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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용의 100세 칼럼] 마음의 감기를 넘어선 뇌신경계 질환 ‘우울증’
[교육연합신문=최윤용 칼럼] 1. 뇌 신경망과 면역계가 보내는 경고음, 우울증의 원인 - 우울증은 단순한 일시적 기분 저하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약 2억 5천만 명에서 3억 5천만 명 이상에게 영향을 미치며 삶의 질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복합적인 신경정신과적 질환입니다. 임상적으로는 2주 이상 지속되는 우울감과 흥미 및 즐거움의 상실(무쾌감증)을 핵심으로 하며, 수면 및 식욕 장애, 만성 피로, 집중력 저하, 무가치감 등을 동반합니다. 병태생리학적으로 과거에는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등 뇌 내 신경전달물질의 부족을 뜻하는 ‘모노아민 가설’이 주를 이루었으나, 최근에는 신경내분비-면역 네트워크의 불균형과 뇌 구조의 기능적 변화가 핵심 원인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을 과도하게 활성화하여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 수치를 비정상적으로 높입니다. 이는 뇌의 미세아교세포(microglia)를 자극해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방출시키고 신경염증을 유발합니다. 아울러 손상된 세포 소기관과 단백질을 제거하는 세포 내 청소 시스템인 ‘자가포식(autophagy)’ 및 미토콘드리아 품질 관리 기전(mitophagy)에 장애가 발생하고, 뇌 항상성을 유지하는 성상교세포(astrocyte)가 위축되면서 결국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와 전전두엽의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과 시냅스 연결이 손상되어 우울증이 발생하게 됩니다. 2. 항우울제만으로는 쉽지 않은 우울증 관리 - 현재 우울증의 일차 치료에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s)와 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SNRIs), 삼환계 항우울제 등이 널리 처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존 합성 항우울제만으로는 만족스러운 치료에 도달하지 못하는 환자가 적지 않습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항우울제를 복용하더라도 약효가 나타나기까지 최소 2~4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며, 전체 우울증 환자의 약 33~50%는 다수의 약물 치료에도 완전한 관해(remission)에 이르지 못하는 치료 저항성을 보입니다. 또한 경증 우울증의 경우 약물의 효과가 위약(placebo)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두통, 구역질, 위장관 장애, 성기능 장애, 체중 증가, 정서적 둔마 등의 부작용은 환자의 복약 순응도를 크게 떨어뜨리며, 심혈관 질환이 동반된 환자에게는 빈맥이나 심전도(QT 간격) 연장 같은 심장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아울러 약물을 감량하거나 중단할 때 환자의 약 3분의 1에서 어지럼증, 불면, 감각 이상 등을 동반하는 ‘항우울제 중단 증후군(antidepressant discontinuation syndrome)’이 발생할 위험도 가벼이 넘길 수 없습니다. 3. 우울증과 밀접한 ‘장-뇌 축(gut-brain axis)’ 및 만성 통증·심혈관 질환의 연결고리 - 최근 우울증 관리에서 뇌 바깥의 신체 기관과 뇌가 소통하는 ‘미생물-장-뇌 축(microbiota-gut-brain axis)’ 및 전신 만성 질환과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체내 세로토닌의 약 90%는 장크롬친화세포에서 합성되며, 장내 미생물은 미주신경(vagus nerve), 면역계, 그리고 단쇄지방산(SCFAs)과 같은 대사산물을 통해 뇌 기능과 기분을 양방향으로 조절합니다. 스트레스나 외부 요인으로 유익균(락토바실러스, 비피도박테리움, 아커만시아 등)이 줄어들고 장내 미생물 불균형(dysbiosis)이 발생하면 장벽 투과성이 증가하는 ‘장 누수(leaky gut)’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로 인해 내독소인 지질다당류(LPS)가 혈류를 타고 혈액-뇌장벽을 손상시키며 뇌 속 NLRP3 인플라마좀을 활성화하고, 트립토판 대사를 세로토닌 합성 대신 신경독성을 가진 키누레닌 경로로 전환시켜 우울증을 악화시킵니다. 이러한 신경염증과 장-뇌 축의 불균형은 만성 통증 및 심혈관 질환과 우울증이 함께 나타나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해 줍니다. 실제로 만성 통증 환자의 30~54%가 우울증을 겪으며, 두 질환은 IL-1β, IL-6, TNF-α 등 동일한 신경염증 매개체를 공유합니다. 또한 관상동맥 우회술이나 스텐트 시술 등 심장 시술을 받은 환자의 15~40%에서도 수술 스트레스와 장-뇌 축 불균형으로 인한 불안 및 우울증이 발생하여 장기적인 심혈관 예후를 악화시키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4. 우울증에 대한 효과적 대안: 한약과 침 치료의 현대 과학적 근거 - 근래에 기존 약물 치료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중 표적을 동시에 조절하기 위해 한의학적 치료가 효과적인 대안 및 병용 요법으로 조명받고 있으며, 최신 연구를 통해 그 작용기전이 과학적으로 규명되고 있습니다. 먼저, 만성 통증을 동반한 주요우울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된 이중맹검 무작위 교차 임상시험에서는 6주간의 침 치료가 해밀턴 우울척도(HAM-D)와 통증 지수(BPI)를 유의미하게 감소시키고 혈중 염증성 사이토카인(IL-1β, IL-6, TNF-α) 수치를 낮추어 우울증과 통증을 동시에 개선함이 입증되었습니다. 전임상 기전 연구에 따르면, 백회(GV20), 인당(GV29), 족삼리(ST36), 합곡(LI4), 태충(LR3) 등의 경혈에 시행하는 침 및 전침 치료는 전전두엽과 해마에서 스트레스에 의해 위축된 성상교세포의 구조와 밀도를 회복시킵니다. 특히 침 치료는 성상교세포의 글루타메이트 수송체(GLT-1, GLAST) 발현을 높여 시냅스 내 과도한 글루타메이트 흥분독성을 막고, P2X7R/NLRP3 경로에 의한 염증성 세포사멸(pyroptosis)를 억제하며 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 분비를 촉진해 신경가소성을 회복시킵니다. 아울러 ‘울증(鬱證)’ 치료에 널리 활용되는 한약 처방과 천연물 성분들은 뇌와 장을 아우르는 다중 경로를 통해 항우울 효과를 발휘합니다. 대표적으로 창출, 향부자, 천궁, 치자, 신곡으로 구성된 ‘월국환(越麴丸)’은 단백질 번역 조절 인자인 eEF2의 탈인산화를 유도해 해마의 BDNF 발현을 빠르게 증가시켜, 케타민과 유사한 신속한 항우울 효과를 나타내면서도 미세아교세포를 항염증성(M2)으로 전환하고 시냅스 가소성 유전자를 활성화합니다. 또한 소요산, 시호소간산, 개심산, 사역산, 시호가용골모려탕 등의 한약 처방과 파극천 함유 다당류, 바이칼린, 레스베라트롤, 퀘르세틴 등 개별 한약재의 유효 성분은 AMPK/mTOR 및 PINK1/Parkin 경로를 조절해 손상된 뇌세포의 자가포식과 미토파지 항상성을 회복시키고, BDNF/TrkB/CREB 신호 전달을 활성화하여 해마 신경발생을 촉진합니다. 나아가 인삼의 주요 성분인 진세노사이드(Rb1, Rg1, Rg3, Rk3 등)와 세인트존스워트, 사프란, 라벤더, 홍경천 등의 한약재는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의 과활성화를 진정시킬 뿐만 아니라, 장내 유익균을 증식시키고 장벽 밀착연접 단백질(ZO-1, Occludin)을 복구하여 단쇄지방산 생성과 도파민·세로토닌 대사체 전환을 돕는 등 장-뇌 축을 통해 안전하고 입체적으로 우울증을 개선합니다. 5. 우울증의 성공적인 극복을 돕는 일상 속 자가관리 지침 - 성공적인 우울증 극복과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전문적인 임상 치료와 더불어 뇌 신경가소성과 장-뇌 축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일상 속 자가 관리가 필수적입니다. -규칙적인 맞춤형 운동 요법: 걷기, 조깅 등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 요가는 인지행동치료(CBT)에 버금가며 항우울제(SSRIs)보다 뛰어난 수준의 우울 증상 완화 효과를 보입니다. 특히 젊은 층과 여성에게는 근력 운동이, 남성과 고령층에게는 요가가 더 큰 이점을 제공하며, 신체 활동은 해마의 BDNF 발현을 높이고 수면과 인지 기능을 개선합니다. -항염증 식이와 장내 미생물 관리: 초가공식품과 정제당 섭취는 전신 염증을 높여 우울증 위험을 증가시킵니다. 반면 식이섬유와 발효 식품, 폴리페놀이 풍부한 지중해식 식단과 식물성 위주의 균형 잡힌 식사는 장내 미생물 다양성을 높이고 단쇄지방산 생성을 촉진하여 장-뇌 축의 염증 신호를 줄이고 기분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수면 위생 및 생체리듬 회복: 우울증은 깊은 수면(서파 수면) 감소와 일주기 리듬(Per2 유전자 등) 교란을 동반하며, 이는 다시 장벽 손상과 신경염증을 악화시킵니다. 일정한 기상 시간 유지, 낮 시간의 충분한 햇빛 노출(광치료 효과), 카페인·알코올·흡연 제한 등을 통해 수면 위생을 바로잡고 생체시계를 안정화해야 합니다. 우울증은 개인의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뇌 신경망과 내분비·면역계, 그리고 장 건강이 복합적으로 얽혀 발생하는 전신적 질환입니다. 뇌의 신경염증을 가라앉히고 시냅스 가소성과 장-뇌 축의 균형을 근본적으로 회복시키는 과학적 한의 치료와 건강한 생활 습관을 병행하여, 마음의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 활기차고 평온한 일상을 되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참고문헌 (Referenc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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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AI시대, 인문학에 미래교육을 묻다
[교육연합신문=편집국] - 본지 김춘식 논설위원, 신간 『AI시대, 인문학에 미래교육을 묻다』 출간… 현장 교사, 교육청 정책기획자, 교육연수원, 대학 AI교양교육 설계자 위한 필독서로 조명 초거대 인공지능(AI)과 휴머노이드 로봇이 지적 노동과 신체 노동의 경계를 재편하며 일상을 바꾸고 있다. 대화형 AI 모델이 로스쿨과 MBA 시험을 통과하고, 자동차 생산라인에 휴머노이드 로봇이 투입되는 현실은 미래 교육의 방향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 약 30년에 걸쳐 배우고 익히는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인공지능이 단 몇 초 만에 처리하는 시대다. 이러한 지식 습득의 속도 격차 앞에서 공교육과 대학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본지 논설위원이자 동신대학교 K-남도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김춘식 박사가 지난 10여 년간 주요 언론과 방송, 학술 매체에 기고해 온 글들을 오늘의 현실에 맞게 체계화한 신간 『AI시대, 인문학에 미래교육을 묻다』(소명출판)를 출간했다. 이 책은 단순한 기술 진보의 나열이나 추상적인 미래 예측을 넘어선다. 저자는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역설적으로 가치가 더욱 높아지는 것은 인간 고유의 사유 체력, 즉 '생각 근육'이며, 이를 복원하는 핵심 열쇠가 인문학적 성찰과 역사적 통찰에 있음을 논리적으로 규명한다. 특히, 이 서적은 학교 현장의 교사들, 시·도교육청의 교육전문가 및 교육정책기획자, 전국 교육연수원, 대학의 AI 교양교육과정 설계자 등 교육 생태계 전반의 혁신을 도모하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정책적·교육학적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유용한 서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 독일 칼만 석학 특별강연 및 브레멘주 교육부 강연 성과: '자발적 가축화'에 대한 경고 책에서 제시하는 핵심 문제의식은 이미 독일과 유럽 학계 및 교육행정 기관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저자는 독일 연방교육연구부(BMBF)와 아헨공과대학교(RWTH Aachen)가 주관한 '칼만 석학 특별강연'에서 'AI 시대의 인간과 미래교육'을 주제로 발표한 데 이어, 독일 브레멘주 교육부(LIS) 초청 강연에서는 'AI 시대의 문해력과 질문하는 인간'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해 독일과 유럽 교육연구자들의 깊은 관심과 공감을 끌어낸 바 있다. 저자는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요약문과 정답에 지나치게 의존할 때 발생하는 인지적 퇴행을 '자발적 가축화(Self-domestication)'이자 '사유의 외주화'로 정의한다. 편의성을 이유로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하는 권한을 기술에 넘겨줌으로써 텍스트의 맥락을 길게 읽어내지 못하고 문단을 건너뛰는 '후천적 난독'과 비판적 문해력 저하 현상이 가속화된다는 지적이다. 충남교육청의 시선 추적(Eye-Tracking) 연구와 OECD의 성인 및 청소년 역량 조사 지표를 분석한 결과, 15세 학생 중 사실과 의견을 냉철히 구분하는 비율이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에 머무른다는 점은 기술 도입에 앞서 '생각하는 힘'의 정립이 왜 우선되어야 하는지를 입증한다. 스웨덴이 과도한 디지털 기기 보급 정책을 재검토하고 종이 교과서와 손글씨 중심 수업으로 회귀한 사례나 프랑스의 학내 기기 통제 정책 역시 성장 단계에 맞는 문해력 교육의 순서가 중요함을 보여준다. ■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 역량: 'H-Factor'와 정서적 지지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추월하는 환경에서 교육이 지켜내야 할 고유 영역으로 저자는 'H-Factor(Human Factor)'를 제시한다. 정서 지능, 공감 능력, 도덕적 판단력, 맥락적 이해력, 그리고 타인의 아픔을 수용하는 정서적 지지는 수치화되거나 알고리즘으로 단순 복제될 수 없는 영역이다. AI는 그럴듯한 위로의 문장을 생성할 수 있지만, 타인의 슬픔 앞에서 수반되는 감정의 중력이나 인간적 망설임까지 함께 짊어질 수는 없다. 교사가 학생의 걸음걸이나 표정 하나에서 미세한 위기 신호를 직관적으로 알아차리는 역량은 데이터 계산이 아니라, 현장에서 수많은 만남을 통해 형성된 체화된 감각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향후 가장 빠르게 성장할 역할 중 하나로 정서적 지원 분야를 꼽은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단순 지식 전달의 역할은 기술이 보완하더라도, 학생들의 내면을 지탱하고 '질문하는 인간(Homo Quaerens)'을 길러내는 교사의 역할은 AI 시대일수록 더욱 대체 불가능해진다. ■ 고전과 역사적 기억에서 도출하는 교육철학적 대안 책은 현대의 인공지능 이슈를 프랜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등 고전 텍스트와 연결하여 기술 윤리의 문제를 정교하게 분석한다. 기술적 성취가 인간의 도덕적 성숙을 저절로 보장하지 않으며, 사유를 외주화할 때 기술 종속이 일어난다는 고전의 경고는 오늘날 거대 테크 기업의 데이터 독점과 알고리즘 권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제공한다. 또한,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바르샤바 게토 위령탑 앞에서 사죄한 역사적 사건과 독일의 '기억문화(Erinnerungskultur)' 정착 과정을 조명하면서, 화해와 성찰은 단순한 외교적 선언이 아니라 교육과정을 통한 지속적인 제도화로 완성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는 과거사를 대면하는 국가적 태도에 대한 분석인 동시에, 공교육이 보편적 인권과 역사 정의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지침이 된다. ■ 현장 중심의 실행 모델: 창의융합 발표토론(CCEP)과 인문학적 전환 저자가 포스텍(POSTECH) 재직 시절부터 경북과 전남 지역 초·중·고교 현장에 독서인문교육과 연계해 적용해 온 '창의융합 발표토론 교육프로그램(CCEP)'은 AI 시대 교육 혁신의 구체적인 실행 모형을 제시한다. 학생이 스스로 문제 의식을 설정하고 문헌을 탐독하며, 소논문을 작성하고 동료들과 발표·토론하는 과정은 생성형 AI를 단순한 정답 자판기가 아닌 사유의 근력을 키우는 피트니스 코치로 전환하는 실천적 접근이다. 『AI시대, 인문학에 미래교육을 묻다』는 단순한 인문학 예찬론이 아니다. 기술의 편의성 속에서 자발적 가축화의 위험을 경계하고, 공교육과 대학 교육과정이 지향해야 할 방향성을 담은 실용적 가이드북이다.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 교육 정책을 수립하는 행정가, 교원 연수를 기획하는 연수원 관계자, 대학에서 AI와 인문학의 융합 교과를 설계하는 연구자들에게 이 책은 AI 시대의 교육적 대응표를 작성하는 데 신뢰할 수 있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 지은이: 김춘식(동신대학교 K-남도문화학과 교수, 교육연합신문 논설위원) ■ 펴낸곳: 소명출판 ■ 정가: 19,000원 ▣ 저자 김춘식 동신대학교 교수이자 한국독일사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독일 함부르크대학교 역사철학부 석사학위(역사학, 교육학, 정치학), 동 대학 철학박사학위(서양근현대사)를 취득했다. ◇ 교육연합신문 논설위원 ◇ 2024 칼만 펠로우(독일연방교육연구부, 아헨공과대학교) ◇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학술연구위원 ◇ 독일 슈투트가르트대학교&칼스루에공과대학교(KIT) 초빙교수 ◇ 한국독일네트워크(ADeKo) 이사 겸 인문교육위원장 ◇ 초대 국가교육위원회 미래과학인재양성특별위원회 전문위원 ◇ 前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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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칼럼] 다문화 사회! ‘한국어 적응’을 넘어 ‘생각하는 정주형 인재’를 길러내는 새로운 학교를 생각한다
[교육연합신문=김춘식 칼럼] 학령인구 감소의 한파가 대한민국 공교육 현장을 거세게 흔들고 있다. 최근 발표된 2026년 교육통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유·초·중·고 학생 수는 536만 여명으로 전년 대비 3.4%나 감소했다. 저출산의 직격탄을 맞은 유치원이 160여 곳 이상 문을 닫는 등 교육 현장의 지형도가 급변하는 와중에도 확연한 역주행을 보이는 지표가 있다. 바로 이주배경학생 수의 증가다. 올해 초·중·고 이주배경학생 수는 약 22만 명으로 전년 대비 4.3%나 늘어났으며, 이주배경 고등학생만 해도 최근 5년 새 2.7배 증가해 3만 3천 명을 넘어섰다. 이제 이주배경학생은 우리 교실의 일상적인 구성원이자 공교육의 핵심 주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같은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다문화 교육 정책은 여전히 과거의 '소수 적응 지원'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전교생 중 이주배경학생 비율이 30% 이상인 학교가 전국 350곳에 달하고, 재학생 100명 이상인 '다문화 학생 밀집학교'가 급증하면서 심리·정서적 상처, 교육과정의 양극화, 한국어학급 과밀화 등 복합적인 문제가 분출하고 있다. 최근 김도연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이 강조했듯, 핵심은 몇 명을 유치했는가가 아니라 이들이 얼마나 제대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이제는 단순한 한국어 습득을 넘어 스스로 질문하고 토론하며 ‘생각하는 근육’을 키우는 교육 체계로의 대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실질적 이정표를 제시하는 현장이 전남미래국제고등학교다. 이 학교는 AI 실시간 통번역 시스템을 활용해 언어 장벽을 낮추고, 교과 지식과 한국어 학습을 접목한 융합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혁신의 중심에는 이창민 교장과 안상묵 교감, 그리고 현장 교사들의 헌신적인 열정과 노력이 자리하고 있다. 이 학교는 다문화 교육을 하나의 '복합적 성장 시스템'으로 접근한다. 교과 성취기준과 한국어 성취기준을 융합하고, 다양한 언어가 공존하는 발표·토론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사고력을 극대화하는 한편, 대학 연계 기술 교육과 독일·우즈베키스탄 등과의 국제직업교육교류, 한국문화 체험학습을 접목하여 졸업 후 자립의 발판을 제공한다. 이는 다문화 학생을 단순 '배려의 대상'이 아닌 '미래의 자산'으로 바라보는 패러다임 전환의 결정체다. 하지만 이러한 선도적 모델이 지역 현장에 안정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정책·제도적 보완이 수반되어야 한다. 미성년 외국인 유학생 관련 제도 운용에 있어 출입국 관리 당국의 관리·검증 기준과 지자체·교육청의 인구 소멸 대응 방향 간의 시각차를 정교하게 조정하고, 직업계고 현실에 부합하는 유연한 행정 가이드라인을 정립해야 한다. 이미 30~40년 전부터 이민자 수용과 직업교육을 체계적으로 결합해 온 독일의 사례는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독일은 학교와 현장을 오가는 이중 직업교육(아우스빌둥) 체계와 지자체·기업·학교가 참여하는 공공 관리망을 통해 유학생의 인권 보호와 안정적인 지역 정주를 이끌어냈다. 이처럼 현장 실무와 학문적 깊이를 병행하는 선진 교육 인프라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공교육과 지역 사회의 상생을 위해 추진해야 할 대안적 과제는 명확하다. 첫째, 취업과 대학 진학을 아우르는 '입체적 성장 로드맵' 구축이다. 고교 단계의 직업 교육에 그치지 않고, 지역 대학과의 연계교육과정을 신설하여 전문학사 및 학사 학위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다문화 청소년들이 고숙련 전문 인재로 지역에 정주할 수 있도록 유연한 비자 및 제도적 트랙을 다각화해야 한다. 둘째, 관계 부처 간 협력 및 유연한 제도 운용이다. 지자체와 교육청의 인재 양성 노력이 결실을 볼 수 있도록, 출입국 및 외국인 정책 당국 역시 미성년 직업계고 유학생에 특화된 정주 연계 가이드라인과 비자 기준을 전향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셋째, 교육청 차원의 사전 검증 및 관리 역량 강화다. 재외한국교육원 등 현지 네트워크를 활용한 사전 검증으로 입국 전 한국어·인성 교육을 강화하고, 비상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가변적 학급 운영과 교원 배치, 지자체 연계 인권 보호 체계를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넷째, '교과 융합 및 사고력 중심 교육과정'의 전국적 확산이다. 에듀테크 인프라를 적극 지원하여 언어적 부족함이 지적 성장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교과 수업의 질적 대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저출산 위기는 역설적으로 다문화 사회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전남미래국제고가 보여준 공교육 모델이 중앙부처의 유연한 결단과 교육청의 정교한 보완을 거쳐 전국으로 확산될 때, 대한민국 공교육은 '준비된 미래'를 당당히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춘식 동신대학교 교수이자 한국독일사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독일 함부르크대학교 역사철학부 석사학위(역사학, 교육학, 정치학), 동 대학 철학박사학위(서양근현대사)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교육, 독일의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을 만나다』(포스텍융합문명연구원; 소명, 2025) 등이 있다. ◇ 교육연합신문 논설위원 ◇ 2024 칼만 펠로우(독일연방교육연구부, 아헨공과대학교) ◇ 한국독일네트워크(ADeKo) 이사 겸 인문교육위원장 ◇ 초대 국가교육위원회 미래과학인재양성특별위원회 전문위원 ◇ 前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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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칼럼] 부산에서 다시 묻는다: AI 시대, 기억을 다루는 성숙한 시민의 역량
[교육연합신문=김춘식 칼럼] 본지는 ‘기억은 누구의 것인가?: 기념관에서 알고리즘까지, 역사를 둘러싼 네 가지 질문’을 주제로 김춘식 논설위원의 기획 칼럼을 총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본 칼럼은 필자가 포스텍(POSTECH) 재직 당시 공동 저자로 참여한 기획 도서 《기억하는 인간, 호모 메모리스: 기억과 망각에 관한 17가지 해석》(책세상, 2014) 제3장 수록작 〈기억과 망각의 역사: 역사 소환과 기억 정치〉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원작의 학술적 통찰을 토대로, 오늘날 급변하는 사회적·기술적 맥락과 현안에 맞게 한층 깊이 있게 재구성된 이번 연재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2026년 7월,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부산선언'을 통해 세계유산을 통한 국제적 연대와 협력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그러나 회의의 주요 담론 가운데 하나는 새로운 유산의 지정에 그치지 않고, 이미 지정된 유산이 '과거의 역사를 얼마나 온전하고 진정성 있게 담아내고 있는가'에 대한 윤리적 성찰이었다. 일본 사도(佐渡)광산 관련 논의가 대표적이다. 세계유산 등재 당시 약속되었던 '전체 역사(Full History)'의 정직한 반영과 강제노동 현장에 대한 성실한 해설 문제로 인해, 이후 개최된 추도식 등에서 상호 간의 진정성 있는 소통이 미흡했던 아쉬움이 남았다. 이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결정문은 당사국의 이행 노력을 점검하며, 광산 개발의 모든 시기를 아우르는 역사적 진실을 현장 전시에 균형 있게 반영하고 성실한 이행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권고했다. 이는 역사의 어두운 면까지 포함한 전체 역사의 기록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신뢰를 얻는 기본 조건임을 재확인해 준다. 이 같은 경과는 기억의 장소를 조성하는 일과, 그 장소에 담길 역사적 진실의 깊이를 다듬는 일이 얼마나 세심한 외교적·문화적 노력을 필요로 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리고 나아가 역사적 기억의 문제가 단일 국가의 영역을 넘어 국제사회의 보편적 인권과 신뢰의 가치와 직결되어 있음을 일깨워준다. 한편,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새로운 도전은 미디어와 디지털 공간에서 비롯된다. 역사를 기억하고 공유하는 무대가 오프라인 기념관이나 종이 교과서를 넘어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의 영역으로 한층 넓어졌기 때문이다. 유네스코와 세계유대인회의(World Jewish Congress)의 보고서가 지적하듯, 생성형 AI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사료를 환각(Hallucination)하여 제시할 위험성에 대한 세심한 경각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 디지털 공간에서는 기술을 활용하여 가짜 희생자 프로필이나 검증되지 않은 사진을 유포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는 오랫동안 시각 자료가 가져온 "진실의 증거력"에 대해 보다 엄정하고 비평적인 사료 검증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공지능 기술이 역사 기억에 위험요소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쇼아재단(USC Shoah Foundation)의 '증언 360' 프로젝트나 생존자 홀로그램 작업처럼, 기술은 참상의 기억을 후대에 생생하게 전승하는 귀중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때 기술진이 생존자의 실제 언어와 증언 범위 내에서만 AI가 응답하도록 엄격한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세운 것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술의 편의성을 누리되, 사료의 원본성과 역사적 진실성을 훼손하지 않는 윤리적 절제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발맞추어 공교육과 시민사회는 다음과 같은 성숙한 대안을 준비해 나갈 필요가 있다. 첫째, 초등 교육 단계에서부터 '디지털 사료의 출처 확인'을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돕는 것이다. 온라인상의 역사적 콘텐츠를 접할 때 이미지 역검색을 해보고, C2PA 등 출처 정보 표시를 확인하며 정직한 사실을 선별해 내는 습관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둘째, 중·고등학교 답사 프로그램의 내실화다. 기념관 관람을 단지 정서적 감상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세 가지 질문-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가, 어떠한 전시 장치가 활용되었는가, 사료적 근거는 충분히 제시되어 있는가-을 바탕으로 공간을 능동적으로 분석하도록 안내할 필요가 있다. 셋째, 고등학교와 대학 과정에서 AI 생성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훈련의 도입이다. 출처 확인, 맥락 파악, 타 사료와의 대조 등 전통적인 사료 비판 메커니즘을 디지털 정보에도 동일하게 적용하여, AI의 답변을 완결된 사실이 아닌 '검증이 필요한 기초 자료'로 바라보는 주체적 시각을 확립해야 한다. 넷째, 논리적 글쓰기와 토론 교육의 획기적 강화다. 역사적 주장을 펼칠 때는 신뢰할 수 있는 사료와 통계의 근거를 밝히고, 단순한 감정적 수사와 객관적 인과관계를 구분하며, 상대방의 합리적 의견을 충분히 경청한 뒤 논리적으로 반론을 다듬는 토론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다섯째, 교사와 시민이 함께하는 교육적 연대다. 디지털 기술과 역사학의 사료 비판을 융합한 종합적 리터러시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교육 현장과 지역사회가 다변화되는 정보 환경에 유연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역사를 둘러싼 갈등은 대개 사료의 부족보다는, 기억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와 이를 다루는 정보 환경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해법 역시 성숙한 시민들의 자율적인 비판 의식과 윤리적 통찰에서 찾아야 한다. 사실을 정직하게 확인하고, 왜 이 기억이 호출되었는가를 깊이 있게 질문할 수 있는 시민적 역량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역사와 기억은 서로를 이끌어주는 두 바퀴와 같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사실의 엄정함과 성찰의 마음을 균형 있게 유지할 때 비로소 우리는 과거의 아픔을 넘어 평화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부산의 세계유산위원회가 던진 성찰적 메시지처럼, 우리가 고민해야 할 핵심은 단순한 기억의 소유가 아니라 '기억을 다루는 우리의 성숙하고 정직한 태도'일 것이다. ▣ 김춘식 동신대학교 교수이자 한국독일사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독일 함부르크대학교 역사철학부 석사학위(역사학, 교육학, 정치학), 동 대학 철학박사학위(서양근현대사)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교육, 독일의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을 만나다』(포스텍융합문명연구원; 소명, 2025) 등이 있다. ◇ 교육연합신문 논설위원 ◇ 2024 칼만 펠로우(독일연방교육연구부, 아헨공과대학교) ◇ 한국독일네트워크(ADeKo) 이사 겸 인문교육위원장 ◇ 초대 국가교육위원회 미래과학인재양성특별위원회 전문위원 ◇ 前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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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의 왕 김광휘] 2027 대입논술 비법 - 연세대학교 논술
[교육연합신문=김광휘 논술] 2027학년도 대입 논술을 준비하는 수험생 가운데 상당수는 논술을 어렵게 생각한다. 긴 제시문을 읽어야 하고, 여러 글을 비교해야 하며, 제한된 시간 안에 답안까지 완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연세대 인문논술은 제시문을 단순히 읽고 요약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화제에 대해 다면적 사고를 요구한다. 따라서 극단적 대립성을 주의하고 양립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한다. “논술은 제시문의 내용을 외우는 시험이 아니라, 제시문의 관계를 찾는 시험이다.” 연세대 논술을 준비할 때는 어렵게 접근할 필요가 없다. 다음 순서만 정확하게 익히면 된다. 화제→쟁점→핵심어→비교 기준→제시문 관계→답안 작성이 여섯 단계가 연세대 논술의 기본 틀이다. ■ 1단계, 가장 먼저 ‘화제’를 찾는다. 논술 문제를 받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모든 제시문이 공통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찾는 것이다. 이것을 화제라고 한다. 예를 들어 세 제시문이 인간의 행동, 자유, 사회적 규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 공통 화제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가 될 수 있다. 쉽게 말해 화제는 다음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이 글들은 모두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 화제를 찾지 못하면 제시문을 각각 따로 읽게 된다. 그러면 세 글의 관계를 놓치기 쉽고 답안 역시 단순한 내용 정리에 머물 수 있다. 반대로 화제를 먼저 잡으면 제시문 전체를 하나의 큰 그림으로 볼 수 있다. ■ 2단계, 서로 의견이 갈리는 ‘쟁점’을 찾는다. 화제를 찾았다면 그다음에는 쟁점을 찾아야 한다. 쟁점은 같은 화제를 놓고 제시문들의 생각이 달라지는 지점이다. 예를 들어 공통 화제가 ‘인간의 행동’이라고 하자. (가)는 인간의 행동이 타고난 본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고, (나)는 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더 중요하게 본다면 두 제시문의 쟁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인간의 행동은 본성에 의해 결정되는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가.” 이렇게 질문형으로 바꾸면 쟁점이 훨씬 쉽게 보인다. 수험생은 논술을 읽을 때 늘 다음 질문을 해야 한다. “이 글들은 무엇을 두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가?” 바로 그 답이 쟁점이다. ■ 3단계, 각 제시문을 한 두 단어로 압축한다. 쟁점을 찾았다면 각 제시문의 입장을 대표하는 핵심어를 찾아야 한다. 제시문 전체를 길게 외우거나 정리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가)가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고 ▲(나)가 공동체의 책임을 강조한다면 다음처럼 정리할 수 있다. ▲(가) = 개인·자율 ▲(나) = 공동체·규범 이처럼 핵심어를 잡으면 두 글의 차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좋은 논술 답안은 어려운 표현을 많이 쓰는 답안이 아니다. 복잡한 제시문을 짧고 정확한 개념으로 정리하는 답안이 좋은 답안이다. ■ 4단계, 세 제시문의 ‘자리’를 정한다. 연세대형 논술에서는 세 개 이상의 제시문(영어 제시문 1개)이 함께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각각의 제시문을 읽은 뒤 “이 글은 어느 쪽에 서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구조가 나올 수 있다. ▲(가) : 개인의 자유를 강조 ▲(나) : 사회의 규범을 강조 ▲(다) :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규범을 모두 인정 이 경우 (가)와 (나)는 서로 대립하고, (다)는 두 입장을 절충하는 역할을 한다. 또 다른 문제에서는 (다)가 양쪽을 절충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관점에서 두 입장을 모두 포함할 수도 있다. 따라서 수험생은 제시문을 읽은 뒤 반드시 세 가지를 확인해야 한다. “누가 누구와 반대되는가?” “누가 누구와 비슷한가?” “나머지 한 제시문은 절충하는가, 보완하는가, 포괄하는가? ” 이 세 질문만 제대로 해도 제시문 구조가 상당히 명확해진다. ■ 5단계, 답안 첫 문장에 ‘비교 기준’을 쓴다. 수험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 가운데 하나는 답안을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제시문 (가)는… ”이렇게 시작하면 제시문 요약만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보다 좋은 방법은 세 제시문을 나누는 비교 기준을 첫 문장에 먼저 제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세 제시문은 인간 행동의 원인을 개인의 본성과 사회적 환경 가운데 어디에서 찾는가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이 한 문장이 정확하면 이후 답안은 훨씬 쉬워진다. 그다음 (가)의 입장을 설명하고, ‘반면’을 이용해 (나)를 쓰고, ‘한편’을 이용해 (다)의 입장을 정리하면 된다. 즉, 답안 작성의 기본 공식은 간단하다. ▲첫 문장 = 비교 기준 ▲다음 문장 = 각 제시문의 입장과 근거이 구조를 기억하면 답안이 훨씬 안정적으로 정리된다. ■ 6단계, 접속어를 이용하면 관계가 선명해진다. 논술에서 접속어는 매우 중요하다. ‘반면’ ‘그러나’ ‘한편’ ‘공통적으로’ ‘이에 비해’ 등의 표현은 단순히 글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제시문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표시다. 예를 들어 (가)와 (나)가 반대라면 ‘반면’을 사용하고, (다)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면 ‘한편’을 사용할 수 있다. 채점자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 수험생이 제시문의 관계를 제대로 파악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쟁점이 보이지 않을 때는 세 가지부터 확인하라. 가끔은 제시문을 읽어도 무엇이 다른지 쉽게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다음 세 가지 기준부터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첫째는 시간이다.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대, 변화 전과 변화 후가 대비되는지 본다. ▲둘째는 공간이다. 동양과 서양, 도시와 농촌, 국가와 세계처럼 위치나 범위가 다른지 확인한다. ▲셋째는 관점이다. 철학적 관점과 과학적 관점, 개인 중심과 사회 중심처럼 접근 방식이 다른지 살펴본다. 이 세 가지를 적용하면 숨겨져 있던 차이가 비교적 쉽게 드러난다. ■ 예시 하나로 정리해 보자. ▲화제 : 인간의 본성 (가) : 인간은 본래 선하다 (나) : 인간은 본래 악하다 (다) : 인간에게는 선과 악의 가능성이 함께 존재한다 이 경우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화제 = 인간의 본성 ▲쟁점 =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핵심어 = 선 / 악 / 양면성 ▲제시문 관계 = (가)와 (나)는 대립 (다)는 절충답안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할 수 있다. “세 제시문은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인다.” 이후에는 (가), (나), (다)의 주장을 차례로 설명하면 된다. 이렇게 구조를 먼저 잡으면 답안을 쓰는 일이 훨씬 쉬워진다. ■ 연세대 논술은 ‘많이 쓰는 학생’보다 ‘정확히 나누는 학생’이 강하다. 논술 답안이 길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답안은 아니다. 제시문 내용을 많이 옮겨 적었지만 비교 기준이 없다면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반대로 분량이 조금 짧더라도 쟁점과 비교 기준이 분명하고 각 제시문의 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면 논리적인 답안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수험생은 제시문을 읽으면서 늘 다음 질문을 반복해야 한다. "무엇이 같은가?", ”무엇이 다른가?”, “왜 다른가?”, “이 차이를 어떤 단어로 정리할 수 있는가?” 이 네 가지 질문이 논술 독해의 기본이다. ■ 기출문제를 풀 때도 반드시 구조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기출문제를 풀고 답안을 작성했다면 끝내서는 안 된다. 답안을 쓴 뒤 다음 사항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화제를 정확하게 찾았는가. 쟁점을 질문으로 만들 수 있는가. 각 제시문을 한두 개의 핵심어로 정리했는가. 세 제시문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가. 첫 문장에 비교 기준이 들어가 있는가. ‘반면’, ‘한편’ 등의 접속어를 정확하게 사용했는가. 이 과정을 반복하면 처음 보는 제시문이 나오더라도 일정한 순서에 따라 문제를 풀 수 있게 된다. 나는 학생들에게 늘 강조한다. “논술은 글을 잘 쓰는 시험이기 전에, 글의 구조를 찾아내는 시험이다.” 수험생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여섯 가지다. 화제 → 쟁점 → 핵심어 → 비교 기준 → 제시문 관계 → 답안 작성이 순서를 반복해서 훈련하면 어렵게만 보이던 연세대 논술도 점차 구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논술의 핵심은 복잡하지 않다. 무엇을 말하는지 찾고, 어디에서 생각이 갈리는지 확인하고, 그 차이를 정확한 말로 정리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반드시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출제자는 왜 이 제시문들을 함께 제시했을까?” 이 질문을 계속 던지는 수험생은 제시문을 단순히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문제의 구조를 읽게 된다. 제시문의 내용을 읽는 학생에서 제시문의 관계를 읽는 학생으로 바뀌는 순간, 논술의 방향이 보이기 시작한다. ▣ 김광휘 ◇ 前현광문리학원 원장 ◇ 前부산종로학원 원장 ◇ 前부산학원 부원장 ◇ 언어영역 문학(창과창) ◇ 언어영역 독해(한샘출판사) ◇ 홀로서기 논술(대학진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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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칼럼] 피해자의 고통을 직시하는 정직한 추모: 난징대학살기념관이 지향해야 할 역사적 진실과 보편적 성찰
[교육연합신문=김춘식 칼럼] 본지는 ‘기억은 누구의 것인가?: 기념관에서 알고리즘까지, 역사를 둘러싼 네 가지 질문’을 주제로 김춘식 논설위원의 기획 칼럼을 총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본 칼럼은 필자가 포스텍(POSTECH) 재직 당시 공동 저자로 참여한 기획 도서 《기억하는 인간, 호모 메모리스: 기억과 망각에 관한 17가지 해석》(책세상, 2014) 제3장 수록작 〈기억과 망각의 역사: 역사 소환과 기억 정치〉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원작의 학술적 통찰을 토대로, 오늘날 급변하는 사회적·기술적 맥락과 현안에 맞게 한층 깊이 있게 재구성된 이번 연재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1937년 12월 13일,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중국 난징(南京)을 점령했다. 이후 약 6주 동안 자행된 무차별 학살과 성폭력, 방화와 약탈은 인류 문명사에 지울 수 없는 깊은 상흔을 남긴 비극이었다. 짓밟힌 수많은 무고한 생명들과 참혹한 범죄가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역사적 진실이다. 이 거대한 비극 앞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가져야 할 태도는 억울하게 희생된 피해자들의 깊은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그들의 아픔을 온전히 위로하는 일이다. 역사적 사실관계를 차분히 돌아볼 때도 피해의 본질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장제스(蔣介石) 휘하 국민당 군대와 중국 민중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기울인 치열한 항전의 역사적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으며, 이러한 희생을 올바르게 기리기 위해서라도 객관적인 사료 검증을 거친 정밀한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적 진실과 비판의 정당성을 더 한층 굳건히 세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희생자 수치를 둘러싼 논쟁 역시 피해자의 입장에서 온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국 공식 입장의 '30만 명' 수치나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의 '20만 명 이상' 판정, 그리고 여러 사료에 기반한 학계의 다양한 추정치는 저마다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기록하고 증언하려는 간절한 노력의 산물이다. 일부 일본 극우 세력이 주장하는 자의적인 수치 축소나 학살 부인 시도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두 번 짓밟는 행위로서 엄격히 경계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피해의 크기를 둘러싼 소모적인 '숫자 줄다리기'에 매몰되어 정작 개개인이 겪은 삶의 파괴를 잊는 일이다. 숫자의 다과를 넘어, 한 사람 한 사람이 겪어내야 했던 참혹한 고통과 인권의 짓밟힘 그 자체를 아프게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추모의 출발점이다. 난징 대학살 희생자 기념관((중국어: 侵华日军南京大屠))의 건립과 발전 과정은 이처럼 아픈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피해국 중국의 절박한 기억 투쟁이었다. 과거 일본 교과서 검정 파동 이후 침략 역사를 미화하려는 시도에 대해 깊은 우려가 높아지자, 난징시는 사료를 모으고 현장을 보존하여 집단학살 유적지인 장둥먼(江東門) 위에 기념관을 개관했다. 이후 자료실 확장과 '평화의 배' 형상의 신관 건립, 그리고 국가 추모일 지정에 이르기까지 기념관은 억울한 희생을 기억하고 참상을 세계에 알리는 성찰의 공간으로 발전해 왔다. 다만 국가적 차원의 의례와 제도가 공고해지는 과정에서, 자칫 피해자가 겪은 숭고한 슬픔과 애도의 본질이 정형화되거나 정치적 대립의 언어로 소비되는 경향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성찰이 필요하다. 진정한 추모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국가적 선전이나 외교적 대립의 틀을 넘어, 방문객 개개인이 피해자의 억울한 고통에 깊이 공감하고 자발적인 슬픔과 평화의 의지를 다질 수 있도록 따뜻하고 유연한 감성적 여백을 넓혀갈 필요가 있다. 가해의 역사를 모호하게 흐리거나 봉인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역사적 정당성을 얻을 수 없다. 과거의 비극을 다루는 가장 성숙한 태도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피해자의 관점'을 확고히 중심에 두고, 엄정한 역사적 사료와 사실에 기반하여 참상을 정직하게 직시하는 일이다. 역사학계와 시민사회가 오랜 시간 강조해 온 것처럼, 참상의 기억은 단지 과거의 분노를 재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보편적 인권과 평화를 향한 배움터'로 승화될 때 더욱 깊은 울림과 설득력을 얻는다. 하나의 정해진 국경의 서사에 갇히기보다 피해자들의 목소리와 다양한 역사적 증언이 생생하게 소통하게 하고,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보편적 평화의 연대로 나아가는 포용적 태도가 기대된다. 독일과 폴란드가 오랜 대화 끝에 출간한 공동 역사교과서 『유럽-우리의 역사』(Europa – Unsere Geschichte)는 좋은 이정표가 된다. 이 교과서는 단일한 정답을 강요하는 대신 동일한 사건에 대한 각국의 시각과 근거 사료를 나란히 제시하여 학생 스스로 비평적으로 검증하게 한다. 동아시아 역시 소모적 갈등을 넘어 피해자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역사적 진실에 기반한 공통의 평화 지혜를 모아갈 필요가 있다. 교실 현장에서도 숫자를 외우게 하는 주입식 교육을 넘어, 다양한 사료와 기록이 어떠한 맥락에서 나왔는지 스스로 추적하며 피해자의 삶을 이해하는 습관을 길러주어야 한다. "어느 쪽이 더 정치적으로 우위에 있는가"를 다투기보다 "무엇이 입증된 사실이며, 참혹한 전쟁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가"를 아프게 묻는 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 30만이라는 수치 뒤에 숨겨진 수많은 개인의 참혹한 희생과 중국 민중이 겪어낸 슬픔은 영원히 기억되어야 한다. 숫자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넘어, 엄정한 사료와 진실에 뿌리를 두고 피해자의 고통을 윤리적으로 직시할 때, 비로소 난징대학살기념관은 온 인류가 함께 고개 숙여 피해자를 추모하고 평화를 배우는 거룩한 성지로 완성될 것이다. ▣ 김춘식 동신대학교 교수이자 한국독일사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독일 함부르크대학교 역사철학부 석사학위(역사학, 교육학, 정치학), 동 대학 철학박사학위(서양근현대사)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교육, 독일의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을 만나다』(포스텍융합문명연구원; 소명, 2025) 등이 있다. 교육 ◇ 교육연합신문 논설위원 ◇ 2024 칼만 펠로우(독일연방교육연구부, 아헨공과대학교) ◇ 한국독일네트워크(ADeKo) 이사 겸 인문교육위원장 ◇ 초대 국가교육위원회 미래과학인재양성특별위원회 전문위원 ◇ 前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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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뼈 위에 새겨진 동이의 기억, 오늘을 비추다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역사를 돌이켜보면, 언어와 문자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정체성의 뿌리였다. 종이에 활자를 찍고, 휴대폰 자판 위에 글자를 두드리는 오늘 우리의 일상은 사실 수천 년 전 뼈와 거북등에 새겨진 문자에서 시작되었다. 그 시작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동이(東夷)’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바다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남긴 흔적과 맞닥뜨리게 된다. □ 거북등 위의 언어 상나라 말기, 제사의 밤을 떠올려 보자. 제관이 붉게 달군 쇠침을 거북등 위에 갖다 대면, 번개처럼 균열이 번진다. 왕은 그 무늬 속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제관은 그 내용을 뼈 위에 상형으로 새겨 넣는다. 오늘날 ‘갑골문(甲骨文)’이라 불리는 세계 최초의 문자 기록 장면이다. 날씨, 수확, 전쟁, 병세, 사냥. 삶의 모든 것이 그 위에 적혔다. 그러나 이 문자는 단지 ‘중원의 문자’만은 아니었다. 고고학은 말한다. 상나라 이전, 이미 요하 유역과 산동 반도, 한반도 서북부에서 동이계의 상징과 문양이 나타났다고. 그 무늬가 글자가 되고, 글자가 체계가 되어 상나라 제사의 언어 속으로 스며들었다. 갑골문은 곧, 동이와 중원이 만난 지점에서 태어난 언어였다. □ 바다와 강의 사람들, 동이 동이는 고대 중국 문헌에 ‘동쪽의 활 잘 쏘는 사람들’로 기록된다. 『산해경』은 그들을 ‘해가 뜨는 곳의 사람들’이라 불렀고, 『사기』는 요서와 요동, 산동에 흩어진 부족들을 그렇게 묘사했다. 그들의 삶은 물과 함께였다. 농사도 지었지만,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조개껍질과 옥으로 장신구를 만들었다. 남방과 북방을 잇는 해상 교역에도 능했다. 당연히 이런 삶은 기록 체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항로, 계절풍, 물고기 떼, 조류. 단순한 그림처럼 보이는 기호가 사실은 공동체 전체가 공유하는 언어였던 셈이다. 오늘 우리가 갑골문에서 물결(氵), 배(舟), 물고기(魚)를 발견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동이의 세계관이 새겨진 자취다. □ 제의의 언어, 정치의 권력 동이와 중원에서 문자는 곧 권력이었다. 제사를 통해 왕은 통치의 정당성을 얻고, 균열무늬 속에서 미래를 읽었다. ‘풍년’, ‘전쟁’, ‘사냥’ 같은 글자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왕국의 운명을 가르는 질문이었다. 동이 사회에서도 제사는 중심 의식이었다. 바다와 강의 신에게 제물 바치고, 조상 영혼에게 곡식과 짐승을 올렸다. 그때 쓰인 상징은 돌, 뼈, 옥에 새겨졌고, 훗날 갑골문 속으로 흡수됐다. 문자란 곧 신과 인간을 잇는 계약서였다. □ 자연과 함께 숨 쉬던 언어 갑골문을 보면 자연과 인간이 얼마나 긴밀했는지 알 수 있다. 해(日), 달(月), 산(山), 바람(風), 비(雨). 동이 사람들에게 자연은 단순한 자원이 아니었다. 해는 어머니였고, 바람은 메신저였으며, 비는 은총이었다. 글자는 이를 담았다. ‘雨’의 갑골문은 빗줄기와 받치는 그릇을 그렸고, ‘風’은 바람 속에 깃든 벌레를 표현했다. 인간과 자연이 한 호흡을 나누던 시절의 언어였다.([그림 7] 참조) □ 증거는 형태와 유물 속에 중국 은허에서 출토된 갑골문을 확대해보면, 단순한 직선과 곡선이 아니다. 해와 달이 겹쳐 있는 독특한 조형이 있다. 그런데 그 모양은 요하 유역 홍산문화 옥기 무늬와 닮아 있다. 고고학자 장광지는 “문자는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라, 도상문화의 축적 위에서 세워진다”고 했다. 갑골문의 해(日) 점 하나, 달(月) 곡선 하나는 신석기 도상에서 이어진 것이다. 문자 탄생은 단순한 발명이 아니라 긴 문화적 기억의 집합이었다. 산동 반도의 토기, 요동의 청동기, 홍산의 옥기에서 발견된 기호들 역시 갑골문과 겹친다. 중국 학계도 인정하듯, 문자는 ‘황하 문명 단일 중심’에서만 나온 게 아니라 여러 곳에서 동시에 피어난 다중 중심의 산물이었다. □ 언어의 흔적, 이동하는 문화 언어학자들은 갑골문 속 일부 발음이 현대 중국어보다 오히려 한국어나 일본어의 옛말과 가깝다고 말한다. ‘바다(海)’, ‘물고기(魚)’, ‘배(舟)’ 같은 어휘가 그렇다. 갑골문은 문자일 뿐 아니라, 언어의 교류 흔적이기도 하다. 동이계 부족이 남하하거나 동진하면서 한반도와 일본 열도로 이주했을 때, 그 언어와 문자가 함께 전해졌다. 고조선과 삼한, 일본 고훈 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기호들이 이를 뒷받침한다.([그림 7] 참조) □ 문화의 흡수와 소멸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융합과 동시에 소멸을 불러왔다. 주나라가 변방 부족을 제후국으로 편입하면서 언어와 문자는 표준화되었다. 동이 제관이 새기던 갑골문은 궁정 속 전서체로 바뀌었고, 그의 아들은 그것을 ‘옛 글자’라 부르며 읽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문화는 흡수되고, 기억은 단절되었다. □ 다시 발견된 동이의 목소리 20세기 초 은허 발굴 이후 갑골문은 ‘중국 최초의 문자’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요하문명과 산동·요동 해안, 한반도 서북부에서 연이어 발견된 부호들은 그 통설에 균열을 냈다. 어떤 연구자는 발굴 현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건 중원의 언어가 아니라, 동이족의 목소리입니다.” 그 말은 곧, 갑골문이 특정 왕조의 소유물이 아니라 동아시아 문명 전체가 공유한 유산이라는 선언이었다. □ 문자, 정체성의 뿌리 왜 오늘날 우리가 다시 갑골문을 읽으려 하는가? 그것은 단순한 고대학자의 호기심 때문이 아니다. 문자는 정체성의 뿌리이자,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다. 우리가 쓰는 언어가 어디서 왔는지를 아는 것은 곧 우리가 누구인가에 답하는 일이다. 동이의 문자 전통을 복원하는 것은, 잊힌 세계관을 복원하는 것이다. □ 뼈 위의 기억에서 미래의 언어로 문자는 과거의 유물인 동시에 미래의 가능성이다. 뼈 위에 새겨졌던 갑골문이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어, 오늘의 한글과 디지털 코드로 이어졌다. 언젠가 우리는 다시, 우리 손으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낼 것이다. 뼈 위에 새기던 그 날카롭고 간절한 손길을 기억하는 한, 우리의 언어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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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뼈 위에 새겨진 동이의 기억, 오늘을 비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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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한국인의 문자 DNA, 갑골문에서 한글까지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역사를 돌이켜보면, 때때로 우리는 스스로를 작게 여기곤 한다. 국권을 빼앗기고, 가난에 시달리며, 세계의 변방에서 소외되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세계 최하위권이었고, ‘가난의 대명사’로 불리던 시절이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을 보라. K-팝과 K-드라마가 전 세계를 누비고, 첨단 반도체와 IT 기술이 지구촌의 심장을 뛰게 만든다. 누군가는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 부른다. 하지만 과연 기적일까? 아니면 오랜 시간 축적된 저력의 발현일까? 나는 후자라고 믿는다. 한국인의 창의성과 생명력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래된 역사와 문화, 그리고 무엇보다 문자와 기술의 발명에서 이어져 온 정신의 결실이다. 갑골문, 금속활자, 한글. 이 세 가지는 한국인의 저력을 증명하는 가장 선명한 흔적이다. □ 거북선과 금속활자, 그리고 한글 우리는 종종 창의성과 발명 정신을 이야기할 때 이 세 가지를 빠뜨리지 않는다. 거북선은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기발한 발상이었고, 금속활자는 구텐베르크보다 수 세기 앞서 문자 대중화의 길을 열었다. 한글은 더욱 독보적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문자라 불리는 이 발명은 문자 해방과 평등을 가능하게 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우연일까? 아니다.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더 오래된 ‘문자 DNA’가 우리 역사 속에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열쇠가 바로 갑골문이다. □ 갑골문의 발견과 충격 1899년, 중국의 학자 왕의영은 ‘용골(龍骨)’이라 불리던 약재에서 우연히 낯선 문양을 발견한다. 후에 밝혀진 것은 그것이 상나라 사람들이 거북 껍질과 소의 뼈에 새긴 문자, 곧 갑골문이었다. 이후 안양 일대에서 수십만 조각의 갑골이 발굴되면서, 상나라의 정치·사회·종교가 구체적으로 되살아났다.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문자와 기록으로 확인된 최초의 역사였던 것이다. 그러나 갑골문이 문자 발명의 출발점이었는가? 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더 오래된 흔적이 있다. 도자기에 새긴 도문, 뼈에 새긴 골각문자가 그것이다. 홍산문화 유적지에서 출토된 도문은 갑골문보다 천 년 이상 앞서는 원시 문자로 추정된다. 2000년대 들어 재조명된 골각문자 역시 갑골문의 전신으로 평가받는다. 즉, 문자의 역사는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글자로, 끊임없는 진화를 거쳐온 것이다. □ 동이족과 문자, 그리고 전파의 길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 이런 문자 흔적이 발견되는 지역이 바로 만주, 산동, 홍산 등 동이족이 살던 영역과 겹친다는 점이다. 학계 일각에서는 이 지역의 문자 전통이 남하하면서 중국 상나라의 갑골문으로 정착했다고 본다. 또 해상로를 따라 한반도와 일본에까지 전해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수많은 복골(점복용 거북 껍질)이 출토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창원, 부산, 김해, 경산, 무산 등지에서 ‘무자 갑골’이 보고되었다. 글자가 남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이것이 단순한 공백인지, 혹은 소실된 흔적인지는 아직 논란 중이다. 어쨌든 이 발견들은 문자와 의례가 동아시아 전역에서 활발히 교류했음을 시사한다. □ 논쟁의 중심, 홍도관 사건 문자와 유물 연구가 늘 순탄한 것은 아니다. 몇 해 전 한국에 들어온 한 붉은 도자기(홍도관 [그림 6] 참조)는 학계의 뜨거운 논쟁을 불러왔다. 그 표면에 갑골문이 새겨져 있었는데, 감정 결과가 엇갈렸기 때문이다. 어떤 기관은 “진품, 고대 유물”이라고 했고, 또 다른 기관은 “근대의 모조품”이라 단정했다. 심지어 어떤 연구팀은 방사성 연대 측정을 통해 더 오래된 시기로 판정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진위 논란을 넘어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고고학은 감각이나 직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과학적 분석과 국제적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 말과 글, 정체성의 근원 결국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왜 우리는 갑골문, 도문, 골각문자 같은 오래된 문자에 주목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단순하다. 말과 글은 정체성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한 민족이 언어를 잃으면 기억을 잃고, 기억을 잃으면 존재의 뿌리마저 흔들린다. 한글이 오늘날 한국인의 자존과 자부심의 근원이 되는 이유도, 문자 없는 백성은 목소리 없는 백성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갑골문과 그 전신들을 탐구하는 일은 단순한 고고학적 흥밋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정체성의 깊은 뿌리를 더듬는 작업이며, 동아시아 문명의 복잡한 혈맥을 밝히는 일이다. □ 미래를 향한 희망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다. 한반도에서 출토된 복골의 진정한 성격은 무엇인지, 일본 대량 출토와의 관계는 어떠한지, 홍산문화의 도문이 어떤 경로를 거쳐 갑골문으로 이어졌는지는 여전히 미완의 질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더 많은 발굴, 더 정밀한 과학적 분석, 더 넓은 국제 협력이 이어진다면, 이 고대 문자의 비밀은 조금씩 열릴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동이족의 피와 한국인의 저력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갑골문에서 금속활자, 한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문자와 기술의 발명족이었다. 지금의 성취는 기적이 아니라, 오랜 시간 이어온 저력의 자연스러운 결실이다. 과거의 문자가 미래의 길을 밝히듯,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이 유산을 더 깊이 연구하고,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전하는 일이다. 그 길 위에서, 한국인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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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한국인의 문자 DNA, 갑골문에서 한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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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한민족 문화와 갑골문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도시의 새벽, 버스 정류장 전광판에 깜빡이는 문장을 보며 생각한다. 이 짧은 문장은 어디에서 왔는가. 소리의 결로만 설명하기엔 뭔가 모자라다. 우리의 언어는 물론 한글이지만, 우리의 문화적 문장은 그보다 오래된 심층에서 떠오른다. 거북의 등과 짐승의 뼈에 불을 대어 균열을 읽던 시간, 그 균열 따라 새겨진 선과 점이 우주의 질서를 불러오던 순간. 갑골문은 그 선과 점의 고향이고, 한민족 문화는 그 고향에서 길어 올린 상상력으로 오늘을 말한다. 이 글은 그 뿌리의 언어가 어떻게 한반도의 삶과 신화, 오늘의 감각으로 이어졌는지, 한 편의 칼럼으로 더듬어 본 기록이다. □ 언어와 문자, 문화의 뿌리 언어는 소통의 도구 이전에 세계를 자르는 칼날이다. 무엇을 하나의 ‘것’으로 보고, 어디서 경계를 긋는가에 따라 문화는 다른 얼굴을 얻는다. 문자란 그 칼날을 눈으로 보이게 만든 도면이다. 갑골문은 하늘과 땅, 해와 달, 짐승과 사람을 몇 획으로 표상하는 법을 발명했다. ‘日’의 원과 점, ‘月’의 초승, ‘人’의 단순한 두 다리, ‘巫’의 교차하는 팔과 기립한 몸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압축한 결정체였다.([그림2, 4] 참조) 한글은 훨씬 훗날, 소리의 뼈대를 정교하게 설계한 위대한 발명이다. 그러나 소리가 박히는 의미의 그릇, 말의 길을 내는 상징체계는 이미 오래전에 형성되었다. 조상들은 해를 ‘오른다/진다’가 아니라 ‘나타난다/숨는다’로 느꼈고, 새의 궤적을 길의 표식으로 삼았다. 이 감각은 언어의 은유로 축적되고, 문자의 상형으로 굳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이 답답하다”라고 할 때 가슴을 쥐어짜는 손의 느낌으로 말하고, “하늘이 높다”라고 할 때 가을의 빛을 떠올린다. 소리의 언어(훈민정음) 위에 의미의 언어(상형과 관념)가 겹쳐진 이중 구조, 그것이 한민족 문화의 문장법이다. □ 동이족의 문화가 한반도에 전한 것 ‘동이’라는 이름은 지도 바깥의 사람을 가리키는 낙인이 아니라, 바다와 숲의 질서 속에서 살아가던 생활인의 또 다른 호칭이었다. 그들의 세계관은 물의 길을 따라, 새의 길을 따라 흘러들었다. 해안을 타고 건너온 것은 단지 옥과 패물, 활과 배가 아니었다. 제천(祭天)의 감각, 백의(白衣)의 간결함, 옻칠과 목공의 손끝, 해와 새를 기호로 새기는 미감이 함께 전해졌다. 한반도의 여러 공동체가 계절을 맞아 하늘에 제사하고, 노래와 춤으로 공동체의 시간을 묶었던 기억은 이 전승의 결을 닮는다. 바다에서 온 사람에게 태양은 절대의 시계였고, 숲의 사람에게 새는 소식을 전하는 사자였다. 그래서 우리는 축제를 ‘놀음’이 아니라 ‘하늘에 보이는 일’로 삼았고, 흰옷을 단지 검소함이 아니라 빛을 받는 표면으로 여겼다. 물건의 기술과 신앙의 형식, 생활의 미학이 함께 다리를 건너와, 한반도에서 새로운 질서를 키웠다. 문화는 언제나 사물과 상징이 함께 이동할 때 깊게 뿌리내린다. □ 한민족 신화와 갑골문적 상상력 신화는 공동체가 자신을 설명하는 첫 번째 문장이다.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 하늘의 아들이 나라를 세우며, 알에서 태어난 영웅이 활을 쏘아 길을 연다. 이 모티프들은 갑골문이 그려낸 자연의 도면과 정확히 맞물린다. ‘弓’의 곡선은 단지 무기의 형상이 아니라, 하늘과 인간을 잇는 장력의 기하학이다. ‘鳥’는 땅과 하늘을 횡단하는 매개이자, 태양의 길을 표시하는 움직이는 점이다. ‘日’과 ‘月’은 신화 속 영웅의 출생과 죽음, 계절의 전환과 국가의 제사를 이끄는 표지판이었다.([그림 2, 4] 참조) 곰과 호랑이, 사슴과 물고기. 이 동물들은 갑골문에서 몸의 특징으로 간명하게 표상되고, 신화에서는 길을 여는 지혜로 재해석된다. 동굴과 산, 강과 바다의 문턱에서 행해졌을 통과의례는 신화 속 금기와 시험으로 형태를 바꾸고, 제사의 시간표는 별자리의 순환과 함께 영웅 서사의 배경이 된다. 갑골문적 상상력이란, 자연의 형상을 기호로 변환하는 기술이면서 인간의 삶을 우주의 질서에 포갤 줄 아는 감각이다. 신화는 이 감각을 서사로 만든 기록이다.([그림 5] 참조) 그래서 우리의 옛이야기에는 유난히 하늘을 우러르는 장면이 많다. 활을 들어 첫 화살을 하늘로 쏘고, 새의 비상을 보며 길일을 재고, 해무리와 달무리의 변화를 날씨와 운명의 언어로 읽는다. 문자 이전에 먼저 익힌 해석법이 있었고, 그 해석법을 문자로 굳힌 것이 은자였다. 신화는 그 문자에 살을 붙여, 공동체의 기억을 노래로 만들었다. □ 문화의 원형, 오늘의 울림 오늘 우리의 눈앞에는 뼈 대신 스크린이 있다. 그러나 원형은 사라지지 않는다. 원형이란 형태의 과거가 아니라 감각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울림만 짚어본다. 첫째, 세계 읽기의 태도다. 갑골문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어제의 전쟁은 왜 졌는가, 내일의 비는 올 것인가, 아이의 병세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균열을 읽어 답을 얻으려는 태도는 오늘의 데이터 분석과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질문이 언제나 공동체의 안녕과 하늘의 질서를 함께 고려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효율의 숫자만이 아니라, 공존의 징후를 함께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 둘째, 몸의 언어다. 눈·입·손·발의 글자가 기록하듯, 몸은 사유의 첫 도구였다. 설계도와 보고서가 넘치는 시대일수록, 손의 감각과 발의 리듬이 만드는 지식이 중요하다. 장인의 손끝, 농부의 허리, 무용수의 호흡은 사전 없는 문장이다. 교육은 다시 몸의 문해력을 회복해야 한다. 글자를 안다는 것은 몸을 통해 세계를 느끼는 법을 되찾는 일이다. 셋째, 축제의 문법이다. 제천의 기억은 오늘의 축제로 되살아날 수 있다. 하늘을 기쁘게 하던 의식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사람의 관계를 새로 묶는 공공의 시간으로서. 지역의 바다와 산, 별이 잘 보이는 밤을 무대로 삼아, 음악과 공예, 농사와 시장이 한데 엮이는 축제는 현대판 동맹·영고·무천이 될 수 있다. 축제는 소비의 이벤트가 아니라 공동체의 시간표여야 한다. 넷째, 디자인의 문맥이다. 원과 점, 선과 획으로 세계를 환원한 갑골문은 오늘의 시각 언어로도 살아 있다. 도시의 표지판, 공공 브랜드, 학교와 도서관의 그래픽에 해·달·물·새의 최소 단위 기호를 응용하면, 장소는 말없이 자신을 설명한다. 말이 너무 많은 도시에서, 말하지 않고도 전달되는 기호의 질서는 미덕이다.([그림 5] 참조) 마지막으로, 기억의 방식이다. 뼈에 새겼던 기억은 지워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쉽게 쓰고 쉽게 잊는 시대에, 무엇을 어떻게 남길지를 다시 묻자. 기록은 많아졌지만 공명이 적다. 오래 남길 문장, 함께 돌아볼 문장을 고르고, 남기는 행위 자체를 의식으로 삼아야 한다. 학교든 가정이든 ‘기억의 의식’을 회복하는 작은 의례가 필요하다. 칼럼의 지면은 늘 모자라다. 그러나 부족한 지면 속에서도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한민족 문화의 깊은 문장법은 갑골문이 열어 둔 상상력의 문간에서 시작했다. 자연을 기호로 만들고, 몸을 문장으로 삼고, 공동체를 하늘과 연결하던 그 질서. 우리는 이제 뼈 대신 픽셀에, 제단 대신 광장에, 옻칠 대신 코드에 새긴다. 방식은 달라졌지만 질문은 같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남기며,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그 질문을 품고 새벽의 전광판을 다시 본다. 점멸하는 빛의 점과 선이, 문득 오래된 획처럼 보인다. 먼 옛날 불의 균열을 읽던 눈빛으로, 오늘의 문장을 다시 읽는다. 그리고 다짐한다. 뿌리의 문장으로 미래를 쓰겠다고.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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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한민족 문화와 갑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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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문자 이전의 기억, 은자(殷字)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가 알고 있는 문자 이전의 시대는 어둠처럼 흐릿하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도 인간은 흔적을 남기고 싶어 했다. 바위 위의 동굴벽화, 나무껍질에 새긴 무늬, 그리고 동방의 옛사람들이 택한 특별한 매개체, 거북의 등과 짐승의 뼈가 바로 그것이다. 기원전 13세기 전후, 은(殷) 왕조의 제사장은 거북 등껍질과 소의 어깨뼈를 정성껏 손질해 그 위에 글자를 새겼다. 불에 넣어 금이 가면, 그 균열을 하늘의 목소리로 해석했다. 이때 새겨진 문자가 바로 은자(殷字)다. 은자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과 대화하려는 시도의 흔적이자, 초월과 소통하려는 간절한 몸짓이다. 우리는 오늘날 종이에 활자를 찍어 지식을 전하지만, 최초의 문자 창조자들은 하늘의 뜻을 묻기 위해 살아 있는 생명의 뼈와 껍질을 빌려 썼다. 그 뼈마디에 새겨진 글자는, 인간이 얼마나 절박하게 자연과 신을 향해 귀 기울였는지를 보여준다. □ 갑골문 속에 남은 동이족의 발자취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갑골문이 단지 은(殷) 왕조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고고학자들은 그 문자 속에 동이족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음을 지적한다. 예컨대 갑골문에 등장하는 새, 활, 태양을 상징하는 글자들은 동이족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 동이족이 숭배하던 태양과 새의 상징, 활을 든 인간의 형상은 갑골문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실제로 은 왕조는 동이와 끊임없이 교류하며 때로는 충돌했다. 은의 제사에 사용된 옥, 조개껍질 화폐, 바닷새 문양은 동이 해안 문화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갑골문 속 ‘이(夷)’는 단순히 변방의 타자가 아니라, 문자 탄생의 공동 증인이었을지도 모른다. 문자가 탄생하는 순간, 그 자리에 동이족도 함께 있었던 것이다. □ 해, 달, 별 - 자연을 새긴 최초의 상형 갑골문을 들여다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자연이다. 해(日)는 가운데 점이 찍힌 원으로, 달(月)은 초승달 모양으로, 별(星)은 나무에 점이 모여 있는 형상으로 그려졌다. 인간은 하늘의 빛을 문자로 옮겨 적었다. 그것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기록이었다. 오늘날 과학은 태양을 뜨겁게 불타는 가스 덩어리라 설명하지만, 고대인에게 태양은 생명의 근원이자 신의 얼굴이었다. 갑골문에 새겨진 해와 달은 우주의 시계였고, 인간 삶의 리듬을 결정하는 힘이었다. 달의 주기는 여성의 몸과 연결되었고, 별자리의 움직임은 계절과 농사의 주기를 알려주었다. 문자 이전의 기억은 곧 자연의 기억이었고, 갑골문은 그것을 형상화한 첫 번째 시도였다.([그림 2] 참조) □ 몸과 삶을 새기다 - 인간 형상의 등장 자연만 기록된 것은 아니다. 갑골문에는 인간의 몸과 삶 또한 깊이 새겨졌다. 눈(目), 입(口), 손(手), 발(足) 같은 글자들은 놀라울 만큼 사실적이다. 사람의 형상(人) 역시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이 글자들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인간 존재를 인식하고 정리한 최초의 시도였다. 더 흥미로운 것은, 몸의 글자들이 사회적 관계와도 연결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父(아버지)’는 손에 도끼를 든 모습으로, 가문의 권위를 상징한다. ‘女(여자)’는 무릎을 꿇은 여인의 모습으로, 가정과 생명의 근원을 의미한다. 몸의 형상은 곧 관계의 형상이고, 삶의 질서를 반영하는 기호였다.([그림 3] 참조) 갑골문은 우리에게 묻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들고, 입으로 기원하며, 발로 걸어가는 존재. 그것을 고대인은 문자로 남겼다. 문자는 단순히 기록의 수단이 아니라, 인간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 기억을 불러내는 뼈의 언어 오늘 우리는 종이에, 혹은 디지털 스크린에 문자를 남긴다. 그러나 문명의 첫 기억은 종이가 아니라 생명의 뼈에, 살아 있는 껍질에 새겨졌다. 갑골문은 문자 이전의 기억을 불러내는 매개체다. 칼럼의 자리에서 우리가 갑골문을 다시 소환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고대 문자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갑골문은 인간이 자연과 대화하려 한 기록이었고, 동이족의 흔적이 스며 있는 공동의 문화유산이었다. 그 속에는 해와 달, 별을 바라보며 시간을 새기고, 인간의 몸을 그려내며 존재를 확인하려 했던 원초적 충동이 담겨 있다. 갑골문은 말한다. 문자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가장 깊은 사유와 신앙을 담는 그릇이라고. 뼈와 껍질 위에 남겨진 그 글자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묻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믿으며,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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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문자 이전의 기억, 은자(殷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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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다섯 차례의 동북공정, 그 긴 그림자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역사는 흔히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거울은 언제나 투명하지 않다. 권력을 쥔 자가 의도적으로 색을 입히면, 우리는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린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 역시 그러하다. 많은 이들은 이것이 최근에 벌어진 사건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동북공정은 오래전부터 다섯 차례나 반복되어 온 역사 왜곡의 연속극이었다. 첫 번째 막-공자의 논리 동북공정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공자에게 닿는다. 춘추전국 시대, 화하족과 동이족은 대립과 충돌을 거듭했다. 공자는 화하족의 입장에서 역사를 해석했다. 『시경』에는 “화하와 동이가 모두 주나라를 따른다”는 구절이 있다. 공자는 이 문장을 근거로 동이족을 ‘화이불변(華夷不辨)’의 틀 속에 가두었다. 다시 말해, 동이는 독자적인 문화를 가진 주체가 아니라 화하에 흡수되어야 할 주변부로 규정된 것이다. 이 순간부터 동이 문화는 문명과 야만의 경계선 바깥으로 밀려났고, 그 빛은 의도적으로 희미해졌다. 공자의 위대한 사상 뒤편에는, 이렇게 타자의 문화를 지워버린 배타적 논리가 숨어 있었다. 두 번째 막-사마천의 『사기』 그 뒤를 잇는 왜곡의 주인공은 사마천이었다. 그는 『사기』라는 방대한 역사서를 통해 동이족의 시조인 ‘현원’을 중국 하나라의 시조로 둔갑시켰다. 동이족의 기원을 아예 중국사의 일부로 끌어들인 것이다. 『사기』 이후의 정사들은 모두 이를 본보기로 삼았다. 결국 동이의 역사는 자기 이름을 잃고, 중국 역사에 종속되는 운명을 맞이했다. 사마천은 스스로를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이라 자처했지만, 사실상 그는 기록을 통해 권력을 행사한 셈이었다. 역사의 기록이 곧 권력이라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세 번째 막-김부식의 『삼국사기』 놀랍게도 세 번째 동북공정은 중국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 일어났다. 바로 김부식의 『삼국사기』다. 그는 신라 중심의 관점으로 역사를 재편했다. 발해와 신라가 나란히 남북조 시대를 형성했던 사실은 사라졌다. 발해는 역사에서 지워졌고, 우리 민족의 무대는 만주와 대륙에서 한반도로 축소되었다. 이는 단순한 기록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역사적 날개를 잘라낸 비극이었다. 이후 한반도 중심의 협소한 역사관은 우리의 시야를 좁히는 데 오랫동안 영향을 끼쳤다. 네 번째 막-일본 제국의 만선사관 네 번째 막은 일본 제국주의가 연출했다. 식민지배기 일본 학자들은 ‘만선사관(滿鮮史觀)’을 내세웠다. 만주와 조선의 역사는 본래 하나이며, 한국의 문화는 만주에 종속되었다는 논리였다. 그들은 이 이론으로 만주 침략을 정당화하고, 조선의 주체성을 지워냈다. 만주족의 독립성도, 한국 문화의 독창성도 모두 지워졌다. 식민사관은 결코 단순한 학문적 견해 차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주의의 칼날만큼이나 날카로운 정치적 무기였다. 다섯 번째 막-오늘의 동북공정 마지막 다섯 번째 막은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이다. 중국의 역사공정은 동북, 서북, 서남 공정으로 분류되는데, 특히 동북공정은 흑룡강성, 길림성, 요녕성에서 일어난 과거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는 역사 공정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지방정권의 역사로 격하시켰다. 더 나아가 한복, 김치, 심지어는 K-팝과 K-드라마 같은 현대 문화까지 중국 기원이라는 억지를 주장한다. 과거 동이족의 역사를 빼앗던 방식이 이제는 한국의 현대 문화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고대에서 현재까지, ‘문화 강탈’은 일관된 패턴으로 반복되고 있다. 역사를 지켜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왜 우리는 역사를 지켜야 하는가. 역사는 한 번 빼앗기면 되찾기가 어렵다. 이름을 잃은 민족은 뿌리를 잃고, 뿌리를 잃은 민족은 미래를 설계하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세계 문명의 중요한 토대를 지켜온 민족이라는 사실을. 갑골문과 금속활자, 그리고 한글은 모두 문자와 기록 문명의 혁신을 이끌었다. 오늘날 반도체가 인류의 디지털 시대를 열어가듯, 우리는 언제나 ‘문자의 민족’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왔다. 동북공정의 다섯 막을 되짚는 일은 단순한 과거사 논쟁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미래를 지켜내기 위한 싸움이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지만, 그 기록을 온전히 지켜내는 힘은 결국 우리 스스로에게 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동북공정의 그림자를 직시하고,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올곧게 지켜내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짊어진 가장 큰 과제다. 역사는 결코 과거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향해 묻고 있다. “너희는 스스로의 이름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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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다섯 차례의 동북공정, 그 긴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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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프롤로그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대한(大韓)’이라는 이름 속에 들어 있는 ‘한(韓)’이라는 글자를 마주할 때면, 마음 깊은 곳에서 오래된 질문이 되살아난다. 이 ‘한’은 누구의 한인가. 왜 우리는 이토록 당연하게 ‘한자(漢字)’를 중국의 것이라 믿으며 살아왔는가. 조선 500년의 사대 질서, 국문보다 한문이 출세의 사다리였던 시대의 기억이 몸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일까. 그러나 글자를 조금만 더듬어보면, 익숙한 상식은 쉽게 흔들린다. 한자의 간판보다 먼저, 더 오래된 목소리가 그 속에서 들려오기 때문이다. 1899년, 북경의 교수들과 학자들이 하남성 안양으로 달려갔다. 은(殷)의 수도, 은허(殷墟)에서 삽이 땅을 가르자, 흙 속에 묻힌 가장 오래된 문명의 기억이 드러났다. 거북 등껍질과 소의 뼈에 새겨진 글자들. 갑골문(甲骨文). 그것은 불타는 제단 옆, 인간이 처음으로 하늘에 바친 기도이자, 세계를 향한 외침이었다. 그러나 곧 발굴의 소식은 끊겼다. 은허에서 드러난 유물과 풍습들이 ‘한족(漢族) 중심’의 역사 도식과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궁궐이 남향이 아닌 동북을 향하고 있었고, 무덤의 형식과 뼈의 생김새가 달랐다는 증언들이 쏟아졌다. 동북, 곧 발해만을 바라보는 방향. 그것은 은의 뿌리가 다른 데 있었다는 암시였다. 바로 동쪽, 태양이 떠오르는 땅, 동이(東夷)의 기억과 맞닿아 있었다. 문자는 단순한 기록의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흔적이고, 뿌리의 노래다. 바람풍(風) 자의 고음을 더듬으면 오늘의 우리말 ‘바람’의 숨결이 스친다. 백두산은 중국어의 ‘바이또우산’이 아니라, 옛 발음의 ‘백두산’에 가까운 메아리를 품고 있다. 갑골문 속에는 소리와 기호만이 아니라, 인간의 몸 기억과 방향 감각, 하늘을 향한 경외가 새겨져 있다. 그 기억의 결이 동이족의 풍습과 닿아 있고, 만주-발해만-한반도로 이어지는 문화의 물길과 연결된다. 이 책은 잃어버린 뿌리를 더듬는 여정이다. 국수주의를 부추기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진짜 자존은 남의 그늘을 빌려 세우는 깃발이 아니라, 자기 질감의 시간을 겸손히 확인하는 데서 온다. 우리가 ‘한자’를 배울 때, 그 글자가 한(漢)의 간판을 달기 전, 은과 동이의 시간 속에서 어떤 얼굴로 태어났는지를 함께 묻고자 한다. 그것은 단순히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다. “누구의 것만도, 누구의 것이 아니기도 한, 인류의 공동 유산 속에서 우리의 몫을 찾기” 위함이다. 역사는 오늘을 위한 독해다. 오늘의 우리가 더 단단해지고, 내일의 우리가 덜 흔들리기 위해, 우리는 상식의 틀을 깨뜨려야 한다. 은허의 동북향을 따라, 바람풍의 옛 소리를 따라, 갑골문(은자)이라는 오래된 지도를 손에 쥐고. 길은 거꾸로도 읽힌다. 길은 기억을 향해 열린다. 갑골문은 동이족의 외침이었다. 뼈에 새겨진 칼끝의 떨림, 하늘과 강과 별을 향한 기도의 울림. 이 책은 그 외침을 다시 듣기 위한 시도다. 잃어버린 뿌리를 찾는 여정은 결국, 우리 존재의 근원을 다시 묻는 여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오늘의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질문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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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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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人] 김미애 의원, '추석 떡값' 전액 기부…나눔과 베풂 실천
- [교육연합신문=이정현 기자] 민족의 명절 추석 연휴의 긴 여정이 시작됐다. 새로운 정부 출범 이후 맞는 명절에다 미국과의 관세협상부터 정지적, 경제적 모든 상황에 국민들의 지갑은 얇아지고 열리지도 않고 있다. 추석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화제가 되는 주제가 국회의원 명절 떡값이다. '떡값'이라는 단어는 친절한 명절 선물의 의미이지만, 매일 정쟁만 일삼는 국회의원에 지급되는 명절휴가비가 알려지면서 국민들은 이를 곱게만 보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 명절 떡값은 공식적으로 '명절 휴가비'라고 불리며, '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제18종의 3에 근거해 지급된다. 설날과 추석 명절 전후 부수지급일에 맞춰 월 기본급에 60%가 책정되고, 2025년 기준 425만 7940원이 지급된다. 국회의원 1인당 연간 850만 원이 지급되며, 국민세금이 총 25억 원 정도에 달한다. 국회의원 명절 떡값은 월봉의 60%가 법적으로 보장돼 연간 850만 원 가까이 지급되는 반면 직장인 명절수당은 기업 재량으로 평균 100~200만 원 수준에 불과하고 절반 가까이는 아예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요즘 인터넷에 아이를 상대로 인터뷰한 동영상이 유행하고 있다.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라고 이유를 물으니 "놀고먹고 있는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아이들에 눈에 비치는 국회의원들 모습이 정확한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러한 시점에 항상 약자와 동행하는 국회의원이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로 있는 김미애 의원(국민의힘 부산해운대구을)이다. 약자와의 동행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김미애 의원은 정쟁에 지친 국민들에게 항상 따뜻한 희망을 항상 선물처럼 안겨 준다. 나눔 실천 일환으로 2020년 12월부터 세비를 30%씩 아껴 2023년 12월에는 국회의원이 돼 아낀 세비 1억 2000만 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지정기탁기부를 했고 그 후 매년 30% 세비를 아껴 역시 지정기탁기부를 통해 필요한 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이번에도 김미애 의원은 국회의원에게 주는 일명 '떡값'을 국민들에게 받기에 너무 민망스럽다고 전액 기부를 했다. 쉬운 일인 것 같지만 이 모든 것이 약자의 편에 서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선한 나눔을 실천하는 것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들도 있다. 또한, 김 의원은 가슴으로 낳은 아이를 키우고도 있다. 누구나 할 수 없는 일들을 김미애 의원은 진심으로 나눔과 베풂을 실천하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다. 태광실업 여공 출신으로 어렵게 공부한 것에 한이 맺혀 이렇듯 나눔과 베풂을 몸소 실천하는 듯하다. 중앙과 지역구를 오가면서 항상 주민들과 함께 숨쉬며 행동하는 김 의원은 토요일이 되면 힘들어하는 소상공인들을 돕고자 '미애가 간다 알바출발'로 앞치마를 매고 중요 시간대 알바를 자처하면서 소상공인들에게 다른 어떤 정책보다 더 좋은 선물을 해 주곤 했다. 정치는 국민을 위하는 정치가 돼야 하는데 작금의 형태는 국민들에게 실망만 안겨주는 정치인들 때문에 가족이 함께하는 추석 밥상이 무겁게 느껴진다. 김미애 의원 같은 나눔과 베풂을 몸소 실천하는 정치인들이 여의도에 꽉 들어찬다면 대한민국의 더 밝은 미래가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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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人] 김미애 의원, '추석 떡값' 전액 기부…나눔과 베풂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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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나주 지역 사회와 산업의 이해 - 동신대 김춘식 교수
- [교육연합신문=편집국] 동신대학교 김춘식 교수(에너지경영학과)가 지역 사회를 다각적으로 살펴본 저서 『나주 지역 사회와 산업의 이해』를 출간했다. 이번 책은 나주의 사회적 특성과 산업, 역사, 문화, 교육 등 지역 전반을 폭넓게 조명한 종합 안내서로, 지역학적 관점을 토대로 나주의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 발전의 가능성까지 탐구하고 있다. 이 저서는 특히 지역 청년과 시민들이 나주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기획됐다. 이론적 학습과 더불어 현장 체험, 토론, 조사를 결합해 지역 현안에 대한 실천적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고, 나아가 참여와 실천을 통한 성숙한 시민의식을 함양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역의 가치와 중요성이 날로 부각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이 책은 지역 공동체의 역량을 강화하는 지침서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책은 총 11개 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제1장 ‘지역학의 이해’를 시작으로 나주의 자연환경, 산업, 경제, 정치·행정, 교육, 문화 등 다양한 영역을 폭넓게 다룬다. 이를 통해 나주의 복합적 사회 구조와 기능을 해석하는 한편, 미래 발전 전략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또한 이번 저서는 오는 2025학년도 2학기 동신대학교 글로컬자율전공대학 개설 교양 교과목 [지역 산업과 사회의 이해]의 교재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지역의 미래를 이끌 대학생들이 최소 4년 이상 나주에서 생활하며 공동체 의식과 책임감을 기르고, 지역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창의적 인재로 성장하는 데 소중한 기반이 될 전망이다. 김춘식 교수는 “지역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미래 인재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핵심 역량”이라며, “특히 지역 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실천적 교육과 문화에 기반한 연대가 이뤄질 때 지역 정체성을 강화하는 시민들의 의지가 굳건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이 책이 많은 이들이 나주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계기가 되며, 나아가 지역 발전을 이끄는 창의적 인재로 성장하는 든든한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저자 김춘식 교수는 독일 함부르크대학교에서 역사학·교육학·정치학 석사와 서양근현대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 대학 역사학과 강의교수 및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를 거쳐, 현재는 동신대학교에서 창의유합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독일의 역사와 문화, 직업교육 및 평생교육, 지역학, 그리고 직접 개발한 창의·융합 발표토론교육프로그램(CCEP) 분야에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2014년 한-독 정부 간 직업교육 및 고등교육 교류 협약 체결에 기여했으며, 한·독 교사, 학생 및 연구 교류를 꾸준히 지원해 왔다. 2024년에는 독일 연방교육연구부(BMBF)와 아헨공대(RWTH Aachen)가 주관하는 '칼만 해외 석학(Theodore von Karman Fellow)'에 인문학자로는 최초로 선정되었다. 또한 한국독일사학회 제19대 회장으로서의 학술 활동과 더불어, 독일 미텔슈탄트대학교(FHM) 시니어 펠로우이자, 칼스루에 공과대학교(KTT)와 슈투트가르트대학교(USTUTT)의 공동 캠퍼스(ICM) 시니어 펠로우로 선임되어 한·독 간 대학의 공동 연구와 교육교류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김춘식 교수는 교육연합신문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교육부 고등교육 및 직업교육 정책 자문위원, 국가교육위원회 미래과학인재양성특위 전문위원, 한국전문대학평가인중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한국독일네트워크(ADeKo) 이사 겸 인문교육위원장, 농어촌 '우리동네 예술학교' 총괄운영위원장, 건강보험사사평가원 열린경영위원장, 녹색에너지연구원 운영위원, 전라남도 국제교류자문관, 도정평가위원, 인재육성분과 정책자문위원장, 전라남도교육행정협의회 위원, 전라남도교육청 및 나주교육지원청 민관산학교육협력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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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나주 지역 사회와 산업의 이해 - 동신대 김춘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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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신선 두꺼비가 지키는 전통 사찰 이야기 - 권오만 교수
- [교육연합신문=편집국] “세상을 품어 낸 지혜의 공간” 도교의 상징, 신선 두꺼비를 왜? 불교 사찰에 그려놨을까? “사찰은 단지 종교적 공간이 아니다. 천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앞으로 천년이 더 지나도, 무너지지 않는 공간 철학과 유연한 사회적 포용력, 그리고 지혜를 담아낸 곳이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오래된 사찰.겉으로는 소박하지만 그 안에는 깊은 ‘매력’이 숨어 있다. 비밀은 비틀린 나무와 옹이 많은 재료조차 그대로 살려내는 안목에서 비롯된다.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건축 철학, 그렇게 지어진 건축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은 멋을 드러낸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 속에 부처의 형상을 담은 ‘공조불’은 종교적 사유를 공간에 녹여낸 특별한 설계이다. 경사진 지형을 장점으로 활용한 점승법, 무단한 권력의 횡포를 제어하는 누하진입 방법 등은 사찰이 단순한 수행 공간을 넘어 깊은 지혜와 통찰이 구현된 공간임을 말해 준다. 이 책 『신선 두꺼비가 지키는 전통 사찰 이야기』는 월정사를 중심으로 안동 봉정사, 구례 화엄사, 부안 내소사, 서산 개심사 등 다양한 사찰의 사례를 통해, 한국 전통 사찰의 건축 기술과 공간 철학, 그리고 그 속에 스며든 종교적 포용력과 사유의 깊이를 풀어낸다. 사찰은 종교와 사회가 상호작용하며 형성한 문화적 장면이자, 세월을 넘어 전해진 지혜의 저장소이다. 오늘날, 다양성과 공존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대에 전통 사찰이 전하는 포용과 존중의 메시지는 더없이 귀중한 통찰을 안겨준다. ▣ 저자 권오만 인하대학교 무기재료공학과를 졸업한 후, 국민은행 본점에 입행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대학 시절부터 바다와 자연을 좋아해 스킨스쿠버 동아리 활동을 해 왔고, 강원도 원통의 휴전선 인근 북한강 발원지에서 인제 상남, 소양강, 의암호, 청평댐, 두물머리, 여의도 한강까지 수영으로 종주하였다. 이어 일본의 최장 하천인 신농천(信濃川, しなのがわ)의 발원지에서 니가타시(新潟市) 바다까지 완주하며, 자연과 환경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사회적 활동으로 확장해 나갔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삶과 진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를 바탕으로 환경과 자연 생태에 대한 관심을 본격화하였고, 사단법인 무지개세상(한국환경생태계연구협회)에서 활동하며 KBS 자연 다큐멘터리 「북한산은 살아있다」, SBS 「월악산」 등의 제작에 참여하였다. 이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환경계획 및 조경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상명대학교 환경조경학과에서 강의를 시작으로 학문적 활동을 병행해 왔다. 경동대학교 산학협력단장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같은 대학 메트로폴 캠퍼스에서 건축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2년에 창작산맥 시 분야 신인문학상 당선으로 등단하였고, 저서로는 디자인과 철학의 공간 우리 궁궐(밥북, 2022), ‘잊혀진 문화유산 해자와 풍류이야기(솔과학, 2018)’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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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신선 두꺼비가 지키는 전통 사찰 이야기 - 권오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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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풀꽃은 길이 되고, 삶은 피어난다
- [교육연합신문=편집국] 《풀꽃은 길이 되고, 삶은 피어난다》는 생태적 관점에서 본 잡초의 생존 전략을 인간 삶의 통찰로 풀어낸 인문 에세이다. 잡초는 환경에 순응하고, 경계를 넘으며, 억압을 견디고, 끝내 피어나는 ‘살아 있음’의 진실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식물 생태학적 정보와 문학적 상상력이 결합된 글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독자에게 ‘버티는 힘’, ‘존재의 의미’, ‘삶의 방향’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제안한다. 삶이 흔들릴 때, 길을 잃을 때, 이 작은 풀꽃의 이야기가 새로운 방향을 열어줄 것이다.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통해 자신만의 뿌리를 발견하고, 어디서든 피어나는 용기를 얻기 바란다. ■ 《풀꽃은 길이 되고, 삶은 피어난다》를 출간한 소감을 듣고 싶다. 《풀꽃은 길이 되고, 삶은 피어난다》를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은, 마치 작은 들꽃 한 송이를 조심스레 길가에 놓아두는 마음이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것 같은 그 풀꽃 한 포기에도, 거센 바람과 햇살, 비를 견디며 살아온 이야기가 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인간 존재의 삶에 겹쳐 쓰고 싶었다. 출간을 마친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고요한 떨림이다. 세상의 화려한 꽃들 사이에서, 들풀 한 포기의 생을 말하는 일이 어쩌면 너무 미미하고 사소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 책장을 넘기다 문득 멈춰 서서, 자신의 삶에도 그렇게 조용히 피어난 어떤 순간을 떠올린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스스로 길이 되었구나 싶다. 이 책은 삶의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여정이었다. 풀꽃이 길이 되듯, 나도 누군가에게 조용한 위로의 길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지나온 모든 땅 위에, 풀꽃처럼 소리 없이 피어났다가, 흔적 없이 지는 삶일지라도, 그 생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고, 그 존재는 눈부셨다고 말하고 싶었다. ■ 《풀꽃은 길이 되고, 삶은 피어난다》를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풀꽃은 길이 되고, 삶은 피어난다》를 집필하게 된 계기는, 작고 미약한 존재가 삶을 뚫고 나아가는 힘에 대한 깊은 경외심에서 비롯되었다. 어느 날, 바람에 쓰러진 들풀을 보았다. 비에 젖고 발에 밟혔지만, 그 풀은 어느새 다시 일어나 있었다. 그 모습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거창한 성공이나 위대한 서사보다, 묵묵히 살아내는 존재의 힘, 그것이야말로 진짜 삶이 아닐까 하는 물음이 생겼다. 풀꽃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피고, 누구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사라진다. 하지만 그 짧은 생 안에, 계절을 살고 햇살을 기억하고, 바람을 통과하며 길이 된다. 나는 그런 풀꽃을 통해 인간의 삶을 다시 바라보고 싶었다. 작은 생명의 전략 속에 숨은 큰 통찰, 그 안에서 오늘을 견디는 우리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나 자신의 회복이기도 했다. 지치고 흔들리던 어느 시기에, 나는 자연에게 귀 기울였고, 그 속에서 말을 건네 오는 풀꽃들을 만났다.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들이, 나를 다시 걷게 했고, 그렇게 피어난 사유를 한 줄 한 줄 적어간 끝에, 이 책이 태어났다. 결국, 이 책은 나와 누군가를 향한 조용한 응원이자, 살아가는 모든 존재를 향한 존중의 기록이다. ■ 책을 집필하면서 겪은 에피소드, 또는 즐거웠거나 어려웠던 점은? 《풀꽃은 길이 되고, 삶은 피어난다》를 집필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한 자리에 오래 앉아 풀 한 포기를 바라보던 시간이다. 글을 쓰기 위해 일부러 산이나 들로 나간 것이 아니라, 무심코 지나던 길에서 문득 멈춰 서게 되었고, 그 작은 식물 하나를 바라보다가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몰랐다. 풀꽃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 형상과 자세, 주변의 바람과 어우러지는 움직임이 하나의 문장이 되었고, 그것이 글의 시작점이 되곤 했다. 즐거웠던 순간은, 의외의 단어들이 나를 찾아올 때였다. 예를 들어, ‘잡초’라는 말을 곱씹다 보면 그 안에 ‘잡다한 생의 조각들’이 숨어 있고, ‘뿌리’라는 말 속에는 버티고, 얽히고, 견디는 모든 시간이 있다. 이렇게 자연이 주는 언어와 내 사유가 만나는 순간들은 매번 신비로웠고, 그만큼 글쓰기가 참 따뜻하게 다가왔다. 반면, 어려웠던 점은, 풀꽃의 생을 빌려 인간의 삶을 말한다는 것이 자칫 억지스러운 비유로 흐를 위험이 있다는 점이었다. 너무 감상적으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생명의 결을 섬세하게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문장 하나를 다듬기 위해 며칠씩 고민하기도 했고,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는 시간이 길었다. 또 하나의 고민은, 자연을 해석하는 나의 시선이 ‘교훈’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정답을 주는 책이 아니라, 그저 독자와 함께 자연 앞에 앉아 조용히 바라보는 시간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에, 어떤 단정도 피하고 싶었다. 지금 돌아보면, 가장 큰 배움은 자연이 아니라 침묵에서 비롯되었다. 말보다 앞선 침묵, 그 속에서 들려온 풀꽃의 언어가, 내 글의 뿌리가 되었다. ■ 책 내용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애착이 가는 구절이 있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프롤로그에 적어둔 한 문장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거대한 힘이 아니라,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조용한 물결이다.” 이 문장은, 제가 풀꽃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삶의 진실을 가장 잘 담고 있다. 풀꽃은 늘 땅에 바짝 엎드려 피어나고, 누구에게도 과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람의 발길 아래에서조차 묵묵히 살아간다. 그렇기에 제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장면은 봄비에 젖은 들길에서 작은 민들레 한 송이를 마주했던 순간이다. 그 풀꽃 하나는 말없이 피어 있었지만, 저는 그 안에서 “끝내 꺾이지 않는 생명의 의지”를 보았다. 이 문장은 작은 풀꽃이 가진 힘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 조용한 존재감, 그 미세한 떨림이 모여 결국 삶을 밀어내고, 시간을 열어가는 힘이 된다. 우리는 흔히 변화나 의미를 거대한 것에서 찾으려 하지만, 풀꽃은 묻는다.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을 만큼 작고 조용한 것들이 아닐까?" 그 질문이 제 마음에 오래 남았고, 이 책을 끝까지 이끌어가는 등불 같은 문장이 되어 주었다. ■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셨나요? 글이 막힐 때면, 일부러 바람 부는 곳에 나가거나, 나무 그림자 아래 조용히 앉아 있었다. 눈으로 풀잎을 따라가고, 귀로 바람의 소리를 듣고, 마음으로 사라지는 꽃잎을 느끼다 보면, 말보다 먼저 감각이 깨어났고, 그 감각이 글의 실마리를 열어 주었다. 또 하나의 방법은, 글을 쓰지 않고 오래 바라보는 일이었다. 풀 한 포기, 뿌리의 흔적, 그늘 속의 작은 생명을 그냥 바라만 보는 시간. 마치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를 내려놓고, 글이 나를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식이었다. 그 기다림은 때로 며칠씩 이어지기도 했지만, 묵은 침묵 속에서 나온 한 줄은, 억지로 쓴 열 줄보다 더 깊고 진실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쓴다는 것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라는 걸 스스로에게 자주 상기시켰다. 내 안의 어떤 소리, 자연의 미세한 기척, 존재가 보내는 침묵의 언어들. 그것들을 충분히 듣지 못한 채 쓴 글은 늘 가볍고 얇았다. 그래서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땐, 오히려 펜을 내려놓고 이렇게 되뇌었다. “지금은 쓸 때가 아니라, 들을 때다.” 그러면 어느 순간, 조용히 문장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풀꽃처럼. ■ 이 책을 접할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풀꽃은 길이 되고, 삶은 피어난다》를 펼쳐들게 될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당신의 삶도, 지금 그 자리에서 충분히 피어나고 있습니다”라는 고요한 응원이다. 이 책은 거창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세상의 중심에서 외치는 소리보다, 길가에 조용히 피어 있는 들꽃 한 송이처럼, 작고 미세한 삶의 진동에 귀 기울이는 이야기다. 우리는 종종, 더 크고 빛나는 삶을 꿈꾸느라, 자신의 뿌리가 뻗고 있는 ‘지금 이 자리’를 잊곤 한다. 하지만 풀꽃은 말한다. 바람 부는 자리에서도 피울 수 있고, 밟히는 자리에서도 향기를 낼 수 있다고. 삶이 버거워 지칠 때, 누군가의 말보다 한 줄기 바람, 한 줄의 문장이 더 깊은 위로가 될 수 있다. 이 책이 그런 순간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조용한 그늘이 되기를, 그리고 다시 걷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작은 길이 되기를 바란다. 끝으로, 이 책을 읽는 당신도 누군가에게는 조용히 피어 있는 풀꽃 같은 존재라는 것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세상은 그 작은 존재들 덕분에, 오늘도 여전히 아름답다. ■ 바른북스와 함께하면서 인상 깊었던 점 혹은 만족한 부분은? 바른북스와 함께한 출판 여정은, 마치 한 권의 책이 아닌 한 송이 꽃을 함께 피워낸 시간처럼 따뜻하고 정성스러웠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책의 방향성과 결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존중해 주셨다는 점이다. 《풀꽃은 길이 되고, 삶은 피어난다》는 작고 섬세한 감각의 언어들로 이루어진 책이기에, 자칫 소홀히 다루면 그 고요한 울림이 흐려질까 걱정했지만, 바른북스는 그 고요를 함께 들으려는 태도로 곁에 있어 주었다. 상담 과정에서도 진심 어린 피드백과 세심한 안내,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의 마음’을 중심에 두는 접근이 큰 힘이 되었다. 단순한 계약 관계가 아니라, 책이라는 생명체를 함께 길러낸 동반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담당 편집자님께는 깊이 감사드린다. 원고의 숨결 하나하나를 함께 호흡해 주셨고, 때로는 지나친 문장을 다듬어 주고, 때로는 미처 보지 못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주셨다. 한 문장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통할 때, 글쓰기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는 걸 느꼈다. 출판은 책을 완성하는 일인 동시에, 작가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여정을 바른북스와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함께 피운 이 한 권의 ‘풀꽃’이, 누군가의 마음에도 조용히 피어나길 바란다. ▣ 우진(宇塵) 육우균 ◇1965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남 ◇ 충남고등학교 졸업(1983년) ◇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졸업(1987년) ◇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1997년) - 석사논문 「논술문 쓰기 지도 방법 연구」 ◇ 인천 영흥고등학교 교감 퇴임(26.6년 교직생활) ◇ 중앙일보 공교육 논술자문단 자문위원 ◇ 중등교사 임용시험 채점위원 ◇ 前 경기신문 교육전문기자 ◇ 前 교육연합신문 교육국장 ◇ 現 교육연합신문 주필 ▣ 펴낸곳 바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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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풀꽃은 길이 되고, 삶은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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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인공지능시대, 질문하는 인간이 이끄는 창의·융합 교육의 미래
- [교육연합신문=안용섭 기자] 문화예술교육 분야에서 인공지능 활용에 관한 국제적 연구 교류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창의성과 예술성, 교육의 다양성 및 포용성 증진을 위한 실질적 대안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본지는 서울대학교에서 음악학 박사논문을 쓰고 있는 독일 출신 음악교육 연구자인 마들렌 포군트케(Madlen Poguntke) 씨가 교육 현장에서의 AI 도입 가능성과 한계, 그리고 미래지향적 방향성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제시해 온 교육연합신문의 김춘식 논설위원(동신대학교 교수)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 한·독 양국의 문화예술교육 현장과 인공지능 활용에 대한 생생한 경험을 담고 있으며, 미래 교육의 방향을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 편집자 주 ■ Madlen Poguntke 교수님, 간단한 자기소개와 인공지능(AI)과 교육의 접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ㅁ 김춘식 교수 저는 독일 함부르크대학교에서 역사학, 교육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현재 동신대학교에서 창의융합교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교육이 단순 지식 전달을 넘어 미래 핵심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고민에서 AI와 교육의 접점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인간 중심 교육 가치와 AI 활용의 균형이 제 연구의 중요한 화두입니다. ■ Madlen Poguntke 교육 분야에서 AI 활용과 관련한 직접적 경험이나 현장에서 느낀 변화, 도전 과제가 있으신지요? ㅁ 김춘식 교수 공학적 AI 연구는 직접 하지 않았지만, AI와 교육 관련 연구와 강연, AI 디지털 교과서 현장 적용 사례 분석 등 다양한 경험이 있습니다. AI는 교육의 효율성과 접근성을 높이지만, 비판적 사고 저하, 정서적 고립, 교육 격차 심화 등 부정적 영향도 체감하고 있습니다. ■ Madlen Poguntke AI가 교육 현장에서 활용되는 구체적 사례를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ㅁ 김춘식 교수 Gradescope, Riiid Labs 같은 자동 평가 도구는 교사의 채점 부담을 줄이고, Help Me See, Nuance 등은 장애 학생 맞춤형 지원에 활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Magic School AI, Eduaide.AI 등은 행정 자동화와 수업 자료 제작에 기여하고, Blippar(AR/VR), Duolingo, Blue Canoe 등은 몰입형 학습과 언어교육에 AI를 접목하고 있고요. ■ Madlen Poguntke AI가 앞으로 음악교육 전공 교사 양성과정에 가져올 변화와 중요해질 새로운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ㅁ 김춘식 교수 꼭 음악교육 교사에게만 국한되는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음악교육 교사에게는 AI 도구 활용 능력, 데이터 분석, 디지털 콘텐츠 제작, 윤리적 판단력 등이 필수적입니다. AI는 행정·평가 업무를 보조하지만, 정서적 지지, 동기 부여, 예술적 감수성 지도 등 인간적 교육의 본질은 대체할 수 없습니다. 교사는 학생의 창의성과 다양성, 개성을 이끌어내는 멘토 역할에 집중해야 합니다. ■ Madlen Poguntke AI와의 협업이 교사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나요? 교사의 역할 변화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ㅁ 김춘식 교수 AI가 행정·평가 등은 보조하겠지만, 인간적 교육의 본질은 대체 불가합니다. 오히려 교사는 학생의 성장, 창의적 문제해결력, 비판적 사고를 키우는 멘토로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 Madlen Poguntke AI 도입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교사 연수, 인프라 측면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ㅁ 김춘식 교수 가장 큰 도전은 접근성과 형평성 문제입니다. 인프라 격차 해소, 체계적 교사 연수, 윤리·데이터 보호, 주체적 성장 환경 조성이 필요합니다. 학생·교사가 기술에 종속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어야 합니다. ■ Madlen Poguntke 한국 학교의 AI 도입 인프라 현황과 필요한 조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ㅁ 김춘식 교수 네트워크, 디지털 기기, 지원 인력 등에서 지역 간 격차가 큽니다. 단순 하드웨어 지원을 넘어 소프트웨어, 연수, 컨설팅 등 종합적 지원 체계가 필요합니다. ■ Madlen Poguntke 독일과 한국의 AI 및 개인정보 보호 인식 차이는 무엇입니까? ㅁ 김춘식 교수 독일은 데이터 보호와 윤리,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며 신중하게 접근합니다. 한국은 AI 기술 진흥과 신뢰 기반 조성을 동시에 추진하며, 보다 실용적이고 유연한 정책을 펼칩니다. 두 나라의 정책 우선순위와 사회적 가치관이 다릅니다. ■ Madlen Poguntke 문화적 차이가 AI 수용에 미치는 영향과, 사회적 수용성 측면에서 두 나라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ㅁ 김춘식 교수 독일은 신중하고 사회적 합의를 중시해 도입이 느릴 수 있지만, 신뢰를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정착합니다. 한국은 빠른 실험과 현장 적용이 특징이며, 디지털 혁신에 대한 기대와 수용성이 높습니다. ■ Madlen Poguntke 음악교육에서 AI 활용의 기회와 위험, 그리고 균형 잡힌 접근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ㅁ 김춘식 교수 AI는 맞춤형 학습, 창의성 확장, 접근성 강화에 기여하지만, 저작권·윤리 문제, 인간 창의성 약화, 기술 의존 등 위험도 있습니다. 두 나라 모두 인간의 창의성과 예술적 가치를 지키는 균형이 필요하며, 지속적 교류와 협력이 중요합니다. ■ Madlen Poguntke AI가 교육에 미치는 본질적 영향과 앞으로 주목해야 할 핵심 과제는 무엇입니까? ㅁ 김춘식 교수 AI 도입 시 정보의 정확성, 저작권, 개인정보 보호, 비판적 사고 저하 방지, 윤리적 문제, 교사의 역할 변화 등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AI는 보조 도구에 머물러야 하며, 인간 중심 교육 가치가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 Madlen Poguntke AI와 창의성, 인간 고유의 개성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ㅁ 김춘식 교수 AI는 창의적 도구로 인간의 창의성과 개성을 확장할 수 있지만, 인간 고유의 감정과 실재적 경험, 진정한 창의성은 대체할 수 없습니다. 예술 교육에서는 AI와 인간의 협업을 통해 창작의 지평을 넓히되, 인간만의 독창성과 감수성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 Madlen Poguntke 실제 현장에서 AI가 창의적 과정을 지원하는 구체적 사례를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ㅁ 김춘식 교수 AI 작곡 프로그램, 음성 분석 도구 등으로 학생들이 곡을 만들거나, 즉흥 연주와 편곡에 AI의 도움을 받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2024년 대한민국 글로컬 미래교육박람회에서는 AI가 작곡한 곡이 공식 대회곡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AI 결과물에만 의존하지 않고 학생 스스로 창의적 탐구와 비판적 성찰을 병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Madlen Poguntke AI가 교육 패러다임 변화에 미칠 영향과 교육의 본질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ㅁ 김춘식 교수 AI는 학습 환경의 디지털화, 맞춤형 학습, 데이터 기반 평가 등 변화를 가져오지만, 인간의 성장과 전인적 발달, 정서적 지지, 사회적 관계 형성 등은 대체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는 AI와 인간 교사의 협력적 관계와 인간적 가치 지키기가 중요합니다. ■ Madlen Poguntke AI를 교육과정, 특히 음악 교육에 통합할 때의 기회와 위험, 그리고 균형 있는 관리 방안은 무엇입니까? ㅁ 김춘식 교수 기회는 개인화된 학습, 창의성 확장, 접근성 강화 등이고, 위험은 과도한 기술 의존, 윤리 문제, 교육 격차 심화 등입니다. 이를 위해 교사 연수, 윤리 교육, 인프라 형평성, 인간적 소통과 정서 지원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 Madlen Poguntke 학령별 AI 활용 방향과 주의점은 무엇입니까? ㅁ 김춘식 교수 초등은 놀이와 감각적 경험, 사회적 상호작용에 중점, 중등·고등은 데이터 분석과 창의적 프로젝트, 모든 단계에서 윤리·비판적 사고 교육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 Madlen Poguntke AI와 교육 융합을 위해 필요한 학제 간 협력과 인문학적 관점의 핵심 요소는 무엇입니까? ㅁ 김춘식 교수 컴퓨터 과학, 수학, 음악,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 협력이 필요합니다. 인문학적 관점에서는 비판적 사고력, 윤리적 성찰, 사회적 책임감이 중요합니다. ■ Madlen Poguntke AI가 지원하는 미래 교육에서 인간 상호작용의 역할과 교육의 본질적 가치가 AI 시대에도 지켜지기 위한 고민점은 무엇입니까? ㅁ 김춘식 교수 AI 시대 교육의 핵심은 질문하는 창의성과 인간 고유의 상상력입니다. AI는 도구이자 동반자일 뿐, 인간 교사의 정서적 지지, 창의성·비판적 사고 촉진, 윤리 교육 등은 대체할 수 없습니다. 교육은 지식 전달이 아닌 문제 발견과 재정의, 상상력과 실행력의 협업, 윤리적 성찰을 중심으로 재설계되어야 하며, 인간의 질문과 창의성이 기술 발전을 주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AI가 지원하는 미래 교육에서 인간의 상호작용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AI는 효율성과 맞춤화, 정보 제공 등에서 강점을 갖고 있지만, 정서적 지지,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 촉진, 개별화 멘토링, 윤리 교육, 협력적 환경 조성 등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본질적 가치입니다. 앞으로의 교육은 AI와 인간 교사의 협력적 관계를 바탕으로, 학생의 전인적 성장과 정신적 건강, 사회적 책임의식을 함께 키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교육의 본질적 가치가 AI 시대에도 흔들림 없이 지켜지도록, 우리 모두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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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인공지능시대, 질문하는 인간이 이끄는 창의·융합 교육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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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이 전하는 교과서 이야기㈑ – 제1차 교육과정기(1954~1963년)
- [교육연합신문=안용섭 기자] 1954년 4월부터는 그동안 준비해 왔던 교수요목에 의거해 제1차 교육과정이 시작된다. 이 제1차 교육과정 시기는 6.25 전쟁을 겪은 뒤에 4.19 혁명, 5.16 군사정변이 있었던 격동의 시대였다. ▮ 1954년 4월 20일 문교부령 제35호로 ‘교육과정 시간 배당 기준령’이 제정·공포됐으며 법령상의 명칭은 ‘교과과정’이었다. 제1차 교육과정은 교과중심 교육과정이었는데, 1947년 당시의 교수요목은 임시방편으로서의 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교육법」이 제정됨에 따라 기존의 교과를 기본으로 하여 최초로 우리 손으로 만든 국가 수준 교육과정 체제를 확립했다. 이 교육과정에서는 학습자의 경험과 생활을 중요시하는 생활 중심 교육과정의 개념이 들어 있는데, 이러한 특색은 미국의 진보주의 교육 사조와 신교육 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생활 중심 단원으로 부르기도 했다. ▮ 제1차 교육과정은 전쟁으로 파괴된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현실 생활을 개선하고 향상시킬 사회 개선의 의지를 강조했으며 정부 수립 후 제정하고 공포한 「교육법」의 교육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교육과정을 목표로 했다. 또, 반공 교육, 도의 교육, 실업 교육을 강조했고 특별활동 시간을 최초로 배정했다는 점에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 학교급별 교육과정 편제는 교과 활동과 특별 활동의 2대 영역으로 편성돼 있으며, 교과별 교과 과정의 구성 체제는 교과별 목표와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 편제에서 도덕 과목이 신설됐으며, 반공 교육, 도의 교육, 실업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 이 시기의 교과서의 특징은 종래의 4×6판을 국판(5×7판)으로 개선했고, 활자기 도입으로 활자를 개량해 인쇄를 선명하게 했다. 초등학교의 기본 교과서는 모두 국정으로 해 검정 교과서가 없어지게 됐고, 중·고등학교 교과용 도서는 국정과 검·인정 교과 사업이 병행됐다. ▮ 교과서의 판형은 주로 국판(5×7판), 4×6판, 5×6판, 4×6배판 등이 혼용됐으며, 지질은 본문의 경우에 마분지 갱지(45g/㎡), 표지는 모조지 또는 마분지를 사용했다. 컬러는 초등 1학년의 경우에는 원색을, 그 밖에는 단색을 사용했으며, 표지는 단색, 원색을 학교급에 따라 다르게 적용했다. ▮ 여기에서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철수’와 ‘영이’가 1960년대와 70년대를 대표하는 교과서 주인공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철수’와 ‘영이’는 1948년 『바둑이와 철수』에 처음 등장한 이래로 1964년(제1차)까지의 주인공이고, 1964년부터 1972년(제2차)까지는 ‘인수’와 ‘순이’였고, 1973년부터 1983년(제3차)까지는 ‘기영’이와 ‘순이’가 우리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때의 국어 교과서 주인공이었다. 철수와 영이는 친구 사이가 아니라 남매 사이라는 점은 교과서를 보면 확인하실 수 있다. 두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구성은 오늘날의 스토리텔링 기법의 원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국어 1-1』 표지와 본문 ◀ 애니메이션 「검정 고무신」은 1960년대 후반 서울특별시 마포구에 살고 있는 대가족을 배경으로 기철(중학생), 기영(국민학생) 형제가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았고 있는데,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에 집 안에서 일어나는 가족 간의 갈등, 일상생활 등, 학교 교실에서 일어나는 코믹한 에피소드들, 동네 골목에서의 놀이 등 정겨운 시대에 대한 추억과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한 애니메이션이다. 여기에서 주인공의 이름이 ‘기영’이라는 사실이 우연이 아닐 것이다. ▮ 제1차 교육과정기에 발행된 검정 교과서의 외형 체제에 대한 규정은 엄격했는데, 1955년 10월 6일 제정된 ‘검인정교과서 형식 사열 기준’과 1960년 11월 1일 제정된 ‘교과용도서체제 기준’을 엄격히 준수해야만 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먼저 첫 번째로, 판종(판형)은 4×6판, 5×6판, 5×7판, 4×6판배 판으로 한다고 했다. 다만, 음악과 교과서, 미술과 교과서 및 지도첩은 5×7판 이상 5×7배판 이하로 하고, 기타 교과의 교과서는 5×7판을 원칙으로 하되 5×6판 또는 4×6판도 용인했다. ▸ 두 번째로, 활자다. 활자는 중등학교 교과서의 본문 활자의 크기는 5호(15Q) 이상으로 했으며, 고등학교 한문 및 중국어의 학생용 교과서의 본문은 4호(20Q) 이상이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 활자는 정확 명료해야 하며 자획이 선명해야 한다고 했다. ▸ 세 번째로, 행수, 자수, 자간, 여백과 관련된 사항이다. 행수는 판종(판형)과 활자 크기에 의거해 5×7판에 5호 활자를 사용하는 것을 기준으로 해 1면 본문을 750자 이내로 하되 단, 1면의 본문이 25행을 넘을 수 없으며 1행은 32자를 넘을 수 없다고 했다. 어간을 반각으로 하고, ‘, . ! ?’ 등 기호는 반각으로 간주해 이들 기호와 다음 글자 사이는 전각으로 했다. ▸ 네 번째로는 인쇄다. ①인쇄는 선명해야 한다. ②인쇄에 농담이 없어야 한다. ③글자 이외의 지면이 깨끗해야 한다. ④글줄이 바르게 돼 있어야 한다. ⑤삽화는 명료해야 한다. ▸ 다섯 번째로, 체제다. 표지는 120근 이상의 후지를 사용해야 하며, 교과용 도서 검인정을 받은 표시는 안표지에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 여섯 번째로, 제본이다. 제본은 견고해야 하며, 책면은 고르게 제본이 돼야 한다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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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이 전하는 교과서 이야기㈑ – 제1차 교육과정기(1954~19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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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이 전하는 교과서 이야기 ㈐ – 미 군정기 및 교수요목기
- [교육연합신문=안용섭 기자] ▶ 최초의 한글활자본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 1. 미 군정기(1945~1948년) 1945년 해방을 맞아 신조선의 조선인을 위한 교육으로 미 군정 시대가 시작됐다. 미 군정기에는 학교교육을 통해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이식하고 식민지 교육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했다. ‘교육에 대한 긴급 조치’를 통해 초등학교, 당시에는 국민학교였다. 수업이 시작돼 우리말과 글과 역사를 가르치게 됐다. 미군정청 학무국에 의한 교육 방침에 따라 교수 용어는 일본어 대신 한국어로, 또 조선의 이익에 반하는 교과목들, 특히 일제 황민화 교육을 주도했던 과목들이 일체 금지됐다. ▮ 미 군정기는 불과 3년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때 현대 한국 교육의 기본 틀이 마련됐다. 미군은 반공 이념이 투철하고 자유민주주의적 성향을 지닌 한국인 미국 유학생들을 발탁해, 미군정 학무국과 한국교육위원회 및 조선교육심의회에 배치했다. ▮ 미 군정은 인문 학교와 실업 학교의 학제가 완전히 분리돼 있던 복선형 학제를 단선형 학제로 바꿈으로써, 종전의 인문 교육과 실업 교육의 제도적 분리에서 기인한 빈부에 의한 학교 진학의 차이를 없애려 했다. 또, 미국식 수업 연한을 도입해, 학제를 6·3·3·4제로 개편했다. 이들은 한국인의 높은 교육열과 38선 이남에 자유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목표를 고려해 국민학교를 의무교육화 했다. ▮ 이 시기의 주요 특징으로는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공민과를 신설했으며, 우리의 말과 글 중심의 국어 교육을 강화했다. 또, 우리의 국사 교육도 시행했다. 8월 15일 해방 후 미 군정이 시작되면서 국민학교는 9월 24일에, 중등학교는 10월 1일에 교과서 한 권도 없이 교실 문을 열게 된다. 교과서뿐만 아니라 교사들조차 턱없이 부족한 시기였기 때문에 교과서 대신 임시적으로 칠판에다 쓰고 공책에다 베끼고, 임시로 제작된 교과서를 사용하다가 11월에 가서야 미군정청 학무국에서 『한글 첫걸음』이라는 국어 교과서가 발행된다. 종이가 부족하고 활자도 없던 어수선한 시대인 관계로 3개월의 진통 끝에 만들어진 교과서였다. ▮ 『한글 첫걸음』을 비롯한 국어 교과서를 가장 먼저 편찬 발행한 미군정청 학무국은 계속해 『공민』, 『역사』, 『지리』, 『음악』, 『잇과』 등의 교과서를 발행했다. 『한글 첫걸음』은 국판(A5판) 크기의 50쪽으로 구성돼 있다. 말살됐던 국어 교육을 급속히 회복하기 위해 국민학교의 『초등 국어 교본』과 중학교의 『중등 국어 독본』을 각각 편찬했으나, 특수한 사정은 상급 학년일지라도 모두 한글을 배우지 못해 읽을 수 없었다. 따라서 국민학교 1·2학년은 『초등 국어 교본』 상권으로 한글을 가르치고, 3학년 이상과 중학교에서는 교과서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글 첫걸음』으로 먼저 한글을 익히게 했다. 정인승(鄭寅承) 선생을 책임자로 해 장지영(張志暎)·윤재천(尹在天) 선생 3인의 기초 위원에 의해 편찬됐다. ▮ 이렇게 추진되어 온 교과서 편찬 사업은 미 군정이 끝날 무렵인 1948년 6월에는 『한글 첫걸음』, 『초등 국어』, 『공민』, 『중등 공민』, 『우리나라 발달』, 『국사 교본』, 『사회 생활』, 『중등 국어』, 『초등 셈본』, 『잇과』, 『노래책』, 『글씨본』, 『가사』, 『농사짓기』 등 54종의 교과서를 발행하게 됐다. ▮ 이 시기에 배웠던 교과목을 살펴보면, 국민(초등)학교는 모두 12교과로 공민, 국어, 역사, 지리, 산수, 잇과, 체조, 음악, 습자, 도화·공작, 요리·재봉, 실과이며 학년별 주당 수업 시간 수는 22~33시간이었다. 중등학교는 모두 14교과로 공민, 국어, 지리·역사, 수학, 물리·화학·생물, 가사, 재봉, 영어, 체육, 음악, 습자, 도화, 수예, 실업이 있었으며 학년별 주당 수업 시간 수는 32~36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시대의 교육은 무엇보다도 일제 강점기의 잃어버렸던 한글(국문)에 대한 교육이 최우선이었다. 『한글 첫걸음』을 비롯해서 『국문 독본』과 같은 한글 교육에 대한 교육 교재들이 많이 만들어졌던 시기였다. ▮ 체제 면으로 볼 때, 당시의 교과서는 4×6판과 국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며, 면수가 적고 지질이 아주 나빠 마분지 같은 용지를 썼다. 그리고 활자가 아주 나빴을 뿐만 아니라 자형도 가지각색 였다. 컬러 인쇄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흑백으로 인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2. 교수요목기와 6.25 전쟁 시기(1946~1953년) 1946년 가을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미 군정청은 일부 교수요목이 포함된 각급 학교 교육과정을 공포했다. 그래서 1946년 9월 1일에는 ‘국민학교 교수요목’을 전달했고, 1946년 9월 20일에는 중학교의 학제 변경에 따른 교과목별 주당 수업 시간표를 정하고, 교과목별 교수요목을 전달했다. ▮ 이 교수요목에는 다음의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교과별 교수요목에는 교사가 학생에게 가르칠 교수 내용의 ‘주제’ 또는 ‘제목’을 열거했다. 둘째, 구성 체계는 교과별로 각론이 중심이 됐다. 셋째, 교과별로 각 교과의 지도 내용을 상세히 표시하고, 기초 능력을 배양하는 데 주력했다. 넷째, 교과는 분과주의를 채택해 체계적인 지도와 지력의 배양에 중점을 뒀다. 다섯째 홍익인간의 정신에 따라 애국 애족의 교육을 강조했으며 한글 전용과 우리말 도로 찾기 및 우리 말 용어 제정 등과 같이 일제 잔재를 없애려고 노력했다. ▮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교육과 관련해 획기적인 변화는 1949년 12월 31일 「교육법」의 제정·공포였다. ‘홍익인간’을 교육 이념으로 채택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바둑이와 철수』는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문교부에서 최초로 편찬·발행해 첫 정규 교과서로 사용한 초등학교 1학년 1학기용 국어 교과서다. 이 교과서는 12개 단원을 하나의 이야기 학습 체제로 잇는 스토리텔링 방식을 도입했으며, 교과서 일부를 컬러로 인쇄한 것이 특징이다. ▶『바둑이와 철수』 표지와 본문◀ 『바둑이와 철수』가 발행된 1948년 10월 5일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교육과정·교과서연구회, 한국교과서연구재단, 한국교과서협 등은 매년 10월 5일을 ‘교과서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 교수요목은 정부 수립과 교육법의 제정에 따라 새롭게 개정될 예정이었으나, 6.25 전쟁으로 중단된다. 6.25 전쟁으로 인해 한 때 교육이 마비되자, 정부는 「전시 하 교육 특별 조치 요강」을 발표해 전쟁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계속 제공하고자 했는데, 이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문교부는 1951년에 학생들의 전시 생활을 지도하기 위한 임시 교재로서 초등학교용 『전시 생활』 9종과 중등학교용 『전시 독본』 3종 등 12종을 발행해 피난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배부하며 교육을 이어갔다. ▮ ‘전시 생활’은 6.25 전쟁 시기에 편찬·발행된 초등용 교과서이다. 전시 상황에서의 생활을 지도하기 위한 임시 교과서로, 전쟁 시기이기 때문에 교과서명이 매우 특이했다. 초등학교 1~2학년용의 경우에 『비행기』, 『탕크』, 『군함』 등과 같이 전쟁 물자와 관련된 교과서명을 사용했고, 초등학교 3~4학년용인 『싸우는 우리나라』,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 『씩씩한 우리 겨레』 등과 초등학교 5~6학년용인 『우리나라와 국제연맹』, 『유엔군은 어떻게 싸웠나?』, 『우리도 싸운다』 등은 전쟁과 관련된 교과서명을 사용했다. ▶‘전시 생활’ 교과서들◀ ▮ ‘전시 독본’은 전쟁 시기에 편찬·발행된 중등학교용 전시 교과서이다. 즉, 전쟁 중에 임시로 교육하기 위한 조치로, 교과서다운 면모를 갖추지 못한 채 전시 생활을 지도하기 위한 임시 교과서이다. 이 중등학교용 ‘전시 독본’은 『침략자는 누구냐?』, 『자유와 투쟁』, 『겨레를 구원하는 정신』의 1종 3집 3책으로 편찬됐는데 공급이 가능한 수복 지역에 보급해 학습 자료로 활용됐다. ▮ 6.25 전쟁 시기에 (주)미래엔의 경우에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었는데 전쟁이 발발하자 공장을 부산으로 이전하게 된다. 직원 몇 명이 목숨을 걸고 공장 설비를 트럭도 아닌 우마차를 이용해 인천으로 옮기고 군함의 도움을 받아 부산으로 어렵게 이전하게 됐고, 부산 공장에서 전시 교과서를 출판해 학생들에게 나눠 줬다. 교육에 대한 사명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없었더라면 목숨을 건 이러한 행동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전쟁 시기에는 물자가 부족해 책의 지질도 좋지 못하고 책의 두께도 얇고, 크기도 4×6판인 지금 교과서의 반절 크기로 발행한 특징이 있다. ▮ 운크라, 즉 국제연합 한국재건위원단과 자유아시아위원회,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원조한 종이와 지원금으로 교과서를 계속 인쇄할 수 있었는데, 『국어 6-3』과 『과학 공부 4-3』이라는 교과서는 학년, 학기(학제)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종이가 원조되는 대로 1학기와 2학기 교과서를 나눠서 인쇄한 순서를 표시한 것이다. 전쟁으로 인한 어려웠던 시기의 교육을 단편적으로 보여 주는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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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이 전하는 교과서 이야기 ㈐ – 미 군정기 및 교수요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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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이 전하는 교과서 이야기㈏ – 일제 강점기
- [교육연합신문=안용섭 기자] ▶ 최초의 한글활자본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 일제 강점기의 교육은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조약부터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독립 사이에 있었던 교육 현상과 교육 기관의 양상을 의미한다. 1910년 8월 29일, 일본 제국은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된 직후 종전의 통감부를 총독부로 승격 개편하고, 헌병과 비밀 경찰을 동원한 무단 통치를 실시했다. ▶ 일제 강점기 교과서 전시 모습 ◀ 일제의 식민지 정책은 서구 열강의 식민지 정책과 달랐다. 서구의 식민지 정책은 기본적으로 식민지를 본국의 부강을 위해 식민지를 단순하게 이용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었으나, 일제는 식민지 주민의 민족의식과 민족문화를 말살하고, 식민지와 본국을 하나의 나라로 통합하려고 했다. 일제는 이를 위해 교육을 효과적으로 활용했으며 때와 목적에 따라 교육 기회를 억제하여 민족의식의 고취를 방지하기도 하고, 교육의 기회를 확대해 일제의 황국의식을 교육하기도 하는 양면적 교육 정책을 구사했다. 일제는 조선총독부의 교육령을 통해 조선의 교육 정책을 운용했다. 「조선교육령」은 1911년 공포된 이후 총 3차례(1922년, 1938년, 1943년)에 걸쳐 개정됐다. 「조선교육령」은 일본 군국주의의 교육 정신을 담고 있는 ‘교육에 대한 칙어’에 바탕을 두고 제정됐다. 이 때문에 「조선교육령」의 목표는 일본에 대해 충량한 국민을 양성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아울러 식민지 교육으로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조선 내에서의 교육을 보통 교육과 실업 교육·전문 교육으로 한정했으며, 고등 교육에 대한 규정은 아예 두지 않았다. ▮ 「조선교육령」에서는 차별적인 학제를 도입해 조선인과 일본인을 별도로 교육했다. 조선 내의 조선인과 일본인의 학교의 명칭은 서로 달랐으며, 수업 연한과 수업 내용에서도 두 학교는 다소간의 차이를 보였다. 또, 인구 비례상으로도 일본인 학교의 수가 조선인 학교의 수보다 훨씬 많았고, 교육 예산도 조선인에 대한 교육과 일본인에 대한 교육이 분리돼 편성됐고, 결과적으로 1인당 일본인에게 배당된 교육 예산은 1인당 조선인에게 배당된 교육 예산보다 월등히 많았다. ▮ 현재 대한민국의 중·등 교육과정에서는 이 「조선교육령」과 개정 사항을 제1차 「조선교육령」, 제2차 「조선교육령」, 제3차 「조선교육령」, 제4차 「조선교육령」으로 지칭하나, 학술 용어로는 「조선교육령」과 「개정(조선)교육령」이라는 명칭이 사용된다. 일제 강점기의 주요 교육 목표로는 일제의 식민 지배에 따른 황국 신민 양성이었으며, 우리나라의 독립 운동의 입장에서는 민족정신,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민족 교육이 이뤄졌다. ▮ 교과서 발행의 특징으로는 사진 제판, 오프셋 인쇄 기술을 적용한 교과용 도서가 출판됐으며, 활자의 크기와 삽화 안배, 컬러 인쇄 방식이 적용됐다. 또, 판형(국판)과 분량을 통제하는 방법도 도입됐다. 조선 총독부에서 출판한 교과서를 주로 사용했으며, 국정 교과서는 주로 조선총독부의 관방 인쇄·출판 기관인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 등에서 발행했다. ▮ 일제 강점기는 국어가 한글이 아닌 일본어로 사용됐던 암울했던 시기였다. 민족주의 사상가들과 애국지사들이 활발하게 교과서에 대한 저술 활동을 하고 한글 활자로 교과서를 펴내던 시절이 저물고 민족의 정기가 모두 죽어 버렸던 시기였다. 『국어독본』과 『조선어독본』 교과서의 비교를 통해 나라 잃은 설움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국어독본』은 우리의 말과 글이 아닌 일본어로 돼 있는 교과서이다. 우리의 말과 글은 『조선어독본』이라는 교과서로 배웠는데 이마저도 나중에는 선택 과목으로 지정돼 사실상 우리의 말과 글이 교실 밖으로 추방됐던 시기였다. 즉, 교과서는 일제의 통치 수단으로 사용됐던 것에 불과했다. 『조선어독본』 『국어독본』 ▮ 이 당시의 교과 내용은 주로 조선인을 우민화, 신민화하는 작업의 하나었다. 일제 강점기 36년간의 교과용 도서에 나타난 가장 뚜렷한 특징은 우리의 말과 글을 부정하고 우리의 역사를 부정하면서 일본 제국주의 이념으로 무장시킨 것이다. 우리 민족의식과 우리 민족문화를 모두 말살하려 했다. 이 시기에 일어난 조선어학회 사건은 일제 강점기 때 조선어를 연구한 학자들을 탄압한 사건이다. 조선어학회는 1929년 10월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했다. 조선어사전편찬회의 발기인은 모두 108명이며 일제의 방해로 내란죄 등의 명목으로 기소돼 옥중에서 사망하거나 해방 이후에 석방된다. 조선어학회는 해방 후 조직을 정비한 뒤 1949년 9월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꿨다. 참고로 『말모이』는 영화로도 유명한데, 1911년 주시경이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우리말 사전이다. 최남선(崔南善)이 설립한 조선광문회에서 주시경(周時經) 선생과 그의 제자들인 김두봉(金枓奉) · 권덕규(權悳奎) · 이규영(李奎榮) 선생 등이 민족주의적인 애국 계몽의 수단으로 편찬했다. 1911년부터 편찬이 시작돼 거의 원고가 마무리됐으나 안타깝께도 편찬자들의 사망·망명 등으로 출판되지 못하고 현재는 그 일부의 원고가 남아 있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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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이 전하는 교과서 이야기㈏ – 일제 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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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이 전하는 교과서 이야기㈎ - 개화기
- [교육연합신문=안용섭 기자] 개항 이후 서양의 근대 문화에 접하게 된 조선 정부는 구래의 전통적 유교 교육을 청산하고 서구의 신문화를 섭취하기 위한 신식 교육을 실시했다. 한편,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맞서기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민간 유지들에 의해서도 일종의 민중 교육 운동이 추진됐고 조선에 진출한 기독교계 선교 단체들에 의해 선교 계통의 학교도 세워졌다. ▶ 개화기 교과서 전시 모습 ◀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고 한 이 시기 교육 운동가들의 구호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과 같이, 이 시기의 교육 운동은 국권의 수호를 위한 결의였으며, 생존을 위한 실력 배양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민중 교육 운동은 보통 교육 분야뿐만 아니라 중등 교육 내지 전문 교육의 영역으로 확대돼 가고 있었으며, 여성 교육과 기술 교육도 적극적으로 추진됐다. 근대 초기의 교육은 학교급이 나눠 시행된 것이 아니었으며,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세워진 학교가 대부분이었다. 근대 말기에 이르러서야 초등 교육 기관과 중등 교육 기관으로 학교급이 분별되게 됐다. 학교급의 분화와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소학교의 경우에 소학교령(小學校令)이 1895년 7월 19일부로 처음 초등 교육의 관제(官制)가 정해졌다. 이 영(令)은 본령 4장 29조로 돼 있다. 1장은 소학교의 목적 및 종류·경비로 돼 있고, 2장은 소학교 편제 및 취학, 3장은 학교 설치 및 감독, 4장은 직원에 대해 각각 규정하고 있다. ▮ 중학교는 1899년 4월 4일에 공포된 중학교 관제에 의해 처음 중등 교육에 대한 관제가 정해졌다. 전문 17조로 된 학규(學規)로 돼 있다. ▮ 외국어 학교의 경우에 1895년 5월 10일 전문 11조로 된 외국어 학교 관제가 공포됐다. 외국어 학교는 외국의 어학을 교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1조), 외국어의 종류는 필요에 따라 학부대신이 정하도록 했으며(2조), 학부대신은 필요에 따라 지방에 분교를 둘 수 있고(3조), 직원은 학교장 1인, 교관 4인 이하, 부교관 5인 이하, 서기 3인 이하를 두되(4조), 필요한 경우에는 교관·부교관 또는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으며, 그 인원수는 학부대신이 필요에 따라 정하도록 했다(11조). ▮ 실업학교에 대한 관제는 1889년 3월 24일 의(醫)학교 관제, 동년 6월 24일 농·상·공학교(農商工學校) 관제가 발표됐다. 설립된 학교는 1889년 2월 정부에 의해 경성의학교(京城醫學校:뒤에 경성의학전문학교로 발전됨.), 같은 해 5월 상공학교가 세워졌다. 이 학교는 예과·본과를 두고, 농·상·공업을 가르쳤다. 이후 5년 후에는 1904년 농공상학교로 개칭했다. 편제는 농과·상과로 나누고, 수업 연한을 예과 1년, 본과 3년으로 정했다. 그 뒤에 농과는 수원농과학교, 공과는 경성공업전습소, 상과는 선린상업학교로 발전했다. 또, 1900년 8월 광학(鑛學)·실업을 가르치는 광무학교(鑛務學校), 1897년 우무학당(郵務學堂)·전무학당(電務學堂)이 나타났으나 1910년의 경술국치 이후 둘 다 폐지됐다. 또, 1895년 3월 당시 법원이었던 평리원(平理院) 안에 새로 법관양성소가 생겼는데 이것이 경성법학전문학교의 전신(前身)에 해당한다. 이 시기의 교과서는 적용 면에서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 하나는 민간인 발행 교과서이고, 또 하나는 지금의 교육부라고 할 수 있는 학부에서 발행한 정부 주도의 교과서이다. 이 시대의 교과서의 특징은 민족주체성 확립과 애국애족의 정신을 강조한 것이었다. 특히, 민간 발행인 교과서가 더욱 그러했다. ▮ 1895년 정부 기관인 학부 발족과 함께 가장 주된 업무가 교과서 편찬 발행과 각급 학교의 설치 작업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정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국민소학독본』과 『조선역사』 등을 시작으로 학부를 중심으로 새로운 교과서들이 발행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학부대신 보좌원으로 일본인들을 고용하게 되며, 1905년 을사조약 이후에는 교육 행정의 실질적인 권한이 일본인들에게 넘어가게 됐다. ▮ 교과서 검정제가 1907년부터 일본인에 의해서 생겨남으로써, 이후 민간 발행인 국민 교육 도서가 사라지게 되고 서서히 일본인의 구미에 맞는 친일파적인 교과서로 변해 가게 됐다. 1909년에는 대부분의 우리 교과서들이 금지되고, 1910년에 20여만 권이 넘는 교과서가 일본인들에 의해 압수돼지고 불태워지게 된다. 이 시기 교육의 핵심은 외국어 교육, 교사 양성, 실업 교육에 비중을 뒀으며, 기회 균등 사상이 각성됐다. 교과서의 특징으로는 근대적인 인쇄술 및 장정술이 도입됐고 용지 등의 자재 사정이 개선됐다. 주로 정부의 학부에 의해 국정 교과서로 발행됐으며, 교과서에 처음으로 삽화가 도입됐다. ▮ 소학교용 교과서(심상과 3년)로는 『수신』, 『독서』, 『작문』, 『습자』, 『산술』, 『체조』, 『한국 지리』, 『국사』, 『도화』, 『외국어』 등이 있었다. 고등과(2년 또는 3년) 교과서로는 『수신』, 『독서』, 『작문』, 『습자』, 『산술』, 『본국 지리』, 『본국 역사』, 『외국 지리』, 『외국 역사』, 『이과』, 『도서』, 『체조』, 『제봉(여아)』, 『외국어』 등이 발행됐다. ▮ 중학교 교과서(심상과 4년)로는 『윤리』, 『도덕』, 『작문』, 『역사』, 『지리』, 『산술』, 『경제』, 『박물』, 『물리』, 『화학』, 『도화』, 『외국어』, 『체조』 등이 있었다. 개화기의 교육 기관으로는 경학교, 사범학교, 한성사범학교, 한성중학교, 중학교, 실업학교, 소학교, 서당, 사숙, 외숙, 강습소 등이 대표적이었다. 당시에 발행됐던 몇몇 교과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국민소학독본』은 1895년 7월에 간행된 최초의 관찬 교과서로서 신식 학교의 교과서로 처음으로 국문이 교과서에 정식으로 등장했다. 명현의 행덕을 중심으로 도덕 교육에 중점을 뒀으며 처음으로 국문이 교과서에 등장했다. 애국심에 관한 것, 교육(면학), 국제 이해, 역사, 지리, 기술, 동식물, 경제, 과학, 사회 윤리, 이렇게 열 개 분야로 내용이 편제돼 있다. ▶ 『국민소학독본』 ◀ ▮ 『신정 심상소학』은 3권 체제의 교과서로서, 학교와 학년 체제에 맞춰져 있고 비교적 언문일치에 가깝다. 농·공·상에 대한 것, 동식물에 관한 것, 자연 현상과 사회생활 등 여러 내용이 혼합돼 있다. 교과서 본문에 처음으로 삽화를 넣었다. ▶ 『신정 심상소학』 ◀ ▮ 『유년필독』은1907년 현채가 초등학교의 역사와 지리 교육을 위해 편찬한 교과서이다. 4권 2책으로 구성돼 있으며 휘문관(徽文館)에서 발행했다. 국한문 혼용체이며, 한자에는 한글토를 달아놓았으며 총 132과(課)로 구성돼 있다. 책머리의 범례를 통해 살펴본 이 책의 간행 목적은 애국사상의 고취를 위주로 해 역사·지리 교육을 통해 민족의 전통적 주체성을 확립시키고 나아가서는 새로운 세계 사정을 익혀 국제 경쟁에서 자립할 수 있는 국민을 교육함에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책의 내용은 우리나라의 역사·지리와 세계 사정을 개괄, 설명, 소개한 글로 엮어져 있다. 유년용 교과서로서 그 대상이 아동에 한한 것으로 잘못 이해되기 쉬우나, 편찬자의 의도는 장년과 노년층까지를 포함한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유년필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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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이 전하는 교과서 이야기㈎ - 개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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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⑩ – 교육 자료 특별 기획전
- [교육연합신문=안용섭 기자] 미래엔교과서박물관(관장 김동래)은 2003년 9월 24일 개관해 2024년도에 20주년이 됐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오랜 기간 수집해 왔지만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보물들인 교육 자료를 공개하게 됐다.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우리나라의 교육 현장에서 직접 사용되거나 활용됐던 교육 자료를 주제별로 모아 선보인 것이다. 이번 기획 전시의 주제는 우리의 동요 제목인 <학교 종이 땡땡땡>으로, 동요의 가사에 맞춰 당시의 학교생활과 관련된 물건들을 보며 추억을 소환해 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고자 했다. ▶ 교육 자료 특별 기획전 전경 ◀ 전시의 목적은 첫 번째로, 우리 교과서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소장품 중에서 교과서 외의 교육 자료를 공개함으로써 관람객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만족도를 높이고자 함이었다. 두 번째로, 과거에 활용했던 교육 자료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나라 교육의 변천 과정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자 함이었다. 세 번째로, 관람객들에게 과거로의 여행을 통한 추억을 되새기는 계기를 마련하고 평온한 휴식의 시간을 함께 제공함으로써 관람객의 문화 향유권을 제고시키고자 함이었다. 기획 전시 <학교 종이 땡땡땡>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각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 첫 번째로, <제1부.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는 등굣길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들판에 봄가을로 피어 있는 아름다운 들꽃들을 바라보며 등교하는 모습, 학교 앞 문방구에서 각종 물건과 게임 기구에 현혹돼 한눈팔던 시절이 있었다. 전시된 소장품으로는 학생 가방, 명찰, 선도부(기율) 완장, 양은도시락 등이 있다. ▶ <제1부.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전시 모습 ◀ ▮ 두 번째로, <제2부. ‘사이좋게 오늘도 공부 잘하자’>는 학창 시절 수업 시간, 쉬는 시간, 점심시간 등 학교 내에서 하루 종일 친구들과 선생님이 즐겁게 생활하던 일들을 소환해 보고자 했다. 이 두 번째 주제는 학교 수업과 관련된 내용을 ‘수업 시간에는’라는 소주제와 운동회 등의 학교생활을 다룬 ‘우리들의 학교생활’이라는 소주제로 나눠 전시하고 있는데, 입학식에서부터 졸업식에 이르는 각종 학교 행사들도 추억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볼 수 있도록 했다. 첫 번째 소주제의 전시 소장품으로는 주요 전시 소장품은 교련 가방, 전과, 학생이 직접 그린 포스터 및 그림 등이 있다. ▶ <제2부. ‘사이좋게 오늘도 공부 잘하자’> 전시 모습(1) ◀ ▮ 두 번째 소주제의 전시 소장품으로는 출발총, 생활통지표, 건강기록부, 스케이트, 운동회 물품 등이 있다. ▶ <제2부. ‘사이좋게 오늘도 공부 잘하자’> 전시 모습(2) ◀ ▮ 세 번째로, <제3부.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는 선생님이 사용했던 물건들을 중심으로 선생님의 시각에서 얼마나 학생들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가르쳤는지를 소개해 보고자 했다. 전시하고 있는 주요 소장품은 교사용 학습 지도안, 타자기, 철필, 순찰 시계, 교사용 지도서 등이다. ▶ <제3부.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전시 모습 ◀ - 흑백 사진으로 보는 ‘정겨웠던 순간들’ - 이러한 기획 전시 <학교 종이 땡땡땡>과 연계해 1960년대~70년대의 학교생활을 담은 흑백 사진전을 진행하고 있다. 대한민국사진대전 초대 작가이며, 전 교육부 초등교육정책과장, 서울성북교육장을 역임한 김완기 선생의 흑백 사진 작품 27점을 선정해 액자에 담아 전시하고 있는데, 김완기 선생은 교육 현장에서 교사, 교감, 교장, 교육장 등 교육 전문직으로 종사하시면서 다양한 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해 우리나라 최초로 교육 활동과 사진 촬영 활동을 접목시키신 선생님이다. 1960년대부터 70년대 어려웠던 시절,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당시 교육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여과 없이 사진에 담았다. 관람하는 관람객은 당시의 학교생활을 회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 김완기 선생 사진전 <정겨웠던 순간들> ◀ 시간은 화살처럼 흘렀어도 추억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존재한다. 이번 기획 전시를 통해 세월이 흘러도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학창 시절로의 여행을 떠나 보기를 권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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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⑩ – 교육 자료 특별 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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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⑨ – 기획전시관(2)
- [교육연합신문=안용섭 기자] 미래엔교과서박물관(관장 김동래)의 이번에 살펴 볼 내용은 지난호에 게재한 '기획전시관' 코너에서 소개한 팽이치기 놀이, 연날리기, 윷놀이, 칠교놀이, 고무줄놀이 다섯 가지 놀이 이외에 나머지 다섯 가지 놀이에 대해 소개하겠다. 바로 구슬치기, 숨바꼭질, 그림자놀이, 바람개비놀이, 눈사람 만들기가 그것이다. 1. 구슬치기 구슬치기 놀이는 주로 남자아이들이 유리구슬을 땅에 던져 놓고 다른 구슬로 그것을 맞혀 따먹는 놀이이다. 구슬의 지름은 1cm 정도이며, 발바닥으로 밀어 차기, 손가락으로 퉁기기, 선 채로 던지기 등의 여러 방법 중 하나를 정해 구슬을 맞히는 방식이다. 두세 명이 하기도 하고, 여럿이 편을 짜서 하기도 한다. 놀이 방법으로는 ①가운뎃손가락 손톱과 엄지손가락 바닥으로 자기 구슬을 퉁겨서 상대편 구슬을 맞히는 방법, ②세모꼴이나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그 속에 차례로 각자의 구슬을 퉁겨 맞히는 방법, ③일정한 높이의 벽면에서 구슬을 떨어뜨리거나 미리 정한 거리에서 벽면에 구슬을 부딪혀 튀어나오게 하는 방법 등이 있다. 제2차 교육과정기에 해당하는 1971년 발행의 『국어 3-1』 교과서에 등장하는 구슬치기 모습을 볼 수 있다. 국어 교과서이다 보니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구슬치기 하는 장면과 파릇파릇 돋아난 새싹을 풍경화처럼 ‘봄’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구슬과 교과서에 실린 모습◀ 2. 숨바꼭질 숨바꼭질 놀이는 여럿 가운데 한 사람이 술래가 되어 숨은 사람들을 찾아내는 놀이이다. 술래가 정해지면 술래는 벽에 얼굴을 대고 다른 사람들에게 숨을 시간을 준다. 이때, 술래는 숫자를 세거나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를 일정 횟수만큼 외친다. 이 과정이 끝나면 술래는 큰소리로 “찾는다!”를 외친 뒤 숨은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숨은 사람을 모두 찾으면 술래가 이기고, 찾지 못해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치면서 항복을 선언하면 술래가 지게 된다. 숨바꼭질 놀이는 제1차 교육과정기에 해당하는 1961년 발행의 『산수 2-1』 교과서와 1962년 발행의 『국어 1-1』, 제3차 교육과정기인 1980년 발행의 『국어 1-1』 교과서에서 볼 수 있다. 산수 교과서에서는 숨바꼭질 놀이를 통해 찾은 친구의 숫자를 세어 더하기와 빼기 공부를 하고 있으며, 국어 교과서에서는 ‘어머니, 가위바위보, 나, 너’ 등의 낱말을 배우는 학습을 하고 있다. ▶교과서에 실린 숨바꼭질 모습◀ 3. 그림자놀이 그림자놀이는 촛불이나 등잔불 등 불빛 가까이에서 손을 움직여 벽이나 창문에 여러 가지 모양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것을 즐기는 놀이다. 한 손 또는 두 손으로 뜻하는 모양을 만들기 어려울 때에는 종이나 나무 막대기를 이용하기도 한다. 개, 여우, 오리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동물의 그림자를 만들어 진짜 동물이 움직이는 것 같은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 놀이는 인도에서도 성행했는데, 그곳에서는 이를 ‘손가락 예술(finger art)’이라고 높여 부르며 수련을 쌓은 전문 예능인들이 행했다. 제2차 교육과정기인 1959년 발행의 『국어 1-2』과 제2차 교육과정기인 1972년 발행의 『자연 1-2』 교과서에 이러한 그림자놀이 장면을 볼 수 있다. 국어 교과서에서는 그림자놀이로 표현되는 여러 가지 물건 또는 동물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과자, 수염, 염소, 고양이, 토끼’ 등의 낱말을 익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아버지와 어머니를 등장시켜 사물, 동물 및 인물에 대한 낱말 학습을 하고 있다. 자연 교과서에서는 빛을 비춰 그림자를 만드는 원리와 빛의 각도에 따라 물건의 모양이 달라지는 학습을 했다. ▶교과서에 실린 그림자놀이 모습◀ 4. 바람개비놀이 바람개비놀이는 두꺼운 종이를 접어 만든 날개를 손잡이 자루에 꽂은 뒤 자루를 쥐고 바람을 마주해 뛰면서 날개를 빙글빙글 돌리는 놀이다. ‘팔랑개비’ 또는 한자어로 ‘회회아(回回兒)’라고도 한다. 바람개비를 만드는 방법은 정사각형의 두꺼운 종이를 세모꼴로 두 번 접어 중심점을 정하고, 네 귀퉁이에서 이 점을 향해 5분의 3쯤 되는 자리까지 자른다. 그리고 45도로 나뉜 끝을 하나씩 건너뛰어 가며 중심점에 모으고, 이에 작은 못 등을 꿰어 손잡이 끝 한가운데에 고정시킨다. 종이를 접을 때는 힘을 줘 누르지 않고 오긋하게 부풀려야 바람이 이곳으로 잘 모여들고, 또 잘 빠져나가서 바람개비가 잘 돌아간다. 제2차 교육과정기인 1968년에 발행된 『미술 1』 교과서와 1967년에 발행된 『자연 1-2』 교과서에서 바람개비놀이 장면을 볼 수 있다. 미술 교과서에서는 바람개비를 만드는 바람개비 만들기 공예 학습과 색칠하기 공부를 했으며, 자연 교과서에서는 바람이 불 때와 불지 않을 때의 바람개비가 도는 공기의 원리를 학습하고 있다. ▶바람개비놀이 도구와 교과서에 실린 모습◀ 5. 눈사람 만들기 눈사람 만들기는 겨울철에 눈이 쌓였을 때 눈 뭉치를 굴려서 사람 모양을 만드는 놀이다. 만드는 방법은 먼저 눈 뭉치를 굴려 크고 작은 눈덩이 두 개를 만든 뒤, 큰 눈덩이를 몸통으로 삼고 그 위에 작은 눈덩이를 올려놓는다. 눈, 코, 입은 숯덩이를 박아서 나타내고, 수염은 솔잎을 붙여 만든다. 양은 대야로 모자를 씌울 수도 있다. 눈사람 만들기는 혼자서도 하지만, 서너 명씩 모둠을 만들어 겨루기도 한다. 이때 눈사람의 크기는 물론 그 꾸밈새를 보고 잘잘못을 따진다. 이는 어린이들이 추위를 극복하고 체력을 단련하는 데 도움이 되는 놀이다. ‘눈사람 만들기’는 겨울 놀이 중의 하나로 교과서에 소개하고 있는데, 제2차 교육과정기인 1968년에 발행된 『체육 4』 교과서에서는 빙판의 위험성과 안전한 생활, 겨울철 건강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눈사람을 등장시켰으며, 제1차 교육과정기인 1960년에 발행된 『자연 1-2』 교과서에는 계절의 변화와 겨울철 위험 방지에 대해 공부했다. ▶눈사람만들기가 교과서에 실린 모습◀ 그 밖에도 자연 교과서에서는 ‘움직이는 장난감’ 놀이를 통해 경사면에서의 운동 원리에 대해 학습했으며, 미술 교과서에서는 여러 가지 재료를 모아 만들기 학습을 했다. 또, 전화놀이의 경우에 자연 교과서에서는 소리의 전달을 공부했고 미술 교과서에서는 수수깡놀이와 전화기 만들기 공예 학습을 했다. ‘나뭇잎놀이’와 ‘나무 열매 장난감 놀이’를 통해 국어 교과서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공부하고 자연 교과서에서는 여러 가지 식물과 열매를 공부했다. ▶나뭇잎놀이◀ ▶수수깡놀이와 전화기놀이◀ 자연 교과서에서 ‘비눗방울놀이’는 공기의 전달과 더운물과 젓기를 통해 비눗물을 빨리 녹이는 방법에 대한 과학적 원리를 공부했다. 공기와 바람의 원리에 대해서는 낙하산 만들기와 비행기 만들기, 글라이더 만들기 놀이를 통해서도 공부했다. ‘물총놀이’와 ‘고무총놀이’의 경우에는 자연 공부를 하면서 사물을 멀리 보내는 에너지의 변환에 대해 공부했다. ▶글라이더 만들기◀ ▶새총과 물총놀이 도구◀ ‘지남철(자석)놀이’는 자연 교과서에서 자석으로 모형 물고기를 낚고, 여러 가지 쇠붙이를 붙여 보는 활동을 통해 자석의 원리를 공부했다. ‘라디오놀이’는 소리의 전달이라는 놀이를 통해 국어 학습 영역인 ‘듣기’와 ‘말하기’ 학습을 했다. 운동장에서 하는 여러 놀이, 운동회를 통해 사회 교과서에서는 여럿이 함께하는 협동의 모습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처럼 교과서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놀이는 지금도 행해지고 있는 놀이도 있고 이미 사라져 우리가 알지 못했거나 경험해 보지 못했던 놀이도 있다. 전시돼 있는 교과서와 놀이 도구들을 통해 놀이와 교과서의 연관 학습과 적용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자석(지남철)놀이와 운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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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⑨ – 기획전시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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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⑧ - 기획전시관(1)
- [교육연합신문=안용섭 기자] 미래엔교과서박물관(관장 김동래)의 2층에 위치하고 있는 '기획전시관'은 교육 및 교과서와 관련된 여러 소재 가운데에서 특별한 주제를 선정해 전시하는 전시관이다. 현재 교과서에 등장하는 ‘놀이’를 주제로. ‘동무들아, 이리와 나하고 놀자’라는 타이틀로 기획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즉, 교과서를 통한 학습 활동이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 특별히 놀이를 통해 학습할 수 있는 요소를 선별해 전시했다. 어린음악대 놀이를 통해 음악적 감수성과 정서를 익힐 수 있으며, 나뭇잎놀이, 비눗방울, 바람개비, 물총놀이, 비행기, 자석놀이 등을 통해 자연 현상 및 과학적인 학습을 할 수 있다. 또, 학교놀이, 운동장놀이 등을 통해 단체 생활과 협동의식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으며, 겨울놀이(눈사람 만들기, 연날리기 등)를 통해 자연과 우리나라의 사계절을 공부할 수 있다. 또, 연날리기, 팽이치기, 널뛰기, 숨바꼭질 등의 전통·민속 놀이를 통해 우리 민족의 전통을 계승하고 보존하고자 하는 의식을 고취할 수 있다. 사실, 같은 놀이라고 할지라도 교과별로 추구하는 학습 목표나 성취 목표는 다르다. 즉, ‘국어’ 교과서에서의 ‘연날리기’ 놀이와 ‘자연’ 교과서에서의 ‘연날리기’ 놀이가 등장했을 때 각 교과별로 이 놀이를 통해 학습하고자 하는 까닭과 성취 목표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전시돼 있는 교과서와 놀이 도구를 비교·분석하며 관람하면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놀이에는 무엇이 있으며, 오늘날에도 전승되고 있는 놀이에는 또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관람을 통해 확인해 보는 추억 여행을 떠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에는 팽이치기 놀이, 연날리기, 윷놀이, 칠교놀이, 고무줄놀이 다섯 가지 놀이와 교과서 게재 모습을 소개하겠다. 1. 팽이치기 놀이 ‘팽이치기 놀이’는 주로 겨울철에 어린이들이 얼음판 위에서 원뿔 모양으로 깎아 만든 팽이를 채로 쳐서 돌리는 놀이다. 팽이는 지역에 따라 뺑이, 핑딩, 뺑돌이, 도래기, 패이, 팽돌이, 빼리, 뺑생이, 봉애, 포애, 세리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 놀이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성덕왕 19년인 720년에 쓰인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일본의 팽이가 우리나라에서 전래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뤄 보아 삼국 시대에 이미 널리 유행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제1차 교육과정기인 1972년에 발행된 『자연 1-2』와 제3차 교육과정기인 1980년에 발행된 『국어 1-2』 교과서에 이 놀이가 등장하고 있다. 자연 교과서에는 팽이 만들기를 통해 회전의 과학적 원리를 학습하고, 국어 교과서에는 인수와 순이가 전통 놀이를 즐기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2. 연날리기 ‘연날리기’는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행하던 민족 전래의 기예(技藝)로, 연을 공중에 띄우는 민속놀이다. 해마다 음력 정초가 되면 우리나라 각처에서 연날리기를 했다. 정월 보름날에는 연날리기를 하다가 줄을 끊어 연을 날려 보냄으로써 액막이를 했다. 연날리기는 정월 보름날 마감했는데, 이날 이후에도 연을 날리면 ‘고리백정’, 즉 ‘때를 따라 할 것을 때가 지난 뒤까지 한다.’고 놀리는 말로 놀림을 받기도 했다. 전시된 바와 같이, 제1차 교육과정기에 해당하는 1962년 발행 『사회 생활 1-2』와 동일 교육과정기의 1964년 발행 『미술 3』 교과서에 등장하는 연날리기 놀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사회 생활’ 교과서에서는 ‘철수’와 ‘일구’라는 두 친구가 연을 띄우기 위해 협동하고 서로 연을 빌려 주는 의좋은 모습을 표현하고 있으며, 미술 교과서에서는 연 만들기 공예를 소개하고 있다. 3. 윷놀이 ‘윷놀이’는 네 개의 윷가락을 던져서 나온 결과에 따라 말[馬]을 움직여 승부를 겨루는 민속놀이다. 설날 놀이의 하나로,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날까지 하는 것이 관례로 돼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유서 깊고 전통 있는 놀이다. 이 놀이의 명칭이 ‘윷놀이’인 까닭은 나무막대기 네 개를 가지고 노는 놀이로서 ‘도·개·걸·윷·모’ 중에서 ‘넷’을 뜻하는 ‘윷’과 ‘놀이’가 복합된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윷의 한자어 ‘사(柶)’도 ‘나무 막대기 넷을 가지고 논다.’는 뜻이다. 제1차 교육과정기인 1963년에 발행된 『산수 1-2』와 1961년에 발행된 『산수 2-2』 교과서, 또 윷놀이의 종류 중에서 ‘밤윷’이 등장하는 윷놀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산수 1-2』에는 윷놀이를 통해 말판이 몇 단계까지 이동하는지에 대한 숫자에 대한 수학 공부에 적용하고 있으며, 『산수 2-2』 교과서에는 놀이 중에 어머니가 주는 떡과 과일을 나누는 장면을 연출해 분수를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4. 칠교놀이 ‘칠교놀이’는 사방 10cm쯤 되는 정사각형 나무판을 직각삼각형 큰 것 두 개, 중간 것 한 개, 작은 것 두 개, 그리고 정사각형과 평행사변형이 각각 한 개가 되도록 잘라 낸 뒤, 이 일곱 조각을 이리저리 움직여 가면서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 등의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드는 놀이다. ‘칠교’라는 이름은 이 판이 일곱 개의 조각으로 이뤄진 데에서 왔으며, 이 판을 ‘칠교판(七巧板)’ 또는 ‘칠교도(七巧圖)’라고 한다. 제1차 교육과정기인 1959년에 발행된 『미술 2』 교과서와 제2차 교육과정기인 1970년 발행의 『산수 1-2』 교과서에 등장하는 ‘칠교놀이’를 확인할 수 있다. 미술 교과서에서는 칠교를 이용해 비행기, 주전자, 오리, 사람 등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드는 공예 공부를 했으며, 산수 교과서에서는 개, 물고기, 배, 집 등의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 보고 원기둥, 사각 기둥, 삼각뿔 등의 도형을 공부하는 데에 활용되고 있다. 5. 고무줄놀이 ‘고무줄놀이’는 주로 여자아이들이 고무줄의 탄력성을 이용해 리듬에 맞춰 노는 놀이다. 고무줄을 가로지르고, 노래에 맞춰 줄을 넘으면서 고무줄이 발에 닿지 않게 하거나 고무줄에 다리를 높이 거는 것 등을 겨룬다. 고무줄 길이는 3~4m가 적당하며, 2∼4명이 하는 것이 보통이다. 놀이 방법은 사람 수에 따라 다른데, 두 명일 경우에는 고무줄의 한쪽 끝을 기둥 같은 데에 잡아매고 한다. 사람이 많으면 편을 나눠 한다. 사람 수가 홀수여서 한 아이가 남으면 그 아이를 ‘깍두기’라고 하는데, 깍두기는 양편에 번갈아 가며 가담한다. 때로는 가장 잘하는 아이가 깍두기가 되기도 한다. 1964년도에 발행된 『음악 1』과 『미술 4』 교과서, 제3차 교육과정기에 해당하는 1979년 발행의 『음악 2』 교과서에 등장하는 ‘고무줄놀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음악 교과서에서는 「줄넘기」 노래를 배우는 장면에 고무줄놀이가 등장하며, 미술 교과서에서는 내가 했던 일을 그림으로 그리는 활동 중에서 고무줄놀이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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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⑧ - 기획전시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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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 - 교육자료전시관⑦
- [교육연합신문=안용섭 기자] 미래엔교과서박물관(관장 김동래)의 본관 2층에 위치하고 있는 <교육자료전시관>은 교과용 도서 이외에 교육과 관련된 각종 자료를 수집해 전시하는 기획 전시 공간 공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교육 관련 여러 자료 중에서 특별히 교과서에 수록돼 있는 삽화를 주제로 해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 삽화 기획전 ‘삽화 여행, 교과서를 그리다’를 진행하고 있다. 예전에는 모두 손으로 그린 그림을 교과서에 실었지만 근래에는 주로 컴퓨터를 이용해 그린 컴퓨터 그림(삽화)을 대부분을 교과서에 싣고 있다. 그렇지만 ‘국어’ 교과서처럼 학생들의 정서를 함양하고 감정을 풍부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도화지에 붓 등으로 직접 그린 그림을 수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전시돼 있는 교과서 수록 삽화는 모두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들이다. 주로 2007 개정 및 2009 개정 교육과정기의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것들이다. 2007 개정 교육과정의 ‘읽기’, ‘듣기·말하기’ 또는 ‘듣기·말하기·쓰기, ‘쓰기’ 교과서들과 2009 개정 교육과정의 ‘국어’, ‘국어 활동’ 교과서들의 손삽화와 종이 공예로 만든 특수 삽화들이 전시돼 있으며,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국어 교사용 지도서 표지 특수 삽화가 전시돼 있다. 전시돼 있는 손 그림을 컴퓨터 그림의 느낌과 비교해 보고, 또 원래의 그림이 교과서에 어떻게 적용되고 표현되었는지를 확인하고 감상할 수 있다. ▶ 손삽화 원화와 교과서에 실린 모습 ◀ 교과서에 실린 삽화 중에는 손삽화 외에도 클레이나 종이 공예로 제작한 특수 삽화도 많이 있다. 전시관에 전시된 삽화 중에는 클레이의 경우는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종이 공예로 제작한 특수 삽화가 함께 전시되고 있다. 이들 종이 공예 작품들은 사진 촬영을 통해 교과서에 실었는데, 교과서에 실린 모습과 원 작품을 비교해 보면 입체감을 잘 살리지는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알 수 있다. 이는 평면과 입체의 차이와 한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종이 공예 작품과 교과서에 실린 모습 ◀ 손삽화 전시 외에도 손글씨(경필) 원고가 전시돼 있는데, 前구암중학교 김영진 교장의 작품으로, 쓰기 교과서에 학생들의 바른 글씨를 쓸 수 있도록 쓰기 코너에 제시된 글씨본들이다. 2007 개정 교육과정기 이전에는 이 글씨를 하나하나 스캔해 실었는데, 이후 이 글꼴을 서체로 개발해 ‘교과서경필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지금은 교과서에 조판을 통해 서체를 적용하고 있다. ▶ 경필 글씨 원본과 교과서에 실린 모습 ◀ 삽화의 콘셉트는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경우에는 집필진이 원고를 구성하고 기본적인 삽화 콘티를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콘티를 기반으로 편집자는 판면을 규모 있게 재구성하고 삽화의 콘티를 구체화하고 정교화한다. 다음의 그림은 『말하기·듣기·쓰기 1-1』의 차례에 등장하는 삽화로써, 이 삽화의 기본 콘티는 교과서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을 등장시켜 소풍을 가는 장면으로 연출했으며, 배경은 충청북도 진천에 소재한 ‘농다리’로 했다. 이 ‘농다리’는 천년의 세월 동안 온갖 풍파에도 무너지지 않고 버텨 온 견고한 돌다리라고 한다. ▶ 『말하기·듣기·쓰기 1-1』 차례 손삽화와 교과서에 실린 모습 ◀ 또, 같은 삽화가라고 하더라도 화풍을 달리해 전혀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으로 느껴질 만한 삽화가의 그림도 있다. 원로 삽화가인 손창복 선생의 그림이 그러하다. ▶ 동일 삽화가(손창복 선생님)의 느낌이 전혀 다른 그림 스타일 ◀ 『말하기·듣기·쓰기 1-1』 교과서의 표지에서는 교과서에 등장하는 어린이들이 모래를 가지고 두꺼비집을 만드는 장면을 연출했으며, 『말하기·듣기·쓰기 5-1』 교과서의 표지에서는 교과서 내의 제재인 탈춤놀이와 매체 관련 단원의 ‘인터뷰’를 소재로 가져와 이야기를 재구성한 경우이다. ‘읽기’ 교과서의 기본 콘셉트는 교과서에 나오는 제재를 기본 바탕으로 이야기를 재창조해 표현하는 것이었다. 즉, 각 단원에 등장하는 인물, 동물, 식물 등의 주인공들을 표지로 끌어내 또 다른 이야기를 구성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재창조하는 것에 표지 구성의 주안점을 뒀다. 또, 역사 속의 위인과 동화 속의 등장인물이 현대의 인물들과 어울려 이야기하고, 동식물과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사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소통과 화합을 상징적으로 표현했으며 본문의 제재를 읽기 전에 학생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자 했다. ‘읽기’ 교가서의 표현 기법은 학생들의 정서를 고려해 컴퓨터 그림보다는 손으로 그린 그림, 수채화 그림풍이 많이 나타나도록 했으며, 등장인물의 구성을 여유롭게 하면서 공간과 여백의 미를 강조했다. ▶ ‘읽기’ 교과서 표지 손삽화들 ◀ 『읽기 5-1』 교과서의 표지는 본문의 제재 중에서 「나를 싫어하는 진돗개」와 「원숭이 꽃신」 등을 주요 소재로 가져와 재구성한 경우이다. 『읽기 2-1』 교과서의 표지는 본문의 제재 중에서 「개구리네 한솥밥」, 「호수의 주인」, 「독도의 여러 이름」 등의 소재를 등장시켜 재구성한 경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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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 - 교육자료전시관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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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 - 인쇄기계전시관⑥
- [교육연합신문=안용섭 기자] 미래엔교과서박물관(관장 김동래)의 <인쇄기계전시관>은 주로 1950~70년대에 사용됐던 인쇄 기계 및 인쇄 관련 설비가 전시돼 있는 곳이다. 활자 제작, 조판, 인쇄, 제책에 이르기까지 인쇄에 대한 공정 전반에 걸친 기계 40여 점이 순서대로 전시돼 있다. <인쇄기계전시관> 내의 소장품에 대해 소개하는 코너도 한 편에 전시돼 있다. ◈ 전자동 문자 조판 입력기 ‘전자동 문자 조판 입력기’는 문자를 조판하는 입력 장치이다. 글자를 키보드로 입력하면 천공기가 미리 약속된 방법으로 종이테이프에 구멍을 뚫는데, 이 종이 리본을 ‘전자동 조판기’에 걸어 조판을 하게 된다. 즉, 구멍을 뚫는 기계인 천공기에 종이 리본을 끼우고 자판을 눌러 종이테이프에 한 글자마다 두 개의 작은 구멍을 내는데, 이 구멍의 위치에 따라 각각의 글자가 정해진다. 이 구멍이 뚫린 종이 리본을 ‘전자동 조판기’에 걸어 그 정보값으로 조판이 이뤄지는 방식이다. 전자동 문자 조판 입력기 ◈ 전자동 조판기 ‘전자동 조판기’는 전자동 문자 조판 입력기에서 천공된 즉, 구멍이 뚫린 종이테이프를 이 자동 조판기에 걸면 종이테이프의 구멍 모양에 맞는 글자의 활자를 만들게 되고 자동으로 조판이 되는 기계이다. 즉, 종이테이프에 생긴 두 개의 작은 구멍을 통해 강한 압축 공기를 두 개의 파이프에 불어 넣으면 이에 연결된 두 개의 피스톤이 들어올려지고 그에 따라 글자가 결정된 활자를 주조하게 된다. 이어서 주조된 활자를 마무리 장치로 다듬은 다음에 조판하는 기계 장치이다. 즉, ‘전자동 조판기’는 일종의 주식기로, 활자의 주조, 문자를 조합하는 문선, 식자의 공정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기계 장치이다. 전자동 조판기 ◈ 활판 교정기 ‘활판 교정기는’원고에 맞도록 조판이 완료되면 잘못되거나 빠진 글자는 없는지, 문장은 제대로 구성돼있는지 등 몇 차례의 확인 작업을 하는 교정을 보게 되는데 이처럼 교정을 보기 위해 본격적인 인쇄가 아닌 임시 인쇄를 하기 위해 사용하는 장치이다. 본 인쇄용 ‘활판 인쇄기’보다 그 구조가 비교적 간단 인쇄 기계이다. 조판한 판을 활판 교정기에 올려놓고 롤러로 판에 잉크를 묻힌 다음, 그 위에 교정 용지를 넣고 큰 롤러로 압력을 주면서 굴려 인쇄하는데, 판은 실로 묶여 있는 상태이며, 엽서나 명암과 같이 여러 가지 글자나 형태가 혼합돼 있는 인쇄물인 경우에는 보통 한판씩, 교과서처럼 형태가 일정한 인쇄물은 두 페이지 또는 네 페이지씩 함께 교정 인쇄를 한다. 활판 교정기 ◈ 지형 건조기 ‘지형 건조기’는 지형을 건조시키는 데에 사용되는 기계이다. 활판을 해체해야 할 경우나 대량 인쇄를 해야 하는 경우에 활판 그대로를 복제해 보관, 또는 인쇄에 활용할 경우에 지형을 만들어 놓는다. 이러한 복제판을 만드는 것을 ‘지형을 뜬다.’라고 표현한다. 활자판을 지형기로 뜬 지형은 수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납물을 부어 인쇄판으로 사용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으므로 다시 건조시켜야 한다. 이처럼 지형을 건조시키기 위해 지형에 열을 가해 건조시키는 기계가 바로 지형 건조기이다. 지형 건조기 ◈ 자동 볼록판 인쇄기 ‘자동 볼록판 인쇄기’는 도드라진 부분에 잉크를 묻히고, 이곳에 종이 등을 눌러 인쇄하는 기계이다. 인쇄물의 종류, 인쇄량, 색도, 용지의 크기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교정 인쇄를 마친 후에 본격적인 인쇄를 위해 활판을 인쇄기에 걸기 전에 정밀하게 시험 인쇄를 하는 기계이다. 자동 볼록판 인쇄기 ◈ 활판 인쇄기 ‘활판 인쇄기’는 볼록판식 인쇄기의 대표적인 기계이다. 조판한 활자판을 그대로 인쇄하거나 지형을 떠서 납으로 활자판을 만들어 인쇄하기도 한다. 활자판을 인쇄 기계에 올려놓고, 기계가 동작하는 동안 풀리지 않도록 고정시킨다. 활자판이 걸려 있는 판이 수평으로 왕복 운동하게 하고 그 위에 실린더가 접촉해 인쇄되는 방식이다. 한 장을 인쇄하는데 활자판은 1회 왕복하며 누름통 실린더가 1회전마다 정지하게 된다. 이러한 작동이 연속해 진행하면서 같은 판을 계속해서 인쇄한다. 인쇄 기계가 다색(컬러)화 되면서 오프셋 인쇄기에 밀려 점차 사라지게 됐다. 활판 인쇄기 ◈ 수지판 제판기 ‘수지판 제판기’는 지형에 액체 상태의 납을 부어 연판을 만드는 것처럼, 납 대신 합성수지를 사용하여 인쇄판을 만드는 기계이다. ◈ 철사기 ‘철사기’는 인쇄의 양이 많지 않을 때 수동으로 책을 묶는 기계이다. 인쇄된 인쇄물을 필요한 크기로 재단한 것을 페이지 순서대로 포개어 철사로 만든 철침을 박아 책을 묶어 주는 기계이다. 철사로 매기 전에 흩어지기 쉬운 것은 여러 권을 한꺼번에 틀에 묶고 뒷면에 종이를 붙이기도 하는데 이것을 ‘등 붙이기’라고 한다. 등 붙이기를 한 후에 책의 옆을 철사로 묶어 주는 것을 ‘평철’이라 하고, 책의 접은 중간을 철침을 박아 묶어 주는 것을 ‘중철’이라고 한다. 철사기 ◈ 수동 사철기 ‘수동 사철기’는 대체로 양자이나 반양장 형식으로 제본할 때 사용되는 기계이다. 제본할 때 인쇄된 인쇄물을 페이지 순서대로 가지런히 정렬된 정합본을 실로 꿰매어 엮는 기계이다. 책을 묶은 후에는 묶은 부분을 종이로 붙여 준다. 그렇지 않으면 실로 묶은 부분이 느슨해져 책의 모양이 변할 수도 있다. 교과서의 경우에는 이전의 교육과정기 『사회과 부도』 교과서에 이러한 사철기를 이용한 제본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 크림시 카메라 ‘크림시 카메라’는 전자 색 분해기가 나오기 전에 4색 분해나 망, 투시 촬영에 사용됐던 카메라이다. 이 카메라는 일반 물체를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평면의 원고를 촬영하므로 일반 카메라와는 다르게 원고를 고정하기 위한 원고 틀이 있다. 카메라는 렌즈 틀, 주름상자, 암상, 원고 틀, 지지 틀 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렌즈 틀에는 렌즈를 설치해 상하좌우로 조절할 수 있으며, 원고 틀에는 원고를 고정하고, 지지 틀은 카메라 전체의 모양을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암상에는 필름이 들어 있는 원판 틀을 설치해 초점을 맞출 수 있으며 스크린도 설치할 수 있다. 주름상자는 암상과 렌즈를 연결하는 기능을 한다. 이 카메라를 사용하는 방법은 원판 틀에 필름을 설치하고 완전히 밀봉한 다음에 원고를 원고 틀에 넣고 조명을 알맞게 조절한 후에 원판 틀을 이용해 사진을 찍고 암실에서 현상한다. 크림시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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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 - 인쇄기계전시관⑥



