 국내에 애플의 아이폰이 들어왔을 때였다. 애플 소비자들은 제품이 아닌, ‘애플의 철학을 사는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스타 모델이나 소비자를 현혹하는 광고 없이도 애플은 기업의 철학으로 소비자들에게 선택받을 수 있었다. (주)카오리온 코스메틱스의 오창록 대표 또한 기업과 기업의 제품에 대한 메시지와 철학에 주목한다. 카오리온 제품은 ‘더하기’가 아닌 ‘빼기’라는 철학과 메시지를 담고 있다. 즉 피부에 좋은 성분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유해한 성분을 빼내어 근본적인 피부 건강을 되찾는 다는 것인데, 이는 동양 사상의 ‘여백의 미’와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오 대표는 카오리온이 가진 동양적인 브랜드 메시지를 들고, 올 11월 미국에서 본격 데뷔전을 치른다. 이 뿐만이 아니다. 그는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오프라인 매장 1호점 개장 준비로도 바쁘다. 죽은 상권이라고 하는 압구정에 1호점이 웬 말이냐고들 하지만, 오창록 대표는 말한다. 두고 보라고.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카오리온 www.caolion.com profile - 서울대학교 인문대 졸업 - 2005년 NAB COMPANY(냅 컴퍼니) 설립 - 2006년~ CAOLION COSMETICS(카오리온 코스메틱스) 대표이사 - 2012년 CAOLION LAB(카오리온 랩) 연구소 및 공장 설립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2-11-07
  • [김종서성형외과 김종서 원장 특별인터뷰]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선구자의 삶!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선구자의 삶!한국 최초의 온라인 닥터 ‘김종서 원장’ 김종서 김종서성형외과 원장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노라고” 말한 미국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고백처럼 변화와 도전을 즐기는 삶으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을 주는 인물이 있다. 김종서성형외과 김종서 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의사는 끊임없이 의술을 연마하고 자기계발을 해야한다”며 말보다 앞선 행동으로 실천하는 김종서 원장을 <주간인물 특집 신지식인 명의(名醫)>로 소개하여 그의 발자취와 도전정신에 대해 들어보았다. 국내 최초로 원격 의료상담을 시작한 ‘Creator’ 국내·외 의학계에서 입지전적인 존재인 김종서 원장은 다방면에서 뛰어난 두각을 드러내는 비범한 인물로 늘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다. 의대 학창시절에는 줄곧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대학시절 안철수 교수의 생리학 수업을 듣고 IT기술에 관심을 갖게 된 김 원장은 인터넷과 컴퓨터에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스스로의 길을 만들며 삶을 개척해왔다. 하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선구자의 삶은 의학계에서건 다른 분야에서건 그 시작이 쉽지만은 않았다. “1996년도 레지던트 2년차에 국내 최초로 성형외과 홈페이지를 개설해 온라인 의료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천리안, 나우누리 등 통신이 막 등장하기 시작할 때라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죠.” 당시 온라인 상담이란 개념조차 생소한 시기였고 의료법상의 논란으로 더 이상 상담을 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로 된 다국적 언어의 글로벌 의료 사이트를 국내 최초로 제공한 인물이기도 하다. 김종서성형외과는 국내 성형외과 사이트 중 처음으로 2002년 일본 야후 포털에 게재돼 글로벌 의료기관으로서의 명성을 알리게 되었고, 현재 일본에서 가장 믿고 찾아오는 의사로 김 원장은 유명하다. 국내 의술의 수준을 높이고 글로벌 의료관광에 앞장서다 김종서 원장이 압구정동에 개원하여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김종서성형외과는 의료기술의 우수성을 국내·외로 널리 입증 받고 있다. 이 병원은 2010년 성형외과 안면윤곽 부문에 대한민국 정부가 선정한 우수의료기관으로 선정되었으며 멍들지 않는 턱광대 축소술로 외국에서도 명성이 자자하다. 그는 국내 의료기술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 글로벌 의료관광에 앞장선 장본인이기도 하다. 김 원장은 2002년 중국 북경과 남경을 다니며 선진의료기술을 상호 교류했으며 2000년에는 고마키 시립병원 연수 및 세계 성형외과학회에서 활동을 하고 최신 의료기술을 접목, 공유하면서 국내 의료수준의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레스틸렌 필러 발표 건으로 스웨덴 대사관 초청 표창장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일본성형외과 학회장과 같이 학회 연사로 초청되어 세미나를 하고 해외 유수 의료진들이 김종서성형외과를 탐방, 의술을 습득해 갈 정도로 그는 국제 의학계에서 권위자로 통한다. 김 원장의 안면윤곽술은 칼을 이용하지 않고 하이드로박리법을 사용하여 턱광대 수술 후 멍이 들지 않으며, 그의 귀족수술과 무턱교정수술은 30분 만에 돌출입을 교정하고 회복이 빠르다는 것이 특징이다. 김 원장은 자연스럽게 촉촉하고 윤기나는 피부연출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물광주사를 업그레이드 개발하였는데, 기존의 물광주사는 지속기간이 1~2주인 반면 김 원장이 개발한 것은 1년 이상 지속돼 전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게 됐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물광주사로 여러 학회발표를 하게 되었고 성형외과 출신 의사가 피부과 학회에서 강의했다는 유례없는 이력을 남기기도 했다. 한국 의료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성숙한 문화의식수준이 뒷받침 되어야 자기계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김 원장은 “의사라면 좋은 수술을 끊임없이 연구·개발하고 널리 알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새로운 수술을 접하면 업그레이드 된 시술을 내놓고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의료진들에게 그의 노하우 전부를 공개한다. 김 원장은 의사로서의 프라이드가 누구보다 강했다. “최소한 저에게 수술받은 환자들은 저를 만나 좋은 수술을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의사라면 환자에게 결과로써 만족과 감동을 줘야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그는 대학병원 재직 당시 각 분야별 전문의를 모두 능가할 정도의 실력으로 탁월한 의술을 인정받았다. 눈, 코, 가슴, 안면윤곽 등에 뛰어난 시술의 소문을 듣고 병원을 찾아온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참가자들이 그의 시술을 받고 어느 해엔가는 미스코리아 진, 선, 미 모두가 이곳에서 배출돼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 만큼 그는 자신과 마주하고 있는 환자들이 그를 만난 것이 ‘일생 최대의 행운’이라 여길 정도로 기대 이상의 최상의 결과로 이끌어내는데 반해, 우리나라 환자들의 의식 수준은 미성숙 되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수술비를 깎아달라고만 할 게 아니라, 환자는 자신의 몸을 맡기는 상황에서 의술을 발휘할 의사에게 수술을 잘 부탁드린다고 표현할 줄 아는 매너를 가져야 합니다.” 그는 우리나라의 의료기술은 전 세계에서 손꼽히지만 환자들의 의식수준은 최하위라며 성숙한 문화의식을 이루기 위한 계몽이 일어나야 함을 거듭 강조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모든 노하우와 경험을 총집약하여 최상의 의술을 펼친 의사에게 이를 고마워할 줄 아는 환자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화장품 쇼핑몰(바디스킨 www.bodyskin.co.kr) CEO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피부 고민을 안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상담 의뢰를 하고 김 원장이 전문가적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병원으로 상담과 문의가 많이 들어와 그가 이메일로 사진을 보내주며 답변을 해주다가 스타일, 스킨케어 등 토탈케어를 해줄 수 있는 사이트를 기획하고 직접 제작한 것이 그 시작 배경이라 한다. 2006년 쇼핑몰 사업을 시작한지 5년 만에 회원수 약 4만 5,000여명을 보유하고 하루 5천명 이상에서 1만 여명의 고객이 방문하는 쇼핑몰 대표인 그는 “고객의 니즈를 찾아 아름다움의 빈자리를 메꿔주는 것이 행복”이라 했다. 성형외과 의사 출신 쇼핑몰 CEO로서 지금은 화장품 업계에서도 유명인사가 된 그이지만 쇼핑몰 운영 초기에는 오프라인 병원에서만 구입 가능한 화장품 브랜드를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한다는 점에 대해 논란도 많았다. 한국 최초의 온라인 닥터 김종서 원장. 그는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것은 기본이요, 다방면에서 천재적 재능을 보인 촉망받는 인재이다. 그는 새로운 도전에 거침이 없다. 선구자의 길이 비록 외롭고 힘들지라도 도전과 열정을 멈추지 않는 그는 그 험난한 길을 자처하며 개척해 나갈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삶으로 많은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보여준 김 원장이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살아갈 이유이기 때문이다. Profile·대한민국 정부가 선정한 우수의료기관 (성형외과 안면윤곽 부분에 선정 2010)·한국 연예인 제작사협회 지정병원·스웨덴 대사관 초청 표창장 수상(레스틸렌 필러 발표건)·수분주사 대한피부과 성형외과 학회 강의 2010·백병원, 교수 역임·오레곤주립대학교 총장상 수상·한국, 일본 미용성형외과학회 정회원·SBS 슈퍼모델 뷰티파트너·SBS 여자가 좋다 출연·KBS 행복채널 출연·MBC 아주특별한 아침 출연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2-11-07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